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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9:13~20 자기 의, 누가 주인인가?

LNCK 2022. 9. 6. 18:31

자기 의, 누가 주인인가?  - YouTube

 

◈자기 의, 누가 주인인가?           롬9:13~20, 창4:1~8             2022.08.21.


로마서 9장의 주제는 '누가 주인이냐?' 는 거예요.    ☞긍휼을 얻은 야곱과... 
저는 최근에 1년 동안, 이 로마서 9장 앞에 주님이 저를 서게 하셨어요. 

제가 로마서 9장을 읽으면서, 이 말씀 앞에서 제 속에 감춰진 반응들이.. 
즉 '내가 모든 것에 주인'인 것이 드러나지는 거예요. 그게 1년이나 걸렸어요. 
주님의 빛이 제 마음 속에 온전히 비춰져서, 그걸 깨닫게 되는데 1년이나 걸렸어요. 

사실은 20세 때 예수 믿는다고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제가 믿은 것은요 
예수님이 주인인 십자가의 공로를 믿은 게 아니라 
나를 믿었어요. 

예수님이 내 모든 죄를 씻기 위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은 제가 믿었어요. 
근데 예수님의 피 공로를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이 제 삶의 주인은 아니었어요. 

제가 세례를 받았을 때가 청년기였어요. 
대학교 일학년 때 세례를 받았는데요. 그때 저는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 아니었어요. 

예수님이 주인이 아니면서, 예수님이 내 모든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 죽으신 분이심을 믿었어요. 
여러분, 성경에 항상 "우리  예수 그리스도"라고 그래요.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는 믿어요, 그런데 "주"로는 믿지 않아요. 즉 살지 않아요.

예수님이 "주"가 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가 역사하지 않아요

제가 지금 말하는 것은, 조지 휫필드 목사님도 이렇게 오랫동안 설교했더라고요.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내 죄가 예수의 피로 씻음 받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나는 의인이 되었다'고 말하지만 
예수님이 주인 Lord 되기 전에 이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에요


▲주님이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제가 3년 전에 뇌출혈로 쓰러지는 일을 주셨어요. 
너무 감사하게... 그것은 제가 회개할 수 있는 기회였고 
그것은 징벌과 동시에 제게는 회개의 기회였어요.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리고는 제가 살아온 세례바은 이후에 40년이 되어가는 저의 삶 속에 
그 사이에 목사가 되었지만, 저의 지나온 삶은 분명히 '광야'였어요. 

그렇다고 제가 그때 (뇌출혈로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천국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을 의지해서, 여러분과 나누는 것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오직 기록된 성경 말씀,
그 말씀 그대로 행하시는 (언약을 성취하시는) 주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그래도 저는 기록된 말씀을 읽으면서도

 (예수님이 주님 Lord이 되신 사람만 십자가가 효력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광야를 살았던 거죠.

 

그런데 주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어요. 

제가 뇌출혈로 누워있을 때, 주님이 제 머릿속에 
'회개만이 네가 살길이다!' 라는 것을 알려주셨어요. 
제가 그 말씀을 붙잡은 것은 주님의 긍휼이었습니다. 

그때 주님의 음성으로 '삯꾼아!' 하셨는데, 제가 잊을 수가 없어요. 
'내가 삯꾼 이라니...' 

그러나 '삯꾼' 이라는 주님의 음성을 제가 들었지만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2년 동안 주님은 성경말씀으로 
내가 '주님, 제가 삯꾼이 맞습니다' 이것을 제 마음으로 인정하고 
자백하게 하시는데 꼬박 2년이 걸렸어요. 

그 사이에는 저는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 두꺼운 성경 속에서 난 어디서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됩니까?' 

주님은 그때 '너는 사람의 종이었어!
너는 목회 라는 것도, 목회가 네게 우상이야 
목회의 동기가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한 게 아니라 
교인들이 그저 많이 모여지는 것을 좋아했어!'

제가 그 말을 듣고, 유구무언, 제가 할 말이 없는 거예요. Speechless!
제가 핑계 댈 수가 없는 거예요. 

제 인생은 분명히 광야였습니다. 
주님은 제가 흰옷이 없는 상태로 
저 아래는 무저갱이 있는데,
제가 벌거벗김을 당한 채로 주님의 손가락에 걸려서 간신히 흔들리고 있는 저를 보여주셨어요. 

 

그렇지만 그렇게 주님의 음성을 들어도 그것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그 자체가 우리를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성경에 야곱이라는 사람도 그랬어요. 
여러분 야곱은, 자기 할아버지가 아브라함이에요. 모태신앙이에요. 

야곱은 어려서부터 자기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자기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보고 들은 사람이에요. 

자기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갈대아 우르를 떠났고 
그의 아버지 이삭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어요. 야곱도 들었습니다. 

야곱이 에서를 피해서 도망갔을 때, 외갓집 라반의 집에서 20십 년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음성으로 말씀합니다. 
'야곱아, 네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라. 형 에서에게로,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라!'라는 음성을 들었어요. 창31:31

여러분 야곱은 이렇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얍복강까지 왔습니다. 
근데 못 건너가는 거에요. 왜 그래요? 자기가 주인인 거에요. 

여러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그게 구원인 줄 아는 거에요. No!
왜냐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도, 회개하지 않으면 순종이 안 돼요. 
얍복강에서 못 건너가요. 

주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 밤중에 야곱은 천사와 씨름을 해요. 
그 천사는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야곱이 그분의 이름을 물어봅니다. 
주님은 이름을 안 가르쳐주셨어요. 그리고 '해가 뜨면 나는 가야 된다'

캄캄한 밤중에 씨름합니다. 주님은 그를 불쌍히 여겨 주셨어요. 
환도뼈를 쳐버려요. 이것은 은혜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어도 얍복강을 못 건너가요. 왜요? 
그가 20년 전에 도망갈 때, 형 에서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기 때문이에요. 

형이 나를 죽이려고 했었기 때문에.. 두려워하잖아요. 
여러분 야곱은 이미 주님의 음성을 들었어요.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창31:13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친 음성을 들어도, 
우리의 자아는 안 바뀝니다. 

주님이 그에게 주신 것은, 주님만 의지하는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이었어요. 
여러분 이 시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이 은혜 입니다. 

'내가 주님을 의지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나이다'
여러분 이렇게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설교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거의 듣지 못하지만 
혹시 하나님 음성을 들어도.. 그 때뿐이에요. 인간은 안 바뀌어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록된 말씀!,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을 통하여 기록하게 하신 이 성경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이것을 하나님의 영으로 기록하신 거에요. 

여러분 성경책은 사람이 쓴 게 아니에요. 
사람의 손을 통하여 하나님이 기록하신 거에요. 
십계명의 돌판을 하나님이 친히 기록하신 것처럼요. 

하나님의 영의 감동으로 이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거에요. 
여러분, 이 변하지 않는 기록된 말씀만이 우리를 일깨웁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시험을 당하실 때,
주님은 마귀의 음성을 들었어요. 

그 마귀의 음성은, 선악과를 먹게 만들었던 
죄가 없는 아담을 불순종하게 만들었던 그 마귀입니다. 

죄가 없는 아담을 불순종하게 만들었던 그 마귀가 예수님께 말했어요. 
근데 예수님은 신명기에 기록된 말씀으로 '기록하기를~' 하시며 
기록한 말씀으로 마귀를 이겼습니다. 

여러분 이 시간에, 이 기록된 말씀을 의지해서 주 앞에 서게 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롬9:13

롬9장에서 사도바울은 '기록된 바~' 이것은 구약성경의 말라기에 나오는 말씀이죠. 
말라기 서에 기록되기를 '여호와께서는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이 말씀에, 사도행전의 부흥과 똑같은 부흥이
이 미국의 코네티컷에서 일어났어요. 

신앙 때문에 영국의 고향을 떠나서 
미국 동부에 왔던 코네티컷에, 사도행전과 똑같은 부흥이 왔었어요. 

죄인들이 다 회개하고 돌아왔어요. 
그들은 이미 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교인들 이었어요. 

그런데 다들 예수를 믿는 교인들 이라고 했지만 
자신들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었던 것을 깨닫게 된 자들이었어요. 
그때 부흥이 왔었어요. 

그때 쓰임 받았던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은 
12 살 때 자기 누나에게 쓴 편지를 보면
'나는 은밀한 가운데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한다'는 거예요. 12 살 짜리가! 
그들을 청교도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이 이 로마서 9:13절 앞에 
도대체 이 말씀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거에요. 
이 말씀만 읽으려고 그러면 불편해진다는 거에요. 

근데 저도 그랬어요. 그 목사님도 그랬던 것을 저는 까마득히 몰랐었죠. 
제 삶도 똑같았어요. 저는 이 롬9:13절 말씀이 불편했어요.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이거 하나님이 편애하는 거 아니야? 

게다가 출생부터, 처음부터 편애하신 거 아닌가? 
이거 정말 힘들었어요. 
'어떻게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둘이 쌍둥이인데, 어떻게 하나님이 처음부터 편애하면 정말 힘들었어요. 
여러분, 지금 이 모든 말씀은요. 누가 주인이냐? 는 거예요. 

저는 이 말씀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조나단 에드워드 목사님은 말합니다. 

이 말씀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는데, 자기가 거듭남으로 말미암아
이 말씀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거예요.

여기서 그 분이 '거듭났다'고 말씀한 것은, 
자기가 비로소 주님의 주권(주인 되심)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거에요. 
주님이 우주의 주인이라는 거예요.
이 주님의 주권,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 

그러니 에서는 사랑하지 않아도, 야곱은 사랑해주시는 거예요.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에서는 측은히 여길 게 아니라, 내가 야곱 됨을 감사해야 하는 거죠!

 

그분에 대한 주권이 믿어짐으로 말미암아 
이 말씀이 받아들여졌다는 거에요. 

그래서 1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롬9: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이론적으로는 맞죠. 하나님께는 불의가 없죠. 
그런데 저는 청년기에 이런 질문이 있었어요. 

아니 바로 왕이 진노해서 자기 군사들에게 명령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좇아가라, 
왜냐하면 자기의 장자가 죽었잖아요. 하나님의 심판으로! 그러니까 어떻게 해요?
'홍해 바다로 추격해 가라!' 그래서 바로의 전차군단이 다 좇아왔잖아요. 

그래서 바로의 군대가 홍해 바다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어린 양의 피를 칠했던 히브리 백성들은 
도망가는데, 환한 낮이었어요.

그런데 같은 홍해 바다 속인데, 좇아오는 바로의 군대는 어둠이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 백성이 있는 곳은 환했어요. 

어떻게 홍해 바다 안에 낮의 광명과 밤같은 어둠이 다 있었는지요!
그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거죠. 

근데 제 마음속에 이 트러블, 갈등은 이거였어요. 
아니 그날 바로 왕이 군사들이, 바로 왕이 좇아가라는데 좇아가야죠. 
어떻게 왕의 명령을 어기겠어요. 근데 바로 왕의 군사들은 수장됐어요. 
한 명도 살지 못하고 홍해에서 다 빠져죽은 거에요. 

제 마음속에 '이런 하나님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 
어떻게 하나님이.. 그럼 유대인만 사랑하시나?' 
이 말씀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예요. 

저는 오랫동안 예수를 믿는다고 했지만, 내 마음속에 질문은 이거에요. 
'아니 그러면 내가 그날 바로 왕이 군사라면 
내 아들이 죽은 그 분노가운데 
바로 왕이 좇아가라, 저들을 다 죽여라고 명령하니 안 갈 수 있겠어요? 

내가 바로의 군사라면, 어떻게 그 명령을 거스를 수 있겠어요?'

저는 하나님께는 불의가 없다(:14)고 말하면서도, 진심으로는 못 받아들이겠는 거에요. 

그런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다고요?
'누가 주인이냐?' 는 거에요. (하나님의 주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죠.
그걸 받아들이면 다 이해됩니다)

주님은 이 바로 왕과 모세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해요. 
9: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지금 사도바울은 성령의 감동으로 로마서를 쓰고 있는데요. 
자기가 쓰는 게 아니에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쓰고 있어요. 

쓰면서 이렇게 말해요.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여러분 성경이 인격체인가요? 성경이 바로에게 말했다는 거예요.

(*성경을 의인화시킴, '성경이 말씀하기를' 이란 뜻인듯) 

이것은 뭐냐면, 기록된 성경 말씀이, 하나님이 주관자(주인) 라는 거에요.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여러분 이 시간 에요. 주님의 주권자 이심이 나타나는 시간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태어났을 때, 남자인지 여자인지 우리가 선택한 적이 없습니다. 
주님은 주인 Lord 이세요. 그래서 트레스젠더는 반역이에요. 
동성애는 죄 정도가 아니라 큰 반역죄이에요.

로마서에 동성애는 모든 죄 중에서 따로 취급해요. 
동성애는 보통 죄보다 더 반역 rebellion 적인 죄이에요. 
우리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을 반역하는 거예요. 

여러분 인류 역사에 국가들이 다같이 함께 동성애를 지지한 때는 
1만년 인류 역사에 지금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들은 전쟁과 전염병을 봅니다. 
전염병은 딥스테이트, 프리메이슨들이 세계 인구를 줄이려고 꾸민 궤계라고요?
여러분 그것보다는, 이것은 하나님의 (허락하신 주권적) 재앙입니다. 

하나님이 주관자이십니다. 전염병이건 (우크라이나) 전쟁이건 
그 일을 허용하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리로 인하여 주님께 회개할 뿐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모든 장마다 나오는 것은
주님이 '내가 주관자다. 너희를 지은 내가 하나님이다. 나 외에는 하나님이 없다' 이 말씀이에요. 

근데 인간은 안 그래요. 인간은 바벨탑을 쌓아요. 
바벨탑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이 주인이라는 거죠!

여러분, 바벨탑처럼, 지금 이 휴대폰과 인공위성과 함께 
인간의 과학이 폭발적으로 발달하고 있어요. 
하나님께 영광돌리지 않는 과학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입니다. 

여러분 우리 육신이 이 휴대폰과 비행기와 이런 것들의 혜택을 보고 있지만 
하나님께 영광돌리지 않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과학은... 결국은 바벨탑입니다. 

 

성경의 예언대로 우리들은 둘 중에 하나에요. 
우리들의 삶은, 바벨탑을 쌓는 이 세상의 문화를 누리고 있든지 
아니면은 제단,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제단을 쌓는 삶이 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 이 예배가, 바벨탑을 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조그만 돌제단을 쌓는 예배되길 바랍니다. 
주님은 반드시 그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사람을 찾습니다. 전심으로 나를 찾는 자, 
'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자를 만나 주리라'  약4:8등

여러분 신앙생활은 마음입니다. 똑똑한 사람과 관계 없습니다. 
전심으로 주님만을 찾는 예배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이 예배를 통하여, 밤이나 낮이나 
유괴 당한 자식을 찾는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가 하나님 없는 삶을 깨닫고, 전심으로 주님을 찾는 예배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주인"되지 아니하고 절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거짓 구원입니다.  *주제

여러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조건은, 그분이 주인이신 믿음이어야 돼요. 
다음 주에 나눌 것은 로마서 10장인데요. 
'예수님이 주인돼야지 구원받는다'는 거에요. 

우리들은 압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너무 쉬워보이죠. 롬10:13
누구나 자기 입술로 '예수님!' 이렇게 부르기만 하면, 자기가 구원받는 줄 아는 거에요. 

여러분 그럼 예수님이 처음부터 미리, 이 로마서에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롬10:13
이 말씀을 나오기 전에, 이미 마7장에 예수님이 미리 말씀했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더러 주여, 주여 (부르며)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언하며, 귀신 쫓고, 능력을 행하였나이다 라고 하리니
그 날에 나는 밝히 말하리라. 나는 너를 모른다!'

아니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 내쫓고, 예언하는 데도 
예수님이 그를 모르신다는 거에요. 

이런 말씀을 다 무시하고, 롬10:13절만 붙드시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성경말씀은 일관적입니다. 여기 내용과 저기 내용이 다르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롬10:13
주의 이름을 불렀다.. 주님, 주인, Lord 로 모시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 삶의 주인이면서, 입술로 '주여' 부르면, 마7장이 적용됩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 반드시 오십니다. 곧 오십니다. 
우리는 지금 주님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언젠가 전쟁과 전염병에 이어서 
성경에 예언된 하나님의 재앙, 자연재해가 더 심하게 일어날 거예요. 

여러분 마침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 땅에 데스벨리, 라스베이거스 바로 옆에 있죠.
그 DEATH VALLEY에, 천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홍수가 왔어요. 
천년에 한번 일어난 홍수예요. 

여러분 우리들은 지금,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전염병 속에서, 이 코로나 3년 동안에 이제는 Zoom 으로만 예배하면 되는 거예요. 
인간은 편리한 예배를 개발하고 있어요. 

그런 동안에 미국에, 한국에, 수많은 교회가 문을 닫거나 숫자가 줄었습니다. 
여러분 이 예배가, 과학의 혜택으로, 편리한 예배, 줌으로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주만 예배하는 교회되기를 축원합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만 찾는 예배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주인되셔야 해요. *이 설교의 주제
예수님에 대하여 성경을 아무리 읽어서 알아도 
예수님이 '나의 주인 Lord'이 되시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신자들이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해 십자가의 죽으신 것을 믿는다' 
여러분 그 믿음은, 주님과 연합된 믿음이어야 됩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 Lord'이 되셔야 그 믿음이 자기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그저 '지식적인 믿음(지적 동의)'인데, 그거 가지고 구원 못 받습니다. 
아무리 롬10:13절을 가지고 노래를 불러도요!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데, 그 앞에 우리가 섰는데 
어떻게 아무 감정이 없을 수가 있어요? 
내 죄 때문에, 주님의 손과 발에 망치질로 못 박히어서 
그 못 박힌 채로 몸무게에 눌려 살이 찢어지면서 매달려 있어요. 

숨을 쉴 때마다, 그 뼈 속에서 올라오는 고통으로 인하여... 우리가 구원받았어요.
그 골고다 언덕에 서 있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어떤 자세로) 예배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가볍게 차 한 잔 하는 기분으로,
인스턴트로 예배할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예배 때마다, 골고다 언덕 앞에 선 심정으로
전심으로 예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9: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여러분 저는 이 말씀을 보면 너무 놀라요. 
왜냐하면 제가 40년 동안 예수 믿고 있는데요. 
이 말씀에 대해, 제 속에 원망과 섭섭한 마음이 있어요. 

그 멋있는 영화배우 사진을 보면, '참 하나님이 정말 신경 써서 잘 만드셨다'
근데 거울을 보면, 제 얼굴이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저는 아침마다 칫솔질을 할 때, 제 얼굴이 보기 싫어서 거울을 못 봤어요. 
치약거품이 막 거울에 튀기면, 그거 닦느라 슬쩍 볼 때가 있요. 
근데 제 얼굴이 제 마음에 안 드는 거에요. 

근데 제 성격도 저는 마음에 안 들어요.
저는 용기 있는 사람을 보면요 참 부러워요. 
저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었어요. 

저는 여학생들이 저를 막 도와주려고 했어요. 
남들 앞에서 말도 잘 못하고... 

그럴 때마다 저는 '왜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지?'
내 마음에 안 되는 거에요. 

용기 있는 사람들을 보면, '참 저 사람 성격은 하나님이 정말 잘 만드셨다..' 
너무 부러운 거에요. 이렇게 제 성격도 스스로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학교 공부도.. 어떤 사람은 과외공부도 안 하는데도 공부를 잘하는데 
'하나님이 난 이렇게 만들었지?' 
아무리 생각해도 주님이 나를 만드실 때, 좀 신경 안 쓰신 것 같아요. 

제 속에 주님을 향한 원망이 있었어요.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습니까?' 제가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여러분 제 속에 오랫동안 제가 회개해야 될 것은 깨닫지 못하고 
'나를 이렇게 만드신 것'에 대한 원망이 있었어요. 가인처럼!
   
하나님이 아벨의 예배는 받으셨어요. 
그런데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셨어요. 

저는 제 삶 속에, '가인의 예배'가 오래동안 지속되었는데도
그걸 제가 회개하지 않고 지냈었어요.

내 속에 원망과 불평이 있었던 거죠. 
나에게는 축복하지 아니하시고, 내가 바라는 바 최소한의 삶,
그것을 허락하지 않은 주님에 대해서, 제 속에는 가인처럼 섭섭함과 반역이 있었어요. 

 

여러분 가인은 분노했어요. 그 분노로 동생을 죽였어요. 
그는 '하나님께서 왜 나의 예배를 받지 않으실까?'에 대한 회개 없이
오히려 '왜 내 예배는 받지 않으십니까?' 하는 원망과 분노밖에 없는 거예요. 

여러분 제 속에도 오래 도록, 그런 원망이 있었어요. 
제가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제가 소리를 지르고요. 욕도 많이 하고요. 
그 중환자실이 다 들릴 만큼 소리를 지르고... 
제 무의식속에 꽁꽁 감췄던 원망, 분노, 억압이 튀어나온 거죠. 

목사이기 때문에 종교생활을 하면서 꾹꾹 눌러놓은 것들..
제 속에 솟아나온 것은 분노였어요. 

심지어는 주치의가 그날 환자들을 회진 도는데, 
제가 침대에 누워서 발길질을 했어요. 

그러니까 의사가 저를 보면서 어처구니가 없는 눈초리로 쳐다보더라고요.
그런데 주님은 감사하게도, 제 속에 감춰진 분노를 보여주셨어요. 

제가 이 야구공만큼 오른쪽 뇌가 터졌잖아요. 근데 의사들이렇게 말했어요. 
'저 사람은 의학적으로 이 양쪽 뇌 사이 있는 감정선을 터치한 것 같다.
그 감정선이 출혈로 터치가 돼서, 저렇게 분노하고 욕을 하나 보다...' 
이렇게 말했던 거에요. 목사로서 너무 창피한 거죠. 

그러나 감사한 것은, 감정선을 건드린 것이 아니라 
주님이 회개해야 될 제 속을 건드리셨어요. 
얼마나 감사한지요... 

▲욥은 자식이 다 죽은 슬픔, 
그리고 모든 비즈니스가 무너지게 된 아픔과 괴로움, 
그리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악창이 일어나는 이 괴로움,
그래서 잠도 못자는 슬픔과 아픔과 괴로움속에서... 욥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욥2:10

여러분 홍해 바다가 갈라진 다음에, 
인간의 첫번째 죄의 증거는 이거였어요. 
길에 물도 없고, 또 고기도 없어서 원망하였어요. 출15:24. 16:2

그때 하나님이 진노하셨어요. 왜냐하면 홍해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하고도 
며칠 만에 원망하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 속에 있는 이 가인의 피,
이것(원망)은 바뀌지 않아요. 어떤 영적 체험을 해도 안 바뀌어요. 

야곱처럼 환도뼈가 부서지기 전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도 안 바뀌어요. 
가나안으로 돌아가라는 음성을 들어도, 강을 못 건넜잖아요! 

단 하나, 예수님이 땅에 오신 이유는요, 우리 대신에 십자가에 죽으러 오셨어요. 
그래서 예수와 함께 내가 죽기를 원하셨어요. 
그래서 예수와 함께 내가 삼일만에 다시 살게 하셔서 
이 가인의 본성! 여러분 가인은 살인을 몰랐어요. (본적이 없거든요) 
살인이 뭔지도 모를 텐데 동생을 살해했어요. 쳐 죽였어요. 

저는 여러 전과자들을 전도하는 사역들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된 것은 
어떤 사람은 자기 손에 칼이 있는데도, 자기가 분노때문에 자기가 사람을 죽였는지도 모르고 있어요. 

다만 그런 상황 속에서 살인자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많아요. 무엇입니까? 
가인의 피는.. 누가 살인해라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살인한 자'입니다. 
그 분노, 그것이 동생을 죽였어요. 

그들은 하나님이 계신 걸 알아요. 여러분 가인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예배해야 된다는 것도 알았어요. 

다만 그는 자기 예배는 받아주지 않았다는 것.. 거기에 분노했어요. 
여러분 이것이, 우리 속에 회개해야만, 그래야지만 우리가 거듭날 수 있어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이 가인의 피가,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아벨이 예표죠, 
그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바꿔주실 때만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합니다. 

여러분 이 로마서의 질문 '하나님이 불의합니까?' No! :14
하나님께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습니까?' 말할 수 있습니까? No! :19

여러분 이 시간에 주님은 주인 Lord 이십니다. 
'주신 분도 하나님이요 취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니 다만 주를 경배할지라' 

혹시 인생을 실패했습니까? 더 이상 돌이킬 수도 없고, 재정적인 회복도 할 수 없고, 
건강도 회복할 수 없고, 가정의 불화와 가정의 불행도 회복할 수 없고... 
그래도 이 시간에 주님만 바라본다면...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시고, 마귀에게 조롱을 당하신 그 분이

욥이 주님만 예배한 것처럼.. '주님 할 말 없습니다. 저의 삶에 주관자는 당신이십니다'

 

그저 가인처럼 '하나님이 나의 인생에 왜 나를 받지 않으시는지?' 원망하지 마시고
그저 회개만 있는 제자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에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욥처럼 고통과 실패속에 회개할 뿐입니다. 

욥이 말합니다. '이제는 내가 자신을 미워하고 abhor 주님께 회개하나이다.' 욥42:6
여러분 이렇게 인생을 실패하고 불행속에 있어도 
그저 나는 주만 경배하나이다. 주님이 내 삶에 주관자이심을 지금 고백한다면 
지금 주님이 역사하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