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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12장, 광야 여정은 영적 성숙의 과정 민12장 여러 설교 정리
◑큰 그림으로 보는 민12장의 배경, 정황
민수기를 크게 3등분하면, 이렇습니다.
1장~10:10 - 광야 여정 준비
10:11~25장 – 출애굽 1세대의 광야 여정 출발 및 과정
26장~36장 – 두 번째 인구조사, 출애굽 2세대의 등장 및 그들에 거는 기대
10:11절부터 시내산에서 가나안으로 출발하면서, 여러 사건 사고들이 벌어지는 데요.
신약적으로 해석하면 “중생한 성도의 성화 과정”입니다.
그래서 “중생한 성도의 성화 과정”이란 관점 또는 큰 그림으로,
민10~25장을 읽어가시면 좋습니다. 그래서
11장에는.. 백성들의 가장 큰 문제인 “떡 문제”가 나왔고, *만나와 메추라기
12장에는.. 본문이죠. 지도자가 갖는 유혹 문제가 나옵니다.
모세에 대한 아론과 미리암의 리더십 다툼, 질투의 문제입니다.
13장부터.. 출애굽 1세대의 결정적 실수가 나옵니다. 바로 10 정탐꾼의 부정적 보고로 야기된
하나님께 대한 백성들의 불신, 원망입니다.
그래서 결국 출애굽 1세대는 ‘성화의 문제’에 있어서, 대부분 온전함에 이르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완전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면 자녀 세대, 즉 2세대들은 온전함에 성공했고, 가나안에 들어갔거든요.
어쩌면 아버지 세대 (1세대)는, 자녀 세대 (2세대)의 성공을 위해서, 희생했는지도 모릅니다.
-반면교사(이래서는 망한다)로서의 본을 보여주는 희생을 하기도 했고,
-자녀 세대의 성공을 위해서, 어쩌면 멍석을 깔아주고, 토대을 마련해 주었다는 점에서
‘자기 시대적 사명’은, 성공적으로 감당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 1세대는.. 한 줄로 평하면, 성공하기도 했고,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1) ‘성공했다’는 것은 .. 릴레이 경주로 예를 들면, 다음 주자가 성공(가나안 입성) 했기 때문에
첫 주자였던 1세대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체전’의 개념에서 보면요.
그리고 하나님께는 실패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실패하실 수 없는 속성이 있습니다.
2) ‘실패했다’는 것은 .. 1세대가 온전함을 완전히 이루지 못하고,
광야에서 39년간 계속 불순종하면서, 온전한 성화를 이루지 못했던 것이죠.
바울이 말한 바 ‘구원의 완성’에는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빌2:12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에서 ‘이루지는 못한’ 것입니다.
△그렇게 1세대가 실패했어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날 신약성도인 우리들에게 “반면 교사로서의 의미”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했죠.
고전10:1~6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이런 저런 의미에서, 출애굽 1세대는
‘자기 시대적 사명’을 다 감당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그림’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민12장을 읽을 때는 (민11~25장이 다 마찬가지지만)
그들이 ‘성화(의 구원 과정)’에서 어떻게 실패했는지를 보면서
오늘날 우리가 ‘반면 교사’를 삼아야 된다는 거죠.
본문은 ‘아론과 미리암의 질투심’인데.. 그래서 ‘성화에 실패’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는 것이며
또한 모세의 온유함을 통해서, 광야길(성화의 과정)에서
온유함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예표를 보는 것입니다.
※참고로, 그럼 출애굽 3세대의 실패 (사사기)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요?
연극이나 오페라에 1막, 2막이 있는 것처럼, 사사기부터는 막이 바뀐다고 봅니다.
출애굽기~여호수아가 .. 출애굽, 광야 40년, 가나안 입성의 한 막 Chapter 이라면
사사기부터는 .. 이스라엘 왕국, 즉 하나님의 나라로.. 새로운 막 Chapter 이 시작되는 거죠.
◑본문 민12장의 개요
민12장에서는 지도자인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의 결혼문제로 모세를 비방하므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방해한 사건이 전개됩니다.
그들이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한 문제를 비방한 것은, 사실 그들 속에 시기와 질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1-3절은 아론과 미리암의 모세 비방,
4-8절은 하나님의 모세 변호,
9-12절은 미리암의 문둥병 발병,
13-16절은 모세의 간구와 미리암 회복에 대해 나왔습니다.
▲추천 설교
◑여러 설교에서 중요 부분 인용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세가 이방의 구스 여인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의 원 부인이었던 십보라가 죽은 후의 일이었으리라 생각되는데
모세가 그 이방 여인과 결혼을 하자 누이 미리암과 형아론이 모세를 비방합니다.
이방인과의 결혼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영적 순수성 보존을 위해
“가나안 7족속”과의 통혼을 금지하셨는데(출34:16, 신7:1),
이들은 하나님이 이방인과의 결혼을 아예 금지시키신 것으로 이해한 듯합니다.(창48:5, 룻 4:13~22).
2) 그 무엇보다 가장 근본적인 동기는 모세의 탁월한 지위에 대한
그들의 교만한 질투심 때문이었습니다. 2절에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미리암은 여선지자 자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기도 했던 사람입니다.(출15:20,21),
아론 역시 우림과 둠밈이 부착된 판결 흉패를 입고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거룩한 사역에 동참한 사람입니다(2:1, 출28:15, 30).
얼마든지 모세의 행위에 대하여 비판하며 그의 지도력에 도전할 만한 사람입니다.
모세에게 "너만 지도자냐 우리도 지도자다"라고 모세의 지도력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합니다. 3절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온유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바나"라는 말인데 그 뜻은 "마음을 굽힌다." "뜻을 굽힌다."
"굴복한다, 절한다, 구부린다, 낮아진다, 마음으로 허리를 굽히다."라는 뜻입니다.
모세는 비난 받을 때 참았습니다. 얼마든지 형과 누이를 자신도 비난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과거 우상을 만들고 우상숭배한 자들입니다.
자기를 스스로 자기 방어를 하려고 들지도 않고, 자기 변명을 하려고 들지도 않았습니다.
조금도 초조해 하지도 않았습니다. 비방을 그 어려운 공격을 다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또한 공격하는 자를 공격하려고 하도 않고 비방하는 자를 비방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온유하기도 했지만 위 2)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서 “충성된 종”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7절에 하나님은 모세의 충성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모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라고 말씀합니다.
한 시대 쓰임받는 데 인격도 중요합니다. (온유함)
그러나 인격만 있다고 모든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충성해야 됩니다.
히브리서에서는, 모세의 충성을 예수님의 충성에 비교하고 있습니다.
히3:2 ‘그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펀글) 진돗개와 셰퍼드
셰퍼드는 세계적으로 그 명성이 알려져 있는 개다.
19C말, 독일의 퇴역 군인 스테파니츠가 자기 여생을 바쳐서
새로운 개 품종을 개발하고, 그 개 이름을 ‘목자’라는 의미로 셰퍼드로 붙였다.
목자가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양을 자기 생명을 바쳐서 보호하듯이
주어진 경비 임무에 투철한 개라는 뜻이다.
셰퍼드는 지능과 경비능력 면에서, 단연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한다.
그래서 경비견, 경찰견, 군용견으로는 셰퍼드가 제일 많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53호인 진돗개도
모든 면에서 셰퍼드보다 뛰어나면 뛰어났지, 못하지 않은 명견이다.
진돗개가 자기 주인에게 충성하고, 주인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기 지능과 능력을 다하는 데는, 그 어떤 개도 진돗개를 따라가지 못한다.
진돗개가 셰퍼드보다 월등히 차이가 나고 뛰어난 점이 하나 있는데,
가정용 진돗개를 제외하고
경찰견이나 경비견으로 진돗개를 단 한 마리도 발견할 수 없다.
이 점이 진돗개의 (단점이자 오히려) 장점이 된다.
그 이유는,
셰퍼드는 자기 주인이 바뀌는 것을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진돗개는, 결코 자기 주인을 바꾸지 못한다고 한다.
경찰이나 군대에서, 한 사람이 개를 계속 다룰 수는 없다.
담당자가 제대하기 때문에, 또는 보직 변경으로 인해,
개는 계속 다른 사람을 만나서 키워진다.
셰퍼드나 다른 개는, 담당자가 바뀐 지 사흘만 지나면
바뀐 사람을 자기 주인으로 모시고, 잘 적응한다고 한다.
그 새주인의 명령에 잘 복종한다.
그러나 진돗개는
한번 정해진 주인을, 바꾸지 못한다고 한다.
진돗개를, 지방에 있는 먼 친척 집에 보내었더니
몇 달 만에, 그 진돗개가 옛 주인 집을 찾아왔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지어낸 이야기이거나 과장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한 주인에게만 충성을 다 바치려 하는
진돗개의 특성 때문이다.
그렇다면 크리스천은 어떠한가?
주님 앞에서 셰퍼드와 같은 마음으로 사는가?
아니면 진돗개처럼 오직 한 주인만 섬기며 살고 있는가?
주님과 이 세상을 번갈아가면서 섬기는 사람은 <셰퍼드>형이다.
일편단심의 <진돗개> 같은 믿음이 되었으면 좋겠다.
▲모세는 원래 온유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모세의 생 애를 우리가 아시지 않습니까. 그 는 혈기가 있는 사람입니다.
또 다혈질의 사람입니다. 애굽사람이 마 음에 안 든다고 이유야 어쨌든 애굽 사람을 쳐죽이는,
당석에서 쳐죽이 는 그러한 혈기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아로새겨 주신 소중한 십계 명을 새긴 그 비석을 가지고 내려오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는 걸 보고 분노함이 그 충천하게 될 때
그대로 그 비석으로 내려쳐서 깨뜨리는 그런 다혈질의 사람입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다고 원망하고,
이제 또 그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됐다고 하면서 모세를 원망할 때
모세가 화가 납니다. 그래서 반석을 그대로 두 번 혈기로 내려치는 그런 죄를 범하는 사람이에요.
이런 실수가 있는 사람이요.
뭐 굉장히 혈기에 찬 사람이요 다혈질의 사람인데,
본문에 하나님 말씀하시기를 이 모든 허물을 다 덮어주시고 말씀하십니다.
"저의 온유함이 모든 사람보다 승하니라"
온유가 뭡니까? ‘온유’란 말은 히브리 말로는 '아나바' 인데,
그 뜻은 굽히다, 굴복한다, 혹은 절을 한다, 구부린다, 낮아진다..입니다.
스스로 굽히는 겁니다.
여러분 사람의 몸은 살 아있을 때 부드럽습니다.
오히려 건강한 사람, 젊은 사람은 뼈나 살이 부드럽습니다.
그래서 허리도 유연하고 뭐 팔도 유연합니다. 살도 부드럽습니다.
그런데 나이 많아지면 굳어집니다. 죽은 사람은 뻣뻣합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생명은 부드럽습니다. 오히려 여유가 있을 때 더 부드럽습니다.
마음도 죽은 마음은 굳습니다. 죽어 가는 사람은 굳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온유함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단호해야 할 때는 단호하겠지만) 굽힐 때 굽힐 줄 아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모세가 굽히지 않습니까.
아론과 미리암의 비방 앞에서, 모세는 일단 굽히고 나갑니다. 이것이 온유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모세는 출애굽 이후 일평생 보좌에 앉아 본 일이 없답니다.
그저 평범 한 옷을 입고 언제나 돌 위에 앉았다는 겁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에게 주어진 성질이 있습니다. 그 성질대로 성격이 형성이 됩니다.
그런데 특별한 은혜를 입으면 그 성질이 자기 인격의 성품으로 변화를 받습니다.
사람들은 그 성질이 부드럽기도 하고 강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좋고 나쁜 것이 없습니다.
부드럽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고 강하다고 해서 나쁜 것도 아닙니다.
그 성질대로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성질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품으로 아름답게 변화해서
그의 인생을 영광스럽고 행복하고 창조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세의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민 12:3)
모세의 온유함은 천성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40년동안 목동생활을 하면서 그 온유함을 배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동안 모세를 향하여 불평하고, 원망하고,
심지어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저들의 원망과 불평을 온유함으로 받았습니다.
온유한 모세는 오직 하나님의 부르신 소명에 따라 순종하고 나아갔던 것입니다.
▲모세의 위대성 : 친밀함
하나님은 모세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6절에 보니 선지자들은 꿈과 이상으로 보여 주었지만
8절에 ‘모세와는 대면하였다’는 것입니다.
대면하다는 말은 매우 친밀한 교제 관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는 일반 선지자들에게 사용하시는 꿈(dreams)이나 이상(visions)과 같은
계시 방법을 사용치 않으시고
마치 오랜 친구처럼 직접 그와 가까이서 대화하셨음을 강조한 말입니다.
친밀도가 높다는 말입니다. 모든 것을 알려주고, 모든 것을 들어준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꿈이나 환상을 보면, 스스로 신령한 자라고 과도한 우월성을 가질 수 있겠으나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대면하여 대화하는 것입니다.
☞ *12:1-8 영적 체험과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
▲오늘 이 말씀이 윤리적인데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비방하고, 예수님을 거부하고 있는 사람들은 비방을 그치고 *‘교우’에 비유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하나님께서 세우실 것인데 너희는 그를 들을찌니라”고 선포한
모세의 명령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2006년을 바로 살려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겸손함을 가지고 예수님과 동행하시는 2006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온유한 사람이 강하다
우리가 잘못 생각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힘이 있어야 성공하고,
배경이 든든하고 강한 자가 되어야 이 세상을 정복하고 능치 못하는 일이 없겠다'는 것입니다.
권력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그런 권력을 가졌으면 얼마나 좋겠나?‘
하는 생각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사실 살아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또 역사도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더욱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온유한 자가 잘 삽니다. 양보하고 겸손하고 순하고 부드럽고 덕(德)이 있고
화평하고 사랑하고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잘 되고 잘 삽니다.
이 세상의 어떤 분보다 힘이 있는 분이 부드럽고 온유하고 겸손한 분들입니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잘 압니다.
어떻게 보면 힘있는 동물들이 천하를 다 다스리고 자기 혼자만 살 것 같지만
힘이 있고 능력이 있는 호랑이나 사자나 이런 동물들은 자취를 감춥니다. 번식이 되지를 않습니다.
점점 개체 수가 줄어들게 되어서, 멸종되어 갑니다. 그래서 인간이 보호해줘야 합니다.
오히려 보호해주지 않고 되는대로 버려두는 이런 동물들, 이런 곤충들, 이런 물고기들,
이런 새들은 그렇게 번식이 잘됩니다.
누구도 비둘기를 번식시키려고, 참새를 번식시키려고, 기러기를 번식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잘 번져나갑니다. 연어를 번식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번식이 잘됩니다.
왜요? 순하고 온유하니까 잘되는 것입니다. 동물의 세계를 보십시오.
강한 동물들은 자꾸 깊은 곳을 찾아, 산을 찾아 들어갑니다. 나오지를 못합니다.
사는 영역이 점점 좁아듭니다. 천하의 왕이면 다 다스려야 되는데
겁이 나서 나오지를 못합니다. 힘이 있는데 왜 겁이 납니까?
남을 해치는 사람은 본인의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불안하고 두려습니다.
그래서 사람이나 짐승이나 깊은 곳으로 자꾸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또 자유가 없습니다. 언제나 밤에 활동하고, 숨어서 활동합니다.
노루나 사슴이 그렇게 부자유스럽게 두려워하면서 사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양떼들이 숨어서 겁을 내면서 사나요? 풀 뜯어먹을 때 밤에 나와 뜯어먹나요?
소들이 그렇게 사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참새들은 사람이 있는데도 마음대로 날아와서 먹고 노래하며 잘도 지냅니다.
그러나 강한 짐승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리고 강한 짐승들은 사랑이 없습니다. 행복이 없습니다.
강한 동물 중에 둘이 정답게 살아가는 것은 없습니다.
온유하고 사랑하고 겸손해야 사랑하는 호르몬이 많이 만들어집니다.
옆에 있는 부부간에도 "어흥!"하니 그게 무슨 사랑을 하는 법입니까?
그리고 우리 나라 동물원에서 예전에 그런 일이 많았습니다.
호랑이가 몇 년만에 잉태를 했습니다. 그런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습니다.
숫놈이나 암놈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한 3년이나 5년만에 기회가 와서
숫놈을 들여보내고 신방을 꾸며주면 좋아할 거 아닙니까?
그런데 서로가 잡아죽이든지 물어죽이든지 합니다.
왜요? 사랑 없이 그러니까 서로가 안 되는 거죠.
숫놈도 그냥 막 달려드니까 암놈이 뭐 이런 게 오냐 그러고 받아주지도 않죠.
서로가 그런 거예요. 사랑이 전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들 삶 자체가 아름다운 삶이 아닙니다.
종달새도, 참새도, 모든 동물들이 그렇게 서로 웃으며 사랑하며 기쁘게 살아가는데
강한 자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새들이나 그런 사랑이 없습니다. 수명도 짧아요.
호랑이 수명이 26년, 다 몇 년 못삽니다. 그러나 순한 거북이 봐요. 몇 백 년을 삽니다.
하여튼 순한 동물 치고 오래 안 사는 동물이 없어요. 수명이 길어요.
하나님이 그렇게 주신 거예요. 영역도 넓고 수명도 길고 행복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임이니라' 하셨습니다.
'잘된다'라는 거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강한 자는 힘있는 자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사람이고,
약한 자는 여성명사로 그냥 어디든지 실패자요 미약한 인생이요 빼앗기는 인생이요
미련한 삶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약한 자가 오히려 승리하는 사람이요 큰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마음의 흡족함을 주고 기쁨을 주는 사람들은
다 온유한 자들, 순한 자들입니다. 사랑을 받습니다.
△사람이 원숙한 단계, 성숙한 단계, 정상급에 이르면 온유해지고, 모두 순해집니다.
운동도 그렇습니다. 골프도 힘주는 건 초보자입니다.
힘이 쑥 빠지는 것이 최고의 경지에 오르는 것입니다.
골프는 제 아무리 운동을 잘해도 3년, 5년까지는 힘이 들어갑니다.
5년, 10년 지나야 그때 힘이 빠지면서 공이 멀리 날아가는 것입니다.
야구나 배구나 다 마찬가입니다. 힘주니까 안 되는 겁니다. 강하니까 안 날아가는 겁니다.
순하면 모두 잘 날아갑니다. 힘주면 다 안돼요.
힘이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보면 약한 자요 실패한 자 같지만 그 사람들이 강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온유한 자에게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온유한 나라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사랑과 인자가 한이 없으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은혜를
수천 대에 베푸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기독교는 온유한 종교입니다. 기독교 국가들은 온유합니다. 온유한 나라들이 힘이 있습니다.
온유한 나라들이 잘됩니다.
지금 우리 나라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물질의 문제도 아닙니다. 정치 문제도 아닙니다.
남북의 문제도 아닙니다. 이 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국민들의 성품이 온유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품을 바꿔야 됩니다. 우리 나라는 70년대 후반부터 거칠어지기 시작했습니다.
7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우리의 성품이 사나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국민은 가장 순한 민족이었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을 가진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전세계에서 우리 민족보다 강한 민족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강해졌습니다.
살벌해졌습니다. 강퍅해졌습니다. 포악해졌습니다.
지금은 어른이나 아이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도시나 농촌이나 어느 지역 관계없이,
다 강퍅해졌습니다. 농촌도 옛날 농촌이 아닙니다. 농민들도 얼마나 강해졌는지요.
저희 고향이나 시골에 가서 이야기해보면 어른들도 옛날 어른들이 아니고 옛날 농민들이 아니에요.
작년에도 사과값 떨어지니까 사과를 다 싣고 와서 종합청사에다 막 퍼뜨려 놓고 밟았어요.
돼지값 떨어지면 돼지를 고속도로에다 막 내려놓아요. 고속도로가 돼지판이 되지요.
배추값 떨어지면 그냥 갈아 엎어버려요. '누구 주고' 이런 생각을 안합니다.
안되면, 내 맘에 안들면 휘두릅니다. 지난번엔 고속도로를 농민들 몇만 명이 점령했어요.
못 당해요. 다 띠 두르는 거예요. '결사반대!' 다 그러는 겁니다. 강해졌어요. 너무너무 강해졌어요.
여러분. 우리 나라가 지금 엄청난 아픔과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발전에 큰 장애물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너무 강해졌어요.
강한 법칙을 알죠. 강하면 수명이 짧고 강하면 부딪히게 되고
강하면 상처를 주고 또 자체는 깨집니다.
쇠는 강하기 때문에 녹이 슬든지 부러지든지 수명이 길지 못합니다. 모든 강한 것은 오래갈 수 없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입안에 이빨을 주시고 또 혀를 주셨는데
어떻게 보면 이빨은 강하지만 강한 이빨은 벌레도 잘먹고 강한 이빨은 빠진다'는 겁니다.
튼튼한 이빨은 빠지지만 너무너무 부드러운 우리 혀는 벌레먹는 일도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 죽을 때 혀 빠져 죽은 분이 있냐 말이에요. 혀 빠져 죽는 분은 없다는 겁니다.
이 빠져 죽어도 혀 빠져 죽는 분이 어디 있어요?
하나님이 약한 것은 수명도 길게 하신다는 겁니다.
약한 것이 승리하고 남는 사람은 약한 자가 남는다는 겁니다.
강한 자가 오래가는 것 같지만 강한 자는 오래갈 수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주님의 나라가 오늘날까지 수 천 년 동안 온 인류를 다스리는 것은
예수님이 무슨 총이 있어서입니까? 무기가 있어서입니까? 무슨 법이 있어요? 법도 없어요.
온유한 우리 주님의 사랑으로 다스리는 그 나라가
가장 어느 곳보다도 힘이 있고 질서가 있습니다.
주님의 나라는 온유한 나라입니다. 주님은 온유하신 분이에요. 십자가 위에 피 흘려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지만 말 한마디 안 하시고 욕 한마디 안 하셨습니다. 온유하십니다.
이사야서에 있는 대로 털 깎는 자 앞의 양과 같으셨습니다.
저는 털을 깎아봤습니다. 양을 먹이면서 털을 몇 마리를 깎아봤습니다.
외국의 양을 많이 먹이는 나라는 기계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 나라는 기계가 없으니까
가위 가지고 깎는 거예요. 살을 안 찝으려고 하는데도 자꾸 찝는 거예요.
그러면 얼마나 살을 많이 찝는지, 다 깎고 나면 온 몸에 살점이 잘려 있습니다.
내가 자른 겁니다. 그러나 한번도 '왜 그랬냐?'고 달려들지도 않습니다.
다른 짐승 같으면 가만히 있겠어요? 어느 짐승이라도 가만히 안 있어요.
몇 시간을 기다려주지도 못해요. 나는 이 양을 보면서
'주님이 이렇기 때문에 양이라고 그러셨구나' 생각했습니다.
주님은 양인데 왜 이렇게 잘되는가? 호랑이도 있고 사자도 있는데…….
주님의 나라가 왜 이렇게 잘 될까? 바로 온유한 것 때문입니다. 온유하면 오래갑니다.
온유하면 복을 받습니다. 온유하면 하나님 앞에 하늘과 땅에서 훌륭한 지도자의 복을 받습니다.
여러분이 크게 성공하기를 원하십니까? 강하면 안됩니다. 온유해야 됩니다.
강퍅하면 안됩니다. 저항하고 반항하고 증오하고 미워하면 여러분 자신이 불행해 집니다.
성공은 있을 수 없습니다. 땅을 기업으로 얻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사람 '인(人)'자처럼 서로 기대고 의지하고 만져주고 위로해주고
나누고 긍휼을 베풀고 인자함을 베풀어야 합니다.
봄날씨처럼 따뜻한 손길, 따뜻한 마음이 사람에게 있어야 되고
우리 가정에 있어야 되고 우리 교회에 있어야 되고 이 나라에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랑이 우리 하나 하나에 같이 할 때에 이 나라가 좋은 나라가 될 줄로 믿습니다.
외국의 기업들이 다 왔다가 간다고 합니다. 신문에 몇 번이나 크게 났습니다.
왜? 강성 노조 때문에 못 견뎌납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못 견뎌나는 겁니다.
외국에 있는 근로자들도 여기 와서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는데
하나 때문에 못 참고, 한국 사람을 자기 나라에서 만나면 찔러 죽이고 싶다는 겁니다.
외국에서 제가 들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너무 욕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조금만 잘못하면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때리고 욕을 자꾸 한답니다. 강한 말로 합니다.
자기 어머니, 아버지까지 전부 말해가면서 욕한다는 겁니다.
돈은 조금 벌어 가긴 갔지만 결국엔 우리 나라에 대해 나쁜 마음만 가슴에 안고 가는 겁니다.
여러분이 나아가서 이 나라를 평화스러운 나라, 온유한 나라, 부드러운 나라로 만들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주의 도구로 써져야 됩니다. 피스 메이커(Peace Maker)로 나아가야 됩니다.
저는 하나님 은혜로 각 분야에 높은 분들을 많이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참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저렇게 순한 분이 어떻게 저렇게 높이 될까?'하는 것입니다.
검찰의 검찰청장이나 군의 참모총장님들도 보면 똑같은 것이 있어요. 순해요.
'저분이 어떻게 저렇게 순할까?' 그런데 간혹 가다가 거기에 강한 분이 들어와요.
막 강하게 발언하면요 오래 못 있고 나가요. 그 말 때문에 다 나가요.
설령 똑똑하고 강한 분들이 들어와도 언제나 오래 못 있어요.
강한 대변인으로 자기 당에 공헌하는 것 같지만
결국 그 당도 그 강한 사람 때문에 피해를 봐요. 나중에는 다 손해예요.
자기도 손해고 다 손해예요.
순한 사람은 나중에 정권이 바뀌어도 다 괜찮은데, 강한 사람은 다 다치는 거예요.
내가 보고 '저 사람은 이다음에 붙들리겠구나' 그러면 적중해요.
순한 분은 좋은 일이 와도 강한 분은 나중에도 좋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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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글민12장, 광야 여정은 영적 성숙의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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