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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15:37~41 기억의 청색실

LNCK 2022. 9. 19. 09:15

◈기억의 청색실            민15:37~41, 마23:5            2005.08.21.출처

 

※신구약이 이렇게 연결되는지는,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기억, 이라고 하는 아주 중요한 도구를 갖고 있습니다.

기억을 통해서 우리는 하루 하루를 제대로 살아갑니다.

집을 기억하고 사람을 기억하고 약속을 기억합니다.

 

기억을 잊지 않으려고 사람들은 애를 씁니다. 노트에 기록하고 수첩을갖고 다닙니다.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일깨워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억을 상실하기 시작하면 안타깝습니다.

사람을 기억못합니다. 약속을 잊습니다. 물건을 어디 두었는지 기억을 못합니다.

치매가 그래서 참으로 걱정되는 병이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정말 기억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하신 말씀,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 자신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제가 에딘버러에 있을 때 어떤 원로목사님에게 치매가 왔어요.

그렇게 오래 같이 살던 사모님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볼 때 얼마나 안타까왔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기억을 잃는다는 것이 말이지요.

 

우리는 기억을 다 할 수도 없고, 어떤 것은 잊어야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 말씀과 우리의 주님을 잊지 않기를 원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꼭 기억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라고 본문에 하나님은 ‘기억의 청색실’을 백성들이 옷술에 매달도록 하셨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오랜 병을 앓고 있는 한 여인을 만나게 되셨지요.

얼굴이 창백한 여인입니다. 열두해를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었습니다.

 

막5:25~26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이 여인은 많은 의원을 만나고 곳곳에 유명한 병원을 찾아 다녔습니다.

유명한 데를 다 다녀 봤는데 돈만 들었지 병은 더 중해지고 말았어요.

 

그러다가 어느날 예수님이 한 다른 병자를 고치시려고 가시는 길에 이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피골이 상접한 이 여인이 한 일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는 것이었습니다.

 

막5: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주1)

 

마9:20절, 21절에는 이 여인은 에수님의 뒤로 와서 그 분의 겉옷 가를 만졌다고 했습니다.

:21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여기서 여인이 한 일은 예수님의 겉옷을 그냥 만진 것이 아니라 그 중의 어느 한 곳,

즉 겉옷 가를 만진 것입니다. (본문 민15:37~41에 나오는, 그 ‘기억의 청색실’을 만진 거죠)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옷을 입을 때

그 겉옷 팔소매 끝에는 옷술이 달려있었습니다.

 

보통 히브리어로 ‘치치트’ 라고 불리우는 옷술인데

겉옷 소매 모퉁이에 달았습니다.                                  주1)

그리고 그 옷술이 흩으러지지 않도록 청색실로 끈을 해서 묶어놓았습니다.

청색끈으로 묶인 옷술을 이 혈루증 앓던 여인이 만졌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입고 계신 겉옷가의 청색실,

그 곳에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말입니다.

왜 이런 믿음을 가졌을까요? 왜 겉옷가를 만지면 된다는 믿음이 들었을까요?

 

어쨌든 그 여인은 그 자리에서 병이 나았습니다.

막5: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그 여인 만이 아니고 예수님의 옷 가의 청색실에 손을 댄 다른 사람들도

그곳에 손을 댔을 때 병이 떠나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병자를 데리고 와서 예수님의 겉옷 가에라도 손을 댈 수 있기를 간구했고

그렇게 손을 댄 사람은 다 나음을 입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마14:34 저희가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니

:35 그 곳 사람들이 예수신 줄을 알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36 다만 예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

 

왜 그 청색실이 이런 능력을 나타내는데 쓰였을까요?

바로 그 청색실은 ‘기억의 청색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억의 청색실. 즉 그 청색실은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 만이아니고

그 이전에 살고 있었던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 무엇인가를 기억하게 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1. 기억의 청색실로 첫째, 큰 구원의 하나님을 기억함

 

혈루병을 앓던 여인이나 여러 병에 걸렸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겉옷 소매 가의 청색실을 만지려고 한 이유는

그 청색실이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기억하는 하나님은 출애굽의 큰 구원을이루신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찬송가 200장 1절을 불러봅니다.

(1)주의 피로 이룬 샘물 참 깊고 넓도다 구원하는 크신 능력 다 찬송할지라 

찬송하세 주의 보혈 그 샘에 지금 나아가 죄에 깊이 빠진 이몸 그 피로 씻어 맑히네

 

구원하는 크신 능력! 우리는 이 큰 구원의 일을 기억하여야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모세와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신 명령이 나옵니다.

대대로 옷단 귀퉁이에 옷술을 만들고 청색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는 명령입니다.

 

민15:3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38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의 대대로 그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39 이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40 그리하여 너희가 내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행하면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 청색실로 묶인 옷술이,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기억은 먼저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기억하고

순종하는 일이 중요한데 그렇게 기억하는 일을 위해서 자기 마음과 눈의 욕심을 좇는 대신

청색끈이 기억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에서 생각나는 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잘 기억하여 그 말씀을 순종하면, 죄에서 벗어나 거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백성, 즉 성도다운 성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자,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순종한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순종하여야 하는가입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가?입니다.

 

우리는 왜 그 분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가?

그 분이 이렇게 하라하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 하시면 저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왜 그 분의 말씀을 기억하고 순종할 것을 기억하여야 하는가입니다.

 

기억의 청색실이 기억하게 하는 가장 근본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분의 말씀이지만 바로 ‘그 분’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 분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41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냥 하나님이 아니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낸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아주 흥미롭고 중요합니다. 본문41절을 다시 읽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15:41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 하여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어떤 하나님이신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낸’,

즉 ‘출애굽 시키신’ 하나님이 되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씩 그 하나님의 이름을 강조합니다.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두 번씩 반복하여 이렇게 말씀하심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이 되시려는 강력한 뜻을 밝힌 것입니다.

 

여호와 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어디든지 계시는데

이스라엘이 고난받는 곳에도 계시고, 그곳을 벗어나는 현장에서 구주로 계시고

그리고 홍해, 광야, 가나안의 모든 길에 함께 계시고

가나안 땅에서 기다리시는 하나님으로 계신다는 뜻입니다.

 

구주 하나님이시며 출애굽의 하나님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 여호와이신 하나님이 되시려고 출애굽을 일으키셨다는 뜻이지요.

출애굽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겉옷에 청색실의 끈을 달고 있었던 것은

그리고 그 겉옷 네 귀퉁이에 다 단 것은 천지 사방을 움직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주가 되신다, 그 구주이신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의미 였습니다.

 

옷 가의 청색끈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아울러 하나님 자신을 기억하게 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 모세와 함께 한 지도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을 때였습니다.

그들이 보니 하나님의 발 아래가 파란 하늘같이 그렇게 청명한 푸른 색이 펼쳐진 것을 보았습니다.

 

출24:9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10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

 

이 광경을 전해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생각할 때 그 파란 청색을 기억하였습니다.

청색실은 곧 하나님과 그분의 능력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기억케 하는 그 청색끈을 바라보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출애굽의 큰 구원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이 기억되는 것이었습니다.

 

‘아, 그래, 그렇게 큰 구원을 일으키셨지,

그렇다면 나도 그렇게 이 절망의 깊은 구덩이이에서 구원하시고 건져내실 수 있겠지,

맞아 그러실 수 있어’ 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 청색끈을 보는 사람들이 다 믿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청색실을 옷 소매 귀퉁에 달고 있었던 사람들이

(요즘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 쓰는 쇼올 가에 이 청색실을 달고 다닙니다)

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 그 큰 능력의 하나님을 다 능력있게 기억하게 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 이 청색실을 소매 귀퉁이에 달고 다니던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특히 대제사장, 제사장, 레위인, 등 당시 유대교의 종교지도자들도 그렇게 하고 다녔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서 모두에게 기억의 청색실을 달도록 명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5:3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38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의 대대로 그 옷단(소매)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이 소매자락의 청색끈은 청색이라는 색깔을 통해서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

그 거룩하심을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예컨대 대제사장이 입은 겉옷은 전부 청색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성결하게 살겠습니다’ 라는 다짐의 머리 띠, 패를

머리의 관에 붙이는 끈도 청색 끈이었습니다.

 

출28:36 너는 또 정금으로 패를 만들어 인을 새기는 법으로 그 위에 새기되 (여호와께 성결) 이라 하고

:37 그 패를 청색 끈으로 관 위에 매되 곧 전면에 있게 하라

 

이로써 모두가 다 하나님과 그분의 거룩한 나라를 기억하면서 살게 만드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6장33절에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을 하신 이유도

‘그 분’, 즉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큰 구원의 하나님, 출애굽의 하나님을 기억하라, 그리고 그 분께 순종하라,

그 분의 말씀을 따라서 살려고 하라, 그리하면 다 해결해 주신다,. 라는 말씀입니다.

 

 

◑2. 기억의 청색실은 둘째로, 큰 순종의 결과를 기억함

 

순종은 은혜를 받는 일에 아주 중요합니다.

‘순종해야지’ 라는 이 생각이 늘 기억되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큰 구원, 그 큰 구원의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과 아울러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큰 순종의 신앙인들의 그 순종과 십자가의 길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은 그런 사례를 읽고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큰 순종이란 하나님을 늘 생각하면서, 그분의 큰 구원을 기억하면서

‘아, 그 분께 순종하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사는’ 일을 늘 기억하는 신앙생활을 말합니다.

 

이 일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따르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내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기억의 청색실을 통해 이런 순종을 우리에게 가르치며

그 순종의 결과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15:39 이 술은 너희로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로 방종케 하는 자기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좇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40 그리하면 너희가 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하며’ 라고 했지요.

우리는 말씀을 함께 나누어서 그 말씀을 확실히 기억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기억함으로써 순종하는 열매가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기억하고 순종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우리 속에서 솟아나는 욕심, 눈으로 보고 생기는 욕심을 좇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일은 큰 순종입니다.

 

큰 순종은 진정 마음 속에서 겸손히 정말 주님을 위해서..

라는 마음으로 가득한 그런 순종을 하는 것입니다.

정말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하는가, 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실 사람들은 남이 보는 가운데 무엇을 잘 하려는 그런 명예심, 자기 과시의 마음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이 마음을 부인하고,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 말씀을 따르는 일이 예수님의 원하시는 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네 소매의 청색끈을 같이 달고 다녔지만

그 가운데서 자기를 과시하고 싶은 사람들은 그 네 귀의 옷술을 길게 하고

청색실을 길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기억의 청색실은 다른 별명으로는 “기도의 옷술”이라고도 불리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남보다 더 많이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더 많이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 보이려고 옷술을 길게 하고 청색끈을 길게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모인 사람들에게 당시 종교지도자들인 서기관, 바리새인들의 잘난 체하는

신앙생활을 지적하시면서 그들은 자기 행위를 사람에게 과시하려고 ‘옷술을 크게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마23:5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경문을 넓게 한다’라고 하셨지요. 여기서 ‘경문’은 ‘성경의 글’이라는 뜻인데

구약성경중 몇군데 중요한 구절들(출 13:2-10;11-16;신 6:4-9;11:13-21)을

한 장의 조그만 양피지에 기록해서 네모난 작은 상자에 넣어 가죽끈으로

왼손 소매 속이나 이마에 붙였던 것입니다.

 

이 경문을 ‘기도의 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말씀과 우리를 연결하는 끈은 기도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경문의 작은 상자와, 옷술의 청색실이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에게는 자기 과시용으로 쓰였던 것입니다.

 

경문을 넓게 해서 나는 이렇게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다, 나는 이렇게 기도 많이 한다,

나는 늘 하나님을 기억하고 산다, 나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다.. 라고 과시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그런 외식을 책망하시면서

진정 기억의 청색실은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크게 순종하는 마음의 다짐이라는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옷술을 묶는 청색실의 끈은 그렇게 옷술을 묶는 것 만이 아니고

마음을 진정 묶어서 진심으로 마음으로 주님, 따르겠습니다, 말씀하옵소서, 순종하겠습니다,

라는 다짐이 있을 때 바로 그것이 ‘기억의 청색끈’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큰 순종의 결과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사람, 즉 성도 다운 성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순종의 결과는 성도다운 간증을 갖게 되는데, 그런 큰 순종이 성경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예컨대 다니엘의 기도의 순종입니다.

다니엘은 이방 땅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세워서 그 바벨론 나라의 국무총리를 만드셨습니다.

 

이 일에 시기심을 품은 사람들이 다니엘을 모함하여 죽이고자 왕에게 아첨하여서

30일동안 누구에게든지 왕에게가 아니면 기도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왕의 명령이 적힌 조서에 왕의 어인을 찍게 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기도의 시간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잊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다니엘서는 그가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단6:10

 

다니엘의 기억의 청색실은 그의 기도였습니다. 그는 꼭 그 시간에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를 통해서 그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민족을 기억하고 큰 구원의 역사를 믿고 기억했습니다.

 

그 순종의 결과 그의 기억의 청색실인 기도의 순종은

그를 사자굴에서 건져내고 대적은 사자들에게 먹히고

다니엘은 더 큰 신임을 얻는 결과를 갖고 왔습니다. 단6:23~24

 

순종의 결과는 큰 구원과 큰 승리입니다.

큰 순종 중의 순종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그 몸에 청색실을 갖고 있으셨지만

그러나 진정 그 분에게 영원히 붙여진 기억의 청색끈은 바로 그분의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속죄의 십자가를 지실 때

그 십자가는 이제 영원히 하나님의 큰 구원을 기억하게 하는 ‘기억의 청색실’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큰 순종을 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여서

우리도 늘 자기 십자가를 질 것을 기억하게 만드시는

기억의 청색실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정말 이제 우리가 자랑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우리는 예수님의 큰 순종의 결과인 십자가를 기억의 청색실로 삼아야합니다.

그리고 늘 큰 순종은 큰 구원과 큰 상급, 부활과 교회의 큰 부흥을 이루며

큰 축복의 세계로 들어가는 하늘이 열린 사람들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3. 기억의 청색실은 셋째로, 큰 증인의 부르심을 기억함

 

이제 우리는 다같이 주님의 옷, 교회의 네 모퉁이에 묶여진 ‘기억의 청색실’들이 되어야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큰 증인으로서 부르심을 받은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억의 청색실을 늘 묶고 다니게 하신 이유는

그들에게 주신 큰 구원, 큰 순종의 결과로 오는 축복들을

만방에 증거하는 증인으로 세우신 때문입니다.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그냥 그들만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 아니라

어디든지 계시려는 하나님, 어느 곳에든지 계셔서

거기서 구원의 영광을 나타내려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출애굽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선교의 하나님이십니다. 전도의 하나님이십니다.

증인들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큰 ‘기억의 청색실’은

바로 복음을 땅끝까지 만민에게 전하라는 주님의 유언입니다.

 

증인이 되라, 전도하라, 선교하라..는 이 말씀은

주님의 유언이며 우리가 기억할 하늘의 명령, 청색실입니다. 마28:19~20, 행1:8

 

예수님의 증인. 바로 이것이 우리가 기억할 청색실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증인입니다. 주님의 옷자락에 묶여진 청색실들입니다.

사방으로 향한 청색실들입니다. 늘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는 청색실들입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같이 읽어 보실까요. 차근차근히 읽습니다.

그리고 기억의 청색실로 우리 마음에 꼭 묶어 봅시다.

 

(오치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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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치치트 sisith 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기 위한 수단. 도구이다.

혈루증 앓은 여인이 만졌던 '겉옷 가'는 헬라어 크라스페돈 κράσπεδον이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 치치트를 번역한 것이다.

치치트를 70인은 카라스페돈으로 번역했고 복음서 기자들은 그대로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