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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15장 이스라엘의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세 가지 반응

LNCK 2022. 9. 20. 16:34

◈이스라엘의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세 가지 반응      민15:1-10     2017.04.09.출처, 정리

   

민13~14장에서, 10정탐꾼의 부정적 보고로 인해 하나님이 대노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어지는 본문 15장에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위 제목 '세 가지 반응'이란, 아래 ◑1~3대지를 뜻합니다.

 

 

▲서론 / 모세오경 및 민수기 구조의 특징

민수기의 특징은 내용 연결이 어색한 부분들이 곳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오경을 보면 <이야기>와 <율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령, 창세기는 전체가 <이야기>이라면

레위기는 몇 장을 제외하면 다 <율법> 규정입니다.

 

출애굽기는 <이야기> 와 *1~19장

<율법> 이 자연스레 섞여 있습니다. *20~40장

 

신명기에도 회상하는 <이야기> 와 *1~4장

율법의 규정이 구조적으로 적절하게 배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31장

마지막에 모세의 최후를 또 <이야기>로 구성하고 있죠. *33~34장

 

그런데 민수기에는.. 이야기가 나오다가 율법규정이 툭하고 튀어나옴으로써

이야기가 끊어지는 패턴이 있습니다.

 

오늘 민수기 본문도 그런 구조입니다.

 

민1~4장까지 <이야기>가 나오다가

5~6장에서 <율법>이 나옵니다.

7장에서 <이야기>가 나오다가

8~10장에서 <율법>이 나옵니다.

11~14장까지 <이야기>가 나오다가

본문 민15장에서는 <율법>이 다시 튀어나옵니다.

16장부터는 다시 <이야기>이고요.

 

그래서 자유주의 비평학자들이 이점을

민수기가 여러 문헌들의 짜깁기라는 것을 주장하는 근거라고 제시합니다.

 

하지만 민수기의 이런 패턴은,

도리어 정교하게 구성된 패턴이라는 것을 증명하는데요.

하나님은 민14장에서 징계 (정탐40일을 40년 방황) 하시고, 15장에서 또 싸매십니다..

 

 

▲민수기 13~14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란광야 가데스바네아에서 반역을 저지른 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로 가서 40년 동안 방황하게 된 계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민수기 15장에 들어가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지켜 행해야 할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는 내가 주어 살게 할 땅에 들어가서”

 

‘내가 너희에게 주어 거하게 할 땅에 들어가서, 의복을 입고 제사하고

안식일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에’ 대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단히 일상적인 규례에 대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38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며 반역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그 후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내용의 전개가 다소 어색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생활할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야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런 내용은 언급이 없고 그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민수기에는 왜 이렇게 내용 전개가 어색한 부분들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많은 신학자들은 이런 이유 때문에 민수기가 편집된 내용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민수기 15장에서 분명한 의도를 갖고 말씀하셨고,

반역 이후 광야로 쫓겨나가는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이

세 가지 반응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민15장의 개요>

1. ‘제사’에 관한 규례가 나옵니다. 민15:1~31

2. ‘안식’에 관한 규례가 나옵니다. 15:32~36

3. ‘율법을 잊지 말고 지킬 것’을 말합니다. 15:37~41

 

 

◑1. 하나님은 백성들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성취하실 것이다.

 

너희가 지금은 벌을 받으러 광야로 나가는 것이지만 너희가 완전히 망할 나라,

민족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행해야 될 제사와 안식에 관한 규례를 가르치시는 거죠.

광야에서 다 멸망할 사람들이라면.. 굳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행해야 할 규례를 가르칠 필요 없죠.

 

2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는 내가 주어 살게 할 땅에 들어가서

 

조금만 고생하면 반드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8절에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가 나의 인도하는 땅에 들어가거든”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비록 40년 광야 생활하며 유리하고 방황하게 되었지만

결국에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고,

그 땅에 들어가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민수기 15장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창세기 15장에 기록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에 근거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너희 자손들이 비록 400년 노예생활을 하며 고생하게 될 것이지만,

그 후에는 반드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게 해 주시겠다는 민족적인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이 약속을 지키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입사원으로 취직한 사람에게 회사 사장이 와서

“10년만 근무하면 내 자리를 네게 물려주겠다”고 약속했다면 10년 고생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고생스럽게 야근을 하고, 아무리 고통스러운 직장생활이 기다리고 있다 할지라도

그런 약속을 받아 둔 신입사원이라면 누구나 열심히 직장생활을 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죽을병에 걸렸는데 하나님이 약속해 주시기를

“내년 이 맘 때 네 병을 깨끗하게 고쳐주겠다”고 하셨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1년의 시간을 견뎌낼 것입니다.

 

죽을병을 고쳐주신다면 무엇을 극복하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민15장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랜 시간 방황하며 광야생활을 하게 되겠지만,

그 결국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라는 큰 위로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15:1~16절까지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가 ‘제사’를 드리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사도 여러 종류가 있고, 제사 드리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5대 제사인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그리고 화제, 전제, 요제, 거제 등 다양합니다.

 

5대 제사는 불을 사용하는 화제라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화제는 메인이고, 요제, 거제, 전제 등은 사이드가 되는 것입니다.

 

소제는 밀가루를 기름에 섞어 드리는 것이고,

전제는 포도주를 붓는 제사방식입니다.

 

그러니까 불로 제물을 태워 제사를 드리는 화제 옆에는

소제와 전제도 아울러 드리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농사를 짓게 되면

풍성한 수확을 얻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농사를 지으면 곡식을 많이 거두고, 과실을 얻고자 하면 포도도 많이 거두어

포도주를 많이 만들 수 있게 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들을 전제하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17~21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수할 때가 되면 처음 익은 곡식을 가루로 만들어

그것을 떡으로 만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하나님 앞에 거제로 드린 후 먹으라고 했습니다.

 

성막에서 드릴 것도 없고 너희 타작마당에서 거제로 드린 후 먹으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들은 가나안 땅에서 많은 수확을 얻게 될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광야로 벌 받으러 가는 사람들에게

후손들의 삶 가운데 주어질 많은 수확을 약속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광야생활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견뎌낼 수 있는 것입니다. 큰 위안의 말씀입니다.

 

▲13~16절에 “무릇 본토 소생이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를 드릴 때에는 이 법대로 할 것이요

너희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나 너희 중에 대대로 있는 자가

누구든지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를 드릴 때에는 너희 하는 대로 그도 그리할 것이라

회중 곧 너희나 우거하는 타국인이나 한 율례니 너희의 대대로 영원한 율례라

너희의 어떠한 대로 타국인도 여호와 앞에 그러하리라

너희나 너희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나 한 법도, 한 규례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본토 소생’(Native-born)입니다.

본토 소생은 그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은 광야로 가고 있지만

언젠가 가나안 땅을 본토로 삼고 거기서 자식을 낳아 소생이 나오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들은 가나안 땅에 반드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약속해 주시는 구절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그의 성품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인간이 죄를 지어 벌을 받게 하실지라도

약속하신 것은 그대로 성취하시고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은 성도들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성도인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징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때리고 훈계하는 것은 죽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르게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범죄함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훈육(Fatherly Discipline)을 받게 되지만,

이것은 형벌(Punishment)과 같지 않습니다. 즉, 지옥에 보내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해주시고 천국에서 받아주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입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두려운 말씀들이 많습니다.

엡5:5~6절에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상숭배자, 음행한 자, 더러운 자, 탐하는 자와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얻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죄들은 모두 불순종의 아들들이 짓는 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도 이런 말씀들을 보면 가끔 겁이 납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이들과 비슷한 죄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음행에 빠지는 경우도 있고, 더러운 죄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불순종의 아들들처럼 지옥에 떨어진다는 말일까요?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불신자이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지만,

성도들은 이런 비슷한 죄를 지어도 징벌하시되 버리지 아니하시고

징계를 통해 회개시켜, 천국까지 인도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셨기 때문에 끝까지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빌1:6절에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는데 이것은 결코 잃어버린바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 개신교가 한 번 받은 구원이 영원하다고 주장해서 타락하고 부패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구원을 잃어버린다고 하면 한국교회가 깨끗해지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한 번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으면 가나안 땅, 천국을 확실히 보장해 주시는 줄로 믿어야 합니다.

(지적 동의에 의한 구원이 아니라, 진정 회개하고 회심하고 변화된 성도에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살전5:23~24절에도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성도의 견인’에 종종 인용되는 구절이죠.

 

한 번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실수로 방황하고 범죄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인도하시고

천국에서 받아주시는 줄로 믿어야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 ‘성도의 견인’ 교리가 성도의 삶을 느슨하게 만든다고 주장합니다.

죄를 지어도 돌이켜 회개하면 늘 받아주시기 때문에 치열하게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성령을 모신 사람들이고, 새로운 마음,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조금만 범죄하고 실수해도 바로 회개하고 돌이키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천국에서 받아주신다는 이 위대한 진리가

우리로 하여금 죄를 벗어나 돌이켜 살게 하는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결코 느슨하게 만드는 원리가 아닙니다. 성도의 거룩한 탄식

 

 

◑2. 하나님은 반역한 백성들에게도 용서의 길을 제시해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어도 용서받는 길이 있음을 일깨워주십니다.

본문 민15:22~29절에 그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용서받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백성들의 죄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온 회중이 국가적으로 짓는 범죄와 개인이 범한 죄인데,

전자의 경우 숫송아지 한 마리와 숫염소 한 마리를 번제와 속죄제로 드려야 했습니다.

아울러 소제와 전제, 곡식과 기름 섞은 것과 포도주를 부어서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는 일 년 된 암염소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제사장이 그 개인이 범한 죄를 속하기 위해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으시고 죄를 용서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죄는 부지중에 짓는 죄라야 합니다.

중요한 단어가 ‘고의적’(Unintentionally)입니다. 고의가 없어야 합니다.

부주의하게 몰라서 짓는 경우여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짓는 죄들은 대부분 ‘몰라서 짓는 죄’들입니다.

지옥 갈 것을 모르니까 술 먹고 외도하는 죄들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몰라서 짓는 죄라도 사람이 죽어야 마땅하지만,

그 사람이 가져온 짐승으로 대속제물로 삼아 죽이면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으시고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몰라서 지었어도 죽어야 하지만 희생제물, 대속제물이 대신 죽으면

하나님이 그것을 보시고 그 사람의 죄를 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의 짐승제사는 하나의 예표에 불과합니다.

실체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제사인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단번에 영원히 택한 백성들의 죗값을 갚아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짐승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가톨릭의 미사는 제사를 뜻하는 단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예배를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영원히 피를 흘리심으로 영원한 제사를 드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그 사실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 사함을 받는 방법은 돈을 가지고 구제 사업을 한다고 가능한 것도 아니고,

선행을 많이 한다고 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헌금을 많이 한다고 가능한가? 그럴 수 없습니다.

 

죄 사함을 받는 길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죗값을 갚아주신 피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단번에 영원히 죗값을 갚아준 위대한 피인 줄 믿습니다.

사람이 죄 사함을 받고 천국에 가는 것은 예수님의 피를 믿고 가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목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에도 세상 속에 사는 성도들은 계속해서 범죄하고 더러워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더러워진 발도 예수님의 피로 계속 씻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발이 좀 더럽다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욕한 사람들은 다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 갈 때 발 냄새 풍기고 가면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발을 깨끗이 씻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본문은 죄 사함을 받는 방법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 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30~31절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본토인이든지 타국인이든지 고의로 무엇을 범하면 누구나 여호와를 비방하는 자니 그의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라

그런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그의 명령을 파괴하였은즉

그의 죄악이 자기에게로 돌아가서 온전히 끊어지리라

 

여기 중요한 부사가 ‘고의로’(defiantly)인데,

죄를 지을 때 하나님을 향해 반항적인 마음으로 범죄하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이 말의 히브리어 의미는 ‘손을 높이 들고 짓는’입니다.

영어로 ‘high handed sin’이라고도 하는데, 고의적으로, 그게 뻔히 죄인줄 알고도 짓는 경우죠.

 

이것은 의지적이고 공개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권위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행동이죠(신32:27, 사10:32).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극도로 교만하여 손을 높이 쳐들어 휘두르듯이 공개적으로 범하는 죄악은

속죄제로 죄 용서함 받을 수 없었고, 오직 멸망과 죽음만이 기다릴 뿐이었다(마12:31~32, 요일5:16).

 

물론 진심으로 회개하면, 무슨 죄이든지 다 용서 받습니다.

고의적으로 죄를 범한다는 것은.. 아예 회개할 마음도 없이 뻔뻔스럽게 짓는 죄를 뜻합니다.

 

‘온전히 끊어지리라’ - 여기서의 의미는 단순히 언약 공동체에서 파문당하여 축출될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 죄에 대한 대가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진심으로 회개하면, 무슨 죄이든지 다 용서 받습니다만, 회개의 기회를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겠지요.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은 고의적으로 간음하고 살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다윗이, 진심으로 회개할 때, 하나님은 그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했습니다.

이를 고의적으로 한 것이지, 실수로 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고의적으로 했어도 하나님이 다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30~31절에서, ‘용서 받지 못하고 끊어진다’고 한 것은

범죄하고도 회개하지 않은 경우 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죄를 짓는데 ‘손을 높이 들고’ (‘고의적으로’의 원어적 의미) 짓는 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한 번 일대일로 붙어보겠다는 태도로 짓는 죄를 가리킵니다. 신성모독의 죄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고의적으로 반역하고 반항하는 죄를 가리킵니다.

 

한 번은 유튜브를 통해 사자를 넣어둔 우리 앞에 커튼으로 가리고

투견대회에서 챔피언을 한 개를 가져다 놓고는 커튼을 제거하는 순간

개가 사자의 얼굴을 보더니 순식간에 줄행랑을 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사자는 우리에 갇혀있었지만, 개는 사자의 얼굴만 봐도 바로 도망을 가더라는 것입니다.

얼른 꼬리를 내리고 도망간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고 주먹을 들고

하나님의 계명을 파괴하며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여 범죄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끊어버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조리 진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지옥에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고의로 범죄하는 죄가 신약성경에도 기록되어 있을까요?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6:5~6절에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그러니까 오늘날 많은 이단지도자들은 여기에 속한 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도 원래는 교회 다니기를 즐겼던 사람들입니다.

설교를 듣기도 하고 하기도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말씀을 부인하고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한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이 되고, 재림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짐짓 고의로 범죄하는 자들입니다.

말씀을 맛보고도 현저하게 배반해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고 완전히 버림 당하는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이들은 루비콘 강을 건넌 사람들입니다.

 

마12:31절에도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그러면 이런 사람들은 한 번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고 하더니

왜 나간 사람들이 된 것일까요? 왜 구원을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질까요?

 

이에 대해 사도 요한이 설명하기를 이런 사람들은 처음부터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거짓된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있다가 나갔다는 것입니다.

 

요일2:19절에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참된 성도들은 이런 죄들을 범하지 않습니다.

 

▲민15장에 그 한 가지 예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32~36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

그 나무하는 자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의 앞으로 끌어왔으나

어떻게 처치할는지 지시하심을 받지 못한 고로 가두었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 온 회중이 곧 그를

진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그를 쳐 죽여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니라

 

저는 이 말씀을 볼 때, “하나님이 어떻게 안식일에 사람을 돌로 쳐 죽이시는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계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안식일 전에 안식일에 먹을 것을 미리 예비해 주신다는 계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안식일에 먹을 것을 거두거나 나무를 해서 불을 피우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켜야 할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진영에서는 불을 피우고 요리하는 일이 없어야 했습니다.

그저 안식일에는 가족들끼리 모여 전 날에 주신 음식들을 먹고 재밌는 이야기를 하면서 안식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파괴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시기에 나무하러 가겠다는데 이를 말리느냐는 것입니다.

사람들도 없고 이렇게 나무하기 좋은 날이 없는데 왜 못하게 하느냐는 태도로 일관합니다.

그리고 불을 피워 요리를 합니다.

 

이스라엘 진영에 아무도 불을 피우는 자가 없는데 혼자 불을 피우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에서 혼자 역주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반드시 죽게 되어 있는 목숨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멸시하고 신성모독하고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파괴하는 자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모세도 어쩔 수 없이 이를 진 밖으로 내어다가 돌로 쳐 죽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High Handed Sin’(고의로 범한 죄)입니다.

(오늘날 신약 성도들은 안식일-토요일은 지키지 않지만, '안식일 정신'을 주일에 지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말씀을 왜곡하고 복음을 변질시키고

또 뭇 사람들을 그 길로 인도하는 악한 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자들은 사함을 받을 수 없는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반역한 백성들을 다시 순종하도록 부르신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죄가 오고, 순종하면 복이 옵니다.

37~41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의 대대로 그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이 술은 너희로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로 방종케 하는 자기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좇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그리하면 너희가 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 하여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옷을 만들 때

술을 만들어 파란색 끈에 매어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주신 계명을 기억하게 함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옷에 달린 술과 청색 끈이 계명과 무슨 연관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학자들이 연구를 했습니다.

 

15:37~41  기억의 청색실

 

그러니까 술과 줄을 보면 613개의 계명,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르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 청색은 하늘의 색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순종하며 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민수기 15장이 주는 교훈들입니다.

 

 

결론

 

민수기 15장은 설교하기 쉽지 않은 본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이 때론 과실로 범죄하기도 하고,

고의로 하나님께 반역하여 죄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징벌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는 잊지 말아야 할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천국에서 받아주신다는 것입니다.

둘째, 죄를 자백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회개한 성도를 다시 순종케 해서 복 받는 사람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항상 기억하고 민수기 15장을 읽고 은혜를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