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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박집사님 이야기

LNCK 2022. 9. 21. 18:46

[북한선교] 박집사님 이야기  - YouTube

 

◈북한의 박집사님 이야기                               *<북한, 통일> 관련글 

 

김목사 (이하 검은 색 글씨) : 오늘은 북한에서 넘어와서 복음 들고 북한까지 갔다가 오신 
박 집사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어려운 걸음을 해주셨습니다. 
박집사님은 몇 년도에 북한에서 나오셨어요?

박집사 (이하 파란 색 글씨) : 저는 2014년도에 한국에 왔어요. 

중국으로 탈북은 언제쯤 하셨나요?
2013년도에 탈북했습니다. 

아 그러면 탈북을 해서,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고 믿게 되었는지 물어도 될까요?

네, 우리가 탈북을 하게 된 동기는 
북한에서 주님을 믿다가 발각되어 가지고 
(잡혀 죽지 않고) 살겠다고 갑작스레 국경을 넘었고요...

뭐 좀 물어봐도 될까요? 벌써 북한에서부터 예수님을 믿으셨네요.

네, 우리가 북한에서 예수님을 믿고서 한 3~4년 됐을 때... 
솔직히 북한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게 대단히 어렵지요. 

왜 어려운가 하면, 북한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북한 체제상 반역자나 정치범 1번수로 통하기 때문이죠.
특히 기독교는 믿는 사람이 그렇게 드물지요. 

저도 (예수 믿을 줄은) 생각도 못 해 봤었는데 
북한에는 월급도 안 주고, 배급도 안 주고...
해서 사람이 살아가려면 무슨 방법을 써야 되는데 
저는 밀수(중국 왕래 물품 거래)를 해서 살았어요. 

밀수를 하면서 중국에 여러 번 드나들게 되는데, 
제 친구 중에 한 사람이, 국경에서 붙잡혀서 교화소로 갔거든요. 

함흥에 있는 '오로 교화소'로 갔는데, 
그 친구의 목숨이 질겼다고 할까요?

5년 만기를 채우고 나왔는데 
제 친구가 교화소 안에서 누구를 만났는데 
그 분이 먼저 주님을 영접한 사람이었어요. 

제 친구의 얘기인즉, 

교화소에서 알게 된 그 분은, 중국의 교회 목사님 밑에서 
정말 오랫동안 가르침과 도움을 받았던 그런 분이었거든요. 

그 분이 먼저 주님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믿은 상태에서
교화소에 들어온 제 친구를 전도한 것이죠.
 
그런데 북한에서는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 해도 
이런 소리(전도)를 대놓고는 못 하거든요. 

그래서 교화소에서 소개(전도)를 받은 제 친구가
5년만에 출소해서 저를 만나서 하는 얘기가
'야, 니 한 번 가서, 그 분을 만나 봐라' 라고 또 소개(전도)를 한 것이죠.

 

그래서 제가 국경을 넘어간 차에, 한 번 그 목사님을 만나러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 분도 저를 반갑게 만나주시고... 
그때 이상하더라고요. 

왜냐하면 우리는 밀수를 하다 보면
사람들이 나를 '장사꾼으로 대한다' 이런 생각을 늘 하는데,

그 분(나중에 알았는데 한충렬 목사님)은 
굉장한 친밀감을 갖고서 저를 대해 주셨어요.

저는 그분의 따뜻함이, 가식이 없었고 진심이라고 느껴졌는데,
그렇게 해서 처음에 찾아갔던 기억은 지금도 생각나는데 
힘들게 '밀수품'을 갖고 왔는데 값을 후하게 쳐 주셨어요. (*북한에서 채집한 송이버섯 등)

그 분이 뭐 이익을 따지지 않더라고요.
우리의 수고를 헤아려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세 번인가 밀수품을 팔러, 그 분을 찾아 갔었어요.   *아마 장백(칭바이) 조선족 자치현
그런데 왜 그런지 그 분을 자꾸 찾아가고 싶더라고요. 

 

가고는 싶은데, 북한에서 국경을 (몰래) 넘나들며 다닌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일생에 한 번도 못 넘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 

제가 그 분을 만나려고 자주 갔댔는데, 따뜻한 감을 느꼈다고 할까요? 
그분도 저에 대해서 또 호감을 가지고 해서 
우리가 만나면 한두 시간씩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혹시 그 분의 이름을 물어봐도 될까요?

 

그 분은 (나중에 알았는데) 장백 교회의 한충렬 목사님이셨어요. 
*한충렬 목사님은 2016년 4월, 중국 장백에서 머리와 심장에 괴한의 칼에 찔려 순교. 보위부로 추정

저는 처음에는, 그분이 목사님인 줄 모르고 만났어요. 
처음에는 그 분이 사업가인줄 알았고, 오랜 훗날에야 그 분이 목사님이신줄 알았지요.

그런데 그 분(한 목사님)은 너무나 따스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를 도와주던 그 진짜 진심이 느껴졌어요.

일례를 들면, 공안이 한 번씩 밀수꾼들을 잡으려고 왔을 때 
중국 대방(무역업자, 한 목사)이가 나가서 막아 주는 거, 
그런 거 한 번씩 경험하면, 
몇 천만 원의 돈보다도 그 막아주는 말이 더 고맙죠. 

우리 사정을 진심으로 아파하고 생각해 주는 그 마음이 느껴졌어요.
그렇게 느끼고 있다가 세 번째인가, 네 번째인가 가서 그 분을 만났을때 
'주님'에 대한 소리가 나왔어요. 

아 그 때 제 가슴이 철렁했어요.
왜냐면 그때는 기독교 세계관이, 이렇게 선한 세계관이란 걸 제가 몰랐어요.
그때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기독교는 악마의 무리라고 배웠거든요. 

어쨌든 그때 한 목사님 입에서 '기독교' 소리가 한번 나왔는데 
제 가슴이 철렁 했어요. 

북한 말로 하자면 '적선'인데, 이러다가 내가 끌려가지 않겠는가?
북한에서 적선이란.. 체재하고 모순되는 세력을 다 합쳐서 '적선'이라고 부르거든요.

 

하도 갈래가 많지만.. 다 합쳐서 '적선'이라 부르는데, 
적선에 걸리면 그것은 정치범, 반체제 인사가 되는 거죠. 

남조선 사람이라든가, 안기부 라든가, 교회 라든가.. 다 적선인 거죠.
왜냐면 사상이 좋다/ 나쁘다를 논하기 전에 
적선이 걸리면, 내 한 목숨 죽는 건 문제가 아닌데
내 가족까지 다 걸리니까...

주위에서도 늘 하는 말이.. (밀수는 하며 다니더라도) '적선에는 걸리지 마라'
이런 주의시키는 말을 많이 해주었기 때문에,
저는 한 목사님으로부터 바로 그 말을 듣는 순간, 곧장 집으로 돌아와 버렸죠.

그런데 제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분의 그 따뜻하던 그게 잊혀지지 않고
내가 또 그분의 선한 세계관이      *전도할 때 믿음을 '세계관'으로 고쳐 부르는 듯, 안전 상
너무나 잊혀지지 않아서, 내가 그래서 '다시 가봐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지요.

그래서 제가 그 다음에 제 발로 다시 그 분을 찾아가서는
직선적으로 물었어요. '이제는 감추지 말고... 뭘 하시는지요?'

그분(한충렬)이 그때 이야기해 줬어요. 
'나는 목사다. 그리고 성경이라는 것을 전하고 가르치는 사람이다.' 

북한 사람들은 성경이라는 게, 
책이라는 개념보다는 
시한폭탄 같은 것으로 여기잖아요.

그 책을 만나면, 마치 전염병처럼 병들어 죽는 것 같은
그런 무시무시한 책으로 알고 있었죠.

그렇게 말로만 들었는데,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성경이라는 게 도대체 뭘까?' 

또 국경을 넘나들 때, 보위부가 중국에 넘나드는 사람들을 보고
'성경은 절대로 (짐 속에) 넣지 마라' 이런 말을 다 해줬기 때문에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거죠. '성경이라는 게 도대체 뭐길래 저러는 거지?'

제가 그분을 만나서 얘기를 듣고, 그때 처음으로 성경을 읽었어요. 
앞에 창세기 이런 부분은 하나도 제 눈에 안 들어왔어요.

왜냐면 우리가 배운 유물론 정치철학에서

이런 (창조론 같은) 것은 귀에 안 들어오는, 미신 같은 거였죠.
'거기에는 다 이런 것 뿐이네?'

또 읽어보니까 어떤 구절에는 '아무 것도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도륙하라!'
무슨 이런 말도 있는데, 자꾸 그런 것만 제 눈에 띄었어요.

그래서 '아, 아게 성경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북한식이랑 똑같네. 북한에서 늘 죽이라 살리라 하더니.. 여기서도 그러네..'

그러다가 성경을 제가 또 혼자 조용한 시간에 봤는데, 이번에는 바울서신을 봤어요.
제가 잊혀지지 않아요.
'아 진짜 이게 사랑이구나!'

그래서 바울서신서를 그날 밤에 쭈욱 다 읽었어요.
나도 북한에 있을 때 자꾸 (노동당에서) '사랑, 사랑' 하는 말을 들었지만
'저런 건 사랑이 아닌데..' 이런 생각을 늘 하며 살았지요.

그런데 성경을 읽고는 '아~ 이게 진짜 사랑이구나!'
아 그날 감동되던 생각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날도 제 혼자 또 성경을 읽었어요.
처음에는 그냥 대충 훑어보다가, 
다음 날에는 또 하루 종일 중국에 산전막(산속의 막사)에 있으면서, 성경책을 읽었거든요.

그땐 진짜 감동이 되었어요! '아 이게 사랑이구나!'

그리고 목사님에게 '목사님이 말씀하던게 결국엔 여기에 들어 있네요?'
나도 성경처럼 이렇게 하는 것이 참된 사랑이라 생각하고 
그 다음에는 결국 (성경과 하나님을) 믿었다고 해야지요.

'아~ 성경이라는게 이런 거구나!
이게 무서워서 북한이 이렇게 성경을 막는구나..' 생각하니까 웃음도 나오고

'그럴 (성경을 무서워할) 필요없구나. 이 책을 봐도 별일 없는 거구나'
그 다음부터는 솔직히 대단히 성경을 무서워했던 생각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가족의 운명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혹시나 나 때문에 나중에 가족이 어떻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그래서 성경을 계속 읽고는 '아, 이런 건 어디 가서 보려고 해도 못 보는 책인데 볼 만한 책이구나!'
우리가 알기는 '목사님들이 북한에 대한 정치체제를 정복하기 위한 나쁜 짓만 한다'
이렇게 들었는데,

아무리 그분을 만나봐도, 그분이 북한 체제가 나쁘다고 욕하는 적도 없고
김일성, 김정일이 나쁘다고 욕하는 것도 없고..

진심이 사랑이니까.. 저도 그걸 또 느끼게 되었거든요.

저는 처음에 그 분이 무슨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그러는 줄 알았는데
그 다음에 '기독교'라는 게, 여기서 말하는 '주님의 일'이라는 게
북한에서 (기독교에 대해) 교육하는 방향하고 완전히 달랐어요.

그때 그걸 제게 믿게 만든 것은
한충렬 목사님의 행동!
저와 우리를 대하는 (사랑의) 태도!

사람이 하루, 이틀 대할 때는.. 그 사람을 속일 수 있어요.
그러나 오랜 기간 대할 때는.. 그분에게서 느낀 것은
그 사랑의 진실함이 의심이 없었거든요.

그분의 사랑이 진심이라는 게 의심이 없었어요.

내가 그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같이 갔던 사람들(밀수꾼들)에게 이렇게 말했죠.
'내가 기독교는 잘 모르겠는데, 한충렬 목사님이 기독교를 믿고, 
기독교 대로 행동한다고 해서 저렇게 한다면
나는 기독교를 믿겠다..' 그랬습니다.

네, 저를 대해주는 그 목사님이...
그리고 목사님을 따라왔던 집사님들이 있어요.

그분들의 태도, 그 행동이
무슨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사랑의 실천이었죠.
그분들이 정말 위험을 무릅썼어요.

한 번은 목사님이 차를 타고서, 우리를 국경까지 안내해줬는데 (차를 태워 주셨죠)
가는 길에서 공안을 만났어요,

공안 차가 목사님 차를 세우고 검색하자고 했는데,
거기는 원래 공안이 없던 위치였거든요.

그러니까 한 목사님 차가 그냥 (검문에 응하지 않고) 달아났어요.
밤이었는데, 차로 달아나서 한 2백미터쯤 가다가
우리를 몽땅 길 옆에 다 내려주셨어요. '빨리 뛰어가라!' 하시고.

그 다음 우리는 도로 옆의 수풀에 들어가 숨고
그 다음 우리가 내리자마자 공안 차가 따라왔어요.

우리가 멀리 산속에서 보니까, 뭐라 뭐라 하다가 공안들이 그냥 가요.
그 일로 인해서 목사님이 공안에 나중에 불려가셔서 고생을 하셨는데,
그건 또 그분이 고생이라고 여기지 않으시더라고요. 

들어보니까 그런 일이 너무 많았어요.
우리 말고도, 북한에서 그 꽃제비 아이들(굶주려 떠도는 거지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거둬서 먹이시고 하셨죠.

그런데 그런 일을 하면, 주변에 비난도 많거든요. 
좋지 않아 하는 분들도 있고...

그렇지만 한목사님은 묵묵히 그저 사랑이라는 그 한 마디로 다 그렇게 이기고 나가셨어요.
처음에는 제가 그걸 이해 못 했어요.

사랑이란 게 뭐길래, 저렇게 희생과 헌신을 하는가?
또 우리를 위해서 저렇게 목숨까지 바치셨냐는 거죠. *한목사님은 2016년에 장백에서 피살, 순교

'저분이 낮과 밤, 한 평생 결국 저렇게 사랑으로 사셨구나!'

나날이 그분을 알아갈수록, 목사님이 정말 안쓰럽더라고요.
북한 보위부는 '한충렬 목사'라고 하면, 국경 지역에서는 그분을 다 알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한충렬 목사님한데 무슨 해가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죠. 

어떨 때는 저도 밤에 자다가 '우리 목사님이 무사하실까?'
이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제가 인생에서 사랑이라는 걸 느끼고, 그것을 갚지 못하고서 애쓰던 생각이
지금이 막 눈에 선해요.

그러는 과정에서 '아~ 기독교라는 게 정말 내가 버리지 말아야 될 것'으로 
제 마음속에 자리잡게 되었죠.


♣그렇게 해서 박집사님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네요.

그렇게 되니까, 아무래도 믿는 분들이.. 저처럼 하나 둘씩 생기면서 많아졌잖아요.

저는 이런 동기로 믿었고, 어떤 분들은 여러 가지 계기가 있겠지만
오직 한 가지는, 
'위험하지만 이게 나쁘지는 않은 거'라는 것을 다 알고서
이래저래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거든요.

전에는 '기독교' 소리 나오면
'아 이제부터 나는 선을 끊겠다(손 떼겠다)' 하며 떠나간 사람들도 있고, 
혹시나 후환이 무서워서 떠난 거죠.

그런데 그 사람들도 또 고맙죠.
그렇다고 해서 보위부에 우리를 신고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나는 이렇게 (믿는 길로) 가는 거니까
이제는 너도 나를 모르고, 나도 너를 모른다고 하자..'

그렇게 헤어진 사람들도 있고..
그만큼 믿는 게 힘들었어요.

우리가 몇 년 있다가 알게 되었는데
북한에서 그런 게 (기독교가) 존재 한다는 게
저도 생각해 보면, 너무나 오래 존재했고.. (오래동안 북한에서 신앙을 갖고 살았고)

북한에 반체제 조직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우스운(불가능한) 나라거든요.
그래도 그렇게 막 떠들고 (막고) 그랬는데.. 그만큼 존재했어요.


♣그러니까 북한 안에서도, 서로 믿는 사람들끼리 교제도 하고 그랬는데도
안 잡히고 꽤 오랜 시간 무사히 살았다는 거네요.

네, 그래가지고 결국 그 일이 터졌어요.
우리 중에 믿는 사람이 하나가 붙잡혔거든요.

붙잡히니까 목사님이 우리를 (중국으로) 불렀어요. 
'빨리 너희는 피해서 오라!'

그래서 그때 제 친구하고, 저를 
목사님이 중국으로 부르셨는데, 

그때 빨리 떠나야 되겠는데,
고향을 영원히 떠난다는 게..
가족이 다 있는데, 주저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한 달을 미뤘어요.

그 이야기를 하면, 정말 주님의 은혜가 너무나 감사하고
왜 주님이 나를 살려줬는지도 모르겠고.. (지금은 가족이 다 탈북해서 안전하죠)

나도 죽을뻔 했는데.. 그 속에서 탈북했어요.
제가 탈북해서 국경을 넘어서 한 시간 후엔가 
국경경비대가 비상을 걸었다고.. 그런 소리를 들었어요.

그러니까 그때 일을 지금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하죠)
그렇게 해서 저는, 목사님이 저를 마지막까지 도와주셔서 탈북했고...

그렇게 탈북해서, 그 이후로는 다시 북한에 못 들어갔네요?

네 못 들어갔죠. 들어가면 이젠 잡혀 죽으니까요!
거기서 예수 믿고 같이 교제를 하다가 도망간 사람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죠.


가족분들은 다 북한에서 나오셨어요?

네, 제일 마지막으로 자식이 못 나올 뻔 했어요.
제가 주님의 은혜에 큰 빚을 졌어요.
네, 정말 큰 빚을 졌어요. 자식이 나올 수 없었는데 나왔거든요.

왜냐면 처음에 우리가 그렇게 떠나니까
자식들이 엄청 감시 속에 있었고..

그걸 뚫고서.. (결국 자녀들도 나왔어요)
제가 그 생각을 할 때면, 정말 주님께 불평을 못 드려요.

제가 '자식만은 나오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주님, 제가 무엇이든 다 하겠습니다!' 했는데

정말 기적같이, 기적같이 나왔어요.


그러면 혹시 북한에 왔다 갔다 하면서
이미 예수님 믿고 북한에서 한 동안 사셨잖아요?

그러면서 주위 사람들한테 조금씩 (전도의) 말을 걸었을 거잖아요?
그때 무섭지 않으셨어요?

아, 처음에 믿을 때 그때 '믿을건가, 말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했고
그 다음부터는 무섭지 않았어요.

이렇게 (전도의) 말을 하면, 그 사람이 신고하면
집사님이 잡히고, 죽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말을 하는 대상은
아무 사람에게나 하는게 아니라, 정말 가까운 사람에게
정말 믿을 수있는 사람에게만.. (전도의) 말을 하는 거죠.
여기 (한국) 하고 달라요. 

정말 가까운 사람들, 인간적으로도 괜찮다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했는데..
그래도 언젠가는 발각될 것이다.. 생각했는데,
그때는 그게 무섭지 않았어요.

그게 안 무서웠어요?

 

네 진짜로 안 무서웠고, 그때는 매 순간이 정말 그렇게 행복했어요!

아! 오히려 무서운게 아니라 행복했다고요?

 

네, 정말 행복했어요!
네, 그렇게 사는 게 정말 사람이 사는 것 같고 정말 행복했어요.

다른 때는 밀수하게 되면, 근심과 걱정, 
그 다음에 불안, 이런게 있었는데.. 그때는 그게 진짜로 없었어요.
마음이 평안하고.. 행복하고..
네,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 기적이에요.

'언젠가는 나도 잡힐 것이다'.. 하고 생각은 했어요.
길어야 2~3년은 못 갈 것이다.. 생각을 했어요.

그때 또 무슨 일이 터졌냐면, 2013년도에 김정욱 목사님이
신의주 쪽에선가 교회를 꾸렸다고.. 그게 그 해 1월달에 터졌거든요.
보위부 사람들을 통해서, 저도 그 소식을 들었거든요.

'아~ 이렇게 기독교 조직이 지금 북한 내에 있는데, 이런 걸 잡았다!'
그때 종교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고 볼 수 있거든요.

근데 그 때도 그렇게 긴장이 안 되었어요.
이제 보위부가 일제 단속을 하겠다고 느꼈는데도 안 무서웠던 거죠.

북한 전역에 기독교 조직이 있다는 것을.. 보위부 통지문으로 내려온 것을
보위부 사람을 통해서 제가 알게 된 거죠. 
(*보위부 : 10만명 규모의 비밀경찰 및 정보기관으로 최고 직속의 초법적 기관)

그렇게 해서 들었는데, 그 해 3월인가 TV에서 그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막 보도가 나오더라고요.

그 사람(김정욱)이 잡히기는 가을엔가 잡혔는데
첫 심문하고 취조하다가.. TV에서 두 세번 내보냈어요.

북한에서 진짜 교회를 잡았는데
북한에 어떻게 어떻게 다 했고, 교회를 꾸렸다고 (정치 선전, 경고하기 위해)
이렇게 막 방송에 내보내더라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밀수 일을 하는 현장에
별을 단 군관들이 막 나타나도
'저 사람들이 뭐 보위부 아냐?' 그때는 그런 근심도 잠깐 들었어요.

'혹시 (기독교인) 우리 잡으러 온 거 아냐?'
뭐 이런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때는 분위기가 아주 험악했으니까요.

 

♣(집사님이 북한에서 신앙생활 했다는) 얘기를 들으니까,

저는 집사님이 두려움 속에서 사신 줄 알았는데
그 속에서 오히려 편안함과 행복을 느꼈다고 하니까
정말 이건 주님의 은혜네요, 기적이고요!

근데 이렇게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도의) 말을 하게 되면
사람들이 믿던가요?

믿는다는 방법이 여러가지겠지만,
그 마음속에 무언가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많이 믿어요.

그저 쉽게 말하면, 사랑을 갈망하던, 무슨 새 것을 갈망하던...
우리가 말하는게 '주님을 믿으세요!' 이게 아니에요.

우리가 말하는 게 '진짜 사랑이 이렇다. 우리가 서로 이렇게 사랑해야 된다'
이런 걸로 (전도)해요.
무슨 '주님, 주님' 그렇게 안 해요!


아! 사랑으로 접근했군요.
그러니까 거부반응이 없겠군요.

네 우리는 그렇게 했고, 주님에 대해서는
중국에 가서, 한충렬 목사님이 직접 말해 줬어요.


아~ 그러니까 북한 안에서는 '주님, 예수' 이런 말은 안 하고
'사랑은 이런 거다.. 서로 이렇게 사랑하며 지내야 된다'  하고
그렇게 서로 신뢰관계가 되면, 한충렬 목사님한테 데리고 나와서
예수님을 깊이 믿게 하고, 그런 식으로 하다보니까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됐네요..

북한에는 일단 잡히면, 뭐 어젯밤에 뭘 먹었다, 어쨌다, 봤다는 것까지 다 불어야 하는 세상인데
거기서 그게 감춰질 수 없거든요.

아! 그러면서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하다가
한 사람 잡혀가고
탄로나면서 .. 선생님은 이렇게 한국으로 오셨네요.

 

♣한충렬 목사님에 대해서 좀 해 주시고 싶은 말씀은 없으세요?
같이 겪었던 일 중에서?

우리 산막이 있었는데, 또 다른 막을 가시고, 가시고 하면서 *산에 있는 막사 (산중막)
목사님은 산막을 계속 돌고 돌아 다니셨어요.

탈북민들이 깊은 산막에 숨어 살고 있었는데, 
그 분이 오셔서 계속 성경을 가르쳐 주시고 그렇게 하셨지요.
산막이 여러 개가 있었어요.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공안이 계속 한충렬 목사님을 못살게 굴어요.
계속 감시 대상이고요.
그걸 이겨내면서, 그분이 한 일을 제가 다는 모르겠는데,

그 목사님이 육체적으로도 다리가 불편했어요.
그 불편한 다리를 절뚝절뚝 하시면서 산에 계속 오르시고...
산에 오른다는게 너무나 힘든 일이지요.

낮과 밤이 없이 우리가 전화를 하거든요.
북한에서 전화하려면 여기서처럼 예절을 못 지켜요. (밤 깊은 시간에도 전화 해요)
북한 전화가 도청이 안 되는 시간들에 해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한 밤 중에, 새벽에 전화해요.
그런데 목사님은 우리 전화기를 따로 가지고 계세요.  *등록 안 된 전화기
그리고 낮이나 밤이나 받으세요.
지금 생각해 보면, 목사님은 밤에도 제대로 주무시지 못하신 것 같아요.

저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데
그걸 한 번이라도 탓하거나, 내색해 본 적이 없었어요.

이제야 나는 느꼈어요. '아, 여기 남한은 전화를 업무 시간에 하는 게 예절이고
그 시간 외에는 안 받는 걸로 되어 있구나. 밤에 전화하면 실례구나'


그러면 집사님은 예수를 믿고서
중국으로 북한으로 이렇게 몇 번 왔다 갔다 하셨잖아요.

그때 한충렬 목사님이 집사님을 북한으로 보내실 때
어떻게 보내시던가요?

그 분이 우리가 오게 되면, 이렇게 성경공부를 시켜요.
성경의 책도 이렇게 쭉 보고..
근데 우리가 북한에서 중국에 들어올 때는
거저 들어왔다가 나가게 되면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해요.

그러면 그분이 다 노자(돈)를 마련해줘요.
우리가 중국에서 밀수하는 것보다는 더 낫게
그렇게 해서 우리가 근심도 안 하게...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이 다 그렇게 하신 게
하나하나 사람들의 마음을 다 배려하고
정말 많은 심혈을 기울이면서 그렇게 했어요.


♣제가 오늘 집사님을 통해서 뭘 알게 됐냐면
한충렬 목사님이 제 상상 이상의 큰 일을 해내셨는데
'무슨 힘으로 그 일을 해냈을까?'
그게 늘 궁금했거든요.

근데 집사님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까
아 그분(한 목사님)이 북한 사람들을 향한 그 진실한 사랑!
그것 때문에 북한 사람들이 마음을 열었고,
예수님을 믿었고, 그 마음 때문에 예수님을 알게 됐고

그 마음으로 서로 북한도 넘어가서 같이 하나로 묶여갔고 (북한에 가서도 함께 신앙생활 했고)
그래서 '이게 핵심적 힘이구나!'
 
한목사님이 그 엄청난 일을 했던 힘의 실체가
'진실한 사랑이었구나!
북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배려해주고 했던 그 사랑이었구나!'
하는 것을 제가 발견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가 오늘 정말 감동스럽거든요!
아, 그래서 저는 이런 걸 지금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어요.

지금 북한을 위해서 일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무슨 힘이 북한의 문을 여는지
북한 사람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힘이 뭔지,
그것을 오늘 지금 말씀해 주셨거든요. 오늘 대화 중에!

그래서 저는 너무 감사해요.
참 오늘 정말 큰 것을 깨닫게 해주셨거든요.
저를 통해서 유튜브를 보시는 분들에게
그걸 지금 열어주셨어요.(가르쳐 주셨어요)
정말 큰 일을 하셨어요.


제가 준비 없이 그저 막 오다보니까
자세한 것은 또 말 못할 이야기도 있고

그런데 정말 한충렬 목사님이 큰 일을 하셨어요.


그렇죠. 여기서 말을 다 할 수 없는 엄청난 일들을 하셨다는 것을
저도 알거든요.
그런 분들이 가는 곳마다 숨어서 일들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지금, 그리고 또 하나님이 그런 분들을 쓰시기 때문에
북한 선교를 하시는 분들이 이 영상을 보고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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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충렬 목사님에 대한 한 탈북민의 말

 

어느 날 탈북민 성도님이 저희 교회에 찾아오셨어요.

그래서 너무 감사한 거예요.

'탈북민들도 우리 교회에 오시는 구나!'

 

근데 어느 날 보니까 그 분이 안 보여요. 알아봤더니 병원에 입원하셨대요.

그래서 서울 변두리에 있는 그 병원을 향해, 제가 차를 몰고 갔습니다.

 

제가 그 분 앞에 딱 섰는데, 그분이 저를 보더니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목사님, 여기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제가 그 날, 그 분의 북한 사투리를 듣는데요,

그때부터 제 가슴에 북한을 품게 됐어요.

 

아 이분들이 이방나라가 아니라, 한민족 이더라고요.

피를 나눈 형제들이더라고요.

그 분이 병원 심방을 다 마치고, 기도를 해드리고 난 후에, 본인 얘기를 하세요.

 

자기는 북한에서 예수님을 몰랐던 사람인데

자기를 지금까지 이끌어 주셨던 목사님이 한 분 계신데요.

한충렬 목사 라는 분인데

 

이 분은 북한과 중국 국경 사이에서 사역을 하셨는데

수도 없는 많은 탈북민들을 건져내시고, 신앙을 가르쳐 주시고

북한주민들 섬겼던 분이었대요.

 

자기가 그 분을 통해서 자기들은 신앙을 알게 되고, 성경을 배우고, 주님을 만났답니다.

근데 어느 날, 한목사님이 밖에 나가셨는데 행방불명 됐대요.

나중에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왔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북한 보위부에서 이 분을 붙잡아서

그만 도끼로 머리를 찍어서 소천하게 하셨대요.

 

그분 돌아가시는 장례식을 봤는데, 상처 자국이 너무 깊게 남아

머리에 베레모를 씌워 놓으셨다고 합니다.

너무 가슴 아픈 일이었지요.

 

그 분이 그래요. '우리 한목사님이 우리는 살려 놓고, 당신은 돌아가셨대요.'

그리고 펑펑 우시더라고요...

 

그래서 탈북민은, 대한민국에 왔지만,

순교하신 한충렬 목사님을 기리며.. 여기서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