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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케 하시는 예수님 눅4:16~19 2022.01.03.
본문 말씀은 누가복음 4:16~19절입니다.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오늘도 제주도에서 이 방송을 보내드립니다.
누가는 지금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성령 충만함을 가지시고
행하시려고 하는 목적을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에게 자유함을...’
이런 말씀으로 정리하셨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오셨다’고 할 때
가난한 자는 누구일까요?
예, 성경에 가난한 자 얘기할 때 보면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에 대한 얘기도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그들에게도
정말 먹을 것을 주고
네 귀퉁이를 나누어서 굶지 않게 하고 하는
요즘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사회적 경제에
대해서 관심이 많고
그것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임을
우리가 늘 이 날기새를 통해서도 배우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얘기하는 가난한 자는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3:17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나는 부자야!’ 라고 생각하는데 예수님은 다르게 얘기하셔요.
‘너는 가난한 사람이야
네 눈 먼 것과 가난한 것과
헐벗은 것을 보지 못하는도다!’
다른 가난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에요.
쉽게 얘기하면 영적 가난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죠.
정신적인 가난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죠.
여러분 돈이 암만 많아도
인간적으로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영적으로 가난하여 굶주리고 헐벗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런데 경제적으로 자기가 부요하다고
자기가 가난한 것을 몰라요.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더 불쌍한 자가 되는 거예요.
이사야 55:2절에도 보면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가 쓸데없는 일을 한다는 것이에요.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고
배부르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한다..’
헛된 일을 하는 것이죠.
헛된 일을 하기 때문에 우리는 실제로 가난해지는 것이에요.
그 헛된 일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부요함이 있어요.
근데 그것은 진정한 우리의 삶의 부요함이 될 수 없어요.
그러니까 그 인간적인 부요함만을 아는 사람은
정말 존재론적인 인간적인
영적인 가난함을 피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 가난이 우리를 더 불행하게 하거든요.
그 가난이 우리를 더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예수는 바로 그 가난의 문제,
우리 경제적인 가난의 문제도
하나님이 해결하시지만
보다 더 중요한 영적인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그 방법이 복음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삶이 배불러지고
우리의 삶이 부요해지고
우리의 삶이 형통해지는 것,
그 길을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거예요.
▲또 하나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그렇게 말씀하셔요
우리의 삶에 있어서 ‘자유’처럼 소중한 것은 없어요.
여러분 범죄한 자에게 내리는 가장
무서운 형벌이 뭐예요?
감옥에 가두는 것이잖아요.
감옥에 가두어도 밥 주잖아요.
감옥에 갇혀 있어도
방이 있어서 살 수 있잖아요.
감옥에 있어서 박탈당하는 것은 자유예요.
저는 그냥 텔레비전에서 가끔
옥에 갇혀있는 분들의 얘기 들으면서
몇 달~몇 년 이렇게 될 때
여러분 우리 요즘 코로나 때문에 혹시 한 열흘, 일주일,
보름 정도 격리만 되어도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워요.
그래서 상상을 해요. '아휴, 저거 얼마나 힘드실까?'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래서 사람들은 얘기하잖아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여러분 죽는 것이 차라리 낫지
자유 없이 사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인간의 고통이에요.
그런데 포로 된 자, 자유를 박탈당한 자에게
참 자유를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는 거예요.
그런데 또 이 성경이 말씀하는
‘포로 된 자’가 누구일까요?
우리는 포로 된 자는
정말 그 전쟁에 패해서 포로 된 사람,
노예가 된 사람, 감옥에 갇힌 사람
밖에는 잘 생각하지 못해요.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날마다 기막힌 새벽 출애굽기 했잖아요?
제가 그러면서
출애굽기의 가장 중요한 교훈을
제가 얘기했었어요.
출애굽기의 교훈이 뭔지 아세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무엇을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이 돈이든 명예든 어떤 것이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그것의 종이 되고 노예가 된다”
그게 출애굽기의 교훈이라고 제가 설명했어요.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7년 흉년을 피해서
하나님이 미리 요.셉을 애굽에 보내서 준비하셨잖아요.
그래서 애굽 땅으로 피난했어요.
그건 하나님의 계획이에요.
애굽 땅에 갔더니 요.셉이 총리가 돼 있었어요.
고센 땅이라고 하는 아마 목축하기에
좋은 땅을 받았던 것 같아요.
거기서 살았어요.
또 요셉 총리의 형으로, 아버지로
귀족 대우 받으면서
불편함 없이 잘 살았겠지요.
7년 흉년이 끝났을 때
제 생각에는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와야 해요.
여러분 가나안과 애굽의 고센 땅을 비교하면
인간적으로 비교하면 비교가 되지 않아요.
고센 땅 애굽은 귀족 대우 받고 요셉 때문에
호의호식하고 이런 기회가 있는데
그것을 버려두고
가나안 땅으로 온다는 건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들은 돌아오지 않았어요.
저는 그것을 이렇게 생각했어요.
‘저들이 가나안, 하나님의 땅보다
육적인 풍요함이 있는 고센 땅을 더 사랑했다!’
하나님보다 애굽의 고센 땅을 더 사랑했더니
요셉을 모르는 세대, 한 백 년이 지났을 즈음엔
어떻게 됐나? 저들은 애굽의 종이 되고 말았어요.
이게 저는 출애굽기의 굉장히 중요한 교훈이라고 생각해요.
돈, 나쁜 것 아니에요.
명예, 그게 꼭 악한 것 아니에요.
그런데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게 되면
그것이 악해져요.
그것이 우리를 노예로 만들어요.
포로로 만들어요.
그래서 돈이 신이 되고 권력이 신이 되고
사람이 신이 되고 이러는 우를 범하면서
사람들은 소중한 자유를 잃게 되었어요.
예수님은 그 죄의 포로가 된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어요.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욕심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해서 사망에 이르는데
그 포로 된
죄의 노예가 된 우리들
그리하여 죽음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예수님이 오셨어요.
△제가 영락교회에 좀 있었는데요.
그때 우리 담임목사님이 임영수 목사님이셨어요.
임영수 목사님에게 어떤 잡지사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잡지사의 여기자가 와서 인터뷰하는데
옆에 제가 그때 있었어요.
많은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셨는데
마지막에 일어나면서 그 여기자가
임 목사님에게 이렇게 질문했어요.
"목사님은 왜 예수를 믿으십니까?"
여러분 목사에게 그 질문하는 사람을 저는 처음 봤어요.
'왜 목사님이 되셨습니까?'
뭐 이런 질문은 참 많이 하는데
목사님에게 ‘목사님은 왜 예수를 믿으세요?’
참 기막힌 질문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제가 속으로) ‘참 질문 잘한다
아, 저 기자 실력 있다..’ 하고
제가 감탄하는데
목사님의 대답은 더 기가 막히셨어요.
아주 간단하게 얘기하시더라고요.
“자유하는 사람이 되려고 예수를 믿습니다!”
저도 평생 예수 믿고 살았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얻게 된 가장 소중한 것은 자유입니다.
첫째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제가 그래서 늘 얘기하지 않습니까
제가 예수 믿고 받은 최고의 축복은 속죄라고
죄 사함을 받아서 그 죄의 사슬에서 나를 풀어주신 것
그게 참 자유함이거든요.
그다음에 저라고 돈을 싫어하겠습니까
저라고 명예와 권력을 싫어하겠습니까
꼭 그것을 악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매이지 않고 살게 하시더라고요.
돈에 대하여 자유하니까 좋던데요.
조금 더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괜찮네요.
사도 바울이 부한데도 처할 줄 알고
비천한 데도 처할 줄 알고
이게 자유 아니겠습니까.
꼭 부해야만 사는 게 아니에요.
어떠한 처지와 어떠한 형편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삶의 능력이 있더라고요.
△제가 항암 하면서
CT 찍고서 늘 재발됐나 안 됐나 이렇게
조마조마한 삶을, 지금도 살고 있지만
제가 재발된 줄 알았었거든요.
그래서 CT를 다시 찍었을 때
그 결과 보러 가는 날
날기새하면서 부른 찬송
어디든지 예수 나를 이끌면 어디든지 예수 함께 가려네
예수 함께 아니 가면 낙 없고 예수님과 함께 하면 겁 없네
어디를 가든지 겁낼 것 없네 어디든지 예수 함께 가려네
이 어디든지가 자유거든요.
재발이 되던지 재발이 안됐든지
재발이 안되는 것이 그러면 나는 자유하고
재발되면 자유를 잃어버리는 줄 알았는데
어디를 가든지 상관없다는 거예요.
예수님과 함께 가면 자유하다.
그게 믿어졌어요.
그때 제 마음에 찾아온 평안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것이었어요.
재발 아닌 것으로 판명이 되었을 때
우리 교회 집사님인 의사 선생님이 물었어요.
"목사님 불안하지 않으셨어요?"
그랬을 때 제가 불안하지 않았다고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그리고 잘 믿지 않더라고요.
"무슨 집사가 교회 목사 말도 안 믿어" 그러고
웃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게 자유함이에요. 자유함이에요.
△부하면 좋죠 가난해도 문제 없어요.
무화과나무에 열매 있으면 좋지요.
없어도 상관없어요.
이게 자유함이에요.
‘경제적인 세상적인 욕심에 대해서 있으면 좋지만
뭐 있어도 난 거기에 처할 줄 알지만
없어도 상관없어 난 거기도 처할 줄 알아
나는 자족하는 것을 배웠어!’
이게 진정한 신앙이 주는 참 자유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생각해 보니 우리 임영수 목사님 말씀처럼
예수를 왜 믿나 하면 자유하는 사람이 되려고
참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
그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인데
많은 사람들이 쓸데없는 세상에
욕심부리다가 그것의 종이 되고
노예가 되고
그래서 생명을 잃어버리고 하는 삶을 살아가는데
우리 사랑하는 날마다 기막힌 새백 식구들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진짜로 믿고
영접하는 삶을 삶으로
영육간의 부유한 자가 되시기를 바라고
그리고 참 자유를 누리시면서
이 땅에서도 천국을 살아가는
우리 사랑하는 날기새 식구들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번 기도하겠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보게 함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다..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좀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고
부자라고 생각하지만
근데 가난한 것과 헐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책망하시듯이 우리의 가난함, 우리의 배고픔
우리의 헐벗음을 알지 못하는
영적 피폐한 가난한 자들입니다.
정말 그 가난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우리를 사망으로 이끌고 있는데
그 가난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면
물질의 종이 되고
하나님보다 자리와 권력을 더 사랑하면
그것의 노예가 된다는 것이 성경의 교훈입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여
세상과 돈과 사람들의 종으로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참 자유를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 자유를 누리는
복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어디를 가든지 겁낼 것 없는
그런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자유함의 축복을
우리 사랑하는 날기새 식구들
함께 다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