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997년에 탈북해서) 1999년도부터 중국에서 탈북자 사역을 했습니다. 먼저 제가 최광 선교사님 밑에서 성경을 1년 동안 배웠습니다. 그리고 저는 예수를 믿었습니다.
1년 정도 배웠는데, 최광 선교사님이 저한테 그러시더라고요. '가서 너 같은 탈북자들을 다시 모아서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예수 믿게 해라!'
저는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이렇게 한국에서 오신 목사님들도 힘들어하시는 일인데 어떻게 제가 그런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했더니
최광 목사님이 제게 그러시더라고요. '네가 믿었던 그 예수를 전하면 된다!'
'네가 은혜 받았던 말씀들을, 네가 은혜 받았던 그대로 전하면 된다' 해서 그 말에 용기를 내서 이렇게 탈북자들을 모아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정말 그렇게 하면 사역이 되는 줄 알았어요. 이렇게 제가 은혜 받은 말씀을 전하면 그들도 이렇게 은혜 받아서.. 순순히 예수를 믿으리라고 확신했습니다.
처음 6명의 탈북자들을, 연변에서 만나서 서안(북한과 좀 많이 떨어진 곳)으로 데리고 와서, 집도 세를 얻고, 사역장도 정하고.. 이렇게 탈북자 사역을 시작 했습니다.
그동안 그 탈북자들은 저를 너무 너무 좋아 했어요. 왜냐하면 밥 먹을 데 없고, 잠잘 곳이 없는 탈북자들을 데려다가 맛있는 거 먹여 주고, 좋은 아파트에서 살게 해 주고 옷은 한국에서 소포로 보내주셨습니다. 그런 옷을 입혀주고 그러니까
아 처음에는 저를 그냥 아버지 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그렇게 좋아하고 따르더라고요. 사역이 그냥 순탄하게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역장(센터)을 세팅 해 놓고, 정식으로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 통독 이런 방식으로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턴 말을 안 듣는 거예요. 한 달이 지나고, 두 달, 석 달이 지나니까.. 탈북자들이 너무너무
팀장인 제 말을 안 듣는 거예요.
그들이 예수 안 믿어요. 그리고 한 친구가 저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노골적으로 제가 말하는 모든 요구를 거부했고 뒤에서 저를 비난했고, 앞에서도 비난했고.. 그래서 저는 그와 싸웠어요.
저는 그때 예수 믿은 지 1년밖에 안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꾸중하고 욕을 하고 그랬는데, 그래도 말을 안 듣더라고요. 그래서 그분에게 제게 너무 오랫동안 시달리다가 '이 사람은 도저히 안 되겠다. 이 사람은 같이 사역 못 하겠다' 해서 그를 내보냈어요.
최광 목사님은 (전화로) '절대로 그러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저는 '이래서는 도저히 사역 못 하겠습니다' 하고는 그를 내보냈어요. 그 사람만 없으면 사역이 순조롭게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 사람은 내보내고 다시 사역을 하고 있는데 또 한 사람이 일어나는 거예요. 또 저를 이렇게 공격하고, 모함하고, 불순종하고..
그래서 제가 그 사람하고도 또 한동안 싸우다가.. 그 사람도 내 보냈어요. '이제는 6명에서 4명 밖에 안 남았으니까 쉽겠다' .. 생각했는데, 이제 남은 4명이 다같이 일어나더라고요. 일제히 다 들고 일어나서 성경읽기 공부를 안 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왜 공부를 안 하겠느냐?' 하니까 '하기 싫다'는 거예요.
(너도 우리와 같은 탈북자끼리니까) 그냥 최광 목사님이 오실 때는, 성경 읽는 척 하고 목사님이 없을 때는, 그냥 잘 먹고 잘 놀자는 거예요.
나는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 '사역에 참여 안 하려면, 너희들도 나가라. 여기는 그렇게 하는 (놀고 먹는) 데가 아니다. 그러려면 나가라!' 했더니
안 간대요. 갈 데가 없대요. 그래서 또 싸웠어요. 이렇게 싸우다가 너무 지쳐 가지고, 제가 막 스트레스 받아 가지고, 이명이 막 오더라고요.
너무 괴로워서 이번에는 제가 뛰쳐나갔어요.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 사역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선교사님이 무서워서 도망을 같습니다. 이렇게 기차를 타고 한 12시간 가는 다른 도시로 가서, 구두닦이를 시작했습니다. 그게 차라리 편하더라고요. 사역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구두닦이를 하는데 '구두닦이를 하면 밥은 벌어 먹겠지..'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그 일도 쉽게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한 동안 방황을 했습니다.
잘 먹지도 못하고, 잘 데도 없고, 구두닦이 해도 돈도 안 벌리고.. 그렇게 고생을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그 도시에 알고 있던 어느 선교사님을 찾아갔습니다. 이렇게 너무 배고파서, 그분을 찾아가서 '밥 좀 먹여주세요!' 했더니 '네가 왜 여기 있냐?' 그러더라고요. 그분은 최광 선교사님과 평소에 아는 사이였어요.
그래서 그 분이 제게 밥을 주시고는, 최광 선교사님께 전화를 해서 '이런 사람이 왜 여기 있냐고?' 그래서 전화통화를 마치시더니 저한테 차비를 주면서 '다시 돌아가라!' 그러시더라고요.
저는 도저히 살 수가 없으니까, 최광 선교사님께 다시 돌아 갔어요. 돌아가서 이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사역을 할 (가르칠) 만한 재목은 아닌 거 같습니다. 그냥 성경 공부만 하게 (배우게만) 해 주세요.' 하고 찾아 갔어요.
왜냐면 저는 너무 두려웠어요. 탈북자 사역을 하면서 최목사님이 저한테 돈을 많이 맡겨줬어요. 정말 많은 돈을 다 쓰면서 사역장을 꾸려 나가는데, 6명의 탈북자들을 사역장에서 이래 저래 다 돌려보냈고... (사역을 망쳤고) 그때 탈북자 한 사람을 구하기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그 사람들을 제가 맡았다가.. 사역은 다 실패했고 엉망이 됐고 그런 상태에서 다시 돌아가면, 그냥 죽지 않을 정도로 매를 맞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최목사님은 너무 따뜻하게 다시 저를 이렇게 받아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성경공부하겠다는 구실만 대고 '밥만 먹여 주세요' 하고 다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딱 한 달 동안 밥을 먹여 주시더니 그리고 다시 또 사역을 내보내 시더라구요. '다시 사역을 해라!'
그때 제가 24 살인가 그렇게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 마음에 다시 재신임을 받으니까, 너무 감사하고 '이번에는 정말 잘 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많이 생겼어요.
그래서 다른 분이 탈북자 사역을 하다가 포기하고 나간 자리에 제가 대신에 들어 가게 됐어요. (*일종의 전도사 격이지요)
이번에는 10명의 탈북자들을 제게 맡겨 주셨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잘 하리라, 정말 죽는 한이 있더라서 사역을 꼭 성공하리라!' 이런 각오를 하고 갔는데.. 가봤더니 제가 제일 나이가 어리더라고요.
다 30살 이상인 거예요. 다 군대 갔다 왔고, 뭐 군대에서도 특수부대 하다 왔고.. 이런 사람들이 열 명이 앉아 있는 거예요.
저는 북한에서 (일찍 탈북해서) 군대도 못 갔다 왔어요. 그래서 싸울 줄도 모르고, 보시다시피 키도 작고 힘도 약하고 그런데 그런 정말 늑대 같은 사람들 가운데, 제가 들어가서 사역을 한다고 생각하니까 제가 기가 막히더라고요.
선교사님이 제가 불쌍한지, 한 달 동안을 사역장에서 같이 살아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한 달 동안에 이렇게 이렇게 (주로 성경읽기) 사역을 진행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님은 '이제 네 힘으로 잘 해 봐라!' 하시고 한국으로 가셨어요. 그래서 그 때부터 이렇게 사역을 하는데 '정말 이제는 잘 해 보자, 이번엔 제대로 해 보자!' 이렇게 각오하며 하는데
또 한 사람이 팀장인 저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거예요. 저를 공격하고, 비난하고, 노골적으로 거부하고.. 통독 하자면 통독 안 하고, 기도하자면 엎드려 자고...
근데 이번에는 제가 그들을 내쫓을 수가 없었어요. 왜냐면 '내쫓는 것이 답이 아니라'는 걸, 이미 첫 번째 사역에서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래서 '저 한 사람 내쫓으면, 두 명이 들고 일어난다'는 것을, 제가 경험으로 알아요.
이제 그래서 못 내쫓고, 그냥 서로 같이 화를 내면서, 이렇게 같이 살았어요. 이렇게 같이 살면서 '참으면 되겠지, 참으면 되겠지..' 하면서 지내는데, 이번에는 한 명이 두 명으로 불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또 참았어요.
그러더니 반대자들이 3명으로 불어나더니 결국 몇 달이 지나서는 '다 안 하겠다'는 거에요. 성경 읽기, 성경 공부를 안 하겠대요.
분명히 저는, 제가 은혜 받았던 말씀을 열심히 전했는데 그들이 은혜를 안 받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다 '우리는 성경통독 안 하겠다, 성경 안 배우겠다' 하고 아침 기도회 시간에 나오지도 않고, 그리고 이렇게 반항을 하더라고요.
물론 탈북자들에게 있어서, 그때 사역장의 훈련 강도는 너무 혹독했어요. 이렇게 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하루에 무조건 2시간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루 8시간 동안 통독 했고 하루에 10절 이상의 성경말씀을 암송해야만, 잘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한국 교회 성도님들 한테는 간단한 일이겠지만 (회중들 하하하) 탈북자들한테는 그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 그러냐면요.
사역장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술과 담배를 금지 시켜요. 술도 못 먹게 하고, 담배도 못 피게 하고... 그러면 탈북자들의 유일한 즐거움이, 그 소망없는 사람들에게 유일한 즐거움이 그거 밖에 없습니다.
돈 생기면 술 먹고, 담배 피우고... 그런데 그걸 못 하게 하고, 기도를 2시간씩 시키는데 예수 안 믿는 사람한테, 기도 2시간씩 한다는 건 고문 중에 고문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하는 거예요. 그리고 봤더니 팀장(현 김성근 목사)이란 사람이, 자기들보다 나이도 어리고, 힘도 약해보이니까 제 말을 안 듣는 거죠.
그래서 마지막에는 성경 통독실에 저 혼자 앉아 있게 되더라고요. 다 침실에서 안 나와요. 아무리 나오라 해도..
'이렇게는 안 되겠다..' 해서 한 명씩 불러서 상담을 시도해봤습니다.
'정말 나한테 뭔가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주먹질을 해서라도 풀자. 그렇게 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사역은 해 보자'며.. 그렇게 한 명, 한 명씩 상담을 했습니다.
'왜 그러느냐, 내가 뭘 잘못했냐? 그래서 오해가 있으면 풀자' 이렇게 상담을 했는데
그 사람들과 한 명 한 명씩 대화를 해 봤더니, 결과는 똑같았어요. 그들이 뭐라고 말을 하냐면 '꼭 이렇게 피곤하게 해야 되느냐? 그냥 선교사님이 올 때만 하는 척 하면 안 되냐? 그냥 편안하게 살자. 같은 탈북자 처지에 뭘 이렇게 고생스럽게 살아야 되느냐?' 다같이 그렇게 말을 하는 거에요.
네가 미워서 그런 게 아니다.. 훈련만 좀 하지 말자는 거예요. 10명이 다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제가 무서웠어요. 왜 무서웠냐면 첫 번째 사역장에서, 그들이 저한테 반항하면서 했던 말 하고
두 번째 사역장에서, 반항하면서 그들 입에서 나오는 말이 똑같거든요. 그 눈빛과 음색과 쓰는 말의 톤이 다 똑같았어요. 사람은 분명히 다른 사람들인데..
그때 제가 눈치를 했어요. '아~ 내가 지금 싸우고 있는 상대가 사람이 아니구나! 이 탈북자들의 뒤에, 어떤 보이지 않아 형체가 있구나!'
왜냐면, 첫 번째 사역장에서의 공격과 두 번째 사역장에서 공격이 똑같으니까요.
'나를 공격하는 동일한 존재가 있어서, 지금 나를 공격하는 구나!' 그걸 그때 느꼈어요. 그걸 느끼고 나니까, 내가 상대하는 존재가 사람이 아니라는 걸 느끼고 나니까 대책이 없더라고요. 무섭고.. '이거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지?'
1년짜리 풋나기 신앙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한국에 계신 선교사님 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지금 여기 상황이 이렇습니다. 지금 좀 무섭습니다..' 하니까 선교사임이 제게 한 30분을 설명을 했던 거 같아요.
'누구는 이렇게 말하고, 누구는 이렇게 말합니다..' 라고 했더니 선교사님은 딱 한 마디 하시더라고요. '기도해라!' 그래서 제가 기도했어요.
▲제가 알고 있는 유일한 방법이 한 가지가 있었어요. 악한 영과 싸울 때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제가 알고있는 방법이 이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밤새 안 자고, 형제들이 있는 침실을 향해서 제가 막 그렇게 외쳤어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악한 영은 떠나갈지어다!' 하고 밤새 외치고 다음날 아침 이렇게 보면.. 어제와 똑같은 사람들이 나와요. (회중들 하하하하)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가 안 통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직 믿음이 어린 저한테는, 유일하게 알고 있는 방법이 안 먹히니까 너무 너무 무서운 거에요. 여러분들은 제 얘길 듣고 지금 재밌다고 웃는데..
그때 저는 너무 절박해 했어요. 사역은 해야 되겠고, 방법은 없고... 그래서 금식도 했어요.
'금식 하면 되겠거니..' 하면서, 정말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했던 것 같아요. 제 느낌으로는 그래요. 예수님 이름이 선포될 때, 도망가는 귀신들도 있습니다. 근데 다 물러가는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아무튼 그 사역장에서 그게 안 먹혔어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이제 하나뿐이었어요. 포기하는 것!
뭐 안 되는 걸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여러분들 맘대로 해라, 뭐 내가 기도 해도 안되고, 예수님 이름의 권세까지 동원해도 안 되는데 내가 뭐 어떻게 한단 말이냐?'
그리고 그냥 그들한테 저를 맡겨 버렸어요. '그래 나를 씹을려면 씹어라, 비난하려면 비난해라, 나를 때리고 싶으면 때려라, 니들 맘대로 해라, 나는 내 할 일이나 해야 되겠다!'
그래서 제가 통독실에 앉아서, 혼자서 통독을 했어요. 아 서럽더라고요. 그리고 난 괴로웠던 게 저 자신이었어요.
저는 북한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때 권위의식이 굉장히 강했어요. 당시 북한이라는 사회의 문화는, 감투만 하나 씌워놓으면, 노인이 눈이 안 보여요. 그냥 감투 쓴 사람이 최고입니다. 그 사람이 한 마디 하면,
다른 사람들은 노예처럼 순종해야 되는 것이 북한 문화입니다.
그래서 그런 우월의식, 자존감이 충만했던 내가 이런 꼴을 당해야 된다는 게 너무 용납이 안 되고 그래서 저 자신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비참한 나를 견뎌내면서, 제 혼자 이렇게 성경통독 하는데 그래서 며칠은 그렇게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부터 이상한 일이 생기더라고요. 한 사람이 통독실에 들어오는 거예요. 이렇게 제가 불쌍해 보였는지.. 이렇게 저를 독려해 준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통독실에 들어와서 통독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친구하고 이렇게 둘이서 통독을 했어요.
뭐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이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그럴 때 제가 한 사람 앉혀 놓고 이렇게 통독도 하고, 기도도 하고 하는데 한 며칠이 지났는데, 또 한 명이 들어 오더라고요.
그렇게 한 달쯤 지나니까, 한 명씩 제 발로 들어와서.. 회복이 저절로 됐어요. 그래서 '어~ 사역이 되네?' 하고서 이렇게 지냈는데 일년쯤 지나서 그들이 다 예수를 믿었습니다.
예수를 믿었고, 세례를 받았고, 그리고 파송까지 하게 됐습니다. 최광 선교사님이 그들을 다 파송시켜서, 다 사역자로 이렇게 세우셨어요.
▲그래서 그렇게 그들을 마지막으로 파송시키고 나서, (아마 북한으로) 다 보내고 나서 제가 사역장에서 혼자 남아서 이렇게 마지막으로 사역장 정리를 하고 나가야 되니까, 집세도 정리하고, 집주인과 만나서 열쇠도 반납하고 하려고.. 뭐 그런 차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아 그 1년 동안 그 분들하고 정이 많이 들었더라구요. 고왔던 정, 미웠던 정... 1년 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렇게 조용히 돌이켜 봤어요.
돌이켜 보다가 그때 '나를 공격했던 그 형'이 생각나는 거예요. 그게 생각이 나서, 제가 주님한테 이렇게 기도했던 것 같아요.
'주님 그때 왜 그렇게 저를 안 도와주셨어요? 난 너무너무 힘들었고, 너무 절박 했는데요..'
주님이 저를 안 도와주셨다는게 계속 저는 너무 서러웠어요. '그때 왜 저를 좀 도와주셨어야죠. 왜 안 도와주셨습니까?' 이렇게 기도를 하는데
그때 제 마음에 이렇게 조용히 따뜻하게 와 닿았던 말씀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도다.' 마10:16
저는 처음에, 이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니까, 좋은 말씀인줄 알았어요. 근데 알고 봤더니, 이게 굉장히 끔찍한 말씀인 거예요.
양을 보고 늑대들 가운데 들어가라는 거는, 정신 차리고 봤더니 '가서 죽으라는 말'이더라고요. '아 그러네~?'
이거 보다가, 제가 마음에 '왜 그래야죠?' 하고 이렇게 다시 물었어요. '왜 그래야만 하죠?' 하는데
제 마음에 다시 이렇게 깨달음이 왔다고 할까요? 아주 고요하게.. 제 마음 속의 지성소에서, 주님 하고 정말 일대일로 만나서 교제하고, 교감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제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때 그 순간이 내 마음의 지성소에서 제가 주님을 만나는 시간이었구나...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제 혼자 울었어요. 너무 서러워서 울기도 했고, 주님의 고요한 위로 때문에 울기도 했고.. 울면서 이렇게 기도하는데, 그런 것이 보이는 거예요.
그때 나를 공격하던 영이.. 정말 끔찍하게 무섭고 두려웠던 영이.. 어느 순간에 기운을 잃고 사라져 버린 그 이유가 보이는 거예요.
그게 뭐냐면, 나는 정말 자존심이 강했어요. 북한에서도 제 어머님이 의사였고, 아버지가 작가인 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소위 엘리트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평소에 남들을 늘 내려다 (무시하며) 봤어요.
굉장히 교만했고, 자존심이 강했고, 그래서 제가 사역장에서도, 탈북민들을 그렇게 봤었나 봐요.
거기서 제가 이렇게 자존심 다 꺾이고, 그들한테 막 비난 받고, 멸시 받고, 그러면서도 말도 못 하고.. 묵묵히 앉아서 성경보면서 속에서 피눈물 흘리고 했던 그런 내 행동이 그게 십자가 였더라고요. 그게 내가 질 수밖에 없었던 십자가 였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내 모습이, 나는 처량하고 불쌍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봤더니, 그때 내가 졌던 십자가 때문에, 나를 공격하던 영이 기운을 잃었다는 것이 보인 거예요.
'아~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게, 의도적이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십자가를 지고 이렇게 눈물 흘리고 앉아 있는데... 그 어떻게 내가 그 도전을 이깁니까?
그런데 그 존재(마귀)가, 십자가를 지는 나를 못 당해 내더라고요. 그리고 형제들에게 임했던 그 악한 영이, 기운이 사라지고 점점점 사라지니까
이 사람들이 '아 우리가 이러면 안 되겠구나...'하며 다시 성경통독실로 한 명씩 돌아와서 자진해서 통독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봤더니, 이제 보이더라고요.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런 길로 갔더라고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 전하실 때, 정말 거의 다 순교를 하셨더라고요. 가서 죽었어요. 그랬더니 그 양을 잡아먹었던 이리들이, 양으로 변하는 거예요.
그 이리가 양으로 변했는데, 그 변한 양이 또 나가서 이리 떼에게 잡아먹히고 또 그 양을 잡아먹은 이리가 또 양으로 바뀌고... 이런 식으로 복음이 확산되어 가더라고요.
신기했습니다. 왜 이럴까? 하고 봤더니, 양 안에는 생명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그걸 보면서, 이게 아무에게서나 나오는 힘이 아니란 걸 발견했습니다. 이런 힘이 나오려면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더라고요.
일단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되더라고요. 그리고 순결해야 되더라고요. 하나님 앞에서 깨끗해야 되더라고요.
그래서 '너희는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또 '뱀처럼 지혜로워라' 마10:16 예수님이 여기까지만 말씀해 주셨어요.
그렇게 할 때 우리를 통해서 얼마나 놀라운 능력이 나가는지 우리가 그것을 순종할때 경험하며 알게 되는 거죠.
그래서 제가 '아 이런 원리가 있었구나!' 하는 것을, 그때 처음 영의 눈을 뜨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나도 악한 영을 이길 수 있구나, 악한 영을 이길 수 있는 무기가 나한테도 있구나!' 그 이후로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 속에서, 제가 몇 번 그 힘을 썼습니다.(십자가를 졌습니다) 그 방법을 쓸 때마다. 저는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습니다.
그 악한 영은, 시도 때도 없이 저를 공격 하더라고요. 사역하는 저에게 아내를 통해서 오기도 하고.. 또 지금 사역하고 있는 북한청소년들을 통해서도 옵니다. 어떤 때는 굉장히 무서워요... 그러나 십자가가 결국 승리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 번은 제가, 영등포 구청 앞에 <열방빛 선교회>에서 성경통독 사역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북한 청소년들에게 성경통독 하면서, 성경을 가르쳐 주는데 제가 최광 목사님의 그 사역을, 도와서 보조로 같이 사역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한 청년이, 너무너무 이렇게 그 학교 질서를 어지럽히고 프로그램에 동참을 안 하고, 심약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그래서 제가 아니고, 다른 팀장이 그를 꾸중을 했어요.
그랬더니 이 친구가 밤에 칼을 들고 왔어요. 그래서 잠자고 있는 그 팀장을 찔렀어요. 근데 이불을 덮고 있었기 때문에, 다행히 살에 박히지는 않았어요.
그 다음날 제가 갔더니, 그 얘기를 해 주시더라고요. 그 친구가 밤에 칼 들고 찾아와서, 하마터면 자기가 찔릴뻔 했다고...
그때 저는 다시 제 속에 있던 자존심이 살아 올라왔어요. 저는 어떻게 생각했냐면, '칼에 굴복해서 어떻게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느냐? 저 사람은 용납 못 해, 내 보내야 돼!'
해서 내보내자 했더니, 그 칼에 찔렸던 팀장은 '나는 용서할 거야!'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나는 아니야, 나는 용서 못 해!' 하고
다음 날 그 친구가 온 걸 보고서 '너는 나가라, 나는 네게 성경을 가르칠 수 없다. 너는 네가 한 행동 때문에 감옥에 가야 되지만, 우리가 용서를 했기 때문에 감옥엔 안 보내지만 그러나 성경통독 학교에서는 네게 성경을 가르칠 수 없으니 나가라!' 했더니
그 애가 또 술을 잔뜩 먹고 왔더라고요. 이렇게 나한테 와서 협박을 하더라고요. '너도 칼에 맞아 죽어 볼래?'
그 친구는 (협박이 아니라) 정말 찌르는 사람인 것을, 저는 알아요. 근데 제가 홀로 있을 때하고, 가정이 있으니까 남자 마음이 달라지더라구요.
제가 홀로 있을 때는 '찌르면 찔리지 뭐'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이제 가족이 있으니까 너무 두려운 거에요. 내가 죽으면 가족이 당할 아픔을 생각하니까 두렵더라고요.
그 순간에 만약에 제가, 걔가 무서워서 '그래 성경공부 반에 들어와!' 이렇게 해 주면... 또 질서가 무너지고, 권징이 무너지잖아요.
제 생각은 그래서는 안 될 거 같아요. 그래서 제가 두렵지만, 내색 안 하고 '좋아, 오늘 내가 찔려야 된다면 찔리자, 뭐 죽기야 하겠나? 이때까지 나와 함께 하신 주님이, 나를 지켜 주시겠지!'
그래서 '네가 나를 찌를테면 찔러라, 찔러도 너는 여기서 공부 못 한다. 나가라!' 하고 내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 패거리들을 데리고 오더라고요.
저는 무서워서 경찰을 불렀어요. 경찰도 출동했어요. 걔가 불러온 패거리도 왔고, 경찰도 와서... 별 충돌 없이 마무리되었는데요.
그런데 그 일이 지나고 나서, 옆에서 이렇게 지켜봤던 사람들이 그러더라고요. 저를 다시 봤다는 거예요. '굉장히 순하게 봤는데, 어디서 그런 배짱이 나오냐고?'
그때 제가 '아~ 이런 거구나' 하고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었어요. 내가 만약 그 순간에, 내 몸을 사리려고 이렇게 뒤로 물러섰다면 오히려 찔리겠구나... 그날에 안 찔려도, 다른 날에 또 찔리겠구나..
정말 '찔리면 찔리리라, 죽으면 죽자'... 이런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나갔더니 안 찔리더라고요. 주님이 막아 주시더라고요. 그런 경우를 여러번 저는 경험을 했어요.
정말 험악한 경우를 자주 만나요. 북한 탈북자 사역이 좀 거칩니다. 워낙 거친 세계에서 살다온 사람들이라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기 뜻대로 해결이 안 되면 폭력을 쓰는 거에 대해서 그게 나쁘다고 생각을 안 해요.
그때마다 '그러면 뭐 죽지 뭐!' 최광 선교사님이 자주 그러더라고요. '목숨을 내 버려라!'
그러면서 왜 그래야 하는지를 이렇게 한 번씩, 한 번씩 경험을 하면서 사역 경험을 쌓고 있습니다.
▲이런 이런 일들을 한 번씩 두 번씩 경험을 하면서 저는 분명한 것을 한 가지 알게 됐어요.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성경을 좀 많이 배웠어요. 지금 말하기 좀 창피해서 그렇지, 성경을 진짜 많이 읽었습니다.
그런데 읽어서 머릿속에 있는 지식은, 저한테 크게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십자가 지고) 죽고자 하면 산다' 이 말씀은, 백 번 이상은 들었던 거 같아요.
근데 정작 죽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제가 선뜻 죽어지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그걸 경험한 다음에, 바울 사도가 했던 말이 깨달아 졌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를 전한다고!' '십자가는 그들에게는 미련해 보이지만, 이것은 하늘에서 온 능력이라고!'
고전1:22~24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제가 비록 어설프게 몇 번 당해 봤더니, 진짜 그렇더라고요. 그러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죽기를 각오하고 정말 죽어 갈 때면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어떤 아름다운 빛이 나온다는 것을, 저는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최광 목사님도 그렇고, 제 옆에 있는 팀장들이 그런 일을 당할 때 제가 옆에서 여러 번 봤어요.
비참해지는 거죠. 멸시 받는 거, 가난해서 힘들어하는 거 다 봤어요. 그런데 볼 때마다 그것이 멋있다고는 생각 되지 않았어요. '대단한 힘'이라고 생각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정말 하늘에서 온 생명을 포함한 힘이라고 이해는 하지만, 한 편으로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근데 내가 그 십자가(멸시, 천대, 무기력)를 경험해 보니까 내 마음에서 그게 깨달아 지더라고요. '이거는 정말 놀라운 하늘의 힘이구나! 이걸 보고 하나님이 생명이라고 그랬구나!'
지금도 설명이 안 됩니다. 그 놀라운 힘이!
제 내면에서 나를 바꾸고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십자가의) 힘! 그 십자가 때문에 바뀌더라고요.
그래서 후에 시간이 지나서 얘기를 해 보면 그런 순간 때문에, 학생들이 우리를 따라 오더라고요.
뭐 성경을 잘 가르쳐 줘서도 아니고 지식적으로 화려해서도 아니고
정말 우리가 침 뱉는 거 다 받아주고, 멸시 당하고 그럼 그 순간은 너무 수치스럽고, 꼴 보기 싫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 때문에 그들은, 우리에게 돌을 던지면서도 그들은 속에서 울었더라고요. '이러면 안 되는데.. 이건 아니야..'
그리고 그랬던 사람들이 돌아오더라고요. 그리고 그것 때문에, 그들을 틀어쥐고 있던 악한 영이 도망 가더라고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무슨 힘으로.. 내가 어떤 테크닉을 발휘해서 내가 이런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 무서운 영, 예수 이름이 선포되는 데도, 도망가지 않는 영, 하루에 2시간씩 기도해도 사역장에서 들러붙어서 떠나지 않고 훼방하는 그 영을 어떻게 이깁니까?
그런데 십자가 짊으로 이길 수 있다는 거죠. 물론 힘듭니다. 너무 너무 힘듭니다.
그래서 이런 걸 깨우쳐 주시려고, 주님은 그때 저한테 침묵 하셨더라고요.
그냥 주님이 그 권능의 손으로 간섭할 수 있었는데 만약 주님께서 그런 식으로 제 사역에 개입을 하셨다면 저는 오만해졌을 것 같아요.
그리고 말 한마디로 문제를 다 해결하려고 했을 것 같아요. 십자가? 그런 것은 꿈도 안 꾸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너무 아픕니다. 주님, 왜 꼭 이래야만 합니까?' 암튼 너무 그 십자가를 당할 때는 괴롭고 슬펐어요.
그런데 저는 또 어린 마음에 이렇게 기대를 했습니다. '오늘 내가 십자가를 졌기 때문에, 내일은 영광이 올 거야!' 근데 쉽게 그게 당장은 안 오더라고요.
▲(다시 중국 사역 시절 간증으로 넘어갑니다)
그렇게 해서 1년 사역을 성공한 다음에, 계속 사역을 했어요. 그 사역의 대가는 어떻게 받았냐면.. 제가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하루는 사역장에서 다 같이 중국 공안에 체포되었어요. 저만 잡힌 게 아니고,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이 다같이 붙잡혔어요.
중국에서도 사형수들을 가두는.. 그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북한으로 끌려가야만 했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감옥에서 저희가 다시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우리를 살려 주십시오. 우리가 나쁜 짓을 하다가 잡힌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경을 읽다가, 지금 성경공부를 하다가 이렇게 붙잡혔는데 하나님이 구해 주실 줄 믿습니다'.. 가 아니고 '구해 주셔야만 합니다' 이렇게 강요를 했던 거 같아요.
근데 그런 일(석방)을 안 일어났어요. 서안에서 이렇게 북한 국경으로 호송되는데, 기차를 타고 국경까지는 2박 3일 동안 가야 돼요.
도망칠 수 있는 그 틈들이, 많이 나올 수 있는 구간입니다. 근데 빈틈이 없었어요. 기적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고, 우리는 곱게 (완벽하게) 끌려갔어요.
그래서 한 명도 탈출 하지 못하고, 전원 북한으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북중 국경 근처의 중국 감옥에 갇혔을 때, 이제는 북한 땅이 눈앞에 보입니다.
저는 너무너무 절망 했어요. 저는 거기에 돌아가면.. 그때 제 신분은 10개의 사역장을 총 책임지는, 그 팀장의 역할을 제가 맡았기 때문에 일종의 주모자로 취급을 받을 거예요. 제가 넘겨지면 정치범 수용소도 아니고 바로 즉결 처형이 되는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탈북자가 잡히면 세 가지를 질문 한다고 해요. -교회를 갔느냐? -남조선 사람을 만났느냐? -성경을 읽었느냐, 또는 성경을 배웠느냐?
이 세 가지 심문 중에서, 한 가지라도 '예' 라고 대답이 나오면 고문을 안 한대요. 그 사람은 죽은 사람과 같이 취급을 하는 거죠. 그것보다 더 엄청난 죄가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은 정치범 수용소로 가야 되는데요.
그런데 저는 성경을 배웠고, 성경을 가르쳤고, 남조선 사람 밑에서 조직하는 일을 했고... 그러니 살 가능성이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 감옥에서 하나님한테 그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십자가를 지고.. 나름대로 십자가를 지면서 예수를 전하고 성경을 가르친 대가가 이런 겁니까?' 하고 저는 믿음을 포기했어요.
놀랍게도 그 때 그 감옥에서, 저 빼고 다른 팀장들은 모두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감옥 안에서도 다같이 기도 모임 가졌고, 예배를 드렸어요. 그 사람들은 다 북한으로 넘겨졌어요. 저만 기적적으로 석방되어 살았습니다.
저는 감옥에서 완전히 믿음을 포기 했어요. (내 마음으로) 근데 믿음을 포기한 나는 살아났고, 믿음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은 넘어갔고, 정치범 수용소로 갔고 지금은 다 돌아가셨을 거예요.
이게 십자가의 대가입니다. 저는 너무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그래서 그때 감옥에서 나와서, 더 이상 사역을 할 수 없어서 한국으로 오려고 하는 중에 최광 목사님이 저를 한국으로 데려오려고,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해 주셨어요.
그러다가 한국으로 가는 길에 또 잡혀서 또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오늘 12시가 되면 한국으로 출발하는데, 1시간 직전인 11시에 또 공안에 체포되었어요.
체포되어서서 다시 또 그 동문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그 심정은요, 정말 죽고 싶더라고요.
한발 짝만 더 내디디면 천국(한국)인데 그 한 발짝 앞서 지옥(북한)으로 떨어지고 있는 그 심정, 정말 자살해서 죽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울고 있는데, 하나님이 또 감옥에서 저를 꺼내주셨습니다. 정말 기적적으로 또 꺼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감옥을 나왔어요. 그리고 이제 몽골로 갔습니다. 몽골로 가면, 몽골 수도 울란바트로에 가면, 이게 한국행이 90%는 성공한 겁니다.
근데 거기 몽골에서 다시 또 잡혀서, 이제는 몽골 감옥으로 들어갔어요. 왜 들어갔냐면, 제가 탈북자 팀을 인솔해 가지고 몽골로 넘어갔는데
그 팀 중에, 중국 조선족이 한 분 끼어있는 거예요. 그 분도 한국 오겠다고 탈북자로 위장해 가지고 '나도 탈북자입니다' 하고 끼어들어 왔던 거예요.
근데 몽골 한국 대사관에서 신원조회를 하다가 이 사람이 중국 국적이니까 (외교 문제로 비화될까봐) '이 사람은 중국으로 다시 보내야 됩니다' 이렇게 된 거에요.
그런데 중국 쪽에서 어떻게 회신이 왔냐면 '그 사람(조선족)이 불법으로 국경을 넘었기 때문에, 재판을 해야 되는 거예요. 재판을 하려면 증인이 한 사람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중국정부에서 몽골정부에 뭐라고 말했냐면 '그 사람만 중국으로 보내지 말고, 같이 넘어간 사람 한 명을 증인으로 같이 보내세요' 이렇게 요구한 거예요.
그러니까 몽골 경찰들이 그때 우리 탈북자 팀이 모두 12명이었는데 '누가 증인으로 중국으로 다시 넘어갈래?' 물었습니다.
아무도 안 가려고 하지요. 그러니까 인솔자였던 저보고 '네가 책임자이니까, 네가 넘어가라!' 하고는 저를 감옥에 집어 넣은 거예요.
저는 몽골까지 왔다가, 다시 중국으로 끌려가야할 상황에 지금 빠졌어요. 그리고 만약 제가 중국으로 간다면, 그 조선족의 재판이 끝나면, 중국 정부에서 저를 다시 몽골로 보내 줄까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저를 다시 북한으로 보내는 거죠.
너는 너무 억울하고 원통했어요. 한국에 가려고, 힘들게 몽골까지 왔어요.
저랑 같이 왔던 다른 일행들은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가는데 나는 중국으로 추방되었다가, 다시 북한으로 추방되어야 되니까...
그 몽골 감옥 안에서 너무 서러워서... 아 그때 좀 제가 하나님 앞에서 이런 서원을 100번 넘게 했던 거 같아요.
'하나님 저를 꼭 한국에 보내 주시면,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그 서원이 효험이 있는 거 같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때 거기서 울면서 제가 유언까지 썼습니다. 한국 가는 친구들에게 '내가 죽으면 뭐 우리 엄마 잘 보살펴 줘' 이런 식으로...
그런데 그 몽골 경찰들이, 제가 불쌍했나봐요. '어떻게 살겠다고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다시 돌려보내나?'
그래서 그 중국분(조선족)을 이렇게 교도소에서 합법적으로 넘겨 보내지 않고 넘어왔던 방식 그대로, 불법으로 다시 넘겨 보내줘 버린 거예요.
그러면 제가 증인으로 안 가도 되죠. 그런데 저한테 조건을 달았어요. '너를 살리려고 이런 일을 한다. 근데 저 사람이 국경을 무사히 넘어서 집에까지 안전하게 가면 되는데, 만약 중국 국경 경비대에 잡혀서, 다시 증인을 요구하면, 넌 가야 돼! 그러니 그때까지 넌 여기에 남아 있어!'
그래서 제가 몽골 감옥에서 이렇게 기도했어요. '그 중국 사람이 제발 (국경 경비대에) 잡히지 말고, 자기 집에 안전하게 가게 해 달라고..' 그렇게 빌고 빌고 또 빌었어요.
그러면서 그때 아마, 제가 한 1백 번은 서원했던 거 같아요. '제가 한국에 가면, 신학교에 가서 꼭 목사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어요. 그분이 무사히 자기 집에 갔나 봐요. 몽골 경찰이 '됐다. 너는 이제 한국에 가도 된다' 해서, 제가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한국으로 왔어요.
▲이렇게 정말 어렵사리, 기적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한국에 와서.. 그동안 저를 가르쳤던 최광 선교사님 집에 인사하러 갔었어요.
갔는데 제가 그 날 당장에 시험에 들고 말았어요. 갔더니, 그 자녀가 네 명인데, 아침 먹고나서 '점심에 뭘 먹을까?' 궁리하며 앉아 있는 거예요.
이렇게 풍요로운 나라에서, 그렇게 가난한 사람들을 제가 처음 봤어요. 그래서 제가 '야~ 내가 앞으로 목사가 된다면, 저렇게 될 수도 있겠구나'
그래 가지고 제가 하나님한테 '저는 신학교에는 못 가겠습니다..'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래서 제가 신학교를 안 갔어요.
그리고 이렇게 저를 가르치신 분(최광 목사)이 너무 어렵게 살고 가난하게 사니까, 그게 제 마음에 안 들었던 거죠.
그래서 제가 일반대를 갔습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대학으로 갔어요.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서 졸업도 했습니다. 졸업을 하는 날, 이렇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어요.
갑자기 설명할 수 없는 은혜가 제게 임하는 거예요. 제가 그냥 바보 같았어요. 대학교 도서관에서 마지막 기말고사 준비를 하는데.. 눈물이 그냥 터지는 거예요. 도서관에서 울면 안 되잖아요.
근데 너무 그냥 울고.. 울고.. 또 울다가 '그래서 뭐 사람이 은혜 받을 때가 있으니까.. 그러다 말겠지..' 하고 생각을 했는데 그 눈물이 안 그쳐지고 계속 지속되는 거예요.
마지막 기말고사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몇 달 동안.
그냥 '하나님' 말만 들으면, 바보처럼 울기도 하고, 막 펄쩍펄쩍 뛰기도 하고 그러다가 '이거 아무래도 이상하다' 그래서 목사님한테 찾아가서 '제가 왜 이러죠?' 물었더니
아~ 그 말을 듣고 저는 너무 싫었어요. 왜 그랬냐면, 제가 그때 SK 그룹에 취직이 된 상태였어요. 대학도 좋은 대학을 나왔어요.
그때 제가 취직이 됐는데, 그 SK는 좋은 직장이죠. 초봉도 높았고... 그때 탈북자인 저한테는 까무러치는 숫자였어요. 그 회사에 한 10년만 일하면 연봉이 꽤 많이 올라간다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아~ 나는 이제 성공했다. 내 인생은 풀렸다..' 이러는데 하나님이 저를 부르신다고.. 목사님이 말씀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아~ 좀 너무 난감해서, 도망을 갔습니다. 중국으로 가버렸어요.
왜 그랬냐면, 제가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은 알잖아요. 사역자가 되기는 싫어도, 하나님이 분명히 살아 계시는 것은 아는데
그런 상태에서 '직장에 가면 직장 일이 안 된다(평탄하지 않을 것이다)'는 건 뻔하잖아요. 하나님이 나를 불렀는데, 내가 직장에 가면, '될 일도 안 되겠구나'
그래서 직장에는 무서워서 못 가고, 신학교는 가기 싫어서 못 가고.. 그래서 제가 중국으로 (요나처럼) 도망가서, 이렇게 한 두 달 동안 뒹굴거리면서 살면서 버텼어요.
▲그때 거기서 제가 하나님한테 그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진짜 가난한 건 두렵습니다. 그리고 제가 과거에 중국에 있을 때, 세 번씩이나 감옥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그 상처!
나는 정말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했는데, 정말 순결하게 주의 일을 했는데 제게 쭈욱 돌아온 것은, 감옥에 들어간 것이고
그리고 감옥에 들어와서 또 다시 충격 받은 것은 그 신앙이 없는 나는 살고, 정말 경건했던 다른 팀장들은 다 북한으로 보내져서 다 죽었다는 거예요. (나중에 같은 탈북자들을 통해 확인, 모두 순교)
'그러면 뭐야? 이게 도대체...' '그럼 경건의 대가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이렇게 제가 갈등하면서 기도를 했어요.
그때 몇 가지를 이렇게 기도를 했던 거 같아요. 첫째, 가난한 길은 제가 못 갑니다. 둘째, 그때 왜 그랬습니까? 하나님! 어차피 살려 주는 거, 그렇게 세 번씩이나 저를 감옥에 집어넣었다 꺼냈다 하면서 그랬습니까? 제가 그게 이해가 안 돼서, 이렇게 막 떼를 쓴 거 같아요. 하나님한테. 그게 풀리지가 않으니까요...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야 이놈아, 네가 그런 과정이 없으면 내가 너한테 준 게 뭔지를 어떻게 아느냐?'
그래서 '내가 받은 게 뭐지?' 하고 봤더니 하나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너는 안 죽어! 이 세상 어디 갖다놔도 너는 안 죽어! 왜냐면 내가 너와 함께 하기 때문이야!'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갔다가, 살아서 나온 것만 기적인 줄 아느냐? 탈북자가 살아서 나올 수 없는 감옥에 들어갔다가, 세 번씩이나 나온 건 기적 아니냐?
네 안에는 생명이 있어 불 껍데기 위에 올려놔도 넌 안 죽어!'
그거를 가르쳐야 되는데, 이런 걸 어떻게 지식적으로 가르치냐 하는 거죠.
'너는 안 죽는다'는 걸 가르치기 위해서, 저를 감옥에 집어넣었는데 제가 하나님을 팽개쳐 버리니까,
'얘가 깨달았나?' 해서 또 집어넣었다가, 못 깨달아서 또 집어넣었다가, 우둔해서 못 깨닫고 영 도망가 버리니까... 이렇게 하나님이 응답을 해 주셨더라고요.
그래서 그러면 '나는 그렇게 살려줘서 고마운데, 그때 정말 감옥 안에서도 신앙을 잃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려달라고 빌었던 그 친구들은 왜 죽었죠?' 여쭈었더니
하나님이 제 눈을 열어서, 제가 못 보던 걸 보게 해 주셨어요. '그들이 다 죽었는 줄 아느냐?' 그들이 갔던 영광의 길을 보여 주시는 거예요.
나는 그 사람들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북한으로 가서 순교한 줄 알았어요. 후에 제가 한국에 와서, 그 사람들과 같이 북한 감옥에서 생활했던 사람들 중에 넘어온 사람들하고.. 제가 한 명, 한 명 인터뷰를 했어요.
제 홈페이지에 그 사람들의 이력을 남기기 위해서 한 명, 한 명 인터뷰해서 그 사람들의 행적을 제가 조사를 했습니다.
북한 보위부에 넘어갈 때 그래요. 북한 보위부 간부가 와서 그랬대요. '여기서 하나님 믿는 사람은 일어나라!'
그런 말을 거역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보위부가 갖고 있는 그 권세는 상상을 초월해요.
아무리 악한 사람도요, 북한에서 보위부가 왔다 그러면 머리를 숙여요. 벌벌 떨며 오줌을 쌉니다. 숨도 제대로 못 쉬어요.
그 속에서 팀장들은 다 일어났대요. '나 믿는다. 죽여라!' 그렇게 걸어 갔다는 거예요. 정치범 수용소로 향해서 웃으면서 걸어 갔다는 거예요.
그들이 갔던 그 영광의 길, 십자가의 길..
저는 어려서 좀 귀하게 자랐습니다. 누나가 세 명에 아들이 하나로 자랐거든요.
그래서 독자라서, 저희 어머니가 정말 귀하게 키웠는데, 저는 몸에 주사바늘이 들어가는 것도 못 견뎌해요.
그래서 애초에 고문 같은 건, 저는 견딜 생각을 안 했어요. 그래서 이제 북한에 넘어가면 고문을 할 텐데 '다 말을 해야지'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왜냐면 저는 그런 의지가 없습니다. 저한테는
그래서 그 때 그 동문 감옥에 있을 때 이렇게 생각했어요. '북한에 북송되어서, 내가 견딜 수 없는 고문을 당하면 내가 꼬박꼬박 다 말해 버리면, 때리지는 않겠지만 결국은 처형 당할 건데..'
그런데 나만 가는 게 아니에요. 온 가족이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야 된단 말이죠. 그 비참함은 어떻게 또 감당을 합니까?
그래서 제가 이렇게 죽기로 결심했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의사라서, 저를 중국으로 보낼 때, 재산을 하나 줬어요.
그게 뭐냐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줬어요. '정말 잡히면 이렇게 해서 네 선에서 끝내라...' 이렇게 하고
그래서 저는 이렇게 트럭에 실려서 북한으로 넘어가는 순간이면, 트럭 위에서 죽자... 이렇게 각오하고 있었어요.
뭐 견딜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저는 순교, 십자가... 그 쪽으로 재봤더니 너무 아프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순교는 아예 할 생각조차 안 했어요.
그런데 순교는, 하나님이 저한테 이런 은혜를 주셨어요. '순교는 네 힘으로 하는 거 아니야, 내 힘으로 하는 거야, 은혜야!'
그러고 봤더니 순교당한 친구들이 많습니다. 같이 공부했던 팀장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다 웃으면서 사형장으로 갔어요.
인간의 힘일까요? 아닙니다.
나는 십자가를 지면, 이 세상에 부와 권세와 영광이 보상으로 주어지는 줄 알았어요. 그게 대가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오는 분도 있어요. 그것이 필요한 경우는 주시겠죠.
그런데 나와 같이 공부했던 그 분들은, 바로 순교자로 영광의 길을 갔더라고요. 거기서 (중국 국경 동문 감옥에서) 내가 신앙을 포기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건져준 것이죠.
'얘는 넘어가면 죽어, 자살해 버릴 거니까..' 다른 사람들은 신앙을 지켜주셔서 정말 그렇게 당당하게 그 길을 걸어갔는데..
나는 잡혀서 감옥에 들어가는 그 순간에 아예 포기를 해버리니까 연약하고 어리니까 꺼내 주셨더라고요.
아 그런 것들이 제 눈에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좋았어요. 중국에서 기도하고, 이런 은혜를 받고 나니까!
▲그래서 제가 하나님께 다시 기도 했습니다. '예, 그건 좋은데.. 가난한 거는 제가 못 참겠습니다.'
가난에 대한 두려움은.. 어떤 분들은 그러더라고요. '넌 북한에서 가난해 봤으니까, 이젠 가난이 안 두렵지?'
아니 그 반대입니다. 정말 처절한 가난을 겪어 본 사람은, 가난을 더 두려워합니다. 한 번 불에 데어본 사람이 불을 두려워 하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저는 그때 막 결혼해서 애도 낳았고..
근데 제 마음에 이런 음성이 들리는 거예요. '너 신학교에 가면, 신학생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지? 네 딸 분유 살 돈도 없을 거야..' 뭐 이런 음성도 들리고
'그리고 너희가 노숙자가 돼서 길거리에 나앉을 수도 있어!' 뭐 이런 음성이 들리는데, 어떻게 신학교에 갑니까?
그래서 '하나님, 가난한 거 때문에 신학교에 못 가겠습니다.' 했더니 그건 저한테 은혜를 주셨던 거 같아요. 제 마음에 그냥 가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을 하나님이 주셨어요.
자고 깨어났더니 가난이 안 두려운 거예요. 이거 내 능력이 아닙니다. 저는 벌벌 떨고 도망 가고 싶고.. 이러했던 사람이에요.
근데 그냥 정신 나간 사람처럼, 자고 일어났더니 '가난이 안 무서워!' 이렇게 된 거예요.
그래서 제가 하나님한테 이렇게 기도 했어요. '이제 한국에 돌아가면 신학교에 가겠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가면 제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최광 선교사님은, 뭐 제 힘으로 자기 밥 먹기도 힘든 사람이고 해서 이제 가면 뭐 제 등록금 해결해 줄 사람도 없고 뭐 신학대학원에 가려면 추천서를 받아야 된다는데 뭐 나를 이쁘게 봐서 추천해 줄 사람도 없고...
그러나 일단 가겠습니다. 한국에 가서 내가 신학교에 들어가 지면 정말 하나님이 부르신 걸로 알고 가겠습니다.
해서 한국에 돌아와서 일주일만에 장신대 신학대학원에 입학을 해버렸어요. 그 당시에 장신대원에는, 몇 년씩 재수해서 입학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냥 단번에 입학이 되었습니다. '정말 은혜구나..!'
그렇게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암튼 이럭저럭 왔는데, 그런데 뒤돌아보니까
나를 순간순간 세워줬던 힘은, 내가 가졌던 지식도 아니었고요. 내가 가진 능력도 아니었고요, 십자가 였더라고요.
정말 사역에서 압박이 올 때 내가 좀 살겠다고.. 내가 좀 편해 보겠다고.. 이렇게 꼼수를 부리고 이렇게 제 몸을 사리면.. 나중에 결과가 더 안 좋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용기있게 앞으로 나가서, 비참해도 내가 직접 당하니까 그 뒤에는 부도 있고, 권세도 있고, 영광도 있고, 생명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저는 지금 누리면서 삽니다. 가난하지 않아요. 최광 목사님처럼 그렇게 가난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먹을 거 다 먹고요. 지금 뭐 신대원 때부터, 제가 이렇게 돈이 없어서 밥을 못 사 먹고 돈이 없어서 학교 가 보지 못했던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물론 뭘 쌓아 놓지는 않았는데, 늘 풍성하게 공급이 되더라고요.
근데 대신 이런 걸 얻었습니다. 다른 세상을 보는 눈, 다른 세상을 느낄 수 있는 마음...
제가 성경을 중국에서 배웠기 때문에 이런 게 아니고 십자가를 지는 것만큼 내가 자랐더라고요. 그리고 강해졌더라고요.
그러면서 이제 와서 뒤돌아보면 십자가를, 그때 중국에서 (성경통독 때) 시달렸던 그 악한 영은, 더 이상 나를 건드리지 못 해요. 굉장히 평안합니다.
십자가에는 고통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때는 아플지 모르지만 그 십자가 뒤에는, 진짜 평안이 있더라고요.
가정이 화목하고, 이웃들과 화목하고, 이웃이 나를 때려도 웃을 수 있더라고요. 강한 자가 되는 거죠. 그래서 이런 은혜를, 저는 십자가를 통해서 얻았어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탈북자 사역, 북한 사역 힘듭니다. 너무너무 힘들어요. 그런데 십자가를 지면 됩니다. 그게 능력입니다.
제가 여기 교회 성도님들 한데 뭘 가르치려고 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이 십자가의 능력을 함께 나누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 능력을 가지고.. 그런 능력이 우리 옆에 와 있습니다.
이 작은 저한테 이렇게 와 있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다 와 있어요. 우리가 붙잡지 않았을 뿐이더라고요.
그리고 그 십자가가, 어느 순간은 축복인데, 내가 계속 피하고 도망을 같더라고요. 그래서 십자가 그 뒷면에 있는.. 진짜 은혜, 하늘의 하나님만 줄 수 있는 은혜와 축복을 제가 (과거에 한 때) 누리지 못 했더라고요.
그래서 십자가 뒤에 하늘나라가 있습니다. 그 힘을 가지고, 오늘도 아프간 선교와 또 하나님의 나라를 감당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