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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은 죽 먹기 식 구원 받기'에 대한 성경 해석

LNCK 2022. 9. 27. 19:27

◈'식은 죽 먹기 식 구원 받기'에 대한 성경 해석           눅23:43          편집자 글


시중에 '구원 받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 식은 죽 먹기' 식의 이해가 널리 퍼져 있습니다.
누군가가 그렇게 말한 것을 듣고 배워서, 나도 그렇게 잘못 생각하게 된 거죠.
제 자신도 오래도록 그렇게 믿고 살아왔었습니다.

또 성경에 실제로 그런 오해를 불러 일으킬 만한 구절들이 종종 등장하기에
우리가 '식은 죽 먹기' 식으로 구원을 주거나, 받고 있습니다.

일단 여기에 코너(자리)를 만들어 놓고, 
'식은 죽 먹기식 구원'으로 오해될 만한 구절들을 찾아서, 하나씩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1. 십자가의 우편 강도가 쉽게 구원 받지 않았나요?

위 말씀과 관련해서 오늘은 제가 수년 동안 평소에 늘 마음 속에 가지고 있던 질문인
'십자가 우편 강도'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말씀을 잠시 묵상해 보았습니다. 눅23:43

뭐 영어자료도 두 세 편 찾아서 읽어보고 했는데도, 해석이 썩 내키지 않았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 말씀이 중요한 것은, 제 친구 중에도 젊어서 신앙생활 열심히 하시던 분이
지금은 수 십 년째 '방학'을 하고 계신데 
그 분이 알고 있어서 가끔 하는 말씀이 
'우편 강도가 죽기 바로 직전에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지 않았느냐?
그가 낙원에 갔지, 지옥에 갔다고 했느냐?' 하면서, 자기는 죽기 전에 예수님께 돌아와서 
구원 받고 낙원 천국에 가겠다고 .. 평소에 그런 생각을 갖고 있고, 그래서 안심하는 것 같아요.

예수님 말씀이 틀리지 않으므로.. 뭐 맞는 말씀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구원 받기가 이렇게 쉬우면.. 성경의 다른 부분들과도 일치가 되면 좋은데..
다른 곳에는, 또 구원 받기가 쉽지 않고 어렵다고 나오거든요..

여기서 한 가지 오해는 '구원은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자기가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아주 큰 오해입니다.

구원의 주체는 '내'가 아니요, '하나님'이세요.
미련한 다섯 처녀가 구원 받고 싶어서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나는 너희를 모른다'고 하셨죠. 마25:12

그 다섯 처녀가 구원 받기 싫어서 못 받은게 아니잖아요. 문을 세게 두드릴 정도로 열망했습니다.
내가 받고 싶어도, 주님이 안 주시면 못 받는 것입니다. 

내가 하버드 대학에 들어가고 싶다고, 다 입학시켜 주는 것은 아니잖아요.
물론 내가 원해야 하지만, 입학허가서가 주어져야 입학이 가능합니다.

제 친구 가운데, '나는 죽기 전에 우편 강도처럼 그제야 주님께 돌아와서 천국 가겠다'고 말하는 자는,
'내가 원하기만 하면, 나는 언제든지 하버드 대학에 입학 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것과 같죠.
턱없는 생각입니다. 천국은 내가 원하기만 하면, 100% 다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누가복음에 나오는 우편강도는.. 입학 허가를 받았어요.
그는 진심어린 회개도 했고,  *눅23:40~41 
신앙의 진정성이 주님께 용케도 받아들여 졌나봐요.  *눅23:42

그러나 '나는 죽기 전에 예수 믿고 신앙생활 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때 정말 신앙의 진정성을 갖게 되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그때 내 믿음이 주님께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 못합니다. 가능성이 있기는 해요.

그때 내가 머리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인정할 수 있어도, 
(우편 강도처럼 회개도 하고) 진정성 있는 신앙을 그때 가지게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이고, 모두의 희망입니다.
그러나 우편 강도처럼, 그게 그때 그 사람에게도 적용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때 아무리 천국 문을 두드려도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는 응답을 받기가 99배로 쉬울 것입니다.
1%의 가능성은 열어두어야죠.



◑2. 놋뱀만 쳐다보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데.. 구원 받기가 쉬운거 아닌가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8~9

쳐다 보기만 하면 산다(즉 구원받는다)고 했으니,
구원 받는 도리는 쉬운 게 아닌가요?
(그렇지 않다는 취지로, 이 민수기 21장 본문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요3:14-15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놋뱀 사건은 구속사적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미래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십자가 구속을 이루므로 그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실 것을 표적하는 사건입니다. 

천로역정 길 가운데서 불평 불만하다가
불뱀에 물려 고통을 당한 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보면 나음을 얻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방법으로 구원과 생명을 얻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놋뱀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에는 세 단계가 있습니다.

1) 첫째 단계는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민7절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와 모세를 향해 원망하며 범죄한 사실을 인정하고, 치료함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치료받을 수 없습니다.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는 것이 치료(구원)의 첫 단계입니다.

2) 두 번째 단계는, 중보자의 기도입니다.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7b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뱀에 물려 온 몸이 퉁퉁 붓고 죽게 될지도 모르는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약으로도 해결될 수 없는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가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모세가 중보자입니다.

모세는 우리 중보자로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디모데전서 2:5절에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했습니다.

3) 세 번째 단계는,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하늘과 땅 사이에 놋뱀을 장대에 달아서 세워놓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8~9

힐끔 쳐다보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슬쩍 쳐다보았다는 뜻도 아닙니다.
모세의 말을 듣고, '놋뱀을 쳐다보면 산다는 믿음으로', 간절히 쳐다본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에 장대에 매달린 놋뱀을 바라보듯이, 신약에도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권면이 곳곳에 나옵니다.
'주의 영광을 바라보기'  고후3:18                        ☞<바라보는 신앙> 관련 설교 모음>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12:2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3:1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는데, 믿음이란.. 다른 말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영어로 그저 look, see (쳐다보다)는 뜻이 아니라,
-gaze, contemplate (응시하다, 깊이 생각하다)는 뜻입니다.  

지금 본문 민21장 시점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지 약38년 가량 지난 시점입니다.
그들은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를 받았다'는 말씀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신21:23

물론 불뱀에 물린 자들이, 아직 그리스도의 실체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지는 못했겠지만,
적어도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를 받았다', '저 놋뱀은 저주 받은 거구나' 정도는 묵상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놋'은 심판을 상징합니다. 계1장에 예수님의 발이 놋인데.. 강한 놋쇠 발로 짓밟는 심판주를 의미)

나아가 '누가 내 대신 저주를 받음으로써, 내가 치료(구원)되는구나..' 까지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바라보며 묵상했을 것입니다. 

그거 깨달아라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장대에 놋뱀을 매달라고 한 것이지,
그런 구원의 원리를 하나도 깨닫지도 못 한채
-무슨 부적처럼, 놋뱀만 쳐다보면 낫는다는 것도 아니고 (그런 부적은 깨트려버렸죠. 느후스단 왕하18:4)
-시키는 대로 꼬박꼬박 순종하면, 치료된다는.. 지금 '순종에 대한 교훈'을 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무슨 인생문제 해결에 대한 비법을 가르쳐 주시는 것도.. 이 사건을 주신 목적이 물론 아닙니다.

예수님은 요3:14~16절에서 '놋뱀 사건'을 두고, 구원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4~15

그러므로 신약에 의거해서, 구약 본문을 해석하면
지금 민21장의 '놋뱀 사건'은, 하나님이 구원에 대해 설명하시는 것이 목적이고,

그 '믿음을 통한 구원의 원리'를 어느 정도라도 믿고 깨달은 사람들이.. 치료(구원)을 받은 것이지, 
아무 것도 깨닫지도 못한 채, 즉 대속자(놋뱀)에 대한 믿음을 가지지도 못한 채
그저 이상하거나 신기한 조각물체(놋뱀) 한 번 힐끔 쳐다보았다고
그들이 치료(구원)받은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문 민21장에, 이런 내용까지 상세하게 기록된 것은 아니지만, (모세는 본문처럼 간략하게만 설명 안 했을 것임)
신구약을 전체로 볼 수 있는 오늘날 우리들의 특권을 통해서
본문을 역추적해서 해석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하나님은 '불뱀-놋뱀 사건'을 통해서, '믿음으로 구원 얻는 도리'를 가르쳐주기 원하셨고,
불뱀에 물린 백성들은 '그 도리를 깨닫고 믿은 자들이' 구원(치료)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뭐 하나님의 '신비한 기적'을 보여주시기 위한 목적도 아니요, 마술쇼가 아닙니다.
뱀에 물려 죽어가는 자들을 고치시고 살리시는 '신유 사역'을 보여주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본 사건을 해석하셨듯이 '구원 사역'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목적대로 '믿음으로 놋뱀(저주받으신 그리스도를 예표)을 gaze, contemplate, believe 한 자들은
다 구원받았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구원받았던 찰스 스펄전  주1)



◑3.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지 않았나요?
이렇게 구원 받는 게 쉽다고 성경에 나와있지 않는가요?

로마서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여기서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은, 당시 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 초대교회 정황상
상당히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시인하는 것인데요..

예를 들어, 로마서 기록 시기 (AD56~58)는
아직 네로의 핍박 이전이지만,   (AD65~)
기독교인에 대한 핍박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야고보서에 보면, 당시에도 기독교인들이 핍박으로 흩어진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핍박이었던 것으로 추측합니다. (행8:1,  AD32~33년경)

그래서 '입으로 시인한다', 즉 '입으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시인하는 것은
'나는 그리스도인 이다' 는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것으로서,
자기 목숨 걸고 하는 신앙고백이었습니다.

그 결과, 유대교 회당에서 출교를 당함은 물론이요,
자기 직장이나 생활터전을 빼앗길 수도 있었으며,
그래서 소아시아나 로마제국 각지로 흩어져 난민 생활을 할 수도 있었으며
그렇지 않으면 붙잡혀서 감옥에 가거나, 심하면 순교를 당할 수도 있었던 거죠.

그러니 롬10:13절,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이 말씀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식은 죽 먹기식 구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실 네로 황제 이후로, 로마제국 전역에 기독교인에 대한 핍박이 시작되었는데,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은 황제를 주로 섬기지 않고,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니까..
한마디로 시국사범이요, 정치범이며, 로마제국에 대한 반체제 인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일례로, 북한에서는 '내가 예수 믿는다'고 시인하면 목숨을 내놓는 위험한 일인데,
초대교회 당시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내 입으로 시인하는' 일은.. 마치 북한에서 내 입으로
'나는 예수 믿습니다' 하고 공개 선포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초대교회 당시에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그럼 마음속으로만 주님을 믿으면서, 자기 신앙을 숨기고 있으면 괜찮겠네요.
그것도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래 말씀 때문입니다.

마10:32~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4. 요한복음에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말씀하지 않았나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쉽게'" 구원 받는 것 아닌가요?
  
요5:24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3:16절도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식으로 쉽게 말씀하고 있고,
롬1:17절에도 '믿으면 의롭게 된다'고 쉽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만 '믿음이란 무엇인가?'는 '믿음의 정의'를 자세히 살펴봐야 되겠지요.
회개와 변화가 빠진 믿음은.. 가짜 믿음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위 구절에 '믿음'은 회개와 변화가 포함된 믿음이라고 봐야 되죠. 성경 전체로 볼 때!)

그런데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에서는.. 요한복음과 달리
또 구원받는게 그렇게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마3:2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막6:12

쉽게 말해서, 마태복음은 '회개'를 강조하고, 열매를 강조합니다. '어려운 구원'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라도 구원을 얻지 못한다,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마7:21

이렇게 마태복음(어려운 구원)과 요한복음(쉬운 구원)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마태복음은.. 수신자가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있고, 구세주 메시야도 믿고 있죠. (예수가 메시야인줄은 몰랐지만)

쉽게 말하면, 그들은 칭의구원은 받았다고 보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어 의롭다 함을 받았듯이'
이제 그들 유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성화구원 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의 내용이 어렵고, 까다롭고, 상당히 수준이 높습니다. '하나님처럼 온전해야' 됩니다. 마5:48

그러나 요한복음의 수신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제우스나 다른 자기 민족 신들을 섬기고 있었겠죠.
그들에게 사도요한은 '먼저 하나님을 믿어라'는 식으로, 칭의구원을 전파한 것입니다.

바울의 로마서는 1~4장은 칭의구원이라면
5~8장은 성화구원을, 바울이 가르쳤습니다. 두 측면을 다 가르친 것이죠.

그리고 바울의 옥중서신(엡, 빌, 골, 몬)이나 목회서신(딤전후, 딛) 등에 보면
바울은 칭의구원 보다는, 성화구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수신자들이 이미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이었거든요.

그러므로 오늘날 칭의구원만 가르치고 전파하는 것은, 성경의 아주 일부분만 가르치는 것입니다.
온전한 구원을 전파하려면, 처음에는 (요한복음처럼) 칭의구원을 가르치더라도,
그 이후에는 (마태복음이나 바울서신처럼) 성화구원까지 가르쳐야 하는 것이죠.

칭의구원은 .. 어찌보면 쉽습니다. (그러나 회개, 변화까지 동반하는 믿음이라면 이것도 쉽지 않죠)
성화구원은 .. 어렵고, 상당한 성숙의 기간도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쉽다'고 가르치는 것은.. 칭의구원만 가르치는 것이고,
그것도 온전한 칭의구원이 아니라, 회개와 삶의 변화가 빠진, 함량 부족의 칭의구원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계속 연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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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그리스도를 바라봄"을 통해 거듭난 찰스 스펄전
스펄전은 1850년 1월 6일 확실히 거듭남을 경험하기까지      *당시 만15세 
그는 많은 내적인 방황과 고뇌를 겪었다.
 
"나는 젊었을 때, 약 5년간의 심히 괴로운 시기, 즉 암흑기를 지낸 일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절실히 느끼고 있다면,
나는 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나도 그와 같은 느낌을 가진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자신을 살펴볼 때, 그는 하나님을 거스리는 패역무도한 죄인이었다.
(당시 청교도 서적 많이 탐독해서, 죄를 지적하는 내용을 많이 접했던 이유인듯)
결국 그는 그 자신을 율법 가운데로 인도해 주는 모세를 만났다.
하나님의 선한 법, 곧 십계명에 부딪히는 일이 자주 있었다.
 
십계명을 대하고, 그것을 자신에게 비추어 보았을 때,
지극히 거룩하신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자신은 확실히 죄인임을 알게 되었다.
 
그 때 그의 마음은 빛을 잃은 태양과 같았고,
그가 지은 죄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만이 존재하는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말았다.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성경 말씀을 찾아보았지만
이렇다 할만한 해답을 받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의 마음은 더욱 더 답답해갔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이 없었다.
여러 가지 이론을 꾸며 가며, 그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선민의 특권을 가졌다는 확신을 가지려고 했지만
그 노력은 헛수고였으며, 그 확신은 자기 것이 될 수 없었다.
 
그는 확실히 복음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 너무도 답답해서
콜체스터의 모든 교회들을 찾아가 뭔가 해답을 얻기를 원했으나,
어떤 설교자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어찌하면 구원을 얻을까?’ 하고 고민하고 있던 그에게는 결코 도움이 되질 않았다.
인간 행위의 열심 만을 강조하는 내용들이었다.
설교가 끝날 때는 '좋은 말씀 잘 들었다' 하는 생각뿐이지,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스펄전은 당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여전히 주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이렇게 고민에 빠져 있던 스펄전에게, 전 생애를 바꾸어 놓는 순간이 다가왔다.
1850년 1월 6일, 우연히 들른 교회에서
어느 평신도의 설교를 듣고 구원을 받은 것이다.
 
스펄전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쓰고 있다.
"요즈음 그 때를 가끔 생각하는데,
만일 그날 아침 그처럼 대단한 눈보라가 치지 않았더라면
난 지금까지도 암흑 속에서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날 아침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길이 막혀 버렸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자기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보잘것없는 조그만 감리교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예배당에는 20여명 채 못되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으며, 목사도 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한 초라한 사람,
아마 양복점 직공이거나 구두 수선공처럼 보이는 이가 강단에 올라갔다.
 
그 사람의 설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 본문을 외어대는 것이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준비된 원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본문은 '땅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간절히 바라보라, 기대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는
이사야 45:22절이었는데,    -
    
스펄전은 그 작고 초라한 예배당에서
목사도 아닌 집사의 설교에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친애하는 여러분! 이 말씀은 매우 간단합니다. 여기에 '앙망하라'고 하였습니다.
앙망한다는 것, 즉 바라본다고 하는 것은 결코 어렵거나 힘이 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보기 위해서 한다리를 들거나, 손가락을 움직일 필요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보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대학 같은 곳에 다니거나,
고등교육을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어린 아이도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여러분은 모두 자기 자신만을 바라봅니다.
봐야 아무 소용도 없는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고 자신의 문제가 해결됩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를 보십시오. 지금 당장 그를 바라보십시오!"
 
힘을 주어 말씀을 전하던 그 사람은, 한 순간 숨을 돌리고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를 바라보라! 나는 십자기에 매달렸다. 나를 바라보라!
나는 핏방울을 떨어뜨리고 있다. 보라, 나는 죽어 장사되었다!
나를 바라보라! 나는 다시 살아났다. 나는 승천했다.
나는 아버지 오른편에 앉아있다. 나를 바라보라! 오오~ 나를 바라보라!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까지 말하고 난 그 집사는, 강당 바로 밑에 앉아 있던 스펄전을 바라보았다.
그는 스펄전을 향하여 ‘청년이여! 당신은 왜 그렇게 가련한 모습을 하고 있소?’ 라고 물었다.
스펄전은 무척 당황했다. 그 설교자의 한마디가 그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힘을 주어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 시간에 성경 말씀에 순종하면 당신은 구원을 받을 수 있소!".
"청년이여, 예수를 바라보시오! 지금 바라보시오!".
 
스펄전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다. 그리고 그 순간 예수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의 가슴에 꽉 차 있던 구름은 걷히고, 그의 영혼에 구원의 빛이 비추었다.
그는 진실로 그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감격에 넘쳐 구주의 귀하신 보혈과
단순하고도 명확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찬송하고 싶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지고 왔던 죄의 무거운 짐이
바로 나의 어깨 위에서 영원히 굴러 떨어져 버렸을 때,
그는 죤 번연의 천로역정에 나오는 순례자와 같은 환희에 도취되었다.
 
"이제야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말씀 안에 비밀을, 넓은 대지 위에서 어린아이처럼, 마음껏 환호성을 지르고 싶었다.
"주님! 십자가에서 그 모든 것이 해결 됐었군요. 나의 그 무거웠던 죄가 모두 다!"
 
스펄전은 거듭남의 체험에 대해,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뉘우침의 포도주 통에서 짜낸 포도주는 실로 값진 것입니다.
회개의 광산에서 채굴한 금이야말로 정금인 것입니다.
깊은 고통의 동굴에서 발견된 그러한 진주들이야 말로 참으로 찬란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죄를 받고 자기의 목에 오랏줄이 묶여 있었던 자는
죄사함을 받고서 구세주의 보혈로 깨끗이 씻겨져
그 분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될 때, 기쁨의 눈물을 흘릴 사람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