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서로 다른 상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질 상급은 생명책 옆에 있는 또 다른 책, 곧 ‘행위의 책’에 따라서 받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 그리고 우리의 행동 하나 하나가 모두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행위의 책에 기록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다.
그것을 생각하시면서 오늘도 좋은 생각들을 많이 하시고 좋은 말씀들을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거룩한 행위, 성결한 삶,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들을 많이 하셔서 이 다음에 의로우신 재판장인 하나님 앞에 서셨을 때 큰 상급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작은 뿔에 대한 심판 단7:11-12
▲7:11 그 때에 내가 그 큰 말하는 작은 뿔의 목소리로 인하여 주목하여 보는 사이에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그 시체가 상한 바 되어 붙는 불에 던진 바 되었으며
"그 때에 내가 그 큰 말하는 작은 뿔의 목소리로 인하여 주목하여 보는 사이에." 다니엘은 하늘나라의 광경을 보는 동안에, 잠깐 동안 작은 뿔에 대한 생각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은 뿔은 그에 대한 무서운 심판이 하늘나라에서 준비되고 있는데 그것도 모른 채 계속해서 "큰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작은 뿔이 하는 "큰 말"이란 무엇입니까? 2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입니다.
참람한 말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다는 뜻입니다.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말로 성도를 핍박하는 것입니다.
지금 무서운 불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작은 뿔은 계속해서 큰 말, 참람한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작은 뿔을 가만히 두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심판하십니다. 보세요. 드디어 작은 뿔에 대한 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짐승은 네 번째 짐승을 말합니다.
"그 시체가 상한 바 되어." 짐승의 몸도 역시 멸망당했습니다. 여기서 짐승의 몸이란 무엇을 상징하겠습니까?
우리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합니다.
마찬가지로 짐승으로 표현되는 사단의 세력에 추종하면서 그의 종노릇을 하는 자들을 “짐승의 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자들은 결국 어디에 던진바 되었다고 했습니까?
"붙는 불에." 지옥 불에 던짐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막9:48에서 예수님은 그 불이 영원토록 꺼지는 법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계21:8에 보면 지옥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유황에서 나오는 독가스가 또한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악인들은 그곳에서 세세 무궁토록 밤낮 없이 고통을 당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으려고 해도 죽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끔찍한 곳이 지옥입니다.
▲7:12, 그 남은 모든 짐승은 그 권세를 빼앗겼으나 그 생명은 보존되어 정한 시기가 이르기를 기다리게 되었더라
"그 남은 모든 짐승은." 이는 네 번째 짐승 이전에 있었던 모든 짐승들을 뜻합니다. 즉 사자, 곰, 표범같이 생긴 짐승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권세를 빼앗겼으나." 먼저 바벨론이 나라의 권세를 빼앗겼습니다. 메대와 바사가 권세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메대와 바사도 권세를 빼앗겼습니다. 그 권세가 헬라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헬라도 권세를 빼앗겼습니다. 로마가 권세를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전의 짐승들은 그 권세를 모두 빼앗기게 된 것입니다.
"그 생명은 보존되어 정한 시기가 이르기를 기다리게 되었더라." 이 말씀의 뜻은 이러합니다. 바벨론이 그 권세를 빼앗겼지만 바벨론의 사람들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대로 메대와 바사에 흡수되었습니다.
또 메대와 바사도 나라의 권세는 빼앗겼지만, 그 나라 백성들은 없어지지 않고 대부분 헬라 제국으로 흡수되었습니다.
다니엘서 2장에 나오는 장면으로 이 말씀의 뜻을 풀이해 봅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이 꿈에 거대한 신상을 보았습니다. 네 부분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그 신상을 부숴뜨렸습니다.
그때 돌이 먼저 머리 부분을 부수고, 그 다음에 차례대로 팔, 배, 다리 등을 부숴뜨린 것이 아닙니다. 돌은 철과 흙으로 된 발 부분을 부숴뜨렸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머리, 팔, 배, 넓적다리가 한꺼번에 부서져 버렸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 날 그리스도께서 다시 이 땅에 임하실 때 한꺼번에 악인들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악인들은 잠시 잠깐동안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그날, 모든 악인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는 영원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만이 영원한 것입니다. 이 땅에서 악인들이 형통하다고 해서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잠시 잠깐입니다. 준엄한 불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또 이 세상에 살면서 핍박당하고, 고난을 당한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너무 괴로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도 잠시 잠깐인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 우리가 앉을 왕좌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빛나는 면류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새벽마다 단잠을 깨우시면서 주님 앞에 나오시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빛나는 면류관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을 생각하시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은 잠시 잠깐입니다. 힘들고, 어렵다할지라도 주님을 위해서 더욱더 눈물을 흘리시고 주를 위해서 즐겁게 고난 당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단12:3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 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어떤 사람을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춘다고 했습니까?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즉, 죽어 가는 자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자가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춘다고 했습니다. 이른바 스타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변에 복음을 듣지 못해서 죽어 가는 심령들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을 쓰십시다. 그러면 우리가 하늘 나라에서 스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에는 기적이 없습니다. 전하지 않는데 어떻게 듣고, 듣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누군가가 전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나와 있는 것도 누군가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천사가 꿈에 나타나 복음을 전해주어서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통해서 복음을 전파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할 막중한 사명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스타와 같이 빛날 수 있는 아름다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천사도 흠모하는 일입니다. 입을 여십시다. 복음을 전하십시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들의 승리 단7:13~18
▲7:13,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위 말씀은 다니엘이 본 첫번째 이상 가운데 가장 영광스러운 장면입니다. 이상의 절정이 되는 부분입니다.
다니엘이 이상 가운데 참으로 감격스럽고, 황홀한 장면을 보았습니다. 무엇을 보았습니까?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내가 또"라고 했습니다. 이상이 계속 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밤 이상 중에." 밤이 캄캄하면 캄캄할수록 하늘의 별은 더욱더 선명하게 빛납니다. 마찬가지로 다니엘이 이상을 볼 때는 밤이었습니다. 주변이 캄캄했을 때였습니다. 그러니 그가 본 이상이 얼마나 분명하고, 또 확실하게 나타났겠습니까?
"인자 같은 이가." 사람의 모습을 하신 분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사람과는 다릅니다. 사람 그 이상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사람은 하늘 구름을 타고 다니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분은 하늘 구름을 타고 오셨습니다. 그러면 이 분은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예수님입니다.
우선 우리 예수님은 스스로를 인자라고 종종 칭하셨습니다. 한 예로 우리가 잘 아는 막10:45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또 우리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오르신 것처럼 장차 구름을 타고 다시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 악인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또 택하신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만왕의 왕 되신 예수님의 모습과, 세상나라 왕들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나타나지요? 예컨대 세상 나라의 왕들은 무엇과 같다고 했습니까? 짐승과 같다고 했습니다.
사자 같고, 곰 같고, 표범 같으며 네째 짐승은 이름을 알지 못할 정도로 무섭고 놀라운 모습을 한 짐승과 같다고 했습니다.
반면 우리 예수님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인자와 같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모습을 하셨습니다.
또 짐승들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3절에 보면 바다에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하늘에서 오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이 땅에 속하신 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 계셨던 분이십니다. 하나님이신 우리 예수님이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자신을 대속물로 주시기 위해서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다시 구름을 타시고 이 땅에 오실 때, 악인들은 심판하시고 의인들은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어떤 모습으로 오십니까?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께 나아와, 그 앞에 인도 되셨습니다.
무엇을 하시기 위해서 입니까? 1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7: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성부 하나님께서 아들 되신 예수님께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셨습니다.
권세와 영광과 나라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우리가 주기도문을 외울 때,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고 외우지요?
성부 하나님께서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성자 예수님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만왕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단3:7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이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자 곧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금신상에게 엎드리어 절하니라"
세상 사람들이 헛된 금신상을 섬겼습니다. 지금도 헛되게 부처, 알라를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 되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사신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많은 사람 가운데에서 우리를 택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만왕의 왕 되신 우리 예수님은 참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섬기게 하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예수님이 구름 타고 다시 오실 그때에 헛된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은 적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토록 불못에 던지움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시는 그 날에 우리의 몸은 홀연히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는 공중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우리를 위해 예비된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것입니다. 빛나는 면류관을 받아 쓸 것입니다. 그곳에는 우리가 앉을 왕좌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왕좌에 앉아서 수많은 천사들의 수종을 받으면서 영원토록 왕 노릇을 할 것입니다. 우리는 조금도 오염되지 않은 맑은 생명수 시내로 우리의 목을 축일 것입니다.
또 다달이 새로운 열매를 맺는 아름다운 생명나무의 실과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황금 보석으로 만든 집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면서 살 것입니다.
여러분! 영광스럽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구속의 은총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짐승의 권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12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남은 모든 짐승은 그 권세를 빼앗겼으나." 짐승의 권세는 일시적입니다. 영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의 권세는 영원합니다.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않을 것이니라." 세상 나라는 다 폐합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나라는 영원히 폐하지 않고 든든히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주신 영원한 나라에는 새 예루살렘 성이 있습니다. 그 주변에는 성곽이 있다고 했습니다. 문은 동편에도 세 개, 서편에도 세 개, 남편에도 세 개, 북편에도 세 개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 성에는 동서남북 어디에서든지 다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이 다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한국말을 하는 사람도 들어갈 수가 있고, 영어를, 러시아말을 하는 사람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는 자는 다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문에는 구약의 열두 지파의 이름이 적혀있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기초석에는 신약의 열두 사도의 이름이 적혀있다고 했습니다.
구약의 성도이든지 신약의 성도이든지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린 양의 피의 공로로 그곳에 들어가 사는 것입니다.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고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저 영화로운 새 예루살렘 성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영광 가운데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우리 예수님의 은혜로우신 모습을 그리면서,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7:15, 나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며 내 뇌 속에 이상이 나로 번민케 한지라.
"나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며." 다니엘이 이상 가운데 무서운 광경들을 보았습니다. 그로 인해 다니엘은 중심에 근심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짐승들에 의해서 당하게 될 성도들의 고난, 핍박 등을 생각하면서 이스라엘의 운명을 걱정했던 것입니다.
"내 뇌 속에 이상이 나로 번민케 한지라." 특별히 네째 짐승은 아주 무섭고 놀라운 모양이었습니다. 다니엘이 한번도 과거에 본 적이 없는 짐승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그 짐승의 이름조차도 기록할 수가 없었습니다.
네 번째 짐승의 머리 위에는 열 개의 뿔이 있었습니다. 잠시 뒤에 열한 번째의 뿔이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뿔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뿔은 점점 자라서 기존에 있던 세 뿔을 뿌리채 뽑아버렸습니다. 그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이 달려 있었습니다.
아울러 그 작은 뿔에는 입이 있어 큰 말도 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참람한 말이었습니다. 다니엘은 그 이상의 뜻을 생각하면서 번민하게 되었습니다.
▲7:16, 내가 그 곁에 모신 자 중 하나에게 나아가서 이 모든 일의 진상을 물으매 그가 내게 고하여 그 일의 해석을 알게 하여 가로되
※본문 7:2~14절 말씀까지는 다니엘이 본 <이상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15~27절까지는 천사가 다니엘에게 이상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이 이상 가운데 본 짐승은 "왕" 또는 그가 다스리는 "나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왕이 없는 왕국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아울러 왕국이 없는 왕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짐승은 "왕," 또는 그가 다스리는 "나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의 이상 가운데서 네 큰 짐승은 한꺼번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차례대로(순차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나라와 그것을 다스리는 왕의 권세가 영원치 못하다는 사실을 뜻하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임금의 권세가 영원했습니까? 아니었습니다. 바사의 고레스 왕의 권세가 영원했습니까?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헬라의 알렉산더 왕의 권세가 영원했습니까? 로마의 시자의 권세가 영원했습니까? 아니었습니다. 모두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이 형통하다고 해서 부러워하지 마십시다. 잠시 잠깐입니다. 장차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당하는 고난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시 잠깐입니다. 우리의 고난은 반드시 끝날 때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롬8:18에서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고난은 일시적이지만 영광은 영원합니다. 고난은 경한 것이지만, 우리에게 주어질 영광은 중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너머에 있는 영광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7:18,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영원하다는 말을 몇 번 썼습니까? 뜻을 강조하기 위해서 세번씩이나 반복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메시야의 나라, 그 영원한 나라에서 왕이 될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세세 무궁토록 다스리면서 왕노릇 하면서 살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가 왕좌에 앉아서 천사들을 다스리면서 영원토록 왕노릇을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잠시 잠깐은 환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핍박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요16:33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이미 우리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승리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에게 이미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이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편지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 편지 가운데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계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먹게 하리라."
계2: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계2:17, 계2:26, 계3:5, 계3:12, 계3:21의 말씀입니다. 성도는 다 이기는 자가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기는 자에게 주어질 승리와 영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기는" 자가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을 수 있습니다. "이기는" 자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습니다. "이기는" 자가 만나와 흰 돌을 받습니다. "이기는" 자가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얻습니다.
"이기는" 자가 흰 옷도 입습니다. "이기는" 자가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됩니다. "이기는" 자라야 하나님의 보좌에 함께 앉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들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택하신 백성인 우리들이 이 땅에서도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행복을 깨뜨리고자 하는 자가 있습니다. 누구겠습니까? 마귀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유혹합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기쁨과 평강을 빼앗아 가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귀의 시험에 당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겨야 됩니다. 욥의 아내처럼 조금 고난을 당한다고 해서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불평하고 원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고난은 잠시 잠깐입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요한계시록에서 약속된 그 모든 것이 주어집니다. 우리 주께서 이미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는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모든 시험과 고난을 믿음으로 다 이기고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세 때 반의 대환난과 성도의 최후 승리 단7:19~21 ▲7:19 이에 내가 네째 짐승의 진상을 알고자 하였으니 곧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고 그 이는 철이요 그 발톱은 놋이며 먹고 부숴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았으며
“이에 내가 네째 짐승의 진상을 알고자 하였으니” 다니엘은 자신이 이상 가운데서 보았던 네 짐승들 중에서 특별히 마지막 네 번째 짐승의 진상에 대해서 알고 싶어했습니다. 그 이유가 19절 에 나옵니다.
"곧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넷째 짐승은 다른 짐승들과 달랐습니다.
첫째 짐승은 사자와 같았습니다. 둘째 짐승은 곰 같았습니다. 그리고 셋째 짐승은 표범 같았습니다. 그런데 넷째 짐승은 그 이름조차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그 짐승의 특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심히 무섭고." 과거에 본 적이 없는 엄청나게 무서운 모습이었습니다.
"그 이는 철이요." 이빨이 철로 되어 있었습니다.
7:7에 보면 "큰 철 이가 있어서"라고 했습니다. 짐승의 이는 철로 되었을 뿐 아니라, 크다는 것입니다.
또 발톱은 무엇으로 되어 있었습니까? 놋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넷째 짐승에게는 큰 철 이가 있고, 발톱도 놋으로 되어 있었으니까, 얼마나 강했겠습니까?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나머지를 발로 짓밟았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잔혹하고 사나운 모습이었겠습니까?
넷째 짐승은 로마제국을 상징했습니다. 로마제국이 다른 나라를 잔혹하게 정복해 나가는 모습입니다. 로마제국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졌던 나라였습니다.
▲7:20 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외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동류보다 강하여 보인 것이라
"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이것은 로마제국이 나중에 열 나라로 갈려질 것을 상징합니다. 성경에서 열이라는 숫자는 충분한 수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뜻을 정하고서는 왕이 주는 진미와 포도주로 자신들의 몸을 더럽히지 않고 그 대신 채식을 먹고 물을 마셨습니다. 3년동안의 훈련 기간이 지났습니다. 왕 앞에 나아가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때 다니엘과 세 친구의 지혜와 총명이 다른 동료들보다 몇 배나 뛰어나다고 했습니까? 열 배였습니다.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라는 말씀은 로마제국이 장차 충분히 많은 나라로 갈려질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로마제국이 지나가고 난 뒤에 지금 세계가 엄청나게 많은 나라들로 갈려 있지 않습니까? (*지금도 세계여사는 로마제국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과거처럼 어느 한 나라가 세계를 다스리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 외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여기서의 다른 뿔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작은 뿔입니다.
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열한 번째 뿔은 처음에는 작았습니다. 이 작은 뿔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습니까? 마지막 때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입니다.
성경에 보면 작은 뿔을 여러 가지로 표현을 했습니다.
살후2:3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여기서 작은 뿔은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요일2:18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줄 아노라."
여기서는 작은 뿔이 적그리스도로 표현되었습니다.
네가지로 이 작은 뿔의 모습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첫째, "세 뿔이 그 앞에 빠졌으며"라고 했습니다. 작은 뿔은 주변에 있는 다른 세 뿔들을 뿌리채 뽑아버렸습니다. 힘으로 정복을 했습니다. 그만큼 작은 뿔의 세력이 강하다는 말입니다.
둘째, "그 뿔에는 눈도 있고"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눈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적그리스도가 지력을 지니고 있음을 뜻합니다. 적그리스도는 그만큼 간교하고 영악합니다.
셋째로, "큰 말하는 입도 있고"라고 했습니다. 큰 말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 또 성도들을 핍박하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참람한 말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이 되겠다는 뜻입니다.
넷째로, "그 모양이 동류보다 강하여 보인 것이라"고 했습니다. 엄청나게 강해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나머지 일곱 나라도 결국은 작은 뿔인 적그리스도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되면 세계 모든 나라가 다 그에게 복종하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작았습니다’)
▲7:21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작은 뿔은 성도들을 핍박합니다. 고난을 줍니다. 왜요? 성도들이 작은 뿔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순교를 각오하고 적그리스도에게 대항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성도들을 핍박하지만,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허용된 기간에 국한된 것입니다.
7:25의 말씀을 보십시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그때만 괴롭히고 핍박을 하는 것입니다. 세 때 반의 핍박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7:22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주권자인 하나님, 세상의 역사를 홀로 주관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오신다는 것입니다.
오셔서 어떻게 하십니까?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괴롭히고 핍박하던 적그리스도와 그를 추종하는 자들을 영원토록 꺼지지 않는 불못에 던져 버리실 것입니다.
아울러 핍박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충성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빛나는 면류관을 상급으로 주실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다 갚아주시는 것입니다.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 성도들은 그때에 나라를 얻게 됩니다. 성도들은 영원한 그 나라에서 빛난 면류관을 쓰고서 세세 무궁토록 왕노릇하게 됩니다. 이것을 다니엘이 이상 가운데 보았습니다.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은 왕같이 귀한 분들입니다. 이 영광된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이 땅에서 잠시 잠깐동안 고난이 있고 핍박이 있다할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다.
주께서 허락하신 십자가를 기쁜 마음으로 지시고 끝까지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넷째 짐승의 모습 단7:23-25
다니엘이 이상 가운데 본 넷째 짐승에 관한 장면은 크게 세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 장면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의 모습 자체입니다. 무섭고 강한 모습이었습니다. 과거에 보았던 다른 짐승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큰 철 이를 갖고 있었습니다. 놋으로 된 발톱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큰 철 이로 먹이를 먹고 부숴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짓밟고 있었습니다.
둘째 장면은 뿔에 대한 설명입니다. 짐승에게는 뿔이 열 개나 달려 있었습니다.
마지막 세번째 장면은 열한 번째 뿔에 관한 내용입니다. 그 뿔이 처음에는 작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라서 기존에 있던 세 뿔을 뿌리채 뽑아버렸습니다.
셋째 장면은, 그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달려 있었습니다. 또 ‘큰 말’을 하는 입도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네째 짐승의 특이한 모습에 대해서, 천사 가브리엘에게 그 진상을 물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설명하는 것이, 본문 단7:23~25의 내용입니다.
▲7:23,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네째 짐승은 곧 땅의 네째 나라인데 이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며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하나님을 모시고 있으니까 천사이겠지요. 그 천사의 이름은 가브리엘이었습니다.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무엇이라고 설명을 하는지 보십시다.
"넷째 짐승은 곧 땅의 넷째 나라인데." 이 나라는 어느 나라를 뜻합니까? 로마입니다.
"이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기존의 다른 나라들과 다르다고 했습니다. 바벨론과도 다르고, 메대와 바사와도 다르고, 헬라와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과거 그 어느 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 세력이 엄청나게 크다는 뜻이죠.
로마는 그 큰 세력으로 "천하를 삼키고"라고 했습니다. 짐승이 먹이를 삼키듯이 로마는 온 천하를 다 점령했습니다.
"밟아 부숴뜨릴 것이며." 로마제국이 천하를 자기 발아래 정복한다는 것입니다. 이상이 바로 첫째 장면입니다.
▲7:24,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둘째 장면은 열 뿔에 대한 광경입니다.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라."
로마제국이 지나가고 나면 세상이 여러 개의 나라로 갈려집니다. 여기서 "열"이라고 하는 것은 만수(가득 차다, 滿數)로서 "굉장히 많다"는 뜻.
로마제국이 천하를 통치하고 나서, 그 뒤에 지금처럼 수많은 나라로 쪼개졌지 않습니까?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수많은 나라가 갈려져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상이 둘째 장면이었습니다.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셋째 장면입니다. 열한 번째 뿔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작은 뿔, 곧 적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적그리스도는 이전에 있던 왕들과는 다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탄의 권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히틀러가 사탄의 권세를 가졌다고 보죠) 자연히 그 세력이 막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자기에게 대적하는 열 왕 가운데 세 왕이니까 거의 1/3에 해당되는 나라들을 무력으로 정복시켜 버릴 것을 의미합니다.
그 나머지 7/10에 해당되는 나라들은 작은 뿔의 무서운 세력을 보고서는 대항하지도 못하고 스스로 복종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 때에는 적그리스도가 온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7:25,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적그리스도의 특징이 몇 가지로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적그리스도의 첫째 특징은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 즉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죠.
적그리스도가 왜 하나님을 말로 대적할까요? 사도 바울은 그것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살후2:3의 말씀입니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여기서 말하는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이 적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살후2:4의 말씀입니다.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적그리스도는 자기가 하나님이 되기 위해서 말로서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 세상에는 적그리스도의 노릇을 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마치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25절의 말씀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성도들을 핍박하고 괴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육체적으로도 괴롭게 하겠지만 또 다른 방법들이 있습니다. 바로 경제적인 억압입니다.
계13:16-17의 말씀입니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하면 먹는 음식들을 사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는 경제적으로 성도들을 핍박하게 될 것입니다.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현재의 달력에는 엿 새를 일하고 하루를 쉬도록 되어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안식하면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도록 되어 있는데 이것도 바꿔 버린다는 것입니다.
옛날 프랑스 혁명 때에도 일주일을 칠 일이 아니고 십 일로 바꿔 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9일을 일하고 하루를 쉬도록 한 것입니다. 성당에 못 나가게 하려고 한 거죠. 물론 실패했죠.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는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때를 바꾸면서 성도들을 핍박할 것입니다.
또 "법"도 변개코자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법도 무시해 버리고, 세상의 법도 무시해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기의 말을 법처럼 강요할 것입니다.
그래서 살후2:3에서는 적그리스도를 가리켜 "불법의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자기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는 자들을 무섭게 핍박할 것입니다.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성도들이 적그리스도의 손에 "붙인 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성도가 적그리스도에게 허용해 주시는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당연히 적그리스도 보다도 더 권세가 많으신 분이실 것입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들이 적그리스도에게 얼마동안 붙인 바 된다고 했습니까?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그러면 전부 다 몇 때입니까? 세 때 반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정기간 동안에만 성도가 핍박을 당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영원토록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정기간 동안입니다. 끝이 있습니다. 그러면 세 때 반은 얼마를 가리킵니까?
단12:7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자가 그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생하시는 자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세 때 반만 지나면 핍박도 끝납니다. 그때는 심판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큰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2:11절 말씀입니다.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 이백구십 일을 지낼 것이요."
세 때 반은 일천 이백 구십 일입니다. 3년 반입니다. 그러니까 3년 반 동안에만 핍박이 허용되는 것입니다.
(※‘세 때 반’을, 크게는 ‘교회 시대 전체’로 해석하기도 하고, 작게는 정말 3년 반처럼 ‘일정 기간’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둘 다 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성도들이 핍박을 당하도록 허용하시는 것입니까? 모두 우리를 위해서 입니다. 어려운 시련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금보다도 더 귀하게 단련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시련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더욱더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이 되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아울러 이 다음에 우리에게 더 큰 상급을 주시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핍박을 허용하시는 것입니다.
옛날 승동교회의 담임 목사님이셨던 김익두 목사님이 "줄 알라"의 신앙을 가지라고 설교를 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면, 면류관을 쓸 "줄 알라"는 것입니다. 고난을 이기면, 그 너머에 있는 영광을 받을 "줄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 때 반 동안의 핍박을 주시는 이유가 바로 우리를 높이 세워 주시고, 큰 상급을 주시고, 우리에게 빛나는 면류관을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줄 알라"의 귀한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이미 다 이겨 놓으신 싸움을 우리가 싸우는 것입니다. 어떠한 시련과 핍박이 있다할지라도 그것이 영원토록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 때 반으로 정해놓은 짧은 기간에 주어지는 고난일 뿐입니다. 그것을 생각하시면서 오늘도 주께서 우리를 붙들고 계신다는 확신을 가지시고 살아가십시다.
길을 걸어갈 때도 주님이 함께 하시고, 일을 할 때도 주께서 함께 하심을 잊지 마십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까지라도 다 세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고 지키시며, 우리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오늘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기쁜 마음으로 주님 안에서 복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세 때 반의 고난 단7장26-28
다니엘은 이상 가운데 하늘나라의 법정에 관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왕좌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이 왕좌들은 세세 무궁토록 왕 노릇할 성도들이 앉을 보좌들입니다.
그리고 한 가운데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습니다. 그 보좌에는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옷은 눈 같이 흰옷이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머리털은 양털 같이 희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와 그 바퀴는 타는 불이었습니다. 그리고 보좌에서는 불이 강같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보좌의 앞에는 천천 만만의 수많은 천사들이 시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근거가 되는 행위의 책들도 펼쳐져 있었습니다.
적그리스도와 그를 추종하는 악인들을 심판하실 하늘나라 법정의 광경을 다니엘이 이상 가운데 보았던 것입니다.
▲7:26, 그러나 심판이 시작된즉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끝까지 멸망할 것이요
"그러나 심판이 시작된 즉." 적그리스도는 세 때 반 동안에 온갖 권세를 행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들을 핍박했습니다. 때와 법도 변개코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세 때 반 동안에만 이루어질 뿐입니다.
드디어 적그리스도와 악인들을 향한 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세 때 반 동안 성도들을 핍박하고 또 참람한 말을 하던 적그리스도의 모든 권세가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끝까지 멸망할 것이요." 적그리스도는 철저하게 멸망을 당하여 두 번 다시 재기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이 꿈에서 신상을 보았습니다. 그 신상은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에 의해서 산산조각이 나버렸습니다.
마치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서 흔적도 없이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철저하게 망해버린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적그리스도와 악인들은 불과 유황으로 영원히 타는 못에 던지움을 당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그곳에서 타는 불은 영원히 꺼지는 법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막9:43
그러니 적그리스도와 그를 추종하는 악인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어떻게 됩니까? 물론 세 때 반 동안에 적그리스도로부터 말로 다 할 수 없는 핍박을 받을 것입니다.
왜 적그리스도가 성도들을 핍박합니까? 본질적으로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백성들인 성도들을 미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들이 적그리스도를 대항해서 싸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참람한 말을 하면서 자기가 하나님이 되겠다고 하는데 성도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적그리스도가 성도들을 괴롭히고 핍박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잠깐입니다. 결국은 어떻게 됩니까? 27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7:27,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가 다 그를 섬겨 복종하리라 하여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 바 되리니."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이,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를 얻게 된다고 했습니다. 성도들이 세세 무궁토록 왕 노릇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그의 나라, 곧 그리스도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모든 권세 있는 자가 다 그를 섬겨 복종하리라 하여." 성도들은 만왕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면서 그와 함께 영생 복락을 누리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7:28, 그 말이 이에 그친지라 나 다니엘은 중심이 번민하였으며 내 낯빛이 변하였으나 내가 이 일을 마음에 감추었느니라
"그 말이 이에 그친지라." 천사 가브리엘은 다니엘이 본 첫번째 이상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그 해석을 듣고 나서 다니엘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나 다니엘은 중심이 번민하였으며 내 낯빛이 변하였으나." 다니엘이 이상 가운데 여러 가지 충격적인 장면을 보았습니다.
무서운 네 짐승이 올라왔다가 사라지는 모습을 통해 열국의 흥망성쇠를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눈 같은 눈이 달려 있고 또 큰 말하는 입이 달린 작은 뿔도 보았습니다.
이 작은 뿔에 의해서 성도들이 세 때 반 동안에 핍박당하는 광경도 보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그런 광경들을 보면서 마음 속에 엄청난 번민과 고통을 느꼈을 것입니다.
"내가 이 일을 마음에 감추었느니라." 이때 다니엘은 나이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음 속에 계속해서 간직하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다니엘이 본 첫 번째 이상(단7장)은 끝이 났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상을 통해서 다니엘과 그 택하신 백성들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무엇이겠습니까?
역사를 움직여 나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벨사살 임금 때 첫번째 이상을 받았습니다. 단7:1
벨사살이 얼마나 사악한 왕이었습니까? 그러나 그의 손에 세상의 역사가 달려 있지는 않습니다.
역사를 움직여 나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나라의 흥망성쇠와 인간의 생사화복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이 사실을 다니엘에게 이상을 통해서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난 중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시기 위하여 다니엘에게 이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고난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무한한 것이 아닙니다. 세 때 반입니다. 잠시 잠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두시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찾아와 주십니다.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다시금 우리를 세워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세 때 반의 고난을 당하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우리의 고난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일시적입니다. 주님께서 반드시 찾아오십니다. 우리의 고난과 무거운 짐을 대신 맡아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실패를 성공으로 바꿔 주실 것입니다. 세 때 반이 지나면 주께서 우리의 모든 어려움을 신원해 주실 것입니다.
세 때 반 동안의 어려운 시련에 처해있다고 해서 너무 괴로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고난은 무한한 것이 아닙니다. 일시적인 것입니다.
끝까지 이기는 자에게 주께서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하루도 선한 싸움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