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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9:1~19 다니엘의 나라를 위한 기도

LNCK 2022. 10. 5. 10:52

◈다니엘의 나라를 위한 기도          단9:1~19           출처
 
다니엘서 후반부에는, 다니엘이 하나님께 받은
4개의 이상을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이상은 7장에 기록,
두 번째는 8장에
세 번째는 9장에 (9:20~27)
네 번째는 10장~12장까지 세 장에 걸쳐서 기술되고 있습니다.
 
 
◑단9장 1-2절 말씀과 기도
 
다니엘서 9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전반부는 1∼19절로서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입니다.
 
다니엘은 그의 기도 속에서 먼저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고,
아울러 자신과 민족의 죄를 회개하며, 나라를 위해서 간구했습니다.
 
우리는 다니엘의 기도 가운데서 본받아야 할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후반부는 20∼27절로서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의 기도에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응답해주십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칠십 이레에 대한 예언을 주셨습니다.
 
칠십 이레에 대한 예언은 성경 가운데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에 속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이 말씀을 붙들고 씨름하는 가운데,
나름대로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을 줄 압니다.
 
▲1~2절
1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단9:1∼2은 다니엘이 기도를 하게 된 배경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1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곧 그 통치 원년에"
 
바벨론의 벨사살 임금 때에 바벨론 제국은 드디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메대 사람 다리오’에게 나라가 넘어갔습니다.   *고레스 직전 왕
 
다니엘서 2장에 나타난 내용과 같이 느부갓네살 임금이 꿈에 보았던 신상의
금머리 시대는 지나가고,
그 대신 은으로 만든 두 팔과 가슴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메대-바사 시대
 
또한 다니엘이 7장의 이상 가운데 본 그대로,
사자같이 생긴 짐승이 곰같이 생긴 짐승에게 먹혀 버리고 만 것입니다.
아울러 8장에서 보았던 ‘두 뿔 가진 수양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우리가 메대 사람 다리오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단6장에서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 던지움을 당했습니다.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졌던 왕이 누구였습니까? 바로 메대 사람 다리오였습니다.
 
왜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 던지움을 당했습니까?
다니엘이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나있는 창을 활짝 열어놓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하루에 세 번씩 기도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를 할 경우에는
사자굴 속에 던지움을 당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왕명을 어겨가면서까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가 2절에 나옵니다.
 
9:2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기서 말하는 서책은 성경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벨론이 멸망하고 메대와 바사가 들어서면서 다니엘은
자기가 이상 중에 보았던 내용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직접 눈으로 목격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궁금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 민족의 장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부지런히 읽으며 묵상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주신" :2
다니엘은 자신이 읽고 있는 서책을
단순히 인간이 기록한 책으로 보지 아니했습니다.
 
그는 성경이 비록 인간의 손으로 기록된 책이지만,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확신했습니다.
 
다니엘은 여기서 하나님의 칭호를 무엇이라고 불렀습니까?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성호가 다니엘서에서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쓰여졌습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칭호 가운데 특별히 ‘언약적인 칭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그 말씀하신 바를 이루시며 성취하시는 하나님이란 뜻이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 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2
 
다니엘은 예레미야서를 읽으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칠십 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도록 정해놓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렘25:11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것을
예언했던 눈물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무한히 계속하는 것이 아니고
칠십 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한 뒤에 다시금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고
이스라엘 땅으로 되돌아 올 것을 예언했습니다.
 
렘29:10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칠십 년이 지나고 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금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오게 하실 것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렘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택하신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과 소망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재앙을 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인 우리가 평안하며, 소망 가운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고 소망을 주시되,
언제 그것이 우리에게 이루어집니까?
 
렘29:12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렘29: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칠십 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다가
다시금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 뜻은 언제 이루어집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할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 사실을 예레미야서를 읽는 가운데 깨달았습니다.
이것을 깨닫게 된 다니엘은 어떻게 했습니까?
 
다니엘서 본문으로 돌아가서 잠시 9: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다니엘은 자기가 기도할 때 왕명을 어긴 결과가 되어
사자굴 속에 던짐을 당하게 될 것을 알면서도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기도할 때 비로소 이루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중요한 교훈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기도할 때 무엇에 입각해서 기도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가 윗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윗사람의 의중과는 전혀 상관도 없이 내 할 말만 다하면
그 얼마나 무례한 사람입니까?
 
내가 말하기에 앞서서 윗사람의 말에 공손히 귀를 기울이고 경청해야지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기에 앞서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의중은 무엇인지
그것을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먼저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그저 내 육신을 위해서 간구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에 입각해서 기도할 때에 우리의 기도가 응답될 것입니다.
 
두번째로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기도할 때 비로소 이루어짐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에게 재앙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고, 또 우리의 삶이 젖과 꿀이 흐르는
소망스러운 삶이 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선하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노력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단9장 3-4절, 기도하는 자의 자세
 
▲3-4절,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4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다니엘은 하나님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주신 예언의 말씀을 읽는 가운데
깨달았습니다.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만에 마치리라."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의 포로 생활을 칠십 년만에 끝내고
고국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임을 뜻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아울러 다니엘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 들였습니다.
3절 끝 부분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결심하고."
 
무엇을 결심했다는 말씀입니까? 하나님께 기도할 것을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의 포로 생활이 칠십 년만에 끝나도록 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만,
그 뜻은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다니엘이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그때부터 하나님께 기도할 것을 결심한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참으로 진지하게 받아 들였습니다.
 
3절은 다니엘이 어떤 식으로 기도를 했는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자기가 기도를 하면 다리오 왕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에
사자굴 속에 던짐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기도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생명을 걸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것을 3절 말씀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4∼19절은 다니엘이 실제로 기도한 내용들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선 다니엘이 어떠한 자세로 기도했는지 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금식하며."
왜 다니엘이 금식을 했습니까?
 
"내게는 육체적인 욕구보다도 영적인 갈급함이 더 중합니다."
이러한 뜻으로 그는 기도하는 동안에 음식을 끊었을 것입니다.
 
계속해서 "베옷을 입고"라고 했습니다. 극심한 슬픔을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가 죽으면 슬픔과 애통을 표하기 위해서
굵은 베옷을 입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가 중하기 때문에
고통스럽고 참회하는 심정으로 베옷을 입었습니다.
 
"재를 무릅쓰고." 더러운 재를 자기의 몸에 덮어썼습니다.
"하나님, 나는 이렇게 더러운 인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자기를 낮추는 심정으로 재를 자기의 몸에 뿌렸습니다.
 
이 모든 것이 무엇을 하기 위한 것입니까?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기도와 간구를 위한 준비였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눈다는 의미에서 넓게 사용됩니다.
다니엘의 기도에서 볼 수 있듯이, 기도에는 찬양, 회개, 간구가 다 포함됩니다.
간구는 특별한 제목을 가지고 응답을 바라면서 기도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좁은 의미로 사용이 됩니다.
 
여러분! 물론 우리는 기도할 때에 다니엘처럼 금식하지 않습니다.
베옷을 입지도 않습니다. 재를 무릅쓰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때는
다니엘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해야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아니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속히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4절 말씀입니다.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다니엘의 하나님은 누구입니까? 여호와입니다.
 
바벨론에는 수많은 신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신들은 다니엘의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다니엘의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다니엘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라고 하는 성호가 언약적인 칭호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말씀하시는 하나님, 그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 성취하시는 하나님입니다.
 
 
4∼19절은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입니다.
4절 하반부에서 다니엘은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5∼14절에서는 자기와 자기 민족의 죄를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15∼19절에서 비로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소원을 아뢰면서
간구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기도 순서는 맨 먼저 찬양, 그 다음으로 회개,
그리고 마지막이 간구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그와 같은 순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시면서,
하나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깨끗이 설 수 있도록 죄를 자백해야 합니다.
그런 뒤에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주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순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4절 하반부에서 다니엘이 하나님을 어떻게 찬양하는지 그 모습을 보십시다.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 할 주 하나님."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을 부르고 난 뒤에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자시여." :4
 
다니엘은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일깨워주고 있습니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는 것은
하나님 편에서 어떤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신실하셨습니다. 다니엘은 그의 삶을 통해서
이 사실을 체험적으로 겪으면서 살아 왔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서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습니다. 느부갓네살이 내린 왕명을 거역했습니다.
왕이 주는 진미와 포도주를 거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니엘을 지켜주셨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바벨론의 총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벨사살 임금 때 다니엘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벨사살을 준엄하게 질책했습니다.
"당신이 부친 느부갓네살 임금에게 있었던 일을 알면서도
어떻게 하나님을 멸시할 수가 있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벌을 받아서 당신의 나라와 함께 멸망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지켜주셔서
벨사살 임금으로부터 나라의 셋째 치리자로 세움을 입게 되었습니다.
 
다리오 왕 때, 다른 신에게 기도하는 자는 사자굴 속에 던짐을 당하리라고 했죠.
다니엘은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루에 세 번씩 변함없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결국 다니엘은 왕명을 어긴 결과로 사자굴 속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사자들의 입을 봉해주셔서 다니엘이 조금도 다치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해서
언약을 지키시고 인자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을 더욱더 사랑하시고 주의 계명대로 순종하며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와 맺으신 언약을 변함없이 지키십니다.
우리를 자신의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십니다.
 
이 아침에도 다니엘이 보여준 기도의 모습을 본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그가 드린 기도의 내용도 본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다니엘처럼 기도의 응답을 다 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단9장 5-6절, 징계의 이유
 
▲5~6절,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6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와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다니엘의 기도는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찬양과 회개와 간구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회개가 시작되는 부분입니다. 다니엘은 이 말씀 가운데서
예루살렘이 칠십 년 동안 황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6가지로 밝히고 있습니다.
 
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까?
1) 그들이 범죄했기 때문이며, 2) 패역했기 때문이며,
3) 행악했기 때문이며, 4) 반역하였기 때문이며,
5)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기 때문이며,
6) 주의 종 선지자들이 말씀한 것을 귀담아 듣지 아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고, 그 결과 예루살렘은 그 기간 동안에
황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5절 말씀이 어떤 단어로 시작하고 있습니까? "우리"입니다.
6절 말씀도 어떻게 시작이 되고 있습니까? "우리"입니다.
 
다니엘은 지금 누구를 탓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나라의 왕들을 탓하지도, 지도자들을 탓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우상숭배를 했던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지도 않았습니다.
 
비록 다니엘은 흠잡을 것이 없을 정도로 충성스러운 사람이었지만,
그는 자신도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한 사람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
이것이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의 마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섯 가지 죄악을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범죄"라는 단어의 원래 뜻은 화살이 과녁을 맞추지 못하고
빗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해서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신 것은 그들을 통해서
이방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나라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오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에게 동화되어 이방의 헛된 신들을 섬겼습니다.
아울러 그들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삶의 기준에 맞추어서
거룩한 삶을 살지도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목표에서 그들은 크게 빗나가고 만 것입니다.
 
둘째로 "패역하며"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적 상태가 바르지 못하고 굽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들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바르지 못한데, 어찌 그들의 삶이 바를 수가 있었겠습니까?
 
셋째로 "행악하며"
"패역"이 내적 상태라면, "행악"은 겉으로 드러나는 외적 행위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 앞에서 악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넷째는 "반역하여"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언약이 맺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맹세했습니다.
"우리는 오직 여호와만 우리의 하나님으로 섬기겠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그 약속을 깨뜨리고 다른 이방의 신들을 섬겼습니다.
이것은 명백히 하나님께 대한 반역입니다.
 
다섯째는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살았습니다.
 
마지막 여섯째를 보겠습니다.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열왕과 우리의 방백과 열조와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께서 주의 종 선지자들을 통해서 주신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했습니다. 열왕들도 그리했습니다. 방백들도 그리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이스라엘의 온 국민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저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마땅할 수밖에 없지요?
 
이 시간 우리는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여섯 가지 이유들을 되새겨보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단9장 7-11절, 축복의 길로 갑시다
 
다니엘은 계속하여 자신과 민족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깊이 회개하고 있습니다.
7절 제일 끝 부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8절 끝 부분을 보세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마는."
9절 끝 부분 말씀입니다.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
10절 끝 부분 말씀입니다.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11절 끝 부분도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다니엘은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함으로서 회개의 깊은 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7절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치는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이나
먼 곳에 있는 자들이 다 주께서 쫓아내신 각국에서 수치를 당하였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욕은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날과 같아서"
이미 200년 전에 이미 북방 이스라엘 사람들은 죄의 대가를 받아
앗수르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제는 유다 백성들도 범죄한 연고로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하나님께는 공의가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아무런 징계가 없었다면
하나님의 공의가 어떻게 설 수 있겠습니까?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징계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공의가 우뚝 서게 된 것입니다.
아울러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얼굴에는 수욕이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포로 생활을 하면서 이방 나라들의 멸시와 천대를 받게 된 것입니다.
 
"가까운 데 있는 자나 먼 데 있는 자가 다 주께서 쫓아 보내신 각국에서." :7
북방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상대적으로 가까운 앗수르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남방 유다의 백성들은 그보다 더 먼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들이 각국에서 수욕을 입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께서 쫓아 보내신 각국에서 수욕을 입었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범하였음이니이다." :7
 
저들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던들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축복의 땅에서 오래 살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한 연고로 그 땅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심은 그대로 거두게 되었습니다.
 
▲8절, 주여 수치가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마는
 
8절에서 다니엘은 똑같은 내용을 다시 한번 반복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하였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과거와 현재를 망라한 온 백성이 수욕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반복적인 말을 통해서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깊은 회개의 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처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이 하나님께 자신과 민족을 위해서 감히 용기를 내어
기도할 수 있었던 동기는 무엇입니까? 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9절,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용서하심이 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사유하심이 있사오니."
다니엘은 하나님의 긍휼과 사유하심을 바라보면서 기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자가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원문에는 "긍휼"과 "용서하심"이라는 단어가 복수로 쓰여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긍휼과 사유하심은 풍성하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지극히 긍휼히 여기십니다. 심히도 불쌍히 여겨 주십니다.
또 하나님의 사유하심은 무한하십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끝이 없습니다.
 
비록 우리의 죄가 주홍빛보다 붉다할지라도,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흰 눈보다도 더 희게 씻어 주실 것입니다.
 
▲10절,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말씀하셨습니까?
"여호와께서 그 종 선지자들에게 부탁하여."
 
하나님은 그 종들, 곧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들이 전하는 율법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치 아니하였음이니다."
 
설사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지자들의 권위를 인정했다하더라도,
그들은 진지한 자세로 말씀을 받으며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을 영위하지 못했습니다.

 

세상 소리를 듣느라고 바빠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전해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1절,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으므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마땅히 하나님이 세우신 법, 곧 율법에 따라 살아야 할텐데,
그들은 율법에 반대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셈입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 의 종 모세의 율법 가운데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맹세가 무엇입니까?
 
신명기 28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셔서
그들은 약속의 땅에서 평안히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그들에게는 저주가 내려서
그들에게 약속된 땅이지만 그곳에서 살지 못하고 쫓겨남을 입고 말 것입니다."
 
그 맹세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축복의 땅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단9장 12-14절, 말씀에 순종합시다
 
다니엘의 기도는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찬양과 회개와 간구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회개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12절, 주께서 큰 재앙을 우리에게 내리사 우리와 및
우리를 재판하던 재판관을 쳐서 하신 말씀을 이루셨사오니
온 천하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 같은 것이 없나이다
 
"주께서 큰 재앙을 우리에게 내리사."
여기서 말하는 큰 재앙은 무엇이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며,
그로 인해 예루살렘이 칠십 년 동안 황무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에게 큰 재앙이 임했습니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는 언약이 맺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셔서 그들의 범사가 형통케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면,
그들에게는 복 대신에 저주가 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임할 저주 가운데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대적들의 공격을 받아
그 땅에서 길이 살지 못하고 쫓겨나게 될 것이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결국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범죄했습니다.
그 결과 저들에게는 큰 재앙이 임했습니다.
축복의 땅을 대적에게 내어주고 그 땅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우리와 및 우리를 재판하던 재판관을 쳐서 하신 말씀을 이루셨사오니."
여기서 재판관은 나라의 방백들, 즉 나라의 지도자들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말씀에 약속하신 바를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심은 그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더라면,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받아 축복의 땅에서
오래도록 형통한 삶을 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그 땅에서 쫓겨나는 큰 재앙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12절 끝에 "온 천하에 예루살렘에 임한 일 같은 것이 없나이다."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2
예루살렘이 완전히 폐허가 되어 버렸습니다.
과거의 영화는 간 곳 없이 사라져 버리고,
사람이 살 수도 없는 곳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도 없을 정도의 황폐함이었습니다.
그래서 12절 첫 부분에서도 재앙이라는 단어 앞에 "큰"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13절,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우리에게 내렸사오나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떠나고 주의 진리를 깨달아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얼굴을 기쁘게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이 모든 재앙이 이미 우리에게 임하였사오나."
우리가 이미 살펴 본대로 모세의 율법에 해당되는 신28:15∼68에는
저주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서 범죄하면,
그들에게는 저주가 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가뭄, 기근, 염병 등 여러 가지 재앙들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들은 대적의 공격을 받아 그 땅에서 쫓겨나
이방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게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그 모든 재앙이 급기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개시키기 위해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저들을 치셨습니다.
때로는 가뭄으로, 때로는 기근으로, 때로는 질병으로 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죄악된 길에서 돌이키지를 않았습니다.
결국 저들은 율법에 기록된 대로 바벨론의 공격을 받아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13절 하반부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떠나고 주의 진리를 깨닫도록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은총을 간구치 아니하였나이다."
 
지금까지도 하나님 앞에서 회개치 못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진정한 회개의 세 가지 요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죄악을 떠나고“
먼저 지금까지 저질러오던 죄악에서 떠나야 합니다.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야 됩니다.
죄악된 길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서 회개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둘째로 "주의 진리를 깨닫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지요.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옳은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의 은총을 간구"해야 합니다.
그 동안 범죄했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자복하면서 용서함을 받아야 합니다.
또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힘도 받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은총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온전한 회개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푸시기를 위해서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참된 회개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14절 말씀입니다.
 
▲14절,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우리에게 내리게 하셨사오니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우시나 우리가 그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오래 참으셨습니다.
그래서 가뭄으로 치시기도 하시고, 기근으로, 염병으로 치시기도 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대적을 들어서 범죄한 이스라엘을 쳐서 멸망시키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서 끌려가고 예루살렘은 황무해졌습니다.
 
"우리에게 임하게 하셨사오니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는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우시나."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판단은 조금도 틀림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행한 그대로를 다 갚아주십니다.
 
"우리가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재앙이 임한 것은
전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아니했기 때문에,
그 죄 값으로 그들은 멸망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낌없이 복을 내려 주시고
우리의 걸음걸음을 형통케 하실 것입니다.
 
 
◑단9장 15-19절, 기도의 근거
 
다니엘의 기도는 세 부분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첫째는 찬양이고, 둘째는 회개, 셋째는 간구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마지막 세번째 부분인 간구에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15절, 강한 손으로 주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오늘과 같이
명성을 얻으신 우리 주 하나님이여 우리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
 
"강한 손으로 주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종살이했던 애굽 땅에서
강한 손으로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하나님은 강하신 손으로 열 가지 재앙을 애굽에 내리셨습니다.
그 강하신 손으로 홍해를 가르셨습니다.
또 광야에서도 하나님은 강하신 손으로 많은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종살이했던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을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저들의 열조에게 계속해서 같은 약속을 하셨습니다.
 
지금 다니엘이 본문에서 그 옛날의 출애굽 사건을 말씀하는 이유가 무엇이죠?
"하나님! 우리의 열조에게 그 땅을 주리라고 약속하신 것을 기억하옵소서.
우리는 지금 약속하신 땅에서 쫓겨나서
이와 같이 이방 땅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 열조에게 주리라고 하신 그 땅에
속히 우리가 되돌아가게 하옵소서."
이런 뜻으로 다니엘은 하나님께 출애굽의 역사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오늘과 같이 명성을 얻으신 우리 주 하나님이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종살이하던 애굽 땅에서 출애굽 시키심으로
말미암아 어떤 명성을 얻게 되셨습니까? "여호와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요, 살아 계셔서 그 백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와 같은 명성을 얻게 되셨을 것입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우리가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죄 값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이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이 열조에게 약속하셨던 땅에 대한 축복을 잊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16절, 주여 구하옵나니 주는 주의 공의를 따라 주의 분노를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이는 우리의 죄와 우리 조상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사면에 있는 자들에게 수치를 당함이니이다
 
"내가 구하옵나니 주는 주의 공의를 좇으사 주의 분노를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따라서 죄 값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의 죄 값을 충분하게 받았다면,
이제는 주의 분노를 그만 멈추어달라고 다니엘은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 값을 받을 만큼 다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계속해서 그들에게 고통을 내리신다면
그것은 의로운 일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40:1-2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자기들의 죄 값을 충분히 받았습니다.
칠십 년 동안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종살이를 했으니까요.
그러니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가 아니겠느냐고
다니엘은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 성 예루살렘, 주의 거룩한 산에서 떠나게 하옵소서."
예루살렘을 무엇이라고 묘사를 했습니까? "주의 성"이라고 했습니다.
또 예루살렘이 서 있는 시온산을 "주의 거룩한 산"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황무해 있는 곳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성이요, 하나님의 거룩한 산이니까
이제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분노를 거두어달라는 간구입니다.
 
"이는 우리의 죄와 우리의 열조의 죄악을 인하여 예루살렘과 주의 백성이
사면에 있는 자에게 수욕을 받음이니이다."
물론 이스라엘이 범죄한 연고로 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고,
예루살렘은 황무해졌습니다. 그러나 그 성은 결국 하나님의 도성이요,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방들이 큰 재앙을 당한 이스라엘을 보면서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여호와는 자기 백성들도 구원할 수 없는 무능한 신이고,
또 자기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예루살렘도 황무한 채로 그대로 내버려두는
힘이 없는 신이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수욕은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은연중에 말하면서 다니엘은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입니다.
 
▲17절,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취시옵소서."
 
다니엘이 16절에서는 예루살렘 성의 재건을 위해서 간구했습니다.
17절에서는 하나님의 성소인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을 위해서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종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을 낮추고 있습니다.
 
한편 다니엘은 4절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높였습니까?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 할 주 하나님."
하나님은 크신 분이시고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분이시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우리는 낮아져야 하겠습니다.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기도는 넓은 의미이고, 간구는 좁은 의미입니다.
우리가 다니엘의 기도에서 본 것처럼 기도에는 찬양, 회개, 간구가 포함됩니다.
많은 경우에 감사도 포함됩니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를 포괄하는 것이 기도이죠.
 
한편 간구는 특별한 제목으로 하나님께 간청하는 것입니다. 좁은 의미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무엇이라고 아뢰었습니까?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취시옵소서."
 
황폐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 누구를 위하는 일이라고 했습니까?
"주를 위하여."
 
지금 이방 나라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것을 보고서는
무엇이라고 비웃고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의 신인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바벨론의 신 마르둑 보다도
더 힘이 없는 무능한 신이라고 비웃을 것입니다.
그러니 주의 영광을 위해서라도 황폐해진 주의 성소를 곧 다시금
재건해 주셔야 되지 않겠느냐고 다니엘은 하나님께 아뢰고 있는 것입니다.
 
▲18절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이시고 좀 자세히 들어주시기를 바란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들어주시기를 바라는 것이겠습니까?
우선 다니엘 자신이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를 위해 어떻게 했었습니까? 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왜 그렇게 했습니까?
자기의 기도에 귀를 좀 기울여 들어달라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것뿐만 아닙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들이 비웃고 있는
조롱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주실 것을 바랐을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무능한 신이다. 우리가 믿는 바벨론의 신보다도
능력 없는 신이다." 이방인들의 이 조롱 소리도 들어보시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계속해서 무엇이라고 아뢰고 있습니까?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된 상황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까지 바벨론에서 칠십 년 동안 종살이를 해왔습니다.
그 동안에 전연 예루살렘 성과 그 안에 있는 성전을 돌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눈을 뜨시고 그 황폐된 상황을 좀 자세히 보아달라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임금은 예루살렘 성을 세 번 공격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는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지 못하도록
완전히 황폐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서에 보면 느헤미야가 수산궁에 있을 때,
조국을 다녀온 사람이 예루살렘 성의 황폐된 모습을 그에게 이야기해 줄 때
그가 어떻게 했습니까?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의 황폐한 모습이 너무나도 비참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이 완전히 폐허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더욱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내놓을 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의롭지 못했습니다. 불의할 뿐이었습니다.
마땅히 벌을 받아야 될 모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간구하는 것은
그가 무엇을 의지했기 때문이었습니까?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
하나님의 큰 긍휼, 무한하신 긍휼을 바라보며 간구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신 하나님, 자비로우신 하나님, 노하기를 더디 하십니다.
아무리 우리가 큰 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우리가 회개하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해 주십니다.
 
▲19절,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아마 이 때는 다니엘이 그의 벅차 오르는 가슴 때문에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19절에는 "주여"라고 하는 말이 몇 번 나옵니까?
세 번 나옵니다. 흐느끼면서 드리는 기도이니까, 문장도 간단합니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지체치 마옵소서!"
 
주님의 크신 긍휼하심 밖에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주여 들으소서."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크신 긍휼하심으로 자기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달라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주여 용서하소서." 비록 자기들의 죄악이 너무나 막중하지만,
하나님의 크신 긍휼과 사유하심으로 그들을 용서해 달라는 것입니다.
 
"주여 들으시고 행하소서."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그들에게 베풀어서,
그들의 포로 생활이 끝나게 하시고,
또 황폐해진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지체치 마옵소서." 하나님께서 징계하기로 작정하셨던 칠십 년이
이제는 다 지나갔으니까, 더 이상 지체치 마시라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도
택하신 백성들에게 회복의 역사를 속히 베풀어 달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두 가지에 근거해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크신 긍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내놓을 의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땅히 죄 값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긍휼에 풍성하신 분이시기에
다니엘은 감히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었습니다.
또 예루살렘도 하나님의 도성이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도
지금 당하고 있는 수욕을 씻어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감히 내놓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우리도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미우나 고우나 하나님의 자녀가 이미 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잘못되면 하나님의 이름이 욕되게 되지 않습니까?
그것을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여! 오늘 이 하루 동안 제가 행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도 잘 되기를 원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 행여라도 하나님의 성호를 욕되게 하지 않도록
저를 지켜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