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1:19~21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오늘 우리 사회를 '분노 사회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한병철 교수가 '피로 사회' 이런 책을 썼습니다만 사실 피로보다 우리 사회안에 지금 깊이 스며 있는 것은 '분노'인것 같아요. 마치 가마솥이 부글부글 끓는 것처럼, 이 사회에 분노가 들끓고 있어요.
그래서 이 사회 전체가 굉장히 위험한.. 뉴스를 들어 보면 아주 위험한, 분노가 통제가 안 되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왜 취직 안 하고 게임만 하냐?' 잔소리 했다고 아들이 아버지를 무참하게 흉기로 때려서 중태에 빠뜨리는... 이런 일들이 지금 점점 더 늘어가고 있고,
부부간의 갈등.. 이런 것들로 인해, 아주 극단적이고 비극적 결과를 만들어 내는 .. 이 분노 라는 것은 굉장히 무서운 에너지인데요 이게 지금 우리 사이에 굉장히 위험한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 분노가 바깥으로 공격적으로 표출되면, 사람을 죽이기 까지하고 자기에게로 분노가 표출되면, 그게 자살로 가는 거잖아요.
그래서 홧김에 욕하고.. 홧김에 사람 죽이고.. 홧김에 사표 내던지고.. 홧김에 부부가 이혼을 하고.. 이게 지금 우리 안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분노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면서, 그 결과는 생각보다 치명적이고 비극적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굉장히 경계하고 유의해야 합니다.
▲본문 19절은 '성 내는 것을 더디하라' 20절에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 21절에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라. 마음에 심어진 말씀으로 온유함을 받으라'
이런 말씀들을 야고보가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성숙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 우리 분노의 감정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관한 것이 됩니다. 이것이 영적 성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죠.
분노는 기독교 역사 속에서 "7가지 큰 죄" 중에 하나로 여겼습니다. 교회사 속의 믿음의 사람들, 특별히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사막의 교부나 이런 분들이, 경건을 해치는 7가지 큰 죄를 지적해서 다루었는데, 교만, 시기, 탐욕, 탐식 (탐식도 경건을 해치는 매우 중요한 요인입니다) 분노, 정욕, 나태.. 이렇게 7가지 입니다.
성경에는 분노로 실패한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가인.. 아담의 직계 아들인 가인은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고, 동생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는 하나님께 대한 분노를 동생에게 표출해서, 돌로 동생을 쳐 죽입니다.
모세.. 그는 민족애가 있었죠. 그 민족애가 너무 넘쳐서 결국은 애굽 사람을 쳐죽이는 것으로 인해 도망자가 되고 맙니다.
삼손.. 힘이 너무 많아서, 분노함으로 쓸데없이 사람들을 많이 무참하게 죽입니다.
요나.. 요나서를 보면 마지막 부분에,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계속 화를 내는 모습을 보여요.
▲한국 사람들은 특별히 감정적인 민족인 거 같아요. 다혈질적입니다. 일본은 민족적으로 우울질이라면, 한국은 다혈질입니다.
일본에 가보면, 식당에서도 전부 다 조용히 먹습니다. 남들도 쳐다보지 않고, 자기 앞에 놓인 음식만 쳐다봅니다.
놀이터에서 아이들도, 사람 많은 데서 애들도.. 일본은 조용히 놉니다. 그런데 한국은 거기에 비하면 시끄러운 편이죠. 그 가운데서도 경상도는 더 시끄럽고요. (물론 우리나라보다 더 시끄러운 민족도 많죠. 중국, 이태리, 스페인, 남미 등)
경상도는 욱 하는 기질이 있어서.. 그게 폭발하면 굉장히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경상도는 특히 분노를 조심해야 됩니다. (부산 수영로교회 설교)
분노는 그 감정적 풍성함으로 장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으로 흐를 때, 분노의 감정은 무서운 결과를 낳죠.
분노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그러나 이 분노를 어떻게 적절하게 다루어야 하는지요... 적절한 감정적 표현은 나쁘지 않아요. 분노할때 분노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의분이라는 게 있잖아요. 하나님도 분노하시는 분이세요.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굉장히 분노하시는... 거룩하시며, 인간의 악에 대해서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인간의 거룩한 분노는 역사의 오류를 막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그 시대 교회에 대한 거룩한 분노였습니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이 뛰어난 분들은 의분을 갖습니다. 의분은 매우 중요하죠. 그러나 의분마저도 조심해야 하는 것은 의분으로 시작했다가, 육체적 분노로 끝맺게 되는 것이 인간의 연약함이기 때문에 그것마저도 우리는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조심해야 될 것들은 무엇인가요? 역기능적 분노들입니다.
▲1. 첫 번째는 <절제되지 않는 분노>입니다. 분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통제되지 않는 분노가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한 번 분노하면, 그냥 끝이 없어요. 아이들 말로 뚜껑이 열리는 거죠. 정신을 잃어버립니다. 거품을 품고 뒤로 넘어지듯이 분노하는데요. 통제가 안 되는 분노입니다.
여러분, 수원지의 수문은, 금방 그냥 갑자기 열어버리면 재난이 일어납니다. 그런 왈칵 쏟아내는 분노는 재난을 일으키죠.
요즘 미국 내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총기사고도 절제되지 않은 분노의 증거입니다.
그 분노로 인한 피해는, 상상을 할 수 없어요. 인류 역사 속에서 분노로 일어난 피해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우리 개인적으로 마찬가지죠. 괜히 운전대만 잡으면 분노하고 사람이 거칠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얌전한데, 운전대만 딱 잡으니까 입에서 이상한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날로 증가하는 기계문명, 전자제품들 가운데 살면서 우리가 굉장히 신경이 날카로워져 가는 것입니다. 절제되지 않는 분노는 끔찍한 재난을 일으킵니다.
▲2. <습관적인 분노>가 있습니다. 분노는 일종의 습관입니다. 여러분, 분노에도 중독성이 있어요. 자기가 거칠게 분노할때, 사람들이 꼼짝 없이 숨을 죽이는 걸 보면,
그걸 은근히 즐기는 모습도 거기 있어요. 그래서 습관적으로 화를 냅니다.
분노할때, 직원들이 자기 눈치를 보면서 발뒤꿈치를 들고 조용히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면서 일종의 쾌감을 느끼면서, 분노의 습관에 빠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조급증 사회에서 조금도 참지 못하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보세요, 분노하는 사람이 계속 분노해요. 분노하다 보면, 자꾸 분노가 더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분노하는 사람들은, 분노의 효과를 올리기 위해서는 분노의 강도를 자꾸 높이죠.
여러분, 내가 얼마나 자주 분노하는가.. 그 횟수를 한번 점검해 보세요. 횟수가 과거보다 줄어들고 있습니까, 아니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까?
이 분노가 습관화 되고 있다면, 습관화된 분들은 한 순간에 고치기가 힘듭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분노가 습관화 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3. 세번째로 <위장된 분노>가 있습니다. 분노를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아요.
분노가 악이고, 분노가 잘못된 것이고 그래서 분노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계속 분노를 꾹꾹 누르고 있는 것입니다.
분노에 뚜껑을 덮고 있어요. 분노를 내는 것을 나쁜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겉으로는 분노가 없는 척하면서, 속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특히 타인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잘 맞추는 사람들에게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그건 분노를 억눌러 놓는 것인데, 언젠가는 마침내 억눌린 게 터지게 되죠.
분노는 일종의 화약과 같아요. 언젠가 터지면 자신은 물론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함께 고통을 겪게 됩니다.
직장에서 억눌린 분노가, 집에서 터질 수가 있어요. 상사로부터 혼이 나고 참았던 것을, 자기 아랫사람에게 터뜨립니다.
자기보다 힘센 사람에게 분노를 쏟아 놓을 수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만만한 사람들에게 분노를 쏟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쏟지 못한 것을, 남편이 출근하고 난 다음에 애에게 화풀이 하는 분도 간혹 있습니다. '네 애비를 닮아가지고서...'
그 아이는 열받아가지고, 또 강아지를 한 번 발로 차죠.
억눌리는 분노는, 언젠가는 표출되게 되고 이것은 계속 이렇게 악영향을 미치게 되고, 주위에 피해를 입히게 됩니다.
◑분노의 근원
분노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알 필요가 있어요. 분노를 일으킬만한 원인을 미리 알고, 그것을 조심하고 예방해야 합니다.
▲1. 분노를 일으키는 매우 일반적인 원인은 <상처>입니다. 누가 나를 공격하거나 상처를 주었을 때 바로 분노를 품게 됩니다.
또 상처입은 영혼들, 그 상처가 내면의 잠재되어 있으면서 예민하게 반응하면.. 분노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상처는 주로 자존감의 훼손으로 인한 것들입니다. 자기 자존감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그 안에 분노가 차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나를 조금이라도 무시하면, 견딜수없어 하는 거죠.
분노는, 건강하지 않은 자존감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일종의 <열등감>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관계 속에서, 가인은 상대적으로 열등감을 느낀거죠. 하나님이 자기 제사는 받지 않고,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는 것에 대해 자존심이 팍 상했습니다.
열등감이 많으면 분노가 잦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분노를 많이 낸다는 것은, 결국 내 안에 열등감이 많이 내재되어 있다는 증거죠.
자신의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로 인하여, 누가 그걸 건드리면 분노가 폭발할 수 있어요. 외모 이외에도 자신의 약점을 건드리면, 터져버리는 것입니다.
상대가 자신을 무시하거나 모욕을 주었다고 생각될때 터져 나오는 거죠.
사실 사회적인 여러 관계와 그런 어떤 위치에 따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모멸감, 멸시감을 주는 이런 문화가 많이 있어요. 그런 상황에 접하면, 화가 일어나는 것이죠.
머리 나쁜 아이에게 머리 나쁘다고 하면 화가 납니다. 얼굴이 못생겼는데 '얼굴이 왜 그러냐?' 그러면 화가 나죠.
돈을 못 벌고 있는데 '돈도 못 벌면서 그러냐?' 라고 하면, 열 받게 되죠.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분노를 잘 일으키게 됩니다. 특별히 어린 시절에 충분히 사랑 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의 내적인 상처는 잠재적 폭발물과 같은 것이지요.
그래서 요즘 사회에서 일어나는 그런 아주 대형 사고들, 끔찍하게 사람을 죽이고, 파괴적인 일을 행하는... 사람들을 보면, 결국은 어린 시절에 사랑받지 못한 그런 내재된 상처가 건드려져서 이렇게 폭발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낮은 자존감을 치료하지 않으면 시시각각으로 분노가 터지게 되어 있습니다.
▲2. 두 번째는 <자기 보호> 때문입니다. 분노는 일종의 자기보호본능 입니다.
누군가 자기 영역을 침범한다고 여길 때 자기 방어로 분노하는 거죠.
결국 분노는, 그 마음 속에 있는 두려움, 그리고 자기 안에 있는 불안에서부터 나온 것이죠.
그래서 분노는 자기 연약함의 표현입니다. 분노를 많이 하는 사람이 강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약한 사람이에요.
왜냐면, 자기 내면에 불안함이 있기 때문에, 자기를 디펜스(방어) 하는 것이죠.
여러분, 그래서 상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전혀 없어요. 누군가 나에게 피해를 입히면, 즉각 보복하려고 하는 보복심리, 이게 바로 분노인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보복한다는 게 게 얼마나 어려운 것입니까? 사실 우리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이죠.
정의감이 높은 사람들이 분노가 많이 있어요. 그러나 그 분노의 감정을 가진 상태로, 정의를 행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원한을 품고 심판의 칼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자기 자신이 피해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3. 또 우리 붓는 원인 중에 하나는 세 번째로 <욕심>이에요. 분노는 빠른 결과로 성과를 얻으려고 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의 위협감을 주어서, 어떤 목표를 이루려고 하는 것이죠. 분노를 통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분노를,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수단, 도구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막 화를 내고, 아주 의자를 뒤집어 엎고, 때론 어떤 물건을 내던지면서 그냥 자기 감정을 폭발하면서, 그 분노를 통해 자기의 목적을 얻어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분노는, 자기 욕심을 채우게 될 지도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 막대한 상처와 피해를 입히게 되는 것입니다.
분노는 특별히 '높은 기대치'로부터 오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자주 분노하는 곳이 어디인가를 보면 그 곳에 내 마음이 많이 가 있는 거에요. 욕심이 있는 거예요. 기대치가 높은 것입니다.
특별히 부모들이 가장 많이 분노하는 이유는 누구 때문입니까? 아이들 때문에 분노하죠.
사실 그 아이들에게 분노가 잦은 이유는 뭘까요? 자녀들에 대한 기대치가 높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 부모의 기대치가 있는 거지요. 이루어 내려고 하는 그 욕구, 그 목표, 그 기대치가 있는데 그게 달성 안 되니까, 그 기대가 깨지니까.. 화가 나는 거죠.
그러므로 부모의 기대치를 낮추기 전에는, 자녀에 대한 분노는 계속 될 수밖에 없고 서로 깊은 상처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특별히 한국사회에는,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기대치가 너무 높은 거죠. 경쟁사회 속에서 아이들을 몰아가니까요.
제가 늘 듣는 얘기는, 아이들 속에 그 분노가 꽉 차 있어요.
부모로부터 그 과한 기대감 속에 몰려서 그 분노하는 부모의 아래에서 상처 투성이인 자녀들이 너무 많아요. 지금 몇 퍼센트인지 조사해보면 얼마나 될지...
상당한 %의 아이들이 어마어마한 분노를 갖고 있어요.
지금은 다 표현 못하죠. 부모에게 상대적으로 힘이 약하니까 표현은 다 못 하지만 그 안에 분노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거죠.
나중에 그 억눌렸던 분노가 부모에게 언젠가 쏟아낼 때는 비극으로 가는 경우들이 굉장히 많은 거죠. 그 사실을 부모가 모를 때가 많이 있어요.
부모는 욕심을 적당히 포기 해야 되죠. 욕심을 조금씩 내려 놓아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끝 없는 전쟁을 치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어디에서 화를 자주 내는지를 점검해보면 틀림 없이 거기에는 뭐가 있느냐면.. 욕심이 있어요. 과한 욕심이 있어요.
너무 높은 기대치가 있는 거죠. 그것을 내가 스스로 통제하지 않으면, 이런 분노가 서로 오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4. 네 번째는 <자기중심적, 이기적인 태도>에서 분노가 나옵니다.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자기 중심적입니다. 자기중심적이지 않는 사람은 없어요.
자기중심성의 문제는, 너무 지나친 게 문제입니다. 너무 지나친 자기 중심성!
adult-child 어른아이 라는 말이 있는데, 몸은 어른으로 성장했는데, 너무 아이와 같은 멘탈의 자기 중심적인 사람! 그래서 그 어른이 유치한 행동을 하는 거예요.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단계는.. 여전히 '어른아이' 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전혀 못 하는 거죠.
내가 좋으면 좋은 거고, 내가 싫으면 싫은 거고.. 이렇게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고,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별 것도 아닌데 짜증을 내고 분노합니다. 야단법썩을 피웁니다.
한 번은 비행기에서 기내식이 나오는 시간인데, 보통 두 종류로 나오는데, 한 종류가 모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객님 모자라서 너무 죄송해요. 오늘은 비빔밥이 소진되어서 없습니다. 다른 걸로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이 승객이 갑자기 소리를 막 지르면서, '비빔밥 내놓으란 말이야!'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궁시렁거렸습니다. 다른 승객들에게 매우 불편을 줬죠.
하여튼 주변의 사람들을 전혀 어색하지 않고, 혼자 화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죠. '어른아이' 입니다.
매사에 '내가 원하는 대로만 일이 되어져야 된다'는 거죠. 그 속에 어린아이가 있는 것입니다. adult-child인 거죠. 이게 분노를 일으키는 또 하나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5. <정서적인 고갈>은 분노를 일으킵니다. Emotional 한 부분이 dry 해 지면, 자기도 모르게 감정이 폭발해 버리는 거죠. 정서적인 계기판에 불이 깜빡이면, 짜증이 나고, 분노의 감정에 빠져 들게됩니다.
모세가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지팡이로 반석을 치며 분노했습니다. 가나안 땅의 목전에서 실패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이해가 돼요.
여러분 광야를 지나며 40년 동안, 리더로서 모세는 백성들에게 시달렸어요. 이 백성들이 누구입니까? 노예 생활에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에요.
끊임없이 컴플레인 하는, 불평하는 노예 문화에 평생 젖어살던 사람들이에요. 그것도 그런 사람이 200만이나 되는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 그들을 40년 동안이나 이끌고 가다 보니까, 모세의 정서가 고갈될 대로 고갈된 거죠.
백성들은 돌아서면 불평하고, 돌로 모세를 쳐 죽이려고 그러고 민수기를 보면, 모세는 끊임 없이 엎드리고 또 엎드리죠.
쉽지 않는 이 광야의 길을 건너는 그가, 어느 날은 스트레스가 꽉 쌓였던 것 같아요. 굉장히 정서적으로 드라이해 있었던 상태였던 것 같아요.
그때 모세는, 자기도 모르게 울분이 터지면서, 벼락같이 화를 한 번 낸 거예요. 여러분, 화를 내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약1:20
직장이나 가정, 혹은 인간관계, 과도한 목표, 재정적인 압박, 정신적 육체적 피곤함... 이런 것들이 계속 쌓이면 어떻게 되죠? 분노가 터지는 거죠.
▲6. <정의감에서 오는 분노>도 있습니다. 모세는 시내산에 내려올 때, 아론이 백성들과 함께 우상을 만들어 춤추고 있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십계명 돌판을 그냥 던져 버렸어요.
정의감은 필요하나, 지나친 결벽주의가 있을 수 있어요.
우리 주위에서 보면,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는 습관에 사로잡혀 늘 분노로 일관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의가 절대적으로 옳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의가 절대적으로 옳은 것처럼 분노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그런 부정적 성격의 소유자들도 있어요.
사실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준에 의해서, 다른 사람들을 난도질하고 그리고 예수님까지 판단하고 비판하며.. 그렇게 했던 그들을 예수님은 너무 불편해 하셨습니다.
◑분노의 부작용
이런 분노의 원인들을 살펴봤는데 이런 분노의 폐해, 이 분노로 인한 부작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영적인 의미에서만 세 가지만 살펴본다면,
▲1. 첫째는 분노는 <관계를 깨뜨립니다> 분노는 한순간에 모든 관계를 깨뜨립니다. 좋은 분위기를 다 깨뜨려요.
화가 났을 때 쏟아내는 그 말은, 친구를 잃어버리게 합니다. 부부 관계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가 없어요.
그러므로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합니다. 모든 관계가 황폐해지는 거죠. 분노하는 사람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게 돼 있어요.
스스로 자신의 외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분노하는 사람 곁에 누가 좋아서 있겠습니까? 그 곁에 누가 있기를 원하겠습니까? 스스로 자기의 인생을 고립화 시키고 마는 것입니다.
▲2. 두 번째는 <영적침체>가 옵니다. 분노하는 삶을 살면, 기도가 막혀버려요. 영적인 은혜의 통로가 막혀 버려요. 영적인 삶 자체가 불가능한 겁니다.
힘겹게 쌓아놓았던 은혜들을, 한순간에 다 주저앉아 버리게 만듭니다. 영혼을 더럽히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죠. 결국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고, 공동체가 깨져요.
▲3. 분노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분노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인내와 관용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분노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요?
분노는 누구나 합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화는 누구나 냅니다. 불가피하죠. 문제는 이 분노를 어떻게 처리 할 것인가? 어떻게 승화시킬 것인가? 어떻게 컨트롤 할 것인가?
이 분노를 잘 다스리면.. 큰 유익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감정 경영"이라는 말을 하잖아요.
분노의 감정을 경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승화시켜 나가는 거죠.
자기 감정을 긍정적이고 생산적으로 다루어가는 노력을 우리가 해야 되는데
▲1. 첫 번째로 우리가 <듣기는 속히 하고 화내기는 더디하라> 약1:19
잠29:11절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
어리석은 자, 미련한 자는.. 자기 노를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내 버립니다. 요즘 사람들 참지를 잘 못 하죠. 요즘 생활 환경이 좀 그런 거 같아요.
먹는 것도 인스턴트, 뭔가 인스탄트 문화이기 때문에 뭐든지 즉각적으로 행하기 때문에...
특별히 한국의 스피디한 것들, 너무 '빨리 빨리 문화'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우리가 조급증이 있어요. 참거나 기다리지를 못 해요. 분노가 막 일어날 수 있는 환경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외부적인 환경이 그렇다 할지라도 분노는 우리의 선택이에요.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거죠.
분노는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돼요. 다스릴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건강한 사람의 특징은 뭡니까? 감정 조절 능력이 탁월한 것이에요.
그게 여러분 우리의 삶을 기름지게 하고, 복되게 하는 인생이 되게 하는 겁니다.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말고, 한 박자 늦추어 보는 거죠.
그래서 야고보는 '듣기는 속히 하고' 약1:19 이 말은, 남의 말을 열심히 들어라, 마음을 열고 들으려고 하는 태도를 가져라! 여러분, 듣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너무 성급한 반응을 통해, 분노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끝까지 다 듣고, 신중히 듣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고 본능적인 반응을 얼마든지 절재할 수 있습니다.
근데 문제는, 화가 나면 경청의 능력에 문제가 생겨요. 경청의 능력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말이 내 귀에 잘 안 들어와요.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결국 악순환을 일으키는 거죠.
경청 기술만 개발해도, 분노의 횟수를 많이 줄일 수가 있어요. 화가 난다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 보세요. 반드시 후회합니다.
잠시라도 침묵하고,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초기진압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대개 분노는 외적인 요인보다, 내적인 요인이 훨씬 더 많습니다. 자신의 가치관, 관점, 불분명한 정보로 인한 오해, 그리고 잘못된 기대감... 이런 것들이 사실은 분노를 일으킵니다.
그건 내 안의 잘못된 관점, 잘못된 가치관, 잘못된 정보를 내가 들은 것들... 이런 것들 때문에 화가 나는 거죠.
▲그래서 관점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모세의 예를 들어봅니다. 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한(높은) 사람이었어요.
그러나 그는 자기 혈기로 인해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인생을 마치고 말았죠.
모세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그가 노예 출신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 중에 하나는 온유함과 관용이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강점이었어요.
그런데 그가 실패했습니다. 이유는 뭐에요? 그가 그 백성들을 바라보았던 관점이, 어느 순간에 바뀐 거예요.
그는 그동안 돌보아야 될 이스라엘 백성들을 양떼로, 자기는 이스라엘의 목자로 하나님이 세우셨음을 믿었습니다.
백성들이 반역하고 힘들게 해도, 그런 언제나 목자로서 서 있었고 아비의 마음을 가지고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며 돌보았어요. 그들은 돌봐야 할 연약한 양떼를 보았던 거죠. 그때마다 그는 위기를 넘길 수가 있었어요.
'내가 이해해야 되고 품어야 되는 양 떼들' .. 이런 관점을 갖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어느 날 어느 순간에, 모세는 이 백성들이 '반역자'로 보이는 거예요. 자신과 하나님께 대한 '대적자'로 보이는 겁니다.
이렇게 관점이 바뀌면서 정신적 여유를 잃어버리게 되고 긍휼의 마음이 사라지자, 분노가 들끓으며.. 모세는 결국 넘어지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일어나는 화가 나는 일들에 대해서 즉각적인 반응보다는.. 조금 더 물러나서 생각해 보는 습관들을 우리가 길러야 합니다.
대체적으로 분노는 항상 일방적인 거예요.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면, 그가 약속 시간에 늦게 온 이유가 있어요.
그런데 자기 생각 밖에 못하니까, 그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 보면 이해가 될 만한 것들이 있는데, 오히려 내가 위로해 줘야 될 수도 있는데..
근데 화가 나 있으면, 일방적이기 때문에 상대의 상황을, 상대의 이야기를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고 마구 쏟아붓다 보면 분노를 해서, 영적 생활에 실패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거죠.
▲2. 두 번째는 일어난 <분노를, 빨리 해소>해야 됩니다.
바울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엡4:26~27
분을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분노하지만 죄를 짓지 말라!' 여러분, 분노는 아주 가벼운 짜증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어요.
그러면 작은 불이 큰 집을 태웁니다. 분노는 오래 끌수록 위험하고 손해가 많다는 거죠.
왜요? 해가 지도록 분을 품고 있으면 내가 분을 품고 있는 동안에, 마귀가 장난 한다는 거죠.
마귀가 틈탈 시간이나, 빌미를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틈이나 기회를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분을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마귀가 내 분노를 어떻게 이용해서 결국 마귀가 이 상황을 어디로 끌고 갈지 몰라요. 무슨 끔찍한 일이.. 얼마나 비극적인 일어날지 모릅니다.
바울의 말씀은, 이 말씀은 너무너무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엡4:26~27
가능하면 분을 내버려 두지 말고, 빨리 초기에 진압을 하라는 거예요.
여러분, 분노는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어요. 오래 살고 싶거든 분노를 절제할 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옛날에는 소위 홧병으로 죽는 분들이 많았어요. 홧병이 있어요.
화를 다스리지 못하면, 그것이 자기 생명을 단축시킵니다. 분노를 쌓아 놓으면 안 된다는 거죠. 분은 빨리 풀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분노의 감정으로 인한 에너지 소모는 대단한 것입니다. 정서적인, 영적인, 관계적인, 육체적 수명을 소모하게 됩니다.
분노의 감정을 쏟아내다 보면, 자기가 할 일을 못해요, 왜냐면 분노의 강이 엄청나게 세게 흐르고 있기 때문에 다른 걸 할 수가 없어요. 모든 게 올 스톱 됩니다.
내가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분노의 감정이 찾아 올 때 가까운 사람들과 솔직하게 터놓고 대화를 나누고 대화의 노력을 해야 됩니다. 대화는 쌍방적인 거잖아요. 분노는 일방적인 사고방식에서 오는 것입니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론 내리고, 혼자 모든 것을 끝내 버리는... 그런 원웨이 시스템이, 투웨이 시스템으로... 즉 대화를 통하여 풀어나가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3. 평소에 <정서적인 안정감>을 얻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평상시에 평온함을 유지해나가는... 평소에 자기 마음이 깨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이 필요합니다.
감정적 소모가 많은 직업을 하는 사람 일수록, 이런 노력을 많이 해야 합니다. 스트레스나 오래 묵은 중압감, 과중한 책임을 지고 있을 때 정서적 고갈이 빨리 진행됩니다.
많은 짐들을 지고 있는 사람들,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들,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 특별히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감정적 소모가 굉장히 많습니다.
감정 노동 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이 있잖아요. 그들에겐 감정적 소모가 많습니다. 사람을 많이 접촉하다 보면... 감정이 쉽게 고갈됩니다.
목회자들도 성도들을 만나 상담을 하면요. 목회자를 찾아와서 상담하시는 분들은, 이미 굉장히 심각한 상태이고 모든 수단이 다 끝장나고 이제 마지막 단계에 찾아오는 분들이 많아요.
만나서 그런 얘기를 한 2시간 듣고 나면, 탈진이 되어버립니다. 감정소모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가는 거지요.
그러면 여러분 어떻게 돼요? 나도 모르게 드라이해 지는 거죠. 정서가 바닥이 나게 되는 거죠. 그러면 나도 모르게 쉽게 짜증이 나고, 신경질적인 반응이 막 일어나는 거죠.
그런 증상들이 생길 때는, 일을 중단하고 정서적인 회복을 가져야 됩니다. 특별히 이런 정서적 고갈은 관계지향적인 사람보다, 일 중심의 사람들에게 자주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적, 정서적 회복의 시간을 따로 내는... 긴장도 높은 일들로부터 의도적으로 빠져나와야 되는 거죠. 꽉 찬 에어를 빼내는 작업을 자기 자신이 의도적으로 해야 되는 거죠.
억지로라도 여유 공간을 만들고, 정서적인 스페이스를 만들어내는 그런 노력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정서적인 쉼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