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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28~29장 제사와 절기의 규례

LNCK 2022. 10. 5. 20:04

◈제사와 절기 제물의 의미         민28장           2017.07.23.출처, 정리


민수기의 특징은 ‘이야기’와 ‘율법’이 교대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주1)
앞서 26장이 ‘두 번째 인구조사’로 이야기를 다루었고,
또 27장이 ‘슬로보핫의 딸들의 유산’과 ‘모세의 탄원’으로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본문 28~29장은 다시 율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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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8장과 29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절기와 제사에 관한 규례를 다루고 있는 장입니다.

28장 1-8절은 매일 드리는 상번제에 대해
9-10절은 안식일 제사에 대해 
11-15절은 매월 초하루에 드리는 제사
16-25절은 유월절에 드리는 제사
26-31절은 칠칠절에 드리는 제사에 대한 말씀입니다.

29장 1~6절은 나팔절에 관해
29장 7~11절까지는 속죄일 제사에 관해
29장 16~38절까지는 장막절 제사에 관한 말씀입니다.

온통 절기와 제물에 관한 내용이다 보니
읽다보면 지루한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본문 속에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민수기 28장과 29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제물들은
드려도 되고 드리지 않아도 상관없는 제물이 아닙니다. 옵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드려야 하는 정규적인 제물(Regular Offering)입니다.
개인이 자발적으로 개인의 속죄를 위해 드리는 제물과
구별되는 제물이라는 것입니다.

각 절기에 드려야 되는 제물의 내용에 대해서는 주2)를 보십시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이렇게 많은 제물을 하나님께 드려야 했을까요?
장막절만 계산했을 때, 8일간 드리는 제물이 총 216마리고,
1년 동안 드리는 제물의 전체 마릿수는 1,273마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규적인 제물로 1년에 1,273마리의 제물을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민수기 28~29장은 절기 때마다 제물을 드리고,
또 매일 제물을 드리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지금 가나안 땅에 들어갈 준비가 완료된 출애굽 2세대 백성들에게
이렇게 복잡한 제사와 절기에 관한 법을 상세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여러 가지 제사들과 절기들에 관한 내용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중요한 세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1.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풍성한 복을 주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구두쇠가 아니십니다.
저는 성경을 아무리 읽어봐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주셔도 늘 풍성하게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누르고 흔들어도 넘치도록 주시는 복입니다.
아끼고 아껴서 겨우 주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영원하고 풍성한 생명을 얻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복에 관한 말씀에는 늘 ‘풍성하다’는 표현이 들어가 있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1년에 1,273마리의 제물을 드리는 것은 최소한의 제물입니다.
최대한의 제물이 아니라 최소한의 제물입니다. *단체로

백성들은 이 정규적인 제물 이외에도 속건제나 속죄제, 화목제와 같은
개인적, 자발적으로 드리는 제사에 필요한 제물을 하나님께 기꺼이 바쳤습니다.

이런 제물들의 수까지 합하면 엄청난 수의 제물이 될 것입니다.
수천 마리의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정규적인 제물만 매년
1,273마리를 드릴 수 있도록, 그만한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왜 그렇게 많은 제물을 요구하시느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럼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은 한 달에 십일조를 1천만 원을 드리는 것이 좋습니까?
10 만원만 드리는 것이 좋습니까?

1천만 원을 십일조로 드린다는 것은, 한달 수입이 1억이라는 말이고,
10 만원을 드린다는 것은 100만원이라는 말 아닙니까?
여러분들은 전자가 좋습니까? 후자가 좋습니까? 물어볼 필요도 없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규적인 제물은 1,273마리나 되는
많은 양의 제물을 받으시겠다고 하신 것은
그만한 복을 주시겠다는 의미가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제물을 많이 드리라고 했을 때는
그것보다 백배 천배는 더 많은 복을 공급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담겨있는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12만 마리는 주셔야 1,273마리를 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많은 제물을 드리라고 하신 의도는
더 많은 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스크루지 영감처럼
구두쇠 하나님으로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하나님은 풍성한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신약성경에도 현세와 내세에 복을 주시되 풍성한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구절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단어는 풍성함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엡2:4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닫3:6절에도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령 충만을 주시도록 간구하면 풍성하게 주십니다.

딤전1:14절에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빌4:19절에도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쓸 것을 넉넉하게,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가까스로 채워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또 고후9:10절에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엡1:18절에도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라고
바울이 기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현세에도 풍성한 복을 받지만, 무엇보다 내세에 가면
더욱 풍성한 복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풍성한 분이십니다.

외국을 다녀보면 대한민국이 참으로 풍성한 복을 받은 나라라는 생각이 듭니다.
음식이 탁월하고 한강도 참 깨끗하지 않습니까?
유능하고 똑똑한 사람들도 많고, 대한민국은 참 많은 복을 받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국민들은 이렇게 많은 복을 받고도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은 왜 자꾸 그렇게 받고자 하느냐?”고 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불평하는 백성들을 향해 진노하시고 베푸신 복을 모두 걷어 가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풍성한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아직 풍성한 축복을 손에 쥔 것이 아니고, 누리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문을 통해서, 사전 약속을 받은 것입니다.

아직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이니까요.

 

‘너희가 앞으로 가나안에 가면, 최소한의 정규적 제물을 드릴 수 있을 만큼
엄청난 복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은 것입니다.
이 복은 확실하게 현세와 내세를 통해 실현될 복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복을 받게 해 주시도록
늘 기도하고 풍성한 복을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 풍성해야 합니다.
마음이 구두쇠 같아서 어떻게든 아껴보고,
어떻게든 움켜쥐고 절약하려고만 하면 절대로 부유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다 누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원리가 그렇지 않습니다. 쓰고 나눠줘도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우리에게 채워 안겨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2.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를 나누기 위해선, 엄청난 대가가 요구됩니다

죄인이 의로우신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엄청난 대가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끊임없이 희생제물을 드려야 하고
매일, 매주, 매달, 매년 제물을 드려야 가능한 일입니다.

지속적으로 번제를 드려야 합니다.
밀가루와 기름을 섞은 소제와 최상급 포도주를 붓는 전제는 반찬과 같은 제사이죠.
여기에 매일 아침저녁 규칙적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것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죄인은 절대로 하나님께 그냥 나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인은 피 흘림이 있어야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교제를 지속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백성들은 제물을 온전히 불태워드리듯이
그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복을 받고, 또 헌신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고도 헌신하지 않는 사람은 배은망덕한 사람입니다.
풍성한 복을 받았으면, 하나님께 더욱 충성하고 헌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사실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던,
지옥에 가야만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약속에 대하여 외인이었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으며,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런 우리와 관계를 회복시키시고 교제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교제를 지속해 나가기 위해서는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도 매일 제물을 잡아야 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번거롭게 제물을 잡아 하나님 앞에 드릴 필요가 없어요.
신약시대에는 짐승 제사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런 제물들은 모두 그림자요 예표입니다.

참되고 영원한 속죄제물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 분이 단 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에
더 이상 구약의 제사들을 드림으로 하나님과 교제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죽이셨기 때문에
더 이상 구약의 제사가 필요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다만 그 의미와 담긴 뜻이 신약에도 계속 내려오는 것입니다. 형식은 사라졌지만.
아니면 구약성경을 떼 내서 내버려야죠.)

벧전3:18절에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심으로써
그 피를 믿는 자는 모두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옥을 벗어나 천국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천국에서 만날 사람들입니다.

지옥에 들어가면 얼마나 큰 고통이 있는지,
성경은 불로 구더기를 소금치듯 하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일생을 살다가 죽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삶을 살았는가 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갖고 있던 부, 권력, 명예와 같은 것들은
사실 그 날이 되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 이 땅의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나라에 충성한 사람이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믿는 자들에게 상을 주실 것입니다.

히9:12절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짐승 제사를 드릴 필요 없이
그저 예수님의 속죄 제사를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의 제사를 드리사
내 죄를 영원히 사하셨다는 사실을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얻었지만
날마다 하나님께 헌신하며 살아가야 할 의무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헌신의 의무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 제도의 의미와 정신이 신약에 계속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12:1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제사를 드리는데 우리 몸으로 드려야 합니다.
죽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산 채로 희생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헌신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성도의 영적 예배라고 했습니다.

눅9:23절에도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기록되었죠.

자기를 앞세우지 말고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헌신의 삶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되었으며, 영원하고 풍성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내가 네게 풍성한 복을 주었으니
너는 내게 헌신하며 살아가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을 큰 요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죗값을 위해 치르신 대가를 생각하면
이것은 대단히 합리적인 요구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도록 내어주셨는데
하나님께 그 작은 헌신도 하지 못한다면 어찌 성도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모든 헌신은 하나님 편에선 헌신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것들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배은망덕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도록
우리의 몸을 드려 아낌없이 헌신의 의무를 다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풍성한 복을 주시고 교제를 회복하셨습니다.
그리고 헌신하는 백성들에게 더욱 큰 복을 더해 주시는 은혜로운 분이십니다.


◑3. 이스라엘의 절기와 제물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드러낸다

골2:16~17절에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은 모두 그림자고
그 실체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 이시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킨 절기와 제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그림처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상번제>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로 죄인들의 모든 죄를 씻어주셨음을 믿고
매일 그리스도께 헌신하며 살아가야 할 원리를 말씀하고 있고,

<안식일 제사>는 지난 1주일간에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죗짐을 내려주시고
안식을 누리게 하신 것과 천국의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실 것을 말씀합니다.

<월삭 제사>는 지난 1개월의 삶을 돌아보며 죄 씻음을 받고
새로운 달을 그리스도께 헌신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아래의 절기들은, 1년에 한 차례씩 지키는 절기들입니다.

<유월절>은 하나님이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애굽 사람들의 장자들을 죽이는 재앙에서 건져주신 것,
즉 그리스도의 피는 영원한 사망과 저주에서 건져주시는 피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요1:29절에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유월절의 어린 양이 되셨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무교절>은 유월절 다음 7일 동안 지키는 절기인데 무교병을 먹는 절기입니다.
어린 양의 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절제되고
(누룩 없는)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상징하며,

무교절 7일 기간 중에 첫날인 <초실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 초실절에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죽어도 다시 부활하여
썩지 않는 몸을 입고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맥추절>은 초실절로부터 일곱 번 안식일이 지난 그 다음 날입니다.
이 날은 밀 추수가 시작되는 절기입니다.
오순절이라고도 하는 이 맥추절은 성령이 강림하셔서
영혼의 추수를 시작하신다는 것을 예표하는 절기입니다.

<나팔절>은 한 해를 보내고, 새 한 해를 헌신하는 절기입니다.

신약에서 나팔소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상징하는데,
역사 시대가 끝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시대가 이르게 될 것을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우리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생명의 부활을 해서 영원한 축복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대속죄일>은 개인적인 죄, 민족적인 죄를 속하는 날입니다.
두 마리의 염소 중 한 마리를 안수하여 광야로 보내게 되는데
이를 ‘아사셀 염소’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마리는 죽여서 지성소 안 속죄소 위에 그 피를 뿌립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난 1년 간 지은 죄들을 용서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택자들의 피가 사함 받게 될 것을 예표합니다.

마지막으로 <장막절>은 모든 곡식과 밀, 과일 등을 추수한 이후에
집 앞 마당에 작은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생활을 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장막절은 초막절이라고도 불리는데, 초막 속에서 생활을 하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간 고생하며 살았던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주신 복에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장막절이 되면 사람들은 초막 속에서 곡식도 먹고 과일도 먹으면서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우리나라도 지금은 정말 잘 사는 나라가 되었지만
보릿고개를 넘던 시절이 엊그제 아닙니까?
우리도 극도의 굶주림에 허덕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들이 그리 오래 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 준 것이 무엇이냐고 불평하면
우리의 후손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또 다시 누군가에게 짓밟히는 날이 이르게 될지 누가 압니까?

우리의 고생했던 때를 쉽게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도 가끔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어려웠던 그 시기에
하나님이 베풀어주셨던 사랑과 인도하심, 돌보심 등에 감사하는 시간을 갖고,
그것들을 후손들에게 가르치는 날을 정해서 지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리라 생각합니다.

후손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복들을 지나치게 당연한 것으로만
생각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살 수 있었던 것은
어려웠던 때를 기억하고 절기를 지키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제사와 절기는 한 마디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복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복을 주시되 아주 짜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매우 풍성하게 주시는 분이시며, 성도는 이 사실을 잊지 않고
자신의 몸을 산 제사로 드려 매일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우리는 매일, 매주, 매달, 매년,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은 속죄가
얼마나 위대한 은혜인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이 얼마나 존귀한 분이신지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그리스도께 헌신한 삶을 살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와 우리 모든 후손들이 현세와 내세에
풍성한 복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복을 누리고,
저 천국에서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적용

구약의 모든 의식법, 제사법은 그리스도께서 영단번에 이루신 법에 의해
신약에서 폐지되었다고 보는 것이.. 큰 그림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구약의 율법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구약의 절기법은, 신약에서 지키지 않지만.. 부활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부흥회 등
그 '정신'으로 지킵니다.

구약의 상번제(매일 아침 저녁 번제)는
신약의 새벽기도나 큐티 등으로, 저녁기도회 등으로 지킵니다.

구약의 안식일 법은, 신약에서 지키지 않지만..
그 정신을 신약의 '주일'로 계속 이어 지킵니다.

구약의 월삭 제사는
오늘날 ‘월삭 예배’로 드리는 교회들도 있고,
과거에 ‘여전도회 헌신예배’ 등으로 드린 적도 있었습니다.

(만약 오늘날 신약의 우리가, 구약 율법의 의식법, 제사법의 의미나 정신마저
이어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성경전서에서 구약을 떼어서 내버리고, 얇은 신약만 보겠다는 것인데,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제도는 사라졌지만, 그 정신이나 의미는 오늘날에도 계속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다니엘이 모델이 됩니다.

   

단9:21 "곧 내가 기도할 때에 이전에 환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 생활을 하던 바벨론에서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성전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다니엘은 제사를 드리는 시간을 기억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개인적으로 가졌던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성전이 없는데도.. 개인적으로 그는 '상번제(매일 번제)'를 드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신실한 그에게, 하나님은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주셨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죠!
   
우리가 유대교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유대교인들에게 배워야 하는 점 한 가지는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에 나오는 절기들을,
지난 3500여년 동안, 여전히 계속 지켜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오순절을..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날짜는 다르지만 의미가 비슷하죠.)
초실절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대속죄일을.. 고난주간, 성금요일로 지키고요.

또 7일간 지킨 절기들도 있었습니다. 유월절에 이은 무교절이 7일, 총8일
초막절(수장절, 장막절)도 총8일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과거에 부흥성회를 며칠씩 열기도 했죠.
(대신에 요즘은 특별새벽기도회를 가지기도 합니다)
지금은 모두 개인주의가 발달해서, 그런 성회를 모이는 것을 다들 싫어하지만
원래 성경의 정신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 가운데 교회의 '주중 행사'들을 점점 더 멀리하고,
오직 주일날 오전에만 신앙생활 하겠다는 신자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구약을 모르기 때문이고,
구약부터 내려오는 그 신앙의 의미와 그 뜻을 망각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귀차니즘'이, 오늘날 우리의 신앙을 점점 더 세속화, 후기 기독교화로
내몰고 있습니다. 이런 일에 반성과 경각심과 돌이킴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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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민수기의 특징은 내용 연결이 어색한 부분들이 곳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야기>와 <율법>의 다소 이질적인 내용이
혼합해서 배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는 <이야기> 와 *1~19장
<율법> 이 두렷하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20~40장

신명기에도 회상하는 <이야기> 와 *1~4장
<율법>의 규정이 구조적으로 적절하게 배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31장
마지막에 모세의 최후를 또 <이야기>로 구성하고 있죠. *33~34장

그런데 민수기에는.. <이야기>가 나오다가 <율법>이 툭 하고 튀어나옴으로써
이야기가 끊어지는 패턴이 있습니다.

오늘 민수기 본문도 그런 구조입니다.

민1~4장까지 <이야기>가 나오다가
5~6장에서 <율법>이 나옵니다.
7장에서 <이야기>가 나오다가
8~10장에서 <율법>이 나옵니다.
11~14장까지 <이야기>가 나오다가
15장에서는 <율법>이 다시 튀어나옵니다.

16장부터는 다시 <이야기>이고요.
16장에서는 ‘고라 자손의 반역’ 이야기가 나오고
17장에서는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18장에서, 본문이죠. 다시 <율법>이 나옵니다.

이렇게 율법과 이야기가 교차해서 나오는 것이, 민수기 구조의 특징입니다.


주2)
28장 1~8절은 상번제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상번제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항상 드려야 하는 제사인데
숫양 2마리를 잡아서 아침과 저녁에 한 마리씩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추가로 밀가루와 기름을 섞은 것을 불로 태워 소제를 드렸고,
포도주를 부어서 하나님께 전제를 드렸습니다.

쉽게 말하면 소제와 전제는 반찬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양 1마리를 잡아 드리는 번제가 밥과 같은 주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365일 쉬지 않고 계속 드리는 것이 상번제입니다.

28장 9~10절은 안식일 제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에 드리는 제사입니다.

상번제에서 숫양 2마리를 추가해서 번제로 드리는 날입니다.
그러니까 안식일 제사는 숫양 2마리를 추가하니
총 4마리의 양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28장 11~15절은 월삭 제사(매월 초하루)에 관한 말씀인데,
수송아지 2마리와 숫양 1마리, 그리고 1년 된 숫양 7마리,
도합 10마리를 추가로 번제로 드리는 것입니다.

물론 상번제도 드리는데, 숫염소 1마리를 추가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매월 1일에 드리는 월삭 제사에는 총 13마리의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28장 16절은 유월절에 관한 말씀입니다.
상번제 이외에 다른 제물을 드리지 않았고,

이어지는 17~25절까지는 유월절 다음 날부터 7일간 지키는
무교절에 관한 말씀인데
7일 간 매일 월삭 제사와 동일하게 드려야 했습니다.

월삭 제사에 총 13마리의 제물이 필요했으니
7일 동안 드리면 총 91마리의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무교절 7일 동안은 매일 13마리씩 제물을 드리고
7일째 되는 날은 노동하지 말고 성회로 모이라고 했습니다.

28장 26~36절은 칠칠절이라고도 하고 오순절, 맥추절, 초실절이라고도 부르는
절기에 관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초실절은 보리의 첫 열매를 드리는 초실절과 구분됩니다.
무교절 7일 동안에도 초실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보리의 첫 열매를 드리는 날이었고,

여기서 말하는 초실절은 밀의 첫 열매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명칭이 같아서 혼동할 수 있지만
보리의 첫 열매는 무교절 가운데 있는 초실절을 가리키고,
밀의 첫 열매를 드리는 것은 별도로 칠칠절, 또는 초실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이 날 드리는 제사는 월삭 제사와 동일합니다.
13마리의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29장 1~6절은 나팔절에 관한 말씀입니다.
7월 1일이 나팔절인데, 1일은 월삭 제사를 드리는 날이기 때문에
나팔절기가 되면 기본적인 월삭 제물(13마리)에 10마리를 추가해서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나팔절에는 23마리의 제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29장 7~11절까지는 속죄일 제사에 관한 말씀인데, 속죄일은 7월 10일입니다.
이날에 드리는 제사는 상번제 제물인 숫양 2마리에 숫염소 1마리를 추가해서
총 3마리를 드리고, 나팔절에 드리는 10마리의 제물을 추가해서
총 13마리의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날입니다.

그리고 29장 16~38절까지는 장막절 제사입니다.
장막절은 7월 15일부터 8일 동안 지키는 절기인데,
절기 첫날에는 수송아지 13마리와 숫양 2마리, 1년 된 숫양 14마리까지 해서
총 29마리를 드리고,
상번제 제물에 숫염소 1마리를 더해서 도합 32마리를 드립니다.

그리고 나머지 6일 동안에는 수송아지를 한 마리씩 줄여가면서 제사를 드립니다.
둘째 날에는 31마리, 셋째 날에는 30마리, 넷째 날에는 29마리,
다섯째 날에는 28마리, 여섯째 날에는 27마리를 드리고
일곱째 날에는 26마리까지 드린 후에 마지막 8일째가 되면
수송아지 1마리와 숫양 1마리, 1년 된 숫양 7마리를 드립니다. 대단히 복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