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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30장 그 입에서 나온 대로

LNCK 2022. 10. 8. 18:37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민30장              2009.11.22.출처
 
 
일본 맥도날드 체인의 창시자인 '후지다 덴'이라는 사람은
일본의 역대 부자 5위 안에 드는 것으로 알려진 재벌입니다.
 
그는 '긴자의 유대인'이란 별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그가 사업을
시작할 때 무엇이든지 유대인들이 하는 식으로 따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2차 대전 후에 그는 미국에서 어떤 상품 제작을 주문받으면
그것을 일본 내에 있는 공장들에게 하청을 주어 만들게 하고
그 완성된 제품을 미국의 주문 회사에 납품하면서
그 중간 수익을 취하는 무역 중개업 회사를 차려서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역시 어떤 미국 회사로부터 주문을 받게 되었을 때
그는 하청회사들에게 그 모든 제품들을 미국 회사에 납품하기로 약속한 날짜보다
두 달 전에 완성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왜냐면 일본에서 미국까지 화물선으로 그 제품을 운송하는 데
적어도 한 달 이상 걸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공장들의 작업이 늦어지는 바람에 그가 하청회사들로부터 제품을 받게
되었을 때는 그 납품 약속 날짜가 겨우 며칠밖에 남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는 한참 고민하다가 어쨌든 미국회사로부터 신용을 잃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그 제품을 배로 보내는 것을 포기하고, 제트기 한 대를 전세를 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수십 년 전에 점보제트기를 전세 낸다는 것은
엄청난 비용이 드는 것이었고, 물론 그는 그 거래에서 손실을 볼 수밖에 없었죠.
 
설상가상이라고 그 사건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똑같은 일이 한 번 더 벌어졌습니다.
 
하청 공장들이 또다시 약속한 날짜를 지키지 못하는 바람에
배로는 도저히 기한 내에 납품할 수 없는 형편에 처했던 것입니다.
 
그때 후지다 덴 씨는 회사의 존망이 흔들리는 재정적인 위험을 감수하면서
이번에도 또 제트기를 전세내어 그 물건을 공수해서
미국 회사에 기한 내에 납품을 했습니다.
 
미국의 회사들은 그가 비행기를 전세 내어서 납품한 사실을 알았지만,
그에게 연락할 때는 그저 "보내 준 물건이 제 시간에 잘 도착했다. 감사드린다”
라는 간단한 메시지를 보내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사건들을 통해서 그 후지다 덴 씨는 미국의 회사들로부터
상거래에 있어서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를 얻을 수 있었죠.
그것은 바로 '신용'이었습니다.
 
"저 사람은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다"라는 이것 한 가지를
미국의 거래처 사람들에게 확신시켜 주게 되었고,
바로 그 때부터 그는 '긴자의 유대인'이란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그의 사업은 번창일로에 나서서 결국 굴지의 대재벌이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손해처럼 보이더라도, 일단 한번 약속했던 것은 꼭 지키는
'신용' 하나가 결국 그에게는 엄청난 자산이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바로 코앞에 두고 모압 평지에 진 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가나안을 향하여 본격적인 진군을 하기 위하여
대열을 정비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마지막 훈시를 듣는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죠.
 
바로 앞의 민28장과 29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희들은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도 내게 예배를 드리고
제물을 바치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해야 한다."라는 하나님의 훈시를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거기에 이어서 "너희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내게 약속한 서원들을 항상 제대로 지킬 수 있겠지?"라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다짐시키시는 장면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정말 축복받는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약속한 서원들을 지키는 신용'을 꼭 발휘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죠.
 
이제 2009년도 마감을 한 주일 남겨 두고 있는
오늘 저와 여러분은 신자가 하나님 앞에서 영적 신용을 지키기 위하여
그 서원한 것들에 대하여 어떻게 행해야 마땅한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 앞에서의 “서원”은 성숙된 신앙인이 누릴 수 있는 은혜생활입니다.
 
본문 민30:1~2절에 "1모세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두령들에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니라
2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
 
여기에 보면 "서원"이란 말과 "서약"이란 말이 나타나고 있는데,
먼저 '서원'이란 히브리어에서 어떤 '적극적인 약속'을 나타낼 때 쓰는 말입니다.
즉 서원하는 사람 편에서 '무엇을 하기로 약속'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자녀를 하나님 앞에서 언약의 후손으로 키울 것을 약속하면서
유아세례를 받게 하는 것이라든지, 일정한 헌금을 바치기로 작정하는 것들이
바로 이런 '서원'에 해당되는 것들의 예가 됩니다.
 
그에 비해서 "서약"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에서
어떤 '부정적인 맹세'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즉 '무엇을 하지 않기로 약속'하는 것입니다.
 
바로 본문에 나와 있는 대로 "마음을 제어하기로"
즉 '음식을 먹지 않고 기도하는 금식'이라든지
혹은 '술담배를 완전히 끊겠다고 맹세'한다든지 하는 것들입니다.
 
이 두 종류의 약속들에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무조건적으로' 하는 약속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서원' 하면 어떤 '조건적인 약속'인 줄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내게 이러이러하게 해 주시면 저도 이러이러하게 하겠습니다‘
라는 것이 서원의 대표적인 문구인 줄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조건적 서약은 따지고 보면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이며
결코 서원의 본질이 아님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참된 서원이란 하나님께 어떤 조건을 내놓지 않고,
아니 이미 받은 은혜와 축복에 감사하면서
자신을 더욱 온전하게 바치고자 하는 마음에서
무엇을 하기로, 혹은 무엇을 하지 않기로 약속하는 것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여튼 그 어떤 종류의 서원이든지 간에 일단 하나님 앞에서 약속한 것이면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여기 '파약하다'라는 말의 원문은 '신성을 더럽히다, 모독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그 약속한 서원을 지키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아니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고 계시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불신자들의 온갖 불신앙적인 것들로 인하여
'신성모독'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바로 신자들로부터도 그에 못지않은 신성모독을 당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어길 때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세운 서원을 준행하지 아니하는 것은,
사람이 스스로 보기에는 깜빡 잊어 먹은 실수 정도로,
혹은 그럴 수도 있는 애교 정도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자로부터 서원에 대한 파약을 당하시는 것을
마치 불신자들로부터 당신의 거룩하심을 모독당하시는 것과 똑같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계시는 것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로 그런 까닭에 서원이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성숙된 신앙인에게만 허락된 은혜요 특권인 것입니다.
 
▲2절의 말씀은 일반 성인 남자들을 두고 하신 것이지만
여자들에게도 그와 똑같은 명령을 내리시고 있는데,
바로 나중에 9절에서 "과부나 이혼당한 여자의 서원이나
무릇 그 마음을 제어하려는 서약은 지킬 것이니라"고 명하신 말씀입니다.
 
당시 사회에서 여자가 과부가 되든지 이혼을 하게 되면
자기 아들에게 의지해서 살든지 아니면
친정으로 돌아와서 아버지 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 그 여자는 다른 모든 사회적인 일들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자기 아들이나 자기 아버지의 피보호자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과부나 이혼녀가 하나님 앞에 무슨 서원을 했다면
그 서원의 내용 역시 이 본문의 다른 예들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아들이나 아버지에게 재인가를 받아야 마땅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상식적인 예상을 깨뜨리시고
그런 여인들의 서약은 타인의 재인가가 필요 없이
당장 유효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록 경제적으로는 종속되어 있다 할지라도,
그런 여인은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는 이미 독립한 상태가 되어 있기 때문이었죠.
 
이처럼, 사람이 서원을 세우고 지키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성숙한 신앙 인격체가 되었음을 인정받는 것이며,
그런 독립적인 신앙 양심을 발휘하는 대표적인 기능이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부모님이 사 주는 대로만 옷을 입다가
점점 자라나 자기 개성이 뚜렷해지면서부터는
자기가 직접 고른 옷만을 입으려 할 것입니다.
 
남편이 운전해 주는 차만 얻어 타던 아내가 자기도 면허증을 따게 되어서
손수 운전해서 나가게 되는 날이면 무언가 '홀로 서기'를 해 내었다는
기쁨에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직접 무엇인가를 서원하고
스스로 그것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은 바로 그와 같은 뿌듯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서원은 신앙생활 유년기의 유치함과 사춘기의 방황을 완전히 벗어난
성숙한 성도가 스스로 은혜 받은 대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작정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그저 부모가 시키는 대로만 하고 교인들이 하는 대로만 따라 하다가
이제 자기 자신만의 서원을 통하여 개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긴밀히 영위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은
실로 자축할 만한 영적 홀로서기의 성장인 것입니다.
 
이처럼 서원이란 자신을 어떤 제약 속에 묶어 놓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혼자서 약속을 맺고 스스로 지킬 수 있을 만큼
성숙한 신앙 인격체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실로 은혜로운 특권임을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처음에 서원할 때에 성급하고 경솔한 마음으로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3~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영적으로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서원한 경우를 예로 들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특히 여자 아이의 경우 결혼하기 전까지는
모든 면에서 아버지의 권위 아래 속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여자 아이라고 해서
아무 서원도 못하는 것은 또한 결코 아니었습니다.
 
비록 어릴지라도 나름대로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하겠다는 서원,
혹은 무엇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할 수는 있었습니다.
 
딸이 그런 서원을 했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그 서원이 합당한 것이면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동의를 표했고
그러면 그 서원은 유효한 것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보기에 그 딸의 서원이 어린 탓에
무엇을 잘 모르고 한 것이라고 판단될 때에는
바로 그 자리에서 그 서원을 취소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비록 그 아이의 입에서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저렇게 하겠다는 말이 나왔다 해도
그것이 영적으로 합당한 것이 아닐 경우에는, 아버지가 그것을 취소하더라도
결코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지는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비슷하지만 또 조금 다른 경우가 뒤이어 본문에 언급되고 있습니다.
6~8절에 보면,
 
이것은 지금 막 결혼하기 직전 약혼 상태에 있는 여자의 서원인데
그런 경우에 그 여자는 자기 아버지에게 확인하는 대신에
곧 결혼하게 될 장래의 남편에게 그 서원을 재가받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서원을 준행하려 할 때 현실적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사람이
바로 남편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엇을 바치기로 서원했으면 남편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와야 할 것이고
자녀에 관해 나실인의 서약을 했으면 당연히 남편 역시 아버지로서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니,
그런 경우에 여자 혼자 미리 다 결정해 놓고 결혼 후에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그 서원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약혼녀의 서원에 대하여,
미래의 남편 역시 그것을 인가해 줄 수도 있었고,
혹 자기로서는 동의할 수 없는 서원을 약혼녀 편에서 "경솔히 그 입에서 발했으면“
또한 자유롭게 바로 그 자리에서 취소할 수도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서원을 받으실 때
얼마나 공정하고도 합당하게 받고자 하시는지를 잘 보여 주는 것입니다.
 
무조건 입에서 말만 떨어지면 어떤 서원이든지
절대로 취소 못한다는 식으로 못 박지는 않으셨습니다.
 
그 서원이 만일 신앙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저 엉겁결에 발한 것이든지,
한쪽에서만 일방적으로 세우고 상대방도 억지로 따라하도록 강요하는 경우
같은 것은, 비록 서원은 분명히 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서원 자체가 효력 없는 것이라고 인정해 주셨던 것입니다.
 
즉 이 본문의 말씀은 '서원한 것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결코 아니라
'서원의 동기나 과정에 문제가 있을 경우에
그 서원은 그 자체가 무효한 것이다.'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물론 서원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것이며
또한 서원하는 쪽의 신앙적 성숙을 나타내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서원을 남발해서도 아니 됩니다.
 
그냥 충동적인 기분이나 주변의 분위기에 끌려서 성급한 서원을 하는 것은
이미 하나님 편에서부터 인정해 주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유아세례를 받는 자기 자녀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서원을 맺어 놓고도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지 아니하여
그 자녀를 성경 말씀과 기도와 교회생활 중심으로 양육하지 아니하면
유아세례식 그 자체는 사실상 허례허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부부가 합심으로 기쁘게 작정해야 할 헌금을
어느 한쪽이 제 마음대로 서원해 버리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가 이미 하나님 앞에 약속했으니까 당신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식으로
강요하는 것 역시 결코 합당한 서원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준비되지 않는 상태의 성급한 서원이나
양자가 함께 해야 할 약속을 일방적으로 하는 서원은
비록 자기 입에서 말은 떨어졌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의미도 효력도 없는 서원이 되고 마는 것을 기억하면서
항상 기도로써 신중하게 준비하고 진지하게 서원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온전하게 세워진 서원은, 그 후에 상황이 바뀌어도 꼭 지켜야만 합니다.
 
9~12절에 보면
이미 결혼한 여자가 남편과 살고 있을 때 서원하는 경우인데
기본적인 내용은 앞에 나왔던 약혼녀의 경우와 같은 것입니다.
즉 그 서원을 남편이 인정하면 유효하고 금하면 무효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보기에는 서원이 합법적으로 무효가 될 만한 경우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경우를 13~16절에 언급하고 있는데,
여기에 보면 "그 남편이 들은 지 얼마 후에 그것을 무효케 하면
그가 아내의 죄를 담당할 것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들은 지 얼마 후에"라는 것이 이 내용의 초점입니다.
아내가 어떤 서원을 했을 때, 바로 그 순간에는 남편도 '무언의 동의'를 했습니다.
 
그 서원이 신앙적으로도 합당한 것이며
남편으로서 도와주는 데 있어서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동의했던 것이며, 바로 그 순간부터 그 서원은 이제 유효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남편의 마음이 바뀐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될 수 있습니다.
 
아내가 서원을 지키느라고 금식하다 보니
남편에게 반찬해 주는 것도 전보다 시원치 않아져서 그랬을 수도 있고,
헌금을 작정했는데 얼마 후부터 갑자기 수입이
이전보다 줄어들게 되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여튼 서원했을 때와는 달리 나중에 가서 그 어떤 사정이 바뀌게 되었고,
그래서 남편 쪽에서 그 서원을 못 지키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경우를 두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그것을 무효케 하면 그가(남편이) 아내의 죄를 담당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남편의 권위로써 억지로 그 아내로 하여금 더 이상 서원을 지키지 못하도록
막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렇게 될 때
그 남편은 그 서원을 어긴 죄를 자신이 지게 된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즉 좀 사정이 달라졌다고 해서
지금에 와서 그 서원을 함부로 무효시킬 수 없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들을 때에 그 아내에게 아무 말도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서원을 처음 작정할 때 성숙한 독립적 신앙 인격체로서 진실하게,
혹은 부부가 동의하여 하나님 앞에서 합심으로 약속했다면,
그처럼 하나님 앞에서 맺은 고귀한 약속을 약간의 현실적인 상황 변화를 이유로
깨뜨릴 수는 결코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얼마나 쉽게 서원을 파기하고 있는 것이겠습니까?
우리는 스스로의 논리에만 합당하다고 여겨지면
처음에 하나님 앞에서 분명히 맺었던 서원들을
자기 혼자 일방적으로 간단하게 무효화시켜 버립니다.
 
조금만 일상 계획이 바뀌고 바빠지면 연초에 하나님 앞에서 약속했던
'청지기 서원'들을 어기는 것쯤은 아주 예사로 합니다.
 
건축 헌금을 작정해 놓았다가도 그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로 가게 되면
하나님 앞에서의 맺었던 그 약속도 자동적으로 무효가 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11월 말의 회계연도 마지막 주일만 지나면 그 해에 밀려 있던
십일조나 월정회비 같은 것들은 다 '자동 말소'가 되는 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정말 신자라는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그처럼 '만홀히' 여길 수 있는 것입니까?
친구 사이에서도 결코 행할 수 없는 철면피 행동을,
사회생활하면서 거래처 사람들에게도 결코 저지를 수 없는 불법적인 일들을
어떻게 감히 하나님 앞에서 태연하게 저지를 수가 있는 것입니까?
 
서원을 지키지 아니하는 죄는 결국 그 자신이 '담당'하게 될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아무리 형편이 바뀌고 상황이 달라진다 해도, 일단 하나님께 한 번 맺은 서원은
꼭 신실하게 이행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시편 15:4절에서
'주의 장막과 주의 성산에 거할 수 있는 성도의 자격' 중에 하나는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축복받는 자가 되고자 한다면
먼저 그 하나님 앞에서 약속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함은
어떤 '조건'이 아니라 그저 '상식'이며 '기본'에 불과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 위해서는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을 반드시 지키는 영적 신용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 사회에서도 신용을 지키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지 않습니까?
 
거래처와의 계약을 지키지 아니하면 다음에는 아예 주문도 없을 것이고,
아파트 관리비나 각종 공과금을 제대로 납부하지 않으면
개인신용도가 점점 더 떨어지면서 나중에는 은행 대출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는 얼마만큼 신용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땅 생활의 성공 여부가 바로 거기에 걸려 있는 것이었다면,
오늘날 우리들의 영적 물질적 생활의 축복 여부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 맺은 서원을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반드시 또한 성실히 준행함으로써
올해 연말의 유종지미와 새해에 더해 주실 더 큰 축복까지 꼭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