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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31장 여호와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

LNCK 2022. 10. 9. 23:04

◈여호와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   민31장    출처         *민수기 설교모음
 

기독교가 어느 사회에든지 확산하게 되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성경적인 기독교가 아닌, 그저 사람들의 이성으로 
성경과 혼합하여 이성적인 기독교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입니다. 

18세기 계몽시대에 나타났던 것이 바로 이신론(Deism)입니다. 
이신론은 이성이 만들어낸 신을 하나님이라고 섬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독교 문화가 들어오게 되면 무신론을 취하지는 않습니다. 
유신론자로 하나님을 인정은 하되, 하나님을 인간의 이성 범위 안에서 
인간에게 유익이나 주고, 인간에게 도덕기준이나 제공해주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기독교가 많이 전파되면 어느 사회나 공통적으로 일어납니다.

▲2005년도에 미국의 노틀담 대학의 사회학 교수인 크리스찬 스미스는
미국 10대 청소년들의 종교관을 연구하였습니다. 
그래서 ‘영혼에 대한 탐구’(Soul-Searching)라는 탁월한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이 책은 미국의 젊은 청년들, 미국의 십대들이 어떤 종교관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책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분위기가 미국의 것을 보게 되면 
10년 뒤 우리나라에도 똑같이 일어난다 생각하면 되기 때문에 
미국의 책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 책에서 미국의 십대가 5가지 종교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1) 첫째, 미국의 십대는 무신론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이 존재하신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즉 유신론자들이라는 것입니다. 

2) 둘째, 하나님은 사람들이 서로 친절하고, 서로 잘 지내고, 
서로 공명정대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생각합니다. 

3) 셋째, 종교의 핵심 목적은 행복하고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 넷째, 하나님은 사람의 삶에 일일이 간섭하지 아니하시고, 
특별히 위기에 도움을 청하면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때에 간섭하시지 
일반적으로 늘 간섭하고 역사하시지는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5) 다섯째, 착한 사람들은 죽으면 모두 다 천국에 간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미국의 십대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관이라는 것입니다. 

크리스찬 스미스는 이것을 “도덕주의적이고, 치료적인 이신론이다” 
(The moralistic terafutic deism)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런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기독교가 정통적이든, 이단적이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어떤 종교든 이런 목적을 가지면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사람들은, 정통의 입장에서 볼 때 
좀 이단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는 그런 기독교도 잘 받아들입니다. 

예를 들면 몰몬교입니다. 미국사람들은 몰몬교를 비판하지 않습니다. 
유타 주에 가면 몰몬교가 지배를 하고 있는데 “저거 좀 이단 아니냐?”라고 하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이단이 뭐가 중요하냐?”며 다 받아들입니다. 

“그것을 믿어 사람이 행복해지고 사람 사이에 친절해지고 그러면 되는 것이지 
그 이상 무엇을 요구하느냐?”는 식으로 반응합니다.

이런 도덕주의적이고 치료적인 이신론적 종교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불편한 사상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 심판하신다”는 사상입니다. 

“하나님은 그저 도움을 주시고, 구원을 주시고, 축복을 주시면 되었지 
왜 죄에 대해서 심판을 하시느냐?”며 싫어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사람의 죄를 심판하신다는 사상을 거부한다고 하면 
우리는 민수기 31장을 성경에서 찢어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민수기 31장은 미디안 사람들의 악함에 대해서 
하나님이 심판하신 내용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민수기 31장의 내용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1. 민수기 31장의 내용은 다섯 가지로 구분됩니다
 
▲첫째, 1~12절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의 다섯 왕들과 전쟁하여 
대승리를 거두었다는 내용입니다. 아브라함은 처가 후처까지 3명이 있었습니다. 

 

세 번째 처가 ‘그두라’ 인데, 이 그두라에게서 자식을 많이 낳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만 독자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서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서자들 중 그두라에게서 낳은 6자녀들 가운데 4번째가 바로 미디안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약속의 자녀이고, 나머지는 서자이기 때문에 
이 서자들에게 재산을 많이 주고 이삭의 후손과 같이 살지 말고, 
요단강 동쪽에 멀리 떨어져서 살도록 했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후손인 미디안이 요단강 동편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민24~26장을 보면 이 미디안 사람들이 모압 사람들과 함께 연합하여 
나쁜 짓을 하였습니다.  

민25장에 모압 왕 발락과 미디안의 장로들이 함께 연합하여 못된 짓을 합니다. 
세계적인 점쟁이인 발람이라는 사람의 사주를 받아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해서 
간음과 행음에 빠지게 하고는 바알숭배에 빠지도록 미혹하였습니다. 

미디안 여인들은 인물이 아주 예쁜 여인이 많았는데, 그중에 특별히 ‘고스비’는
시므온족의 족장인 ‘시므리’라는 남자와 함께 모세가 보는 앞에서, 
그리고 시므리 아버지와 형제들이 있는 그 장막에 들어가서 음행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염병에 걸려서 다 죽어 가는데도 뻔뻔스러운 행음을 하니 
그 당시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인 비느하스가 창을 들고 장막에 뛰어 들어가 
남녀를 한 창에 꾀어 죽임으로써 하나님의 진노가 그치고, 염병도 그치게 되었다
는 것이 민25장의 내용입니다. 이 민25장이 유명한 싯딤의 바알브올 사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압을 죽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신기하게 생각합니다. 

모압 사람들이 사실은 싯딤 사건의 주동자이고 발락 왕이 주동자이지만, 
모압 사람들은 모두 죽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디안 사람들에 대해서는 모두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고스비 때문에 미디안 사람들에게 대단히 진노하셨습니다. 
민25장 14~17절을 보면 “죽임을 당한 이스라엘 남자 곧 미디안 여인과 함께 
죽임을 당한 자의 이름은 시므리니 살루의 아들이요 시므온인의 종족 중 
한 족장이며 죽임을 당한 미디안 여인의 이름은 고스비니 수르의 딸이라 
수르는 미디안 백성 한 종족의 두령이었더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미디안 인들을 박해하며 그들을 치라”고 말하였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을 원수로 다루고, 원수처럼 대우하고, 
그리고 그들을 죽이라”(Treat the Medianites as enemies and kill them), 

하나님이 모세에게 미디안 사람들을 죽이라고 명령하셨는데, 
모세가 이 명령을 민수기 31장이 될 때까지 지키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또 한 번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 그 후에 네가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라”(민 31:1~2). 

“모세야 너는 이제 죽을 날이 다 되었는데 너 죽기 전에 해야 될 일이 하나 남았다. 

내가 너한테 명령하지 않았느냐? 미디안 사람들을 죽이라”라는 말입니다. 

미디안 사람들을 이스라엘 사람의 원수라고 했습니다. 3절 후반에 보니깐 
“여호와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고 말했습니다. 

미디안 사람은 여호와의 원수입니다. 
그러므로 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전쟁입니다. 
하나님이 나가서 미디안과 싸우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원수는 곧 하나님의 원수인 것입니다. 
이 전쟁은 일반적인 전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전쟁이면 군인을 많이 모아야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에게 군인은 많이 모으지 말라고 하십니다. 
“모세야 미디안 사람들은 왕이 다섯 명이고, 군대 숫자가 많지만, 
너는 열두지파에서 천 명씩만 골라라.” 천 명씩 고르면 일만 이천 명이 됩니다. 

“일만 이천의 적은 군사만 모아라. 저기 가나안 군대는 왕들이 다섯이고, 
숫자가 많아도 걱정할 것 없다. 전쟁은 내가 나가서 한다. 
너희들은 따라오면서 전리품이나 취해라.” 이런 말씀인 것입니다.

또한 6절에 보니 모세가 미디안 여인 고스비를 죽인 비느하스로 하여금 
성소의 기구와 신호 나팔을 들려서 전쟁터에 내보냈습니다. 
전쟁에 나가는 데 하나님께 예배하는 기구는 왜 가지고 나갑니까? 
이것은 일반적인 전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나가서 직접 전쟁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이 앞서 행하신 전쟁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군대는 1만2천 명 가운데 한명도 죽지 않습니다. 
미디안의 다섯 왕은 다 죽였고, 남자들도 모두 죽였습니다. 
여자들과 아이들은 다 포로로 잡았고, 
가축과 재물은 다 전리품(Spoils)으로 취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1만2천 명의 군대는 모압 평야의 진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8절 중반에 보면 아주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 

이스라엘이 이 세계적인 점쟁이 발람을 칼로 죽였습니다. 
발람이 진짜 신령한 점쟁이였다면, 자신이 죽을 짓을 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가짜이기 때문에 이런 짓을 하는 것입니다. 

점쟁이가 가끔 점치는 것을 보면 “이야 저 사람이 저렇게 점을 잘 치면 
왜 점쟁이 노릇을 하고 있나? 점이나 치고 사람 손금이나 잘 보면 
자기의 점을 잘 봐가지고 어떻게 하면 돈 버는지 알아 돈이나 벌어서 살 것이지 
왜 저러고 앉아있나”는 생각이 듭니다. 

발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적인 점쟁이면 자기가 어떤 길이 살 길인지 알고, 
칼날을 피해서 갈 것이지 칼날에 맞아 죽겠습니까? 그러나 발람은 죽었습니다.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고, 전적인 승리를 이스라엘 백성이 거두게 되었습니다.

▲둘째, 13~18절의 내용은 이스라엘 천부장과 백부장들이 포로를 다 잡아서는 
전리품을 취해가지고 이스라엘 진으로 들어왔고, 
모세가 그것을 보고 화를 내는 내용입니다. 

모세가 화를 내는 이유는 여자들을 그냥 데리고 왔기 때문입니다. 
미디안 여자들이 이스라엘 남자들을 미혹하여 음행과 우상숭배에 빠지게 하는 
여자들인데 어떻게 저들을 살려두고 그대로 끌고 왔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세가 화를 내고 진노하여 여자들 가운데 처녀(Virgin), 
즉 남자를 알지 못하고, 사내를 알지 못하는 숫처녀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다 죽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아이들 중에도 남자아이는 다 죽이라고 했습니다. 
남자아이들은 지금은 어리지만 몇 년이 지나면 아버지 원수를 갚는다고 
활동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모세는 죽이라고 하였고 
결국은 처녀만 남게 되었다는 내용이 13~1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셋째, 19~23절은 군인들이나 노비들이나 약탈물이나 전리품이나 이런 것들은 
이스라엘 진 안으로는 그냥 들어올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정결과정을 거친 다음에 이스라엘 진 안으로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군인들은 시체를 만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진 밖에서 일주일을 머무르고, 제 3일에 목욕하고, 제 7일에 목욕해서 
두 번 목욕하여 깨끗하게 하고, 포로들도 그와 같이 하고, 
정결의식을 거친 다음에 이스라엘 진 안으로 들어오라. 

 

그리고 전리품(Spoils)도 불에 견딜만한 것들은 불로 지나가게 하고, 
불에 지나갈 때 녹아버리거나, 타버리는 것들은 정결케 하는 물을 뿌려 
이스라엘 진 안으로 들어오게 하라” 

정결하게 하는 물은 붉은 암송아지를 태워서 그 재를 가지고 만든 물로 
이것을 뿌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복도 모두 다 세탁해서 깨끗케 한 후에 시내에 들어오라” 

일주일을 머무르면서 깨끗하게 하고, 정결의식을 거친 다음에 
이스라엘 진 안으로 들어오라는 내용입니다.

▲넷째, 25~47절은 정결하게 된 전리품들을 적절하게 분배하라는 것입니다. 
“전리품들의 딱 절반은 전쟁에 나간 군인 만이천명에게 주라. 
그러나 군인들은 그것을 다 먹지 말고 그중에 5백분의 1은 하나님께 드리고,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주어라.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전쟁에 나가지 않은 백성들에게 주되 백성들도 
그것을 다 먹진 말고 그 가운데 50분의 1은 레위인들에게 주라”고 배분합니다.

▲다섯째, 48~54절은 천부장과 백부장들이 속전(Ransom)을 가지고 왔습니다. 
금을 가지고 왔습니다. 전쟁에서 이기게 되면 죽은 상대방 적군들에게서 
금시계도 뺏고, 금반지도 뺏습니다. 

이 금을 가지고 모세에게 왔습니다. 
계수를 해보니 군인은 죽은 사람이 한명도 없습니다. 
모두 살아왔으니까 “우리의 생명 대신 속전을 드리겠습니다” 하고는 
금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그 금을 속전으로 받아서 회막에 기념으로 두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죽어야 될 사람이 죽지 않으면 
그 사람이 감사하여 속전을 바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유월절 때에 장자들이 다 죽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은 레위인을 취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레위인을 취하는데 장자의 숫자와 레위인 숫자가 맞지 않으면 
장자 숫자가 많은 것만큼 한 사람당 5세겔씩 속전으로 내라고 말씀하셨고, 

출애굽기 30:13절에도 스무 살 이상의 남자들은 예외 없이 반세겔을 
속전으로 내어서 그 돈은 회막 봉사하는데 쓰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깐 죽어야 될 사람이 죽지 않으면 속전을 냈습니다. 
이렇게 속전을 가지고 왔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 그렇다면 민31장의 내용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네 가지 분명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죗값을 물으실 권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영국의 동물학자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동물만 연구하다가 
성경을 대적하는 책을 많이 썼습니다. 리처드 도킨스 인데, 이 사람이 쓴 유명한 
책이 “하나님을 가지고 사기를 친다”(God delusion)는 내용입니다. 

우리 말로 ‘만들어진 신’이라고 번역이 되었는데, 
이 책이 젊은 사람들의 신앙을 엄청나게 오염시켰습니다. 
이 책이 하나님을 향해 많은 도전을 하고, 성경의 하나님을 많이 비판했습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성경의 하나님이 민족 말살(Ethnic extermination genocide)을 
하는 잔인한 신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마치 히틀러가 유대인을 6백만이나 죽였듯이, 하나님은 히틀러 같은 존재이다. 
민족 말살을 획책한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그러나 도킨스는 인간의 현실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감히 하나님을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현실은 창세기 1장부터 6장까지에서 다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의 창조자이신 창조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이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시고, 
만물을 다스리는 대리인으로 세우시고, 인간은 만물을 다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원리로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시고,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마귀를 추종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시고, 축복을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싫다하고, 마귀를 추종했습니다. 

그래서 창6:5절에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다” 하셨죠.
그러므로 하나님이 민족 말살만 하신 것이 아니라 인류 말살도 하셨습니다. 

노아 홍수 때에 인구가 한 10억쯤 되었다고 합니다. 
10억쯤 되는 인구를 하나님이 홍수를 내려 인류 말살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한 집안에 의로운 사람이 있었습니다. 노아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여덟 식구를 살려주셨고, 그 노아와 여덟 식구들이 
다시 인류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노아의 후손이 퍼져서 
인류가 되어도 타락한 본성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이 인류가 처한 현실입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으로 죄가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오고,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이르렀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말합니다. 
인류는 죗값으로 죽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도킨스가 생각하는 것처럼 본질적으로 선한 존재가 아닙니다. 
본질적으로 타락한 악한 존재입니다. 죄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고,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류에게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죗값을 물으셔도 하나님은 정당한 분입니다. 

시편 7편 12절에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고 나옵니다. 

하나님이 칼을 가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활을 예비하고 있습니다. 
활시위를 당겨놨습니다. 놓기만 하면 날아갑니다. 맞는 사람은 죽게 됩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향하여 활을 놓으시던지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활을 놓으셔도 부당한 분이 아닙니다. 
인간이 죄인이고 죗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언제 사망을 집행하시든, 인간이 왜 날 죽이느냐고 말할 수 없는 거죠. 
하나님의 권리가 정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활을 당겨놓으시고 이것을 놓지 않으십니다. 
칼을 가시고 쓰시지를 않습니다.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예수를 믿고 여기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활을 놓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가신 칼을 쓰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벌써 활을 놓으셨으면 죽어서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아주십니다. 
죄를 심판할 정당한 권세를 가지고 계시지만 오래 참으십니다. 

악이 차고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 한계를 넘어버리게 되면 
그때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7족들도 하나님이 금방 심판하신 것이 아닙니다. 
창15장 16절을 보면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관영하면 그 때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가서 가나안 7족을 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진노를 보이시고, 심판을 하신 것은 
최후 심판에 대한 예고편일 뿐입니다. 노아 홍수 때는 물로 망했지만 
이 세상은 물로만 망하는 게 아닙니다. 
앞으로의 세상은 불로 망한다고 성경이 분명히 예언하고 있습니다. 

불 심판이 남아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류말살은 한 번 더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의 심판은 예고편일 뿐입니다. 

진짜 심판은 계시록 20장 11~15절에 나옵니다. 
“사람은 모두 다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죽은 후에 심판을 받고, 불못에 
던지우니,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계20:11~15

그러나 자신이 죄인임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죄 사함을 주신 구원자이신 것을 믿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아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서 영생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라고 
계시록 2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는 쓰나미도 일어나고, 지진도 일어나고, 전쟁도 일어나고, 
한번 지진이 일어나면 수만 명씩 죽으며, “하나님이 그러실 수가 있느냐? 
사랑의 하나님이 어찌 그러실 수 있느냐?” 하지만 
하나님은 그럴 권리가 있으십니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 서울을 심판하지 않는 것은 오래 참고 계셔서 그런 것이지 
우리가 그런 대접을 받을 권리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오래 참으시고, 구원하시고, 영생을 주시고, 
영원한 멸망에서 건져 새 예루살렘에서 축복을 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구원받은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활을 놓지 않으셨고, 칼을 쓰지 않으셨기에 우리가 구원받은 것입니다.

▲둘째, 민수기 31장의 진리는 
하나님은 교회를 해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보응이라는 단어가 영어단어로 두 가지가 있습니다. 
‘Avenge’라는 것도 있고 ‘Revenge’라는 것도 있습니다. 

‘Revenge’는 감정을 가지고 보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Avenge’는 감정이 아니라 공의를 집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해치는 자들에게 공의로 집행을 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죗값을 물으시려면 모압과 애굽에게도 물으시지 
왜 미디안만 멸절시키실까요? 

그것은 미디안이 구약시대 교회인 이스라엘 교회들을 미혹해서는 유혹하고 
우상숭배에 빠뜨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교회를 저주했고, 교회를 향하여 전쟁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믿지 않아도 꼬리를 내리고 가만히 있는 사람들은 그냥 참고 계십니다. 
그러나 미디안은 하나님을 직접 대적했기 때문에 
미디안 족속은 그냥 놔두지 말고 죽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구약시대 광야 교회를 대적했기 때문입니다. 

스가랴 2장 8절에 “무릇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눈동자를 미디안이 찔렀습니다. 
그래서 민족 말살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약에도 하나님의 교회를 해치는 사람들에게 보응하신다고 하셨죠. 
로마서 12장 19절에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말씀하셨고, 
데살로니가후서 1장 6절에는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라고 하셨습니다. 

“구리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며 
주께서 그 행한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딤후 4:14). 

하나님은 보응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히 10:31).

오늘날 사람들이 예수가 믿어지지 않고,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꼬리를 내리고 가만히 있어야 하고, 
“하나님, 나도 믿어지도록 은혜를 주옵소서”라고 해야지.. 

적극적으로 대적해서 일어나 하나님을 욕하고, 그리스도를 욕하면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보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어차피 최후심판을 받겠지만, 그 전에 보응이 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짓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모압도, 에돔도 망하지 않은 것은, 가만히 있었기 때문이고  
미디안만 이렇게 망하게 되었습니다. 직접적으로 대적하다가 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보응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셋째, 우리 생명을 위한 속전은 은과 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천부장, 백부장은 전쟁에서 아무도 죽지 않은 것을 감사해서 
전리품 중에 금을 취하여 속전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금과 은은 예표일 뿐입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 1:18~19). 

은과 금이 속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속전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원수에게 희생되지 않고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은과 금을 가지고 속죄를 받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린 양 예수의 피가 속전이 되어 우리의 죗값을 치러 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원수에게 당하지 아니하고, 지옥에 떨어지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에게 항상 감사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예수님이 피를 흘린 것은 마귀에게 죗값을 갚았다고 말하지만 
그런 사상은 옳지 않습니다. 옛날 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에 신학교가 있었는데
그곳에 오리겐이 신학교 교장이 “예수님의 피는 마귀에게 죗값을 갚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속상설’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옳은 이론이 아닙니다. 

마귀가 무엇이라고 예수님의 피를 받겠습니까?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드린 것입니다. 
우리의 죗값을 하나님 아버지께 용서해달라고 자신의 피를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속전이 되어 우리는 죄 사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피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죄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죽어도 천국 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착하게 살아도 지옥 갈 사람입니다. 

 

“나는 착해요. 나는 착해서 이제 예수의 피가 필요 없어요. 
나는 의로워서 예수의 피가 필요 없어요.” 
이런 사람은 반드시 지옥에 떨어져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속전은 예수의 피 밖에 없습니다.

▲넷째, 하나님은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이나 포로나 또 전리품이나 
모두 다 성결의 과정을 거쳐야 이스라엘 진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 와서도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들은 
이 원리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살전 4:7), “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 7:1).

우리 성도들은 영적으로 더러운 것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은 주일이라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내일은 또 점치러가고, 
모레는 또 제사지내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귀신 숭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귀신에게 가서 무엇이든 물어보지 마십시오. 
귀신의 총 두목 발람이 칼에 죽었습니다. 영적으로 더러운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성경이 정결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육적인 더러움인 바람을 피고, 
간음하며, 동성애 같은 것을 하지 마십시오. 다 더러운 것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약해가지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생리적으로 동성애에 빠집니다”
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됩니다. 
“하나님 내가 힘이 약해서 벗어나지 못하니 도와주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은혜를 거저 주십니다. 

“나는 깨끗합니다”라고 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감정적인 더러움인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분노, 이단 사설, 
이런 것들은 다 영과 육으로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가 영과 육의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라 말씀하십니다.

결론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인간이 이성으로 만들어 낸 이신론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예전 허버트 경이 이신론을 체계화 시켰지만, 이신론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인격적 개인적으로 만나는 하나님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을 심판하시고, 
속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자이시며 구원자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진리에 바르게 서야 됩니다. 

이 시대에 교회를 부패시키고, 공격하는 악에 대해서는 
우리가 너무 깊이 관여하지 말아야 됩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교회를 공격하는 악에 대해서는 
현세에서도 심판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하나님을 믿고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