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블로그에서 티스토리 블로그로 이전한 이후, 한 가지 불편은
'교정, 편집'을 마음대로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AI로부터 패널티 받습니다.
그래서 성구 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설교자 별 분류 등은
원래 교정, 편집으로 매일 작업하던 것인데... 이제는 못 하게 되었습니다.
대신에 성구 본문 색인, 주제별 분류, 설교자 분류 등은
몇 달에 한 번, 일괄 업데이트 할 예정이오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죽고자 하는 사람은 삽니다! P1 눅5:8 2021.05.15.녹취
진행 : 김성근 목사 .. (검은색 글자, 괄호)
출연 : 최원 목사 .. 파란색 글자, 괄호 없음
(안녕하세요. 노원한나라은혜교회 김성근 목사입니다.
오늘은 은혜세대교회 최원 목사님 모시고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원 목사님은, 북한에서 탈북해서 중국으로 가신 다음에
같은 탈북민 신분으로서, 탈북민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많은 제자들을 양성했고 또 (사역장 책임자로) 파송했고요.
또 직접 북한으로 잡혀 가시면서,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입으셨던 분이세요.
오늘은 최원 목사님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목사님, 혹시 북한에서
예수 믿기 전에 어떻게 사셨는지부터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네 저를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북한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복무 10년하고... (북한에서는 군복무를 10년 합니다, 여성은 7년)
특별히 제가 군에 입대하면서, 제가 바라고 원하던 것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거는 제가 이제 공산당원이 되는 거였는데, 즉 당증을 갖는 거였는데
제가 어릴 적에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당연히 당원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초등학교 입학해서 보니까.. 아닌 거예요.
당이 우리 아버지의 품, 어머니의 품인데
그러면 우리 부모가 당연히 당원이 되어야 되는데 '당원이 아니다, 이게 뭐야?'
제가 어린 인민(초등)학교 시절을, 늘 이제 모멸감으로 살았죠.
'당원이 아니다. 당에 충실하지 못한 집안이다'
학급의 다른 아이들은 그걸 가지고 그렇게 자랑을 하고
그게 하나의 명예인데 말입니다.
(네, 북한에서는 '당원이냐/ 아니냐' 에 따라서 엄청난 신분 차이가 있죠)
그래서 이제 제가 군에 입대하면서, 사실은 특공부대 그런 곳에 가고 싶었어요.
왜냐면 입당하고 싶어서요. 그래서 학교 다닐 때부터 운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졸업 후 입대할 때, 제가 특공부대에는 못 갔는데, '리수복 중대' 라고 해서
북한 사람은 아마 다 알 겁니다.
(리수복은 전쟁영웅 중에서 유일하고, 큰 가장 큰 영웅이죠)
그래서 김일성이 알아주는 부대고... 그 부대에 입대했는데...
너무 좋은 부대이긴 한데, 대우도 좋고...
그런데 훈련하다 보니까 거기에는 '만경대 혁명학원' 출신학생들도 오는 거예요.
부대가 이름이 있는 부대니까 거기로 모이는 거죠.
그런데 그 친구들은 잠시 거쳐가는 거죠.
그냥 경력만 만들고 가는 거죠.
그런데도 걔들한테는 입당시켜주고, 당원증을 주는데
우리 분대상, 부분대장도 입당 못하고 제대됐어요. 그런 자들 (낙하산) 때문이죠.
제가 충격 먹었죠. 그래서 이제 더 열심히 했죠.
저는 깡다구가 있으니까 어떻게든 잘 보여서 당에 입당을 하려고 했죠.
그래서 제대가 임박한 때인데도, 제가 좀 열심히 하니까
이제 정치지도원이 저를 좋게 봤나봐요.
그래서 저한테 '자네, 입당할 준비를 슬슬 해야지?'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어떻게 해야 더 열심히 하지?' 그래가지고
이제 보니까 제일 힘들게 일하는 데가 이제 화목장이에요. *벌목꾼
그래서 제가 정치지도원한테 얘기해서 '그럼 나를 화목장에 올려 보내주시오!'
지도원한테도, 또한 중대의 다른 사람들한테도 뭔가 모범을 보여줘야 되겠다..
'마땅히 당원이 될 사람이 됐다'는 말을, 제가 듣고 싶었던 거였죠.
그래서 화목장으로 제가 옮겨갔죠. 11~12월에 나무를 베어 끌어내리는데
화목장에서, 제일 몸이 좋은, 저보다 몸집이 두 배 되는 그런 친구들 두 명이
큰 통나무 하나를 메고 내려가게 했어요.
한 5~10미터 가더니, 둘은 도저히 무거워서 못 메고 가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그때 조선노동당원이 되겠다는 불붙는 열정, 그것 때문에
그냥 절반 정신이 나간 상태였죠. 물불 안 가리고 눈에 뵈는 게 없을 때였어요.
'당을 위해서는 진짜 죽으면 죽으리라' .. 하는 열정을 가지고 뛰던 때라
제가 그 두 사람 가운데 들어가서, 제 혼자 그 통나무를 딱 등 뒤로 멨어요.
그리고 '너희 둘은 빠져라!' 그랬어요.
나보다 큰 덩치의 두 사람도, 무겁다고 포기하는 그 통나무를
제 혼자 들쳐메고, 한 2~3백미터를 달려갔어요.
그러니까 그때 정신이 완전히 미쳐있었던 거죠.
이렇게 하다 보니까 결국은 제가 미끌어지면서
그 큰 통나무를 떨어뜨리면서, 그 나무에 깔려서 제 다리가 부러졌어요.
그러니까 통나무가 말도 못하게 무거운데, 그게 제 다리 위로 떨어졌으니까
그 다리 뼈가 부러진 아픔은 말도 할 수 없었어요.
그게 이제 '군의소'에 실려 가서, 이제 깁스하고
이렇게 해가지고 한 15일 됐나? 엑스레이 촬영 하니까 뼈는 붙은 거예요.
문제는 이제 다리가 퉁퉁 부었잖아요. 그거는 아직 가라앉지 않았어요.
촬영해보니까 뼈는 붙어있는 거예요.
그래서 '다리가 붙었네!' 하고서는, 퇴원 허락도 안 해주는데도
내가 그냥 병원을 무단으로 나와가지고, 급하게 화목장으로 또 올라간 거예요.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그러니까 제가 어릴 때 아버지가 당원이 아니었던 그 충격이 너무 커서
'죽으면 죽었지 내가 입당하지 못하면 제대 안 한다!'
뭐 이런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그 퉁퉁 부은 다리를 끌고 절뚝거리며 또 올라가서 나무를 멨어요.
그래서 그걸 인정받아서.. 저는 이제 마침내 조선노동당 당원이 됐죠.
▲됐는데... 참 그렇게 다리까지 하나 바쳐서 당원이 되는 목표를 이루었는데,
그 결과는 사실 처참했죠.
제가 1991년도에 제대했는데, 얼마 안 있어 95년부터 '고난의 행군'이 왔잖아요.
(*고난의 행군 : 1995~99 큰 기근이 들어서 아사자 3백만이 나왔던 기간)
그때 제가 가족을 다 잃었죠. 그렇게 당에 충성했는데..
우리가 그렇게 충성하면 김일성이 우리를 다 먹여주고
쌀밥에 고기 국 먹는 세상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알다시피 3백만이라는 사람이 굶어 죽었고
그리고 저도 아버지, 그 다음에 삼촌이 굶어 죽었고
그 당시에 사람들이 못 먹다 보니까 몸에 면역력이 떨어져 가지고
이렇게 또 전염병이 돌았잖아요.
(전염병이 많이 돌았어요. 콜레라,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등)
그때 저희 아내는 이제 장티푸스에 걸렸어요. 그래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때 생후 7개월된 딸이 있었어요.
저도 결혼 후 3년 만에 얻은 아이라서, 정말 귀한 아이였는데
그런데 엄마가 전염병에 걸렸으니까, 엄마 젖을 물릴 수가 없는 거예요.
젖을 통해 아기가 감염될까봐요.
그냥 우유도 어디서 얻을 수가 없었죠.
그러니까 딸이 그냥 고스란히 굶어죽는 거를, 그냥 내 눈으로 봤어요.
야 나는 아기가, 그렇게 목소리가 크게 소리내서 우는 건 처음 봤어요.
도저히 마음이 아파서 그 울음소리를 제가 들을 수가 없었어요.
그냥 어떻게 내가 방법이 없으니까.. 집 바깥 마당에 나와 있었어요.
어떻게 기근을, 또한 전염병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어요.
결국은 그렇게 우리 딸애가 굶어죽었는데, 15일 가더라고요.
15 일 동안 그렇게 울다가 죽었는데...
그래서 이제 더 이상 나도 살 의욕을 잃어버렸죠.
철길에 나가서 누워 있기도 해보고
죽으려고 깡 술을 두병 마시고 안주도 없이...
그냥 살 의욕이 하나도 없었던 거죠.
근데 뭐 정전이 자주 돼서 그런지, 기차가 지나가지 않았어요. (제가 못 죽었죠)
그러니까 (술마시고) 자다 깨보니 너무 추운 거예요.
보니까 제가 철길에 누워 있었어요. 겁이 덜컥 나는 거예요.
그때 생각했죠. '아이고~ 나는 이제 더 이상 못 죽겠구나, 겁이 있어가지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되나?' 정말 막막했는데
그때 당시에 장마당에 이런 소문이 돌았습니다.
'중국에서는 옥수수 강냉이를 짐승 사료로 사용한다..'
처음에는 제가 그 말을 믿지 않았죠.
아니, 강냉이 가루 한 주먹, 몇 백 그람이 없어서
아이들이 죽어나가고,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어가고 있는데
'사람도 없어서 못 먹는 그 강냉이 가루를
짐승이 먹어? 그런 세상이 있을 수 없다!' 이렇게 생각했죠.
'장사꾼들이 돈을 좀 만지더니 정신이 헷가닥했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런 말을 안 믿었는데
제가 굶어서 죽음 앞에 다다르니까, 죽게 되었으니까
거짓말 같은 그 말을, 그래도 믿고 싶은 거예요.
사람이 아무리 어려워도, 희망이라도 있어야 사람이 살겠더라고요.
그래서 거짓말 같은 그 말을 믿고서, 이제 중국으로 탈북하게 되었죠.
(▲목사님은 과거에 김일성에게 충성을 다하던 조선노동당원 이었잖아요.
그러다가 어떻게 예수 믿게 됐는지, 그게 정말 궁금합니다.)
처음에 중국에 한 3개월 있다가, 이제 제가 붙잡혀서 북송됐어요.
그때는 자주 잡아내가던 시절이었어요.
그때 중국에 3개월 있을 때, 저는 중국을 '먹는 천국'이라고 불렀어요.
거기 가 보니까 먹을 게 너무 흔했어요.
그래서 잡혀서 북한으로 북송되어 가면서도
제가 '풀려나면 또 넘어와야지' 하고 생각했었지요.
그래서 수용소에 가서 3개월 강제노동하고 풀려났는데,
제가 즉시로 다시 탈북해서, 그때 두 번째 넘어가서
이제 연길 의란진 에서, 종이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됐어요.
거기서 최권능 선생이 파송돼어 (연길로) 나오셨는데,
그분이 저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거예요.
'저기 중국 서쪽 내륙 지방에 들어가면
안전하기도 하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이렇게 성경공부하는 데가 있다.
그래서 거기서 공부하고, 이제 공부과정을 잘 마치면
리더로 세워져서 책임자가 돼서, 또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이런 사역을 한다.
가보지 않겠냐?' 제게 이렇게 묻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선뜻 가겠다고 했어요.
왜냐면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한국 사람한테 붙어야 큰돈을 벌 수 있겠다' 그러면서 이제 갔죠.
그래서 가서 보니까, 일과가 엄청 빡세지 않습니까, 목사님도 해봐서 알겠지만!
(정말 정말 스파르타식 교육이었죠.)
근데 저는 일과 생활은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그 뭐 다른 사람들은 막 참 어려워하더라고요. 힘들어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군에서 훈련을 어렵게 해서 그런지, 그거는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하도 힘든 군대를 나오다 보니까.. 저는 '참자!' 하니까 참아지더라고요.
참 쉽지 않았죠. 그런데 독한 마음을 먹으니까
그러니까 그건(통독, 성경교육 일과)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죽기 아니면 살기인데 '죽는 것보다 쉽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한 거죠.
그런데 문제는 그게 어려운 게 아니고, 성경 읽는 게
이거 무슨 진짜.. 아닌 게 아니라.. 그냥 한글처럼 우리나라 언어로 된 게 아니고
무슨 외래어 같았어요.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르시되..'
무슨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나 있을 법한.. 고린내 펄펄 라는 그런 책이었고..
그것도 우리나라 역사도 아니고, 내가 알지도 못하는 나라... (그게 힘들었죠)
그래서 김정일, 김일성 일가를 엄청 욕을 했어요.
'백성을 조금만 배를 부르게 해줬으면, 내가 지금 이런 고생을 안 할 터인데..'
먹고 살겠다고 이렇게 남의 나라 땅에 온 것만 해도 정말 서러운데,
(내용을) 알지도 못하는 책을, 무슨 아주 옛날 이야기..
무슨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나 쓰였을 법한 이런 책을 꼭 읽게 만드냐고...
(이게 다 김부자 일가의 탓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막 욕을 하면서.. 그래서 진짜로 성경책을 못 읽겠더라고요.
▲사역장에는 딱 두 가지 책이 있었는데, 성경책 하고, <순교자 전기>였어요.
<순교자 전기>는 그래도 읽을만한 거예요. 그래서 이제 그 책을 읽는데
그 책에 주기철 목사님의 마지막 설교가 있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처음에 잡혀갔다가, 병보석으로 한번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실 때, 그때 그 순교 직전 그 마지막 설교...
그 설교를 책에서 읽는데, 제 가슴을 막 후벼파더라고요.
이분이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에요. 그 설교를 보면.
죽음이 다가오면, 오금이 저릴 정도로 죽음이 두려운 게 사람인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순교의 길을 가는 거예요.
제가 속으로 생각했죠.
'아니 하나님이 도대체 뭔데 이럴까?'
나는 북한의 조선노동당원 이었잖아요.
그걸 하겠다고 막 내 다리까지 부러지면서 했지만
정작 내 앞에 죽음이 다가오니까, 헌신짝같이 다 버리고 내가 탈북을 했는데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 영이라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는데
'그런 하나님을 위해서 (주목사님이) 자기 목숨을 바쳐?'
'그것도 자기뿐만이 아니라 사모까지 막 어려움을 당하고
온 가족을 희생해? 이게 말이나 돼?' (믿기 어렵다)
그런데 도무지 가짜 이야기 같지 않은 거예요.
'이건 뭔가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건 진짜로 진짜 뭐가 있다...'
그래서 이제 관심을 가지고, 성경을 '진짜 뭔가 있나 보다' 하는 마음으로
'한번 관심 갖고 읽어봐야 되겠다' 그래서 성경을 다시 보기 시작한 거죠.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이 말씀을 딱 보니까, 이건 세상 말이 아닌 거예요.
보통 세상 사람은, 친구로 사귈 때, 좋은 사람과 친하려고 하지
나쁜 사람과 친구하고 싶지 않잖아요.
(그렇죠. 의인들끼리만 놀려고 하지, 죄인하고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죠.
왜냐면 자기 가치가 떨어지니까요.)
'하나님이라고.. 거룩하시다고 하면..
하나님이라는 분이 죄인을 구하러 왔다? 죄인의 친구가 되셨다고?
이게 무슨 얘기야? 이건 세상 논리하고 다르구나..'
그래서 이제 조금 더 관심이 생겨서, 좀 더 성경을 읽기 시작하다가
로마서 1:20절 말씀에 가서 완전히 제가 깨졌죠.
그 말씀보게 되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이건 제가 (하나님을) 만난 말씀이니까 외우고 있죠.
제가 그 말씀을 딱 보는 순간에, 갑자기 첫 탈북을 하던 때,
그 때의 일이 갑자기 회상이 됐어요.
열차에서 내려서 제가 천천히 중국을 향해 걸어갔어요.
근데 두만강 물에 제가 딱 들어서는 순간에
누군가 뒤에서 공포탄을 쏘며 '서라!' 말하면,
그래도 나는 그냥 앞만 보고 걸어갈 건데, (죽을 각오로 탈북할 건데)
혹시 '나를 막아줄 사람이 없을까?'
제가 주변을 돌아봤어요. 없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돌아봤지요.
그래도 혹시 누군가 나를 막아줄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요...
죽음을 각오했음에도 불구하고, 살고 싶은 것이 또 사람의 본능이죠.
그런데 아무도 없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하늘을 쳐다보면서.. 나 자신도 모르게
그때 '하나님, 나 좀 살려주십시오, 나 살고 싶습니다!'
(우리 본성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을 안다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 나 좀 살려주십시오. 나 살고 싶습니다.'
이 말을 수십 ~ 수백 번을 되뇌이면서 두만강을 건너는데
강 반대편 기슭에 다 도착했는데도 불구하고 총소리가 뒤에서 안 나는 거예요.
그래서 '살았다!' 속으로 환성을 지르면서 뛰어 올라갔죠.
뛰어 올라가는데 순간적으로 제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게 뭐냐면 '그 누군가 내 말을 들었다. 누군가 나를 구해 줬다.'
내가 막 살려달라고 그랬잖아요.
'누가 내 말을 들었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구해주었다' *아직 주님을 몰랐던 때
그 생각이 번개 같이 제 뇌리에 떠올랐어요.
그런데 중국에서 배부르고 등 따시고 하니까, 생각이 어떻게 바뀌냐면
북한 군대에서 내가 군사 훈련을 많이 했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경비들을 다 피해서 넘어온 거야'
근데 그 롬1:20절 말씀을 딱 보는 순간
하나님이 사람을 지었다고 했잖아요.
하나님이 '그 만드신 만물 속에 분명히 있어서, 그것을 너희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잠언서에 보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자를, 나도 그를 사랑한다'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8:17
'아 그래? 그럼 한번 내가 한번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아보리라.'
그래서 이제 진지한 마음으로 기도를 딱 하는데
(환상 중에)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쫙 저를 내려비추는데
근데 그 빛은 햇빛이 아니었어요.
마치 사도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만났던 그런 빛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빛이 저를 딱 비추는데, 내 모습이 보이는데
평소에 상당히 제가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나는 깨끗하고 정직하다. 감옥에도 한 번도 안 갔고..'
그런데 보니까 그 빛에 비춰진 제 모습은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북한의 공동변소에 가면, 똥이 하도 오래돼서
다 썩어서 노랗지 않고 시꺼멓잖아요.
그런 시커먼 똥물이 여기 제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아래로 흘러 내리는데..
내 모습이 그거 였어요. 그 모습이 내 모습이라고 즉시 깨달아졌죠.
그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그냥 납짝 업드렸죠.
그냥 '주님, 제가 죄인입니다.' 베드로가 고백했던 것 같은 고백을 하고 *눅5:8
그때 갑자기 울음이 터지는데, 그 통독하다 말고 갑자기 제가 화장실로 갔어요.
울음이 터져가지고...
근데 울음이 터졌는데, 이게 주체가 안 되는 거예요.
일주일 동안 울었어요.
그런데 통독 시간에 그 사람들 앞에서 울 수는 없고
통독하다가 말씀 한 구절이 내 마음에 딱 부딪히면,
그냥 울컥 올라와가지고 또 화장실로 가고... 화장실에 많이 갔습니다.
그 일주일 동안!
그렇게 울고.. 막 구역질 하고
(*성경에는 안 나오지만, 귀신이 몸에서 빠져나갈 때, 보통 구토를 동반합니다.
모든 구토가 다 귀신이 빠져나갔다는 증거는 물론 아니고요)
세상에서 그 범죄했던 말들.. 악한 마음들이 그냥 딱 떠오르면서
그냥 막 토하면서 막 그러고 회개하고 그랬지요.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네요. 그러면서 예수님을 믿게 되셨네요...
참으로 크신 은혜입니다!)
▲(지금도 제가 생각나는데, 앞서 파송되어 나갔던 선배들이
많이 잡혀갔잖아요. *중국에서 새 사역장을 인도하는 팀장으로 파송됨.
그래서 '우리가 이제 파송되어 나가면,
먼저는 공안에, 결국엔 북한으로 잡혀갈 수도 있다.
근데 성경 공부하다가 잡혀 나가면, 어떻게 되는지 다 알고 있었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그때 '다시 못 만나는 사람들처럼' 헤어졌어요.
누구는 죽을 수도 있고.. 누구는 생존해서 사역을 계속 이어나갈 수도 있고..
이런 심정으로 파송될 때,
저는 솔직히 그 파송된 감격으로 격앙된 마음도 있었지만
또한 잡힐까봐 하는 굉장히 두려운 마음으로 저는 파송되어 나갔었어요.
목사님은 1년간 통독 교육을 마치고, 그때 어떤 마음으로 파송되어 나갔어요?)
저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파송 받아 나갔는데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나 떨림이 아니었고
한 영혼의 가치를 이제 알게 되니까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그 두려움이었어요.
(아~ 그게 두려웠지.. 잡혀갈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으셨군요!)
저는 이미 이제 주기철 목사님 책을 통해서 제가 은혜를 받아서 그런지
순교에 대한... (각오가 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그때 이름도 '순교'로 지으셨었군요. 각오가 되어 있었으니까!)
중국에서 사역할 때, 제가 '순교'란 이름으로 사역했잖아요.
그런데 그 이름을 사실은 제가 갖기를 속으로 사모는 했는데
처음부터 직접 제가 스스로 붙일 수는 없고
그때 장만식 선생이 설교할 때 책상을 막 두드리면서
'여러분들 똑똑히 살아라! 지금 말이야, 우리가 저 북한을 구해야 되는데..'
하면서 막 언성 높혀 설교하셨는데.. 그때 보니까 그게 너무 멋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장만식 선생한테 찾아가서,
'장선생은 장순교 라고 하는게 어떻겠습니까?' 내가 그랬단 말이에요.
했더니 장선생이 제게 그러는 거예요.
'아니 그럼 내가 빨리 죽으란 말이에요?'
(하하하하)
그래서 제가 '아 그래요? 그러면 내가 그 이름을 가질게요.'
그래서 제가 그날부터 '최순교'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던 것이죠.
사실은 내가 갖고 싶은 이름을 가진 거죠.
그런데 결국은 장선생님이 먼저 순교하셨죠. (잠시 숙연)
(그러다 보니까 이제 순교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겠네요?)
어느 정도 거기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단지 내가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나님처럼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예수님도 죽으셔야 영혼을 살릴 수 있었는데
내가 그 정도로 목숨을 내어드릴 준비가 됐는가?' 이게 두렵고 떨리는 거예요.
(저는 사역장으로 파송 받아 나갈 때, '혹시 내가 잡히면 어떻게 하나?
잡히지 말고 안전하게 학생들을 모집해 가지고 해야 되겠다.'
이 생각밖에 안 하고 나갔는데.. 목사님은 역시 그런 생각을 가지고 가셨네요.)
(▲그래서 선생님도 파송되어 나가서, 북한 학생들 모집해서 사역하시다가
이제 한국으로 들어왔잖아요.
그런데 제가 중국에서 순교 선생이 가르치던 학생들과
우리 사역장 학생들이 만나서 하루는 친선으로 축구하면서
그 학생들을 만나보니까.. 제가 기가 막히는 거예요.
왜냐면 하나같이 거칠고 난폭한 사람들만 그 사역장에 모아놓은 거예요.
사람들 중에는 좀 순한 사람도 있고, 점잖은 사람들도 있을 텐데
일부러 골라온 것처럼.. 학생들이 거칠더라고요.
그러면서 제가 속으로
'야~ 저런 사람들을 데리고 어떻게 사역하실까?'하며 걱정이 많이 됐어요.
어떻게 해서 그런 거친 사람들을 모아왔어요?)
그런 친구들이 한 군데 모여있었는데,
북한에서 축구하고, 권투하고... 이런 애들이었죠.
(선생님은.. 그때 거의 20년 전이죠. 완전 초보 사역자였잖아요.
1년 성경통독 하고 나가서, 그런 거칠고 억센 탈북민 청년들을 데려다가
사역을 했는데.. 결국 해냈단 말이에요.
그 난폭한 친구들이 다 예수 믿고, 세례 받고 파송까지 됐어요.
그 비결을 저는 알고 싶거든요.
무슨 힘으로.. 그 사역 경험도 없었던 초보사역자가
대단한 지식도 없었을 테고, 놀라운 노하우와 경험도 없었을 텐데
뭘 가지고 이 사람들을 변화시켰느냐? 그거를 저는 좀 듣고 싶거든요.)
많은 일들이 있었죠. 욕해 보기도 하고도, 달래 보기도 하고...
사역장에서 술하고 담배를 못 하게 하잖아요.
만약 그런 일이 있으면, 학생도 퇴학이고, 리더도 해임시켜 버리잖아요.
사실 이 친구들이 워낙 또 거칠게 살던 친구니까
술 담배를 참다 참다가 이 친구들이 제게 애걸하는 거죠.
'딱 한번만, 한 번만 좀 마시게 해달라고!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다 여기를 떠나겠다.'
그런데 이 운동하던 친구들은, 협박이 아니고 진짜 나간다고요.
'나는 이 친구들이 너무 너무 귀한데.. 이들을 살려야 되는데..
하나님이 나를 대신해서 보내서, 이들을 한 영혼씩 살리라고 보내셨는데
이들을 살려야 되는데 어떡하지?'
'안 그러면 나가겠다!' 하니까 방법이 없잖아요.
그리고 그걸 딱 한 번만 마시게 하면, 통독을 계속 하겠다는데...
그래서 제가 버티다가 버티다가
하루는 술을 사다가 이제 술상을 이렇게 딱 차리고 하는데,
야 근데 정말 내 마음은 너무 막 힘든 거예요.
그래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너무 죄송하고...
이 성전(사역장)에서 술을 마신다는 게 너무 제 마음이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제가 제안을 했죠. '술을 한 번만 마시게 해줄텐데
대신에 내가 먼저 기도하고 마시면 안 되겠냐?' 했더니
그들은 '기도하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술을 갖다놓고, 제가 그 앞에서 엎드려서 무릎 꿇고 기도 했죠.
'하나님 비록 이들이 주의 전에서 이렇게 한다 할지라도 불쌍히 여겨주시고
이들을 구원해 주십시오. 도와주십시오.
이들이 이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하면서 막 울면서 기도했어요.
바로 그때 거룩한 영이 임했나봐요.
술을 손에 대지도 않았는데..
어떤 학생이 바로 그 자리에서 욱 하면서 막 토하러 나가는 거예요.
그리고 축구하던 그 친구는, 술잔을 따라서 딱 마시려 하는데
그 순간에 메스꺼움이 올라와가지고, 술잔을 딱 놓고 못 마시는 거죠.
권투했던 친구는, 한 모금 마시긴 했어요.
이 소식을 듣고서 최광 목사님은 화가 나셨죠. 바로 저희 사역장에 와가지고
'오늘부터 순교선생은 이제 선생직에서 해임합니다!'
그러자 학생들이 다 들고 일어난 거예요.
'우리 선생은 마시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우리 선생을 이렇게 해임시키면
우리는 다 연변으로 돌아갈 거라고..'
(학생들이 그 이후로는, 술과 담배를 안 하는 것을 받아들인 거죠?)
네 그렇지만 그중에 권투했던 친구는, 조금씩 계속 해달라고 조르는데
그거 한 번으로 그렇게 쉽게 안 끊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한번은 뭐 금식을 했죠.
'내가 이들 한테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줘야 되겠다.'
'이 친구들은 말로 내가 아무리 가르쳐도 안 되니까
내가 직접 (금식으로) 보여줘야 되겠다.'
그래서 북한에는 그런 말이 있잖아요.
'여자는 굶어도 일주일은 살고, 남자는 굶어도 삼일은 산다'
그래서 남자가 일주일 굶어도 산다는 걸 보여줘야 되겠다...
그래서 '내가 이제 금식 하겠다' 그랬어요.
'하늘의 양식이라는 게 있다. 그래서 일주일까지 남자도 살 수 있다'
그러니까 학생들이 '무슨 그런 허튼소리 하느냐?' 라는 반응이 나왔죠.
그런데 저는 사실 금식을 원래 잘 못해요.
제가 원래 북한에서 배에 회충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실제로 이 제자들앞에서 내가 일주일 금식하겠다 해가지고 시작했다가
3일만에 금식을 끊었어요.
왜냐면 회충이 나오는 거에요. 겁이 나가지고 끊었죠.
그래서 며칠 있다가 다시 또 시작을 했단 말이에요.
그리고 또 삼일을 못 넘기고 금식을 중단했어요.
(금식이 삼 일이 고비예요. 그 때를 넘기기가 가장 힘들어요.)
그러니까 학생들이 나를 보는 눈이 다른 거예요.
'웃기고 있네... 일주일간 금식을 한다더니 두번이나 실패했잖아?'
제가 진짜 창피한 거예요.
이게 앞에 그냥 뭔가 담벼락이 딱 막아서는 느낌 있잖아요?
그래 가지고 방에 딱 들어가서 벽앞에 내가 마주 앉았어요.
보여주겠다는데 두번이나 했다가 내가 실패 하니까.. 그래가지고 또 울었지요.
'하나님, 이 친구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줘야 되는데
내 힘으로 못하는 거 알지 않냐고.. 도와주십시오!
나는 금식도 못하고, 나는 회충이 제 속에 있다는 거 아시지 않냐고?
저를 도와주십시오!'
근데 확신이 생기더라고요.
'네가 죽기로 결단하고, 다시 한번 시작해라.
이번엔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이런 확신을 주시더라고요.
그 확신이 딱 온 다음에, 금식을 다시 시작했는데
일주일 동안 아무 일 없이 금식했어요.
그러니까 딱 일주일 되니까, 그 축구하던 친구가
'아~ 이제 알겠다. 알겠다고 이제 그만하라고'
6일째 되었는데 금식을 끊으라고 하는 거예요.
제가 '안 된다. 하나님께 약속했는데 안 된다'고 했더니
'아 끊으라고 끊으라고!' 이 친구들이 아주 과격하게 나오면서 하는 말이,
'이제 알겠다고.. 이러다가 선생이 자칫 하루 더 하다가 죽겠다고...'
하면서 결국 억지로 막 그렇게 해서, 제가 금식을 끊었어요.
그 다음에 '선생'으로 존경하는 대우로 싹 바뀌더라고요.
▲그 후에 하나 더, 어떤 또 큰 사건이 있었냐면
이제 조금 운동하던 아이들이니까, 조금 거칠은 애들이니까,
화가 나면 무조건 상대의 멱살을 잡는 거예요.
저한테도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우이씨, 허튼 소리 하지 말라!'
이러면서 바로 내 멱살을 잡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친구들이 다 나보다는 10년이 어려요.
그런데도 제가 하도 멱살을 잡히니까
그 다음부터는 제 속에서 슬슬 화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죠.
'하나님, 아니 이거 한두번이지.. 얘들이 버릇이 된 것 같습니다.
끄떡하면 제 멱살을 잡는데.. 하나님! 하나님의 엄위를 좀 보여주십시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은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지 않냐고?
하나님 권위를 좀 보여주십시오!' 그렇게 기도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날, 갑자기 제 멱살을 가장 많이 잡는 축구하던 친구가..
그 덩치도 큰 놈이 갑자기 배가 뒤틀리면서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하는데,
그래가지고 주위에 작은 병원에 급히 갔는데,
'급성 맹장'이라는 진단을 받았죠.
그래서 종합병원에 가라기에 데려갔더니,
또 급성 맹장이라서 당장 수술해야 된다고 했죠.
근데 내가 그때 '바로 이때다!' 하는 마음에 딱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딱 믿음의 눈으로 이 친구를 딱 보니까
이 친구는 데굴데굴 구르는데, 저는 환상 속에
이 친구가 딱 (건강하게) 일어나는 게 보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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