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는 ‘여호와와 같은 자가 누구냐’라는 이름의 의미를 가진 선지자입니다. 그는 ‘작은 이사야’라고 불리며, 이사야와 같은 시대에 사역하였고, 전하는 메시지도 같았습니다.
미가서는 세 편의 설교로 구성되어 있는데, 오늘 읽은 미가서 3장은 두 번째 설교에 속합니다.
미가서 3장에서 중요한 말씀은 8절입니다. “오직 나는 여호와의 신으로 말미암아 권능과 공의와 재능으로 채움을 얻고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 (미 3:8). 이것은 미가 선지자의 간증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말도 했고, 글도 남긴 사람이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예수님을 가리켜 ‘말과 일에 능한 선지자’라고 했죠.
“가라사대 무슨 일이뇨 가로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여늘” (눅24:19).
미가 선지자도 동일하게 말과 일을 했습니다. 미가가 말한 것이 성경으로 기록되어 미가서가 된 것입니다.
선지자 가운데는 훌륭한 선지자라도 글을 남기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엘리야, 엘리사 같은 선지자들이 일하는 능력은 훌륭했지만 글을 남기지 않았죠. 그러나 미가는 글과 말에 다 능했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신으로 충만함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미가가 성령의 영감을 받아 남긴 책이 바로 <미가서>입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 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벧후1:21
성령의 감동을 입어 하나님께 받아 미가서를 기록하였고, 능력 있는 설교자로서 권능도 받았습니다.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사 11:2).
메시아 위에 강림하신 성령과 미가 위에 강림하셨던 성령은 지혜의 신, 총명의 신, 모략과 재능의 신입니다.
미가가 살던 시대가 아무리 악했어도, 그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기 때문에 성공적인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미가가 말 외에 ‘일’에도 능했던 것은 예레미야서에 미가의 사역을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렘26:18~19 ‘유다의 왕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가 유다의 모든 백성에게 예언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시온은 밭 같이 경작지가 될 것이며 예루살렘은 돌 무더기가 되며 이 성전의 산은 산당의 숲과 같이 되리라 하였으나
유다의 왕 히스기야와 모든 유다가 그를 죽였느냐?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언한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가 이같이 하면 우리의 생명을 스스로 심히 해롭게 하는 것이니라’
즉 미가는 자기 목숨을 걸고 예언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돌 무더기가 되며 이 성전의 산은 산당의 숲과 같이 되리라 하였으나..’ :18 유다 나라가 망한다는 예언을 스스럼 없이 한 것입니다.
그 예언으로 그는 죽을 뻔 했으나,
유다 사람들이 그를 참 선지자로 알고 죽이지 않았습니다..
모름지기 선지자는 자기 목숨을 걸고 예언하는 직분입니다. 선지가가 두려워할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그 외 사람은.. 그 어느 누구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정직하게 예언하는 것이 바로 선지자의 ‘일’(사명)이었습니다. 미가는 그 일에 충실했던 것이죠.
▲미가 선지자는 유다 왕들 가운데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사역했습니다. 요담 왕과 히스기야 왕은 훌륭한 왕이었지만, 미가가 주로 사역을 했던 시대는 아하스 왕 시대입니다.
아하스 왕은 유다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이었습니다. 대하 28:1-4 “아하스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20세라 예루살렘에서 16년 동안 다스렸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의 자녀들을 불사르고 또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니라”
아하스 왕의 우상 숭배로 인해 하나님께서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가 서로 연합하여 아하스 왕을 치게 하였습니다.
이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사야 선지자가 아하스 왕에게 ‘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한 르신과 베가를 두려워 말고 여호와를 의뢰하라’고 말하였지만 아하스 왕은 여호와를 의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앗수르 왕에게 여호와의 전에 있는 보물들을 뇌물로 가져다주어 그가 아람 군대와 이스라엘 군대를 치게 했던 것입니다.
또한 아하스 왕은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려고 다메섹으로 가서 다메섹의 신을 받아들여 그 신을 섬겼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고약하게 여기시고 아하스 왕을 망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상 숭배하면 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영원한 고통 가운데서 살게 됩니다.
미가가 사역을 했던 시대는 아하스 왕의 시대였고, 아하스 왕의 시대는 흑암의 시대이며 배교의 시대였습니다. 이런 악한 시대에 미가가 어떻게 해서 ‘말과 일에 능한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였습니까?
그것은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미가 선지자가 여호와의 신으로 충만함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에 물들지 않고 악령들에게 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성령 충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아야 악한 시대에 귀신에게 해를 당하지 않고, 우상에게 넘어가지 않고 진리를 따라 하나님의 축복된 인생을 살게 됩니다. 미가 선지자의 성령 충만한 사역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1. 성령 충만한 사역은 “죄와 허물”을 다루는 것이다.
“그가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16:8 보혜사 성령님께서 오시면 세 가지로 세상을 책망하신다고 하셨고, 제일 먼저 책망하신 것이 죄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 받을 때 죄를 버리고 거룩한 삶을 살고자 하는 목적과 의도로 받아야 합니다. (무슨 은사를 받기 위해서, 또는 복을 받기 위해서 성령충만을 받는 게 아닙니다)
교회가 부흥되고, 성령께서 역사할 때 백성들의 죄를 드러내시고, 거룩함을 낳게 하시는 것입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눅 1:35). 성령은 거룩한 자를 낳습니다.
▲성경은 성령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4절에서 ‘성결의 영’이라고 하였고, 마3:11절에는 성령이 예수님께 비둘기처럼 임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마3:16절에 제자들에게는 ‘불처럼 임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요, 제자들은 죄가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성령의 비둘기는 죄가 있는 사람들에게 임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죄인들이기 때문에 성령이 불처럼 임하셔서 그들의 죄를 태운 줄로 믿습니다.
성령의 불이 임하면 세 가지를 태웁니다. 죄와, 귀신과, 질병을 태웁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성령을 불처럼 받게 된 것입니다.
또 성령을 불처럼 받음으로 제자들은 일어나서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는 설교를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순절날 성령이 베드로에게 불처럼 임했을 때 베드로가 일어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 말에 사람들의 마음이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말하면서 사도들을 따라다녔다고 사도행전이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게 되면 죄를 버리고 거룩함을 이뤄가는 삶이 되는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2. 성령 충만한 사역은 “권능” (Power)있는 사역이다.
“오직 나는 여호와의 신으로 말미암아 권능과, 공의와, 재능으로 채움을 얻고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 (미 3:8).
미가는 성령 충만해서 권능과, 공의와, 재능으로 채움을 받았습니다. 권능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할 수 있는 영적인 ‘Power’입니다.
공의는 악과 선을 구별할 수 있는 판단력이고 재능은 하나님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실천력을 말합니다. 이 세 가지 가운데서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권능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권능을 받아야 죄와 악령을 이기고, 복음을 증거하고 예수의 증인이 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증거 하지 못하는 이유는 권능이 없어서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성령이 임하신 1차적 증거는 권능을 받는 것입니다. 은사는 2차적인 문제입니다. 그리고 권능을 받으면 예수의 증인이 됩니다. *‘권능’은 ‘능력’과 같은 두나미스
▲미가 시대에 유다 백성의 선지자들은 성령을 조롱했습니다. “너희 야곱의 족속아 어찌 이르기를 여호와의 신이 편급하시다 하겠느냐 그의 행위가 이러하시다 하겠느냐 나의 말이 행위 정직한 자에게 유익 되지 아니하냐” (미 2:7).
오늘날도 많은 사람이 성령을 무시하고 대적합니다. 그리고 기도하지 않고 우습게 여깁니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성령 충만 받을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서이고,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죄와 악을 이기며 예수의 증인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21세기는 아하스 왕 시대보다 우상 숭배와 성령에 대한 조롱이 심한 시대입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을 받아 권능을 받고 예수님을 증거하고, 바르고 정의롭게 살아가는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복음 전도해서 구원해야 할 영혼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다른 것으로 부흥되지 않습니다.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안 되지만,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아야 교회가 부흥되어 선교를 이루게 되고, 우리나라는 하나님께서 주목하고 축복하는 나라가 될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우상 숭배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언제나 우리와 우리 자손을 옳은 길과 영생으로 인도하시고 축복해주시는 하나님이신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성령 충만은 우선 죄를 다루어서 거룩함을 이루고, 권능을 주어서 복음을 증거 하게 합니다.
◑3. 성령 충만한 사역은 비진리에 대항하여 진리를 지키는 사역이다.
미가 3장은 미가 시대의 악한 지도자들에게 대한 심판을 선고하는 것입니다. “내가 또 이르노니 야곱의 두령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치리자들아 청컨대 들으라 공의는 너희의 알 것이 아니냐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좋아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남비와 솥 가운데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 (미 3:1-3).
1) 여기에 세 종류의 지도자가 나오는데 첫째는, 두령입니다. 두령은 11절에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는 사람 즉, 판사들입니다.
미가 시대의 판사들은 뇌물 받고 재판을 하였습니다. 뇌물을 주면 무죄이고, 뇌물을 안 주면 유죄가 되는 것입니다. 미가 시대의 판사들은 두령이 되어 못된 짓을 했습니다.
2) 둘째는, 이스라엘의 치리자인 정치가들입니다. 왕과 방백들은 하나님께서 공의를 실행하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선을 미워하고 악을 좋아하였습니다. 그리고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었습니다. 왕과 방백들이 백성을 잡아먹고 벗겨먹는 짓을 하였습니다.
3) 그러면 종교지도자들은 잘 했는가? 아닙니다. 나쁜 종교지도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미 3:11).
이 시대 제사장은 삯꾼이었습니다. 그리고 점을 쳐서는 안 되는 선지자들이 점을 쳤습니다. 그리고 그냥 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위하여 점을 쳤습니다.
판사와 정치가와 종교 지도자들이.. 즉 사회 지도층이 모두 다 부패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미가 3장에 두 번 반복된 말씀이 있습니다. “그 때에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을지라도 응답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행위의 악하던 대로 그들 앞에 얼굴을 가리우시리라” (미 3:4).
그들이 하나님께 불러도 하나님께서는 대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찾아도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리시는 것입니다.
“선견자가 부끄러워하며 술객이 수치를 당하여 다 입술을 가리 울 것은 하나님이 응답지 아니하심이어니와” (미 3:7).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결코 떠나거나 버리시지 아니하시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거짓 교리를 가져오고, 거짓된 신을 섬기면서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느 시점이 되어 돌아오지 않는 강을 넘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시고, 그들과 아무런 상관을 하지 않으십니다.
▲미가 시대에 가장 악한 왕은 아하스 왕이었습니다. 그가 했던 행동은 가장 사악한 짓이었습니다.
“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거기 있는 단을 보고 드디어 그 구조와 제도의 식양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내었더니,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모든 것대로 단을 만든지라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와서 단을 보고 단 앞에 나아가 그 위에 제사를 드리되 자기의 번제와 소제를 불사르고 또 전제를 붓고 수은제 짐승의 피를 단에 뿌리고
또 여호와의 앞 곧 전 앞에 있던 놋단을 옮기되 새 단과 여호와의 전 사이에서 옮겨다가 그 단 북편에 두니라” (왕하16:10-14).
(번)제단은 짐승의 피로 사람이 죄사함을 받는 것인데, (번)제단을 치웠다는 것은 예수의 피로 인간이 죄사함을 받는다는 사죄의 진리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왕하16:15-18 “아하스 왕이 제사장 우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침 번제물과 저녁 소제물과 왕의 번제물과 그 소제물과 모든 국민의 번제물과 그 소제물과 전제물을 다 이 큰 제단 위에 불사르고 또 번제물의 피와 다른 제물의 피를 다 그 위에 뿌리라 오직 놋제단은 내가 주께 여쭐 일에만 쓰게 하라 하매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의 모든 명령대로 행하였더라
아하스 왕이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내고 물두멍을 그 자리에서 옮기고 또 놋바다를 놋소 위에서 내려다가 돌판 위에 그것을 두며 또 안식일에 쓰기 위하여 성전에 건축한 낭실과 왕이 밖에서 들어가는 낭실을 앗수르 왕을 두려워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옮겨 세웠더라” (왕하 16:15-18)
그리고 물두멍을 옮겼다는 것은 인간이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성화의 진리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쓰는 낭실을 성전 밖으로 옮겼다는 것은 안식일을 존중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1) ‘낭실’
낭실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싸크'(*)는 '물건을 덮다', '어떤 장소를 덮다'라는 뜻의 동사 '싸카크'(*)에서 파생된 것이다. 이에 대한 영역본을 살펴보면 NEB는 '구조물'(structure)로, RSV는 '덮은 길'(covered way)로, KJV는'밀실'(covert)로 서로 다르게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보다 더 만족스런 번역은 없는 듯하다. 한편 본 낭실은 '안식일에 쓰기 위하여 성전에 건축한 낭실'인데 이는 바닥에 '무엇을 깔아 놓은 곳'으로서 왕의 성전을 방문했을 때 자리 잡던 장소였을 것이다(Keil & Delitzsch). 들어가는 낭실 이것은 위에서 언급된 '낭실'과는 다른 것으로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마보'(*), 즉 '입구'라는 뜻이다. 이것은 솔로몬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서(왕상 10:5) '왕이 성전으로 들어갈 때 거치는 계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공동 번역에서는 '바깥 대문'으로 번역하였고, 대부분의 영역본에서는 '입구'(entry)로 번역하였다.
앗수르 왕을 인하여 -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이것을 '앗수르 왕을 두려워 하여'로 번역한다(Keil, Rawlinson). 왜냐하면 아하스는 앗수르 왕 때문에 이 두 낭실을 여호와의 전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한편 다른 주석가는 이것을 '앗수르왕 앞에서'로 번역하는데 이것은 대하 28:20, 21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아하스는 앗수르 왕이 올 것을 대비하여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절의 이러한 표현은 앗수르 왕이 그것을 보고 달라고 요구할까 걱정해서이기도 하지만(B hr) 속국의 왕으로서의 태도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Hob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