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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8:14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회복하라

LNCK 2022. 10. 14. 11:24

[두란노] 영권 회복_ 1.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회복하라 - YouTube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회복하라    롬8:14, 마6:33


'신자가 세상 사람들과 차별화 되는 게 무엇인가?' 
한번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내가 세상의 안 믿는 사람들 하고 뭐가 다르냐?' 
우리는 스스로 이 질문을 던져야 되고, 거기에 대한 답을 하셔야 돼요. 

'내가 예수 믿는다 그러는데, 세상 사람들하고 뭐가 다르냐?' 
근데 이게 우리가 스스로 물어야 되지만 
또한 세상 사람들도 지금 우리에게 똑같이 묻고 있는 질문이에요. 

'너희들은 우리와 뭐가 다르냐? (똑같지 않느냐?)' 

여기서 우리는 확실한 것을 하나 찾아내야 돼요. 
'그래 이런 점이 여러분과 다르다!' 하는 이걸 보여줘야 됩니다. 

만약 여기서 분명한 답을 찾지 못하면, 우리의 신앙은 힘이 없어요. 
길을 잃은 것입니다. 

내 안에서 확실한 답이 나오지 않으면 
세상에 대해서 이긴 사람들이 아니고 
세상에 떠밀려 살아 갈 가능성이 많습니다. 

'신자가 누구인가?' 하는 분명한 정체성!
'신자는 도대체 이 시대에 어떤 사람들인가?' 
'신자로서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도 가지고 있는 것은 
신자의 자랑거리가 될 수가 없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돈이 많다...' 
세상 사람들도 돈 많은 사람들이 많아요. 그게 자랑거리가 될 수가 없어요. 

세상 사람들이 자랑하는 것과 똑같은 것을, 우리가 자랑해 봐야 
아무 소용 없어요. 

우리는 그런데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자랑하는 것들을
똑같이 우리도 자랑하고 있지 않나요?

여러분 우리가 세상 사람들이 자랑하는 걸 가지고 자랑하면요,
한 방에 날아가요. 
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 기독교인들보다, 세상 자랑할 게 훨씬 더 많아요. 

훨씬 더 화려하고, 훨씬 더 강력하고,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고 
훨씬 더 세상 자랑거리를 많이 갖고 있어요. 

우리는 세상의 자랑거리를 가지고, 
우리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가 없어요. 

▲그럼 우리 크리스천만 가지고 있는 것,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이 뭘까요?
그것은 영권, 즉 영적 권세이죠.  spritual power and authority

영권은 세상 사람들은 절대 가질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자비로우시지만, 세상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이 권세를 주실 수가 없어요. 

영권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주어진 거거든요. 
여러분, 신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 이게 영권이에요. 

여러분, 세상을 보며 파워 게임 입니다. 파워를 가진 자가 지배해요!
신자도 마찬가지죠. 세상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우리만의 파워(영권)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세상 속에서 신자답게 결단코 살아갈 수가 없어요. 

우리 크리스천은 어디에서든지 영권으로 다스리는(섬기는) 거예요. 

기업에서는 보통 경영주가 통치권, 결정권을 가지고 있죠.
그렇지만 크리스천 직원은, 그 가운데서도 
기도의 권세, 사랑의 권세, 이해와 배려의 권세로
그 기업의 분위기를 물밑에서 주도해 갈 수 있어요. 영권을 가진 거죠!

그러면 모든 주위 사람들이, 그 크리스천이 가진 영적 권세를 인정하며
자기들도 그의 도움과 보호를 받기 바라죠.

이렇게 크리스천만이 가지는 권세는, 세상 속에서 비밀병기가 됩니다. 
영권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거지만, 세상에서 통하는 권세입니다. 

크리스천은 영권을 가지고 있을 때, '크리스천다움'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도, 그가 영권을 가진 사람인지/ 아닌지 
크리스천을 볼 때 대충 감을 잡아요. 
진짜 신자다움은, 영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권이란 무엇인가요?
영적 권세, 하늘의 권세, 영적인 실력, 영적 강자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많은 진지한 기도에서 나오고, 말씀에 순종하는 경건한 삶에서 나오죠)

영권은... 하나님 나라를 다스릴(섬길) 수 있는 권세죠.
내가 알고 있는 진리를 세상에 풀어낼 수 있는 능력! 

진리를 그냥 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그 진리를 현실의 삶 속에 풀어낼 수 있는 능력! 

이것은 하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주어지는 권세인 것이죠. 

여러분, 영권이 없으면, 세상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오늘 신자들 안에 팽배한 패배주의는, 영권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영권이 없는 직분자는 쓸모가 없습니다. 발에 밟히는 소금 됩니다.
영권이 없는 신자는, 세상 속에서 조롱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크리스천인 우리가 세상 속에서 싸울 때 
인간적인 힘으로 싸우면 승산이 없습니다. 

세상은 세상의 힘을 가지고 있죠. 화려합니다. 강력합니다.
돈의 힘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이 돈의 위력 앞에 어떻게 하면 기죽지 않을 수 있을까요?

여러분 영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세상 속에 우리 크리스천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수밖에 없는 거죠. 

여러분, 교회에서는 통성기도도 힘있게 하고, 찬양도 불렀지만 
세상에 나가면 꼬리를 살며시 감추고, 이중적인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요즘 세상 사람들이 우리 크리스천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많아졌어요. 
여기에 우리는 거룩한 의분이 생겨야 됩니다. 

왜 그렇게 됐습니까? 왜 이렇게 무시받고 우습게 보이게 됐나요?
우리가 영권이 딸려서.. 세상에 밀리고 있는 거죠.

우리가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한 방(영권)이 없는 거예요. 
세상 사람들이 우리의 허약함을 안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초대교회는 달랐습니다.
초대교회는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시간에 성전에 올라갈 때 
날 때부터 그 성전미문의 앉아 있던, 걷지 못하는 그 사람을 바라보며 
외쳤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여러분, 은과 금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 조금도 눌리지 않았어요. 
은과 금이 없다고 하는 부분을 숨길 이유가 없었어요. 
돈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게 있는데 
그 내게 있는 그것은, 은과 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파워가 있다!
그 이름 예수 그리스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그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어라!' 

여러분 천금, 만금이 있다 할지라도 
태어날 때부터 앉은뱅이로 앉아 있는 그 사람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이 없지요. 

그러나 베드로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를 갖고 있었어요. 
(*아무 때나 선포하면 안 되고, 성령의 감동이 올 때 선포해야 됩니다)

그가 입으로 선포할 때, 나이 40이었던 그 사람, 
한 번도 일어나 보지 못했던 그 사람이 
벌떡 일어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분, 초대교회는 돈 보다 더 강력한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사렛 예수의 이름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가졌던 나사렛 예수의 이름은 
그것은 일종의 교리나, 지식이나, 종교가 아니라 
능력 그 자체였습니다.

세상이 풀지 못하는 모든 문제를 관통하는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있다는 사실을 그가 알았단 말이죠. 
영권이 발휘되는 순간이었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이름, 그것은 지식의 아니에요. 
그게 자기 안에 있는 어떤 그냥 이론이 아니었어요. 

자신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전율하게 하는 확신으로 다가와 있는
이 권세야 말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 
뒤집어 놓을 수 있는 하늘의 권세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 입에서 거침없이.. 거침없이 그 영권이 쏟아져 나올 때 
비로소 영권이 발휘되자..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기적이 일어난 거죠.

여러분들에게 이런 역사가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영권이 회복돼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있지만, 아무 능력도 없는 삶이 아니라 
은과 금이 내게 없다 할지라도
하늘의 권세를 얻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선포할 때 
우리의 삶에 오늘도 기적이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영권을 가지고 행사하려면 
우리가 누구인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가?' 하는 크리스천의 정체성!
여러분, 정체성 그 아이덴티티가 희미하면 싸움에서 이길 수가 없어요. 

내가 정말 크리스천인가?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인가? 
예수를 믿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이게 하늘의 권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하늘의 권세가 주어집니다. 

이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정확히 알 때 
나에게 주어진 권세가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붙들어야 됩니다. 
다른 것은 다 놓치고, 다른 것을 다 잃어버리고 
나에게 있던 직함과 세상 지위 등 모든 것들을 다 잃어버린다 할지라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사실에 대한 정체성을 
분명히 붙잡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라고 하는 이 사실, 
이런 자기의 정체성이 분명하게 될 때 
하나님이 가지고 권세가 우리에게 임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진짜 하나님의 자녀라면, 자녀에게 주어진 권세가 무엇인지 알고 
누리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누리며 
그것이 5년 10년 20년 쌓이면.. 그 사람을 감당할 자가 아무도 없는 것이죠. 
어찌 하나님의 자녀와, 세상 사람들과 게임이 비교가 되겠어요, 견줄 수 있겠어요?


◑여러분, 내가 진짜 하나님의 자녀라면 
자녀에게 주어진 권세를,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1. 첫 번째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습니다. 

롬8:14절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요? 
하나님의 영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인도하시는 영이세요.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해서, 늘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냥 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삶에 내비게이션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의 삶이 목적지를 분명히 갈 수 있도록,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망하지 않도록 우리의 길을 철저하게 인도하기 위하여 
곁에서 기다리고 계신 영이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 사람이 곧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인도 하시는 영이세요. 
신자는 영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 우리는 영에 속한 사람이 되어 
영에 속한 사람은, 영의 인도를 받는 사람입니다. 

이 사실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누구의 인도를 받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지금 누구의 인도를 받고 있는가요? 
내 삶이 지금까지 누구의 인도에 의해서 살아왔는가요? 
여러분 스스로 질문하세요. 
하나님의 영으로 정말 내가 인도함을 받고 이제껏 살아왔는가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삶은 어떤 것입니까? 
간단한 거예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모호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요. 
'아직도 그게 뭔가?' 하며 알쏭달쏭 해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는 추상적 인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면, 얼마든지 들을 수가 있어요. 

여러분, 여기에 대해서 확신을 가져야 돼요.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자녀가 아버지의 음성을 듣는 게 어찌 어렵겠습니까?
아들이 아버지의 인도를 받는 게 어려운 게 아니에요. 
아버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게 어려운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특별한 사람만 듣는 게 아니에요.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성령을 통하여, 우리 모두를 반드시 인도해 주십니다. 

갓난 아이들을 보세요. 조금만 지나도 엄마의 음성을 금방 알아듣습니다. 
그런데 10년 20년이 지나도, 아버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면 
아직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거죠. 

우리가 오늘 이렇게 설교를 듣고 있는 데도 
여러분, 지금 이 설교를 통해, 아버지는 강력하게 여러분들의 삶에 말씀하고 계세요. 

부인할 길 없이, 내 삶이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를 
주일마다, 수요일마다, 새벽기도마다
끊임없이 성경을 통해서, 또한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설교로 들려주시는 것만 해도 충분히 할 정도예요. 

그런데다가 큐티하고, 또 우리 삶의 모든 방편들, 사건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음성을 들려주세요. 

중요한 것은 내가 의지적으로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서야 움직이겠다'
라는 결단이 우리에게 필요해요. 
'내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겠다'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의 인도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겠다'라는 결단이 
우리에게 있어야 됩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하나님의 인도보다, 
우리의 필요와, 주변 환경과, 사람의 의견들.. 
그런 여러 가지 것들에 의해 뒤흔들려 버릴 때가 많아요. 

여러분, '주님의 인도함이 없으면, 제가 그때까지 움직이지 않겠습니다. 
인도하실 때까지 내가 기다리겠습니다. 하나님 말씀해 주십시오!' 

그럴 때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꼭 필요한 말씀을, 
그때그때 다양한 방법으로 하나님은 반드시 들려주십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생애의 특징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살은 사람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습니까? 그는 말씀을 좇아갔습니다. 
창12:4 '이에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고...' 

어떻게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인가요?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아서 그렇게 된 거예요.
들은 말씀을 좇아갔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고 
그 인도를 받는다는 말은 
그냥 술술 순탄대로로 인도하신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아브라함도 말씀을 따라 갔던 그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순간적으로 아브라함이 착각을 하고 
기근이 일어나니까 먹고살길을 찾아서 애굽으로 빠져 버렸어요. 

말씀을 따라가야 하는데 
말씀을 따라갔지만 그 삶에 위기가 찾아오니까 
한 순간 팽 돌아가지고 애굽으로 빠졌어요. (삼천포로 빠지듯이)
그래서 아내를 잃어버릴 뻔했어요. 

하나님의 말씀에 인도를 받는다는 것은 위험한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합니다.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의 생각과 방법과 자기의 처세술과 
자기의 이론과 경험을 좇아서, 자기의 살 길을 자기 스스로 가다가
결국 낭패를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길은, 위험한 순간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은, 자신의 안락함을 포기하는 위험이 
따를 수 있습니다. 

내가 머물고 있는 익숙한 환경을 떠나야 하는.. 
아주 위험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도전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인도가 처음에는 낯섭니다. 
자칫하면 망할 것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왜냐면, 내 이론과 내 경험에 맞지 않는 환경이 
우리에게 닥쳐올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때, 우리의 생각과 다를 수가 있습니다. 
그런 고비를 이겨내야,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를, 인내하고, 위험을 고사하고 
내 상황과 내 생각과 맞지 않는 상황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인도를 묵묵히 받고 가다보면 
홍해가 갈라지는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인도로 나아갔을 때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전혀 내가 생각하지 않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하나님이 인도하신 길이라면 
홍해라 할지라도, 그 가운데서 길을 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신기해요. 내 생각과는 다를 때가 많아요.
이대로 나가다가는 폭망할 것 같은데 
믿고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따라가면.. 그 길이 살 길인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인도는 늘 순탄하지 않습니다. 두려울 수 있습니다. 
의심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당장의 어려움에 원망과 불평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 하시면 가고, 멈추라면 멈출 때, 
이 나의 단호한 태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만 제가 행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가고, 말씀 하지 않으시면 머물겠습니다. 
나는 말씀의 인도만 받겠습니다!' 라고 하는 분명한 태도!

'내가 어떤 경우에도 내 마음대로 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는 결단을 할 때,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자 하는 사람은 인도해 주십니다. 
지금도 말씀하세요. 어떤 형태로든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말씀이 들려질 때, 우리 안에 내적인 확신이 찾아옵니다. 
기쁨, 평안이 옵니다. 담대함이 옵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 말씀이 확실히 오고, 이게 하나님의 인도라고 하는 사실이
우리 가슴에 밀려올 때는,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깊은 평안으로..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나에게 찾아오기 때문에 
성도는 그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분명한 인도를 받는 삶이, 여러분에게 일상화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인도해 주세요. 하나님 말씀 해주세요!
내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하셨는데 
내가 가는 길을, 환희 비춰 주세요. 하나님, 말씀해 주세요.
제게 말씀해 주지 않으면 나는 움직이지 알겠습니다!' 
라는 분명한 태도를 가져야 돼요. 

이게 우리 몸에 익어야 돼요. 습관화가 되어야 합니다.
왜 우리가 낭패를 당합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분명한 인도가 아닌데, 왜 내가 서두른 것입니까?

다 사고 친 지점이 그곳입니다. 
그 지점이 바로 '사고다발지역' 인 셈이죠!

결혼이든, 사업을 시작하든, 직장을 가든 
내가 뭘 애를 써서 빨리 급하게 시작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 제게 말씀해 주시옵소서!'
이렇게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인도해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인도보다 더 멋진 길은 없어요.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 동시에 보고 계시는 분이세요.
완벽한 지혜와 섭리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적인 민감성을 훈련해야 합니다.
이 영적 센시티비티, 민감성이 필요해요. 

여러분, 우리는 굉장히 육체적인 게 많이 발달되어 있어요. 
영적인 일에 많이 둔감해져 있는 경우가 많아요. 

여러분, 영적인 감각이 예민해지는 데는, 굉장히 훈련이 필요해요. 
우리 육체의 죄성을 벗겨내는 작업들, 
그래서 영적인 민감성을 높여야, 성령의 인도가 뚜렷해져요. 

그 영적 민감성을 확보하려고 하면, 육신의 죄성을 자꾸 벗겨내고 
하나님에 대한 집중력을 높여야 돼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려고 하면 
그분에게 주파수를 정확히 맞추고 있어야 된다는 말이에요.

그럴려고 하면, 하나님에게 나의 온 마음을 집중시켜야 된다는 거예요. 
날마다 세상의 쓸데없는 것들, 잡다한 것들에 기웃거리면서
우리의 마음이 흐트러져 있고, 분주하고, 내 마음이 집중력을 갖고 있지 않다면,

우리의 안테나는 굉장히 흔들리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영적인 민감성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도대체 말씀하셔도 구분할 줄 모르는 겁니다. 

영적인 민감성을 가지려고 하면, 여러분 우리의 삶이 
좀 심플리시티, 단순해져야 돼요. 그리고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일에 방해되는 모든 요소들을 
하나하나 제거하셔야 돼요. 

저는 오늘 이 시대에, 진짜 믿음 생활을 제대로 하고 
영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영적인 민감성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려고 하면 
굉장히 중요한 주제 중에 하나가 simplicity 단순한 삶이에요.

분주하고, 복잡하고 온 곳에 내가 다 걸려 있고 
에너지가 사방팔방으로 다 빠져나가요. 
하나님과의 그 관계는 아주 가느다란 실낱 같아요. 

자신의 삶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없으면 
영적으로 둔해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무리 말씀하셔도 
내가 들을 수가 없어요. 

여러분, 사무엘 시대에 하나님이 정말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는데
그 어린 아이는 들었지만, 
그 시대의 영적인 지도자인 엘리는, 도무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 했어요. 
그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해져 버린 것이죠. 왜요?
그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우리가 주의 영에 민감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가 깊어져 가면서 
자연이 하나님의 음성이 클리어하게, 아주 선명하게 들리게 됩니다.

나중에는요, 우리 발걸음 하나 하나를 주께서 말씀하시며 인도해 가십니다.
하나님이 어떤 때는.. 내 생활, 오늘의 모든 스케줄을 다 스톱하게 하시고
다른 길로 인도하실 때도 있어요. 그래서 전혀 의외의 사람을 만나게 하실 때도 있어요.

여러분,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그분과 깊은 교제를 나눌 때 
자연히 하나님의 음성은 기가 막히게 들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결정을 내리기를 원하시는지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삶의 환경을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기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해집니다. 

그래서 가장 최상의 삶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삶입니다. 


▲2. 두 번째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는 
하나님의 아버지의 <보호하심>입니다. 

우리는 매우 연약합니다. 강한 것 같으나 실제로는 연약하기 그지없습니다. 
인정하시죠? 여러분, 뭘 자랑할게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어요. 

그거 자랑할 것 한 번 꺼내 보세요. 아무도 없어요. 
자랑하는 거가 있다 해도, 훅 불면 하루 아침에 날아가요.

건강 자랑, 돈 자랑?
훅 불면, 하루 아침에 날아가 버립니다.

우리 육체도 연약하고, 우리 마음도 연약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지킬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지키려고 하면, 당장 무엇이 찾아 오는 줄 아십니까? 
두려움이 찾아와요. 

두려움은, 자기 인생을 자기가 책임지려고 할 때 찾아오는 것이죠.
왜 염려가 찾아 옵니까? 
자기 인생을 자기가 책임지기로 하기 때문이죠. 

왜 우울증이 찾아옵니까? 
자신의 삶에 너무 많이 고민을, 스스로 하기 때문이에요.

자기를 스스로 보호하려고 하는 심리는, 죄인의 속성입니다. 
사람들은 가능한 남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죄인의 심리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도움도 싫고, 
하나님의 간섭도 싫고, '나는 내 팔 흔들며, 내 마음대로 살고 싶다' 합니다. 

이게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의 모습입니다. 
인간은 틈만 나면 힘을 기르려고 합니다.

힘을 쌓으려고 하는 이유는 뭡니까? 
자기 힘으로 자기를 보호하려고, 남들을 통제하려고 하기 때문이죠. 

돈을 버는 내적인 동기 안에 숨어 있는 것은 
자신만의 울타리를 높이 쌓고 싶은 내면의 욕망이 있기 때문이죠.

모두들 나를 보호하려고 하는 울타리 쌓기에 열심을 다합니다. 
그러나 울타리를 높이 쌓아 올리면 올릴수록 
인간의 불안은 더 심화됩니다. 

집에 담벼력이 높다는 말은 불안이 심하다는 얘기에요. 
옛날에 보면 부잣집들은 담이 높았어요.
담 위에 철조망 같은 것도 쳐 놓고, 깨진 유리도 꽂아놓고
마당에는 도사견이 지키고 있었어요.
그 안에서 사는 주인은 신경쇠약증 환자일수도 있어요. 

오늘도 집에 CCTV를 필요 이상으로 많이 설치한 집은, 
신경쇠약증 환자일 수도 있습니다.

성공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인간의 내면의 마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기 보호벽'을 스스로 쌓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내가 나를 보고 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마음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늘 자신의 것들이 빼앗길까, 노심초사 하게 됩니다. 

우리가 만든 나의 보호벽은 부실합니다.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호를 확실하게 체험 해야 돼요. 

시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는 자다!'

그는 수없는 위험을 넘나 들었습니다. 
죽음의 위기를 수 없이 겪었습니다. 

그는 시편 3편에서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려 하는 자가 많도소이다'

그의 주변에 대적들이 얼마나 많았던지요.. 
그러나 그 모든 위기로부터 '하나님은 나의 가장 안전한 요새였다'고 말합니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친다 할지라도 결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와~ 이런 고백은 얼마나 멋있는지요!

여러분들의 입술에, 이런 고백이 일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완벽한 보호자가 되십니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내어맡겨야 합니다. 
내가 책임지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내 삶을, 그 보호를 맡길 때 
그때 원수의 목전에서 마저도 내게 상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 없이,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태도가 
얼마나 위험한 지 모릅니다. 여러분 세상이 위험한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보호 없이, 내 힘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그 태도가 위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완벽한 보호자가 되십니다.
아무도 우리는 건드리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여러분 무엇을 해야 되냐면,
하나님께 피하는 훈련을 해야 됩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비난하더라도.. 그걸 막으려고 돌아다니지 말고 
전화하지 마세요. 여호와께 피하면 돼요. 

누가 어떤 위협을 해도, 그것과 맞상대하면 안 돼요. 
그러면 지게 되어 있어요.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우리의 완벽한 방어벽, 피난처, 요새, 산성이요,
여호와가 우리 구원의 뿔이 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그 보호를 책임지십니다. 


▲3.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진 세 번째 놀라운 권세는 
<공급, 아버지의 공급하심> 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확인하게 되는 중요한 증거는
세 번째로, 하나님 아버지의 공급을 체험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일평생 생계 문제를 자기가 책임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찾아온 저주가 무엇입니까? 
땀 흘려야만 먹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모든 것을 마음껏 먹고 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그 모든 것이 힘들어졌습니다. 

우리에게 생계의 문제는, 이제 가장 예민한 주제가 되었습니다. 
빵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 하고 사는가에 따라서, 
신앙의 질이 달라지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공급을 실제로 체험 하지 못하면 
세상을 기웃거리며, 눈치 밥을 먹게 되어 있어요. 
세상에서 없는 맛 없는 밥이 뭔지 아세요? 눈칫밥이에요.
  
아버지로부터 공급을 체험하지 못하면, 
길거리에 나가서 눈치 밥을 먹어야 돼요. 
세상에 손을 벌리고 살아야 돼요. 

아버지로부터 공급을 받지 못하면, 어딘가 세상에 나가서 손을 버려야 돼요. 
잘 안되면 사기라도 쳐야 되고, 도둑질도 해야 돼요. 
별별 사건에 다 연루되어서, 신자인데도 불구하고 
뇌물을 먹고 감옥에 가는 일들이 오늘날에도 일어나고 있어요. 

왜 그래요? 아버지의 공급을 믿지 못하고 
세상에 기웃거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아버지의 공급하심을 경험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온전히 따를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세상 사람들은, 자기 밥줄을 책임지는 사람에게 순종해요. 
보면 그 월급 주는 사람에게 다 머리를 숙이고 살아가요. 

신앙이 있는 것 같은데, 대단한 것 같은데 
내 밥줄을 쥐고 있는 사람 앞에서는, 신앙의 양심을 내려놓고 
머리를 숙이고, 술잔을 따르며 타협하고... 

그럼 신앙인의 정체성을 스스로 버리는 거죠.

하나님으로부터 공급을 받는 체험은, 신앙의 필수과목입니다. 
여기에서 분명한 레슨을 통과하지 않으면, 신앙은 난항에 빠집니다.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데, 
안으로 들어가 보면 아니에요. 

△여러분, 생계의 문제는.. 간단한 주제가 아니죠. 
생계 문제는 당장 우리의 삶에 직결되는, 문 밖에 나가기만 하면 
당장 우리의 삶에 다가오는... 
먹는 문제가 해결되지 아니하면, 신앙생활을 우리가 온전히 할 수 없죠.

마6장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는 없다. 하나만 선택하라!'

너무도 당연합니다. 겸하여 섬길 수 없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체험하지 못하고, 늘 생계를 염려하며 살면
신앙이 불가능하다는 거죠. 

여러분, 청년들이 그냥 아무 직장에 무조건 취직하려고만 애쓰지 말고 
이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레슨을 분명하게 배우고
직장생활을 시작해야 돼요. 

이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일찍 경험할 수록 좋습니다.
이 경험이 늦으면 늦을수록 손해에요. 인생이 굉장히 힘들게 돼요.

돈 되는 일이 생기면, 어느 날 교회도 안 나오고, 세상방식으로 살아가요.
이 문제 (공급을 믿음)가 해결 안 되면요. 언제나 신앙이 원점으로 되돌아가요.
생계 문제만큼 절실한 게 없기 때문이죠.

여러분,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맞다. 하나님이 정말 우리 아버지시고 
아버지는 내 삶에 공급자가 되신다'
이것을 정말 확실하게 경험을 해 보셨습니까? 
진짜 의심이 안될 정도로! 

여러분,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나는 동안 확실하게 경험했던 것이죠. 
광야에서 만나를 매일 내려주셨습니다. 상상만 해도 엄청난 일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그 2백만 정도가 먹을 수 있는 분량이 
하늘로부터 만나가 매일 떨어졌다고요. 상상이 안 되는 일입니다.
그것도 거의 40년 동안이나!

왜 그렇게 하셨나요?
하늘에서 엄청난 만나가 쏟아지게 하신 그 레슨이 뭐예요?
딱 하나예요. 너희 생계는 내 손에 있다! 

부산시민 절반 정도가, 40년간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도 먹고 살았던 거예요.
'너희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도 절대 잊지 말아라.
그 땅의 문명의 화려함에, 그 땅의 풍족함에 너희는 무릎을 꿇지 마라.
너희가 타협하지 않아도, 너희들의 생계는 내가 다 책임질 것이다.'

'그 땅의 화려함에, 그 땅의 풍족함에 현혹되지 마라! 
그것이 너희들을 살려 주는 게 아니고,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 신8:3

여러분, 한국 경제가, 우리의 생계를 책임지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손에 우리의 생계와 생존이 달려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한국경제도, 하나님의 손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 한국 경제 모든 것들, 그 헤게모니는 하나님의 손에 있어요. 
다른데 눈치 보지 마십시오. 

'내가 책임져, 나만 믿어!' 
그걸 믿게 하시려고, 40년 동안 매일 아침에 만나가 내렸는데 
그 메시지는 '너희는 다른데 무릎꿇지 마, 다른데 눈치 보지 마!
너희 생계는 내가 다 책임지잖아?' 그거 였어요.

▲정리하면, 생계 문제는 우리 삶의 핵심 주제가 아닙니다. 
'그것에 네 인생을 쏟아붓지 말라! 
만약 먹고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표가 되면, 평생 염려하며 살 것이다!'
이 이야기예요. 
'그것은 이방인들, 불신자들이 살아가는 삶의 패턴이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는다.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가 책임지신다. 너희들은 이것들 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여기에서 '하늘 아버지' 라는 표현이 나와요.
아버지가 자녀를 책임지시겠다는 거죠.

자 이제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마6장 33절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요6:21절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네 삶의 목적을 하나님께 맞추면, 그 다음은 내가 해결한다.'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생계유지의 삶이 아니다! 
먹고 사는 게 어찌 너희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있느냐? 
그 소중한 인생의 세월을, 그냥 먹고 사는 것에
자기 삶을 다 드린다는 게 얼마나 아까운 인생이냐?' 

먹고 사는 문제는 사명에 따라가야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거고... 
'나는 (생계는 주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겠습니다'

내가 왜 직장을 갖고, 왜 돈을 버는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6:33절이에요. 
하나님의 자녀는 생존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고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버지 이심을 반드시 경험해야 합니다. 

힘들게 내가 살 길을 찾겠다고 섣불리 나서지 말고 
하나님이 공급하심을 경험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고아처럼 살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고아처럼 살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필수과목입니다. 
다른 것을 다 잘 해도, 이 필수과목을 실패하면 진급을 못 합니다. 

이 부분에서 늘 (뺑뺑이) 돌고 도는 분들이 있어요. 
여기서 우리가 단호한 태도를 견지해야 합니다.

이 분야에서, 내가 아버지의 자녀로 태어나는 
실제적 체험이 일어나야 되는데 
그것은 생계의 문제를 하나님이 분명히 책임지신다는 사실을
실제 삶에서 경험하면서,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가 분명히 정립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맞구나!'

△저는 부목사로 있을 때까지는 몰랐어요. 
이것을 진짜 경험한 것은 시드니에 가서 였어요.

비행기를 타고 낯설고 물설은 시드니에 가서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는데서, 
돈도 몇 푼 안 갖고 갔어요.

돈이 다 떨어지고 난 다음에... 그때 승부가 났어요.
마6:33절의 그 레슨을 배웠어요.
그러면서 하나님의 공급을 체험한 거예요.

물론 그 전까지 제 마음에 많은 갈등과 불안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과 공급하심을 차츰 경험해 가면서
와우 와우! 제 신앙 인생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거예요.
대단한 전환점 이었어요. 

막다른 길까지 막 물렸을 때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나의 방법을 추구하지 않고, 내 수단을 쓰지 않고 
'주만 바라보나이다. 나는 하나님만 위하여 살겠습니다!
생계문제에 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습니다!'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간증거리가 많아요.

'와~ 하나님은 내 아버지이시구나!'
여러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추상적이지 않아야 합니다. 
아버지가 추상적인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삶 속에 공급을 책임지시는.. 
확실한 체험들이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