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전2장, 성도로 마땅히 받는 고난이 올 때, 예수님 발자취를 따르라 :21 여러설교정리
※베드로전서의 전체 주제가 무엇이며,
각 장은 무슨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그것을 파악하는 일은.. 사실 쉽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의 연구를 필요로 합니다.
베드로전서의 각 구절을, 한 두 구절씩 각각 떼서 해석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체 흐름과 문맥속에서 저자의 의도, 그 주제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죠.
과거에 그런 식으로 본문을 한 번도 연구해 보지 않았기에, 더 당황하게 되는데,
이번에 처음 공부하고.. 나중에 다시 공부할 때는.. 좀 더 이해가 쉬우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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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전1장에서 저자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유명한 <구약의 이미지들>을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합니다.
출애굽하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그들 역시 허리를 동이고 1:13
과거의 삶의 방식을 뒤로한채, 새 미래로 나아가야 합니다. 출12:11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거룩한(구별된) 백성이며, 1:15~16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광야를 지나는 여정 중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출애굽 백성으로서, 궁극적인 유월절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피로 구속되었습니다. 1:17~21
그들은 새로운 언약 백성으로서, 1:22~25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라게 됩니다. 2:2
그들은 예수님의 터 위에 세워진 새 성전입니다. 2:4~8
그리고 그들은 새로운 제사장 나라로서 2:9~10
열방을 대표해서 하나님을 섬길 것입니다.
(참고로, 베드로 사도는 1장에서는 '산 소망 living hope'을 강조했다가, 1:3
또한 '살아있는 말씀 living word'을 언급했다가 1:23
이제 본문 2장에서는 '산 돌 living stone'을 설교합니다. 2:4
이 셋은 모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러면서 베드로 사도는 2:11절부터, 구체적인 삶은 적용을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이렇게 살아가게 된다는 거죠
2:11 여러분은 나그네와 행인들입니다.
2:12 선한 생활을 하십시오
2:13~17 왕과 총독에게 복종하십시오
2:18~20 종은 주인에게 복종하십시오
2:21~25 선하게 살다가 고난을 당할 때,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참으십시오.
이렇게 벧전1~2장의 문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쭈욱 '삶의 적용'이 계속 이어지다가
5:10절에 가서, 올바른 모습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 위해서
앞으로 다가올 영원한 영광에 대한 관점으로
현재 당하는 고난을 생각해보라고 권면합니다.
정리하면, 이렇게 사도 베드로는 구약 속 하나님의 백성들과
현재 교인들과의 유사성을 부각시킵니다.
구약 이스라엘과 같이, 신약 교회도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으로
거룩이 요구된다고 주장합니다.
교회가 핍박과 고난을 받는 것은
악한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고자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고난은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여정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21세기의 현재 하나님의 백성도
의를 위해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이 사실을 베드로전서를 읽을 때, 우리가 유념해야 하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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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2~5장) 주일설교 - YouTube
*위 동영상 0:00~12:45까지 녹취 + 정리
우리는 지난 시간에 벧전1장을 봤어요.
1장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봤습니다.
우리 크리스천은 세상 사람들하고 다릅니다. 어떻게 다르냐면요.
세상 사람들에게 미래는 단지 <희망>일 뿐이에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미래가 확실한 <소망>입니다.
이 <소망>은 우리의 "확실한 미래" 에요.
왜냐면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주는 약속이 아니라, 국가가 준 약속도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 있는 미래 에요. 그래서 이건 희망이 아니죠.
우리는 <소망>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소망 : 보증된 약속을 바라보는 것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과, 우리가 추구하는 건 완전히 달라요.
도착하는 곳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것을 우리는, 이미 우리 마음에 받았고 알고 있기에
우리 마음에는 기쁨이 있다는 거에요.
이 기쁨은, 고난속에서 더 빛이 납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제부터 이런 소망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르게 사십시오!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라는 것이 (성화되라는 것이)
이제 벧전 2장부터 구체적으로 이어집니다.
◑성도가 다르게 살게 되는 이유 : 너희는 산 돌 위에 건축되어졌음
어떻게 다르게 살아야 되느냐? 본서는 이렇게 요구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거룩한 삶입니다.
▲2:1 '여러분들은 이제부터 모든 악독과 거짓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십시오.'
이 내용은 1장에서 연결되죠. 1장에서 주님이 오시는 날을 사모하며,
'하나님처럼 거룩하게 살아라'고 했죠. 1:15~16
그러니 환난을 기쁘게 여기고, 그 후에 있을 영광을
또한 바라고 즐거워하는 거예요. :11
그러니 환난을 당할 때, 악담이나 쓴소리를 하지 않죠. 대신에 1절처럼
'여러분들은 이제부터 모든 악독과 거짓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십시오.'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정결한 마음을 얻을 수 있어요.
이 정결한 마음, 아기 같이 순전한 마음이 되었을 때,
그때 하나님께 우리는 신령한 젖을 구하라고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령한 젖을 주시고
그 신령한 젖 때문에 우리는 성장하며 구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2: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2:2
여기서 말하는 '신령한 젖'은 무엇일까요?
네, 예수님의 말씀이에요.
예수님의 말씀은, 아무나 받아서 다 신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듣기에는, 세상에 어리석은 말이고, 무가치한 말이에요.
그러나 정결한 마음이 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가 들을 때는
이것보다 더 신령한 말씀은 다시 없어요.
▲2:4~5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여러분들은 예수님께 나오십시오 예수님은 살아있는 돌입니다.. 라고 했죠.
'살아있는 돌'은 처음 듣는 말입니다.
여기서 '살아있는 돌'이란 뭐냐?
하나님은 예수님이 이 땅이 오기 7백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요.
그 예언자를 통해서 이런 예언을 해주셨어요.
사28:16절에 '언젠가 한 돌을 시온에 보낼 것이다.
이 돌은 너희에게 시험하는 돌이 될 것이다.
나는 이 돌을 귀하게 여길 것이고, 이 돌로 기촛돌을 삼을 것이다.
이 돌을 믿는 사람들은 평안을 얻을 거야!' 이런 예언을 하신 적이 있어요.
예수님도, 마21:42에서 자신을 '모퉁이 머릿돌(기초석)'이라 하셨죠.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이 말씀은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시118:22
이 시편 구절을 인용한 것인데,
본문의 산 돌 = 모퉁이 머릿돌 .. 다 예수님을 가리키는 거죠.
중요한 것은, 신약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기초가 튼튼하고, 확실하다는 거죠
▲그 말씀을 베드로 사도가 본 서신에 이렇게 인용했죠.
2: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이 예언대로,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오셨어요.
예수님은 바로 이사야가 예언한 그 '돌'이었어요.
그런데 이 돌이 얼마나 신기한가 하면
똑같은 돌인데.. 아무에게나 똑같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에요.
어떤 사람에게는 보배로운 돌처럼 보였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 돌을 본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했냐면
마치 밭에 나가서 밭을 갈다가 보물단지를 만난 것처럼
그러면 유대인들이 당시 문화에서는 그런 일이 종종 있었어요.
이렇게 전쟁이 일어나면 자기재산을, 다 단지에 넣어서 땅속에 숨기거든요.
그러면 그 집주인이 죽으면, 그 보물의 주인은 없어집니다.
그때 누가 땅을 파다가 그걸 발견하게 되면
이 보물이 임자는 누가 되냐면, 그 땅의 주인이 돼요.
그래서 이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반드시 그 땅을 사야 돼요.
자기 전 재산을 들여서 그 땅을 사서, 그 보물을 차지했어요.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딱 바라보고, 그분이 보배로운 돌임을 걸 본 사람들은
자기 전 재산을 드려서 그 분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보면, 사람들이 전 재산을 내고 교회로 들어오는 거에요.
예수님을 믿는 그 신앙안으로 들어오는 거에요. 왜 그랬던 것일까요?
왜냐면 그들은 예수님이 어떤 돌이라는 걸 깨닫고 믿었던 거에요.
정말 보배로운 돌이란 걸 깨달았고, 그들은 이 돌을 만났고
이미 천국을 받은 사람들처럼, 자기 마음 속에 큰 기쁨을 누리기 시작했고
이 기쁨은 고난속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는 거에요.
▲근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똑같은 돌인데
이 돌이 쓸모없는 돌처럼 보였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들은 이 돌을 버렸어요.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오히려 이 돌에 걸려서 그들은 넘어졌고 실족했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돌을 가지고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하나님의 성전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첫번째 머릿돌을 삼아주셨대요.
그러면서 우리보고 그래요.
'여러분들도 하나님께 나가십시오. 예수님께 나가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들도 이 산돌(예수님)에 연결되어져서
하나님의 성전으로 만들어질 것입니다.' 2:7
놀라운 일이죠. 그런데 왜 똑같은 돌인데,
왜 이렇게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일까요?
무슨 차이가 이 돌(예수님)이 이렇게 다르게 보이는 걸까요?
이유는 딱 하나래요.
하나님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보배로운 돌로 보였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쓸모없는 돌처럼 보였다는 거예요. 2:8
그래서 하나님이 이사야서에서 이렇게 예언을 하셨잖아요.
'이 돌은 시험하는 돌이라!' 사28:16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이 돌은 '살아있는 돌'이라고 했죠.
무생물체인 성전 기초석이 아니라,
예수님은 살아계신.. 이사야가 예언한 '산 돌'이라는 거죠.
예수님은 이 돌에 대해서 이렇게 무서운 말씀을 합니다.
마21: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우리도 이 '산 돌'을 만나서, 그 기초석 위에 연결되어 성전으로 세워졌나요?
아멘!
▲그러면 우리에게는 왜 이런 은혜를 주셨냐는 거에요.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택하신 족속이고 왕 같은 제사장들이래요.
우리는 그분을 시작(기초)으로해서 만들어져 가는 그분의 나라 래요.
우리가 그분의 나라(백성) 래요.
그래서 우리에게도 이런 은혜를 주셨대요.
산 돌을 알아보고, 보배롭게 여기고 믿고 따르는 은혜!
그래서 그분의 백성으로 삼아주셨대요.
◑사도 베드로가 무슨 말을 하려고 이 말씀들을 하셨냐면
"그러니까 여러분들 다르게 사십시오!
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지 마십시오!"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몇 가지 이렇게 권합니다.
하면서 베드로 사도는 구체적인 지침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2: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육체의 정욕을 이겨내십시오.
행실을 바르게 해서, 우리를 억압하고 비방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선한 삶을 보여주십시오'
그렇게 할 때, 그 선한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대요.
예수님도 마태복음에서 똑같은 말씀을 하셨거든요.
'너희가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그 선함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하셨죠. 마5:16
우리의 업적이나, 우리의 능력이나, 우리의 부요함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이 될까요? 아니요.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요?
우리의 선한 삶, 착한 행실,
세상 풍조를 다 버리고,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삶을 살 때,
우리 육체의 정욕을 버릴 때, 성령이 원하시는 그 아름다운 길을 갈 때
그 삶때문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고 합니다. 2:12
▲그리고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에 순종하십시오.
2: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 혹은 그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왕이나 총독들에게 순종하십시오!
종들은 주인에게 순종하십시오!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순종하십시오! :18
'민주주의 제도에만 순종하십시오.' 이렇게 하지 않았어요.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에 순종하십시오' 라고 하셨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충돌될 때는, 하나님께 먼저 순종하지만
그게 하나님의 말씀과 충돌되지 않을 때는, 왕과 총독에게 순종하라고 했죠.
당시 왕과 총독들은요. 지금 우리의 윤리 도덕적 기준으로 보면
너무 나쁜 사람들이었어요. 그러나 성경은 '순종하라' 그래요.
이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순종하며 그렇게 살아도,
세상은 우리를 부당하게 여기고, 핍박하고 미워한대요.
◑그렇게 거룩하게 살다보면, 부당하게 고난을 당할 때가 옵니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되는 거죠? (이게 2장의 가장 핵심이라고 봅니다)
지금 본서의 수신자들이,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거룩하게 살다가.. 지금 핍박과 환난 중에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가 부당하게 권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슬픔을 참으면
억울한 일을 당하고 슬픔을 참으면
이것이 하나님 앞에 다 아름다운 일이래요.
2: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여러분, 이렇게 살 자신이 있습니까?
자 이제부터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이렇게 살게 하려고 하나님은 우릴 불러주셨고, 살아있는 소망을 주셨대요.
살아있는 돌을 알게(믿게) 해주셨대요.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니까 우리를 지금 어떻게 살게 한다고요?
선한 삶을 살았지만.. 그러나 고난을 받게 하려고..
한 마디로 억울하게 살게 하려고.. 이렇게 불러주셨다는 거예요. *2장의 주제
여러분, 21절 말씀 앞에 자신이 있습니까?
보통 우리는 이래요. 억울하면 하나님께 나와서
'나 억울하다고.. 난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저가 나를 이렇게 괴롭힙니까?'
이렇게 막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시던가요?
오늘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21절에 '너희에게 본을 끼쳐..'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은 '나도 그랬어.. 나도 그 길을 걸었어..'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해요.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도 죄가 없으셨지만,
욕을 당하였지만 한마디도 항변하지도 않았대요.
2: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아무 말 없이 그 길을 묵묵히 걸어서,
나무에 달려 죽기까지 했대요.
우리가 그분보다 더 억울합니까? 아뇨, 우리는 죄가 있잖아요.
그분은 한 점 흠이 없는 분이, 그 분이 왜 이렇게 하셨느냐?
우리에게 가르쳐주려고 그랬대요. 우리도 그렇게 살게 하려고!
그러면 왜 그렇게 살아야 되느냐? 하는 거예요. 의문이 생기지 않나요?
'아니 왜 선하게 살았는데 우리가 핍박을 당해야 되냐고요?'
그것이 십자가의 길이고, 그것이 생명으로 가는 길이고,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그랬대요.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인간을 구원할 다른 길이 없기 때문에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이것 밖에는 다른 길이 없기 때문에
그 길을 통해서 구원의 길을 여셨대요.
그러면서 우리 보고도 너희도 이 길로 오라고,
이 십자가의 길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우리는, 인류를 구원하는 길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
우리 주위의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본문 벧전2장의 길을 가게 되어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사실 본 서신의 저자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 그 길로 가셨죠.
여러분, 그러면 아직도 억울하십니까?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이라면, 여러분들도 이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성도로서 살다보면, 억울한 일이 많아요.
교회 밖에서만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은 교회 안에도 그런 사람(핍박자)들을 가득 데려다 놨어요.
그래서 교회 안에도 억울한 일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성경을 보면, 가인의 아우 아벨 때부터..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까지 *마23:35
교회 안에서는 억울한 일 당한 사람들이 가득 나옵니다. 시대마다 있었어요.
그러므로 이제부터 모함받고, 비방받고, 왕따당할 때
그러면 막 분노하고, 목사님한테 와서 하소연하고, 같이 상대를 참소하고..
'어쩌면 이럴 수 있냐?' 그러지 말고 이제부터는 기뻐하고, 감사하십시오.
2: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정말 그렇게 해보십시오. 왜요?
이게 뭐라고요? 이렇게 생각하래요.
'아~ 나에게 생명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셨구나!
나도 이제는 십자가를 통한, 내 주위의 생명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게 하려고,
그 사역의 문이 열렸구나!' 감사한 일이 아닌가요?
나를 핍박하면, 나를 괴롭히면..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인가요?
아니요. 하나님이 내게 보내주신 사람이에요.
그래서 그렇잖아요. '가라지를 뽑다 보면 알곡도 뽑힌다'고.
추수 (하나님의 심판의) 때까지 내버려 두라고... 하나님의 지혜라는 거에요.
놀라운, 오묘한 섭리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걸 깨달았던 거에요. 아직도 회피하겠습니까?
가십시오! 고난을 당하면 그냥 자기 억울한 것만 생각하지 말고
이제부터 기뻐하십시오. 그럼 다른 힘이 나올 거에요.
무슨 힘이 나온다고요?
그 길을 가기 때문에, 그때부터 그 소망이 우리에게 별처럼
우리 마음에 기쁨을 준다고요. 영광을 바라보게 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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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가 없어도 계속 열심 내다 ← 스탠리 존스 선교사
스텐리 존스 선교사가 인도에서 선교할 때의 일이다.
그는 열심히 전도했지만, 사람들은 복음을 받지 않고 오히려 조롱/핍박했다.
어느 날 그는 너무 지치고 피곤해서 사과나무 아래에 힘없이 쓰러져 있었다.
그 때 하나님이 그에게 찾아와 이런 음성을 들려 주셨다;
"스텐리 존스야, 이 사과나무를 보아라. 지금은 열매가 없어 보이나
뿌리가 땅에 깊이 묻혀 있고, 잎이 태양을 향해 있으며,
그 얼굴이 나를 향하고 있으므로 장차 좋은 열매가 맺힐 것이다.
그 열매를 믿음으로 바라보아라."
스텐리 존스는 다시 힘을 얻었다. 다시 열심을 내었다.
그는 69세 때, 중풍 병에 걸려 미국으로 후송되었으나 5개월 만에
기적적으로 완치되어, 다시 인도로 돌아가 90세까지 선교사역을 계속했다.
그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마침표를 찍기 전까지,
나는 스스로 내 인생에 쉼표를 찍지 않겠다!”
▲잔느 귀용이라는 17세기 영성가가 있었는데
그 당시가 천주교가 전 세계를 지배했던 암흑의 때였는데
천주교 식으로 예수님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개신교식으로 예수님을 가르쳐서
핍박을 받고 프랑스 감옥에 수 십 년동안 갇혀 있던 여자분이에요.
근데 그 감옥에서 쓴 책들이,
오늘 이 세대에 예수님을 진짜로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고 싶은 사람들,
진짜 복음을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정도의 길을 제시하는데
이 잔느 귀용의 자서전 <순전한 사랑>이 두란노 출판사에서 나왔는데
그 책을 포르투갈 어로 번역해서 브라질 선교지 우리 교인들에게 나눠주면서,
이 분처럼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고 싶은 사람.
정말 진짜 복음대로 살고 싶은 사람은, 아마존 우리 교회에 계속 나오시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교회에 나오지 말라.. 고 제가 얘기를 했어요.
교회에 나오지 말라고 강수를 두었지요...
김철기 선교사 설교 “하나님의 사람” 중에서
▲크리스천의 시련과 고통을 많이 겪어서 아는 분 중에,
잔느 귀용이 있습니다.
부인은, 마치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시고, 자기를 돌보지 않으시는 것 같고,
하나님은 입을 닫으시고 말씀하시지 않는 것 같으며,
아무리 하나님을 찾아도.. 응답하시지 않는 것 같고,
하나님께서 소리를 내지 않으시는 것 같고, 침묵하시는 것 같으며
마치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과 같은.. 오랜 시간을..
귀용 부인은 보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영혼의 깊은 밤’(오랜 기간 하나님의 응답이 없는 기간)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우리 각자도 겪을 수 있습니다.
이때 특별히 ‘축적(저축)된 은혜’가 요긴하게 쓰여집니다.
그러나 ‘축적된 은혜’가 없는 사람은, 이때 심령이 고갈되고, 흔들리고 맙니다.
귀용 여사는, 몇 개월 동안 계속해서 사탄의 시련을 받았습니다.
자기를 둘러싼 온 세상은,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귀용 여사는, 마치 예수님의 광야 40일 같은 그 시련의 기간을,
끝까지 인내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며, 이겨냈습니다.
계시록에, 서머나 교회에, 예수님이 이렇게 편지하셨습니다.
계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여기서 ‘부요하다’는 의미가, ‘축적된 은혜’를 뜻한다고 봅니다.
서머나 교회가 환난과 궁핍을 오래 겪었으나,
그들에게는 ‘부요함, 축적된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결국 승리하고, 예수님께 칭찬과 인정을 받았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