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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8:18~25 영광에 이르는 소망

LNCK 2022. 10. 22. 10:14

영광에 이르는 소망 (로마서 8:18-25)│2022.10.09 - YouTube

 

◈영광에 이르는 소망           롬8:18~25      2022.10.09. 설교일부녹취          

◑1. 고난 중에 영광을 바라라 

8:18 현재의 고난은 앞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18절에 밑줄을 그어보세요.
현재의 고난은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 이 말의 뜻은 
현재는 고난의 터널 가운데를 지나가고 있지만, 
그 끝에 찬란한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면 
이 어둠 속에서 주저앉지 않고, 매 순간 한 걸음씩 걸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숱한 밤을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밤을 새며 공부 할 지라도 
합격의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면, 그 시간을 감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화는 천로역정입니다. 천성문에 이르기까지 성화는 
매 순간, 매 걸음 고난의 여정입니다. 

'성화' 라는 것 자체는 아주 좋은 개념이죠. 
하나님의 자녀들이 거룩하게 삶이 변화된다.. 하는 것이죠. 
참 좋은 목표이지만, 상당히 어려운 여정이 된다는 것이 힘든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신부'는 영광스러운 신분이지만 
그 자녀다운 매일 삶을 살아내는 것은, 너무나 치열하고 혹독한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놓아버리고 싶고, 때로는 타협하고 싶고, 
때로는 그냥 세상으로 치우치고 싶은 유혹을 종종 받게 됩니다. 

성경통독 사역을 하는 가운데 어떤 분이 이런 질문을 하시더라고요. 
'목사님은 삶이 우울할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요?' 

제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저는 삶이 우울할 때 그냥 가만히 있습니다'
그냥 그렇게 대답을 해 버렸어요. 그냥 우울한 상태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우울한 마음 우울한 상황을, 세상적 즐거움으로 억지로 전환해 보려고 해도 
그렇게 바꿔놓으면, 분위기를 띄워놓으면...
잠시 지나면 또 다시 주저앉는 거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상태 그대로를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은 이 도시에서 살다가, 한 달 정도 시골에 내려가서 지내보세요.

이 자연상태 그대로는 그냥 지루합니다. 
심심하고.. 지루하고.. 차분하다 못해 우울하고 그런 거예요. 

그러나 그 우울한 상태에서, 내가 다른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기를 기다리는 것... 그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우리의 인생이 우울한 인생 일지라도 
그 자리에서 주님을 뜨겁게 만나면 
영혼의 밑바닥으로부터 차오르는 게 분명히 있거든요. 
그렇게 세워져가는 것이 (우울할 인생에서) 선하고 좋은 것이죠. 

▲19절과 19절이 오늘 본문 중에 가장 중요한 두 구절입니다. 

8:19 피조물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19절 말씀이 여러분 이해가 되세요?

피조만물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게 무슨 얘기일까요? 

지금 롬8장은 "성화의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화의 과정을 지나가면서 
너무너무 고난의 세월을 보내고 있고 
이게 힘겨워서 때로는 포기하고 싶을 만큼 어려운데 

그런데 자연계 전체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아들들로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들로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거에요. 

왜냐하면 장래의 영광에 이르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될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기 때문이에요. 

세상을 구원하고, 세상을 치유하고, 이 절망스러운 세상에 
소망을 주는 역할을 누가 하느냐? ...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세상은 
절망으로부터 세상을 건져내줄 구원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거에요. 

아니, 성경적으로 보자면 구원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이십니다. .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구원자'는 저와 여러분을 얘기하는 겁니다. 
크리스천을 얘기하는 거예요. 
아니 어떻게 우리가 구원자가 될 수 있는가요?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의미안에 
이미 그런 뜻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건져내서 자녀로 우리를 받아주신다'는 뜻 뿐만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그런 죄와 사망에 매여 있는 세상으로 나아가서 
그 무너진 세상을 재건하는 사람들로, 
방황하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사람들로, (피조세계를 포함해서)
절망스러운 세상에 소망을 주는 구원자로 역할을 해야 된다'
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 한 사람이 어떻게 하면 이 어려운 세상에서 무너지지 않고 잘 살아갈까?' 
그 한가지로 몸부림을 치는 거잖아요. 

물론 나는 나라는 개인의 인생을 사는 미시적 관점이 있지만 

하나님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나 한 사람의 인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거룩을 위한 몸부림을 
세상을 구원하는 선한 영향력으로 쓰신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4444

▲이런 대표적인 케이스가 한나와 사무엘이죠. 
한나가 자녀가 없어서 너무나 서러워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 하잖아요. 
근데 남편도 내 마음을 다 이해해주지 못하는 거예요. 
그리고 브닌나가 끊임없이 자기를 격동시킵니다.

그 가운데서 한나가 인간적으로 절망하거나, 세상 곁길로 빠지지 않았어요. 
어떻게든 자기 인생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해결해 보겠다고 
혼자 몸부림을 친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제게 자녀를 주시면 나실인으로 바치겠습니다.' 

한나는 어떻게든 아들 하나 얻어 보겠다고, 하나님 앞에 몸부림을 쳤는데 
하나님은 그의 간절한 기도를 기다리셨던 거죠. 

하나님은 그 순전한 고백을 기다리셨다가 
그 아들 사무엘을 들어서 어떻게 쓰십니까? 

사사시대 동안 내내 영적인 밑바닥을 쳤던 그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다시 살려내는데 쓰시는 거에요. 

그러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개인 기도제목을 갖고 몸부림을 치고 있겠지만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고요. 

하나님은 여러분의 개인의 인생을 회복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실 줄로 믿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큰 그림이에요. 

▲어떤 분이 성경통독을 하면서 이런 질문을 하셨어요. 
'아니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다면서 
삼손 같은 경우에는,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이 이미 나실인으로 평생 바치라고 
결정을 다 하지 않으셨느냐? 
그렇다면 삼손에게는 자기 인생을 선택할 자유가 없었던 것 아닌가요?'

제가 '일리있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그를 나실인으로, 
평생 헌신자로 부르지 않으셨다면 그게 과연 더 좋았을까요?'

여러분도, 삼손의 인생을 한번 역으로 상상을 해보세요. 
우리가 삼손이 얼마나 천방지축인지를 알잖아요?

그가 나실인으로 구별되지 않고, '그냥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라!' 
만약 그러셨다면, 
그는 어느 길바닥에서 비명횡사할지 모르는 망나니로 살지 않았을까요? 

여러분, 하나님의 부르심이 삼손에게 손해였을까요? 
그의 인생을 뭔가 하나님이 제약가운데 붙잡아 주셔서 
부자유스럽게 만드신 것이, 그의 인생에 불행이었을까요? 

어떻게 보면 세상에서 정말 무가치한 인생으로 끝나버릴 사람 삼손을 
사사로 세우셔서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여할 수 있도록 해주신 것, 
이게 얼마나 그의 인생에 큰 축복이었습니까! 

△저는 가끔 뭐 저 자신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을 하는데 
제가 목사가 안됐다면, 아주 우울한 기질에 사람이었기 때문에 
벌써 제 인생을 끝냈을 것 같아요. 

게다가 저는 정반대로 또 노는 것도 상당히 좋아하기 때문에 
목사가 안됐다면 진작에 세상으로 달려가지 않았을까? 

제가 인생의 절망의 밑바닥에서, 하나님을 뜨겁게 만난 것이 
저는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소망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왜 여러분,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부담스럽다고 생각하시나요?

하나님의 부르심은 소망입니다. 
여러분을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신 것도 소망이 가득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 내가 크리스천으로 살면서 
이렇게 힘겹게 산다고 생각하시겠지만 

그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 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구원하시고 
나를 통해 이웃을 구원하시고, 나를 통해 시대를 살리시는 
'하나님 나라의 구원자'로 나를 영광스럽게 사용해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게 축복이에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은 성도 여러분! 
일어나 '세상을 구원하는 구원자'로 살아가십시오! 

우리가 왜 세상 편하게 살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을까요?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에, 많은 제약이 있고, 절제할 것이 있고 
내려놔야 될 것이 있고, 포기할 것들이 있잖아요.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주님이 부르셨기 때문이죠. 
부르심을 따라 사시기 바랍니다. 

부르심을 따라 가는 길은, 때로는 고난의 길, 힘든 길이지만 
그러나 그 길에는 가장 큰 인생의 감격이 있고, 기쁨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2. 영광의 소망으로 살라 

8: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게 된 것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분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러나 피조물도 소망 가운데 있으니

8:21 이는 피조물 자신도 썩어짐의 종노릇하는 데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의 자유에 이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20절에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게 되었다'
21절에 '(피조물이) 썩어짐의 종노릇하게 되었다'

피조물(자연만물)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요? 
본문의 설명처럼, 본인들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피조만물이 이렇게 허무함에 이르게 하는 게 뜻이었냐? 
그 얘기가 아니고요. 

하나님이 세우신 영적 질서에 의하면, 
사람을 창조하셔서, 그 사람들이 피조만물을 다스리도록 하셨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범죄하고 타락했을 때 
인간만 타락한 것이 아니라, 그 질서 안에서 그 통치를 받는 피조만물도 
동시에 타락하게 된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피조세계가 회복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인간이 회복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조직과 공동체에 똑같이 적용되는 원리이죠. 
목회자가 성령충만하고 말씀충만하면, 성도들이 성령충만하고 말씀충만하게 돼 있어요. 

부모가 마음이 평안하고 행복하면, 자녀들도 평안하고 행복해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자녀 탓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절망과 분노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 자녀들도 절망과 분노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연법칙을 하나님이 만드셨잖아요.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게 만드셨고 
그리고 영적인 세계에도, 모든 것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게 하신 거예요. 

그래서 피조만물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제발 나타나서 이 세상을 바꿔주기를.. 
왜냐하면 본인들은 피지배층이기 때문에 
자연세계를 다스리고 있는, 청지기 역할을 하는 인간들이 먼저 회복되어야만 
이 세상에 따라서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죠. 

▲8:22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8:23 그뿐 아니라 또한 성령의 첫 열매를 가진 우리조차도 
속으로 탄식하며 양자 됨,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함께 탄식하며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했습니다. 
마치 산모가 산고를 겪다가 아기를 출산하는 것처럼 

피조만물이 지금 해산의 고통을 겪는다는 것은 무엇을 탄생시키기 위한 것인가?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이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들, 
복음으로 성령으로 충만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나타나서 
하나님의 나라를 비로소 보여주기를 원한다는 거예요. 

▲신라시대든 고려시대, 조선시대든 그런 왕정시대는 왕이 있고 
그 왕위를 계승할 후계자가 태어나는게 상당히 중요하잖아요. 

그러니까 그 후계자가 탄생하기를, 
온 조정과 온 백성들이 다 학수고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왕자가 태어나면, 와~ 이것처럼 그 나라에 경사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만약에 그 왕위를 이을 아들이, 부왕의 가르침을 거역하고 
국법을 어기고 맨날 궁녀들만 뒤쫓아다니고 그러면 
온 국민이 슬퍼할 뿐만 아니라, (산천초목이 슬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정의롭고 지혜로운 아들
그리고 백성들을 진정성있게 사랑하고, 국가에 대한 비전이 있는 사람이면 
온 국민이 기뻐할 뿐만 아니라, (산천초목도 기뻐하며 노래를 하는 것이에요.) 

이게 하나님 나라의 그림입니다. 
그렇게 세상 만물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여기서 예배가 끝나고 나가서 가로수 길을 걸어갈 때 
나무들이 있고, 풀들이 있고, 꽃들이 있잖아요. 

그 피조물들이 여러분을 향해서 외치는 거에요. 
'당신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이 땅에서 승리하여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주기를.. 우리가 바라고, 간절히 요청합니다!'

그 부르심을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하나님의 아들딸들로서 
하나님의 왕국, 하나님의 나라를 재건하는 일에 
여러분은 준비가 되어 있는가요? 

바로 여러분이 온 세상을 바꿀 바로 그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역사 때부터.. 제가 지금 과장법으로 얘기하는 게 아니고요. 
성경을 쭉 읽어보면, 하나님은 이 도시문명이나 거대 제국에 큰 기대가 없으세요. 
인류 사회는 대단한 도시 문명, 과학 문명을 세웠다고 자랑스러워하지만 
하나님은 '나는 여기에 아무런 소망이 없다'라는 것을 
이미 창세기 원역사에서 다 얘기하셨다고요. 

가인의 도시가 실패했잖아요. 니므롯의 제국이 실패했잖아요. 
바벨탑이 실패했잖아요. 

인간의 그 힘의 논리로 세상을 통치하려고 하는...
세상을 좌지우지하려고 하는 거기에, 하나님은 아무런 기대가 없으세요. 

그래서 창세기 12장부터 그냥 단 한 사람, 
그의 인생이 굉장히 불완전한 것 같고 엎치락뒤치락해도 
그래도 하나님께 믿음으로 반응하고 따라올 수 있는 한 사람 아브라함,

아브라함 한 사람, 이삭 한 사람, 야곱 한 사람.. 
'그 한 사람만 있으면, 나는 세상을 구원하는 이 거시적인 역사를 완성하겠다'

그 한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은 다윗을 부르시고, 에스더를 부르시고 
저와 여러분을 부르시는 겁니다. 

'아휴 뭐 나는 그냥 내 인생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아닙니다. 왜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셨냐고요?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이 거시적인 역사를 완성하는데 있어서 
저와 여러분을 사명자로 부르시는 거예요. 

▲8:24 이는 우리가 이 소망 가운데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소망하겠습니까?

8: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소망한다면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눈에 보이는 세상 소망, 세상 자랑 다 버리고 
하늘 소망을 품게 되어 있어요.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과거의 영광에 메이는 것이 아니라 
아직 보이지 않지만, 잡히지 않지만 
장래에 영광을 바라보며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짜 역사의 마지막 구간을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신다면 
이 말씀을 기억하셔야 돼요. 

행2:17절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꿈꾼다는 거예요. 
나이에 상관이 없다는 거에요. 
'내가 이제 뭐 반평생을 넘게 살았는데.. 내가 이제는 떠날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아니에요. 나이에 상관없이, 내 인생의 진도에 상관없이 
자녀들도, 젊은이도, 늙은이들도 
예언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꾼다는 말씀이죠. 

과거의 영광에 메이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이 장차 허락하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는 인생이 됩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그 영광의 소망을 바라보는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절망스러운 세상에 소망을 주기 원하시고 
어두운 세상을 밝히기를 원하세요. 

복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성령의 사람으로 부름 받은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이 일을 하기 원하십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