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후1장, 믿음은 계속 자라가야 여러설교정리 베드로전후서 설교모음
신약성경 중에 읽기 싫은 장이 있다면, 또는 설교하기 싫은 장이 있다면,
본문 벧후1장이 그 중 하나입니다.
1: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예수님은 팔복을 가르치셨고,
사도바울은 성령의 7가지 열매를 강조했다면, 갈5:22~23
사도 베드로는, 본문의 8가지 신앙 덕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 우리는 ‘이신칭의, 믿음’ 한 가지만 배웠고, 알고, 가르치고 있는데
베드로는 8가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본문에 의하면, 그 중에 ‘믿음’은, 가장 초보 단계, 입문 과정에 불과합니다.
성경은 두루두루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이 안전입니다.
로마서만 공부하지 말고, 성경 전체 66권 가운데서 로마서를 봐야 됩니다. 주1)
위 8가지 덕목을 한 마디로 축약한다면,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믿음’은, 마치 팔방미인처럼,
‘신앙생활의 총체적 팔방면의 모습’을, 한 마디로 짧게 표현하자면 ‘믿음’입니다.
그래서 보통 성경에 '믿음'이란 말이, 제일 흔하게 등장합니다.
그 외 '제자 되기, 신부 되기, 십자가에서 함께 죽고 살기, 예복 입기'등 여럿 있죠.
우리가 ‘저 사람 믿음 좋다’라고 말하는 것은,
신앙의 모든 면을 다 포괄해서 하는 말인 것처럼요.
그러나 그 ‘믿음’을 자세히 활짝 펼쳐 놓으면,
이렇게 믿음-덕-지식-절제-인내-경건-형제우애-사랑
이렇게 마치 팔색조처럼,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8학년 과정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죠. *외국에 9학년 과정도 있죠
그런데 우리는 1학년 과정만 졸업하고는.. 그것으로 다 끝인 줄 압니다.
그러나 진정 양떼를 사랑하는 목자는
1학년 과정으로 끝내게 하지 않고, 8학년 과정을 다 가르칠 것입니다.
1학년 과정으로 끝내버리면, ‘구원의 완성’에 이르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럼 나 자신은, 지금 어느 단계에 와 있습니까?
잭푸닌은 설교하기를, ‘대부분 신자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믿음의 승급 심사’에서 늘 낙제하기 때문이라는데요.
즉 ‘절제’가 안 되고, ‘인내’가 모자라고, ‘경건’이 안 되면..
아직 여전히 저학년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죠.
사실 내가 초등학교 수준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증거가 있다면
본문에 베드로 사도가 말한 8가지 덕목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정말 본문의 8가지 덕목을 놓고,
자기 매일의 삶에서 분투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고자 애쓰는 자가 있다면
그는 7~8학년 정도의 높은 수준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참고로, 만약 신천지 같은 이단에 빠지는 교인이 있다면, 이유가 뭘까요?
평소에 ‘이신칭의’ 하나만 배워서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1~2학년 저학년이 잘 미혹되지, 7~8학년 고학년은 이단에 미혹되지 않을 거예요.
▲2. 위 8가지 덕목은.. 사실상 ‘지식’보다는 ‘행함’을 강조합니다.
믿음과 행함을 마치 ‘지식-행함’으로 나누는 것 자체가 올바르지 못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워낙 ‘믿음’을 .. 지식적 차원에서만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 본문 벧후1:5~7절을 통해서
기독교 신앙은, 지식이 아니라, 행함에 있음을 다시 한 번 철저히 자각합시다!
이렇게 믿음-덕-지식-절제-인내-경건-형제우애-사랑의 8가지 덕목 중에
대부분은 ‘행함’입니다.
믿음도 ‘행함이 있는 믿음’이고,
지식도 ‘하나님을 아는 것’인데, 이것은 지식적인 앎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덕’은.. 아리송한 개념인데, 내면적인 선함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덕)입니다.
이것은 ‘덕을 세운다’할 때의 덕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유교적 의미의 ‘덕’도 아닙니다. ☞믿음에 덕을
미국 대학생들의 한 가지 문화적 차이는
‘자기가 공부한 교과서를 다음 학기에는 내다 파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비싸게 구입한 책을, 책꽂이에 무슨 전리품처럼 고이 모셔 놓는데
미국 학생들 중에 일부는, 그걸 헐값에 팔아버리는 것입니다.
그게 돈이 궁해서라기 보다는 ‘문화 차이’였습니다.
미국 학생들은 ‘지식을 머리에 넣어 놓는 것’이었고,
한국 학생(저)은 ‘지식을 책꽂이에 꽂아 놓는 것’ .. 그 차이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선각자는 ‘기독교는 공부가 아니라 훈련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기도에 대한 공부가 아니라, 기도 훈련
경건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경건 훈련
머리로 배우지 말고, 몸으로 배우고 익히라는 것이죠.
한국의 뿌리 깊은 유교문화는.. 예로부터 ‘지식’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애당초 본질이 ‘지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즘 ‘배틀’이라는 말이 유행인데, ‘경쟁, 승부 가리기’라는 뜻의 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신학박사 Ph.D.하고, 초등학교 졸업한 권사님이 배틀을 해도
권사님이 승리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가능성이 더 높을 것입니다.
왜냐면 기독교는 ‘지식 배틀’이 아니라, ‘행함 배틀 battle’이기 때문입니다.
▲3. 한국 기독교인들 대부분은 ‘성화론’에 거의 관심 없습니다.
그리고 목회자들마저도 요일3:2절을 성화론의 근간으로 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즉 장래에 주님이 재림하시면
우리가 주님처럼 성화 되리라고 보는 거죠.
1) 이런 생각이나 신학을 갖고 있으면,
2) 본문 벧전1:5~7절과 정면으로 충돌됩니다.
그런데 1)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다른 성경구절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다른 성경구절은, 신약 27권 매 권마다 다 나옵니다.
요일3:2절의 본래 뜻은
‘주님이 재림하시면, 우리가 예수님처럼 30세 가량으로 부활하며,
주님처럼 불멸의 육신을 입는 모습으로 변화된다’는 뜻입니다.
만약 내 인격도, 예수님을 그대로 닮는 것처럼, 그때 자동 성화가 완성된다면,
마태복음부터 시작해서 요한계시록까지
신약성경 내내 ‘온전하게, 완전하게, 성숙되게, 거룩하게, 경건하게 살아라’라고
강조할 이유가.. 신약성경에 없어지게 됩니다.
마지막 날에 예수님처럼 성화될 것인데,
그때까지 그냥 시간만 참고 기다리면 될 터이지,
뭐하러 잘 되지도 않는 ‘성화의 훈련’을 해 나가야 하겠습니까?
아뇨! 우리는 요일3;2절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성경은 두루두루 봐야 하죠.
이제까지 원론적인 설명이었고요, 세부적인 각론은 아래를 참조하세요.
▲본문에 관한 훌륭한 설교들을 아래에 모아 봤습니다.
1:4~5 신성한 성품 divine nature에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