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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후1장, 베드로 사도가 남긴 유산

LNCK 2022. 10. 25. 21:49

◈벧후1장, 베드로 사도가 남긴 유산        벧후1:12~21      여러 설교 정리

 

사도바울이 최후로 남긴 서신은 <디모데후서>입니다.

그처럼 사도 베드로가 마지막 남긴 서신이 <베드로후서>입니다.

 

베드로사도는 ‘은과 금은 내게 없어도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라고 말씀한

적이 있었는데, 행3:6

 

정말 마지막 순교 전에도 ‘은과 금은 없어도 내게 있는 것 네게 주노니’ 하시면서

본서 <베드로후서>를 유산으로 남기셨습니다.

 

본서는 <베드로전서>를 쓰신 후 3~4년 지난 즈음에 쓰신 것으로 추정하며

이 서신을 쓰신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AD 68년경 로마에서 순교하셨습니다.

 

그가 남긴 (마가복음과) 베드로전후서는

정말 은과 금을 남긴 것에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신앙의 유산을 후대에 남기신 것입니다. 지난 2천년 동안 ~ 영원히!

 

 

◑벧후1장의 개요 및 줄거리

 

▲1:1~11절 “신의 성품에까지 계속 자라가야 한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그분의 성품에 참여하도록

사람들을 초대하셨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본 서신을 시작합니다.

 

즉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과 사랑을

성도들이 ‘나누어 가진다’는 건데요. 참 놀랍습니다. *참예한다 1:4, partakers

 

이는 평생 동안 응해야 하는 초대로서, 이 선물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인격적 덕목을 개발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의미죠.

 

베드로는 여기에서 우리가 얻기를 힘써야 할 7 덕목을 열거합니다.

그 중에서 이 모두를 아우르고 완성하는 덕목은 바로 사랑이며

이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대로, 다른 이들의 반응이나 대가에 상관없이

그들의 행복을 위해 헌신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에 따르면, 사랑은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나누어가지는) 것입니다.

 

▲1:12~15절, 본 서신의 기록 목적

 

이 서신은, 그의 가르침을 기념하여

장래 세대들에 전수하는 역할을 할 텐데요.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그가 직접 전해줄 수 없었기 때문이죠.

 

1: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15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죽은)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그래서 그는, 죽기 전에,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왜곡하는 교사들이

제기하는 반박과 비난에 관해 다루길 원했습니다.

 

▲1:16~21절, 베드로의 첫 번째 반박

 

베드로는 먼저 거짓 교사들이 반복하는 비난을 언급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과, 세상의 왕이시라는 이 모든 이야기를

베드로와 사도들이 꾸며냈다는 겁니다.

언젠가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것도 거짓이고요.

 

이에 베드로는, 예수님이 산에서 변모하신 놀라운 순간에 대한

자신의 목격담을 제시합니다.

 

1: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직접 봤으니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사도들은 예수님이 왕으로 높임 받으시는 것을 직접 자기 눈으로 봤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부활은, 그분이 왕으로 살아계시며

언젠가 이 세상을 구하러 다시 오실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벧후 1장의 개요이며,

이어지는 벧후2장과 3장에서

베드로 사도는, 거짓교사들의 거짓된 가르침에 대한 반박을 계속합니다.

 

 

◑적용 1 / 말씀을 생각나게 하려 함이라

 

1:15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사도 베드로가 본서 베드로후서를 기록하게 된 배경을

다시 한번 우리에게 자세히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는 구절입니다.

 

베드로는 지금 이 편지를 쓸 무렵이면, 본인이 이제 떠날 (순교) 때가 임박하다는

것을 그렇게 벌써 알고 있는 시점이에요.

 

그래서 그는 마지막에, 내가 이 편지를 유언처럼 남겨주고 간다면

믿음의 후배들에게, 특별히 교회들에게 어떤 말씀을 남기고 가야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한 것이죠.

 

여러분 사람은 떠나지만 그 사람의 이름이 남듯

또 사람은 떠나지만 그 사람이 남긴 말은 남습니다.

'어떤 말을/유산을/자취를/이름을 남기고 가야 할 것인가?'

오늘날 우리 각자에게도, 매우 도전이 되는 질문입니다. 

 

미국에는 50세가 지나면, 지역 공원묘지에서, 자리를 마련하라는 통보가

우편으로 온다고 합니다. 사람이 소천하기 전에 자기가 묻힐 자리를 마련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어떤 유산을 남기고 떠날 것인가?

그 고민을.. 50세가 빠르면, 적어도 60세 환갑부터는 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 유산이라는 게, 1~2년만에 급조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베드로 사도처럼 제대로 된 유산을 남기고 떠나려면,

수년 전부터 사실 준비해야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마가복음에 이어) 베드로전후서를 남기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가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마가복음은 베드로 구술, 마가 대필

 

초대교회는 우리가 있기 지금 보고 있는 이런 신약성경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사도들에 의해서,

그 복음이 먼저 구전으로 전해졌을 뿐이거든요.

 

그래서 '기억한다'는 것은 당시에 대단히 중요한 일이에요.

결국 사도 베드로가 본인이 주님께 친히 들은 것, 직접 들은 말씀들을

마가에게 들려줌으로써, 마가복음이 탄생했듯이

 

예수님께서 생전에 하셨던 말씀들을, 그가 기억나는 대로

그가 이제 세상을 떠나면서, 주님께서 들려주셨던 말씀들을

어떻게 전하고 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생각하며 삶을 정리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탄생된 이 본문 말씀 가운데

우리는 오늘 중요한 한 단어를 계속해서 반복해서 접하게 됩니다.

 

1:12 '이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remind


1:13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1:15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rememberance

 

베드로 사도는 다음 세대와 후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생각나도록'

하기 위해서 본서를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탈북자들의 간증을 보니까,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에 관한 책을 읽고서

그분의 순교가 잊어버리지 않고 생각이 나서, 그 분의 길을 뒤따르기로 결단하고

그렇게 기도한 결과.. 실제로 북한에서 순교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후손에게 물려줄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도록 하는' 뭔가를 남겨야 한다는 것이죠.

 

부모님의 장례식, 추도식에 가 보면,

부모님의 신앙유산을 자랑스레 나누는 가문들이 있습니다.

그걸 문자로 기록해서 남겨두는 집안도 있습니다. 아주 뼈대 있는 가문입니다.

 

지금 사도 베드로는 주님께 들은 말씀을, 자기 일생동안 생각하고 기억해 오면서

즉 그 말씀에 붙들려 살아오면서

이제 그 자신이 믿음을 유산으로 남겨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주일 설교도, 그 메시지나 본문 말씀이,

그 주간 내내 성도들에게 생각이 난다면, 그래서 그 말씀 붙들고 기도하게 된다면

그 설교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설교가 됩니다. 

 

그런데 어떤 설교는, 설교자 자신부터 까마득하게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주말 쯤 되어서 '내가 지난 주일 무슨 설교를 했지?' 한다면..회개해야 하죠.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내가 전하는 말씀이, 그냥 책상에서 연구한 '책상신학'이 아니라

삶에서 배운 '내가 직접 그 말씀대로 살아보고, 체험해 본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베드로같으면, 그는 주님을 생각할 때 몇 가지 체험적인 사건들이 있었고

그 사건 때문에, 그가 주님의 말씀을 평생 기억하고 살아왔던 게 있었던 거죠.

그 말씀으로 자기 인생을 끊임없이 정말 붙들어 메고 살 수 있었던 것이죠.

 

예를 들면, 눅22:6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그는 설마 이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지만

그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하고 나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 것이죠.

그는 이 사건을 평생 잊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가 어쩌면 초대교회를 쥐고 흔들수 있는 그런 위치에 있었지만

그가 늘 겸손하게 섬길 수 있었던 까닭은 이 말씀이 생각났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근신하라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이 말씀을 하지 않았을까요?

 

또 요14:26절을 보면, 우리가 뭘 생각해야 될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왜 어떻게 생각 한번 보고 가보십시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베드로는 '성령이 역사하시면, 예수님의 말씀을 까먹지 않고 생각나게 된다.

기억하게 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신이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했고, 

또 자신이 전한 예수님의 말씀이.. 대대로 기억되게 될 줄 알았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성령의 사역 가운데서 말씀 사역, 설교 사역을 하면

그 말씀이, 그 설교가, 오늘 우리 세대에만 들려지지 않고

후대에도 계속 들려지는, 계속 생각나는.. 그런 (예수님의) 말씀이 될 것입니다. 

 

또한 저와 여러분들이 성령충만하십니까?

그러면 주님의 말씀이 자꾸 생각날 거에요.

그 말씀이 기억될 것입니다. 주야로 묵상될 것입니다.

 

그 말씀을 깨닫게 되고, 그 말씀이 힘이 되고, 능력이 될 것입니다.

그게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에요.

 

또 한 가지 베드로가 '생각나게 하는, 잊어버릴 수 없는' 말씀이 있었을 것입니다.

요21장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그는 이 말씀을 붙들고 여기까지 달려온 것입니다.

 

벧전5:2~3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이 말씀을 쓰기까지, 베드로는 분명 요21장의 주님 말씀을 평생 기억했을 겁니다.

 

그 외에도 여러 말씀을 베드로는 기억했을/생각났을 것입니다.

요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베드로 사도가 순교한 것은, 아마 이 말씀을 그가 기억하고,

이 구절을 성취하기 위해서, 그는 일평생 준비기도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는 이 말씀에 붙들려서 그가 가는 걸음걸음이

주님께 붙들린 걸음, 주님이 인도하시는 그런 걸음을 걷기 시작한 것이죠.

 

정리하면, 베드로는 일평생,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세상을 떠나기 전에, '주님의 말씀을 후대가 생각나게 하려' 했어요. 

1:12, 13, 15절

 

우리 각자도, 남은 일생 '하나님 말씀을 기억하며/생각하며 살다가

우리가 세상을 떠난 후에, 후대로 하여금

하나님 말씀을 기억하게/생각나게 하는 설교나 책을 남기고 떠났으면 좋겠죠.

그런 기도제목과 소원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베드로가 이제 장막집을 벗을 때가 됐는데  :13

이 장막집에 있는 남은 날 동안 내가 해야 할 일은 뭐냐?

이 장막(나)에 담겨 있는 주님의 말씀, 주님을 향한 사랑, 주님을 향한 열정

이걸 남기고 가는 거예요. 이게 우리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되는 것이죠.

 

이 장막이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아니라

 

또한 우리 자녀들과 우리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를 기억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내가 만난 예수님과 그 분의 말씀이 기억되게 하는 

그런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적용2 /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1: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베드로가 베드로후서를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예수님의 재림은 없을 것이다' 하며

거짓 선생들이 들어와서 믿음을 뒤흔든 사건들 때문이에요.

 

이에 대해 베드로는, 예수님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하늘의 음성을 변화산에서 자신이 직접 들었다고 했습니다. :17

그리고 그 천국과, 그 변화되신 영광의 모습을 직접 내 눈으로 목격했다고 했죠.

그러니 재림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분의 부활, 승천까지 직접 보았다!

아직 재림은 안 나타났지만,

 

생애, 죽음, 부활, 승천의 약속이 다 이루어진 것을 보면,

재림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 가능하고, 무엇보다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서 

그분의 말씀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예수님을 만난, 확실한 증거가 있기 바랍니다.

내가 주님을 만난 증거, 주님의 음성을 직접 들은 증거

그러면 흔들릴 수 없는 거예요.

 

▲근데 그것과 아울러, 중요한 게 있고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데.. 그게 뭡니까? 그것은 바로 성경입니다.

 

1:19~21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성경 scripture 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나는 베드로가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대단한 정말 확실한 믿음의 증거는, 내 경험이 아니라는 거에요.

 

나는 그런 경험이 있어서 내가 확실히 증언할 수 있지만

그런데 더 확실한 (구약)성경의 예언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 영적 체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이라는 거에요.

나는 그런 경험이 있지만, 그러나 더 확실한 예언이 있다는 거에요.

그 (구약)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으므로 정확하다는 것입니다. :21

 

여기서 지금 얘기하는 더 확실한 이유는, 사실 구약 전체를 말하는 것이죠.

성경말씀은 이미 예수님에 대해서 다 증언하고 있다는 것이죠.

 

▲또한 베드로가 믿음의 후배들에게 당부한 것은

예언의 말씀그걸 사사로에 풀어서

이단이나 그렇게 곁길로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1: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모든 이단들은 성경을 제 마음대로, 제 생각대로,

제 관점대로 풀다가 생기는 일 아닙니까.

 

그래서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게 해라!'

이게 우리가 성경신학을 배울 때 듣는 얘기입니다.

 

구약은 신약이 해석하게 하라

신약은 구약의 해석하게 하라

성경은 성령이 해석하게 하라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는 바를 따라서 해석해야지

내가 내 생각과 내 목적을 따라 성경을 이용하면

반드시 그건 곁길로 빠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내 뜻을 가지고 성경을 들여다보면

여러분, 내 뜻에 합한 말을 반드시 우리는 성경 속에서 찾게 됩니다.

 

그것만 짜깁기하고 편집하면

그래서 여러분들이 '내가복음'을 하나 만들면

그건 진짜 사복음서와는 관계없는 복음이 되는 것이죠.

 

얼마나 많은 이단들이 그 작업을 하는지 모릅니다.

'OO 교주가 예수다' 이거 만드는 것도, 성경에서 다 찾아서 짜깁기 한 겁니다.

그렇게 만든 거에요. 신천지 교리도 다 성경에 있는 것 가지고 짜깁기한 겁니다.

 

그래서 이 성경을 풀 때 반드시 사사로이 풀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그래서 우리 설교자들이 배우는 훈련은 뭐냐면

'그때 그 당시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나?'

 

첫번째 상황, 그 정황을 정확히 그렇게 들여다보라고 가르칩니다.

지금 21세기에 내가 살면서, 내 입장에서 성경을 먼저 들여다 봐서는 안됩니다.

그 당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고

어떻게 성령의 감동을 주셔서 이걸 기록하게 하셨나? .. 그걸 먼저 살펴야 합니다.

 

성경은 인간이 손으로 기록한 거에요.

그러나 성령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동일한 성령의 감동으로 우리가 그걸 오늘 이 시대에

기록된지 거의 이천년이 지났지만

이걸 다시 동일한 성령의 감동으로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

성경을 내 마음대로 재단하고 편집하는 그런 잘못을 범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때도 이단이 있었고 지금도 이단이 있고

주님 오실 때까지 이단이 있을 것입니다. '자의적인 성경 해석'으로 생기는 이단!

 

그들은 늘 자기 목적을 가지고 성경을 해석해요.

건축할 때는 건축에 관한 성경 요절을 뽑아서 읽고

헌금이 필요할 때는 헌금에 관한 요절을 뽑아서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맨날 그런 말씀들을 가지고 성도들을 휘저어놓지 않습니까.

 

저는 여러분들이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읽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공부 할 때는 두 가지

-그 당시에 그때 무슨 말씀을 하셨나

-그 당시에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도로 어떻게 말씀하셨나

그걸 먼저 알아야 우리가 그 말씀을 사사로이 해석하지 않는 것이죠.

 

그리고 오늘 그 동일한 말씀이 성령의 감동, 성령의 조명을 받아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에게는 어떻게 이 뜻이 전달될 것인가?

 

그래서 묵상을 하는 것이고

그래서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이고, 그래서 기억되고 깨닫는 것이고

그렇게 깨달아져야 우리에게 힘이 되고 능력이 되는 것이죠.

 

내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 성경말씀을 찾아가지고

여러분 이것 가지고는 절대로 사람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점점 더 진짜 어떻게 보면 더 악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죠.

 

내 악독한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서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편집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다 읽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침마다 우리가 66권 중 한 권을 택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가는 이유입니다.

 

때로는 넘어가고 싶고, 때로는 그냥 그냥 건너뛰고 싶지만

그러나 우리가 그 성경을 한 절 한 절 읽어가는 이유는

성경이 먼저 말하게 하는 것을 우리가 듣기 위해서 이고

그 말씀하신 것에 우리 삶을 비추어서,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자 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