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후 3장, 새 땅을 바라보자 여러 설교 정리
◑벧후 3장 해석 “마지막 심판의 날이 있다” 3:1~10 (점프 가능)
<베드로후서>의 전체 주제는 "거짓교사와 거짓 선지자의 교훈 때문에
어려움에 처하게 된 교회에, 베드로는 복음을 변증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서신을 쓸 때
서신의 수신자들은 거짓 선지자들의 이단적 가르침으로 인해
긴박한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에서는, 베드로전서와 달리
환란과 핍박보다 이단으로 인한 가르침의 위험성이 더 큰 이슈였습니다.
본문 벧후 3장에 나타난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재림을 부인함이었죠.
3: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런 신앙의 문제는,
‘그냥 네 마음 가는 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3: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그러나 베드로는, 종말과 심판이 반드시 있을 것임을 가르칩니다.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여기서 ’드러난다‘는 뜻은, 불에 타고나서 남는 것이 드러나는 것인데,
인간의 모든 것이 최후 심판 때 분명히 알려질 것임을 뜻합니다.
(사본에 따라 ‘드러나리로다 everything in it will be laid bare’가 없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심판이 없다는 자들에게, 노아의 홍수 때를 예로 듭니다.
그때도 심판의 날이 있을 것이라고 노아가 선언하였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어요. 하지만 결국 심판은 실행 되었고
노아의 가족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멸망당하게 되었습니다.
3:6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그러나 아무리 이렇게 성경의 증거들로 말씀을 전해도
이 말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죠. 그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지 2천 년이나 지났잖아요.
도대체 예수님은 언제 다시 오신다는 말인가요?'
3: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늦춰지는 이유는, 바로 그렇게 질문하는 당신이
예수님을 믿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요.'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앞서 베드로는,
1: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라고도 했죠.
◑벧후 3장의 적용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3:11~18
▲1.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사모하라! (11~13절)
3: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오늘은 ‘새 땅’에 관해 짧게 나누어 보겠습니다.
우리는 ‘새하늘과 새땅’을 모호하게, 철학적으로, 어떤 이론으로만 생각합니다만
이 ‘새 땅’을 부동산적인 개념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왜냐면, 우리는 육체로 부활할 것을 믿습니다. 영의 부활만 아니라
육신의 부활체를 가질 것인데,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입니다.
요21장에 보면, 예수님도 조반을 드셨거든요.
우리가 육체로 부활한다는 사실은 ☞천국은 이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살게 될 ‘새 땅’이, 지금 부동산 개념의 ‘땅’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죠.
다만 옛 하늘과 옛 땅이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하늘에서 내려오지만
그건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는 가상의 땅이 아니라, 진짜 땅과 흡사한 ‘새 땅’이죠.
눅19:17에,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긴 종이 ‘10고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습니다.
이 ‘열 고을 cities’이, 무슨 가상의 사이버 공간의 도시가 아니고,
진짜 도시라는 것입니다. 위 ‘천국은 이 세상과 다르지 않다’를 읽어보세요.
우리가 육신으로 부활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처럼, 장차 천국에서
땅도 디디고 살 것이고, 도시도 거기 ‘새 하늘과 새 땅’에 있을 거에요.
물론 부동산 개념의 ‘땅 넓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향력의 넓이’입니다.
천국에서 ‘땅 부자’가 된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더 광범위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어떤 영향력을 갖게 되겠지만, 또 땅도 가지는 거예요.
본문 13절에 베드로 사도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했는데,
we are looking for new heavens and a new earth
그 땅을 그저 ‘추상적으로만’ 생각해서는 비성경적이란 말이지요.
그러니 사람이 나이가 들면, 노후 연금 이런 것 준비를 많이 하는데요,
그보다는 ‘새 땅’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성경적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새 땅’에서 살게 될 준비를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 ‘새 땅’을 추상적인, 가상적인 공간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음이 임박한 베드로 사도는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라고 말씀하면서
we are looking for new heavens and a new earth
NASB 성경은 현재진행형으로 번역했는데, ‘매일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정리하면, ‘종말과 심판이 없다’하는 거짓교사들의 주장에 대해서
베드로의 권면은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매일 바라보도다’입니다.
(*헬라어로 현재 시제인데, 현재 진행 시제도 되죠)
너무 이 땅에서 ‘분양’받으려고 애쓰지 마시고, 천국 새 땅에서 많이 ‘분양’ 받으세요!
사도 베드로는 1장에서도 이렇게 말씀했죠.
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여기서 ‘유업’은, 구약에서 ‘기업’이라고도 했고, ‘몫 portion’으로도 나옵니다.
가장 직설적으로 한 마디로 표현하면 ‘땅’입니다. 기업=유업=새 땅
그게 ‘새 땅’인 거죠.
그게 하늘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내가 그걸 바라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니면 날로 치솟아 올라가는 아파트, 빌딩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건 썩고 더럽게 되고 쇠하는 유업이죠. 1:4참조
히11: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
아브라함도 하나님이 지으실 도시를 바라보았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 신도시에 살기 원하는데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지으실 도시를
일평생 바라보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for he was looking for the city which has foundations, whose architect and builder is God
이건 히브리서 저자가 말씀한 것이고,
같은 내용을 베드로 사도는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말씀한 것이죠!
‘새 땅’, 하나님이 주시는 ‘기업’, 하나님이 지으실 ‘도시’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이 땅의 집에 그리 크게 관심 기울이지 않을 것입니다.
▲관련 예화 ‘모델하우스 철거현장을 보고서’
마포 로터리를 지나다가 모델하우스를 철거하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곳은 벌써 몇 번째 아파트의 모델하우스를 지어서 분양광고를 했다가
그 일이 다 끝나면 철거하고 또 새로운 아파트 회사가
다른 모델하우스를 지어서 똑같은 광고를 하는 것입니다.
잘 지어놓은 모델하우스가 철거되는 광경을 보면서 아깝다는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허무하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아파트가.. 결국은 모델하우스라는 거죠.
진짜 영구 주택은 어디 있습니까?
하늘에 있습니다.
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돈을 들여서 멋지게 꾸몄던 것들이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것을 보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고
사람들이 모여서 아파트 내부를 보고 멋있다고 생각도 했겠고,
이런 집에서 살아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거닐었을 그 공간이
하루아침에 폐허가 되어버린 것을 보니 허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모델하우스가 아깝다고 그것을 붙들고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모델하우스는 언제가는 헐려버리고 말 집입니다.
너무 모델하우스에 목메어 살지 말고, 영구한 주택을 바라봅시다!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벧후3:12-13
▲2. 자라가라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앞서 1장에서도, 베드로 사도는 ‘자라갈 것’을 이렇게 교훈했습니다.
1:5~7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물론 자기 의지로, 유교적으로 자라간다는 뜻은 아니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부르심과 택하심을 받은 사람은, 그렇게 자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1:10
그리고 주님 오실 때에 점도 없고 흠도 없이 정결한 모습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거룩에 힘써야 합니다.
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이 단락에 관한 추천설교 2편을 읽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