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롬8:26-30 도우시는 성령님,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LNCK 2022. 10. 31. 11:22

◈도우시는 성령님,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롬8:26-30    2022.10.16

본문은 앞부분은 성령님, 뒷부분은 합력하에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크게 두 부분으로 확연하게 나눠지지만 
또한 서로 연결되어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1. 우리를 도우시는 보혜사 성령님

▲8:26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마땅히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알지 못하지만 
오직 성령께서 친히 말로 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8:27 마음을 살피시는 분께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이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위해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26절에 '성령께서 우리 연약함을 도와주신다'에 밑줄을 그어보세요. 
지금 우리는 롬8장에서 계속 "성화, 거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의 원형이 되시는 분이시고 
그리스도는 거룩의 모델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거룩의 견인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영어로는 '견인'을 perseverance 라고 하는데 
'참고 견딘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자동차를 '견인'한다나는 말은 '당겨서 끌고간다'라는 뜻이지만, 
성도의 '견인'은 '성도가 참고(인) 견디도록(견) 도와주신다'라는 뜻이므로
비슷한 말이기도 하지만, 뉘앙스가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까지 성도들이 인내하며 나아갈 때 
성령께서 그것을 완성하신다.. 라는 뜻입니다. 

성도가 이름 뿐만이 아니라, 정말 실질적으로 거룩해진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처럼 예수님처럼 거룩해진다' 이것은 아주 요원한 목표이고 
또 그 과정은 혹독한 과정입니다. 

이렇게 인간적으로 연약해서 이룰 수 없는 그 거룩이라는 목표를 
성령님이 견인해주신다, 즉 성도가 천국 가는 길을 참고 견디도록 도와주시면서,
우리의 삶이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끌어 주신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요14:16절에 예수님이 보혜사 성령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이 보혜사를 영어 성경에서는 버전마다 좀 다르게 번역했는데 
'위로자 Comforter, 상담자 Counselor, 변호인 Advocate 등으로 번역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곁에서 우리를 위로해주시고/ 우리와 상담을 해주시고/ 
또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 보혜사 성령님께서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와주신다' 그랬는데 :26
무엇을 구체적으로 도와주시는가요?

물론 성령님이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은 굉장히 많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특별히 "우리의 기도를 도와주신다" 라는 내용을 
26~27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다급하고 황망할 때,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해야 되겠는데 
무슨 기도를 해야 될지 모를 정도로 어렵다고 할 때 
성령님이 26b절에 보면 '탄식함으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주신다'

또 27절에는 '생각'이라는 단어와 '뜻'이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성령님은 '생각'을 갖고 기도하시는 분이고 
또 하나님의 '뜻'을 알고 기도해주십니다. 

이렇게 좋은 '위로자'가 되시고, 
우리를 위해서 중보하며 기도해주시는 '변호인'이 되시는 그 성령님 
이렇게 좋은 보혜사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크게 두 가지 때문인데요. 

1) 성령님은 내주하시는 indwelling 
우리 안에 항상 거주하시는 동행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도움은 사람이든 물질이든, 무엇이 되었던 간에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것입니다. 
근데 성령님은 우리 안에 늘 상주하신다는 거예요. 

요즘은 학생들이 과외를 받아도, 일주일에 두 번, 세 번 배우잖아요. 
또 요즘은 온라인으로도 많이 공부를 하는데 
예전에는 그 집에 상주하는 과외선생님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성령님은 말하자면 우리 인생에, 우리의 영혼에 
상주하시는 과외선생님 같은 거예요. 

롬8:9절말씀에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거하시면' 
그래서 '우리 안에 항상 거하시는 분이시다' 라는 고백을 합니다. 

일주일에 두세 번 방문하는 선생님은 그때 뿐이지만 
24시간 상주하는 선생님은 언제든지 물어볼 수 있고 
언제든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그런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2) 성령님은 인격적인 인도자이십니다. 
교회를 다니는 분들 가운데도, 성령님의 역사를 '종교적인 열광주의' 정도로 
치부하시는 경우들이 있어요. 

그래서 '나는 그렇게 열광적으로 신앙생활 할 생각이 없다' 이렇게들 얘기하시는데 
아닙니다. 성령님은 굉장히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본문 26~27절에 '탄식하시고, 생각하시고, 뜻을 가지신' 분이세요.
이 3가지는 인격의 3요소입니다. 

탄식.. 감성
생각.. 지성
뜻.. 의지 

성령님은 이 인격의 3요소를 다 가지신 분이세요. 
우리의 슬픔을 <감성>적으로 공감해주시고 
또 하나님과 동일한 <생각>을 품고 계시고 
또 하나님의 <뜻>에 동의 하셔서 
우리를 역사하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그렇게 선하게 인도하신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하면, 우리의 복잡한 생각에 질서가 생기고 
우리의 불안하던 감정에 평안이 임하고 
또 우리의 의지가 악한 의지, 또 약한 의지일 때 
우리의 의지가 거룩하고 강건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특별히 우리가 참으로 기도하기 어려울 때, 
우리의 전 인격적으로 우리를 도우시며 기도를 이끌어주십니다. 

그런데 그 27b절에 보면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위해 간구하신다'
이렇게 되어있어요. 여러분 그 부분을 밑줄을 그어보세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위해 간구하신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왜냐면 성도들의 삶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성령님이 하나님 앞에 간구해주시기 때문이에요. 

내가 아무리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이 간절하다 할지라도 
'하나님, 제 뜻을 좀 이루어주세요' 이거는 안 이루어질 수 있죠.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제 삶에 이루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이 기도는 반드시 응답받는 기도가 되는 것이죠. 

저와 여러분이 인간적인 생각의 기도가 아니라 
성령에 감동된 기도를 드리는 기도자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어떤 분이 성경을 읽다가 이런 질문을 하셨어요. 
'성경에 방언이 나오는데, 방언기도를 자제하라고 가르치는 분이 있는데 그게 맞나요?'

그런데 그것은 소위 극보수 진영에서 '은사중지론'을 가르치기 때문에 
아마 그런데서 배우신 것 같아요. 

'은사중지론'이란, 성령의 은사와 기름부으심의 역사가 초대교회에서 끝났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 주장을 하게 되는 성경적 근거가 고린도전서 14장입니다. 
왜냐면 14장에 보면 '방언은 자제하고, 방언보다는 예언하기를 힘쓰라'는 말씀이 있어요. 

   그런데 그 말씀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를 이해하면, 충분히 오해가 풀립니다. 
   당시 고린도 교인들은 예배시간에 이렇게 설교자를 정해 두지 않고 
   회중예배방식으로 예배를 드렸어요. 

   설교자 없이 예배를 드리다가, 성령의 감동하심이 임하면 
   그 사람이 일어나서 잠시 기도나 설교를 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또 다른 사람에게 감동이 임하면 
   이 사람이 일어나서 기도나 설교를 하면, 앞에 하던 사람은 앉고... 

   이제 그러다 보니까, 내게 감동이 임했다고 일어나서 막 방언을 했는데,
   혼자 통변도 안 하고 방언만 계속 해보세요. 
   아무도 못 알아듣잖아요. 그러니까 서로에게 유익이 안되죠. 

   그러니까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방언을 만약에 공예배에서 할 거면 
   '통변의 은사를 받아서 즉시 통변을 해주든지 
   아니면 예언을 하는 것이 공예배에선 도움이 된다..' 이 얘기를 한 것입니다. 

   고전14: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를 한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즉 방언을 하고 통변을 하지 않은 상태면, 
   영적인 유익은 있지만,
   그러나 사람들이 지적으로 마음으로 깨달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 부분에 유익이 없다는 거죠. 

방언기도는 성령이 내 영을 감동하셔서 기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명한 영적인 유익이 있는 거예요. 

사람이 너무 낙심해서 무슨 기도를 해야 될지 모를 정도로 
말문이 막힐 정도로 힘들 때가 있죠. 

그럴 때 성령께서 내 영혼을 감동하셔서 나오는 기도가 있어요. 
방언도 그런 기도 중에 하나입니다. 

내가 너무 탈진해서 호흡조차 하지 못할 때 
그런 사람에게 산소호흡기를 갖다 대는 것처럼 

성령께서 우리가 완전히 영적인 탈진에 빠져있을 때 
우리를 감동하셔서, 성령이 인도하시는 기도를 하게 하시면 
우리 영혼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령께서 이끄시고 감동하시는 기도를 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우리 영혼이 아무리 힘들어도, 인간적으로는 지쳐도 
성령이 감동하시면 다시 깨어나고 살아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 여기까지가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신다' 라는 내용입니다. 


◑2.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8:28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그분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루는 줄을 압니다.

여러분 오래전에 나온 책이지만 파울로 코엘류의 <연금술사> 라는 책을 
보신 분들이 많을 거에요. 나오자마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는데 
아주 쉬운 소설이면서도,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감동이 있었죠. 

주인공 산티아고는 시골 양치기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버려진 교회 울타리 안에서 양들과 함께 하룻밤을 지내게 됐는데 
그 밤에 꿈을 꾸게 되죠. 

그리고 그 꿈에서, 자기가 먼 나라에 가서, 보물을 발견하는 그런 꿈을 꿉니다. 
근데 그 꿈을 꾸고 나서,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도 우여곡절끝에 파란만장한 스토리를 지나서 
결국에는 꿈을 이룬다... 그런 내용입니다. 

이 소설에서 처음에 그 양치기 산티아고가 출발을 할 때 한 노인을 만나는데 
노인이 해준 얘기가 있어요. 이 소설에서 자주 반복되는 얘기입니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그 소망을 이루어주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다!' 
그런 얘기에요. 굉장히 달콤한 메시지이잖아요. 

제가 지금 성경 얘기 하는 게 아닙니다!
그 밀리언셀러 소설이 그렇게 얘기를 한다고요. 인본주의죠!

△자 그러면 본문 28절 말씀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그리스도인들이 굉장히 좋아하는 구절인데, 이 구절이 그런 의미일까요?

우리 내면세계에 소망이 참 중요하고, 
'꿈을 갖고 있으면 그 꿈을 이루어주는 방향으로 세상이 돌아가게 된다' 
그런 얘기일까요?

그런데 오늘 우리가 좋아하는 이 구절에 전제조건이 달려 있다는 것을 아셔야 돼요. 
그 전제조건은 28a절에 나온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거죠. 

그리고 '그분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거죠. 
자 28절, '그분의 뜻을 따라 부르심을 받았다'는 표현을 볼 때.. 

27절까지는 성령님 
28절부터는 하나님의 주도적인 역사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두 구절이 다른 이야기 같지만 
27절에서 우리가 읽었잖아요.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
같은 개념이 27~28절에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화를 추구하는 고난 중에도 
-성령에 감동하심을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살아가는 사람들,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들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사람들 
-세상 욕정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는 '합력하여 선이 이루어 진다' 할렐루야!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룬다는 것은 
'네 마음에 소원을 품으면, 다 잘 될 거야!' 
이런 얘기를 하는 어떤 낙관론이 아닙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꿈/ 하나님의 뜻을 좇아가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이것은 절대적인 하나님, 역사 주관자로서의 그 역사 경영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에서 기도하는 것처럼 
'주님의 나라가 임하시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와 같은 맥락이죠.

내 인생에서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합니다!'

그 사람에게는 결국, 그의 인생에 하나님이 궁극적인 선이 완성되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이죠. 할렐루야!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런 마음이 있다면 
절대로 인생을 살면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이며 
그 선하신 하나님은 반드시 여러분의 인생에 
궁극적인 선을 이루시는 방향으로, 모든 인생과 역사를 이끌어가신다는 거에요. 
네 우리가 그것을 확신한다면 두려울 것이 없죠. 

시34: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여러분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것을, 마치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처럼 
분명하게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기도할수록... 
어떤 분들은 기도를 계속 하는데, 기도를 하면 할수록 근심걱정이 더 많아지고 
'내가 기도를 해도 하나님이 안 들어주시던데..' 
'내가 5년째 기도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야지?'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의 그 선하심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내 삶을 맡겨드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요?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불안하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불안한 학생들이 있다면 (공시를 준비해도 못 붙을까봐)
여러분 왜 불안해하고, 왜 두려워합니까? 

'하나님이 내 인생의 궁극적인 선을 완성하실 것이다' 라는 신뢰! 
그 신뢰가 우리 안에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는 거예요. 

제가 <두려움 너머의 삶>이라는 책에서도 정리를 했는데요. 
인생이 불안해지는 것은 두 가지 정반대 상황이에요. 

한 가지는, 너무 노력을 안 해서 내 인생이 어려워질 것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그런데 정반대로 너무 열심히 과도하게 노력을 해도 
내 인생이 잘 안 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게 되어 있어요. 

인생을 열심히 살아본 분들은 다 공감하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노력했는데 
'그래도 이게 안 되면, 그때는 어떻게 하지?' 
이런 완벽주의자적인 강박이 따라오게 돼 있어요. 

그래서 오히려 대충 살아가는 사람들은 
인생의 실패나 부족함을 받아들일 만한 여지가 있는데 
너무 열심히 사는 사람은요. 자기 인생의 실패를 용납할 수가 없는 거예요. 

내 인생의 실패, 내 가족의 실패, 내 자녀의 실패를 
털끝 하나 만도 용납할 수 없는..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자신을 달달볶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단기간에는 어떤 성취를 이룰지 모르지만 
결국은 영혼이 피폐해지고 가정이 망가지는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여러분 아닙니다. 우리가 최선을 이야기할 때 
이 개념을 좀 나눌 필요가 있는데 
'나는, 사람은 과정 상의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결과 상의 최선을 결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건 하나님의 영역인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인생을 아무리 열심히 살지라도 
결과를 책임지려고 하지 마세요. 결과는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결과를 하나님께 맡겨야만,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신앙이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이제 가을에 수능 시험이 있잖아요. 
입시 준비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님들께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세요. 

그리고 저를 한 번 따라 해 보세요. 
'나의 최선과 하나님의 은혜!'

내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최선에서 멈추셔야지 
그걸 넘어서서 최선 너머로 밀고 들어가면 
하나님의 주권적 영역을 내가 깨뜨리게 되어 있어요. 침해하게 돼 있어요. 

또 내가 노력을 전혀 안 하고 '하나님의 은혜에만 맡기겠다' 
그러면 내게 주어진 시간과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과정 상의 최선'일 뿐입니다. 
'결과 상의 최선'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셔야 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이제 노력을 과도하게 하는 것에 대한 얘기했는데 
또 정반대로, 은혜를 너무 과도하게 의지해서도 물론 안 되겠죠. 

은혜는 우리를 나태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은혜는 결코 우리를 무책임하게 만든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은혜는, 단지 '우리의 노력에 한계점이 있다' 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개념이에요. 
은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된다'는 것을 깨우쳐 주시고 
은혜는 우리의 과열된 인생에, 평정심을 갖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업을 하실 때, 열심히 하시고 
또 학생들은 공부를 할 때,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다만 노력의 끝에서, 내 최선의 끝에서... 멈춰 설 줄 아셔야 돼요. 
그걸 넘어서서 과열되지 말고, 최선의 결과를 주실 은혜의 하나님을 신뢰하며 
맡겨드리는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평강이 있는 것이죠. 

♣하나님은 모든 것에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제가 '성경통독'을 인도하면서 

'인생의 여러 극단적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궁극적인 선을 이루어가시는 분이시다'
라는 것을 많이 보게 됐어요. 
그래서 4가지 정도로 정리를 하고 싶은데요. 

1) 내가 약할 때 하나님의 강하심을 드러내심으로써 
그분의 궁극적인 선을 이루십니다. 

사도 바울이 다른 병자들은 다 안수해서 기도하면 병이 낫는데 
자신의 병은 하나님께 고쳐달라고 했는데, 병이 낫지를 않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구했더니 하나님께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네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고전12:9 

우리는 자신의 성격과 재능, 환경.. 이런 것이 연약하고 열악하면 
'하나님, 이것을 강건하게 바꿔주십시오' 라고 요청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너가 약한 그 상태에서 나의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에 
너의 능력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내 능력으로 해결되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에 
그것이 더 선한 것이다. 그래서 너를 연약한 가운데 두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실 때가 있다는 거에요. 

여러분 내가 만능이 돼서, 모든 것을 내가 원하는 만큼, 
원하는 기간 동안 다 이룰 수 있다... 그게 사람에게 축복일까요? 

인간은 상대적인 존재이고, 불완전하고, 연약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 반드시 있어요. 
그러나 그 연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강하심과 하나님의 완전하심이 
나타날 수만 있다면, 그것은 반전의 은혜가 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한 가지 방식이에요. 

2) 이거는 여러분이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는데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시116:15
죽음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그분의 선을 이루신다는 거예요. 

북이스라엘 역사에서 19명의 왕이 있었는데 
19명이 줄줄이 다 악한 왕이었어요. 
그런데 유일하게 선한 왕 후보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을 세웠던 여로보암은, 금송아지우상을 세웠던 사람이죠. 
그런데 그 아들 아비야를 하나님께서 일찍 데려가세요. 
그러면서 성경이 뭐라고 설명하냐면 '그가 선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보호하시고자 데려가신다' 는 거예요. 

왕상14:13 '온 이스라엘이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장사하려니와 
여로보암에게 속한 자는 오직 이 아이만 묘실에 들어가리니 이는 여로보암의 집 
가운데에서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음이니라'

남유다의 마지막 선왕이 16대 왕 요시야죠. (다윗-여호사밧-히스기야에 이어)
그런데 그가 전쟁터에 나가서, 젊은 나이에 일찍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게 됩니다. 

많은 성경의 독자들이 '아니 이렇게 선한 왕을 
하나님이 전쟁터에서 죽게 만드시다니...' 

그런데 만약에 요시야가 살아있었다면, 바벨론이 밀고 들어왔을 때 
포로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에요. 
하나님이 그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 않도록, 그를 일찍 데려가셨어요. 

우리는 우리 인생에서 죽음을, 가장 큰 손실로, 가장 큰 고통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세상에 악을 보지 않도록 일찍 데려가시는 일들이 있다는 거에요. 

그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가요? 

3) 이것도 여러분 좀 받아들이기힘들어 하실지 모르겠는데 
하나님은 악인을 통해서도 선을 이루십니다. 

성경역사를 보면, 출애굽 때 바로가 패역해서 열 가지 재앙을 받게 되잖아요. 
그러고도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자신의 전차부대와 함께 홍해에 빠져서 다 죽게 됩니다. 

하나님은 악인 바로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역사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한 백성은, 어떠한 악인들 이 방해를 할지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구원해 내십니다. 할렐루야! 그걸 보여주신 거예요. 

또한 열두 제자 가운데 가장 악한 가룟유다. 
그의 배신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에 사건을 
완성하신 거잖아요.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왜 악인을 가만히 두십니까, 왜 그를 제거하지 않으십니까?' 
이렇게 기도할 때가 있죠. 

또한 악인이 너무나 강해 보여서, 인생이 낙심하고 절망할 때가 있어요. 

아니요.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통하여서도, 심지어 극악한 죄인을 통하여서도 
궁극적인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신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악이 폐하고, 선이 악을 이기도록 만드시는 하나님의 신줄로 믿습니다. 

4) 하나님은 악인뿐만 아니라, 악한 영을 통해서도 선을 이루십니다. 
북왕국의 최악의 왕이었던 아합이, 개인적인 욕심이죠. 
과욕으로 길르앗 라못을 치러가겠다고, 아람 사람들과 싸우러 가겠다고 합니다. 

그때 성경에 보면 좀 독특한 표현이 나오는데 
하나님이 천상 회의에서 '거짓말하는 영'을 보내셔서 
선지자들이 다 거짓말을 해서, '아합이여, 당신이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면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이렇게 예언을 하게 해서, 올라가서 싸우게 했죠.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암흑가의 보스처럼 왜 이러시냐?' 
근데 하나님을 오해하지 마셔야 되는 것은 
하나님의 온 우주만물에 대한 주권적 역사를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에요. 

아합이 착한 사람인데, 진리안에 거하던 사람인데 
하나님이 거짓말로 속였다는 얘기가 아니고요. 

아합은 평생에 성경에서 '악에 팔린 사람이다' 이렇게 표현돼 있어요. 왕상21:10
그러니까 늘 거짓에 젖어서 살던 사람이고 
또 한번의 거짓에 빠졌을 뿐이지만, 

하나님이 심지어 온 영계와 자연계와 인간계, 모든 악한 영들까지도 
하나님의 허용이 없이는 수족을 놀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허용하시는 주권자적 위치에 대한 설명으로 이해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놀랍게도, 이런 악한 영의 역사를 통하여서도 
아합이 하나님의 정의의 징계를 받도록 하심으로써 
궁극적인 선을 이루신다는 거예요. 

우리가 생각하는 극단적인 케이스들이죠. 그러나 그러한 상황에서도 
여러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가요? 

하나님은 선하시며, 그 선하신 하나님은 인생과 역사를 
궁극적인 선을 이루는 방향으로 이끌어가신다는 것을 신뢰할 수 있는가요? 
그것이 진정한 믿음인 거예요.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서 질병이나 죽음 같은 부정적인 사건이 일어날지라도 
인류 역사에서 악인들이 주도권을 갖고 세상을 어렵게 만들고 
악한 영들이 영적 공격을 하는 그런 위태로운 상황에 빠져 있을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불안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선한 방향으로 
인생과 역사를 이끌어가실 줄로 믿습니다. 

그것이 성경이 오늘 성경(롬8:28)이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8:29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사람들을 자기 아들의 형상을 닮게 하시려고 
또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그 아들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 맏아들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8:30 하나님께서는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넘버링을 좀 해보시면 
1) 미리 아신다  .. 예지
2) 미리 정하셨다  ..  예정
3) 부르셨다  .. 부르심
4) 의롭다하셨다 .. 칭의
*5) 성화  (본문에 이 부분은 생략되어 있음)
6)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다 .. 영화

크리스천의 신앙여정을 보통 6 단계로 나누는데 
오늘 본문에 그중에서 총 5 단계가 다 나왔어요. 



예지 .. 미리 아신다는 거죠. 
하나님은 '나'라는 존재가, 모태에서 잉태되기 전부터 
나의 이름을 하시고, 나의 전 존재의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나를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 
나를 창세 전에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하셨어요. 할렐루야!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가 아니라, 여러분이 전도를 받은 그 시점이 아니라 
창세 전에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이미 "(예)정"하셨다는 것..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렇게 정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섭리하시는 때에 
나를 어둠에서 빛으로 불러내신 거죠. "부르심"입니다. 

그냥 불러내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죄인인 나를 그분의 의로 덮으셔서 
의인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칭의", 의인이라고 불러주시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칭호만 이름만 갖고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성령님께서 나를 거룩의 삶으로 견인해주시는 것이죠. 

그러나 이 땅에서의 "성화"는 
그 과정을 가고 있는 것이지 완성은 아니잖아요. 
영원한 완성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 
영광스러운 몸을 입고, 그 나라에 들어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영화"

이것이 여섯 가지 성도들의 신앙 여정입니다. 

자 성도의 신앙여정을 보면, 본문28절에 
'하나님은 결국에 궁극적인 선을 이루신다' 그 말씀 다음에 
왜 이 말씀(성도의 구원 여정)이 나왔을까요? 

우리는 성화의 과정 하나만 지나가는 것도 너무 힘들고 어려운 거예요. 

그런데 26~27절에서 위로해주시는 것은 
성령님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이끌어주시니까 
너는 걱정하지 말고 성령님과 함께 그 길을 가라..고 말씀해주신 거예요. 

근데 28~30절까지는 
우리는 '성화'라는 그 과정 하나만으로도 힘들어하는데 
하나님은 이 6 단계, 영원으로부터 영원까지 

우리의 전 인생을 이미 알고 계시고, 미리 자녀로 정하셨고 
우리를 하나님의 때에 부르셔서, 하나님 우리를 의롭다 칭해주시고 
성화의 여정이 지나, 영화에 이르기까지 
이 전 과정을 하나님은 반드시 완성하시는 분이시다... 

그 하나님의 whloe plan, 전체 계획안에 있기 때문에 
이건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이지, 내가 이루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인생을 부족하게 살아서 
내가 이렇게 죄를 많이 지어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인생이 완성이 될까? 
내가 천국에는 갈 수 있을까? .. 이런 걱정을 내가 할 필요가 없다.는 거에요. 

그분께 맡겨드리고, 그분을 사랑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따라서 살아가다보면 
그분이 완성하실 줄로 믿습니다. 
(*성경에 정반대 측면도 있습니다. 본문에는 이 측면을 강조하죠. 우리 구원의 큰 그림입니다.)

자 이것을 빌1:6절에 이렇게 말씀하세요.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우리의 구원을 시작하신 그분이 완성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인 선을 이루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을 끝까지 책임지실 줄로 믿습니다. 

고로 내 안에 인간적인 근심걱정은 다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나니 떠나갈지어다. 
나는 예수 안에서 최후승리를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우리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 올려드리겠습니다. 
이 시간 우리 가슴에 손을 얹고 한번 기도하겠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이 자리에서 있고 
하나님의 은혜로 평생을 갈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그 나라에 들어갈 것인데 

어느 순간부터 인간적인 근심걱정, 세상적인 염려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 시간 다시 한번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나를 자유케 하시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