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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일어나는 북한 사람들 P1

LNCK 2022. 10. 31. 17:05

[북한선교] 복음안에서 일어나는 북한사람들 [1편 김 선교사]  - YouTube

 

◈북한에서 일어나는 북한 사람들 P1       시23:1~6           <북한선교 더 보기 



진행 : 김성근 목사 (검은색 글자, 괄호)
출연 : 김OO 선교사 (파란색 글자, 괄호 없음)


(안녕하세요. 김성근 목사 입니다. 
오늘은 김OO 선교사님과 함께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김OO 선교사님은 북한에서 탈북해서 
중국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한국에 오기로 모든 준비를 끝냈으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다시 북한으로 들어가서, 지인들과 가족들에게 전도하셨던 분입니다. 
김 선교사님과 함께하셨던 하나님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분 한 분 모실 때마다 어려운 게 
이분들이 지금도 북한하고 연결이 되어 있고 
그곳에 다 가족들도 있고, 지금도 거기서 신앙생활 하시는 분들하고 
같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들 드러내는 걸 원하지 않으세요. 

그래서 참 모시기 힘들어요.
그래도 하나님이 지금 북한에서 어떤 일들을 어떻게 하시는지는 
조금은 보여 줘야 되기 때문에 이렇게 모셨습니다.   

김선교사님이 어떻게 돼서 탈북하기 됐는지.. 
그 사연부터 좀 들어볼까 하는데 괜찮을까요?) 


저는 12살 때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고난의 행군'의 시기에  *1995~1999
이제 사람들이 아사로 죽어 나갈 때, 저희 아버지도 사망하고 
저희 어머니는, 저희를 데리고 많이 고생을 하셨어요. 

죽마저 없어서 굶을 때도 있었고, 이렇게 어려운 삶을 살아가다가... 
그때가 1997~98년도였으니, '고난의 행군'이 한창이던 때였죠.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집마저, 빵 몇 개에 팔아버릴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가난했었죠. 
그래서 탈북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가족들이 살 수 없는 상황에서 

'저라도 중국에 와서 돈을 벌어서, 가족들에게 도움이 돼야 되겠다...' 
그런 마음으로 이제 제가 탈북하게 되었습니다. 
 
탈북하는 여자들은 거의 98%는 다 인신매매로 팔려가지요. 
거의 팔려서 (중국인 집에) 시집을 가고  
간혹 여자머슴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있지만, 저는 팔려서 시집을 갔어요.
그때는 2003년도 였고, 제가 20세였습니다.

팔려오는 과정에도 많은 아픔들이 있어요. 
정말 입으로 담을 수 없는 정말 수치스럽고 그런 성폭행이라는가 
이런 아픔이 많았어요. 

(많은 분들이 이렇게 팔려서 중국으로 가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럼 집에서부터 그런 매매를 알고 출발했나요?
집에서부터 내가 중국에 팔려간다는 것을 알았나요?)

네 제가 알았어요. 
왜냐면 저는 그게 탈북이 안전하다고 생각했고, (브로커가 있어서 감옥엔 안 가죠)
도무지 그 경로가 아니면, 탈북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러면 내가 팔려간다는 사실을 알면, 돈을 북한의 집에서부터 받나요?)

아뇨, 저는 몸만 넘어가는 거고, 저를 파는 북한 브로커랑 중국 브로커가 만나서 
강을 건네주고 거기서 북한 브로커가 돈을 받는 거예요. 

북한 브로커는 그 돈을 받아서, 북 군인에게 일부 주고 
자기가 나머지는 가지고 돌아가는 거지요.

(그럼 북한의 가족들한테는 얼마 준다는 약속이 없었나요?)

탈북할 때는 가족들에겐 돈이 안 가요. 
제가 가족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은, 제가 중국에 가서 돈을 벌어서 부치는 거죠. 

(아니 그럼 가족들은, 선교사님이 집을 떠날 때, 팔려 가는 것을 알았나요?)

제가 가족들은 모르게 떠났어요. 나 혼자 가만히 나왔어요. 
제가 중국에 나가서 돈 벌어서, 가족을 먹여살리기를 꿈꾸고 나왔던 거죠.

그런데 이렇게 저는 중국에 팔린다 해도, 자유는 있는 줄 알았죠. 
시집을 간다는 얘기는 못 들었고.. 그냥 팔린다는 얘기만 들었어요. 

북한에서 인신매매 하는 브로커를 찾기도 어려웠어요. 다 비밀리에 하니까 
친구를 통해서 물어 물어 해서, 겨우 연결이 돼서 부탁을 해서 넘은 거예요. 

(지금도 인신매매가 진행되고 있는가요?)

예, 지금도 진행되고 있고, 
뭐 예전처럼 많지는 않겠지만, 지금도 넘어 오는 사람들이 있고 
분명히 지금도 이 순간에도, 어느 곳에서 당하고 있을지 몰라요. 
그러니까 이 사실을 한국교회는 자세히 알고, 이 부분을 놓고 기도해 주셔야 돼요. 

(나는 지나간 과거인 줄 알고 있었거든요.)

아니에요. 지금도 진행형이에요.

(그렇다면 이게 빨리 드러나서...)

예, 이것을 많이 알려야 돼요!

(그럼, 그 브로커는 북한군인들을 다 끼고 하는 거죠.) 

그렇죠. 북한 군인들을 다 끼고 하는 거니까 안전한 거죠.

무단으로 국경 넘다가 잡혀서 감옥에는 안 가죠.

(그 군인들은 여자들이 팔려 간다는 거 아나요?)

그렇죠. 알고 자기가 돈을 번다고 생각하니까요. 
자기가 서는 근무 시간에, 시간을 맞춰서 넘겨 주는 거에요. 

그렇게 해서 조선족 브로커 한테 넘어가서...
거의 중국 한족 분들이 장가를 못 가고 있는 사람들 중에 
돈이 없어서 장가를 못 간 사람들, 
또는 장애인이라서, 또는 여러가지 질병을 가지고 있거나, 
이런 사람들이 거의 기다리고 있어요. 

제가 팔려 간 집은, 그 돈 마저 없어서 
친척들에게서 얼마를 꿔서 막 모아가지고 여자를 샀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자유가 없었어요. 어디 나가도 같이 따라 나가고, 
도망갈까봐 화장실에 가도 같이 따라 나가고... 
저는 뭐 이럴려고 중국에 온 거 아니잖아요. 

'내가 이렇게 갇혀 있는 동안에, 우리 가족들이 굶어죽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여기를 탈출 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하고 
5개월 만에 탈출하게 됐어요.

'내가 나가서 돈을 벌어서 굶고 있는 우리 가족들을 살려야지!' 
그 생각 밖에 없었어요. 제 눈에는 가족들만 보인 거예요.

혼자서 탈출했고.. 그 집을 나오니까 일단 중국 말도 모르고 
발이 가는 대로 정처 없이 갔는데...
근데 지금 돌아보면 하나님이 저를 도와주신 것 같아요. 

그때 하나님은 아직 몰랐지만 
하나님이 이미 저를 아시고, 저를 지키고 계셨다는 것을 지금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그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제가 일을 하게 된 거예요. 
한족들과 그냥 말이 안 통하는 회사에서, 12시간 노동을 함께 했어요. 
그러면서 간단한 중국어를 배우게 됐어요. 

그 다음에 버스를 타고 제가 청도 라는 곳에 왔어요. 
거기서 저랑 같은 탈북민 자매를 만났어요. 우연히! 

그거는 정말 하나님이 만나게 하신 거예요.
돌아보면,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해요.

그 언니가 저보다 5살 위였어요. 
근데 그 언니가 북한에서 저랑 같은 고향인 거예요. 너무 놀랍더라구요. 

저는 그 언니를 안고 너무 펑펑 울었어요. 
마치 가정을 만난 것처럼... 

그래서 그 언니랑 서로 의지가 돼서, 식당 일을 같이 하면서 살았어요. 
그 언니는 다행히 연길 쪽에 친척이 많았어요. 

▲그 언니의 친척, 사촌언니 라고 하는데, 어느 날 그 분한테 전화 온 거예요. 
'야 여기 한국 선교사님이 오셨는데, 한국에 가겠느냐?' 

저는 처음에 덜컥 걱정이 됐죠. '언니와 이렇게 이렇게 서로 의지해서 살았는데 
언니가 혼자 한국에 가면, 나는 또 혼자 살아야 되네?' 

그러면서 '언니, 나도 같이 가야 되겠다' 이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언니를 따라 청도에서 연길로 오니까 

그 사촌 언니, 형부가 다 예수님 믿고, 집사님들이었고 
저희를 한국에 보내 주신다는 분, 선교사님이 기다리고 계셨어요. 
그 분을 통해 제가 복음을 듣게 되었죠. 

거기서 복음을 듣게 된 게, 그냥 들은 게 아니고 
제 마음은 너무 가난해 있었기 때문에, 그냥 복음이 확 들어왔어요. 

그때 해 주셨던 말씀이, 사도행전 말씀이었는데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행16:31
이 말씀을 선포하셨는데, 그게 그냥 제 심령에 확 들어왔어요.

'제 가족까지 구원된다는 말씀에, 
뭔지 잘 모르겠지만 '제가 하겠습니다. 믿겠습니다!' 
그래서 무릎 꿇고 영접기도를 드리는데.. 그때 한없이 물었어요. 

아마 성령님이 그때 제 마음에 오셔서, 제 모든 아픔을 위로해 주셨고
그랬던 거 같아요. 

그리고 또 제가 지었던 죄들,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그 죄들이 너무 생각나고 펑펑 울었어요. 
그리고 천국과 지옥이 확실하게 믿어졌어요. 

'아! 지옥이 있었구나, 천국이 있구나! 
내가 이 상태로, 내가 죄인인데, 엄청난 죄인이 내 죄를 가지고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는데, 구원 받아 천국에 가게 되었다고.. 얼마나 큰 은혜인지!'

영접 기도를 드리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면서 진짜 눈물 콧물 줄줄 나왔어요. 

옆에 언니는 같이 영접 기도를 하는데, 전혀 감동이 없는데
저는 막 눈물 콧물을 다 쏟는 거예요. 
그러니까 언니가 '얘 미쳤나?' 이런 식으로 저는 쳐다보더라고요.
저는 주체할 수 없는데... 

그날 저녁에 천국과 지옥에 대한 간증 테이프를 듣게 되었어요. 
간증자가 광주 안디옥교회 박영우 목사님의 동생분 이라고 하더라고요. 

천국과 지옥을 하나님이 그분에게 보여주셔서 간증을 하시는데 
간증하신 분은 이미 소천하셨고, 테이프로 제가 들은 것이지요.

제가 그 간증을 다 듣고 나서, 제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어요. 
새벽 3시였어요. 그냥 한 없이 눈물이 나오면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 끔찍한 지옥, 그 지옥 간증을 다 들으니까 너무 끔찍한 거에요. 
'저곳에는 사람이 가서는 안 되겠다'
'너무 끔찍한 지옥에서 건져 주신 은혜 감사합니다!' 

그냥 '감사합니다'하며, 무릎 꿇고... 
아직 기도 할 줄도 모르죠. 그날 예수님을 영접 했으니까요. 

그래서 그저 '감사합니다'만 반복해서 말하며 
눈물 흘리면서 그냥 무릎 꿇고 있는데, 
갑자기 북한의 가족들이 생각나는 거예요. 

'우리 가족들은 어떻게 되지?'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나는 지금 복음을 듣고,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구원해 주신 이 소식을 듣고 
이렇게 구원받았다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우리 가족들은 이 복음을 못 들으면 지옥으로 가겠구나!' 이 생각이 드는 거에요.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요. 그 생각을 하니까 너무 끔찍한 거예요. 

▲그래서 '내가 북한에 가야 되겠다' 그때 그 마음이 처음 들었어요. 
지금 한국에 가려고, 청도에서 연길로 왔는데... 
내 가족 구원 때문에, 북한으로 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는 그럼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었어요?)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를 봤어요. 
중국에 와서도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봤어요.

(그러면 한국을 어느 정도 알 텐데.. 그 좋은 나라에 갈 수 있는 길이 열렸는데 
그걸 포기하고 '나는 북한에 갈래!' 이렇게 하셨다는 거예요?)

네, 돈이 눈에 안 보이더라고요.  *한국에서 돈 버는 일

(야~ 정말 큰 은혜를 받으셨네요.
그건 정말 하나님의 은혜지, 이건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네, 성령님의 은혜인 것 같아요.
예, 제가 지금 생각해도 다리가 떨려요. '내가 북한에 어떻게 건너 갔을까?'
제 생각으로, 제 담력으로는 못 갔을 것 같아요. (성령에 떠밀려서 갔어요)

(가족에 대한 사랑, 가족들이 지옥 간다는 그 절절한 마음 때문에 가신 거군요!)

네, 그래서 다음 날, 집사님들 하고 언너이게 제가 얘기를 했어요. 
'나는 한국에 안 가고 북한에 가겠다!'

그러니까 저를 미쳤다고 막 욕하더라거요.
그래도 '나는 무조건 가야 된다. 이 소식을 <내가 전하지 않으면> 
우리 가족들이 그 땅에서 들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무조건 북한에 가야 된다!' 

그러니까 어떻게 저를 말릴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단호한 것을 알고, 그분들이 한국에 바로 전화를 걸었어요. 

'지금 한국에 가겠다고 한 자매가, 북한으로 (전도하러) 가겠다고 합니다. 
빨리 이곳으로 오셔야 되겠다고' 

그러니까 그 분이, 바로 일주일도 안 돼서 바로 비행기를 타고 연길로 오셨어요.
그래서 저를 보시고는 '왜 북한에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느냐?' 물어보시더라고요. 

저는 '내 가족들에게 제가 들은 이 복음을 전하고 싶다고.. 
천국과 지옥을 알려야 되겠다고..'

그러니까 그 분이 '그럼 할 수 있다. 하나님이 하신다!' 하면서
그분이 저의 북한 행을 지지해 주셨어요.

옆에서는 다 저를 미쳤다고 하는데, 
그 분(선교사님)만 '할 수 있다, 하나님이 하신다!' 하고 저를 격려해 주셨어요.

그렇게 해서, 그 머물던 집사님 집에서 나왔어요. 
다른 셋집을 하나 얻어서, 선교사님께 일대일로 양육 훈련 받기 시작했어요.
북한으로 전도하러 가기 위한 훈련이었죠.

(훈련을 한 몇 개월 정도 받으셨어요?) 

한 3개월 정도 받았어요. 
저는 뭐 한 1년~ 2년 정도는 받아야 되겠다고 생각 했는데 

그냥 아침에 일찍이 눈뜨자 부터 찬송하고 말씀 읽고 
그다음에 그분이 쭉 말씀의 내용을 풀어주신 것을 듣고,
예배는 어떻게 드리며.. 이런 거를 다 구체적으로 저에게 알려주셨어요.
영접 기도까지 다 외우게 하시고...

(그 훈련 받는 기간이 정말 즐거웠겠네요?)

저는 천국이 따로 없었어요. 자면서도 말씀이 생각이 나고
(훈련 받을 때) 본 기독교 영화 장면이 왔다 갔다 하고 
지금 돌아봐도 그 때가 너무 그리워요. 

(한국 오는 길에 그냥 유턴을 해가지고 북한으로 갔는데 
그 가는 과정이 그렇게 즐겁고 행복했다면.. 그건 엄청난 부르심이거든요. 
그럼 탈북한지 몇 년 만에 돌아가게 된 것입니까?)

3년 만에요!

(북한으로 가는 길도 쉽지 않았을 텐데요) 

▲네, 저를 훈련시키던 선교사님이, 반대로 이제는 
북한으로 저를 넘겨줄 수 있는 브로커를 찾았어요. 

저는 그때 눈만 감으면 날아가는 것 같았어요. (부모를 만난다는 기대도 컸죠)
아마 하나님이 그런 가벼운 마음을 주셨나 봐요. 
그래서 제가 그때 계속 즐겨 듣고, 즐겨 부르던 찬양이 있었어요.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그 찬양만 부르면서 '이제 북한으로 복음 전하러 가야 되겠다' 했는데,
그런데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쉽게는 안 됐어요. 

조선족 브로커가 사는 집이 옆이 두만강 바로 옆에 있었어요.
그래서 그 집에 들어갔는데, 제가 들어가니까 그 브로커가 저를 보더니 
'이거는 완전 젊은 처녀가 다시 북한으로 가겠다?' 이게 말이 안 된다는 거에요. 

이거 뭐 아이를 둔 아줌마도 아니고, 젊은 처자가 간다니까 
'왜 가는가?' 물어보더라고요. 

'부모 형제들이 보고싶어 간다' 그러니까 
아~ 이거 저와 같은 나이 때의 북한의 친구들은 
지금 중국으로 넘어오고 싶어서 안달이 나서 그러는데 
'왜 다시 돌아가느냐?'는 거예요. 그 분은 안 믿는 분이라 그렇죠. 

그래서 '복음 들고 간다' 이런 얘기는 못 하고 '그냥 가야 된다'고 그랬더니 
'안 될꺼다!' 그러는 거예요. 
'돈 다시 돌려줄 테니까 중국에 다시 들어가라'는 거예요. 

제가 '왜냐고?' 했더니 
제 피부가 그때 하얬어요. 머리 냄새도 다르고 
국경을 넘어도, 북한 여자가 아니라는 것이 금방 티가 난다는 거죠.
그러면 국경을 넘어도, 길을 가다가 무조건 잡힌다는 거지요.

(그렇지, 그 말이 맞죠.) 

그 얘기를 들으니까 제 심장이 막 쿵쿵 뛰면서 너무 두려운 거예요.
그 분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제가 연길에서 선교사님께 훈련 받을 때 '선생님'이라고 불렀어요. 
'선교사님'이라고 말은 못하죠. 

그때 '선생님'이 해주시던 말씀이 생각나는 거예요. 어떤 말씀을 해주셨냐면, 
'네가 복음을 들고 북한에 가는 거를 하나님이 잘 아시고 너와 함께 하실 거다. 
그런데 반대로 마귀가 네 가는 길을 무조건 막고 방해할 수 있는데 
그 방해를 넘어가야 된다, 시험을 이겨야 된다'는 말씀이 생각났어요.

그 말씀이 생각나면서 '사단이 나를 두렵게 하는구나!' 
실은 제가 북한에 가겠다고 처음에 결단했을 때는 
성경을 가져가리라는 생각은 못 했어요. 이거는 증거가 되니까요! 

가다가 잡혀도 증거가 돼서, 나를 그 자리에서 뭐 총으로 쏴 죽여도 
할 말이 없는 거죠.

(성경이 발각되면 그렇죠)

그래서 성경을 가져가리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딱 떠나기 전 일주일 전에 
'아니 이 길을 하나님이 끝까지 지켜 주실 건데 
내가 성경을 왜 못 가져가냐?'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성경을 가져가야지, 이걸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지' 

그리고 제가 듣고 있던 MP3에 복음성가가 50곡이 거기 들어가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듣고 은혜 받았던 '천국과 지옥 간증 테이프'
그것도 가져가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다 가져갔다가는, 잡히면 큰 일인데.. 폭탄을 들고가는 건데요..)

제가 그걸 다 가져가겠다고 하니까, 선교사님이 말리지는 않더라고요.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그 믿음이 있으니까, 저는 가져 가겠다고 했고,
선교사님도 '그러면 가져가라' 하시더라고요.

제가 백 마디를 해도, 이걸 한 번 보여 주면 
'가족들이 신앙을 다 받아들이겠다' 이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두만강을 건너기 직전에, 브로커가 
'너는 북한에 넘어가면 무조건 잡힌다!' 하는 거예요.

저는 그때 막 선교사님이 약품 들도 많이 주셨어요. 
북한에 약이 귀하다고.. 여러가지 옷도 주셨는데 
커다란 가방을 그냥 제가 무겁게 메고 갔었어요. 

근데 '가다가 잡힌다' 하니까, 옷이나 약을 다 내려 놨어요. 
그리고 가지고 떠난 게 성경, MP3, 천국과 지옥 테이프, 녹음기.. 그것만 가졌어요. 

그걸 가지고 가는데, 한 편으론 겁이 났고
다른 한 편으론 '끝까지 가야 된다!' 이 마음이 들더라고요.

한 쪽에선 '돌아서라' 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계속 가라!'...
그래서 제 마음은 막 전쟁인 거예요.

여기서 지금 강 하나만 넘으면 북한이고... 
갈림길에서 어느 걸 선택할 것인가? 

막 그러고 있는데 제 마음 속에서 이렇게 말씀이 생각났어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제가 서 있는 거예요. 
그러나 '주님이 나를 지켜 주신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그 말씀이 막 묵상이 되면서 '나는 끝까지 가야 된다'

조선족 브로커는 '안 된다. 못 간다.' 
이렇게 계속 그러고 있고... 
그러면서 약속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새벽 3시까지 기다리고 있는데, 갈등이 계속 된 거죠.
그러다가 새벽 3시가 다 됐는데, 제가 북한으로 가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으니까 
밖에 나가서 강 저편을 보는 거예요. 자기가 약속한 북한 군인이 나와 있는지..

북한 쪽에서 나왔다고 신호를 준 거 같아요. 
저 보고 막 나오라고 하는 거에요. 

그때가 겨울이었어요. 
제가 북한을 향해서 얼음을 밟고 걸어가는데, 
밤이라서 발자국 소리가 왜 그렇게 크게 나는지...

가는데 제 마음에 평안이 찾아 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막 그 때까지 제 심장이, 막 진짜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마구 뛰었어요.

너무 두렵고 긴장이 돼서, 심장이 쿵쿵쿵쿵 하고 있었는데 
북한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마음이 평안한 거예요.
두려움 따위는 없었어요. 

그때 제 마음에 확실하게 천국을 믿었어요. 
'내가 이 길을 가다가 죽으면 천국이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내가 지옥에서 건짐 받았는데 
가다가 죽으면 천국이고/ 가다가 살면 복음 전하고..' 이것 밖에 없는 거예요. 

그때 제 마음에 평안이 오면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이 마음이 확 그냥 온몸으로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그때까지 되돌아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잖아요. 
사단이 나를 시험 했던 거죠.

그 갈등을 이기고 나서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확 임하는 거죠,

(마치 홍해 바다가 열리는 것처럼요..)

제가 그 평화를 경험을 했어요.
네, 그런 시험을 이기는 담대한 믿음이 필요해요!

(야~ 이거, 이 간증을 듣는 분들에게는 굉장히 큰 깨달음이 될 것 같아요.
왜냐면 갈등은 우리가 다 같이 경험하거든요.
그런데 그 갈등, 시험에 져서, 뒤돌아 서거든요.

네 거기서 실패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근데 그 갈등과 시험 속에서 말씀을 묵상하고 힘을 얻어서 
정작 하나님의 길을 한 발짝씩 내 디뎠더니.. 하나님이 주신 평화가 임하는군요!)

네, 벼랑 끝에서라도 '뛰어 내려라' 하면, 뛰어내려야 하는 거예요.

(그렇죠. 그게 믿음이죠!)

안전한 것을 다 확인하고 난 다음에, 뛰어내리는 것은 믿음이 아니죠.
그거는 믿음이 없어도 누구나 다 갈 수 있는 길이고...

(그럼 국경을 넘어가서도, 계속 경비 초소들이 있었을 텐데요)

그래서 국경을 지나서, 집으로 가는 길도 순탄치 않았어요. 
산을 두 개 넘어야 되고.. 묘하게 하나님이 예비하신 거 같아요. 

제가 12살때 아빠를 잃고, 13살부터는 그냥 매일 산으로 나무하러 다녔어요. 
나무를 해서 팔아야 먹을거리를 살 수 있었고 
그거를 몇 년 동안 하다 보니까, 보니까 제가 계속 나무하러 다녔던 산이었어요. 

(잘 아는 산이었던 거군요)

네, 산 하나만 넘어서 보니까, 제가 잘 아는 산인 거예요. 
아 그래서 3시간 반 동안을 걸었어요. 

산을 두 개 넘으면 터널이 또 있어요. 
그 터널을 지나가야 돼요. 

거기를 지나면 군인 초소가 또 나와요.

(당연히 터널에는 북한 군인들이 다 지키거든요)

네, 거기를 지나야 주민 사택들이 시작되는데, 
그 터널에서 군인들에게 걸리면 끝나는 거죠.

제가 터널을 통과하기 전에, 앉아서 기도를 또 드렸어요.
'하나님, 이제 마지막 터널입니다. 이 터널을 지나면 마지막 초소가 있는데 
여기서 잡히게 되면.. 
제가 이렇게 떨고 있고, 긴장되는데.. 하나님이 더 잘 아시죠? 

만약에 군인들이 나와 있다면, 저들의 눈을 멀게 해 주시고 
제가 무사히 지나게 도와 주세요.' 이렇게 기도를 딱 두 마디 하고 일어났는데 
긴장이 되더라고요. 

머리카락이 곤두섰을 정도로 막 긴장이 되는데 
일부러 제가 입고 있던 긴 코트를 절반 걷어올려서 끈으로 묶었어요. 
산에서 무슨 일 하다가 방금 내려온 사람처럼 보이게 한 거죠. 

이렇게 내려 오는데 북한군인 두 명이, 눈이 와 가지고 눈을 치우고 있었어요. 
한 사람은 그들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고... 

그 앞을 지나는데, 제가 너무 떨리는 거예요.
제가 무섭다고 눈을 감으면 안 되고, 눈을 뜨고 속으로 기도하면서 지나가는 거예요.

사람이 위험한 순간에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제가 그때 알았어요. 
기도하면서, 한 쪽으로는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어요.
태연하게 보일려고 그럤던 거죠.
그냥 입술로는 흥얼흥얼 생각나는 노래를 아무 거나 불렀어요...

그 군인들을 보면서, 제가 속으로 기도했죠.
'하나님, 저들이 나를 보고 있어요!'


※P2에서 계속 됩니다. (1주일 후에 녹취합니다)
P2에서는 북한의 가족들과 이웃에게 전도하고, 
집에서 주일예배를 드린 간증이 나옵니다. 
P2 듣기 ☞[북한선교] 복음안에서 일어나는 북한사람들 [2편 김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