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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7장, 주와 같은 하나님이 어디 있으리오?

LNCK 2022. 11. 4. 18:08

◈미7장, 주와 같은 하나님이 어디 있으리오?     여러 설교 정리  

 미가서 설교모음 


<미7장의 개요>
1~6절, 불의한 이스라엘에 대한 미가의 탄식
7~17절,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미가의 예언
18~20절, 회복을 바라보며 미가의 찬송


◑불의한 이스라엘에 대한 미가의 탄식 (1-6절)

1절 재앙이로다 나여 나는 여름 과일을 딴 후와 포도를 거둔 후 같아서
먹을 포도송이가 없으며 내 마음에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도다

(공동) 아, 답답하구나. 여름 과일을 따러 나섰다가, 포도송이를 주우러 나갔다가,
먹을 만한 포도송이 하나 얻지 못하고, 먹고 싶던 맏물 무화과 하나 만나지 못하듯

미가 선지자는 탄식합니다.
“재앙이로다” :1

전후좌우 그 어디를 살펴보아도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암담한 상황 속에서 나온 탄식입니다.

미가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직전에 의인을 찾았던 아브라함(창 18:23-33),
예레미야(렘 5:1-5), 에스겔(겔 22:30)처럼
이스라엘에서 의로운 사람을 찾았으나 한 사람도 찾을 수가 없었죠.
‘그래서 재앙이로다!’ 하며 탄식했던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했고,
남유다 역시 앗수르의 침략으로 풍전등화에 처해있었습니다.

2절 경건한 자가 세상에서 끊어졌고 정직한 자가 사람들 가운데 없도다
무리가 다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며 각기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 하고

그런데 이 위기의 상황에서 지도자는 어떤 행동을 하고 있을까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나라를 구원해달라고 간구했나요?
아닙니다. 지도자들과 재판관은 뇌물을 구하고
권세자는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있어 백성들을 착취하고 있습니다. :3

3절 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하는도다 그 지도자와 재판관은 뇌물을 구하며
권세자는 자기 마음의 욕심을 말하며 그들이 서로 결합하니

그리고 '가시'와 '찔레 울타리'처럼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 고통을 주고 있는
자신들이 선하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4

4절 그들의 가장 선한 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하도다
그들의 파수꾼들의 날 곧 그들 가운데에 형벌의 날이 임하였으니
이제는 그들이 요란하리로다

이처럼 하나님과 백성을 저버리고 불의를 일삼으면서도
그들은 호의호식하며 권세를 누리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 역시 이에 질세라 우상숭배하며
죄악의 구덩이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사회가 부패하고 타락하자 가정이 흔들렸습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과 친구 그리고 가족 관계가 서로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해를 가하는 관계로 변했고, 심지어는 하나님께서 맺어준 부부 관계까지도,
더 나아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조차도 파괴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5~6

5절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킬지어다

6절 아들이 아버지를 멸시하며 딸이 어머니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리로다

미가 선지자는 사회전반에 걸쳐 불의가 만연하고 종교도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익은 무화과 즉, 경건한 자와 정직한 자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1

그러나 눈을 씻고 찾아봐도 경건한 사람과 정직한 사람이 없습니다.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못 잡아먹어 으르렁 대고 있습니다. :2

정의와 공의가 무너진 이스라엘에는 이제 파수꾼들의 날, 형벌의 날,
즉 심판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4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같은 상황 아닌가요?        *2018년 경 설교
세계는 강대국의 자국우선주의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도 혼돈스럽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강대국들의 고래 싸움에 이리 저리 치이고 있습니다.

대외적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습니까?
정치는 편싸움에 몰두하다 못해, 국민 사이에 갈등을 조장해서 분열시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미가의 예언               7:8~17 

하지만 이 책은 또 다른 강렬한 희망의 메시지로 끝이 납니다.
이스라엘이 한 개인으로 의인화 됩니다.

그는 수치와 패배감에 홀로 앉아 있죠.
분명 이스라엘의 파멸과 유배에 관한 모습인데요.

이 사람은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들으시고 용서해 주시라고 애원합니다.
그런데 왜, 왜 하나님이 이 믿음 없고 반역하는 백성을 들으시고
용서하셔야 되는 거죠? 미가는 두 가지 이유를 드는데요.

1) 첫째는 하나님의 성품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주와 같은 하나님이 어디 있으리오?
주는 죄악과 반역을 용서하시나이다' 7:18

그는 하나님의 자비가, 그분의 분노와 심판 보다
더 강하다는 걸 아는 것이죠.

2) 두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들 때문입니다.

그가 말하길 '주께서 옛적에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 7:20

이것은 이 책의 맨 마지막 구절로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암시합니다.

그래서 미가서는, (다른 예언서로 그러하지만)
‘심판’과 ‘소망’ 사이를 시계 추처럼 오가며,
이에 대해 예언하고 있는 거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 열방에 복을 베푸시려면
반드시 그 백성들의 악을 심판하셔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 분의 심판은 결국 소망에 이르게 되는데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과 약속이
인간의 죄악 보다 강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멸망이 아니라 살리시고,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책의 결론을 빌리자면     *7:18~20
하나님은 언약적 사랑을 기뻐 하셔서
우리를 다시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실 것입니다.


위 내용을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그 어디에서도 구원의 불빛을 찾기 힘듭니다.
희망을 찾을 수 없는 미가 선지자는 절규했습니다.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미가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7절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절망 속에 희망이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희망이 없지만,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면 희망이 생깁니다. 바로 주님으로 말미암은 희망이죠.
  
8절 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대적'은 이스라엘을 침략하여 멸망시킬 이방 열국을 가리키죠.
미가는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멸망시킨 이들에게 기뻐하지 말 것을 선언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심판을 당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을 믿는 미가의 믿음을 보여주죠.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엎드러질지라도'와 '어두운 데 앉을지라도'는 하나님의 심판을 뜻합니다.

9절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그의 진노를 당하려니와
마침내 주께서 나를 위하여 논쟁하시고 심판하시며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공의를 보리로다

미가를 대표로 하는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어두운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의 심판이 자신들의 불순종과 불의로 인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노와 그로 인한 심판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재판장되신 하나님의 판결과 처분을 기다리며 인내합니다.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회복될 것입니다.

남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진노를 멈추시고 구원하시는 역사를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 곧 자신의 언약을 성실히 이행하시는
하나님의 의로움과 신실하심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6:1-5).

10절 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자라
그가 거리의 진흙 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내가 보리로다

이스라엘의 대적자들인 이방 열국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됨을 전혀 깨닫지 못하였죠.

그들은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라고 이스라엘을 조롱하였죠.
그러나 열국들은 자신들의 교만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구원을 얻는 날 심판을 당하여 파멸될 것이며
진흙처럼 사람들의 발에 밟히게 될 것이다.

11절 네 성벽을 건축하는 날 곧 그 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

본절은 예루살렘의 회복을 바라보는 미가의 기대이다.

'성벽을 건축하는 날'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이방 열국에 포로로 잡혀갈 것을 전제로 합니다(3:12, 4:10).

여기서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는 미가가 바라보는 회복의 날,
곧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날 메시야를 통해서 성취되는
회복의 날을 가리킵니다(렘 3:18).

12절, 그 날에는 앗수르에서 애굽 성읍들에까지, 애굽에서 강까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 산에서 저 산까지의 사람들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나

본절은 회복의 평화와 기쁨에 이방이 참여하게 됨을 시사한다.
'앗수르'와 '애굽'등은 역사상 맹위를 떨쳤던 실제적 국가를 말하기보다는
이방의 열국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 산에서~ 저 산까지’ .. 온 세상을 뜻하죠.

13절 그 땅은 그 주민의 행위의 열매로 말미암아 황폐하리로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몰려드는 이방 열국이 구원을 얻는 반면,
나머지 죄악된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여 황무하게 될 것입니다.

14절 원하건대 주는 주의 지팡이로 주의 백성 곧 갈멜 속 삼림에 홀로 거주하는
주의 기업의 양 떼를 먹이시되 그들을 옛날 같이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이시옵소서

'주의 지팡이'는 양떼를 지키는 목자의 지팡이를 상징하며
'주의 기업의 떼'는 양떼인 주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상징합니다.

미가는 본 구절에서 하나님을 양떼를 지키는 목자로 부르면서
양떼인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지켜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죠.

한편 '갈멜 속 삼림'은 양떼들이 먹고 마시기에 충분한 꼴을 제공하며
동시에 양떼들을 해하고자 하는 많은 들짐승으로부터 보호와 안전을 보장하는
지역을 가리킵니다.

'바산과 길르앗'은 목축을 하기에 좋은 비옥한 땅으로(민 32:1;대상 5:9;시 22:12)
풍요와 비옥 그리고 안전을 상징하는 표현이죠.

미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보호해 주실 뿐만 아니라
남은 자들이 이스라엘이 과거에 누렸던 영광과 풍요와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죠.

15절 이르시되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이
내가 그들에게 이적을 보이리라 하셨느니라

본절은 미가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16~17절 이르되 여러 나라가 보고 자기의 세력을 부끄러워하여
손으로 그 입을 막을 것이요 귀는 막힐 것이며
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떨며
그 좁은 구멍에서 나와서 두려워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리이다

본문은 남은 자들을 회복시키며 축복하시는 역사를 본 열방들의 태도이죠.
열방들은 남은 자들에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을 보면서
자신들의 능력의 보잘것없음과 비천함을 깨닫게 됩니다.

'손으로 그 입을 막을 것이요'는 존경과 경위를 표현하는 모습이며(욥29:9)
'귀는 막힐 것이오며'는 하나님의 권능을 드러내는 우뢰 때문이죠. (욥26:14)

열국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권능 앞에서 동굴에서 떨면서 기어나오는
짐승같은 존재임을 깨닫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두려움을 갖게 되며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미가의 찬송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7:18-20

18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19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20 주께서 옛적에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

미가서는 12개 소선지서 가운데 6번째 책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공부한 선지서들은 대부분 동일한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옛 언약에 실패해서 포로가 되는 형벌을 받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회복하신다는 내용입니다.

육적인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을 어겨서
하나님께 징벌받고 바벨론의 포로가 되지만
하나님께서 영적인 이스라엘을 다시 세워주신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20세기 세대주의 종말론자들은 육적인 이스라엘이
다시 일어난다고 해석했습니다.
예를 들면 모리아산에 다시 여호와의 성전이 세워질 것이라 예언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모리아산에 성전을 짓는다고 해서,
누가 그것을 성전이라고 부르겠습니까?

결국 예언서의 내용은 육적인 이스라엘이 망해도
하나님께서 영적인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시고 일으키신다는 것입니다.

▲미가서 7장과, 렘31장의 새 언약에 관한 내용이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고
원수들을 모두 부끄럽게 하시며
새로운 출애굽의 기적을 보이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향해서 미가 선지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이것은 또한 미가 선지자 이름의 뜻과 같습니다.

▲미가 선지자가 예언하던 시대는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 때입니다.
요담과 아하스는 16년 통치했고, 히스기야는 29년을 통치했습니다.
그런데 요담, 히스기야 때는 아니더라도 아하스 시대 16년은
계속해서 예언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하스는 유다 왕 중에서 가장 악한 왕입니다. 성전 문을 닫아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그릇들을 다 창고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제단이 있던 곳에
다메섹 귀신을 숭배하는 제단을 갖다놓고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바알을 숭배하고 힌놈 골짜기에 자기 자식들을 불에 태우면서까지
귀신들을 숭배했습니다. 그러자 미가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아! 어리석은 실수를 하지 마라.
하나님을 그런 잡신, 귀신들과 비교하지도 마라. 하나님과 바알이 상대가 되느냐?

하나님과 다메섹 귀신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기분 나쁘다.
그런 잡신들과 비교하지 말고 너희는 하나님을 경배하라.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이런 메시지를 증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교 불가능성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은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긍휼을 기뻐하시고 인애(Mercy)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온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다 용서하시느냐?
하나님의 인애의 대상은 온 세상 모든 사람이 아닙니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미 7:18).

누구의 허물을 넘기신다고 했습니까?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신약의 용어로 보면 성부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나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계획을 가지고 용서하십니다.
계획된 사람들에게 인애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롬 9:15).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인애의 내용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인애를 베풀어 주시는데 그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죄를 용서하시고 의롭다함을 주시는 칭의의 은혜(Justifying Grace)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자는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받습니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미 7:18).

죄악을 사하신다는 동사의 히브리어는 ‘라사’인데
이것은 죄 짐을 들어 올리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들어 올려서 어깨에 메고 씨름선수가 하듯이 확 넘겨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하신다’는 히브리어 동사의 의미입니다.

저는 참 죄가 많습니다. 여러분은 죄가 없으신 표정으로 앉아계시는데
저는 죄 짐이 엄청나게 커서 아무리 들려고 해도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더니 내 죄 짐을 잡아서 어깨에 메시고
그것을 등 뒤로 던져버려 어디로 날아갔는지 날아가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죄악을 사하신다’는 의미입니다. :18

그리고 ‘허물을 넘기신다’는 동사는 히브리어로 ‘오베르’인데 :18
출애굽기 12장 23절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어린양의 피가 문설주에 발라져 있으면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의 죄 짐을 그리스도에게 담당시키셔서
죄를 용서하시고 그 죄를 잊어버리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의 죄를 기억하지 못하십니다.
우리는 가끔 옛날에 지은 죄 때문에 악몽을 꾸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두 잊어버리시기 때문에 그런 악몽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악몽은 무엇이냐? 사단이 죄를 복사해서
그것을 가지고 자꾸 송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단에게 미가 7장 18절을 붙들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라. 내 죄의 복사본을 가지고 와서
괴롭히는 사단아 물러갈지어다!’ 이렇게 명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의 가장 큰 문제가 뭘까요? 배고픈 것이 문제입니까?
배고파도 굶어 죽지만 않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럼 가난이 문제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모두 불행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이 더 행복합니다.

이번에 우리 성도들이 캄보디아에 다녀왔는데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행복해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라 “죄”인인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의 종이 되어 살아갑니다.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죄는 마귀를 아버지로 만들고 비참을 친구로 만들고 사망을 대가로 만들고
지옥을 영원한 운명으로 만든다.”

죄는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고 용서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용서하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시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를 죄에서 해방하시고 지옥에서 건져주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의 영향력을 벗어나
점진적으로 거룩한 사람이 되게 하시는 성화의 은혜(Sanctifying Grace)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미 7:18-19).

예수님을 믿고 성도가 되어 의롭다 함을 받으면 천국에 가게 됩니다.
지옥에 가기는 다 틀린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갑자기 성인(聖人)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꾸 죄에 빠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의롭다함을 입은 성도들을
거룩하게 해주시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세 가지 행동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지으면 진노하시지만
우리가 회개하면 진노를 풀어버리십니다.
그러니까 성도가 죄를 지으면 진노하시다가도 회개하면
진노를 푸시는 과정이 성화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주 강력한 원수처럼 쫓아오는 죄들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빠지는 죄로 음란, 도박, 술, 담배와 같은 것들은
예수님을 믿어도 쉽게 끊지 못하고 따라옵니다.

하지만 이러한 죄들을 하나님께 맡기면 발로 밟아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쫓아오는 대군들은 깊은 바다에 빠뜨려버리십니다.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미 7:19).
이것이 바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성화의 은혜인 것입니다.


칭의와 성화의 은혜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그 기업에 남은 자들에게 베푸시는 자비와 긍휼입니다.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과 비교할 수 있는 신은 세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비교 불가능성’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육적인 이스라엘이 죄악 때문에 포로로 끌려가지만
인애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영적인 이스라엘을 다시 세워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죄악을 사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은혜를 베풀어
그들로 하여금 영생을 누리는 백성이 되게 하신다는 예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용서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언약한 백성에게 인애를 베푸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신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평생 경배하고 더 사랑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