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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2:8~13 여호와를 대적으로 삼을 것인가

LNCK 2022. 11. 9. 14:11

◈여호와를 대적으로 삼을 것인가       나2장 8~13         2012.02.12.출처

 

 

◑서론

 

대한민국에서 살려면 ‘빽’(Back Ground)이 좋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빽이시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원수가 되십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이 ‘여호와를 대적으로 삼을 것인가?’입니다.

 

나훔서의 내용은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가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의 멸망을 조롱하십니다.

 

나훔 2장 8~9절을 보면 ‘니느웨야, 너희는 예로부터 물이 모인 연못 같더니

지금은 물이 다 빠져버린 것처럼

사람들이 다 나가서 돌아오라고 해도 돌아오지 않는 도시가 되었느냐?

한때 돈이 많다고 하더니 그 많던 돈이 다 어디로 갔느냐?’라고 조롱하십니다.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망한다는 것입니다. 왜 망하느냐?

그 이유는 나훔 2장 13절에 정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 (나 2:13).

 

니느웨가 망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입니다.

 

나훔 3장 5절에도 동일한 말씀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서 네 치마를 걷어쳐

네 얼굴에 이르게 하고 네 벌거벗은 것을 열국에 보이며

네 부끄러운 곳을 열방에 보일 것이요” (나 3:5).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는 “하나님을 대적함으로 인해”

수치를 다 드러내는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1. 사람들이 진리를 거부하는 이유

 

하나님께서 악인을 대적하신다는 말씀은

에스겔서 한 권에만 10번이나 반복해서 나옵니다.

그리고 성경 전체에는 수없이 반복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과 원수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 진리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의 원수가 된다거나, 누구를 미워하신다는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말이나

하나님께서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하신다는 말들을

너무 많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물론 이 말씀이 어떤 경우에는 진리가 될 수 있습니다.

죄인이 죄를 짓는 경우도 있고, 의인이 죄를 짓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인이 죄를 지을 때 하나님께서 죄는 미워하셔도 사람은 사랑하실 수 있습니다.

의인의 경우에는 이 말씀이 맞습니다.

 

그러나 죄인이 죄를 짓는데도 하나님께서 죄만 미워하시고

죄인을 사랑하시지는 않습니다.

 

사영리 전도법도 이런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사영리 전도법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신다고 말하면서 전도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죄인들이 그것을 듣고 자신이 죄 가운데 그대로 있어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한다고 오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를 뒤로 미룰 수도 있고 회개의 중요성을 가볍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죄인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말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원수가 되어있다는 말을 들을 때

빨리 회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훔 2:13절에 대해서 유명한 존 칼빈 선생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훔서의 대부분은 하나님께서 나훔 선지자의 입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야기하셨지만, 2:13, 3:5절만큼은 1인칭 단수로 직접 말씀하셨다.”

 

나훔이 ‘하나님께서 네 대적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 이 진리를 강조하셨습니다.

 

 

◑2. 하나님이 죄인을 대적하시는 이유

 

하나님께서 왜 죄인을 대적하시느냐?

그 이유는 죄인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하나님과 교회의 관계와 비슷합니다.

아내가 남편을 존경하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아내가 남편을 대적하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기 어렵습니다.

 

아내가 매일 남편을 대적하고 바가지 긁으면 어느 남편이 사랑하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대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죄인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중요한 진리 가운데 하나가 “화목의 교리”입니다.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면 하나님과 화친하게 되고

예수님께서 그의 형제가 되시며, 돕는 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화목의 교리는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에

하나님과 원수 관계, 적대 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흔히 ‘하나님께서 죄는 미워하시고, 죄인은 사랑하신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죄도 미워하시고, 죄인도 미워하십니다.

 

죄도 대적하시고, 죄인도 대적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경우

죄와 죄인을 구별해서 동떨어진 실체로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3. 시편 5편 4~6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품

 

시5:4~6절은, 나2:13절과 관련해서 중요한 하나님의 성품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생각할 때,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에서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말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성경에 집어넣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그대로를 의존해서 생각해야 됩니다.

이런 생각을 ‘계시 의존 사색’이라고 합니다.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

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고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시 5:4~6).

 

이 짧은 세 구절의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성품에 관한 6가지 진리가 확실하게 내포되어 있습니다.              주1)

 

 

◑4. 하나님께서 앗수르의 대적이 되신다는 말씀의 의미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향해 대적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앗수르와 전쟁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용사가 되어 앗수르와 싸우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싸워 이기는 사람이 있습니까?

 

사사기 5장에 보면 드보라의 노래가 나옵니다.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 (삿 5:20).

(하늘의 존재들, 천사들이 시스라와 싸웠다는 뜻입니다. 바람, 폭풍, 불 등으로)

 

야빈의 군대 장관인 시스라는 철병거 9백 승을 이끌고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러 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므깃도 언덕에 비를 내려 철병거 9백 승을

다 못 쓰게 고철로 만들어버리고 군인들을 다 죽이셨습니다.

 

시스라도 도망가다가 겐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에게 말뚝에 박혀 죽었습니다.

 

이처럼 용사이신 하나님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과 싸우지 마시고, 하나님을 자신의 빽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든든합니까? 하나님을 빽으로 삼고 사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빽으로 삼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앗수르가 저지른 죄악을

그대로 그들에게 갚아주겠다는 것입니다. 똑같이 보복하겠다는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골짜기와 평원 반석의 거민아 보라 너희가 말하기를

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누가 우리의 거처에 들어오리요 하거니와

나는 네 대적이라 내가 너희 행위대로 벌할 것이요 내가 또 수풀에 불을 놓아

그 사경을 사르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21:13~14).

 

앗수르가 어느 지역을 점령하면 왕, 왕후, 방백, 백성 모두를 죽인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니느웨 왕, 왕후, 백성 모두를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앗수르가 점령지역에 불을 놓았으니

하나님께서도 니느웨 성에 불을 놓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연과 인간을 다스리는 대법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심는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 6:8).

 

지금 무엇인가 여러분이 거두는 것이 있다면

옛날에 심은 것이 있기 때문에 거두는 것입니다.

 

공부 열심히 했기 때문에 지식이 생긴 것이고

일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돈이 생긴 것입니다.

 

많이 심은 사람은 많이 거두고, 적게 심은 사람은 적게 거두는 것입니다.

앞으로 좋은 것을 거두시려면, 좋은 것을 많이 심으시기 바랍니다.

 

앗수르는 악한 것을 심었기 때문에,, 그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앗수르의 대적이 된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전쟁해서 이길 수 있는 사람도 없고 국가도 없습니다.

니느웨는 좌우를 분별 못하는 어린아이만 12만 명이 있었고

어른까지 합하면 60만 명이 넘는 대도시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대적하시니까 망해버린 것입니다.

 

지금 서울도 세계 몇 대 도시에 들어간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면 완전히 망합니다.

니느웨도 망했는데 서울이 망하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니느웨의 멸망을 기록해 놓은 것은 오늘날 우리가 거울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 대적하시는 인생, 도시, 국가가 되면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지금 잘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아서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되었기 때문에 복을 내려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후손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면

복은 다시 날아가고 고통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까지 ‘하나님의 대적이 되어 살았구나.

하나님이 나의 대적이 되셨기 때문에 내 인생에 되는 일이 없었고

나의 영혼이 어두웠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분이 계시면 하나님과 화목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려면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첫째,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눅 5:32).

 

교회 나오면서 한 번도 하나님 앞에

‘내가 죄인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았습니다. 내가 그 죄를 회개합니다.’

이런 고백을 하지 않은 사람은 위험합니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13:3

죄를 지어서 망하는 게 아니라, 회개치 않으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거역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하는 길에서 돌이켜야 됩니다.

 

둘째, 그리스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야 됩니다.

나는 죄짐을 지고 가는 죄인이고 예수님께서 내 죄짐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내 죗값을 치러주셨다는 것을 믿어야 됩니다.

이것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믿어야 됩니다. 복음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골 1:20).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심판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그리스도의 피를 믿고

당신과 화목하게 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이 세상은 온통 다 구덩이 뿐이고 온통 다 미끄러운 것뿐입니다.

여길 가도 사기꾼, 저길 가도 사기꾼뿐입니다.

정치, 사회, 학교에도 뱀들이 가득합니다.

 

우리 인간이 거하기에 가장 안전한 곳은 그리스도의 피가 흐르는

십자가 아래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옛 성도들이 십자가 그늘 아래 쉬기 원한다고 노래를 지어 부른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으로 삼지 마시고 하나님과 화목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전에는 너를 괴롭게 하였으나 다시는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나1:12

하나님께서 괴롭게 하지 아니하시는 인생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주1)

첫째, 하나님은 죄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둘째, 악인은 주님과 동행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요일 1:5).

 

빛과 어두움은 공존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빛이시므로 어두움이 있을 수 없습니다.

 

어두움이 있는 곳에 빛이 들어오면 어두움은 즉각적으로 물러가게 되어있습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요 3:19~20).

 

하나님께서 빛이신데 왜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오지 않느냐?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람들이 어두움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어두움 가운데 있으면 죄짓기 좋고 숨기기 좋으니까 빛으로 오지 않는 것입니다.

죄가 좋으니까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합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히 3:4).

 

어떤 이는 이 세상이 빅뱅과 같은 폭발로 우연히 생겼다고 합니다.

이것은 말도 안 됩니다. 우주가 폭발하면 인간과 같은 존재가 튀어나옵니까?

집을 보면 ‘누가 지었는지 잘 지었구나. 뛰어난 건축자가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천지를 보면 천지를 지으신 분이 누군지 모를 수 있어도

어떻게 그분이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악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조롱합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과 동행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악을 미워하시고 악을 행하는 자와 동행할 수 없는 것이죠.

 

셋째, 악인들은 하나님의 목전에 설 수 없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삼상 2:30).

 

하나님께서 직접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겠고

나를 멸시하는 자는 내가 경멸히 여기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가 목사가 되고 나서 저를 멸시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쩌다 네 인생이 그렇게 됐냐면서 저를 멸시합니다.

하지만 저는 멸시 당해도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나를 멸시하면서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경멸하십니다.

그들이 왕이든 대통령이든 사업가든 군인이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시하시고

하나님을 존중하면 존중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은 행악자를 미워하십니다.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시 11:5).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잠3:33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3:18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 3:36).

 

하나님을 멸시하고 대적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심판하시며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명확히 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을 향해서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시고 죄인을 대적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시7:11~12

 

하나님께서 당긴 활을 놓기만 하면 악인들은 박혀 죽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숫돌에 칼을 갈아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향해

매일 분노하시고 의로우신 재판장이 되어 활을 당기고 칼을 갈고 계십니다.

 

다섯째, 하나님께서는 거짓말하는 자를 미워하십니다.

대한민국에 제일 많이 있는 것이 사기꾼일 것입니다.

사기를 당하면 어쩔 수 없습니다.

사기 쳐서 훔친 돈을 다 쓰고 돈이 없다고 하면

판사가 판결해도 돈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기꾼들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십니다. 영원한 형벌을 부과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여호와는 피 흘리기를 즐기고 속이는 자를 싫어하십니다.

여기서 싫어한다는 영어로 “hate”가 아니고 “abhor”입니다.

극도로 싫어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시73편은 유명한 시입니다. 아삽의 시인데 악인들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가대 지휘자인 아삽이 시험에 들었습니다.

나는 성가대 지휘를 하며 열심히 하나님을 위해 사는데

아침저녁으로 맞으며 살고 악인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면서도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것 아닙니까?’

이렇게 시험 들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시 73:18~20)

 

아삽이 악인의 형통을 보고 시험에 드니까 하나님께서 아삽에게

“악인들이 형통한 것이 부러우냐? 내가 그들을 미끄러운 빙판길에 두었다.

어느 순간 미끄러질 날이 올 것이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도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시간이 지나면 미끄러집니다. 얼음 위에서 미끄러지면 대책이 없습니다.

악인들이 지금은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아도 미끄러지면 저들은 전멸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