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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3장 하나님의 시각에서 현실을 보게 된 하박국

LNCK 2022. 11. 13. 20:44

◈합3장, 하나님의 시각에서 현실을 보게 된 하박국            여러 설교 정리

 

<개요>
1~2절, 하박국의 기도
3~15절, 구원의 용사되신 하나님을 찬양
16~19절,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16-19절)


<1~2장의 줄거리>

하박국 선지자는 눈앞에 펼쳐진 부조리한 세상의 모습들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답으로 불의한 남유다에 대한 심판으로 
갈대아 사람을 사용하실 것이며 
또한 그 갈대아 사람들도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될 것을 알려주십니다. 

하박국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함축적으로 2:20절로 정리됩니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시니라” 

여호와가 성전에 계시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통치가 여전하시며 
온 땅은 그 주권아래에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현실의 부조리 앞에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하여 질문하는 하박국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마치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풍랑을 잠잠히 하시며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신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하나님의 대답에 대한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와 찬양이 3장에 나옵니다. 


◑1. 하박국의 기도    (1~2절)

2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2절에서 하박국은 '하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다'고 이야기 합니다. 
여기서 ‘소문’이란 무엇일까요?
영어성경은 fame, speech, report 등으로 각기 다르게 번역하는데

2b절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라는 문맥과 연결해서 해석하면
speech, report가 적당합니다.
즉 ‘소문’이란 2장에서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주신 말씀을 의미하죠.

 

또 fame(명성)으로 번역하는 이유는,

이 '소문'의 내용이 3~15절에 나오는, 출애굽과 가나안 진입 때 행하신

하나님의 모든 역사에 대한 'fame 명성'을 들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둘 다 맞습니다. 둘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때 행하신 그 능력으로,

바벨론에게도 똑같이 행하실 것을.. 하박국은 믿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2장에서 ‘화 있을진저!’를 5번이나 말씀하시면서
바벨론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할 것을 예언하셨죠.

그 하나님의 작정을 들은 하박국은 

그 동안 성경과 구전을 통해 
하박국 선지자가 알고 있던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의미합니다.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3:2

‘진노 중에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라는 말은,
바벨론을 불러와서 남유다를 치게 하고, 

그 바벨론이 또 심판을 받아 망할 것임을 알기에,

즉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리라는 사실을 알고서
하박국은 ‘진노 중에 유다에 긍휼을 베푸시기를 호소한 것입니다.

 

▲그래서 3장에서 하박국서의 분위기가 확 바뀝니다.

1~2장에서 하나님께 항변하고, 따지듯이 물었던 하박국은

3장에서는 찬양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세계역사 계획, 하나님의 계시를 듣고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모든 예언서와 시편의 공통적인 특징인데요.

 

하나님의 계시를 듣고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서

여전히 불평하고, 불만족이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요나는 제외

모두가 탄식에서 → 찬양으로 바뀌었습니다.

 

오늘날 내 입술에 찬양이 메마르고,

뭔가 하나님께 대한 불평과 탄식이 (하박국처럼) 계속 쌓여간다면

그것은 "계시가 없기 때문, 계시를 아직 못 받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계시를 받으면, 하박국이 노래한 것처럼

높은 곳을 다니는 사슴의 발처럼 가볍고, 마음에 소망이 넘치게 됩니다.  :19

 

▲하박국이 말하는 '부흥'

그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간구합니다. :2

여기서 하박국 선지자가 구하는 ‘주의 일’이란 
남유다의 심판과, 그 심판의 도구였던 갈대아 사람들의 멸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부흥과 연관될 수 있는지 언뜻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말하는 부흥은 
단순히 남 유다가 번성하고 번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바르게 세워지는 것을 뜻했습니다. 

그래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라고 간구한 내용과 연결하면,
심판 속에도 ‘남은 자’를 허락하심으로, 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정화되어지고 
회복되어질 것을 간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부흥을 논할 때 
단순한 수적인 증가나 교회 건축을 이야기하는 경우들을 봅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에서 부흥을 위한 기도를 보면 
이스라엘의 번성이 아니라 회개와 회복을 통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 단락 추천설교>
3:1~16 주의 일을 다시 새롭게 하소서 

3:1~9 공의 후에 부흥 온다

3:2 부흥의  파도를 소망하라

 

◑2. 구원의 용사되신 하나님을 찬양  (3-15절)

이 단락은, 이스라엘 역사가운데 일하신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를 
노래로 표현한 것입니다. 
특히 출애굽과 시내산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을 노래합니다. 주1)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왜 하박국 선지자가 과거의 이야기를 들고 와서 
회상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지 궁금해지게 됩니다.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던 요시야 왕의 죽음 이후 
나라들 간에도 개인 간에도 하나님의 심판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이 보이며 
또한 그것을 묵인하는 듯 보이는 하나님을 무능력하신 분, 
우리를 잊으신 분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는 다시금 격정적 리듬의 노래를 지어 부르며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일하신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을 기억하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외우기 어려운 것들은 노래로 지어 부르면 잘 기억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묵시를 판에 명백하게 새겨서,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도록 
곧 많은 사람에게 전할 수 있도록 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하고 2:2
하박국 선지자는 본문 3장의 노래를 만든 것입니다.

 

▲적용 "자기 관점을 버리고, 하나님의 관점을 갖게 된 하박국"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 두 가지를 질문 했습니다.

질문이라기 보다는 '불만 토로'에 더 가깝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신다면
어떻게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이렇게 쇠약해져 있는데
이렇게 짓밟힘을 당하고 있는데 가만히 계십니까?'

하나님은 하박국을 향해 대답을 주시는데
그 중에 이런 말씀도 있었습니다.

①"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합 2:4

믿음이란 것이 무엇인가요?
모든 일이 잘되고, 할렐루야 할 때는 진정한 믿음을 알 수 없습니다.

여기서 믿음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질문이 있을지라도, 의문 중에도 순종하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죽이실 지라도 내가 부활하여 주님을 찬양하리라.

나를 하나님께서 쓰러뜨릴지라도, 치실지라도
내가 그래도 주님을 무조건 신뢰하리라. - 이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②한 가지 더 매우 희한한, 의외의 말씀을 하시는데,

종종 하나님은 "동문서답" 식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박국은 '왜 이런 일이 있습니까, 왜 이런 회의가 있습니까?
대답해주세요. 속 시원하게 말씀 좀 해주세요.'

그 때 하나님의 대답은 바로 이랬습니다.
'물이 바다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땅에 가득하리라' 합2:14

하나님은 뜻밖에도 '동문서답' 식으로 대답하십니다.
무슨 뜻인가요?

'하박국아!, 그리고 내 백성들은 나를 너희 세계에 개입시키려고 하는데,
나는 너희를 궁극적으로 나의 세계에 편입시키려고 한다.

너희 생활환경의 관심에 나를 끌어들임보다,

반대로 내 관심(세계 복음화)에 너희들이 참여하라!'

 

지금 하나님의 역사 운행 방향은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온 땅에 가득하리라.
그 날이 장차 올 것이다.' 이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박국은, 근시안이라서, 그런 하나님의 계획과 비전은 전혀 못 보고
대신에 자기 관심사, 자기 눈앞에 보이는 현실.. 그것으로 일희일비 하고 있었죠.
사도행전의 말씀이 생각합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온 땅에 가득하리라.' 행1:6~7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기 전까지 하박국은 "자기 관점"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불평불만이 많았던 겁니다.

 

그러나 계시를 받은 후에는 "하나님의 관점"을 갖게 되었어요.

그러니 합3장에서, 1~2장과는 분위기가 싹 달라지는 것입니다.

거의 찬송하는 분위기로 하박국은 돌변했습니다. 

 

초년병 사역자는, 사역 중에 난관이나 문제를 만나면

일단 하나님께 원망이나, 하소연부터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시험들었다'고 합니다.

 

경험 있는 사역자는, 똑같은 난관이나 문제를 만나면, 하나님의 뜻부터 찾습니다.

- 내가 겸손하라는 뜻인가?

- 내가 회개해야 될 문제가 혹시 있는가?

- 더 기도하라고, 지금 금식하라고 이런 난관을 주시나 보다

- 내 조급한 성품을, 주님은 다루시는가 보다...

 

뭐 이렇게, 그 아래 감추어진 하나님의 뜻, 쉽게 드러나지 않는 이면적 섭리를 찾죠.

그래서 민감하게 찾다 보면, 하나님이 난관이나 문제를 주시는 섭리를

반드시 발견하게 됩니다. 결국은 그게 자기에게 유익이었다고.. 나중에 고백하죠! 

그런 난관이나 훼방 없이 만약에 순적하게 일이 되었더라면.. 큰 일 날뻔 했죠!

 


◑3.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   (16-19절)

 

하박국 선지자는 찬양을 마치고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믿음의 고백을 주께 드립니다.

16절,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서 자신들을 공격해올 
갈대아 사람들을 생각하며 두려움에 찼습니다. 
그 고통은 창자가 흔들리며 뼈가 썩는 것 같은 육신의 아픔이었습니다. 
심각한 공포와 스트레스로 인해 몸이 녹는 듯 했습니다.

17-18절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민족의 심판과 찾아온 기근과 환난 속에 아무것도 기뻐할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상황이 찾아올 때, 하박국 선지자는 기뻐하겠다고 고백합니다. 
그 기쁨은 바로 ‘여호와 곧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입니다.

만약 하박국 선지자가 단순한 민족주의자였거나 
개인의 안락을 목표로 삼았다면 좌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고 
하나님께서 이 고난과 심판의 때를 지나 회복과 부흥의 때를 
이루어 가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사는 의인의 모습입니다.  2:4

믿음으로 사는 의인은 눈앞에 찾아온 고통과 고난 속에서도, 
때로는 알 수 없는 부조리한 세상의 혼란스러움 속에서도 
성전에 좌정하사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께서 이 땅가운데 공의와 정의를 이루어가시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실 것을 소망하며 자신의 삶을 주님께 드립니다.   -이 단락 출처, 정리-


<이 단락 추천 설교>

3:16~19 한 차원 더 높은 감사를

3:16~19 오래된 볶음김치

3:17~19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소서

3:17~19   하나님 갈망이 너무 약한 시대

 

 

..........................................

주1) 
3절의 데만은 에돔 땅이고 바란 산은 출애굽 후 이스라엘 백성이 지난 
바란 광야를 의미합니다. 
거기서 하나님께서 현현하셔서 직접 나타나셨던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4절에 광명과 광선은 출애굽기 19장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과 연기와 
불 가운데 임하셨던 여호와 하나님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5절에 역병과 불덩이는 출애굽 시에 애굽의 백성들에게 내리셨던 역병과 
우박과 불덩이 재앙을 기억하게 합니다.

8~10절은 홍해와 요단강과 나일강에 행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냅니다.
말을 타고 병거를 모는 강한 용사로 하나님을 표현하고 있으며 
강과 바다를 향하여 활을 쏘는 모습을 통해 홍해와 요단강을 가르시고 
또한 나일강을 피로 물들이셨던 하나님의 위대하신 일들을 기억하게 합니다.

11절은, 용사는 멈추지 않고 화살을 쏘았고 창을 던졌는데 
해와 달은 마치 창과 화살을 맞고 그 자리에 쓰러져 멈춰버린 
사냥감같이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이것은 여호수아 10장에서 이스라엘이 아모리 사람과 싸울 때에 
초자연적 방법으로 해가 지지 않게 도와주신 사건을 의미합니다. 

이어서 나오는 12절에서 15절의 내용에도 하나님의 대적자들을 
용사같이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석 ...............................................................................

△2절
'이 수년 내에...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현실적인 낙망과 심판에 처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하는 것으로
여기서 이스라엘의 현재 상태는 '진노'나 '혼란'에 처할 정도로 
영적인 죽음 상태임을 잘 나타내며, 현실적인 죄를 드러내어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리라는 사실을 강하게 시사한다.

△3절
'하나님이 데만...바란산에서부터 오시도다(셀라)' 
본절에서 이런 지명을 언급하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생활할 때 
70인 장로에게 하나님의 신을 부어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현현하셨던 장소
이기도 했기 때문이다(민 11:16,17). 

△4절
'그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 손에서 나오니' 
'광선'은 '광명'과 함께 하나님의 현현으로 인한 광채를 묘사한다. 
이러한 표현은 시내 산에서의 하나님의 현현과 
그 이후 하나님의 현현을 특징지어 주는 것으로, 
그것은 화려함을 나타낸다기보다는 경외로움을 나타내며, 심판을 예상하게 한다.

'그 권능이 그 속에 감취었도다' 
즉 하나님의 권능이 노골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하나님의 실제적인 본질은 감추인 채 상징적으로 그 능력이 표출됨을 보여준다. 

실상 하나님의 본질이 나타나면 그 앞에 설 만한 피조물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본질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겔 1:1-28).

△5절
앞 구절에 이어 하나님의 임재와 함께 심판의 권능을 보여준다. 
'온역'과 '불덩이'는 거의 하나님의 주권과 심판의 직접적인 결과를 말한다.

△6절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며'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심판하신다는 의미이다. 

'영원한 산이 무너지며...예로부터 그러하시도다' 
'영원한 산'과 '무궁한 작은 산(언덕)'은 지상에서는 위엄과 영원성과 
안전성의 상징들이지만(창 49:26,  신 33:15)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여기서는 영원하고 무궁한 하나님을 크게 두각시키기 위해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였다.

△7절
'내가 본즉 구산의 장막이 환난을 당하고 미디안 땅의 휘장이 흔들리로다' 
'구산'은 메소포타미아의 왕이었던 '구산 리사다임'을 가리키며, 
'미디안'은 이스라엘을 대적했던 족속을 가리킨다. 

이 둘은 서로 관계있는 민족이거나 동일한 민족일지도 모른다. 
구산과 미디안은 이스라엘 백성을 압제하고 괴롭히기도 했지만, 
이스라엘 사사 옷니엘(삿 3:8-11)과 기드온에 의해 각각 패하고 말았다. 

또한 3절부터 본절에 나오는 지명들(데만, 바란, 구산, 미디안)은 
끝음절이 모두 '안'으로 끝나고 있어서 운율의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본절이 한 단위로 구성되어 있음을 잘 보여준다. 

△8절
앞 구절들(3-7절)이 하나로 이어지는 구조를 가지므로 
자연스럽게 본절은 새로운 단락이 시작되는 부분임을 알 수 있다.

'여호와여 주께서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 
이는 하나님의 위엄스러운 모습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주도하신 역사적인 사실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나오는 군사적인 이미지는 다음 절에도 계속 이어져 사상적인 통일성을 보여준다.

△9절
'주께서 하수들로 땅을 쪼개셨나이다' 
본절은 '주께서 땅에 있는 하수들을 갈라 놓으셨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여기서 '하수들'은 출애굽 사건과 관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더욱이 '쪼개셨나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트바카'는 피엘 동사 미완료형으로 
홍해를 가른 사건을 언급하면서 사용된 동사이다.

△10절
본절은 사용된 용어들이 시편 77:16-18과 어느 정도 일치하며, 
그 내용은 자연계 전체가 흔들리는 우주적인 격변을 통해 
새로운 창조와 구원을 창출하는 하나님의 역동적인 모습을 묘사한다. 

이런 하나님의 모습은 경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권능으로 
홍해를 가르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시킨 사건에 빗대어 
우주적인 구원 사역을 웅장하게 드러낸다.

△11절
'주의 날으는 살의 빛과...그 처소에 멈추었나이다' 
본절은 하늘의 광명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빛을 잃어버린 상태를 가리킨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마저 멈추어 버렸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런 만큼 하나님의 심판은 완벽하면서도 반드시 시행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종말에 있을 여호와의 날에 구체적으로 실현될 심판은 
일관되게 어두움으로 특징지워진다.

△12절
앞절(11절)에 이어 여호와가 심판하실 모습을 '진노'라는 주제를 두각시키면서 
개괄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지금까지 언급된 군사적인 이미지(8,9,11절)를 축약하여 보여준다.

△13절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본 구절의 강조점은 주의 백성과 
그 백성을 대표하는 '기름받은 자'를 구원하는 것에 있다. 

여기서 '기름 받은 자'가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가리킬 수도 있고(사 28:8,9), 
한 왕이나, 
대제사장, 
혹은 선지자(대상16:22,  시105:15)등 지도자 계층을 가리킬 수도 있다. 

여기서는 줄곧 출애굽 사건을 묘사하는 문맥이므로 
특별히 모세 한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용어가 심판과 구원이라는 뉘앙스를 담고 있는 점으로 비추어 본다면
이러한 표현으로 당시의 통치자를 표현하면서 
동시에 고난과 영광의 메시야를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악인의 집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끝까지 드러내셨나이다(셀라)' 
'악인의 집머리'의 '머리'란 지도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원수된 자들의 지도자인 바벨론의 왕을 가리킨다. 

나아가서 종말론적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모든 원수를 의미한다.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원수들이 완벽하게 진멸하게 될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다.

△14절
'그들이 회리바람처럼...삼키기를 즐거워하니' 
이스라엘의 원수들이 가진 성향을 나타내는 것으로 
본 구절의 용어 '회리바람', '삼키다', '즐거워하다'라는 표현은 
앞에서 묘사했던 바벨론의 약탈 장면을 연출한다(1:8,9,11,13-17,  2:5). 
즉 앞에서 이미 언급된 원수들의 실상을 간략하게 시적으로 축약하여 읊는 것이다.

'오직 주께서 그들의 전사의 머리를 그들의 창으로 찌르셨나이다' 
'머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로쉬'는 지도자를 의미하기도 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손에 있는 무기로 멸망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실제로 바벨론은 아무리 저항도 하지 못하고 고레스에게 멸망당하고 말았다.

△15절
본절에서는 8절에서 이미 사용된 언어들을 그대로 사용하여 
의도적으로 연관성을 보여준다. 이로써 8-15절을 하나의 큰 삽입 구절로 묶어주고, 
여기서 제시되는 역사적인 상황을 설정해 준다.

△16절
'내가 들었으므로...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본절은 하박국이 몹시 두려워 떠는 모습을 묘사한다. 

이는 하박국이 갈대아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심판에 
앞서 닥치게 될 환난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체험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홀로 이스라엘 백성을 압제와 고통으로부터 
효과적으로 구원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함축한다. 

더욱이 하박국은 '무리가 치러 올라오는' 모습을 목도하면서 
큰 고통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1:5). 

여기서 주목되는 사실은 하박국 선지자가 극도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견디며 기다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18,19절,  1:12,  2:2-4). 
이는 그러한 일들을 정하신 하나님을 위해 조용히 참고 관망하는 믿음의 위대성을 근거한다.

△17절
본절은 앞에서 암시된 하박국의 위대한 신앙이 시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이런 표현은 이스라엘의 농경 생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하박국은 생존권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를 열거한다. 
이스라엘에게 황폐한 경제 현실에 직면한 모습을 묘사하여 
하박국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숭고함과 가치를 묘사하고자 하였다.

△18절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앞절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하박국이 소유한 신앙의 진수를 풍성하게 나타낸다. 

하박국이 생존권이 박탈될 정도의 현실적인 위기에 빠져서라도 
하나님을 향한 확고한 신앙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19절
본절은 하나님의 힘이 강조되는 것으로 보아 시편 18편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으며, 
내용상으로도 평행을 이룬다. 여기서 보여주는 메시지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환경에 개의치 않고 하나님을 섬기며 그를 기뻐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영장'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나체아흐'는 성전 예배에서 음악을 담당하는 
레위인과 관련되어 사용되었다(대상 15:21,  23:5). 
이러한 전통은 이스라엘의 성전에서 오랫동안 전해진 것으로 
성령에 감동된 왕도 성전에서 수금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곤 했다(사 38:20). 
특별히 '수금'이란 용어는 하박국의 시가 음악에 맞추어 
공적으로 불려지던 것임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