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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선교, 마요한 목사 P1

LNCK 2022. 11. 14. 16:11

[북한선교] 마요한 목사님 1편  - YouTube

 

◈북한선교, 마요한 목사 P1                       <북한, 통일



*진행 : 김북한 목사 (괄호, 검은색 글자)

*출연 : 마요한 목사 (괄호 없음, 파란색 글자)

 

 

(오늘은 새희망나루교회 마요한 목사님 모시고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마 목사님, 이렇게 나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를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보통 탈북민 목사님들은, 옛날에 있었던 일들을 
나와서 인터뷰하라면, 잘 안 꺼내놔요. 마목사님도 잘 꺼내놓지 않으시잖아요) 

제가 별로 나눌 게 없어서 그렇지요...

(몇 년도에 탈북하셨나요?)

네, 저는 1998년도에 탈북했습니다.
그때가 대량 탈북이 시작될 때인데, 
북한에서 나올 때, 저희 부모님들께, (탈북한다고) 얘기를 할 수가 없었지요. 

'황해도 그쪽 지역에 돈 벌러 간다, 장사 하러 간다'고 
이렇게 둘러대고 말하고서 강을 넘었지요. 

중국에 들어와서, 한 두 달 정도는 아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신세지다가
그 다음 일이 막막해 지더라고요. 

그때 같은 탈북민 친구가 나한테 이런 말을 제게 했어요. 
'남조선에서 온 목사들이 있다는데, 거기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더라' 

제 마음이 찜찜했지요. 우리는 북한에서 오래동안 교육 받았잖아요. 
'선교사들은 미제국주의 앞잡이고...' 

그리고 제가 역사 교사를 했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너무 잘 아니까 찜찜했던거죠.
그렇지만, 그때 제게 어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에 거기로 간 거예요. 

 

갔더니 조선족 전도사님이 '공부 할 생각이 없느냐?' 하더라고요. 
'무슨 공부냐?' 하니까 
성경공부 라는 거예요. 

(북한에서 엘리트로 나왔으니까 아마 공부를 권유했을 거예요.) 

제가 지금 신분도 불안한데, 학교를 간다는 게 너무 뜻밖이었어요.
신학교 같은 거라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북한에서 교사를 했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한 것은 상식적으로 좀 알고 있었거든요. 

근데 항상 제 마음에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있었어요. 
'기독교가 나쁘다. 그리고 제국주의의 길잡이다. 도구다.' 이렇게 말하는데 
성경 비진리 라고 선전하면서도, 성경 내용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거예요. 

성경이 왜 나쁜지, 왜 선교사가 제국주의의 앞잡이 인지... 
이거에 대해서 어떤 근거를 보여 줘야 되는데, 그걸 보여 주지 않았어요. 

그때 전도사님으로부터 그 제안을 받는 순간 
갑자기 제 마음에 소원이 생겼어요. '아~ 성경을 한 번 읽어보고싶다'

그래서 갔더니 거기가 사역장이었어요. '성경 100독반!' 
제가 상상하던 학교가 아니었어요. 

(성경 지하 통독반이었네요!)     *지하는 여기서 몰래 한다는 뜻

(아마 연변에서) 기차 타고 길림 시까지 갔는데 
밤12시 넘어서 사역장으로 들어갔어요.

저는 어떤 학교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반 아파트였어요. 
한 7층 정도 되는 아파트였는데, 승강기가 없는 계단으로 5층까지 올라가더니 
깜깜해서 볼 수가 없었어요. 일단 거기서 자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보니까 거기가 (성경통독) 학교였어요. 하하하!

놀라운 것은, 거기에 탈북자 형제들이 있는 거예요.
제 마음이 굉장히 실망했어요. (저는 진짜 학교인줄로 알고 왔거든요.)
학생들도 몇 명밖에 없었어요.

탈북자 형제들이 대여섯 명 되고, 
거기에 남한에서 오신 선교사님들이 한 3분 정도 계시더라고요.

그때 제가 처음으로 남한 분들을 봤어요.
굉장히 긴장하고 어떤 벽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굉장히 마음이 편안하고 '이 분들도 우리가 다름없는 같은 조선 사람이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돌아갈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이왕 온 김에, 성경을 한번 읽어보고 가자'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보니까 오디오를 가지고 성경통독을 하는데 
오디오를 1.6배속인가 너무 빠르게 틀어가지고, 
못 알아 듣는 데다가, 이 성경 문구가 너무 낯설고
이해도 안 되고 하니까, 아무 것도 안 보이더라고요!

그 즈음에, 제 친구가 감기처럼 며칠 동안 계속 아픈 거예요.
그러자 (중국어가 되는) 조선족 형제가 그를 데리고 병원에 갔어요.

그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나머지 형제들 몇 명이 간병 겸 병실에 같이 있었어요.
그 아픈 형제는, 나를 여기까지 인도해 온 형제였거든요.

근데 그 날 밤에 병원에서 사망했어요.
근데 사망하기 전에, 선교사님 보고 신앙고백을 하고 싶다고
그래서 제가 곁에서 지켜보니까

선교사님을 따라서 영접기도를 다 하고
그 다음에 '나는 이제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다. 무섭지 않다.
왜냐면 내가 죽어도 예수님 곁에 가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는다!'
이런 고백을 하더라고요.

그 친구가, 예수님을 그렇게 알고, 그렇게 믿고 있었다는 게
제게는 너무 놀라움이었어요. '그럴 친구가 아닌데...'
망나니같아 보인 친구였거든요.

제가 그 병실 침대 옆에서 자다가 새벽에 일어나니까
의사들이 들어와서 사망했다는 거예요. 너무 놀랐죠!

저는, 제가 이국(중국) 땅에 와서 그래도 의지하던 친구가
갑자기 사망하니까, 이게 뭐 말로 표현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슬퍼하며 있는데...

길림 시에 있는 교회분들이 와서 기도를 하는 거예요.
이 돌아가신 친구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분들이
와서 울면서 기도하는 거예요!

근데 저는 그게 이해가 안 됐어요.
'우리를 뭘 안다고? 전혀 일면식도 없는 사이인데...'

근데 거기서 약간 제 마음 속에 질문이 생겼어요.
'당신들이 무슨 슬픈 일이 있어서 울면서 이렇게 기도하느냐?'

그 눈물이 가짜 눈물이 아니었어요. 진실된 눈물인데...
'아! 기독교 라는 것이, 내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것하고는 다르구나...'

그때까지 아직 제 마음에는
'신이 살아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아직 통독반에 들어온지 며칠밖에 안 됐잖아요.

'아니, 이 20세기의 이 환한 대낮에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하면 그걸 누가 믿나?' 
 
북한처럼 이렇게 폐쇄된 사회도 아니고,
남한이나 중국처럼 다 열린 사회에서
그걸 믿는다는게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제 생각에는.

'이분들은 (우는 것은) 다 쑈구나! 
이것도 하나의 직업인가 보다...
돈을 벌기 위한 직입이기 때문에, 믿는 척 하는가보다!'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옆에 있는 선교사님도 그런 사람이라고 본 거예요.
그런데 갑자기 이분들이 진심으로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니까,

(아~ 거기서 기독교 신앙의 진정성, 진실함을 느끼신 거군요!)

네, '아, 아게 쑈도 아니고, 어떻게 저럴 수 있지?'
하고 거기서 내가 뭔가 마음이 이상했어요. 처음으로 흔들린 거죠!

이제 나를 여기 길림 통독반에 데려온 친구도 사망했지...
해서 '나는 떠나겠다!' 하고 마음 먹었는데

선교사님이 '형제, 마음이 힘들기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나도 너무 힘들다!'
하더라고요.

내가 볼 때는, 별로 힘들 것 같지 않는데,
죽은 친구와 나를 만난지 며칠이나 됐다고...
그런데 진짜로 힘들어 하더라고요.

'떠나더라도 좀 더 있다가 안정되고 떠나면 안 되겠냐?' 이러는 거예요. *당시32세 가량

그래서 일단 남았죠. 딱히 갈 데도 없없고요.
그러니 아침에 일어나면 말씀, 큐티 하는 거예요. 사역장 일과를 따르는 거죠.

성경이 그전에는 무엇인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더니
그때 보니까 무슨 역사 이야기 같았어요. (*성경에 역사도 나오죠)
그러니 이게 이해 안 될 게 없는 거예요.

길림시에 송화강이 흐르고 있어요. 
거기를 거닐면서 제가 선교사님에게 계속 질문했죠.

제 목적은, 선교사님이 하나님을 진짜로 믿지 않지만, 
직업상 어쩔 수 없이 믿는 체하는 그것을.. 
그 본심과 속 마음을, 좀 직접 은밀하게 개인적으로 들어보고 싶은 거예요. 

(저 분이 직업상 믿는 체 하는 거지.. 솔직한 그의 속 마음을 들어보고 싶었던 거죠.)

근데 이분의 말을 들어보니까, 하나님을 진짜로 믿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성경의 허구'에 대해서
선교사님의 인정을 받아내려고
성경을 읽으면서도 계속 질문했어요.

창세기, 출애굽기에 기적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불신자의 눈으로 보면, 다들 말도 안 되는 얘기지요.
그런 것만 계속 제가 질문했어요.

'이걸 진짜로 믿느냐? 이게 가능하냐? 어떻게 과학적으로 증명하느냐?'
그런 것만 계속 질문했어요. 말이 안 되는 얘기라는 거죠.

그때 제가 시원한 대답은 못 들었던 것 같아요.
믿음의 눈이 아니고는, 세상 관점으로 시원하게 대답할 수도 없는 문제들이었죠.

그런데도 제가 신기한 것은,
그 분은 성경을 다 믿는 것 같았어요.

어쨌든 그런 비판적인 시각을 제가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래도 성경은 끝까지 한 번은 읽어봐야겠다' 하는 마음으로 읽어가는데

고린도전서13장, 사랑장, 이게 너무 좋은 거예요. 제 마음에 와 닿았어요.

그러면서 '왜 북한에서 이걸 그렇게 나쁘다고 했을까?'
그때부터 그런 질문이 생기는 거예요.

신이 살아있고/ 살아있지 않고는 중요한 게 아니고
이게 (성경이) 도덕적으로나, 어떤 윤리적으로나
너무 좋은 말씀인 거예요.
그래도 아직 믿어지지는 않았어요.

 

그 즈음에 갑자기 공안이 저희들을 포착한 거예요.
누군가 신고한 거죠.
토요일에 축구하고 딱 들어왔는데,
공안들이 뒤따라 들어와서 문을 두드렸어요.

와, 그 순간에 얼어붙는 것 같았어요.
거기 있는 다른 탈북자들도 다 마찬가지였죠.

거기가 아파트 5층이니까, 베란다에서 뛰어내리지도 못 하고
그래서 막 사람들이 어디 숨을 곳을 찾아 숨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 아파트는, 아무 것도 없는 시멘트 바닥 같은데 
대충 비닐장판을 깔고서 방으로 썼고,  (*중국에는 기본 시설을 세입자가 함)
주방도 식탁을 하나 놓고, 그 위에 비닐을 하나 덮어씌워놨죠.

갑자기 다들 얼어붙었다가, 저는 얼른 그 비닐 식탁보 밑으로 들어갔어요. *1998
공안들이 다른 사람들은 다 체포해서 나가고, 
저는 식탁 비닐 아래 숨어 있는데, 공안의 검은 구두가 바로 내 눈앞에 보였죠.

저는 숨소리도 못 내고 거기 쪼그리고 앉아 있었는데,
공안이 그 식탁보를 당연히 들춰서 볼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안 들춰보더라고요.

반대쪽으로는 베란다가 있었는데,
공안이 베란다에 나가서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저는 식탁보 비닐을 통해서, 공안의 얼굴이 다 보이는데,
그 공안은 이쪽을 쳐다보면서도, 아마 제가 안 보였나 봐요.
아마 비닐이 번쩍거려서, 안에서는 밖이 보이는데, 밖에선 안이 안보였나 봐요.

이 방 저 방 다 열어보고, 벽장도 다 열어보면서도
식탁보는 안 들춰본 거죠.

그래서 선교사님도 붙잡혀 가고, 탈북자들도 다 붙잡혀 가고
제 혼자 사역장 아파트에 남은 거예요.      

그때 제 마음이 굉장히 이상하더라고요.
나만 살아서 기쁠 줄 알았는데

나는 공안들이 떠난 다음에, 아파트 옥상으로 뛰어올라갔어요.
그랬는데 제 마음에 굉장히 막 외로움 같은 쓸쓸함.. 고독함..

그리고 또 뭔가 내가 다른 사람들을 배신한 것 같은
그런 마음이 드는 거에요.
남들은 다 잡혀갔는데, 혼자 붙잡히지 않은데서 오는 죄책감 같은 거였죠.

그래서 한 30분 동안, 거기 앉아서 기도하게 되더라고요.
진심어린 기도를 난생 제가 거기서 처음 하게 된 거죠.

나는 아직 주님을 완전히 믿지도 않는데.. 의심 반, 진심 반 하던 때였죠.
그래서 기도를 하는데.. 죄책감이 막 밀려오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저렇게 어려움을 당하는데.. 나 혼자만 빠졌다...'하는 죄책감!

뭔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도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옥상에서 다시 그 5층 사역장으로 내러갔어요.
공안들이 다시 들어오기를 기다렸어요.

한참 기다렸는데, 공안들이 조사할 게 있었는지 다시 들어왔어요. 
저를 보더니 깜짝 놀라는 거예요.
'너는 아까 없었는데, 어디에 있었느냐?'라고 묻기에

'내가 숨어 있었다'고 말하기가 부끄러워서
집 밖에 있다가 방금 들어왔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저도 붙잡혀서, 다함께 길림시 공안국(경찰서)에 갔어요.

그러니 어떤 죄책감 때문에, 제가 스스로 잡혀간 셈이지요.
차라리 나도 같이 잡히는 게, 마음이 홀가분할 것 같았어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게 아마 하나님이 주신 마음인 것 같아요...

보통 사람 마음 같으면.. 그냥 도망칠 기회가 있으면, 도망하는게 정상이거든요.
여기 중국에서 붙잡혀서 북한으로 넘겨지면 끝인데... 도망가는게 당연하거든요.

그러니까 공안국에 먼저 잡혀 온 사람들이, 
제가 들어가니까 놀라는 거예요.
'아니, 왜 도망치지 않고 잡혀 왔느냐?'는 식으로 뭐라고 말을 하더라고요.

근데 그때 제 마음은 굉장히 홀가분하고, 하나도 두렵지 않고...
그런 마음이더라고요.

이제 우리는 거기에 모여 앉아서, 울면서 막 기도한 거예요.

그리고 조사를 바로 받는데, 
길림 시에 그때까지는 탈북자들이 아직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렇죠. 1998년도 즈음에는 아직 연변 쪽에 탈북민들이 주로 머물렀죠)

'어디서 왔냐?'
'연변에서 왔다'

'연변 어디서 사냐?'
'연변 화룡 어디, 두만강 근처에서 산다'

근데 우리가 다 중국말을 모르는 거예요.
그때는 공안이 그거에 대해서 별로 의심을 안 하더라고요. 
연변의 조선족인줄로 아는 거죠. (그때 당시에 탈북자들의 대량 탈출 초기라서
설마 북한에서 넘어온 사람들인줄 상상을 못했던 거죠)

그때는 조선족 중에도, 중국말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어요.
공안들이 그걸 믿은 거예요.

그리고 남한 선교사님들에게는 벌금을 부과하고 (*원래 이게 목적이었을 것임)
우리는 잡고 있어봤자... 그래서 우리를 사역장에 다시 돌려보냈는데

결국은 우리 짐은 다 몰수당하고,
선교사님들은 중국돈으로 벌금을 많이 내고
그리고 길림시에서 추방하는 조건으로 풀려났어요.

우리가 풀려나서 '하북성 친항도' 라는 곳에 갔어요.    *아마 가명
그 사건을 통해서, 제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했어요.
그래서 사역장에 계속 남아있게 된 거죠.

그때 사역장에서 한 달에 한 번 '3일 금식'을 했어요.
의무적으로!
저는 그게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3일금식 들어가기 전에, 몰래 밖에 나가서
음식을 사다가 가방에 숨겨둔다든지.. 그리고 밤에 몰래 먹는 거죠.
그리고 낮에는 금식을 하고...

근데 선교사님만 진짜 금식을 하고 있는 거예요.

아 그런데 이게 하나님께 대한 어떤 신뢰들이 쌓이고
어떤 믿음이 조금씩 생기면서
그렇게 가짜 금식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제일 먼저 오더라고요.

그래서 3일금식 기간이 아닌데, 제가 처음으로 자원해서
진짜 금식을 한 거예요.

제가 금식을 하는데, 너무 기쁘더라고요.
그래서 막 회개하면서 금식하는데.. '아, 이게 믿음이구나!'

근데 그때 제가 깨달은 부분이 있었어요.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시는구나!' 하고...

그게 뭐냐면, 
북한에서는 30년 동안 학교에서부터 사회에 이르기까지
계속 주입식 세뇌교육을 받으면서도
그 사상이 나를 붙잡지 못하고, 오래 전에 다 허물어졌어요.
그 사상이 가짜이기 때문에, 30년 동안 배웠으나 허물어지고 말았던 거죠. 

그런데 신앙은, 누가 믿으라고 강제한 적이 없어요.
오히려 내가 믿지 않으려고, 스스로 신앙을 계속 처음에는 밀어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제가 믿고 있더라는 거지요!
그걸 보고서 '아! 이게 이상하다.
믿으라고, 진짜라고! 수 십년 동안 교육받았던 것은
그게 진실이 아니기 때문에 무너지는데,

이것은 안 믿겠다고 계속 밀어내고 했는데도
제가 믿는 거예요!'

제가 거기서 소름이 끼치더라고요.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아~ 진짜 하나님이 역사하신 일이네요!)

네, 그때부터 더 열심히 성경 통독을 했어요.
그래서 남들이 다 쉴 때는 저는 성경을 천천히 한 장, 한 장 묵상했어요,
창세기부터...
성경이 깨달아지는데, 너무 기쁘더라고요.

(그렇죠, 즐겁죠!)

너무 즐거웠고, 그때 제가
'아~ 하나님의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다는 게 이런 거구나!'
그 진리를 깨달아가는 기쁨이 얼마나 컸던지요!

그때 하나님이 주신 역사들도 일어났어요.
저희 멤버들 중에 당장 수술을 받아야 되는데
우리가 금식기도 했는데
담석증의 콩알만한 돌이, 수술을 받아야 된다는데, 그냥 떨어져 없어졌어요.

그리고 계속 공안들이 검열(호구조사) 할 때
그 위험한 고비들이 많은데, 그때마다 계속 지켜주시고
이런 체험들이 너무 많다 보니까, 완전히 확실한 믿음이 생기는 거죠.

창세기, 출애굽기의 기적들, 그리고 복음서들에 나오는 그 기적들이
처음에는 너무 이해되지 않더니
이제는 그냥 덮어놓고 믿어지는 거예요. 너무 단순한 거예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신데, 그게 무슨 대단하다고...'
너무 간단한 것을... 그게 딱 믿어지더라고요.

▲그러다가 제가 사역장을 맡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중국에서부터 탈북민 사역을 하셨네요)  *최광 선교사와 다른 그룹

네, 제가 사역을 맡아서 하다가, 하북성에 가니까
'친항도'는 해변도시였어요. 환경이 너무 좋고...    *아마 가명

우리가 토요일이면 바닷가에 가서 거기서 큰 소리로 기도할 수 있는
너무 좋은, 거기는 안전한 곳이었어요.

저는 연변이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저는, 북한과 멀리멀리 떨어지기를 원했어요.

그런데 기도하는데, 어느 때인가 하나님이
저보고 '연변에 나가라'는 마음을 주시는 거예요.

지금까지 훈련하고 했던 것이 북한을 위한 것이고,
너희 동족을 위한 것이지, 
그들을 피해서 멀리멀리 안전한 곳으로 가서, 거기서 살라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연변은 북한의 앞마당이잖아요.
북한 탈북민들은 연변에 나오면, 
할 수 있으면 연변을 빨리 도망치고 싶어하지요. 너무 위험하니까요!)

맞아요, 저도 과거에 그 마음이 너무 간절했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느 때부턴가 그 마음을 주시는 거예요. 

저는 처음에는 자꾸 그걸 거부했지요.

(거기가 어디라고.. 제발로 거기 연변에 가겠어요?)

근데 기도할 때마다 계속 그 마음을 강하게 주셔서
그래서 제가 금식기도를 했지요.

기드온이 양털을 가지고 하나님을 시험했던 것처럼, 
'하나님, 제가 연변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가겠는데,
저는 갈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고...' 라고 기도했었어요.

'제가 3일 금식 기도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응답 안 되면, 주님의 뜻이 아니고
내가 환청을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금식기도를 시작했어요.

아, 그런데 진짜 소름 끼칠 만큼, 금식기도 이틀 되는 때에 다 응답됐어요!
모든 조건들이 다 응답된 거죠.

'이젠 빼도 박도 못하고, 가야만 되는 구나!'
저는 정말 거기로 가기 싫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연길로 가서, 1년 남짓 이렇게 성경통독 사역하고 있다가... 

(거기서 사역한다는 것은, 북한에 잡혀가겠다는 말이죠!)  *1999 or 2000년 상황

항상 긴장가운데 있었고, 될 수 있으면 나다니지 않고 조심했어요.
집안에서 성경통독하고, 훈련하고 있었는데...

그런 일이 닥칠 거라고는 생각을 안 했어요,
왜냐면 지금까지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너무 많은 은혜를 부어주셨으니까요!

 

(과거에 제가 통독 공부할 때 보니까,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들이
제일 먼저 잡혀가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공부할 때는 농담으로
'야, 이거 속도 조절하자! 너무 뜨거우면 잡혀간다' 그랬거든요? 진짜 그랬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그곳(연변)에서 어떻게 사역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드는데... 그때는 그런 (두려운) 생각이 없었어요.

그러면서 '만일 하나님이 북한에 문을 열어주시면
여기 연변에서 북한으로 그냥 뛰어 들어간다!' 이런 마음이었거든요.

그때 어떤 분들이 '아, 이제 당신은 한국에 가면 좋겠다!'
이런 제안도 제가 받았어요.
그러나 제가 그걸 스스로 거부했어요.

'지금 왜 한국에 가냐? 지금 때가 시급한데
여기서 훈련하다가 문이 열리면 북한에 바로 뛰어들어가야지!'

(제대로 미치셨네요! 하하하)

그러다가 잡혔지요.
잡힐 때도 그걸 뭐 처음에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 안 했어요. 

(안 무서웠나요?)

아니, 왜냐면 제가 계속 고난을 달라고 기도했었어요.

(와~ 죽으려고 작정을 하셨네요! 하하하)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제 모습이 어처구니가 없지요.
왜냐면 그때 제가 고난 달라고 기도한 게, 제가 신앙이 대단해서가 아니에요.

사실은 '야, 이거 같은 값이면 주님 앞에 크게 쓰임 받아야지!'
이런 야심이 제 속에 생긴 거예요.

그때는 그게 제가 뜨거운 신앙인줄 알았어요.
물론 신앙심도 있었는데, 그보다는 신앙으로 포장된 욕망의 %가 좀 더 많았죠.

제가 그 설명을 좀 하겠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을 보니까, 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은 거예요.
그래서 저는 '아~ 이 고난을 겪어야,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 받겠구나!' 생각 했죠.

'어차피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바에는, 크게 좀 쓰임 받아야지..' 
이런 욕심이 그때 제 속에 있었죠.

그런데 그 때는, 그것도 욕심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신앙'이라고 생각했었어요!

'사도바울처럼 좀 크게, 이름 좀 내고 쓰임 받자!' 막 이런 생각을 했었지요.
물론 신앙심도 있었는데, 그보다는 신앙으로 포장된 욕망의 %가 좀 더 많았죠.

(일종의 영웅주의 였네요!)

네, 그러면서 고난 달라고 제가 기도했었는데,
진짜 그게 왔었어요!

저는 중국변방부대가 연변에 들어와서 포위되어서 잡혔어요.  *국경수비대

 

(왜냐면 북한에서 모종의 지시를 했기 때문에, 그들이 온 거죠.
북한에서도 같이 협동 작전을 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용정의 변방부대에 가서, 탈북자들이 열 몇 명씩 한 감방에 막 있었는데,
저만 독방에 넣는 거예요. 그리고 취조하기 시작했는데

근데 '변방부대'도 아니고, '공안'도 아니고,
길림성에서 내려온 '성 안전국'이 저를 취조했어요.  (*한국의 안기부 같은 곳)

저는 그때까지 '왜 이럴까?' 하고 잘 몰랐어요.
이 사람들이 저를 취조를 해 보니까, 그냥 종교인인 거예요. *첩보원은 아니죠

(아마 그러면  '안기부 끄나풀이다' 라고
보위부에 허위 신고가 들어갔을 거예요)

저는 계속 기도했죠.
'아, 하나님이 뭔가 계획을 하신 게 있구나!'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기도했을 때, 옥터가 흔들리고...
저는 그때 그런 기적을 확신하고 있었어요!

'내가 고난을 달라고 기도했으니까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지만,
내가 넘지 못할 그런 시련은 주지 않으실 것이다.

여기서 이제 이렇게 독방에 갇혀 있다가
때가 되면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나를 여기서 뽑아내 주시고
이 고난을 거뜬히 통과하게 하실 것이다!'
저는 그것을 확신하고, 매일 찬양하고, 기도하고.. 독방이니까 자유롭게 했죠.

그러니까 중국 간수들이 CCTV로 저를 보고
'이상한 사람이 들어왔다고...'


아, 그런데 너무 시간이 긴 거예요.
20일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풀려날 기미가 안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더 참고 인내하자!' 하고 또 기도하는데.. 30일이 지나갔어요.
'왜 아직도 하나님이 역사를 안 하시지?'

('왜 기적적으로 감옥 문이 안 열리지?' 하신 거군요. 하하하)

35일이 됐는데도 아무 소식이 없는 거예요.
그때 제 나이가 33살이었어요.

'예수님도 33살에 고난을 당하셨고, 40일을 광야에서 시험을 당하셨는데,
하나님이 아마 40일만에 내게 기적을 일으시키려나보다..' 하고 막 기도하는데,

39일이 됐는데, 불안해지는 거예요.
그때 간수 소장이 저를 불러내더라고요.

'뭔가 새로운 소식이 있나?' 하고 나갔는데,
"너는 내일 북한에 북송된다!" 
갑자기 제가 어안이 벙벙해지는 거예요!

막 이게 뭐랄까...

(충만했다가.. 확 허무해지는 느낌?)

그래서 독방에 돌아와서 누웠는데, 잠이 안 오더라고요.
'아, 이거 하나님이 너무 아슬아슬하게 이렇게 하시는 것 같네요..'

'이거 내일 가다가 탈출시키려고 그러시나?'
막 이렇게 제 나름대로 오만 생각이 다 드는 거죠.

아 그런데 그날 밤에 잠이 안 오는 거예요.
한 잠도 못 잔 거예요. 불안해진 거죠!

'아니, 하나님 제게 왜 이러십니까?'
막 그때는 확신에 찬 기도가 아니고, 
뭔가 하나님께 불만스런 기도가 막 나오고, 잠이 안 오고...

근데 제가 그때 '내 믿음이 이상한건가?' 라는 것들이 약간씩 감지 되더라고요.

(그때부터 기적주의, 열광주의, 기복주의 신앙.. 이런 게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거죠) 

드디어 40일째 되던 날, 아침에 딱 일어나니까
저를 나오라고 한 후에, 수갑하고 발에 족쇄를 채우더라고요.

그리고 보니까, 길림 성에서 무장 군인들 두 명이
저 때문에 내려왔더라고요.

(특별 호송 하는 거죠)

그리고 제 양쪽에 서서...
이런 건 내가 생각했던 게 아닌 거예요.

드디어 회령시 맞은 편까지 도착했죠.    *강 건너가 북한 회령시
'아, 이제는 넘어가야 되는구나!'
제 마음이 너무 힘들더라고요.

'저기 가면 죽는데... 하나님은 왜 나를 죽을 곳에 내놓으시나요?'
막 이런 불만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결국 북한으로 넘겨져서, 대낮에 회령시에서 족쇄를 차고 걸어가는데
사람들이 막 저를 보면서 손가락질을 하는데, 너무 슬픈 거예요.
제 모습이 너무 비참한 거예요.

근데 그 사람들이 다니는 걸 볼 때,
갑자기 시체들이 걸어다니는 것 같았어요.

영이 다 죽은 사람들! 아무런 소망이 없는 사람들!
그들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지는 거죠.

그러면서 '아~ 그래, 하나님이 이걸 보라고, 여기까지 허락했을 수도 있다!'
'더 극적인 상황들을 연출하시려고, 나를 여기까지 보냈을 수 있다'

그때까지 저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어요.

저기 중국 변방대 감옥에서 저를 내보내면, 너무 밋밋하잖아요.
그리고 내가 뭔가 하나님이 주신 고난을 체험했다고 말하려면, 
뭔가 멋있는 그림이 나와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더 극적 dramatic이고, 리얼한 장면을 연출하시려고
나를 지금 북한까지 보내셨다' 라고 저는 생각을 했지요.
그런 기대를 아직 버리지 않았어요.

(기대가 꽤 오래 갔었네요. 하하하)

마음이 불안하니까, 지푸라기 같은 기대감도 붙잡는 거죠! 사람 심리가!

(저는 서안에서 도문에 도착하는 순간, 기대를 다 접었거든요.  *도문은 국경도시
'아~ 나는 이제 죽는구나! 근데 목사님은 참 기대를 길게 가지셨네요! 하하하)

'내가 이제 남은 것은 죽는 길밖에 없구나!' 라고 생각을 하니까
너무 억울해서 자꾸 그런 기대를 가진 거예요!

 

그리고 거기 회령 보위부 감방에서 제가 취조를 받는데,
거기 북한에서 매일같이 잡혀 온 사람들이 많잖아요.

아~ 거기에 앉아 있는 제가 너무 비참하더라고요.
그리고 또 하나님이 어떻게 기적적인 역사를 일으키실지...
계속 마음으로는 소망을 놓지 않고 기도했어요.

그래서 여기 있다가 이제 조사를 받고
'아, 너는 별게 없어. 나가!' 이렇게 역사하실지...

계속 취조하고 들여보내고. 이렇게 보름동안!
아, 그래서 저는 더 기대했죠. '별 게 없으니까 곧 나가려나 보다!' 


그런데 14일째 되는 날에 청천벽력 같은 그런 일을 제가 경험하게 된 거예요.
보통 취조할 때처럼 나오라고 하더니
'너, 그냥 솔직하게 써라!'

제가 지금까지 쓴 거는, 탈북해서 간지 이제 한 두 달 밖에 안 되는 내용을
일상적인 내용만 썼더니  (성경공부 하고 사역했다는 내용을 안 씀)
그 다음부터 제게 막 폭력이 들어오는 거예요.

무릎을 꿇게 해서 앉히더니, 구둣발로 막 무릎을 밟고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그 옆에 있는 보위부원 보고, 내 자료를 가져오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무슨 자료지?' 하고 생각했는데

취조원이 '너에 대해서 몰라서 그런 줄 알아? 이 반역자 새끼!' 하면서
거기 자료에 있는 것을 읽어주는데, 제가 진짜 소름이 돋았어요!

중국에서 제가 만났던 사람들, 
그 어떤 모임에 갔던 일...
그리고 저도 잘 모르는.. 그냥 이름만 들었던 그런 분들에 관한 자료들도
거기에 다 적혀 있더라고요. 

(누가 연변에서 오래도록 따라다니면서, 매일 기록을 해서 자료를 넘겼네요.
소위 흥신활동을 누가 지속적으로 했었네요. 옆집이나 윗집에도 입주했을 것임)
 
그 순간에 제가 가지고 있던 그 일말의 기대!
하나님이 더 극적이고 리얼한 방법으로 연출하실 것이라던 기대가 
한 순간에 와르르 다 무너지더라고요!

그 순간에 저는 '아,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구나!'

(순간적으로는 거기까지 허물어지죠! 얼마 후에 곧 회복되더라도요)

맞아요. 깨끗하게 허물어지더라고요.
'그럼 뭐냐, 내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기적이나 믿음은 뭐냐?
아, 그게 우연이나 허상이었구나!'

(맞아요! '내가 그동안 뭘 잘못 들었구나, 내가 환상을 봤구나!'
뭐 이렇게 되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그렇게 돼죠)

그리고 원망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하나님을 믿은 것이 굉장히 후회되더라고요.

나를 거기에 끌어들인 사람들도 원망스럽더라고요.  *선교사 등

(그렇죠. 죽을 길로 끌어들인 것이니까요)

그때 제가 33살이었어요.
내 생각에도 너무 짧게 살고 가는게 너무 억울했어요. 하하하하

'진짜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는 생각 안 되는데,
그냥 억지로 '하나님은 없다!'
'만약 있다 해도, 이런 하나님은 믿고 싶지 않다!' 
그때는 너무 실망되니까, 그런 마음이 드는 거죠.

(그때 저는 비슷하게 북송되기 직전에 '나는 이제까지 속았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가 믿은 게 진짜 백 번, 천 번 후회된다!' 막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제는 죽을 길밖에 없으니까 그런 거죠.

다시 감방에 들어왔어요.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날 불러내더니
또 수갑하고 족쇄를 채우고, 승용차에 태우더라고요.

그리고 옆에 무장호위 보위부원들이 타고서 계속 가는 거예요.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북한의 도로 상태가 나쁘잖아요.

산 길도 가고, 이렇게 농장 밭길도 가고 하는데,
북한산이 다 벌거숭이 같은 산인데, 그때가 봄이었어요.
(1998년에 탈북했으니, 아마 1~2년 지난 시점)

사람들이 밭에서 모내기 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정겹게 느껴져요.
'아 어쩌면 저 사람들이 나보다는 낫구나!'

제가 죽음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드니까
'저렇게 비쩍 말라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삶이라도 너무 좋을 것 같다!'는
그런 부러운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지막 쯤에는 어떤 깊은 산속으로 차가 들어가더라고요.
'아, 산속 깊은 곳에 들어가서, 그냥 나를 무릎 꿇여놓고 총으로 쏴서 죽이려나 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지요.

갔더니 깊은 산속에 어떤 건물들이 나오더라고요.

(북한의 안기부 같은 비밀 시설인 거죠)

다음주에 P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