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스바냐서> 개요

LNCK 2022. 11. 14. 20:48

◈ <스바냐서> 개요


◑성경 에센스 <스바냐서>

▲1. 저자
'스바냐' 라는 책의 제목은 선지자 스바냐의 이름을 따서 지었으며 
'여호와께서 숨기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는 2:3절을 상기킵니다.

스바냐는 4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족보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는 선지자입니다.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었더라'  1:1

세 사람의 이름은 익숙하지 않지만, 
히스기야가 우리가 아는 유다왕 히스기야가 맞다면 
스바냐는 왕족 출신입니다. 

▲2. 스바냐서의 배경
그는 예레미야와 활동시기가 거의 비슷합니다.
스바냐는 유다가 므낫세 왕의 55 년에 걸친 장기간의 통치를 벗어나 
아몬 왕 이후, 요시야 왕 시대에 사역을 시작합니다. 

스바냐나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언급한 것으로 
니느웨가 망한 주전 612년 이전에, 그의 사역이 이루어졌습니다. 

므낫세는 악한 왕의 대명사였으나, 요시야 왕은 의로운 왕입니다.
요시야 왕이 뒤늦게 영적 개혁을 단행하지만, 
이미 유다가 영적으로 너무 오랜 시간 타락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유다를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계획을, 변경시키기에는 늦었습니다. 

스바냐는 이런 상황에서, 종말의 날인 '여호와의 (심판의) 날'을 예언하며 
유다 백성들의 마음을 준비 시킵니다.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므로...' 1:7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1:14

▲3. 스바냐서의 메시지

1) 지도자들의 부패 비판
스바냐는, 사회와 종교지도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백성들을 올바로 이끌어야 할 지도자들을 
오히려 백성들을 뜯어 먹고 살육하는 맹수로 비유합니다. 

방백들은, 먹이를 찾아다니며 부르짖는 사자와 같고 
정의를 실천해야할 재판장들은, 밤에 이리로 둔갑해서 
대낮에 해야할 재판을 
뇌물과 비리를 통해 밤중에 결론을 내는 자들입니다. 

악한 일은 처리를 어찌나 깔끔하게 하는지 
이튿날 아침까지 남겨 두는 법이 없습니다. 
그들은 범죄를 퇴치하는 자들이 아니라, 범죄의 프로페셔널 들입니다. 

종교지도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하여 먹고 사는 자들이며 
계시의 말씀을, 자신의 의견으로 대치하는 자들이며 
오히려 성소를 더럽히는 자들입니다. 

2) 열방을 향한 심판과 구원
이 '여호와의 날' 로 불리는 종말의 날에는  *The Day of the Lord 
하나님의 백성들만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열방들이 심판대에 오릅니다. 

본문에 언급된 블레셋, 모압, 암몬, 구스, 앗수르는   *2:5, 8, 12, 13
전형적으로 유다를 괴롭혀온 나라들로 
모든 열방들을 대표하여 기록된 것입니다. 

그때에는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심판이 진행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심판은, 파괴와 멸망이 아니라, 
모든 죄악을 제거하는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일단 심판으로 정리가 된 후에는 
여호와께서 열방과 유다백성들을 구원하고, 모든 명예를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신앙을 지키고, 타협하지 않는 신실한 자가 될 것을 격려합니다. 

여호와의 날이 지나고 나면, 그들은 보호를 받을 것이고 
구원의 기쁨을 노래할 것입니다. 

3: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4. 기록 목적 
스바냐는 유다 백성들에게, 이 여호와의 날을 준비시키면서 
구원의 희망을 잃지 않을 것을 격려하기 위하여 쓰여졌습니다. 

스바냐에서 '남은 자'는 신실한 자를 가르킵니다.   2:9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기업을 주실 것입니다.


적용/ 현대에서 '남은 자'는, 현실 상황에 관계없이 자기의 신앙을 끝까지 지키고 
승리한 자를 의미합니다. 힘들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세상과 타협하거나, 신앙의 계속적인 성장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남은 자'의 대열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믿는 자는 말씀을 붙들고 복음을 위해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자기 사명을 완수하는 자이며, 그것이 '남은 자'의 모습입니다. 

스바냐서를 묵상하며 '여호와의 (진노의) 날'에 
'숨김을 얻는' (스바냐 하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재밌는 성경 <스바냐서>

1:1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시대에 스바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었더라'

이스라엘 역사에 등장한 많은 선지자들은 
참으로 다양한 신분과 직업을 배경으로 하죠.
스바냐는 그 중에서 가장 '금수저'라고 할 수 있죠.

스바냐 선지자는 히스기야 왕의 4대 손으로, 왕족이었어요. 
그러나 스바냐는 자신의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고 
유다 지도자들의 죄악과, 그로 인한 심판을 선포합니다.

'여호와의 날'로 선포되는 강력한 심판!
그러나 '남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은혜도 선포한 선지자가 바로 스바냐죠!


▲스바냐서에 기록된 심판의 메시지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여호와의 날'입니다. 

당시 유다사람들은 '여호와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 날이 오면 여호와께서 임하셔서 유다 백성들에게 구원을 주실 것이다.'
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스바냐 선지자는, 이 '여호와의 날'이 구원의 날이 아니라,
심판의 날이 될 것이다...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

1:14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슬피 우는도다'

1:8 '여호와의 희생의 날에 내가 방백들과 왕자들과 
이방인의 옷을 입은 자들을 벌할 것이며'

2:2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

여호와의 날, 
여호와의 큰 날,
여호와의 분노의 날,
여호와의 희생의 날...

이런 표현들을 사용하면서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날은 구원의 날이 아니라, 심판의 날이다!'

'그 여호와의 날이 가까이 왔다.
그러므로 더 늦기 전에, 어서 돌이켜 회개하라!'

'여호와의 날'은 여호와께서 임하시는 날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살지 않은 이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되는 것이 당연하지요.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삶은 돌아보지 않은 채
자신들이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날이 '구원의 날'이 될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이 심판의 날이 
얼마나 두려운 날이 될 것인지를
창조 때 이미지를 역전시켜서 묘사하고 있는데요.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은
이제 '심판의 날'에 모조리 진멸하실 것을 선포합니다.

1: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땅 위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3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 내가 사람을 땅 위에서 멸절하리라'

그런데 이 묘사가 참 의미심장합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이 땅 위의 모든 생물들을 심판하신 적이 있었지요.
바로 노아의 홍수 때였어요.

그러나 그 홍수 때에, 방주에 있었던 생물들 외에도
물고기들은 살아남았었죠.

그러나 스바냐 선지자는, 
'여호와의 날'에는 물속의 물고기들도 살아남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심판이 있을 것이다! 라고 선포했습니다.  1:3


▲스바냐 선지자가 예언한 이 두려운 심판은
1차적으로 바벨론에 의해서, 유다가 멸망당할 때 실현됩니다.

스바냐와 동시대를 살았던 예레미야 선지자는
멸망 때에 얼마나 두려운 심판이 임했는지를 잘 묘사했죠.

그러나 보다 궁극적인 심판은
마지막 날, 종말의 때에 실현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심판이 모든 이들에게
다 시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이 심판이 예수님께 쏟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거하는 이들은
이제 더 이상 이 심판을 받지 않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구약에 자주 등장했던 '여호와의 날'은
이제 신약에 가서 '그리스도의 날'로 바뀌게 됩니다.

롬2:16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고전1: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이제 구약의 '여호와의 날'은
이제 신약의 '그리스도의 날'이 됩니다.

이 날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날이에요.

이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은
이 심판에서 면제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은 이들은
이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모든 이들에게 미쳐야하는 '심판의 날'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에게는 '구원의 날'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복음의 메시지>인데요.


▲스바냐 선지자는, 유다 백성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에게
구원이 미치게 되는 미래를 내다보고 있습니다.

3:9 '그 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

스바냐 선지자는 유다 백성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많은 백성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될
그 날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 대상들인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스바냐서를 읽을 때
그 심판의 대상으로부터 바뀌어서
하나님의 사랑 받는 백성이 된 우리들을 생각하며
스바냐서를 읽어보세요.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이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노래입니다.
(혹자는 이 구절을, 신약의 요3:16절에 비견합니다. 둘 다 사랑의 표현이죠.)

..................................................................


◑바이블 프로젝트 <스바냐서>

스바냐는 남유다 왕국 말기에 살았던 선지자입니다. 
그때는 요시야 왕이 유다 땅에 진정한 개혁을 시도하던 때로서 
그는 우상들을 제거하고, 성전을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위한 장소로 
회복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남유다는 너무 멀리 가버렸습니다. 
우상숭배가 백성들의 삶 속에 너무 깊이 자리잡았던 것이죠. 

그리고 교만해진 요시야 왕은, 바로 느고와 전투에서 비참하게 전사하고 맙니다. 
예루살렘과 바벨론이 피할 수 없는 전투를 치르게 하고 말이죠. 

스바냐는,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년 동안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에게 경고했죠.

이 짧은 책은, 그의 예언을 요약한 "짧은 시 모음집"으로서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1장~2:3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할 <여호와의 심판의 날>에 초점을 맞춥니다. 

-두 번째 부분은   *2:4~3:8
열방과 예루살렘에 또 다시 임할 <여호와의 심판의 날>에 대해

-세 번째 부분은  3:9~20
하나님의 심판 너머 여전히 남아있는 열방과 예루살렘의 소망에 관해 말합니다. 


▲1.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할 <여호와의 심판의 날>   1:1~2:3
첫 대지는, 창1장을 뒤엎는 충격적인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①예루살렘에 임할 심판  1:1~18
즉 하나님이 지으신 선하고 질서있는 세상이 
무질서와 흑암과 혼돈으로 돌아가 
다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고 마는데요. 

계속 읽다 보면, 스바냐가 이렇게 강력한 시적 표현을 발전시키는 이유는 
예루살렘이 어떻게 멸망하는지를 묘사하기 위해서 입니다. 

온 성읍에서 가나안 우상들을 섬기는 모든 제단들은 파괴될 것입니다. 
불의를 일삼던 모든 지도자와 
부당한 대출 거래가 이루어지던 모든 경제중심지들, 
이 모두는 성벽과 함께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스바냐는, 이처럼 마치 종말론적인 모습들을 통해 
앞으로 일어날 일의 심각성을 예언했는데요. 
이들은 모두 예루살렘을 파괴하러 쳐들어올 큰 군대를 가리키죠.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스바냐는, 하나님이 심판을 위해 
어느 군대를 사용하실지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사실 우리는, 미가나 하박국 같은 다른 선지자를 통해 
그게 바벨론 이라는 걸 알지만 
스바냐는 바벨론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데요. 

그건 예루살렘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②남은 자들의 소망 2:1~3

그리고 바로 그 사실이, 스바냐에게 소망을 줍니다. 
예루살렘이 심판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그는 이 첫 번째 단락을 마치면서 
그곳에서 주님을 찾을 겸손한 자들을 불러 모읍니다. 
그리고 이들이 충성된 '남은 자'들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아라'  2:3

그들이 회개함으로써 심판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2. 두 번째로, 스바냐는 시야를 넓혀 유다 주변 나라들까지 주목합니다. 2:4~3:8
블레셋, 모압, 암몬.. 심지어 앗수르까지 말이죠. 

①주변 나라들을 질책함  2:1~15
스바냐는, 그들을 모두의 부패와 폭력과 교만을 질책하면서 
그들 역시 모두 바벨론 앞에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②심판에 예루살렘도 포함!  3:1~6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은, 두번째 대지 마지막에 
예루살렘과 유다 백성들도 포함된다는 건데요.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선지자들, 그리고 제사장들이 너무나 부패하고 폭력적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어서 
하나님은, 그들을 더 이상 그분의 백성으로 여기지 않으시죠. 

③하나님의 마지막 열정   3:7~8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비롯한 모든 나라를 모아, 
그분의 불타는 진노를 쏟으시겠다고 하십니다. 

'내가 뜻을 정하고 나의 불타는 분노와 모든 진노를 쏟으려고
여러 나라를 모으리라' 3:8

하나님의 공의는 이렇게 소멸하는 불이 되어, 온 땅의 악을 삼킬 것입니다. 
정말 강렬한 표현이죠!


▲3. 열방과 예루살렘의 소망  3:9~20

①변화되어 한 가족이 될 민족과 나라들   3:9~10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심판의 타는 불이
사람들을 멸망시키기 위한 게 아니라 
오히려 열방을 정결하게 하시기 위한 것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루살렘 까지도 말이죠. 

이 마지막 단락은, 하나님께서 반역하는 나라들을 치유하고 변화시켜서 
한 가족이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정결하게 된 그들은, 악으로부터 돌이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것입니다. 3:9
이 모습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를 암시합니다. 
창12장에서 '모든 민족이 그로 인해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 약속 말이죠. 
예루살렘도 포함해서요.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하리니' 3:9

②이 책의 결말은, 모든 민족 가운데서 
예루살렘이 회복되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3:11~20

하나님은 회복된 이 도성에서 
하나님의 자비로 인해 낮아지고 변화된 신실한 남은 자들과 함께 거하시며 
그들에게 노래하며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이어서 스바냐는 놀랍게도, 하나님도 노래하고 싶어하시는 시인이라고 묘사합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노래하며 기뻐하시리라' 3:17

이 책의 마지막 시는, 하나님께서 버림받고 가난하며 상처 입은 자들을 
그분의 가족으로 불러, 높은 자리에 앉히시는 인상적인 모습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책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스바냐서, 이 짧은 책은 
모든 선지서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매우 강렬한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이 세상을 인간의 악과 폭력의 공포로부터 보호하고 구하시려는
그분의 열정과 관련 있는데요. 

하나님은 인간이 서로에게, 그리고 그 분의 세상에 행하는 
끔찍한 일들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심판으로써 이 세상을 회복시키고 
사람들이 안정과 평화 가운데 번성할 수 있게 하시는 것은 
바로 그 분의 사랑 때문이죠. 

그래서 스바냐는 공의와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성품을 두 측면을 모두 붙들도록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서 
이 두 가지를 함께 소망을 품게 되기를 촉구합니다. 
이것이 바로 스바냐서가 전하는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