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2장, 여호와의 날을 통해 열방이 구원 된다 여러 설교 정리
<개요>
스바냐서 2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3절, 남유다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리니 늦기 전에 회개하라
4~15절, 남유다의 재난을 기뻐했던 이웃 나라들도 하나님이 심판하신다
'스바냐' 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숨기신다'입니다.
본문 2:3절에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는 말씀을
그래서 신자들은 요절로 잘 외우죠.
스바냐서 전체의 키워드는 '여호와의 날'입니다.
성경 66권 중에서 '여호와의 날'이 가장 잘 다루어진 책입니다.
스바냐는 바로 종말의 날, 여호와의 날.. 그 날을 예언하면서
유다백성들의 마음을 경계하고, 회개를 촉구합니다.
그런데 지금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본문의 '여호와의 날'을 종말의 심판의 날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뭐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 화석 연료의 고갈, 핵 문제, 또 판데믹...
이렇게 이제 정말 '여호와의 날'이 오는 것이 아니냐?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스바냐서를 우리가 읽을 때
종말을 앞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있는데요..
◑적용
본문의 메시지는 '여호와의 날'이 되면, 즉 종말(심판)의 때가 되면,
"온 세상이 여호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스바냐(요시야 때)때보다 조금 앞서 활동했던 하박국도, 합2:14절에서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
이렇게 '바벨론을 통한 세상 심판' 와중에서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 온 세상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을
예언한 바 있습니다. 스바냐도 같은 맥락이라는 논지를 아래에 전개해 보겠습니다.
▲지금 스바냐 2장의 주된 내용은
2:4~15절까지.. 남유다의 주변 국들이 다 심판을 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2:1~3절까지는, 남유다의 심판을 예언하지만
2:4~15절까지는, 남유다 주변국들의 심판을 예언합니다. 바벨론을 통한 심판이죠.
1) 4~7절은 블레셋의 멸망을 예언합니다. 그러면서 7절에
'그 지경은 유다족속의 남은 자에게로 돌아갈지라 그들이 거기에서 양 떼를 먹이고'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이렇게 잘못 이해하기가 매우 쉽죠)
결국 블레셋이나 이방족속은 다 멸해지고,
유다족속 이스라엘이 승리하고, 세계를 제패하게 될 것이다...
왜냐면 7절에 블레셋 땅이 유다 족속에게 돌아간다고 예언되어 있으니까요.
그렇게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이스라엘 국수주의'에 빠집니다.
그렇지만 본문 7절의 이 해석은
'여호와의 날이 되면, 블레셋도 하나님께 돌아오리라'라고 봐야 됩니다.
즉 하박국이 합2:14절에서 예언한 내용과 같은 맥락으로 봐야 되는 거죠.
이사야도 그렇게 예언한 적이 있습니다.
사2:2~3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위 구절에서 키워드는 '말일에'입니다.
스바냐식 표현으로는 '여호와의 날'이죠.
그때가 되면 열방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될 것을.. 이사야는 내다 본 것이죠.
본문 스바냐 2장에, 여호와의 날에
남유다 뿐만 아니라, 주변국들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고,
바벨론을 통한 멸망과 심판을 받게 될 터인데...
그 일을 계기로, 이스라엘이 영토를 넓힌다.. 가 아니라
주변국들, 열방들도..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믿게 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라고 본문을 해석해야 되는 것입니다.
2) 2:8~9절은, 모압과 암몬에 대한 스바냐의 예언입니다.
2:8~9 '내가 모압의 비방과 암몬 자손이 조롱하는 말을 들었나니
그들이 내 백성을 비방하고 자기들의 경계에 대하여 교만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장차 모압은 소돔 같으며
암몬 자손은 고모라 같을 것이라
찔레가 나며 소금구덩이가 되어 영원히 황폐하리니
내 백성의 남은 자들이 그들을 노략하며
나의 남은 백성이 그것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
여기서도 '내 백성의 남은 자들이 그들을 노략하며
나의 남은 백성이 그것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 :9
그래서 이스라엘이 무슨 전쟁에서 승리하고, 결국은 중동과 세계를 제패하리라...
과거에 다들 그렇게 해석한 적도 있었습니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이스라엘 국수주의'적으로 해석했죠. (그렇게 될지 안 될지 미래는 아무도 모르죠)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 중심으로, 복음 중심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니 위 2:9절도 '남은 자들이, 모압과 암몬을 복음으로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마5:5에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고 했는데, 그와 같은 맥락입니다.
실제로 행2장에, 예루살렘에 성령님이 부어졌을 때,
행2:9~11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이렇게 유대 주변의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역사가 일어났는데
스바냐 2장의 예언이, 또는 하박국 2:14절이, 또는 이사야2:2~3절이
그때 성취되었다고도 할 것입니다. 장차 세상 종말에는 더욱 확실히 성취되겠죠!
실제로 역사적으로 보면, 바벨론-페르샤-로마제국에 이르기까지
그때 이후로 세계역사는 '거대 제국의 시대'가 되면서
언어가 통일되고, 서로 왕래가 빈번하고 자유로워지며
이스라엘의 여호와 신앙이.. 전 세계로 확산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여호와의 날'을 통해서요!
2:11 '여호와가 그들에게 두렵게 되어서 세상의 모든 신을 쇠약하게 하리니
이방의 모든 해변 사람들이 각각 자기 처소에서 여호와께 경배하리라'
'여호와의 날'을 통한, 하나님의 최종적 목적은
'이방의 모든 해변 사람들이 각각 자기 처소에서 여호와께 경배하리라'에 있었죠.
이스라엘(교회)의 세계 제패가 아니었습니다. 세상 복음 전파였습니다!
3) 그 외 12절에 구스,
13~15절에 앗수르(니느웨)의 패망 예언이 이어지지만
그 목적은, 여호와의 날을 통한 이방 나라들의 '패망'에 초점이 있지 않고
위 11절에 나온 것처럼, '여호와를 알게 되는데'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11절에 '해변'은, 꼭 바닷가 나라를 뜻하지 않고,
바다로 연결되어지는 '온 세계'를 의미한다고 보면 됩니다.
▲더 구제적으로 적용하면,
기후 변화, 자원 고갈, 펜데믹, 전쟁...
이런 '여호와의 날'이 닥칠 때,
여호와의 날이 닥치는 것은 기정 사실인데, *이렇게 닥치다가 마지막에 확 닥치죠.
오늘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뭐냐?
행1:7~8 '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큰 그림은, 본문 습2장에서 보듯이
7 '그 지경은 유다족속의 남은 자에게로 돌아갈지라 그들이 거기에서 양 떼를 먹이고'
9 '내 백성의 남은 자들이 그들을 노략하며 나의 남은 백성이 그것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
11 '여호와가 그들에게 두렵게 되어서 세상의 모든 신을 쇠약하게 하리니
이방의 모든 해변 사람들이 각각 자기 처소에서 여호와께 경배하리라'
이 구절들은 한 마디로 '열방이 하나님을 알게 된다'
신약적으로 말하면 '복음을 듣게 되고,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날'을 준비하는 우리의 자세는,
'땅끝까지 복음 전파!'
그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역사 운행 방향에
내가 편입되는 것입니다. 내가 도구로 쓰임 받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강남에 살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거기가 소위 '노른자위' 입니다.
40~50대 패기넘치는 이들은 정부 중앙부처에 들어가기 원합니다. '노른자위'니까요.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노른자위'는 어디입니까?
거기는 강남 땅도 아니고, 정부 중앙 부처도 아닙니다.
바로 '세상 복음 전파, 선교 현장'에 직간접적으로 투입되는 그 자리,
그게 바로 하나님 나라에 '노른자위'에 속하는 곳입니다.
거기는 세상처럼 누가 알아주는 자리도 아니고, 우러러보는 곳도 아니라서
들어가기도 쉽습니다. 경쟁력도 아주 낮습니다. '찾는 이가 적습니다' *좁은 문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과, 눈길과, 손길이 머무시는..
하나님 나라의 노른자위 땅입니다. 오늘 21세기에!
이것이 오늘날 우리 기도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 제가 하나님 나라에 노른자위에서 주님을 섬기게 해 주십시오!'
그런 욕심을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차지하리니!'
▲한 가지 더 첨언하면,
복음은 항상 <심판 과 회복>이 같이 가는 것입니다.
심판이 빠지고 회복만 외치면.. 그것도 온전한 복음이 아니고,
심판만 외치고 회복이 빠져도.. 그것도 온전한 복음이 아닙니다.
스바냐서가 '여호와의 날'이 이른다는
무시무시한 심판만 외치고 있는 것 같지만
위 2:7, 9, 11절에서 살펴보았듯이
'하나님의 이방 회복 역사, 이방 구원 계획'에 대해서도 외치고 있습니다.
심판과 회복을 둘 다 외친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선지서>를 읽기 싫어합니다. 듣기도 싫어합니다.
왜냐면 정말 서슬 시퍼렇게 심판을 외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선지서는 백성의 죄들을 통렬하게 지적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지만
거기엔 반드시 <회복, 소망, 구원>의 메시지도 함께 선포됩니다.
습3장에 나오는 회복의 메시지는 3:17절,
우리가 복음성가로 잘 부르는 내용이죠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해석 및 주석
▲1절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는 모욕적인 언사로 하나님을 찾지도 아니하며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백성들을 가리킨다.
▲2절
'명령이 시행되기 전'
'명령'은 곧 하나님께서 분노하시므로 모든 것을 멸망시키려는 심판을
발하시는 것을 뜻한다.
'광음이 겨같이 날아 지나가지 전'
'겨'는 하나님의 불 같은 진노로 모든 것이 불살라져
사그라드는 것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것은 여호와의 날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이 정도가 매우 강한 것임을 시사한다.
▲3절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본 구절에서 스바냐가 권면하는 대상은 오직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뿐이다.
왜냐면 그 외의 사람들은 도저히 여호와의 날에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겸손한 자들이 단순히 유다 백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그들은 이방인이나 유다 백성이나 그 혈통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을 간절히 기대하며 겸손히 공의를 행하며 하나님의 규례를 즐겨 찾는 이들이다.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스바냐는 겸손한 자들조차도 심판이 행해지는 여호와의 날에
겨우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것인지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아모스에게도 나타나는 것으로(암 5:15)
모든 것이 여호와의 주권에 달려 있음을 시사한다.
▲4절
'가사가 버리우며 아스글론이 황폐되며 아스돗이 백주에 쫓겨나며 에그론이 뽑히우리라'
'가사','아스글롯','아스돗','에그론'은 블레셋 성읍을 가리킨다.
그런데 미가뿐만 아니라 아모스와 스가랴도 스바냐와 동일하게
블레셋에 대한 신탁을 전하는 과정에서 '가드'를 제외시키고 있다(암1:6-8, 슥9:5-7).
블레셋은 5개의 도시로 이루어진 연방국가 였는데
다섯 개의 블레셋 성읍 중에서 '가드'를 제외시킨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미 이 시점에서 ‘가드’는 멸망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언급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백주에'는 당시 동방 사람들이 낮잠 시간으로 이용하던 낮시간을 가리킨다.
이것은 블레셋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시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것을 암시한다.
▲5절
'해변 거민 그렛 족속에게 화 있을진저'
'그렛 거민'은 그레데 섬에서 이주하여 블레셋 사람들이 된 한 족속을 가리킨다.
(렘47:4, 암9:7) 그들은 해변 지역에 거하는 자들이었다.
'블레셋 사람의 땅 가나안아'
본 구절에서 블레셋을 '가나안'으로 지칭한 것은
블레셋이 가나안의 끝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가나안'이란 이름이 본래 '낮은 땅'(lowland)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블레셋을 '가나안'이라 부른 것은
앞서 언급된 해변 지역에 거주하는 그렛 사람과 연관된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6절
'해변은 초장이 되어 목자의 움과 양떼의 우리가 거기 있을 것이며'
본절은 블레셋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황무하게 되며 파괴된 상태를 나타낸다.
▲7절
'그 지경은 유다 족속의 남은 자에게로 돌아갈지라...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가 그들을 권고하여 그 사로잡힘을 돌이킬 것임이니라'
블레셋 사람들이 살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양떼들과 목자들의 거주지가 되었던 해변은 유다 백성,
곧 남은 자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8절
'내가 모압의 훼방과 암몬 자손의 후욕을 들었나니'
모압과 암몬은 이스라엘이 어려움을 당하거나 약해질 때마다
어김없이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훼방하고 후욕하였다.
▲9절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본 구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칭호인 '만군의 여호와'와 '맹세'는
하나님께서 모압과 암몬에게 내리실 심판의 확실성을 시사한다.
'모압은 소돔 같으며 암몬 자손은 고모라 같을 것이라'
본 구절에서 모압과 암몬의 멸망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유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
왜냐면 모압과 암몬 족속의 기원은 바로 소돔과 고모라성이 파괴될 때
롯과 그의 딸들의 관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창 19:30-38).
'찔레가 나며 소금 구덩이가 되어 영원히 황무하리니...얻을 것이라'
'찔레와 소금 구덩이'는 모압과 암몬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황폐해진 상태를 나타낸다.
남은 자들은 온전히 회복되어 자신들을 괴롭힌 자들의 땅과 소유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10절
'교만하여 스스로 커서 만군의 여호와의 백성을 훼방함이니라'
모압과 암몬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영원히 멸망당하게 되는 이유는 교만이다.
선지자 스바냐만이 모압과 암몬의 죄목을 교만으로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사야와 예레미야도 모압과 암몬의 죄를 교만으로 규정하고 있다(사16:6, 렘48:26).
모압과 암몬은 유다를 침략하여 후욕했을 때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었다고 생각하여
자고(自高)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교만은 수치와 멸시로 바뀌게 될 것이다.
▲11절
'여호와가 그들에게 두렵게 되어서 세상의 모든 신을 쇠잔케 하리니'
유다를 대적하였던 주변 국가들, 곧 블레셋(4-7절), 모압과 암몬(8-11절),
구스(12절),그리고 앗수르(13-15절)의 파괴와 멸망은 모든 열국들이
섬기던 모든 신들을 파멸시키는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열국들은 자신들의 신을 최고의 신으로 섬겼다. 그러나 열국은 유다 주변 국가들과
그들의 신이 파멸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자신들이 섬기던 신이
결코 여호와의 심판에서 자신들을 구출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열국은 자신들이 섬기던 우상을 버리고 만군의 여호와이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된다.
'이방의 모든 해변 사람들이 각각 자기 처소에서 여호와께 경배하리라'
'이방의 모든 해변 사람들'은 문자적으로 '열국의 모든 섬에 사는 거주민들'을 가리킨다.
한편 '각각 자기 처소'는 여호와에 대한 경배가 보편적인 것으로 변할 것임을 시사한다.
▲12절
'구스 사람아 너희도 내 칼에 살륙을 당하리라'
구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모압과 암몬 족속에게 내린 것과 동일한 것으로
완전한 멸망일 것임을 시사한다.
▲13절
'여호와가...앗수르를 멸하며 니느웨로 황무케 하여 사막같이 메마르게 하리니'
'니느웨'는 당시 역사적으로 최강의 국가인 앗수르의 수도였다.
니느웨의 관개 시설은 절대로 물이 마르지 않을 정도의 완벽한 시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손을 펴서 앗수르를, 수도 니느웨를
마치 사막처럼 황량하게 만드실 것이다.
니느웨 사람들이 자랑하던 관개 시설은 오간 데 없고 물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사막처럼 황량한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14절
'각양 짐승이 그 가운데 떼로 누울 것이며 당아와 고슴도치가...백향목으로 지은 것이 벗겨졌음이라'
무적의 나라답게 앗수르와 니느웨는 최상의 문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의 도시는 백향목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이 행해진 후의 모습은 황량함과 적막함 그 자체였다.
니느웨는 수도답게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던 것과는 달리
각종 야생 짐승들의 서식처가 되어버렸다.
올빼미를 가리키는 '당아'는 성경에서 황량함의 일면을 보여주는 표상으로
사용되었다(시102:6, 사34:11).
결국 니느웨 성은 도저히 사람이 거할 수 없는, 야생 짐승들만이 가득 찰 정도로
완전히 파멸당할 것이다.
▲15절
'심중에 이르기를 오직 나만 있고 나외에는 다른이가 없다 하더니...
지나가는 자마다 치소하여 손을 흔들리로다'
앗수르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교만이었다.
그들은 당시의 모든 나라들을 지배하고 통치하에 되자 심각한 교만에 빠졌다.
앗수르는 만군의 여호와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오직 자신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앗수르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멸망당하여 짐승의 거처가 되며,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