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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LNCK 2022. 11. 16. 23:31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딤후3:14      출처
 (신앙의 스승들을 그리며)

김명혁 목사 
사랑의 쌀 조찬기도회(여전도회관)


저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너무 많지만 
그 중의 하나는 저에게 귀한 신앙의 스승들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5년 전인 2005년 강변교회에서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라는 주제로 여덟 번 설교한 일이 있는데 
첫번 째 설교의 제목이 “신앙의 스승들과 들을 귀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 설교에서 저는 저에게 순교하신 목사님을 저의 아버지로     *김관주 목사님 
그리고 사랑과 희생의 여인을 저의 어머니로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이성봉 목사님과 김치선 목사님을 저의 신앙의 스승으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했습니다. 

사실 저는 길선주 목사님, 이기풍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을 비롯한 
신앙의 선배들을 늘 그리워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2007년 12월 22일 저녁 갑자기 보고 싶어지는 사람들이 생각나서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일이 있었는데, 그 글을 그대로 소개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보고 싶어지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어머니와 아버지와 어린 아들 철원이를 비롯해서 보고 싶어지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중에 몇 사람들의 이름만 적어본다.

우선 박윤선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 가식과 꾸밈이 없는 분이었다. 
어린 아이와 같은 단순하고 소박한 미소를 지닌 분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특별한 믿음과 사랑과 애정을 나타내 보이신 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야기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나에게 자주 말씀하시던 분이었다. 

그분은 무엇보다 기도와 말씀과 하나님께 사로잡혀서 사신 분이었다. 
나는 박윤선 목사님이 세상에 계시던 마지막 한 주간 동안 
목사님을 매일 찾아 뵈면서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나는 지금 박윤선 목사님이 보고 싶다.

나는 장경재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 그분은 착하신 분이었다. 
자기 주장을 내 세우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먼저 도모하신 분이었다. 
나는 여러 번 장목사님과 해외 여행을 했는데 
얼마나 편하고 즐겁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공항 로비에서 드러누워 자자고 하면, 드러누워서 잤고, 
수영장으로 들어가자고 하면 들어 갔다. 그분은 사랑이 많으신 분이었다. 
대접하기를 좋아했고, 무엇을 사면 언제나 본인이 먼저 값을 지불하시곤 했다. 

그분은 진실하신 분이었고 다른 사람을 존경하는 분이었다. 
나는 지금 장경재 목사님이 보고 싶다.

나는 한경직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 그분은 약하고 겸손하고 부드럽고 
착하신 분이었다. 모두를 품고 모두를 아우르는 마음이 넓으신 분이었다. 
한목사님은 또한 정이 많으신 분이었다. 나는 특별한 인연으로 내가 한 살 때부터 
한목사님과 가까이 지내게 되었는데, 내가 홀로 월남한 후 한목사님은 
언제나 나의 손을 붙잡고 ‘네 아버지, 네 아버지 (김관주 목사)’ 하시며 
나의 아버지를 부르시곤 했다. 

양극화가 극심한 이 시대에, 그리고 한국교회 안에 존경 받는 지도자가 많지 않은 
이 때 나는 한경직 목사님이 보고 싶다.

나는 김치선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 그분은 내가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 
나에게 깊은 신앙적인 감화를 끼치신 분이다. 선지자 예레미아처럼 
새벽마다 울면서 회개하셨고, 새벽마다 ‘성령이여 강림하사’ 찬송을 부르면서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시던 분이었다. 

그분의 간절한 회개와 은혜 사모가 
어느덧 나의 회개와 은혜 사모로 바뀌어지곤 했다. 
그리고 나를 아들처럼 사랑과 격려로 대하시곤 했다. 

영적으로 혼란하고 불순한 이 시대에 나는 순수하게 기도하며 
간절하게 부흥을 사모하시던 김치선 목사님이 보고 싶다.

나는 이성봉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 그분은 내가 중학생 시절, 
내가 홀로 월남하여 대구에서 피난생활을 하던 시절, 
나의 감성과 지성과 의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분이었다. 

나는 이성봉 목사님이 인도하던 부흥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며 
그분이 전하는 은혜의 말씀을 헐떡거리며 받아먹곤 했다. 
그 당시 나는 그분이 하라는 대로 모든 것을 했다. 

부흥회 마지막 날 새벽마다 안수기도를 받으며 좋은 목사가 되기를 소원하곤 했다. 
이성봉 목사님은 나를 알아보시며 칭찬하시곤 했는데 
나는 지금 이성봉 목사님이 보고 싶다.

나는 강원용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 그분은 폭 넓은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을 가진 
분이었고 모두를 품고 아우르는 넓은 분이었다. 

내가 그분의 진보적인 입장을 비판하곤 했는데, 그분은 나를 받아드리곤 했다. 
결국 나는 그분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고, 
특히 그분의 마지막 복음적인 입장을 존경하게 되었다. 

강목사님은 부족한 나를 받아드리고 격려하고 사랑하셨다. 
그분의 측근 한 분이 최근에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강목사님이 김목사님을 짝사랑했지요.’ 
아직도 양극화의 갈등을 경험하고 있는 이때 나는 강원용 목사님이 보고 싶다.

나는 이중표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 
이목사님은 세상에 대한 애착을 벗어버린 순수하고 착한 분이었다. 
나와 이목사님은 사랑과 정을 나누던 사이였고, 마음과 생각을 나누던 사이였다. 

‘나에게 님으로 만나주신 목사님께 눈물겹도록 고마운 생각이 든다’ 
라고 글을 써서 나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나는 이중표 목사님과 마음과 생각을 모아서 
‘제가 잘못했습니다’ 라는 회개 기도 모임을 마련하기도 했다. 

순수함과 착함이 점점 사라져가는 이 때 
나는 이중표 목사님이 너무너무 보고 싶어진다.” (2007.10.22 저녁에 쓴 글)


바로 지난 2010년 9월 3일 <정진경 목사 1주기 추모예배>가 있었는데 
제가 낭독한 추모사의 한 부분을 소개합니다. 

“저는 지금 정진경 목사님이 너무너무 보고 싶어집니다. 
물론 어제 소천하신 옥한흠 목사님도 보고 싶어집니다. 
정 목사님은 온유 겸손하신 분이셨고 부드럽고 따뜻하신 분이셨고 
모두를 품는 넓으신 분이셨고, 욕심이 없는 깨끗하신 분이셨고 
한국교회와 남북을 사랑하신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스승이셨습니다. 

정진경 목사님은 함께 다니기에 너무너무 편한 분이셨고 
소박하시고 따뜻하신 분이셨습니다. 
정진경 목사님은 다른 사람들을 칭찬하시고 격려하시는데 아낌이 없으셨습니다. 
정진경 목사님은 북한 동포 돕는 일에 대해서 폭 넓은 입장을 지니셨고 
타 종교와의 대화와 협력에 대해서도 폭 넓은 입장을 지니셨습니다. 

저는 지금 정진경 목사님이 너무너무 보고 싶습니다. 
정진경 목사님께서는 갈등과 분열과 분노가 가득한 한국교회에 
포용과 연합과 일치가 무엇인지를 삶과 사역으로 보여주시고 가셨습니다. 
사랑하는 정진경 목사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너무너무 보고 싶습니다.”


저는 1999년 2월 구정 때 한경직 목사님, 박종렬 목사님, 정진경 목사님들을 
찾아 뵙고 세배를 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 후 “인사하며 삽시다” 라는 제목의 글을 국민일보에 실린 일이 있는데 
그 글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하나님께 정성껏 인사 드리고, 사람들과 친절한 인사를 나누며 사는 것이 
올바르고 행복한 인생이다. 어른들에게 인사 드리는 것이 행복한 일이다. 

나는 2월 어느 월요일 안만수 목사 부부 그리고 아내와 함께 
한경직 목사님을 찾아 뵙고 세배를 드렸다. 
한 목사님이 좋아하시는 동양 난을 사 가지고 갔다. 

마침 그 날이 한 목사님의 97회 생신이었다. 
생일 축하 노래를 함께 불러 드렸을 때, 한 목사님은 손뼉을 치면서 좋아하셨다. 

내 손을 꼭 잡으시고, 나의 아버지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원하시면서 
‘아버지.. 아버지..’ 라고 힘을 들여서 말씀하셨다. 

한 목사님을 돌보시는 백 장로님이 이렇게 말씀했다. 
‘한 목사님이 김 목사님 오시면 제일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과천으로 가서 박종렬 목사님에게 세배를 드렸다. 
난과 귤 한 상자를 가지고 갔다. 

‘오늘 아침에는 목사님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아무 말씀도 못하셨는데 
김 목사님이 오시니까 이렇게 말씀을 잘하시네요.’ 사모님의 말씀이었다. 

우리는 안양으로 가서 정진경 목사님에게 세배를 드렸다. 
난과 귤 한 상자를 선물로 가지고 갔다. 

정 목사님 내외분은 너무나 반가워 하셨고 너무나 좋아하셨다. 
어른들을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른다.”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이렇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은 
오늘의 제가 너무너무 부족하지만, 하나의 작은 주님의 종이 된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자비와 긍휼과 사랑이지만 
둘째는 저에게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씨앗을 심어준 신앙의 선배들의 
은혜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성봉 목사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 
김치선 목사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 
박윤선 목사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 
한경직 목사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 
강원용 목사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 
정진경 목사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국에 있는 고아 아이들 200명 이상을 십 년 이상 돕고 있고 
아프간에 가서 학교 하나를 세워주었고 
북한 결핵환자들을 돕고 있고 
지난 8월 27일에는 밀가루 300톤을 가지고 개성에 가기도 했습니다. 

특히 한경직 목사님께서 삶으로 보여주신 착함과 사랑과 봉사와 섬김의 삶이 
제게 거름이 되고 자양분이 되고 햇빛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면서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라고 했는데 
저는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압니다. 

저는 신앙의 선배님들로부터 배웠습니다. 
이제 저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 17절에서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신앙의 스승들이 삶으로 가르쳐주신 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기를 힘쓰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되기를 힘쓰겠습니다. 

신앙의 스승님들, 감사합니다. 
삶으로 보여주신 대로 선하게 착하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