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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3장, 이스라엘의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LNCK 2022. 11. 17. 20:06

◈습3장, 이스라엘의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여러 설교 정리

 

 

◑해석

 

▲대지 구분

Bible Project 스바냐서는, 대지를 이렇게 잘 구분했습니다.

 

- 1대지는  *1장~2:3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할 <여호와의 심판의 날>에 초점을 맞춥니다.

 

- 2대지는  *2:4~3:8

열방과 예루살렘에 또 다시 임할 <여호와의 심판의 날>에 대해

 

- 3대지는  *3:9~20

하나님의 심판 너머 여전히 남아있는 열방과 예루살렘의 소망에 관해서 입니다.

 

2장에 주변 5개국에 대한 심판이 나오는데,

블레셋, 모압, 암몬, 구스, 앗수르였죠.

3장에 이어서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2:4~3:8까지를 <2대지>로 구분한, Bible Project는 탁월합니다.

 

본문 습3장은,

그래서 2대지 (1~8절) 와 3대지 (9~20절)가 겹쳐 있는데,

우리는 3대지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대지는 앞서 습2장에서 살펴보았으니까요.

2대지의 요약은 주1)을 보십시오.

 

 

▲3대지. 열방과 예루살렘의 소망       *3:9~20

 

 3:9~10, 변화되어 한 가족이 될 민족과 나라들

그 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
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강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바칠지라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심판의 타는 불이

사람들을 멸망시키기 위한 게 아니라

오히려 열방을 정결하게 하시기 위한 것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루살렘 까지도 말이죠.

 

이 마지막 단락은, 하나님께서 반역하는 나라들을 치유하고 변화시켜서

한 가족이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정결하게 된 그들은, 즉 열방과 이방은

악으로부터 돌이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것입니다. 3:9 

 

이 모습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를 암시합니다.

창12:3에서 '모든 민족이 그로 인해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 약속 말이죠.

예루살렘도 포함해서요.

 

 3:11~20, 즉 이 책의 결말은, 모든 민족 가운데서

<예루살렘의 회복, 남은 자가 회복>되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스바냐서의 결말은, 대부분 다른 소선지서들의 결말과 마찬가지로

“마지막에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좋은 나라가 온다”는 것으로 마치죠.

본문 3:11~20도 그 얘기입니다.

 

혹자는 이것을 두고 ‘천년왕국’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하는데,

('천년왕국'이란 표현은 안 쓰는 게 좋습니다만)

어쨌든, 말세에는 마치 천년왕국 같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좋은 나라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신약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되겠고요.

장차 우리가 들어갈 ‘새 하늘과 새 땅’의 예고편이 되겠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서 봐야 할 부분은

“심판 후에 부흥온다”는 것입니다.

 

스바냐서의 키워드가 ‘여호와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1대지 (1:1~2:3)와

2대지 (2:4~3:8)도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예루살렘과, 열방에 임한다.. 는 것이었죠.

 

그 다음에 어떻게 되느냐? 그 결과는 무엇이냐? 3대지 본문이죠. 

 

-천년왕국이 이루어진다 (이 표현이 좋지 않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

-주님이 다스리시는 나라가 된다

-알곡과 가라지가 갈라지고.. 알곡들(남은 자들)이 남게 된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이 땅에 이루어진다 (미래의 예고편으로서)

 

그래서 본문에서는 ‘남은 자’에 대한 (*알곡 성도, 변화된 성도 :신약적 표현)

스바냐의 진술이 길게 나옵니다.

아래 적용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적용 “이스라엘의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롬9: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똑같은 말씀을, 지금 스바냐서 본문에서 하고 있는 거죠.

 

이스라엘이든지, 열방이든지

그들은 타락하고, 범죄하여.. ‘여호와의 날’에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 심판을 통과하고, 심판을 통해 정결케 된 이들이

‘남은 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워간다,

존귀한 주의 백성으로 회복 된다. (19~20절)

이것이 스바냐서의 전체 주제이고, 줄거리입니다.

 

이것은 미래에 일어날 ‘종말 사건’이 되기도 하거니와

우리 개인의 일생에 걸쳐 일어날 ‘구원 사건’이 되기도 하는데요.

 

본문이 말하는 ‘남은 자’

즉 여호와의 날을 통과해서 존귀케 된 자들이

어떤 모습을 지니게 될지, 절별로 살펴보겠습니다.

 

▲1. 열방(이방) 가운데도 ‘남은 자’가 있습니다

 

9절 ‘그 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

 

입술을 깨끗하게 한다..는 회개로 볼 수 있죠.

그들은 다 이방신, 우상을 입술로 부르던 자들이, 회개하고 돌이키게 됩니다.

 

10절 ‘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강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바칠지라’

 

'내게 구하는 백성들' 과 '내가 흩은 자의 딸'은 동격이죠.

그들은 이방 국가에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들이며, 남은 자들이죠.

왜냐면 그들도 여호와의 날의 심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2장에서

 

그리고 종말에는, 이스라엘만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이방도 구원됩니다.

계7장에서 보듯이, 14만4천과 더불어 ‘셀 수 없이 많은 흰 옷을 입은 무리’

즉 이방도 구원 받을 것이 예언되어 있죠.

 

여호와의 날을 통해, 열방을 심판하시는 이유 중 한 가지는,

그들 이방 중에 남은 자들을 찾아서, 구원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2. 남은 자들은 성품이 변화, 성숙된 자들입니다

 

11절 ‘그 날에 네가 내게 범죄한 모든 행위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것은

그 때에 내가 네 가운데서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들을 제거하여

네가 나의 성산에서 다시는 교만하지 않게 할 것임이라’

 

유다의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여호와의 날)으로 인해 포로생활 하며

이방인들로부터 수치와 멸시를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을 회복하시는 날에는

결코 죄로 인해서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서, 그들을 변화시키며

교만한 자들을 제해 버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열방도 같은 원리가 적용되죠,

 

12절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돌아온 남은 자들은 교만한 자들이 아니라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들'입니다.

이것은 종말론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팔복 중 첫 번째와 동일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자들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었다(마 5:3).

곤고하고 가난한 자들의 구원 사상은 비단 신약뿐만 아니라

구약에서도 많이 나타나는데, 그래서 ‘여호와의 날’을 주시는 거죠.

(시22:26, 25:9, 사11:4, 32:7, 암2:7)

 

13절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 먹고 누울지라도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오늘날 우리는 ‘믿으면 구원받는다’ 라고 쉽게 말하는데, 맞습니다만

그 과정에는, 본문과 같은 “심판과 성화의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래서 천국에 거뜬히 들어갈 자들은,

벌써 이 세상에서 ‘현재 천국, 현재 하나님의 나라’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현재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은 (‘남은 자’가 아닌 사람은)

미래 천국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13절의 '먹으며 누우나'는 목축용어 입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남은 자들의 목자가 되셔서

그들을 안전하고 평화롭게 보호하시며 공급하실 것입니다.

 

▲3. 남은 자가 얻게 될 영광, 축복

14절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시온의 딸', '이스라엘', '예루살렘 딸'은 모두 동격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신약에 와서 ‘영적 이스라엘’로 바뀝니다.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는

승리의 확신에서 비롯된 찬양이며, 기쁨에서 비롯된 외침이죠.

여호와의 심판의 날을 통과한 남은 자는.. 기뻐하며 즐거운 신앙생활을 합니다.

 

15절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남은 자‘ 참으로 거듭난 성도는.. 삶을/인생을/대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가운데 좌정하셔서 다스리시기 때문이죠. :15

 

16절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네 손을 늘어뜨린다'라는 것은 절망이나 낙심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표현이죠.

’남은 자‘에겐 그런 게 없고, 삶이 당당합니다.

 

17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거나 절망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구원자되신 하나님께서 그들가운데 거하며 함께하시기 때문이죠.

 

18절 '내가 대회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를 모으리니...무거운 짐이 되었느니라'

'대회'(모에드)는 '초막절'만을 가리키기 보다는

예루살렘에 모여서 참예해야 했던 이스라엘의 모든 절기를 가리키죠.

 

마5:4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했는데, '근심하는'과 연결됩니다.

남은 자는 ’애통하는 자들‘이고, 하나님은 그들을 모으십니다.

그래서 기쁨과 즐거움으로 참 절기를 지키게 하십니다. 14~16절

 

19~20절은 ’남은 자‘가 받게 되는 회복과 영광입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날'을 통해 심판 받았기 때문에, 회복이 꼭 필요하죠.

사실 회복시키기 위해서, 그들에게 심판을 주신 것입니다.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신바람 난다'는 말이 있는데,

남은 자는 신바람 나게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장차 완전한 천국에서 회복되어질 성도의 모습임과 동시에

오늘날 우리 각자가 처한 현실에서 이루어져야 할 '현재 천국'입니다.

 

그럼 스바냐의 이 예언은 언제 성취되었을까요?

-그 때 당시에는, 바벨론 포로 귀환으로 조금 맛을 보았고,

-5백년 후 예수님의 초림으로, 현재 천국이 이 땅에 이루어졌으며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에 올라가서, 완전한 천국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 성경은 전체로 이 이야기입니다.

-네 가지 밭이 있는데, 네 가지 밭이 모두 ’옥토‘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래 위의 집과, 반석 위의 집이 있는데, 모두가 반석 위의 집은 아니죠.

 

-좁은 길과 넓은 길이 있는데, 좁은 길을 가는 사람은 적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자가 구원 받는 게 아니라, 여호와의 날을 통과해서

남은 자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스바냐서

 

-열 처녀가 있는데, 미련한 다섯 처녀가 있고,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있고요

 

-새 예루살렘 성이 있는데, 성밖에 거할 자들도 있다는 것이죠. 계22:15

 

-많은 사람들이 잔치에 초대받았으나,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마22:13

 

마8: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여기서 '본 자손'이란, 교회 다닌다고 다 구원받는다는 뜻은 아니라는 거죠.

 

 

▲늙어서 잘 믿으려면.. 10년이라도 젊을 때 잘 믿어야 합니다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닥치면, 알곡과 가라지가 극명하게 나뉘어 집니다.

 

시련, 환난을 통해서.. 더욱 연단되어 ‘남은 자’가 되는 성도가 있고,

시편, 환난을 통해서.. 더욱 타락해서 ‘망하는 자’가 되는 교인도 있죠.

 

모든 사람들은 막연한 기대를 합니다.

‘내가 지금은 믿음이 시원찮아도, 늙으면 잘 믿게 되겠지...’

 

넌센스입니다.

늙어서, 10년 지나서, 지금보다 더 초라해진 신앙이 되기가 훨씬 더 쉽죠.

 

오늘 현재 성실히 잘 믿기를 포기하고

그저 막연하게 ‘10년이 지나면 잘 믿을 거야!’ 하고 기대만 하기 때문이죠.

 

물론 젊어서 엉망이다가, 늙어서 잘 믿는 분도 간혹 있죠.

그런 분들의 공통점은 ‘여호와의 심판의 날’을 통과한 분들입니다.

그분들에게는 ‘나중 된 자 먼저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곱게 곱게 나이만 먹으면서, ‘여호와의 날’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은

반대로 ‘먼저 된 자 나중 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종종 이런 생각이 듭니다.

좀 더 나이를 먹게 되면, 불타는 세상을 사랑하는 열망이

지금보다는 사그라지지 않을까?... (나이 든 분들은 아니라고 합니다)

 

좀 더 목회생활의 연륜이 생기면, 지금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게 되고,

더 여유로움 마음과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을까? (아니라고 합니다)

 

더 나이를 먹으면, 지금보다 기도하는 시간이 많아서

이러저런 활동보다 기도실에 머무는 시간이 많지 않을까?...

(내 스스로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그건 아닙니다.

무작정 나이듦이, 내 신앙 성숙을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만세 전에 택하신 자들은

‘여호와의 날’을 보내십니다.

질병, 가난, 가족 관계의 문제, 사회적 고립이나 격리 등을 통해서

그 심판의 시기을 통과해서, ‘남은 자’로 나를 빚어가려 하십니다.

 

그런데 신앙이 성숙할수록

‘여호와의 날’이 닥치기 전에, 스스로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괜히 맞아서 퍼렇고 꺼멓게 멍든 후에, 비로소 신앙을 성숙하는 것이 아니라,

평안하고 조용한 날에, 스스로 자정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이죠.

 

그 말씀을 습2:2~3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명령이 시행되어 날이 겨 같이 지나가기 전에,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내리기 전에,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주석 .........................................................................

 

▲1절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이 화 있을진저'

'성읍'이 구체적으로 어디를 의미하는지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으나,

본절 이후에 '선지자','제사장','성소'등이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예루살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절

'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

예루살렘의 대표적인 죄악은 패역이다.

그들은 삶속에서 하나님의 명령과 교훈을 듣지 않았으며,

자신들이 소유한 재물을 의지하였다(1:11).

또한 그들은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기를 거절하였으며

자신들의 생각과 방법대로 삶을 살아갔다.

 

▲3절

'그 가운데 백방들은 부르짖는 사자요'

'방백들'은 모든 일을 정의와 공평으로 행해야 할 예루살렘의 지도자들로,

귀족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지도자로서 백성들을 잘 인도하기보다는

먹이를 찾아 부르짖는 사자처럼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했다.

 

'그 재판장들은 이튿날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저녁 이리요'

'이튿날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저녁'이라는 표현은

재판장들이 갖고 있던 탐욕과 약탈성을 의미한다.

그들은 배를 곯은 짐승이 먹이를 남겨두지 않고 한꺼번에 먹어치우는 것처럼

불의한 재물을 축적하기 위해서 재판을 굽게 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4절

'그 선지자들은 위인이 경솔하고 간사한 자요'

그러나 스바냐 당시 예루살렘 선지자들은 간사하여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하였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대변하지 않고 오직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인간의 마음을 충족시키는 거짓 예언을 일삼았다.

 

'그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도다'

'성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코데쉬'는 성소를 의미하기보다는

'거룩한 것'을 가리킨다. 제사장들은 제사 의식을 행함에 있어서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여 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하게 바침으로 하나님을 모독하였다.

또한 그들은 율법을 준수해야 하는 직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나 행동, 곧 생활전반을 통해서 율법에 어긋나는 일들을 거침없이 행하였다.

 

▲5절

'그 중에 거하신 여호와는 의로우사...아침마다 간단(間斷)없이 자기의 공의를 나타내시거늘'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예외없이 불의를 행한 반면 여호와는 공의를 행하신다.

 

'아침마다 공의를 나타내시거늘'은 예루살렘의 재판장들이 먹이를

이튿날 아침까지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3절).

더욱이 '아침마다'는 아침이 되면 해가 어김없이 돋아 빛을 비추는 것처럼(호 6:3)

하나님께서는 변개함 없이 지속적으로 공의를 행하심을 시사한다.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

'불의한 자'는 앞서 언급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을 가리킨다(3,4절).

하나님께서는 아침마다 계속적으로 공의를 드러내시나

예루살렘 거민들은 완고하여서 자신들의 죄악과 수치를 깨닫지 못하였다.

 

▲6절

'내가 열국을 끊어 버렸으므로...그 모든 성읍이 황폐되며 사람이 없으며

거할 자가 없게 되었느니라'

본절은 열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졌음을 예시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열국이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를 가리키는지는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힘과 경제력을 믿고 교만해진 모든 열국들은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이 전혀 없을 정도로 황폐해졌음이 드러날 뿐이다.

 

▲7절

'내가 이르기를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

너의 거처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본절은 하나님께서 열국을 심판하신 일을 예시하신(6절) 목적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 갑자기 열국을 심판하신 일을 설명하시는 것은

예루살렘으로 하여금 죄로 인해 심판을 당한 열국을 보고

반성하여 돌아오도록 권고하기 위함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심판당한 열국을 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돌아서기를 간절히 원하셨다.

그래서 만약 예루살렘이 돌아선다면 이미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을

돌이키셔서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을 분명하게 선포하신다.

 

'그들이 부지런히 그 모든 행위를 더럽게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권고를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심판을 작정하신 것조차 변경하실 것이라고 선포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은 완고하여서 그 경고를 무시하고 더욱더 악을 행하기를 즐겨하였다.

 

▲8절

'그러므로 내가 일어나 벌할 날까지 너희는 나를 기다리라'

본절은 예루살렘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악을 즐겨 행하는 예루살렘의 부패와 죄악 때문에 일어난

결과임을 언급한다.

 

한편 '나를 기다리라'는 명령을 받는 '너희는'은 열국을 가리키는 듯 보이나

그럴 경우 앞절과의 문맥상 맞지 않는다.

 

따라서 '너희는'은 예루살렘의 경건한 남은 자들이나

예루살렘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나님은 자신의 권고를 무시하고 악을 행하는 예루살렘에게 심판하실 것을 선언하신다.

 

'내가 뜻을 정하고...열국을 모으리라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

'내가 뜻을 정하고'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음을 시사한다.

그 심판은 열국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한편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는 하나님의 우주적인 심판을 뜻한다(1:1-3).

심판의 목적은 하나님 자신이 죄를 얼마나 싫어하시며

죄에 대하여 분노하시는가를 온 땅이 알도록 하기 위함이다.

 

▲9절

개역 성경에는 히브리어 '키'가 번역되어 있지 않다.

혹자는 '키'를 원인으로 해석하여 '왜냐하면'으로 이해하나,

본절의 '키'는 반의 접속사로 보아 '그러나'로 해석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앞절에서는 심판을 예고하는 반면 본절은 회복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에 내가 열방의 입술을 깨끗케 하여...일심으로 섬기게 하리니'

'그 때에'는 앞절에서 언급된 심판 이후의 때를 가리킨다.

심판 이후에 벌어진 결과는 열방의 회개이다.

'열방의 입술'은 하나님보다 우상을 찾으며 찬양하던 부정한 입술이다(시 16:4).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서 그들의 부정한 입술을 정결케 하셨다.

이런 입술의 정화는 마음의 정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그 결과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아무런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우상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오직 만군의 여호와이신 하나님의 이름만을 부르게 된다.

 

둘째는 하나님을 일심으로 섬기는 것이다.

'일심으로'(쉐켐 에하드)는 문자적으로 '한 어깨'를 가리킨다.

이는 어깨를 맞대고 짐을 나르는 짐꾼의 행위에서 비롯된 것으로,

합심하여 하나님께 순종함을 뜻한다(Calvin).

 

 

▲10절

'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하수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드릴지라'

'내게 구하는 백성들'과 '내가 흩은 자의 딸'은 동격이다.

 

그들은 이방 국가에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들이며, 남은 자들이다.

 

▲11절

'그 때에 내가 너의 중에서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를 제하여'

유다의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포로 생활을 하며

이방인들로부터 수치와 멸시를 당하였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을 회복하시는 날에는

결코 죄로 인해서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변화시키며 교만한 자들을 제하여 버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유다의 남은 자들 중에는 결코 교만한 자들이 없을 것이며

오직 겸손한 자들만 남게 될 것이다.

 

▲12절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너희중에 남겨두리니'

본 구절은 앞절과 대조를 이룬다.

돌아온 남은 자들은 교만한 자들이 아니라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들'이다.

이것은 종말론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팔복 중 첫 번째와 동일하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자들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었다(마 5:3).

곤고하고 가난한 자들의 구원 사상은 비단 신약뿐만 아니라

구약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시 22:26, 25:9, 69:33, 147:6, 사 11:4, 32:7, 암 2:7).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본 구절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들'이

유다의 남은 자들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겸손히 하나님을 신뢰하며 의지하고, 하나님의 보호를 기대하는 자들이었다(사 14:30).

 

▲13절

'이스라엘은 남은 자는...입에 궤휼한 혀가 없으며 먹으며 누우나 놀라게 할 자가 없으리라' 본절은 하나님의 축복을 회복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상태를 나타낸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악행이나 죄를 범하는 말이나 궤휼한 혀가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평안과 안전을 보장받게 된다.

 

여기서 '먹으며 누우나'(이레우 웨라베추)는 목축용어이다.

하나님은 유다의 남은 자들의 목자가 되셔서

그들을 안전하고 평화롭게 보호하시며 공급하실 것이다.

 

▲14절

'시온의 딸아...이스라엘아...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시온의 딸'과 '이스라엘', 그리고 '예루살렘 딸'은 모두 동격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가리킨다. 한편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는

승리의 확신에서 비롯된 찬양이며, 기쁨에서 비롯된 외침이다.

 

▲15절

본절은 14절에 언급된 찬양의 이유이다. 그것은 모두 세 가지이다.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 대한 심판을 거두셨다는 사실은

이미 그들의 죄악이 모두 사하여졌음을 시사한다.

남은 자들은 교만한 자들이 아니라 곤고하고 가난한 자들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하나님을 떠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될 것이며,

그 결과 남은 자들에게는 더 이상 심판이 없게 될 것이다.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너의 원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때 사용하신 도구들이다.

이미 남은 자들은 범죄함과 형벌이 사라졌기 때문에

더 이상 심판의 도구인 원수들, 곧 교만한 이방 열국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이스라엘은 남은 자들은 이스라엘의 왕되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모이게 될 것이며,

하나님은 시온에 있는 그 보좌에서 왕노릇하실 것이다.

여호와는 남은 자들의 왕으로서 보호자가 되신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더 이상 악한 일이나 화나 재앙이나 두려워해야 할 일이 없게 될 것이다.

 

▲16절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네손을 늘어뜨린다'라는 것은 절망이나 낙심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삼하 4:1, 사 13:7, 렘 6:24, 히 12:12).

남은 자들은 이제 절망하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이미 지나갔으며

여호와께서 자신들의 왕이 되셔서 보호해 주시기 때문이다.

 

▲17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본 구절은 남은 자들이 손을 늘어뜨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거나 절망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구원자되신 하나님께서 그들가운데 거하며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18절

'내가 대회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를 모으리니...무거운 짐이 되었느니라'

'대회'(모에드)는 '초막절'만을 가리키기보다는

예루살렘에 모여서 참예해야 했던 이스라엘의 모든 절기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방 열국에 흩어졌던 남은 자들은 절기가 되어도

사실상 그 축제에 참예할 수 없었기 때문에 늘 근심하며 안타까워하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심판 도구인 이방 열국의 침략을 당하였으며

그것으로 인해 수치와 경멸을 당하였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당하게 된

그 경멸과 수치는 남은 자들에게 무거운 짐과 애통거리가 되었다.

 

▲19절

'그 때에'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때, 곧 남은 자들을 구원하는 때이다.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너를 괴롭게 하는 자'는 15절의 '원수'와 동일한 표현이다.

여호와께서는 이제까지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모든 이방 열국들을

심판하시기로 결정하셨다(사 60:14).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본 구절은 구원을 얻은 남은 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저는자', '쫓겨난 자', 그리고 '수욕받는 자'이다.

이것은 12절의 '곤고하고 가난한 자'들의 또 다른 표현으로,

구원받아 남은 자들은 철저한 고난을 통해서 겸손하여진 자들임을 보여준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당한 모든 고난들, 다시 말해서 '저는 것', '쫓겨나는 것',

그리고 '수욕을 당하는 것'과 같은 처참한 상태에서 완전히 회복될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칭찬과 명예, 그리고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다.

 

▲20절

본절은 앞서 18, 19절에 언급된 약속들의 반복이다.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이끌고'와 '모을지라'는 이방 열국에서 조국 이스라엘이 당한 치욕을

애통해 하며 절기 축제에 참예하지 못함으로 안타까워하던 자들이,

하나님의 이끄심과 모으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산으로 돌아오게 됨을 시사한다.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로 천하 만민 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너희 자로잡힘을 돌이킬 때에'는 2:7의 반복이다.

이것은 남은 자들이 이방 열국의 포로 생활에서 돌이켜

하나님에게로 돌아오게 됨을 뜻한다.

 

그 역사는 '너희 목전에서',

곧 머지않은 미래에 유다 백성들이 보는 가운데서 성취될 것이다.

또한 남은 자들이 돌아올 때는 포로 생활 동안에 당한 수욕과는

비교할 수 없는 칭찬과 명성과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