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학1장, 부흥을 위한 처방

LNCK 2022. 11. 18. 21:25

https://blog.naver.com/karamos/220359780371

 

◈학1장, 부흥을 위한 처방                    2012.04.29.             학개설교모음

 

성전의 기초를 놓고, 16년 동안 중단하고 있는 유다 백성들에게

B.C. 520년, 학개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자,

다시 힘을 얻어 반대를 물리치고 성전을 짓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참된 신앙적인 용기를 얻어

반대와 어려움을 뚫고 사명을 성취한 이것을 ‘부흥’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학개 선지자가 증거한 여호와의 말씀은

부흥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학 1:2)

 

예루살렘에 돌아가면 성전 건축을 하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는데,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하는 백성들이

학개의 메시지를 듣고 변한 것입니다.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역사를 하였으니” (학 1:14).

 

16년 동안이나 성전 건축을 중단하고 있던 백성들이

학개의 메시지를 듣고 마음에 감동을 받아 흥분되어

하나님의 전 건축역사를 시작하고,

그로부터 4년 뒤에 성전 건축을 완공한 것입니다.

 

부흥은 하나님의 참된 백성들에게 용기와 능력과 성령을 부으셔서

사명을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학개의 메시지를 통해 어떤 요소들이 이런 부흥을 일으켰는지

3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 학개의 메시지는 ‘도전’ Challenge 으로 시작된다

 

학개 1:5절과 7절에 두 번이나 반복되는 명령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지니라” (학 1:5)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지니라” (학 1:7)

 

학개가 주는 도전은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인생을 살다가 어려운 난관에 부딪히게 되면

좌절이나 낙심부터 할 것이 아니라, 생각부터 해야 합니다.

 

‘나의 삶 속에 하나님께서 문제 삼으실만한 어떤 요인이 있어서

내게 이런 난관이 왔는가?’를 생각해봐야 되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에게는 세 가지 생각할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째, 왕의 명령과 하나님의 명령이 어긋나게 될 경우

누구의 명령에 순종해야 되냐는 것이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에게 페르시아의 왕 아닥사스다가 성전 건축을 중단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고레스 왕을 통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건축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이 어긋날 때

우리는 누구의 명령을 따라야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결단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초대교회 사도들도 성령을 받고 복음을 증거할 때

사람들과 권력기관들의 강력한 반대가 있었습니다.

유다의 최고 권력기관인 산헤드린이 반대를 했고 로마제국도 핍박했습니다.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행 4:18)

 

그때 사도들은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행 4:19)

 

당신들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할 때는 순종하겠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날 때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옳다고 하면서

산헤드린이 아무리 방해해도, 계속해서 복음을 증거했던 것입니다.

 

결국 베드로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베드로가 자고 있는데

천사가 나타나 베드로를 깨우고 묶인 것을 다 풀어주었으며

옥문도 열어주었다는 내용이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다 백성들의 첫째 문제점은 왕의 명령과 하나님의 명령이 어긋날 때

왕의 명령을 따르고,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겠다고 하는 확고한 결단이 부족했던 것이 문제였죠.

 

▲둘째,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어려워도 즉시 할 것인지 아니면

기다렸다가 환경이 좋아지면 할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환경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면 반대가 있어도, 뚫고 나갈 힘을 주십니다.

하지만 유다 백성들은 지금은 반대가 있으니

환경이 좋아지면 그때 하겠다고 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학 1:2)

 

유다 백성들은 70년 동안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바벨론 강가에서 여호와를 찬송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느냐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가면 성전을 가장 먼저 짓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고레스 왕을 통해 칙령을 베푸시고

바벨론에서 나오게 하셨는데,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어려움이 오자

지금은 때가 아니라면서, 나중에 환경이 좋아지면 하겠다고 미뤘던 거죠.

 

이들은 적극성이 부족했습니다. 즉각성도 부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면 우리는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지금은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은

평생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분명합니다. 지금 상황이 어려워도

먼저 성전을 지으면 내가 기뻐하고 축복할 것이다.

내가 명령하였으면 즉각적으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어디를 가도 성질이 급해서 빨리하려고 합니다.

또 여행 가서 돈 조금 있다고 잘난 척하는 사람은.. 한국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한국 사람들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두각을 나타냅니다.

한국에서 꼴찌 하던 아이들도 미국에 가면 1등 합니다.

아무리 미국에서 1등 하는 아이들도 한국에 오면 성적이 안 좋습니다.

 

왜냐면 한국 사람들은 일단 어딜 가든지 교회를 먼저 짓고 보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어디를 가든지 교회 개척하는 것에는 1등입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로 부족한 것이 있어도, <신앙적 적극성>이 있는 것입니다.

새벽기도에 온 성도가 나와서 기도하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한국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유다 백성들은 적극성이 부족했습니다.

 

▲셋째, 그들이 경제적으로 가난한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했습니다.

왜냐면 에스겔 선지자가 유다 백성들에게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

부자로 살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기 때문이죠.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희를 모든 더러운 데서 구원하고 곡식으로 풍성하게 하여

기근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또 나무의 실과와 밭의 소산을 풍성케 하여

너희로 다시는 기근의 욕을 열국에게 받지 않게 하리니” (겔 36:28~30).

 

에스겔 선지자가 고레스 칙령이 반포되기 50년 전에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되면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했습니다.

 

하지만 성전 건축을 중단하고 있는 유다 백성들에게는

전혀 물질적인 풍요가 오지 않았습니다.

약속이 실현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면

물질적 풍요를 주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는데

왜 이렇게 가난하냐? .. 는 것입니다.

 

얼마나 그들이 가난했는지 한번 보십시오.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학 1:6).

 

농사를 지으려고 씨를 많이 뿌려도 거두는 것은 조금이고

월급을 받으면 이상하게 전대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내가 한재를 불러 이 땅에, 산에, 곡물에, 새 포도주에, 기름에,

땅의 모든 소산에, 사람에게, 육축에게,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느니라” (학 1:9~11).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학 1:9).

 

성전부터 지으라고 했더니 성전은 안 짓고 자기 집부터 지었기 때문에

약속하신 물질의 복을 주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의 반대로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사람의 명령을 따라 행하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을 소극적으로 행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물질적인 축복을 의도적으로 거두셨다는 것입니다.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는 여러 부분이 다르지만

물질 문제에 관해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은 옛날부터 금욕주의가 강했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팔고 거지처럼 살라고 합니다.

 

하지만 개신교는 가진 것을 내놓으라는 것은 동일하지만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차고 넘치도록 채워주신다는 것이 다릅니다.

 

다 내어놓아도 하나님께서 복을 부어주셔서

더 낼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개신교가 들어간 나라는 아무리 가난해도 나중에 보면 부유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모두 드려도

하나님께서 내게 더 주실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학개를 통해 말씀하신 것은

너희가 성전 건축을 게을리하여 물질의 복을 주려다가 그것을 불어버렸으니

다시 순종하여 성전을 지으면 하늘 문을 열어 너희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2. 학개의 메시지는 분명한 명령 Command 을 주고 있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학 1:8).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에게 다시 일어나

성전 건축을 계속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때가 안 되었다고 핑계 대지 말고, 방해가 있다는 변명도 하지 말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산에 올라가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유다 백성들의 우선 순위를 교정하라는 명령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건축 기술이 없어서 성전을 못 짓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가 없어서 성전을 못 짓는 것도 아닙니다.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학 1:9).

자기 집을 짓는 것은 잘하면서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지금 어려우니 나중에 하자고 하여 “우선순위”가 뒤로 밀린 것입니다.

 

물론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가족들이 살 집을 짓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성전 건축보다 우선해야 할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이 질문에 미워한다고 대답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아내에게 이끌려서 할 수 없이 앉아있는 사람이 있을지는 몰라도

그런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대답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만으로는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복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돈보다는 아니거나,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명예보다는 아니라면 복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제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집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전을 짓는 것이 너희에게는 먼저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선순위에 혼란이 온 것은 사소한 문제 같아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도둑이” 명품점에 가서, 물건을 훔치는 것이 아니라

가격표를 뒤바꿔놓았다고 합시다.

 

5백만원과 1백만원 물건의 가격표를 서로 바꿔놓고

싼 것(백만원 제품)만 다 사서, 다시 비싸게 (5백만원으로) 파는 것입니다.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을 뒤로 미뤄놓고, 가치가 작은 일부터 먼저 한다면

가격표가 뒤바뀐 백화점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신약성서에서 예수님께서도 우선순위의 문제를 중요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우선순위로 두고 구하면

나머지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은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와 같이 신학교를 졸업한 사람 중에 한 명이

젊을 때 돈을 벌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젊을 때 공부하고 헌신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 그 사람은 굉장히 형편이 어렵습니다.

오히려 제가 넉넉히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면 하나님께서 나머지는 다 책임져 주십니다.

 

 

◑3. 학개의 메시지는 ‘격려’ Consolation 를 주고 있다

 

학개 선지자는 자신이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유다 백성들을

네 가지로 격려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확신을 주고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학1:13).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학2:5).

 

우선순위를 교정하면 성령님께서 임재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며 도와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둘째, 일이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주고 있습니다.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2:9).

 

유다 백성들 중에는 50년 전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보고

과거에 사로잡혀 옛날이 좋았다면서 울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왜 지나간 과거를 붙들고 있느냐고 하시며

너희가 순종하면 미래에 더욱 큰 영광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시켜 주십니다.

 

▲셋째, 순종하면 물질의 복을 내려 주리라는 확신을 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을 추억하여 보라.

9월 24일 곧 여호와의 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추억하여 보라

곡식 종자가 오히려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었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학 2:18~19).

 

성전 지대만 놓고 성전을 완공하지 않았을 때는 복이 없었지만

다시 순종하여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했으니

하나님께서 복을 다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물질의 복을 받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삶의 우선순위를 바꿔보십시오.

자신이 제일 사랑하는 것을 뒤로 하고 하나님을 사랑해보십시오.

그리고 내가 제일 헌신하는 것, 내가 돈 제일 많이 쓰는 것을

하나님을 위해서 해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입니다.

 

대한민국 역사에 지금처럼 잘 사는 때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고,

여러 가지가 부족해도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의 복을 주신 것입니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 2:23).

 

그 날은 종말을 의미합니다. 종말이 올 때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너를 취하여 인을 삼으리라’는 것은,

항상 지니고 다니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스룹바벨과 항상

동행하시고 영원한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결론

 

학개서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지금까지 설교를 다 잊으셔도 이 말은 기억해야 됩니다.

 

“사랑하는 나의 자녀들아,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

내가 너희를 내 독생자 예수를 대신 죽게 하기까지 사랑한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지만 나를 제일 사랑하지는 않는구나.

나를 제일 사랑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너희가 누릴 복을 다 누리지 못하고 있단다.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너희에게 명한 일을 계속 하여라.

어려움과 반대가 있어도 좌절하지 마라.

소극적으로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하여라.

나중에 한다고 하지 말고 지금 행하여라.

 

다른 일 먼저 하고 하겠다고 하지 말고 그 일을 먼저 하여라.

그리하면 너희의 행하는 일이 성공하게 될 것이다.

너희의 성전이 완성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복을 줄 것이다.

내세의 복도 주겠거니와 이 땅에서 현세의 복도 줄 것이다.”

이것이 오늘 학개 선지자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삶의 현실을 생각해보고 순종하며, 우선순위를 바꾸어 행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 부흥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를 통하여 세계에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을 이루시고

이전 영광보다 나중 영광이 더 크리라는 약속을 이루실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적용 /  1:1~15  성도의 삶은 우산 펴기와 같다

 

1:7~8  회중과 하나님의 집의 차이  / 잭 푸닌          

 

................................................................

 

서론

 

교회 역사를 공부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 종교개혁사입니다.

그런데 종교개혁사를 공부하다 보면 책마다 저술하고 있는 역사가에 따라

사용하는 용어가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개신교 역사가들은 종교개혁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개혁이라는 말은 기존의 종교가 잘못되어 이것을 새롭게 리폼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이라는 용어를 쓰면

그 역사가는 개신교 역사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 가톨릭 역사가들은 ‘반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로마 가톨릭이 잘하고 있는데 반동분자들이 나와 교회를 갈라놨다고 해서

‘개신교 반동’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아마 Contrareformatio

 

책 제목만 봐도 개신교 역사가인지 가톨릭 역사가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세속적인 역사가들은 혁명이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산업혁명, 농업혁명처럼 종교계에 큰 혁명이 일어났다고 해서

‘개신교 혁명’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학개서에 일어난 변화는 혁명도 아니고, 개혁도 아니며,

반동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