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북한선교, 마요한 목사 P2

LNCK 2022. 11. 21. 17:22

[북한선교] 마요한 목사님 2편 [김북한목사] - YouTube

 

 

◈북한선교, 마요한 목사 P2                       <P1 보기

 

*진행 : 김북한 목사 (괄호, 검은색 글자)

*출연 : 마요한 목사 (괄호 없음, 파란색 글자)

 


(*연변에서 성경통독 사역장을 이끌다가, 중국 국경수비대에 체포되어서

북한으로 넘겨서, 청진 보위부에서 심문받아가, 상급기관으로 이첩되는 상황)

 

갔더니 깊은 산속에 어떤 건물들이 나오고, 계호원들이 있더라고요. 
(계호원: 북한의 교도관, 戒護員, 폭력과 고문까지 담당하므로 아주 극혐 존재)

 

그 건물은 '도 보위부' 시설이었어요.   
정치범 이라든가 간첩 같은 사람들을 특별히 취조하는 그런 시설이었죠.

저는 그동안 북한에 살면서, 북한에 그런 시설이 있는 것을 전혀 알지 못 했는데 
가 보니까, 그런 시설이 있더라고요. 
또 거기에는 민간인들이 전혀 접근 못하는 곳이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산이 벌거숭이가 아니에요. 
사람들이 접근 못 하는 지역이라서, 나무를 안 해 가니까,

산에 나무가 그대로 심겨져 있었어요.

거기에는 독감방 밖에 없었어요. 다섯 개가 있더라고요. 
들어가기 전에 옷을 벗겨서 다시 검열하고, 저한테 번호를 줬어요. 

거기는 계호원들이 저의 이름을 물어 볼 수 없고 
내가 무슨 일 때문에 여기에 들어왔는지 물어보는 것 자체가 다 금지되고.. 
그건 취조관들만 알아야 되는 부분이었어요.

그러니까 저한테 붙여진 호칭은 '4번'이었어요.
그리고 감방으로 안내하는데 
독감방인데 감방마다 사람들이 한 명씩 다 차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저를 한 사람이 들어있는 방에다 넣는 거예요. *방이 모자라서
아마 취조가 거의 다 마친 사람 같아 보였어요. 

그리고 그 곳이 어둑어둑하니까 잘 안 보이잖아요. 
그냥 이렇게 어두침침한 데서 보는데, 저랑 감방을 같이 쓰게 된 분이
얼핏 봐도 굉장히 몸이 야위었는데, 그런 분이 마룻바닥에 앉아있더라구요. 

감방 규칙이 있었는데, 절대 서로 말하면 안 되고, 
몸을 움직여도 안 되고 (바른 양반 자세로 앉아있어야 함)
서로 두 명이 마주 봐도 안 되고 
밤에 잘 때는 한 사람이 머리를 저쪽에, 다른 사람은 반대편에 두고
서로 얘기를 일절 못 하게 하는 거죠.

그리고 담요를 얇은 것을 주는데, 무의식 중에 밤에 추워서 
그 담요를 머리까지 당겨서 쓰면 안 돼요. 항상 얼굴이 보이게 하는 거죠.  

 

만약 그러면 또 밤에 새벽 2시, 3시라도 "기상!"하고 호령하면
전체 방이 일어나서, 그 담요 올려 덮은 한 사람 때문에 잠 못 자고 하니까...

그런 일들이 계속 비일비재하죠. 
어쨌든 들어가니까 그런 일들이 있더라고요. 

 

보니까 체구는 큰 사람인데, 거기에 오래 있다 보니까 아주 몸이 야위었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아, 나도 이제 저렇게 되겠구나' 
그러니까 막 절망감이 몰려오는 거예요. 
'아, 나도 저렇게 말라 죽겠구나.. 내가 저걸 어떻게 견딜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하루가 지났어요. 
다음 날에 그분을 불러 내더라고요. 

그분(감방 동료)이 몇 시간 동안 있다가 들어왔는데 
아마 일을 시켰나 봐요. 손과 옷에 흙이 묻어 있었어요.

감방에는 작은 화장실이 있었고, 거기에 (작은 수도 같은 게 있어서)
먹은 그릇도 씻을 수 있게 되어 있어요.

그분이 거기에 들어가서, 먼지를 털어내고 몸을 씻는데 
보니까 키는 한 170이 넘는 분이었어요.
그런데 허벅지가 한 줌 밖에 안 되어 보이는 거예요. 진짜 뼈밖에 안 남았어요.

제가 그 모습을 보니까, 너무 기가 막힌 거예요.
'이제 나도 저렇게 되겠구나...'

그러면서 너무 억울한 마음이 드는 거예요.
'내가 어쩌다가 하나님을 알아가지고...' 

예전의 제 신앙을 온데간데 없고..

(그게 진짜 신앙이 아니었으니까요!)
(*그저 기복주의, 성공주의, 기적주의 신앙이었던 거죠)

 

그렇지만 과거 그때는, 저도 제가 진짜 신앙인 줄 알았어요. 
(*기적의 하나님이, 저를 빼내 주실 줄을 너무 당연히 믿은 거죠. 성경 베드로처럼)
 
물론 제가 성경의 모든 위인들이 고난을 통해서 크게 쓰임 받은 것을 보면서,
'제게 고난을 주소서'라고 막 기도하곤 했었는데,

근데 정작 이런 고난을 당하고 보니까
내가 감당못할 고난 앞에 서니까, 내가 허물어지는 거예요.

이러다가 뭐 운이 좋으면 정치범 수용소로 이송되고 
아니면 처형 당하는 거죠.

제 혐의를 봤을 때는 완전히 중범죄니까 
공개 처형인 거죠. 종교에 관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공개든지 비공개든지 '나는 사형되든지.. 정치범수용소로 간다...' 
(*정치범수용소는 감옥 중에서 제일 힘든 곳)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저에 대해 수집한 자료만 해도, 충분히 그런 거예요. 

-남조선 선교사들과 같이 사역했고, 
-미국 선교사들과 같이 사역했고,
-거기다가 탈북자들에게 성경을 계속 가르쳤고, 
북한에서 제일 중하다고 하는 건, 제가 다 했던 거예요. 

 

내가 중국에서 2년 있었다면, 2년을 730일로 세분화해서
무엇을 했는지, 심지어는 시간 단위로 쪼개서 다 쓰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취조를 합니다.

거기다가 취조하러 들어갈 때면, 들어가는 문의 높이가 뭐 1미터도 안 되잖아요. 
거기로 들어가기 전에, 수갑 차고 족쇄까지 차요.

족쇄가 장화처럼 생긴 족쇄에요. 마치 중세 시대의 족쇄처럼,
철근을 둥그렇게 장화처럼 만들어, 한쪽 다리가 장화처럼 거기에 들어가게 하죠.
그걸 한쪽 다리에 차는데, 허벅지까지 올라와요. 
그러면 무릎 관절이 안 굽혀지기 때문에, 발을 끌기만 하지, 뛰지는 못하죠.

또 거기 용접한 돌출 부위에 살이 닿으면, 피부가 벗겨지고 피가 나기도 해요.
그걸 한 쪽 다리에 차고 취조실까지 걸어가는데, 
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요... 

제가 거기서 취조를 받는데, 어떤 때는 밤12시, 밤 1시
그때 취조한다고 저를 불러내요.
이게 다 심리전이에요...


저와 같은 방에 계시던 분은.. 한 열흘 같이 있었을 거예요.
그 분의 얼굴을 제가 간혹 볼 때가 있었는데, 가끔 돌아서면 볼 때가 있죠.
(보통은 서로 등을 돌리고 앉아 있어서, 얼굴을 볼 기회가 없었죠)

제 상상에는, 이분이 얼굴도 완전 험상 궂고, 지치고, 절망 상태이고.. 
이럴 것을 상상했죠.

근데 그 분의 얼굴을 봤는데, 살이 싹 빠지고 야위었는데,
그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아요. 그 어둑컴컴한 감방에서...

그 뭐랄까, 평온한... 어떤 그런 것들이
갑자기 제 마음에 드는 생각이, 내가 천사를 보는 것 같았어요.

그때 제 마음에 '이 분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라는 생각이 떠올랐고,
혹은 '이 사람은 나의 백성이다' 라는 음성 같은 것이 딱 들렸어요.

'아~ 이 분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구나!'

제가 갑자기 그 분 모습을 뵈면서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저렇게 평온할 수 있지?, 저렇게 차분할 수 있지?'

우리가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없잖아요... 
그 다음부터 이분과 뭔가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근데 간수가 계속 24시간 복도를 왔다갔다 하면서 지키는 거예요.

그런데 수인(수감자)들이 똑바로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것이 너무 힘드니까 
가끔 졸잖아요. 고개를 떨구기도 하고...
그러면 또 간수에게 매를 맞고, 기합 당하고 하는 거예요.

그 감당 마룻바닥이 나무로 되어서 약간씩 삐걱삐걱 소리가 나요.

우리가 정 자세로 앉아 있으면

다리에 피가 안 통하고 막 저리고 하니까, 다리를 펴서 움직이잖아요.
그러면 삐걱 소리가 나게 되고... 그러면 몸을 움직였다고.. 또 혼나는 거예요.

근데 어쨌든 그 간수 발자국 소리가 저쪽으로 멀어지면,
우리 감방은 이쪽 끝에 있었으니까
손으로 서로의 어깨를 치고, 자기 손바닥에 글을 써서 서로 대화하기 시작했어요.

그분이 아닌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분이었어요!
그런데 말로 대화하지 못하니까, 많은 걸 나누지는 못하잖아요.

틈틈이 그렇게 소통했는데, 이분도 중국에 갔다가 선교사님을 만나서 훈련 받고
북한에 들어와서 잡힌 것 같아요.

 

(아~ 북한에 복음을 전하겠다고 건너왔다가 잡히신 거겠군요)

네, 근데 이분이 너무 신앙이 신실한 분이었어요.
진짜 복음을 전하다가 잡힌 것 같아요!
  
며칠 후에 이 분이 감방을 나갔다가 들어왔는데,
그때는 제가 문 앞쪽으로 앉았고, 그 분이 제 뒤에 앉았는데,
제 등을 뒤에서 쿡 찌르더라고요.

보니까 제 손에다 생옥수수알 한 줌을 쥐어주셨어요.
밖에 나가서 일하다가, 그 옥수수가 있으니까
그걸 옷 섶에다가 이렇게 넣고 와서 제게 준 것이죠.

밖에서 들어올 때 또 다 검열하거든요.
그러다가 그런 것이 걸리면 또 엄청 혼이 나요.

그런데도 그걸 자기 옷 섶에 숨겨와서, 저한테 주는 거예요.
근데 그 때는 제가 아직 살이 빠지기 전이었거든요.

그래서 그 생옥수수 알이 정작 필요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었어요. 
그런데 저한테 그걸 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아니, 괜찮다!'고 하며 사양하는데,
그 분은 자기에게도 조금 있다고 보여하면서 강권하기에
제가 그걸 받아서 씹어 먹었어요.

그래서 또 씹어먹으면서 소리가 나면 들키니까,
입 안에 털어넣고 소리 안 나게 녹여서 먹는데
그렇게 달 수가 없고, 
또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이런 거구나!'
제가 그때 느낀 게 뭐냐면, '아~ 여기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구나!'

하나님은 나를 버리셨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때 하나님을 계속 원망하고 있었는데,

내가 지금 완전 좌절하고 실족한 상태니까
하나님은 이런 천사같은 사람을, 나를 위해 예비하셨고,
이런 방법으로 나를 위로하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때부터 내가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감방 벽에 보면 핏자국도 있고,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썼는지, 막 글도 쓴게 있더라고요.

중국 사람(조선족?)도 잡혀와서, 거기 벽에 뾰족한 것으로 글을 썼더라고요.
'나는 중국에서 어디서 살다 왔는데, 우리 가족도 내가 여기에 있는지 모르고,
나는 납치되어 와서...'

그런 글을 보니까, 진짜 소름 끼치죠.
그러니까 저는 '아, 여기서 내가 살아나갈 수 있다'라고 생각을 안 했어요.

그때까지도 저는 죽음에 대해서 굉장히 두려워했었어요.
혼자 상상으로 '총알에 맞으면 어떤 기분일까?' 이런 생각을 계속 했어요.

근데 기도를 계속하다 보니까
제 믿음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어요.

(이제 진짜 믿음, 강건한 믿음을 갖기 시작하신 거네요!)

 

그 감방 동료가 떠난 다음에도, 나는 계속 기도하며 지냈는데...
그때 감사한게 뭐였냐면, 중국에서 성경을 많이 외웠고, 
찬송을 외웠던 것... 그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요!

그래가지고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 주께 나오니, 주 여호와는 광대하시도다'
그런 찬양들과 찬송가들..

그전에는 찬양을 불러도, 막 별 의미 없이 불렀었는데,
그때는 한 문장, 한 문장을 음미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부르게 되었죠.
'아, 이곳에서도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계속 그렇게 기도하면서 마음의 평정을 제가 되찾았죠. 


제가 거기 '도 보위부'에 취조받은지 3달 되니까
점차적으로 그 분(감방 동료)처럼 되어가기 시작했어요.

간혹 밖에 데리고 나와서, 햇볕을 쬐이게 해요.
이렇게 여러 명 쇠사슬을 줄줄이 연속으로 묶어서요.

그때 옆방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비로소 보게 되죠.
보니까 옆 방에 있던 사람들이 중국에서 금방 잡혀 왔을 때는 살집이 좋았는데,
한 열흘 후에 만나서 보면, 살이 좀 빠졌다가
한 달 후에 보면, 몰골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보였어요.
아마 서로가 그렇게 보였겠지요.

그런 거 보면 너무나 슬프고 그런데..
하나님이 제 마음에 평강을 주신 것 같아요. 점차적으로...  

제 마음이 점점 죽음에 대한 불안에서 떠나가지고...
그때는 뭐 하루에 16시간씩 이렇게 취조를 받을 때였었는데,
그 때는 기도하면서 취조받는데, 진짜 영적인 싸움이었어요.

저를 취조하는 취조관이, 
진짜 영화에서 나오는 정말 일본 순사 같은 그런 취조관이,
항상 책상에 한쪽 팔꿈치를 괴고, 그 손으로는 담배를 물었다 뺐다 하고 있어요.

그러면 저는 그 맞은 편 의자에 수갑과 족쇄를 차고 앉아 있죠.

취조관이 때때로 "기도 다 했니?" 하고 물어봐요.
제가 즉답을 안 하죠.

어떤 때는 제가 소름이 끼칠 때도 있어요.
"내가 오늘 네가 무슨 기도했는지 맞춰볼까?" 하는 거예요.

그러더니 진짜로 제가 앉아서 기도한 내용을 거의 다 말해요.
'하나님! 이 나라의 위정자들이 예수 믿고, 변화 되고
이렇게 이 나라가 하나님 나라가 되게 해 주시고,
그리고 저 앞에 있는 저 취조관의 마음을 붙들어 주시고...'

이렇게 내가 속으로 기도한 걸, 다 그대로 말하더라고요.
그가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들을 취조했는지... 제가 그제야 알았어요.


하루는 제가 어떤 취조실로 들어갔는데,
진술서들이 이렇게 수북히 쌓여 있었어요.

"이게 다 너와 같은 그 예수쟁이들의 진술서다!" 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사진 자료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저한테 보여줬어요.
'이 사람 알아? 이 사람은 조선족인데,  
어디서 뭘 하고, 뭐 장춘, 심양 이런 데서 뭐(전도) 했던 사람이야.
그리고 이 사람 알아? 남조선 선교사야!'

자료를 다 가지고 있었어요.
그 다음 방에 들어가니까, 기독교 서적들도 있었고, 성경책도 또 있었어요.
그러니까 기독교에 대해서 너무 잘 아는 거예요. (신앙은 전혀 없죠)

그리고 내가 사역하면서, 그냥 얼굴도 잘 모르고
조금 귀로 들어서 아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의 사진이나 자료들도 다 있는 거예요.
그가 "이 사람 알아? 알아?" 하면, 
나는 "모른다!, 나는 그런 사람 만난 적이 없다"고 하는데,

귀로 들어서 아는 사람이에요. 스쳐 지나가며 만난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들까지, 제 주변 인물들을 다 알고 있더라고요.

내가 그걸 보면서 '아~ 이게 영적인 싸움이구나!'
(*북한 보위부가 그토록 샅샅이 다 알고 있었는데, 
조심해서 사역하면 되는 줄로, 그냥 그들이 모르는 줄로 알고 있었던 거죠. 
영적인 싸움에서 방심해서 밀렸다는 뜻인듯.. 국내도 사역자들도 조심해야)


나보고 진술서를 쓰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우리 생활이 단조롭잖아요.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서 예배 드리고,
또 성경 읽고, 저녁에도 또 예배... 이것 밖에 없어요!

그게 계속 반복이에요.
그래서 '그런 거 밖에 없다. 그런데 어떻게 쓰냐?'고 했더니

 

'그냥 매일 그걸 다 체험하고, 보고, 듣고 한 거를 다 쓰라고!'
'그리고 그 날에 읽었던 내용이 뭔지 다 쓰라!' 

(그게 기억이 다 나는가요?)

그게 막연하죠. 그런데 그걸 몇 백장씩 써야 돼요.
근데 속으로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네가 성경을 봤지 않냐? 그걸 다 써라!" 
이런 마음을 주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제 마음에 '혹시 이걸 보고는, 취조하는 사람이
예수님에 대해서 믿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마음을 주신 거예요.

그래서 제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다 요약해서 썼어요.
진짜 이렇게 몇 백 장을.. 무릎을 꿇고 썼어요.

그러다 보니까 무릎에 굳은 살이... 그 후 몇 년 동안도 없어지지 않았고
한국에 와서도 그때 그 무릎의 굳은 살이 한 동안 계속 되었었지요.

그거 때문에 제가 엄청 더 고초를 당했어요.
"야, 진짜 예수쟁이들은 죽어도 안 바뀐다!" 이러면서

"내가 장담하는데, 내 목을 걸고 너를 반드시 죽인다!"

그러니 저는, 제가 살아서 여기를 나가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마지막에 취조가 거의 끝났는데, 제게 힘이 싹 없어졌어요. 
의자에 앉아 있는데 또 계속 천길 나락으로, 계속 떨어지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리고 하루에 5분, 10분씩 운동 시간을 주는데 
일어나지를 못하는 거예요. 힘이 다 빠져서! 

그런데 또 우리를 불러내서 무슨 일을 시키려고 해요. 
밖에 나가서 운동시간에 철장 담장 너머로 보면, 
그 봄에는 파랗게 되었다가, 그다음에는 북한에 진달래가 많잖아요. 

산에 꽃이 막 폈다가 그게 지고, 
또 파랗게 되고.. 이걸 다 보는데 

'아~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가 저렇게 아름답고 
나에게 이제 어떤 시간이 만약 주어진다면 
진짜 저런 산속에 초가삼간 지어놓고 살더라도
주님을 찬양하면서 너무 감사하면서 살고 싶다!' 이런 마음이 들더라구요. 

그런데 '그런 일은 없을 거다' 하는 마음이 들면서 
김매기(밭에 풀뽑기)도 시키고 할 때,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찬양이 나오는 거예요. 

가사로 부르는 게 아니라, '음음..' 이렇게 흥얼거리는 거죠.
막 찬양 부르며 일을 하는데, 뒤에 있던 사람이 

"큰 일 나려고, 죽으려고 그러냐?"고 하는 거예요.
그 사람도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이더라고요. 

뒤에 저기 보위지도원이 있어서 들리는데,
나도 모르게 막 찬양할 때가 있는 거예요.
나도 흠칫 놀랐어요.


어떤 때는, 나도 그때는 너무 힘드니까 
하나님 앞에 '빨리 데려가 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때는 '차라리 죽는 게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 거죠.
'어차피 나는 견디지 못하고 죽게 되어 있다..
이런 여윈 몸으로 몇 달 더 견디겠냐?' 라는 생각이 들면서

'하나님, 나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죽어도 주님 품에 안기겠는데... 그러니 빨리 저를 데려가 달라고..' 

그런 기도를 할 때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시는 마음이 
'아직 때가 아니다. 때가 아니다!'

'아니 여기서 때가 아니면 어쩌라고? 
내가 여기서 할 일이.. 그럼 감옥(정치범수용소 등)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는 건가?'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저를 나오라고 하더니 
군 보위부에서 저를 호송하러 왔더라고요. 

'왜 나를 군대로 호송해 가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도 보위부에서 나올 때 
'일체 여기서 있었던 상황들에 대해서는 비밀로 해라. 발설하지 말라!'
그렇게 하겠다고 손가락 도장 다 찍고 나왔는데,

이제 군 보위부로 가서 또 취조를 받는데 
거기 가는데 '여기서 있었던 일들은 일체 말하지 말라!'

그러니 이제 제가 '도 보위부'에서 '군 보위부'로 이감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또 다시 저를 취조하는 거예요.

그냥 거기서는 '도 보위부'에서 넘겨진 자료가 있는 모양인지
깊이 있게 취조를 안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이제 '군 보안소' 쪽으로 저를 넘기는 거예요.
(*중국 국경경비대 체포→회령 보위부→함경도 도 보위부→군 보위부→군 보안소)

그래도 그 악명 높은 '정치범 수용소는 아니네!' 하고 안심했죠.

군 보위부에서 군 보안소로 이관되니까, 
제가 약간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거기서도 또 취조를 하더니, 저를 '분 주소' 쪽으로 옮기더라고요.

(한국으로 말하면 파출소죠) 

파출소(요즘 말로 지구대)에는 감방이 없잖아요.
그러니 창고 같은 곳을 감방으로 대신 쓰는 거예요.

거기서는 식사가 안 나오니까, 저희 집에 알리는 거예요.
집에서 식사를 가져다 줘도 좋다는 거죠.
 
저희 부모님들 면회는 안 시키고,
밥이랑 들여보냈는데, 
'와~ 이 도시락에다가 몇 달 만에 흰 밥에다, 거기에 고기에 계란 프라이..'
해가지고 막 들여보냈는데, 

이걸 먹지 못하겠더라고요. 몇 달 동안 쫄아들었던 위장이 받질 않더라고요.
그래서 옆에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조금 먹었는데 
금방 속이 안 좋아지면서, 설사로 그냥 막 빠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냥 아무 힘도 없이 쓰러지게 되어서 
이 사람들이 봤을 때는 내가 죽게 생긴 거예요. 

여기다 놔뒀다가는 시신이 될 것 같아서, 
저희 가족들을 불러서 '데리고 나가라'고 해서, 드디어 제가 나왔어요. 

근데 그때 제가 형량을 강제노동 6개월인가 나왔던 거 같아요. 
근데 몸이 너무 죽게 되니까 일시적으로 내보낸 거죠. 


제가 이렇게 등에 엎혀 나가는데, 
'하나님이 나를 살리셨다' 는게, 그때 깨달아지는 거에요. 

그때 갑자기 하나님 앞에 굉장히 미안해지더라고요. 
왜냐면 내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많이 원망하고, 불평하고.. 

그게 다 생각이 난 거죠.

'아 근데 내 죄목은, 북한에서는 살아나올 대상이 아닌데..' 
내가 이렇게 나간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내가 막 내 살을 꼬집어 봤어요. 근데 현실인 거예요! 

그래 가지고 하나님 앞에 너무 미안해 가지고 
'주님, 제가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용서해 달라고.. 왜 나를 살리셨냐고?'
막 기도했어요. 

근데 그때 막 그런 마음을 주시더라구요. 
'내가 너를 살렸다. 내가 달린 거다. 
근데 네가 특별해서도 아니고, 잘나서도 아니고, 너의 신앙이 좋아서도 아니다. 

그만큼 내가 북한을 사랑하기 때문이고, 
네가 이 북한을 위해서 해야 될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을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그때 나오면서 서원한 부분이 있어요. 그게 뭐냐면 
'이제 내가 다시 (중국에, 한국에) 가겠습니다. 
내가 이제 가면, 이제는 영원히 주의 종으로, 주의 길만 가겠습니다. 
한국에 가서 신학 공부 해서 주의 종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서원했어요. 

제가 한국에 들어와서 보니까, 한국에 있는 많은 분들이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셨더라고요. 

온누리교회에 보면 <무릎 선교회>라고 있는데, 
거기 분들도 저를 위해서 엄청 기도해 주셨고 

또 어디 선교회에서도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셨고, 
제가 북한에 북송된 다음에, 또 선교사님들이 중국에 날아 들어와서 
사람들을 북한에까지 저를 살리려고 내보냈어요! 

저를 살리려고 그분들이 진짜 모든 것들을 백방으로 다 애써 주신 거죠.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그렇게 역사해 주신 거죠.


제가 나와서 한 달 정도 되니까,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어요. 
굉장히 하나님이 빠르게 회복시켜 주셨어요. 

회복되는 즉시 저는 '빨리 가야 된다!' 한 시가 급한 거예요. 
'빨리 훈련받고, 이제는 내가 서원 했기 때문에 그 길을 가야 된다!'

저희 부모님한테도 제가 그런 얘기를 했어요. 
저희 부모님한테 복음도 전하고, 이렇게 영접기도도 하고 
그리고 제가 그 북한에 있는 기간 동안에 혼자서 예배도 주일에 드리고 

'아 지하교회 성도들이 예배 드린다는 게 이런 마음이겠구나..' 
라듸오를 켜놓고 예배를 드렸거든요.

밤에는 라디오를 가지고 극동방송 듣고.. 그렇게 하는데 
제가 제일 갈급했던게 뭐냐면, 
수개월 동안 예배를 감옥에서도 드렸지만, 

믿음의 동역자들하고 함께 드리는 그 예배,
공동체의 예배.. 그게 그렇게 귀하고 그리운 건지, 그때 알았어요. 

그 전에는 그걸 너무 당연시하고 일상적인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 예배에 대한 그리움이, 갈급함이 얼마나 컸는지요... 
그게 또 예배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때 알았어요. 

제가 그때 잡히지 않았으면 영원히 만나지 못할 부모님들, 
그 부모님들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는 것도 제 기도 제목이었는데, 
하나님이 다 응답해 주신 거예요. 

그래서 제가 '제 부모님께 빨리 (중국, 한국으로) 가야 된다'고 했는데 
저희 부모님이 진짜 놀랍게도 저를 이해해 주셨어요.
 
저희 아버지가 진짜 1945년 때부터 공산당원이었고 
북한의 간부였고, 당밖에 모르고, 70세 될 때까지도 일한 그런 간부였는데 
아버지가 저를 이해한다 하니까, 제가 정말 놀랐어요. 

저희 아버지가 '그래, 너도 네 갈 길이 있으니까 (그 길을 가라) 다 이해한다. 
그러니 너도 네 갈 길을 가라!' 이렇게 허락해 주는 거예요. 제가 너무 놀랐어요. 
아마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 같아요. 아버지 마음을 변화시켜 주신 거죠.

'그런데 이제 가면 다시 못 보는데, 가더라도 적어도 한 1년만 같이 있자!' 
이러시는 거예요. 

저는 하나님 앞에 서원해서 빨리 그 길을 가야 된다는 갈급함이 있었고 
그 다음에 더욱이 예배에 대한 갈급함이 있어서.. 
'저는 가야 된다고...' 
부모님들이 그 마음을 어떻게 설득 하겠어요. 

그래서 두 번째도 역시 가족들에게 얘기 못하고.. 다시 탈북하게 됐죠.
(*첫번째도 황해도도 돈 벌러 간다고 말하고 탈북했음)


(그 때가 몇 년도 였나요?)

어~ 2001년 이었어요.
그 길로 연길까지 들어갔어요. 

근데 연길에 가 보니까, 굉장히 비상이 걸렸더라고요.
동역자들이 다 잠수 타고, 제가 거의 만날 수 없었어요. 

어디 있을 데도 없고, 그때 하나님이 제게 또 하나 깨닫게 하셨어요.
그게 뭐냐면, '내 마음에 아직도 나의 의가 남아 있고, 
사람을 의지하고, 뭔가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셨어요.

그게 뭐냐면, 내가 정말 사람이 살아나오지 못할 곳에서
그런 고생을 하다가 이렇게 살아 나왔으면

막 동역자들이 제게 다가와서 '얼마나 수고했냐!' 하면서
'와~' 하고 이렇게 저를 추켜 세워줄 줄 알았는데,         

그러기는커녕, 어디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제게 관심을 끊더라고요.

근데 그때 후에 들어보니까 '저 죽어야 될 사람이 어떻게 살아서 돌아왔나? 
저는 분명히 보위부 스파이다!'  

(맞습니다. 우리도 성경통독 공부할 때 
누가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고서.. '아, 이제 그 분은 죽었겠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살아서 나타나니까.. 
그 분을 쉽게 못 만나겠더라고요. 
'회유 당한 보위부 스파이일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국에도 5공 시절에 안기부에서 회유하던 소위 '녹화사업'이 있었죠)

 

그때 저는 '하나님이 내게 어떤 남아 있는 자기 의
깨뜨리게 하시려고 이렇게 하시는 구나!' 라는 깨달음을 갖게 되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신체적으로 또 많이 허약하니까
하나님이 회복하라고... (다른 사역을 안 시키시고)

 

그냥 선교사님들과 같이 약 3달 동안 있으면서 
완전히 건강이 회복되고, 거기서 예배도 함께 드리고... 
그때 얼마나 기뻤는지요. 얼마나 행복했는지요...

그 모든 과정들을 보면, 
'아~ 그때 내 신앙이 어찌보면 제 삶에서 제일 절정이 아니었나?'  싶어요. 하하하하!

지금 사실 그런 신앙을 다시 회복해야 되는데... 
이 남한에 와서 오랫동안 이렇게 사역하고 목회하다 보니까, 
그때의 어떤 그런 신앙, 그런 정신이 다소 사라진 것 같아요.

(그렇죠. 남한은 편안한 신앙이니까, 오히려 신앙이 해이해지는 것 같아요)

네, 그런 거 같아요. 그래서 때로는 우리에게 광야가 필요하지요... 

(맞아요. 그래서 그 후로 한국에 와서 목사님이 되신 거죠?
지금 새희망나루교회를 개척하시고... 개척하신지 몇 년 되셨죠?)

이제는 10년 가까이 되어 갑니다.

(10년 동안 함께 여기까지 걸어오신 하나님의 은혜 정말 찬양합니다! 
오늘 새희망나루교회 마요한 목사님 모시고 정말 좋은 이야기 들었습니다. 
목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