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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10:1~5 복음에 대한 인간의 책임

LNCK 2022. 11. 22. 14:24


◈복음에 대한 인간의 책임       롬10:1~5         2022.11.13.녹취, 정리

 

◑도입

 

로마서 9장의 핵심 진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의 선택 이전에, 하나님의 선택이 있었고 
우리의 믿음 이전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누구가가 구원을 받았다면, 하나님의 예정하심이 먼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0장에 넘어와서는, 그 하나님의 택하심에 대한 
인간의 반응, 책임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9장과 10장 비교 요

곧 인간에게 있어야 될 '믿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롬1~4장까지 말씀하셨던,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 의롭게 된다는 진리를 
본문 10장에서 다시 꺼내어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예정을 오해하여, 누군가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거나 노력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오해이며 거짓입니다.  *하이퍼 칼비니즘 이라고 하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정하셨다'는 것,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믿도록 태어났고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믿지 않도록 태어났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예정이 아니라, 잘못된 사상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정하시면, 우리의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그 뜻대로 정하시고 이루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 모든 일에 기도하고 부르짖으라, 
잃어버린 영혼을 위하여 너희는 복음을 전하라'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그 뜻대로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바로 그 뜻을 이루실 때 
우리의 기도를 통해, 우리를 통로로 삼으시기를 원하신다는 겁니다. 


고아들의 아버지로 알려진 조지 뮬러가, 청소년 때부터 자신의 두 친구의 
구원을 위하여 오랫동안 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두 친구들은 기도한지 60 년이 지나도록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 친구는 조지 뮬러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함께 드린 예배에서 예수님을 믿었고 
또 한 친구는 조지 뮬러가 죽은 후, 1 년 후가 돼서야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지뮬러의 인생 말렵에, 그가 두 친구를 위해서 오랫동안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한 분이 질문했습니다. 
'그렇게 수십 년 동안 반응하지 않는 친구들을 위해서 
왜 그토록 오랫동안 기도 하고 있느냐?' 라고 질문했습니다. 

조지 뮬러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할 의도가 없으셨다면, 
나에게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계속 기도하게 하셨을 것 같습니까?'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적 선택과, 
-우리 인간의 기도와 노력은 
서로 상대되거나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통해 일하신다는 겁니다. 

◑본론

 

로마서 9, 10, 11장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대하여 강조하시는 말씀인데 
이 세 장의 서두에, 즉 9, 10, 11장의 1~2절에 나타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동족 이스라엘을 향한 바울의 간절함입니다. 
그들을 위한 기도와 소원입니다. 

9장에서는, 동족 이스라엘의 불신앙으로 인하여 
바울이 마음에 근심과 고통이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내가 저주를 받아도 좋겠다' 라는 마음을 피력했죠. 9:3

▲본문 10:1절에서는 '형제들이여, 내 마음의 소원과 이스라엘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그들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그는 기도했고, 소원했고, 노력했다는 겁니다. 

11장에 가서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하면서, 동족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믿음을, 그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11:1

이렇게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예정을 교훈하고 있는 
로마서 9~11장까지 세 장에, 
바울이 동족 이스라엘을 향하는 간절한 기도와 고백이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의 예정이, 우리의 기도와 노력을 배제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고백이 바울에게서 나왔을 리가 없습니다

-누군가 구원을 받으면,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은혜로 선택해주셨기 때문이죠.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전적인 인간의 책임입니다. 

이 두 요점 중, 어느 한 가지를 뺄 수가 없습니다. 
서로 상반되는 것 같지만, 이것은 서로 하나되는 진리입니다. 

-이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어떻게 하나로 조화시킬 수 있을까? ..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죠. 

    어떤 사람이 스펄전 목사님에게 질문했다고 합니다. 
    '이 둘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때 스펄전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나는 조화시키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사이좋은 친구를, 서로 화해시킬 필요는 전혀 없으니까요'

재치있고 본질을 꿰뚫은 대답이죠.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진리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신비로운 역사하심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의 
그 진리가 하나로 통합된다는 겁니다. (다 짝이 맞는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전적인 인간의 책임입니다. 

왜 그럴까요? 지난주에 설명해 드렸지만, 다시 반복하는 것은 
"모든 인간이 구원받고 천국의 가야 마땅한 존재인데 
그 중에 일부분만 하나님이 택하여 구원하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불의하심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그러나 인간은 본래 천국의 가야 합당한 존재가 아니라, 
본래 심판 받아 멸망받아 마땅한 존재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이 택하여 긍휼로 구원하시는 것은, 결코 불의하심이 아니죠."  

그리고 하나님이 그렇게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데 
그것을 인간이 거부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책임인 것입니다. 

이미 구약역사 속에, 인간이 멸망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역사적 증거들이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심판 때, 하나님은 노아와 그 가족을 보존해주시지 않고 다 멸망
시키셔도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입니다. 그 심판이 의로운 심판이기 때문이죠. 

노아가, 당시 세계 어떤 사람들보다도 더 의로워서 
성경은 그를 '의인'이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계시를, 그 말씀을, 경고를 
믿음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의롭다 여기신 거에요. 

노아가 의인이라는 말은, 그가 당대의 어떤 사람들보다 더 도덕적으로 청결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살아남은 노아와 가족들의 행실을 보면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죠. 

 

어떤 인간적인 행실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와 심판의 경고를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를 가지고 
기준을 삼아서 살려주신 거죠. 

죽어 마땅한, 심판받아 마땅한 이들 임에도 
택한 자를 구원하시고... (그 택한 자는 곧 믿음의 계시를 받은 자입니다) 

그 이후로 노아의 후손들이 보여준 바벨탑 사건 
그 또한 심판받아, 멸망받아 마땅한 존재들임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흩으심으로 심판하시고 
그 가운데 아브라함을 택하여 새로운 인류를 시작하셨죠. 
그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의 백성들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역사가 보여주는.. 유대인의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의 그 엄청난 계시와 기적과 표적과 능력이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불신앙으로 계속 이어갔던 것입니다. 

그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수 없는 크고 작은 심판이 주어졌음에도 
심판으로는 인간의 완악함이 고쳐지지 않는다는 거에요. 

형벌이 강력하면, 한 나라에 무서운 법이 만들어지면.. 죄가 사라질까요?
더 교묘한 죄만 늘어날 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수없이 있었음에도, 인간의 완악함이 고쳐지지 않았을 때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부어질 모든 심판을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친히 담당하시고 
그 죄를 씻으시고,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를 삼으시고 
의롭다 하시고, 그들을 거룩해 하시고, 그들을 영광스럽게 하시는 구원의 계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인간을, 심판 받아 마땅한 존재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난 것이죠. 

그 가운데 모든 사람이 다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데 
그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있는 길,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그로 인해 임한 멸망은, 바로 그들 자신의 책임인 것입니다.  *'예정'이 아니라요  
-누군가 구원을 받는다면,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때문이요. 
-누군가 구원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전적인 자신의 책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대하여, 인간은 어떤 책임을 가져야 합니까? 
자기 의를 세우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하나님에 의해 복종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3절의 말씀입니다. 

▲롬10:3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애쓰면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로마 교회에는, 많은 이방인들이 교회 안에 들어왔습니다. 
그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약속도 받지 못했고, 율법도 받지 못했고, 
그 조상들이 놀라운 기적도 체험하지 못했지만 

그리고 하나님을 잘 알지 못했고, 사랑하는 마음도 없었지만 
많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의 약속과 율법을 받고 
놀라운 기적을 역사 속에 체험한 유대인들이 
하나님 나라 밖에 있는 이 역전된 현상을 보면서 
사도 바울은 핵심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롬9:30~33절에서도 이 유대인들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자기 의를 세우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의를 세우려고 했기에 
하나님의 의, 곧 우리에게 값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의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모습입니까! 
값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죄 가운데 타락한 '자신의 의'를 끊임없이 세우려고 하는 인간의 모순! 

그 '자기 의'가 바로 그리스도를 믿는 일에 걸림돌이 된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는 통로가 되었던 유대인들의 역사 가운데 
왜 그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왜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거리끼는 것이 되었을까?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왜 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고 거리끼는 것이 되었을까? 
그것은 '자기 의'를 세우려고 했기 때문이에요. 

십자가가, 유대인에는 거리끼는 것이 되고 
헬라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 된 이유가 뭡니까?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가 다
'자기 의'를 세우려는 것이, 인간의 타락한 본성가운데 가득해 있다는 겁니다. 

    인간이 '자기 의'를 세우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생명을 희생할 각오까지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줄 수도 있다는 거에요. 
    자존심 때문에 사람은 죽을 수도 있다는 거에요. 그게 '자기 의' 아니겠습니까? 
    자존심의 근본 바탕은 '자기 의' 입니다. 

△'자기 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특징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삶 속에 일부분의 선한 행동으로 
자신의 전 존재를 의롭다고 생각하며 만족합니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자기가 의롭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일생 속에 착하고 선하고 의로운 행동을 몇 번 할 수 있죠. 
그런 자기를 바라볼 때마다, 그 몇 번의 의로운 행동을 연상시키며 
거울을 보면서 '나 좀 봐, 이렇게 선할 수가 있을까? 이렇게 의로울 수가 있을까?'
그렇게 스스로 의롭다고 만족하고, 자기에 대하여 만족하는 거죠. 

그런 사람은 틀림없이 두 번째로 넘어갑니다. 
자신보다 덜 의로워보이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그 사람들을 비하합니다. 

세 번째로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무슨 일이든지 열심은 있는데 
올바른 (말씀의) 지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10:2절에 바울은 유대인들의 문제를 지적하죠. 
'내가 그들에 대해 증언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열심히 있으나 지식이 지식을 따르지 않았다' 그 지식은 뭡니까? 
사람이 자신이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고, 하나님의 의를 받아야만 된다는 
그 진리의 지식이 없이, 열심을 가진 겁니다. 

그 열심은 거짓된 열심입니다. 자기 의를 세우려는 열심입니다. 

여러분, '지식이 없는 열심'이 우리 신앙생활에 침투해 올 때 
우리는 무서운 '자기 의'에 기초한 신앙생활이 됩니다.    

제가 미국 유학생활을 처음 할 때, 교회 개척하는데 함께 참여한 한 성도님이 
우리가 학교를 빌려서 예배를 드리니까 
주일마다 의자를 다 세팅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먼저 와서 열심히 의자 세팅을 하시니, 얼마나 고맙습니까!  
근데 혼자 그 의자를 다 세팅하는 게 너무 안쓰러워서 
'그러지 마시고 이제 제가 성도들에게 광고해서 
30분 전에 모두가 나와서 의자를 함께 세팅합시다'

그래서 광고도 하고, 성도들도 다 일찍 나오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 다음 주에 와서 보니까, 그분이 이전보다 30분 더 먼저 와서 
그 많은 의자를 혼자서 땀 흘리면서 다 깔고 있는 거예요. 

 

'도대체 저 열심의 정체는 무엇인가?' 
매주 그런다면, 혹시 '자기 의'는 아닐까요?

그 열심이 하나님의 의에 기초한 것일까?
값 없이 나를 의롭다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 것이 아닌, 
자신의 의를 쌓는 열심은 혹시 아닐까요?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모든 봉사와 헌신에 이르기까지 
이것이 '자기 의'에 기초한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의'에 기초한 것인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에 기초한 사람은 감사가 넘칩니다. 
'자기 의'에 기초하면.. 보상을 기대하고,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하고,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는 갈망이 가득합니다. 


성경에 "지식을 따르지 않는 열심"의 대표적인 사람이 사울이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가 가던 길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다메섹까지 도망갔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붙잡으려고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하나님께 열심이 있었고, 그 열심으로 살기가 등등했습니다. 
지식이 없는 열심은   *10:2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오직 내가 하는 일에만 집중하게 되고, 모든 것을 다 정당화하게 됩니다. 

그 지식이 뭐냐? 
진짜 알아야 될 지식이 뭐냐를 4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10:4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모든 사람들이 의에 이르기 위하여 
율법에 마침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알아야 될 지식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왜 오셨습니까? 
죄인된 인간, 멸망받아 마땅한 모든 사람들이 
의, 곧 하나님의 의를 받기 위하여, 율법에 마침이 되셨다고 했는데,

'마침'이란 헬라어 '텔레이오스'는 율법의 목적이 이루어졌다, 성취되었다는 뜻이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유대민족이 다른 어떤 민족보다 탁월하게 자랑하라는 게 아닙니다. 

그 율법 앞에 섬으로써,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시는 겁니다. 
그 율법을 온전히 이루지 못하는 인간의 죄성을 보라는 겁니다. 

그 구약의 율법을 보면, 그 당대의 다른 어떤 나라와 민족에 있었던 법전보다도 
탁월한 법전입니다.   주1)

 

유대인들이 그 율법을 받았으면, 그 율법 앞에 그대로 서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의 죄성이 드러나는거에요.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는 지킬 수 없다는 걸 고백하게 되는 거에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누가 건져내랴?' 
그 고백이 나와야 정상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완전하신 눈 앞에 
인간 스스로 의로워지려는 노력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 율법의 (한 가지) 목적이에요. 

그런데 그 모든 율법을 이루시고 
그 율법의 저주와 형벌을 담당하시고 
우리에게 그 율법을 이루신 예수님, 

원수를 사랑하시고, 그리고 자신을 못 박는 이들까지 용서하시며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대속 제물로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율법의 마침'이 되심으로써,    *10:4
이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를 선물해 줄 수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에게 의를 주시기 위해 
율법에 마침이 되신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없이   *10:2
그들 유대인들은 '자기 의를 세우려고 했다'는 거에요.   *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