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두 형제가 아주 작정을 한 듯이 팀장 성근선생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조선족 빌립선생도 계속해서 성근 선생의 화를 돋구었다.
원래 조선족 빌립선생은, 팀장의 보조 역할만 수행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자기도 선생이라며 사사건건 참견했다. 주2)
사역을 시작한지 한 달쯤 지나서, 성근선생은 그만 참지 못하고 빌립선생을 심하게 때리고 말았다.
화가 난 빌립선생은, 사역비까지 다 들고 아무 말 없이 사역장을 나가 연변으로 돌아가버렸다.
밖에서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나고 문밖이 웅성웅성 소란스러웠다. '사람이 있어요? 사람이 있어요?'
방 안에 있던 형제들이 새파랗게 질려 문밖을 예의주시했다. 공안이 아니고는 찾아올 사람이 없는 곳이다.
윤수형제가 살금살금 문으로 가서 구멍으로 내다보더니 기겁해서 숨소리도 제대로 못 내고 방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그리고는 잔뜩 겁을 먹고 꺽꺽 목메는 소리만 간신히 내뱉었다. '겨 겨 경찰이 쫙 깔렸어!'
"쾅쾅 문 열어, 문 열어!" 문 두드리는 강도가 점점 더 높아졌다.
베란다로 이불을 늘어뜨려 형제들을 내보내려는 생각이 번뜩 들어 성근선생은 황급히 베란다로 나가보았다.
하지만 아파트 6층에서 떨어지면, 아무리 봐도 살기는 힘들 것 같았다. 공안들은, 안에 사람이 있다고 확신했는지, 문을 부숴버릴 듯이 계속 두드려댔다.
그러자 에녹형제가 분을 참지 못하고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망할~ 조그만 새끼가 잡기만 해봐라!' 사역장을 공안에 신고해 버린 빌립선생에 대한 원망이었다.
그런데 그 소리가 너무 컸다.
다들 숨죽이고 있는데, 에녹형제는 혼자 흥분해서 떠들고 있었다. '조용히 해, 이 친구야! 지금 우리를 다 잡으려는 거야? 뭐야?' 모두의 눈길이 쏘듯이 에녹형제에게 명령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떠들어댔다.
참다 못한 윤수형제가 악에 받힌 꽉 눌린 소리를 씹듯이 뱉었다. '형, 좀 조용히 해~ 아이 씨, 왜 이러우?'
"쾅쾅! 문 열어, 문 열어!" 공안들은 주먹에 이어, 이번에는 발까지 동원해 두드려댔다. 쾅 쾅 소리가 울릴 때마다, 형제들은 심장이 쿵쿵울리고 숨이 콱콱 막혀왔다.
'아~ 이젠 다 잡혔구나. 이젠 죽는구나..' 성근선생은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이렇게 허무하게 모든 게 끝장나는가 싶어 눈물까지 핑 돌았다.
숨소리도 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당에 윤수형제의 말이 거슬리는지, 에녹형제가 또 지꺼렸다.
'쬐끄만 새끼가 뭔 참견질이야?' 이번에는 목소리가 아까보다 좀 더 컸다.
에녹형제는 갑자기 닥친 위기상황에 극도로 긴장해 상황판단이 흐려진 것 같았다. 평소에도 정신적으로 약간 이상이 있었던 그였다.
하지만 이걸 이해할 길 없는 광수형제는, 벌컥 화를 냈다. '이 개새끼가 우리를 다 죽이지 못해 그래? 아가리 닥쳐라 썅!' (*광수, 윤수는 형제)
성근선생은 그런 그들을 보노라니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이젠 에녹형제 목소리보다, 성난 광수, 윤수형제의 목소리가 더 컸다.
'이 간나 새끼, 너 오늘 좀 죽어봐라!' 광수형제가 와락 에녹형제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성근선생은 애원하듯 달려들었다. '야 정신 차려! 좀만 참아, 좀만 참아! 싸워도 공안들 돌아간 다음에 싸우란 말이야!'
"쾅, 콰당 콰당" 계속해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더니 다음 순간 그 소리는, 우르르 몰려내려가는 발소리로 변했다.
'돌아들 가는 건가?' 모두들 눈을 반짝거리며 말없이 성근선생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내 손전등 불빛이 집안으로 마구 쏟아져 들어왔다. 공안들은 아래에서 베란다를 올려다보며, 성근선생 사역장 아파트를 관찰하고 있었다.
이어 우르르 몰려올라와 다시 문을 두드려댔다. '이럴 때 기도 안 하면 언제 기도 하는가?'
성근선생은 문득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기도합시다!' 말을 뱉어놓고 머리를 땅에 쳐박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님~ 주님~ 주님~~ 뭐 하십니까, 우리를 좀 살려주세요!' 그러자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눈물을 닦으며 머리를 들어보니, 모두들 똑같이 자기처럼 머리를 틀어박고 기도하고 있었다. 진지하게 기도하고 있는 그들을 보니, 성근선생은 그 와중에도 은근히 기뻤다.
그러자 근 4시간을 난리피우던 공안들이, 갑자기 썰물 빠지듯 싹 사라져 버리고 아파트 문밖이 조용해졌다. (*2000년경 산동성 제남, 제남은 이제껏 조용하던 곳)
성근선생이 살그머니 거울조각을 내밀어 창밖 여기저기를 살펴보니 아무도 없었다.
'이때다. 튀자! 모두 성경책만 들고 나가자!' 성근 선생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모두 성경책만 들고 출입문 쪽으로 우르르 나갔지만 문이 휘어져 열리지 않았다.
조그만 화장실 창문으로 한명씩 한명씩 비집고 나왔다. 모두들 집으로부터 15분 거리까지 헉헉거리며 뛰어오니, 일단 마음이 놓였다.
다음 날 성근선생은 박주환 선교사를 만났다. 사역장으로 사용하던 집은, 박선교사의 명의로 임대했던 집인지라 박선교사는 이미 공안국에 불려갔다 온 후였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박선교사가 그에게 조용히 물었다. '제가 빌립이를 때렸습니다. 그래서 빌립이가 도망을 가면서 고발한 모양입니다!'
'엄청 때렸죠?' (최빌립은 조선족이라 신분증 있었고, 신고도 가능) 그러나 성근선생은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박선교사가 공안국에서 알게 된 사실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빌립이 기차를 타고 가는데, 옷에 피가 하도 많이 묻어서 철도공안들에게 단속이 됐어요. 그래서 공안들에게 사연을 설명하면서 사역장 위치를 가르쳐 준 거예요.'
그는 가까스로 박선교사께 말했다. '저~ 선교사님 빌립이가 사역비 5백 위안도 가져가 버렸습니다.'
성근선생은 사역을 시작한지 한 달 만에, 다시 새 집을 임대해야만 했다. 그는 한번의 혈기가, 이렇게 큰 사고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영적인 싸움은 혈과 육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기도로 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사역비를 받고서는, 풀이 죽어서 새 집을 구하러 떠났다.
▲그즘육 유칼빈, 김예진, 이현수 선생을 데리고 파송되어 나갔던 익두 선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3)
'선교사님~' 그는 처음부터 침울한 목소리로 말을 잘 이어가지 못했다.
'익두선생, 왜 그러세요?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죠?' 제발 또 선생이 체포되었다는 얘기는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예진 선생과 이현수 선생 소식이 갑자기 끊어졌습니다!' '아니 왜? 어떻게 된 일인데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두 선생이 함께 학생을 모집하러 왕청 쪽으로 떠난 후 다시 소식이 없습니다.'
'소식이 끊긴 지 얼마나 됐어요?' '한주일 정도 됐습니다!'
한주일 동안이나 소식이 없었다면, 십중팔구 체포된 것이 분명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북한으로 (부모 만나러) 들어간 유칼빈선생은 어떻게 되었어요?' '칼빈선생도 이젠 다시 되돌아 올 시간이 넘었는데, 소식이 없습니다.'
전화기 저쪽에서 익두선생은 나즈막히 울고 있었다. 1년간 동고동락하며 키운 학생 3명을 동시에 잃어버린 그 마음이 어떨지 짐작이 갔다.
익두선생은 그래도 혹시나 모를 일이니 계속 칼빈선생을 기다려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유칼빈선생은 지금까지도 소식이 없다.
♣보위부 특무와의 조우 (*우연히 서로 만남) 2기생으로 파송된 선생들의 뒷수습을 마치고, 권능선생도 서안으로 돌아왔다.
그는 서안 역에 마중 나온 나를 보면서, 전혀 흥분하는 기색없이 그저 빙긋이 웃기만 했다.
권능선생처럼 (지금 '인천한나라 은혜교회'에서 목회 중) 북한 형제들을 잘 알고 있으며, 중국 현장 사역에 경험이 풍부한 북한 출신의 북한 선교사는 없었다.
그는 항상 말없이 모든 일들을 해나가면서 아무리 다급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았다.
사태를 이성적으로 잘 분석하면서도, 영적인 시각으로 보며 올바른 판단을 내릴 줄 알았다.
나는, 이런 그가 한없이 미더워 그에게 서안에 있는 사역장 전체를 맡겼다.
서안 사역장 팀장들은, 모두가 그의 제자 선생들(2기)이었고 그(1기)는 또한 그럴만한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준비된 사람이었다.
▲다른 2기 선생들도 학생들을 모집해서 돌아오기 시작했다. 먼저 다윗선생에게서 중국의 남방으로 간다는 소식이 왔다. 나는 그 팀을 제남으로 가게 하고, 박주환 선교사께 이 소식을 알렸다.
(*2기 다윗선생은, 깡패 출신으로서 귀신들려 난동부리다 귀신이 쫓겨나감)
다윗선생 팀이 제남에 도착한 날은 토요일이었다. 다윗선생은 사역장을 구하는 동안
학생들은 기다릴 곳을 찾다가 산동대학으로 들어갔다.
그때 마침 성근선생 사역장 형제들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사역장 형제들은 매주 토요일 오후에는 축구를 했다)
두 사역장 형제들이 서로 만나자, 갑자기 광수형제가 눈을 사납게 치켜뜨며 고함을 질렀다.
'이 종간나 새끼! 너 여기까지 좇아왔냐? 너 잘됐다. 내가 오늘 너 안 죽이면 자살한다!'
그러자 영성형제(3기 신입)는 미쳐 날뛰는 광수형제를 피해 도망을 갔다. 성근선생은, 다른 형제들과 함께 광수형제를 말리면서 자초지종을 물었다.
광수형제는 '이 새끼, 너 이 새끼 김영성 맞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성근선생, 이 새끼 이거 보위부 간첩입니다.'
그리고 광수형제는 영성형제에게 대고 소리를 질렀다. '야 이 개새끼야, 우리가 뭐 너희 새끼들 노예야? 먹을 것이 없어서 도망쳐 온 사람들인데 왜 이렇게 뒤쫓아다니면서 잡지 못해 지랄이야? 그래 너 이 새끼, 너 오늘 내 손에 죽어라!'
광수형제가 이렇게 나오자, 모두의 싸늘한 눈길이 영성형제에게 꽂혔다. 조금만 더 지나면 옆에 있는 형제들도 합세해 그에게 달려들 분위기였다.
다윗선생은 일단 두 형제를 뜯어말리고, 급히 자기 학생들을 데리고 사역장을 구하러 떠났다.
탈북자들은, 악독한 짓을 많이 하는 북한 보위부를, 김정일 정권보다 더 미워했다. 보위부는 북한 내에서는 공포의 대상이요. *정보부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에게는 증오의 대상이었다.
그런 보위부 특무가 오늘 신분을 숨기고 사역장에 몰래 들어왔다가 우연히 광수형제에게 발각된 것이다. *아마 특무에게 고용된 프락치
'저 사람이 어떻게 보위부 사람인지 알았습니까?' 성근선생이 묻자, 광수형제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연길에서 광수, 윤수 형제가 어디 갈 데가 없어서 조선족 교회의 도움으로, 교회 옆에 있는 조그마한 집에서 북한사람 몇 사람과 같이 살 때였다.
지금 보위부 특무라는 영성형제도, 그때 그 집에서 함께 살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작은 수첩에 뭔가를 몰래 기록하는 것이었다.
하루는 광수, 윤수형제가 가만히 그 수첩을 훔쳐보니 거기에는 알 수 없는 사람들의 이름이 가득 적혀 있었다.
두 형제는, 그가 보위부 특무활동을 하고 있다고 짐작하고 함께 살고 있는 다른 탈북자들과 함께 그를 죽도록 두들겨 팼다.
그에게 그 수첩이 무슨 수첩인가를 다그쳐묻자, 그는 사실대로 털어 놓았다. 자기는 북한 보위부에서 파견된 사람으로서 *그에게 고용된 망원 자기의 임무는 중국 전역에 형성된 성경공부 팀들의 위치와 리더들의 이름을 파악해서 보고하는 것이며 그러면 북한 보위부가 중국 공안과 협조해서 체포해 간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복화형제도, 이 형제가 북한 보위부원이 틀림없다고 하며 광수, 윤수 형제의 증언을 두둔하고 나섰다.
자기도 연변에 깊은 산속에 숨어 살 때, 그가 보위부 특무라는 걸 알고 다른 탈북자들과 함께 죽도록 패서 쫓아보낸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광수형제와 복화형제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보위부 특무 한 사람(영성형제)이, 학생 신분으로 위장하여 사역장까지 들어왔다는 얘기가 된다.
이렇게 되면 제남 지역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다윗선생 팀 학생들 중 두 사람이 기겁해서 어디론가 도망가 버렸다.
다윗선생이 학생을 모집한 경위를 알아보니 짐작했던대로 버스에서 만난 사람들을, 잘 알아보지도 않고 그냥 데려온 것이다.
그러나 영성형제가 설령 보위부 특무라 해도, 당장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벌써 제남에 있는 사역장에 대한 정보가 다 노출되었으니 이 사역장들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자면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다윗선생에게 그를 감시하면서, 일단은 사역을 계속 하도록 했다. 시작부터 큰 짐을 안게 된 다윗선생은, 사역시작과 동시에 40일 금식에 들어갔다. 그러나 감시를 한다지만 24시간 내내 할 수는 없는 데다 영성형제가 부엌칼을 휘두르며 행패를 부려대자 다윗선생은 금식 17일째 되던 날, 나에게 도움을 요청해왔다.
내가 서안에서 제남의 다윗선생 사역장으로 아무런 예고도 없이 방문하자 *910km 형제들은 당황하여 아무 말도 못했다.
제남의 형제들은, 어떤 위험이 닥쳐도 사역장 전체의 안전을 위해 나는 살아야 한다고.. 극구 내가 제남으로 못 오게 말렸기 때문이다.
함께 예배를 드린 후, 나는 영성형제와 간단히 대화를 나누었다. 특별한 다른 얘기는 없었다.
다만 그동안 자기가 성경을 몇 독 읽었고, 말씀암송도 몇 십 절했던 터라 성경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었는지, 그는 나에게 몇 가지 물어보았다.
성경에 다른 얘기들은 다 이해가 되는데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돌려대라'는 것과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이해 안 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그 사랑 안에 들어오면 세상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가능하게 될 수 있으니 좀 더 열심히 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바로 사역장 해체작업에 들어갔다. 형제들의 안전에 주의하면서, 영성형제를 따돌리기 위해 다른 형제들은, 다윗선생을 따라 잠깐 물건 사러 간다고 하며, 전부 나가게 했다.
그리고 영성형제만 집안에 남겨둔 채, 바깥에서 자물쇠로 잠가 버렸다. 그는 3일 동안 혼자 갇혀 있다가, 창문을 타고 나와 박주환 선교사에게 차비를 얻어 다른 곳으로 갔다.
▲그러나 보위부 요원들과의 조우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몇 달 후 3기생 사역장 중 가장 먼저 순교선생 사역장을 연변으로 파송하면서 나도 뒤따라갔다. *서안에서 연변으로!
더 이상 파송단계에서 선생들이 체포되지 않도록 새로운 학생 모집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번에 연변에 올라가면 이선장형제가 성근선생을 통해 여러 차례 간곡히 부탁해왔던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을 도와줄 방법이 없는지도 알아보려고 했다.
연길에 도착하여 용섭선생 집에 들렀다가 이선장형제의 어머니가 소개해주는 한 북한 자매를 만나게 되었다.
이 자매는, 북한의 국경수비대 군인을 끼고, 중국과의 국경을 오가며 돈을 받고 사람들이 탈북하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던 자매였다.
이 자매는, 중국으로 넘어오기 위해 두만강 강변에서 기다리던 이선장형제의 동생을 중국 쪽으로 데려오기로 되어 있었다.
자매가 북한에서 넘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알고, 나는 습관적으로 물었다. '자매님, 교회 나가본 적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 예수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갑자기 자매의 눈이 커다랗게 되었다. '예수라는 건 뭡니까?'
자매에게 예수님에 대해 소개해주고 그곳에 같이 있던 여러 선생들과 함께 자매를 위해 다같이 축복기도를 하고, 또 축복송을 불러주었다.
그때 거기에는, 내가 연길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권희선생과 익두선생, 막 파손되어 올라와 있던 순교선생이 와 있었다.
축복송이 끝나고, 내가 자매와 악수를 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라고 하자 자매가 왈칵 눈물을 쏟기 시작하더니, 10여 분간 땅을 치며 통곡을 하였다.
예수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자매는 울면서 나에게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날 오후 이선장형제 어머니와 여동생을 돌봐주기로 약속된 분들을 만나기로 하였다.
약속 장소인 연길 북대시장 입구, 공중전화기 옆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오전에 만났던 자매가 내 옆으로 조용히 다가오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지만 반갑게 인사하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북한은 언제 돌아가요?'
아침에 만났을 때, 북한으로 다시 들어간다고 말한 것이 생각났던 것이다. '아~ 예, 내일 감다'
자매의 대답을 들으며 주머니에서 중국 돈 100위안짜리를 꺼냈다. '자매님, 이거 차비에 보태세요. 더 못드려서 죄송해요.' '고맙슴다!' 자매는 이 말을 하며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지금 선생님을 붙잡으려고 보위부 사람이 옆에 와 있습니다' 나는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눈빛으로 '어디냐?'고 물으니 자매는 자기 옆에 서너 걸음 떨어져 있는 쪽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자매가 가리킨 쪽으로 곁눈질해보니 키가 크고 덩치가 좋은 남자가 담배를 피우며, 내 쪽을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 숨이 꽉 막혀왔다. 그와 동시에 나는 앞에 서 있는 택시에 후다닥 올라탔다. 택시를 타고 달리다가 내려서, 다른 택시로 갈아탔다. 다시 버스로 갈아탔다.
그러길 한 시간 내내 하고 나서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만나기로 약속했던 분에게는, 전화로 상황을 설명드리고 나는 그 길로 도망치듯 연길을 빠져나와 제남으로 왔다.
내려오는 기차속에서 하나님께서 왜 아침에 그 자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축복하게 하셨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 자매가 군인을 끼고 일하기 때문에, 보위부와도 연결이 되었던 것 같고 오후에 만났을 때도, 나를 잡으려고 (자매가) 일부러 보위부 요원을 불렀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순간 자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나에게 슬며시 알려주게 하신 것 같았다.
▲이후에 연길에서 우리 사역장 형제의 형을, 개인적으로 만날 일이 있었다. 그때 그는, 얼핏 보면 한국 사람처럼 보이는 세련미를 갖춘 키 큰 사람과 함께 나를 만나러 나왔다.
그 키 큰 사람은 시종일관 아무 말 없이 우리 옆에 서 있다가 우리 이야기가 다 끝나자 그제야 자기 소개를 했다.
자신은 전직 남파간첩으로, 한국에도 일곱 번이나 갔다왔다고 하였다. 그래서인지 옷차림이 아주 세련되고 한국에 대해서도 한국사람인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선생, 북한 보위부를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가 만약 선생을 잡아야 한다면, 하루 이상 걸리지 않습니다. 조심하세요!'
이 말을 남기고 곧 그들은 떠났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머리칼이 쭈뼛 서고,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들과 헤어지고 나서 한참 후에도, 다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이런 일들을 겪으며, 우리 사역장에 대해 보위부에서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우리를 체포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난번 성도에서 보위부 사람들이 우리를 미행했던 사건이나 *쓰촨성 청두 다윗선생 사역장에 학생으로 위장해 들어온 영성형제 사건이 우연이 아니었다.
당시 중국에, 우리처럼 큰 탈북자 단체가 없었으니 북한 보위부에서 비상한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최근 선생들이, 연변에서 학생들을 대거 모집해 갔으니 이들이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이제부터는 안전을 위해서, 털끝만한 불안요소도 철저하게 제거해 나가며 사역을 하리라 생각했다.
▲며칠 뒤 제남에서 사역하던 강석환 선생이 서안으로 옮겨왔다. *권능선생 팀원 석환선생은 박예진 형제 등 5 명의 형제들을 데리고 사역을 시작했다.
이로써 권능선생이 책임지고 돌봐야 할 사역장은 모두 5개로 늘어났다.
권위선생 사역장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이제 막 새로 시작되어 선생들도 힘들고 학생들도 많이 힘들어하는 시기라 혼자 감당할 수 있을지 염려되었다.
그러나 힘은 들고 때론 실수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잘 해 나가리라 믿었다.
♣여호와이레
2기 2차로 파송되었던 김영윤 선생이 학생들을 모집해 제남으로 왔다. 하지만 영윤선생 사역장은 오래가지 못했다.
사역을 시작해서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공안들이 들이닥쳤고 서둘러 이사를 한 지 한 달 만에, 또다시 공안들이 호구조사를 나왔다.
이에 학생들이 겁에 질려 연변으로 가버리자 영윤선생도 사역에 대해 자신감을 잃고 연변으로 돌아가버렸다.
김영윤선생에 이어 이용섭 선생이 학생들을 모집하여 서안으로 왔다.
이용섭 선생은 *2기생 함흥화학공업대학을 졸업한 신수재 형제 싹싹한 성격의 임경철 아바이 조선족 김광철 형제 등 5명의 북한 형제들과, 2명의 조선족형제들을 데리고 왔다.
용섭선생에 이어 빌립선생(2기)도 며칠 후 학생 모집을 끝내고 왔다. 그는 김주선형제 등 5 명의 형제들을 이끌고 서안 분문 옆에 사역장을 잡고, 패기 넘치게 사역을 시작했다.
이들까지 오자 사역장에 인원은 1백 명 가까이로 불어났는데 사역비는 바닥이 났다. (*현재 3기 사역 시작 중, 2000년 여름)
나는 권능선생에게 말했다. *서안 책임자 '권능선생 돈이 떨어졌어요. 3일 후부터 전체 사역장이 금식에 들어갈 준비 기도를 해야 되겠어요.'
권능선생은 오늘도 여러 사역장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일들을 처리하느라 하루 종일 뛰어다녔던 터였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얼굴에는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잠시 말없이 앉아 있던 그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선교사님! 저랑 (2기) 선생들은 금식하라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3기)은 아직 금식이 무슨 말인지도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금식하라는 말을.. 저는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그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지만, 돈이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선교사님, 저는 더 이상 이렇게 사역하기 힘듭니다. 정기적인 후원단체도 없는데, 사람은 자꾸만 불어나고... 그렇다고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 이렇게는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 이러다가 학생들이 다 흩어지지 않겠는지 모르겠습니다.'
학생들이 많아지자 여러 사역장을 유지하는데 이전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었다.
거기에다 2기 2차로 파송된 다른 선생들도 학생들을 모집해 내려오게 되면 필요한 돈의 액수는 훨씬 커질 것이었다.
그는 답답한 듯 한숨만 내쉬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물질 문제를 직접 해결해주셨던 기억이 생생했다. 나는 그를 설득하며 조용조용 말했다.
'권능선생, 한번 생각해 봐요. 이때까지 하나님이 우리 사역장을 어떻게 인도해주셨는지 잘 알잖아요.
2기 때도 1기에 비해서 사람들이 많아 걱정했지만 *2기 때는 약 30명 언제 한번이라도 돈이 없어서 사역장이 흩어진 적이 있었어요? 그때도 사역이 보장될 만큼, 안정적인 지원이 있었던 것은 아니잖아요...'
내 말을 듣던 권능선생은 마지못해 대꾸했다. '선교사님, 그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정작 오늘 같은 이런 현실을 맞닥뜨리고 보니, 너무 힘듭니다. 정말 도저히 감당하기 힘듭니다.'
'권능선생, 내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고 권능선생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 있다면 또 우리 선생들이 주님 앞에 바로 서 있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돈을 주시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아요?
백 명이 아니라 천명이라 해도, 걱정할 것 없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광야에서 몇 백 만명을 키우셨던 분인데
지금 여기는 최소한 광야는 아니잖아요. 하다 못해 마실 물 걱정은 안 해도 되잖아요.
만약 우리 사역이, 돈이 없어서 실패한다면 이 세상 그 어떤 선교사역도 이루어질 수 없을 거예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붙잡읍시다. 권능선생!'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그의 어두운 표정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그와 헤어진 다음날부터 나는 금식에 들어갔다. 주님이 반드시 사역비를 해결해주실 것을 의심하지 않고 기다리면서 기도했다.
그 다음 날, 한국에 계시는 김의환 목사님께로부터 전화가 왔다. *2010 소천 내일 중으로 7백만원을 가지고 우리 사역장에 오신다는 것이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정말로 정확하신 분이셨다. 정확히 내일이면 우리 전 사역장에, 사역비가 완전히 떨어지는 날이었다.
제남에 있던 성근선생 사역장은, 영성형제 사건 이후 급히 서안으로 이사를 했다.
새롭게 사역장을 꾸리고, 성근선생이 잠깐 나간 사이 광수형제가 에녹형제 얼굴을, 발로 사정없이 짓뭉개버리는 사건이 터졌다.
에녹형제의 얼굴은 삽시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옆에서 복화형제가 뜯어말리지 않았다면, 숨이 끊어질 때까지 때리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성근선생이 사역장에 왔을 때, 싸움은 이미 끝나고 복화형제가 에녹형제의 상처를 이리저리 닦아주고 있었다.
에녹형제의 상태는 매우 심각했다.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여기저기 찢어진 곳은, 피를 닦아내고 연고바르면 된다지만 발에 사정없이 짓밟힌 코는 완전히 뭉개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성근선생이 급히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응급처치는 했지만 의사말로는, 산산조각난 코뼈를 치료하려면 빨리 수술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한센병 환자처럼 코가 민둥해진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신분증이 없어, 돈이 있어도 입원할 수가 없으니 수술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성근선생은 힘없이 쓰러져 있는 에녹형제를 택시에 싣고 사역장으로 돌아와 나에게 이런 사실을 알렸다.
북한 사람들은 생각하는 방식이 우리와 너무 달랐다. 이번 사건 같은 경우에도, 이 싸움이 일어난 원인이 에녹형제에게 있기 때문에 다들 '광수형제를 욕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광수형제는 에녹형제가 사역장 청소를 하지 않아 자기가 정의의 주먹을 든 것뿐인데 성근선생과 내가 자기만 욕한다고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광수형제는 '선교사님, 저는 연변으로 가겠습니다. 더 이상 여기서 공부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얼굴에 억울해하는 빛이 가득한 채 내게 말했다.
'아니 광수형제, 연변에 가면 누가 있어요? 집이 있어요. 고향이 있어요? 연변에 가서 어디서 뭘 하며 살건데요?'
'없습니다. 그래도 가겠습니다. 여기서는 살기 싫습니다. 보내주시오!' '광수형제, 정 이 사역장이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사역장에라도 보내줄 테니 연변으로는 가지 마세요.'
나는 그를 보내더라도 여기 서안의 사역장에 좀 더 있으면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긴 후에 보내고 싶었다.
'아니 선교사님, 여기가 뭐 감옥입니까? 마음대로 가지도 못합니까? 북조선에서도 썩어지게 얽매이며 살았습니다. 여기까지 와서도 자유롭지 못하게.. 이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날 보내주시오!'
나는 그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가 간다고 나서자 친동생 윤수형제도 따라나섰다. 말릴 수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평생 속아서만 살아서인지, 남의 말을 듣거나 믿지 않기로 소문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아무리 옳은 말도, 감정이 상하면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광수, 윤수형제는 내가 만난 여느 북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감정적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독재체제 속에서 어릴 때부터 김일성과 김정일을 우상화하는 세뇌교육만 받다보니 어떤 일에 대해 스스로 생각할 줄 몰랐다.
두 형제를 보내고 난 후, 에녹형제의 코가 걱정되어 다시 성근선생 사역장으로 가 보았다.
피를 많이 흘린 에녹형제는 기진해서 누워 있었다. 그를 위로해주고 싶어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에녹형제, 괜찮아요? 많이 아프지요?' 그는 코가 막혀 웅웅거리는 소리로 대꾸했다. '일 없습니다. 선교사님, 이 까짓 거 가지고 뭘 그럽니까?' 그는 피식 웃기까지 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느낀 것이지만 북한 사람들은 자기 몸을 전혀 귀중하게 여기지 않았다.
아마 모든 인민들은, 당과 수령을 위한 체제 유지를 위한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세뇌당하며 살아서 그런지.. 사람의 생명을 귀히 여길 줄 몰랐다.
남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뿐 아니라, 자기 생명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래서 싸울 때면, 정말 사납게 죽기 살기로 싸웠다.
한번은 용섭선생 사역장에서도, 두 형제가 크게 싸워 그 중 한 형제의 이빨 두 개가 부러지는 일이 있었다.
그리고 정선생 사역장에서도 개발형제와 철민형제가 싸워 개발형제의 앞니 네 개가 완전히 부러져 나가는 일도 있었다.
그때 내가 가서 개발형제에게 어떠냐고 물으니 그 역시 에녹형제처럼 대꾸하는 것이었다. '일없습니다. 선교사님, 뭐 이깟것 가지고...' 병원에 데리고 가려는 나를 도리어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선교사님 왜 그럽니까? 이 까짓 이빨, 나가면 나간 거지, 뭘 그렇게 요란하게 병원까지 가고 그럽니까? 이러다가 피도 멎고 저절로 났습니다. 일 없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할 말을 잃었다. 다만 가슴이 아플 뿐이었다. 하지만 이 형제들도 일단 1년간 성경을 읽으며 다듬어지면 서로를 존중하며 사랑하고, 그와 동시에 자기 자신도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현재 많은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지 못해 사회적인 난제가 되고 있다. 이들이 한국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다면, 설령 물리적 장벽인 휴전선이 허물어지고 통일이 된다 해도 진정한 의미의 통일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민족통일의 관건이 바로 이 북한 복음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복음화 만이, 저 황폐한 북한 땅을 소생시키고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회복시킬 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며 남을 사랑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바꿀 수 있다.
그제야 우리 민족이 진정으로 하나 되며 북한 사람들도 우리 민족번영의 동반자가 될 것이다.
이것은 사역을 하면서 얻은 귀중한 깨달음이다.
성근선생은 광수형제와 에녹형제의 한바탕 싸움때문에 집주인이 집을 비워달라고 해서, 새 집을 구해 사역장으로 옮겼다.
광수, 윤수형제가 떠나자, 성근형제 사역장에는 에녹형제와 복화형제밖에 남지 않았다.
광수, 윤수형제를 사역장에서 떼어내는데 성공한 악한 영들은 나머지 두 형제를 부추겨 계속 문제를 일으켰다.
사역은 영적인 싸움이다. 세상 기준으로 본다면 선생은 쫓겨다니는 자신들의 의식주를 해결해주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니 생명의 은인이다.
그런데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사납게 선생을 공격하고 자기들끼리도 경계하며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선생은 이러한 모든 문제를 철저히 영적인 시각으로 보고 대처해 나가야 한다.
(2기) 성근선생은 이제 막 선생으로 세워져, 당시 이런 영적 시각이 많이 부족했다. 모든 문제를 인간적으로 생각하며 자신의 혈과 육으로 싸우려다 보니 결국 중심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다.
신약 20독 통독이 끝나는 날, 그는 사역을 포기하고 어디론가 조용히 사라져버렸다.
............................................
주1) 성근선생은 원래 익두선생 팀에서 공부하다가 익두 선생이 서안으로 떠나자 따라가지 않고 권능선생 팀으로 옮겨 2기생으로 수료. 파송받음)
주2) 최빌립선생은 권능선생 사역장에서 1년간 공부했던 사람이었다. 2기생으로. 권능선생은 그를 선생으로 세우지 않고, 성근선생의 보조역할을 맡게 했다. 그가 조선족이고, 나이도 어리고, 또 사역장에서 함께할 조선족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았던 것이다. 3기 사역장에서 보조선생 역할을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