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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5장, 날아가는 두루마리, 에바 속의 여인 환상

LNCK 2022. 11. 25. 20:56

◈슥5장, 날아가는 두루마리, 에바 속의 여인 환상

※슥8장을 난생 처음 해석하느라, 다소 까다롭군요.
그러나 몇 해 후에 다시 해석할 때는, 한결 쉬우리라 예상합니다/주.


◑적용1. 저주의 세상에서 구원받으려면, 성전 속으로 피하라

하늘에 큰 두루마리가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것은,
그 크기가 4.5M X 9M 이면, 과거에 육교 높이가 4.5M 였으니까,
그 육교 밑 공간만한 크기의 대형 두루마리가 하늘을 날아다닙니다.

이 두루마리는 모세의 율법(십계명)을 대표한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1) 거기에 말씀이 양쪽에 써 졌다고 했는데,    :3
모세가 받은 십계명 돌판이, 양쪽 두 줄(투 칼럼)로 써져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거기에 3계명과, 8계명이 써져 있었는데,
한쪽 줄(칼럼)에는 3계명, 즉 ‘대신 계명’이고
다른 쪽 줄(칼럼)에는 8계명, 즉 ‘대인 계명’이었죠.

예수님은 마22:37절 이하에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하시면서
그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라고 하셨죠. 구약율법의 요약이라는 뜻이죠.

즉 본문의 두루마리에 적힌 3계명과 8계명은 각각
‘대신 계명’ 과 ‘대인 계명’을 대표하는
‘온 율법과 선지자’ 즉, 모세 율법의 요약이라는 것이죠. 

이렇게 모세 율법을 적은 대형 두루마리가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것은
온 세상이 보게 된다, 그것을 핑계하지 못한다.. 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2:15절은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즉 사람은 자기 양심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모를 수 없고, 뻔히 안다는 거죠.
그게 본문에 ‘날아다니는 두루마리’로 묘사된 거죠.

가끔 무슨 홍보를 할 때, 대형 에드벌룬을 띄웁니다. 
또는 경비행기에 무슨 플래카드를 달고 다니는 것을 볼 때가 있는데 (외국에서)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봅니다. 
즉, 모든 사람이 모세의 율법을 모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5:4절은, 그 모세의 율법을 어긴 자에게 임하는 저주가 나옵니다.
그 율법 (3계명과 8게명으로 대표되는)을 어기면, 
율법이 그의 집에 들어가서, 나무와 돌까지도 불살라 버린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게 모세 율법의 내용이기도 하죠. 
율법을 어기면,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르고 살고 있었지만 
온 세상이 저주 아래 있다는 것이죠.
온 세상에 저주의 공기가 흐르고 있는 거죠. 
자연인은 율법을 다 어기고 살기 때문이요.

이해를 돕기 위해 또 다른 표현으로 하면, 
온 세상은 거대한 저주의 바닷속이라는 것이에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고통의 바다를 넘어서) 저주의 바다 속과 같다는 거죠. 

▲그런데 본문은, 지금 성전을 새로 짓는 정황입니다.
그 저주의 공기 아래 있는, 
또는 저주의 바다 속에 있는 이 세상에서, 
지금 공사 중인 성전(신약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는 뭐냐?

성전이 이 땅에 존재한다는 것은,
그 저주의 공기 속에서 피할 수 있는 길이 있고,
그 저주의 바다 속에서 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바로 성전 속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 안으로 피하는 것입니다.

지금 본문 5장에는 ‘성전 속으로 피한다’는 내용은 안 나옵니다.
스가랴서 전체로 해석할 때, 그렇다는 것이죠.


이 본문 슥5장을, 앞 뒤 스가랴서 전체 문맥 속에서 해석하면
‘그러니까 빨리 성전을 재건해서, 그 성전 속으로 피하라’는 것입니다.

신약적으로 말하면, 성전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피하라는 것이요,
구약적으로 말하면, 성전 제사를 통해서, 그 죄의 저주를 물리치라는 거죠.
그래서 성전 재건을 빨리 서둘러라고.. 지금 스가랴가 독려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스가랴는 ‘저주 아래 놓인 세상’을
‘날아가는 두루마리’로 표현했는데요, 
거기 적힌 율법의 저주가, 온 세상에 적용된다는 뜻이었죠.

18세기 영적 대각성 운동의 주역이었던 조나단 에드워즈는
비슷하게 “저주 아래 놓인 인간 죄인”의 상태를 이렇게 적나라하게 표현했죠.

1) 화롯불 위에서 아이들이 갖고 노는 벌레 신세
아이들이 화롯불 위에서, 자기가 잡은 작은 벌레나 곤충을 갖고 놉니다.
막 불에 그을리듯 말 듯 하면서, (좀 잔인하게) 겁을 주면서 놀이합니다.

그런데 그 곤충이 그 밑에 화롯불에 떨어지지 않는 것은,
그 아이가 손으로 붙들고 있기 때문이죠.

인간 죄인은, 언제든지 지옥 불 아래로 떨어지기 일보 직전의 상태인데,
아직 떨어지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손이 그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고,
언제라도 주님이 붙잡은 손을 놔버리면.. 죄인은 그 아래로 떨어진다는 거죠.
(그래서 설교 제목이 ‘진노하시는 손 안에 있는 죄인’입니다.)

2) 죄인은 아주 경사가 급하고 미끄러운 비탈길을 
넘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가고 있는데,
그 아래 계곡은 천길 낭떠러지 (지옥) 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런 위태한 길이 간혹 있는데, 그 비유를 든 것이죠.

죄인이 한 걸음만 삐끗하고, 실족하면 그냥 미끄러져서,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 자연인의 현실이고 상태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전혀 모르고, 유유자적하게 살아간다는 것이죠.

(사실 우리는 매일 뉴스보도를 통해, 자동차 사고나 참사 소식을 듣습니다.
의료사고 소식도 듣고, 사고가 아니더라도 지구상에는
매일 30~50만 명이 장례를 치르고 있고, 언젠가 내 순서도 닥칠 것입니다.)

그런데 죄인이, 그 미끄러운 경사진 사면을
아직 미끄러지지 않고 길을 걷는 것은
하나님의 손이 그를 붙들어주시기 때문인데,

하지만 어느 날,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그 붙잡은 손을 놔버리면
사람은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지옥) 떨어져 버리고 만다는 거죠.
그래서 사람은 지금 Sinners in the hands of angry God 이 상태라는 거죠.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죄인 P1, P2/ 조나단 에드워즈 

그것이 바로 율법이 가르쳐주는 죄인의 상태입니다.
그것이 바로 본문의 ‘하늘을 날아다니는 두루머리’에 적힌 내용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전 안으로 피해야 하고,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피해야 합니다.

▲저주 아래 세상에서, 예수님(성전) 아래 피한 사람
여수 애양원 교회에 지금은 고인이 되신 양재평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서울에서 공부하다가 15살 때 한센병에 걸립니다. 
경성제국대학(서울대학교의 전신)에서 법을 공부해서 검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던 청소년이 
한센병자가 되어 18세 때 한센병 수용소인 애양원에 들어갑니다. 

거기에서 손양원 목사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30세에 결혼을 하지만, 1년 뒤에 시력도 잃고 손의 감각도 잃어버립니다. 

한센병도 억울한데... 자신의 삶을 저주하고 또 저주였지만.. 
그런다고 나아질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는 정신 차리고 다시 일어섭니다. 

“아직도 나에게 남은 것이 있다고.. 청각이 남아 있고, 기억력이 남아 있다고...” 
양장로님은 1954년에 애양원의 한센병자들로 구성된 성경암송반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한센병 형제자매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눈도 멀고 손가락도 없소. 손가락이 있다하여도 지문이 없어서 
점자도 못 읽습니다. 
이중 삼중의 장애를 입었지만, 청각도 있고 기억력도 남았습니다. 

그러니 성경을 듣기만하지 말고 암송합시다. 
다섯 달란트를 갖지 못했지만 한 달란트는 남았습니다. 

남아있는 달란트를 가지고 해봅시다.” 가능해보이지 않은 일을 시작했습니다. 
역시나 듣고 암송해도 금방 잊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반복 또 반복을 거듭했습니다. 

성경이 한 장 한 장 외워지고 드디어 한권씩 암송할 수 있었습니다. 
그 중 몇 사람은 신약성경 모두를 통째로 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의 머리 속에 들어온 성경 구절들은 그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던 
두려움과 분노와 절망을 내모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간증합니다. “밭에 숨겨진 보화를 산 것이야. 
우리는 전부를 잃고 천국을 산 것이었어. 
천형이라는 병을 얻어서 예수를 믿었고, 눈을 잃고 손의 감각을 잃은 대신 
신약성서를 얻었어. 가시라고 생각한 그것들 때문에 얻은 것이야.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 그러니 세상에 찬송하지 못할 게 뭐야? 
하나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수 없고 우리 안에 있다고 
외우기만 했는데, 언젠가부터 이해하게 되었어. 

나사로가 간 나라는 죽어서 간 나라이지만 
살아서 삶 속에서 누리는 하나님 나라도 있다는 말이야. 
바람이 불고 암초가 있어 좌초할 듯한 바다 같은 세상에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펼쳐진 새 하늘과 새 땅의 삶은 존재한다는 거야. 

빛도, 어둠도, 평안도, 환난도 모두 좋은 것이 될 수 있어. 
사람들은 원하지 않지만, 나쁘다고 여기고, 괴롭다고 불평하지만, 
그래서 없었으면 하지만, 그것까지도 충분히 좋은 것이지. 
그게 의심되면 애양원의 우리들을 봐! 

감사하고 찬양하며 기뻐하는 우리들을 보라고! 
우리는 믿어. 우리가 받은 그 저주 같은 병조차 사랑이고, 복이고, 
천국에 이르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말이지. 

칠십이면 끝나는 인생이 영원에 이르는 과정이라면 어떤 대가인들 마다하겠나? 
모든 게 감사함으로 받아야 할 것이지. 

출애굽하는 광야에서도 온갖 환난이 있었고, 
반석 위에 지은 집이나 모래 위에 지은 집 모두 바람과 홍수를 맞게 마련이잖아. 

그런 것은 아무 것도 아니야. 
반석 위에 지었느냐, 모래 위에 지었느냐 그게 중요할 뿐이지. 
그래서, 우리 주님은 땅 끝까지 이르러 부자 되라고 하지 않고 
증인되라고 하셨잖아.”

천벌이라고 여겼던 한센병, 무척이나 두려웠고 절망적이었던 병,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 그것조차 복이고, 사랑이고, 은혜라고... 
그 병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예수 믿었겠냐고 합니다. 
두려움, 절망, 한계에 봉착할 때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적용2. 하나님의 나라에는 악이 제하여 진다

본문 슥5:5~11절에는 ‘에바 속의 여인’ 환상이 나옵니다.
천사는 이 여인을 ‘악’이라고 불렀습니다.  :8

이 여자가 에바(쌀 뒤주 같은 컨테이너) 속에서 빠져나올려고 했는지
천사는 그녀를 다시 에바 속으로 밀어 넣고, 납뚜껑을 닫아 버립니다. :8

이 장면은, 세상의 악까지도 통제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생각나게 합니다. 살후2:7

그 후에, 다른 두 여인이 학의 날개로
이 여인을 담은 에바를 시날(바벨론) 땅으로 옮겨버립니다. :9~11

학자들은 대체로 본문의 이 ‘에바 속 여인’을
계17:5절의 음녀로 해석합니다. 계시록의 음녀의 구약의 그림자(예표)죠.

계17:5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본문 11절에, 에바 속 여인이 ‘바벨론에 집을 세우리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뭔가 자기 역할, 자기 세력을 형성하게 될 것을 예언하는 말입니다.
미래에, 바벨론, 음녀가 발흥하리라는 뜻이죠.

소선지서가 공통적으로 내다보는 것은 ‘미래 메시아 왕국의 도래’입니다.
신약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죠.

그때에는 성전도 회복될 것이며 (성전이신 예수님이 성도 가운데 거하시며)
거기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악이 분리될 것입니다.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시1:5

스가랴서도, 성전이 재건되어질 때, 악(에바 속 여인)이 제하여 질 것을
또는 악이 (에바 속에) 통제되어 질 것을 예언하고 있는 거죠.

참고로, 계시록에서 ‘바벨론’은, 모든 악의 시스템, 악의 본산으로 보고
‘음녀’는 역시 바벨론이긴 하지만, 그 바벨론 시스템에 속한 
‘종교 시스템’으로 보기도 합니다.

왜냐면 ‘음녀’는 구약에서, 종종 타락하고 배도한, 
남편되신 여호와를 떠난 이스라엘을 가리키므로, 다분히 종교적 용어입니다.

▲이 여인을 시날 땅으로 옮긴다는 것은 “최후 승리에 대한 보증”을 뜻하죠. 
슥1~4장까지는 메시아가 모든 것을 회복하고, 성전이 지어질 것을 약속하죠.

본문 슥5장은, 그 메시아를 따르지 않는 세력들,
그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기로 선택한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내용이

-거대한 날아다니는 두루마리에 대한 환상으로 묘사되고, 
-그런 악의 세력을 먼 땅 바벨론으로 옮기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세력과 그런 자들에겐, 최후 심판이 약속되어 있죠.' (5장엔 안 나옴)

그러나 이스라엘 땅은 마침내 그 더러운 영향력에서 벗어날 것입니다(9-11).
이것은 ‘메시아 왕국,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표이기도 하죠.

그러므로 본문 슥8장의 환상은
-죄인에 대한 형벌,     *날으는 두루마리
-죄인의 제거, 또는 악의 통제 인데,  *에바 속 여인
그 결과, 그렇게 메시아 왕국의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지표수와 심층수가 있습니다. 
땅을 조금만 파도 물이 쏟아져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물은 대부분 먹지 못하는 물입니다.  
왜냐면 오염되어 정화되지 못한 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물을 지표수 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30m정도 파내려 가면 깨끗하게 정화된 단물이 나옵니다. 
이 물이 심층수 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물이 땅으로 내려가면 갈수록 정화되어 
깨끗한 생수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늘에서 내린 빗물이 오랜 세월을 거쳐 땅속으로 스며들면서, 
수정처럼 맑게 정화되는 것입니다. 
깊이 스며들면 들수록 더 깨끗한 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땅속으로 스며든 물이, 오랜 세월동안 정화되었다가 거꾸로 분출될 때 
이 물은 사람을 살리는 생수의 역할 합니다. 
깊이 스며들었다가 분출되는 물은 말할 나위 없이 정말 생명수가 되지요. 

현재 하나님 나라를 생각할 때, 하나님이 악을 제하시고 하는 것은,
세상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지표수’로는 도저히 세상을 살릴 수 없기에,
주의 백성들을 연단을 통해 ‘심층수’로 만드시고
그 뒤에 땅 위로 다시 분출케 하여 ‘생명수’로 쓰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공동체를 정화시키시사
‘악’은 멀리 제하여 버리시는 거죠.

▲진짜 하나님의 나라(메시아 왕국)을 고대하며 사는 사람

「나(이재환 선교사)는 몇 해 전에 
'웨스트 파푸아 뉴우기니' 지역을 탐방해 본 적이 있다.

나는 거기서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먼저 놀란 것은, 그 깊고 깊은 정글에,
도저히 육로로 접근이 어려운 그 원시 마을에 
(21세기에, 아직도 이런 원시마을이 그대로 남아있다니...)

캐나다 캐빈 마틴 선교사 가족이, 그 곳 7백 명 원주민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상점도 없고, 학교도 없고, 문명의 혜택이 전혀 없는 곳에서
선교사 가족은 자기 자녀 셋을 데리고,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볼 때
눈물이 났다. 정말 놀라웠다.

우리들은 자녀 교육을 위해서 캐나다, 미국, 호주로 유학이민을 떠나지 않는가?
기러기 아빠가 되는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캐나다로 못 떠나서 난리다.

그런데 저들은, 왜 그 좋은 캐나다를 다 버리고,
이 원시 밀림에 들어와서 사는가?

제 정신이 아니든지/제 정신이든지... 둘 중 하나인데, 둘 다 말이 된다.

그는 ‘제 정신’이었다.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고,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다 보니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버리고, 그 원시 부족으로 들어온 것이고,
한국에서 더 살기 좋다는 나라로 가는 사람들이... ‘제 정신이 아닌 것’이다.」



◑절별 해석 ....................................................................

본문 슥5장은, 앞의 3장과 4장과는 달리 심판과 저주가 선포됩니다. 
3장에서는 여호수아의 옷이 더럽다는 송사에 대하여 
그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시라고 하셨습니다. 

4장에서는 순금등대와 두 감람나무를 보여주시면서 
장차 나타날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를 통해, 성전이 완공될 것을 보여주시는
은혜로운 계시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 슥5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심판과 저주의 말씀입니다. 

▲날아가는 두루마리 환상1-4절

1 내가 다시 눈을 들어 본즉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있더라

‘내가 다시 눈을 들어본즉’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내가 고개를 돌려 눈을 들어본즉’입니다. 
즉 1-5번째 환상이 동쪽을 향해서 본 것이라고 한다면, 
6-8번째 환상은 서쪽을 향해서 본 것입니다. 

그래서 1-5번째 환상이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대한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했다면, 

6번째부터는 과거 하나님의 백성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온 후,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서도 우상숭배와 여러 가지 죄악을 행함으로써, 
나라가 망하고, 바빌론으로 끌려갔던 실패를 
다시는 반복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즉 성전을 다시 짓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과거와는 다른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 것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본 것은 ‘날아가는 두루마리’였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있더라’ 앞에 
‘보라’라는 감탄사가 있습니다. 

즉 스가랴 선지자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환상을 다시 본 것입니다. 
그런데 스가랴 선지자가 본 것은 아라비안나이트와 같은 소설에 나오는 
‘하늘을 나는 양탄자’, ‘마법의 양탄자’가 아니라, ‘날아가는 두루마리’였습니다.

2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되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나이다 
그 길이가 이십 규빗이요 너비가 십 규빗이니이다

스가랴 선지자가 본 날아가는 두루마리는 가로가 10규빗, 세로가 20규빗
그러니까 가로가 4.5m이고, 세로가 9m입니다.

일반적으로 육교의 평균 높이가 4.5m입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본 두루마리는 도로에 설치된 육교 아래 공간 정도 되는 
굉장히 큰 두루마리였습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쳐다보기만 하면, 금방 알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특히 이 두루마리의 크기, 가로 10규빗과 세로 20규빗은 
솔로몬왕 때 건축한 성전에서 성소 앞의 현관 역할을 하는 
주랑과 같은 크기입니다.  왕상6:2-3. 

그러니까 그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뜻합니다.
그 두루마리에 쓰인 글이 이러하였습니다.

3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땅 위에 내리는 저주라 
도둑질하는 자는 그 이쪽 글대로 끊어지고 
맹세하는 자는 그 저쪽 글대로 끊어지리라 하니

그 두루마리에 쓰인 글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습니다. 
(아마 두루마리에 두 칼럼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세로로 두 줄)
한쪽에는 ‘도둑질하는 사람에 대한 저주’였고, 
다른 쪽에는 ‘맹세하는 사람에 대한 저주’였습니다.

‘도둑질하는 사람’은 십계명 중에 8번째 계명과 관련되고, 
‘맹세하는 사람’은 십계명 중에 3번째와 관련됩니다. 

그래서 ‘도둑질하는 사람’은 십계명 중 대인계명인 5-10계명을 대표하고, 
‘맹세하는 사람’은 십계명 중 대신계명인, 1-4계명을 대표한다고 봅니다.

4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이것을 보냈나니 
도둑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의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나무와 돌과 아울러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하나님의 저주 명령은 도둑의 집에, 
그리고 망령되게 맹세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그 집을 완전히 전소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마치 출애굽 당시에 애굽에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앙 중, 
마지막 10번째인, 죽음의 사자가 
문의 양쪽 설주와 위아래 인방에 피를 바르지 않은 집을 방문했을 때, 
그 집의 장자가 죽는 비극적인 장면을 떠오르게 해 줍니다.

특히 집을 짓는 재료인 나무는 말할 필요도 없고, 
돌까지 모두 살라버린다고 하는 것은 완전히 진멸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들은, 5만명의 귀환민 중에, 죄인들이 섞여 있었음을 뜻합니다.
표면적 유대인이라고 다 구원받는 것은 아니며, 
귀환민이라고 해서, 다 구원받는 것도 아니며,
유대인이고 귀환민이라도.. 범죄하는 자는..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민 백성들에게 ‘성결’을 요구하시는 거죠.


▲에바 속의 여인 환상5-11절

이 환상도 여섯 번째와 동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린 사람들에게 임할 
징계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5 내게 말하던 천사가 나아와서 내게 이르되 
너는 눈을 들어 나오는 이것이 무엇인가 보라 하기로

6 내가 묻되 이것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그가 이르되 나오는 이것이 에바이니라 하시고 
또 이르되 온 땅에서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라

스가랴 선지자가 본 일곱 번째 환상은 ‘에바’였습니다. 
에바는 부피를 재는 단위이기도 하고, 그만큼의 양을 담는 용기통이기도 합니다. 

새번역성경은 ‘에바’를 ‘뒤주(쌀통)’라고 번역했습니다. 
에바는 22ℓ리터 분량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에바 안에 곡식이 들어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7 이 에바 가운데에는 한 여인이 앉았느니라 하니 
그 때에 둥근 납 한 조각이 들리더라

 스가랴 선지자가 납으로 된 뚜껑으로 닫힌 에바를 열었더니, 
그 안에는 한 여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 여인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 그가 이르되 이는 악이라 하고 그 여인을 에바 속으로 던져 넣고 
납 조각을 에바 아귀 위에 던져 덮더라

그 여인이 ‘악’이라고 의인화합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종종 하나님의 백성이 우상숭배를 하거나 
세속적 가치관을 따라서 사는 것을 ‘음녀를 따른다’고 표현하곤 합니다. 

그래서 그런 악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 속에 퍼지지 않도록 
다시 그 여인을 에바에 던져 넣고 납으로 된 뚜껑으로 덮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행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이 악에 물들지 않고, 
또 악이 퍼져 전염되지 않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악을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분명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천사는 또 다른 두 여인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9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두 여인이 나오는데 학의 날개 같은 날개가 있고 
그 날개에 바람이 있더라 그들이 그 에바를 천지 사이에 들었기로

이 여인들은 학의 날개를 가졌다고 하며, 
악이라는 여인을 담은 에바를 들고 공중으로 날아갔습니다. 
두 여인은 하나님의 선한 천사로 봅니다.

본문은 이렇게 막이 내립니다.

10~11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그들이 에바를 어디로 옮겨 가나이까 하니 
그가 내게 이르되 그들이 시날 땅으로 가서 그것을 위하여 
집을 지으려 함이니라 준공되면 그것이 제 처소에 머물게 되리라 하더라

환상에 집중하던 스가랴 선지자는 
갑자기 두 여인이 에바를 붙잡고 공중으로 날아가자, 
천사에게 에바 속 여인이 어디로 날아가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시날 땅으로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집(신전)을 지으려고 하는데, 
완성되면 그 안에 둘 것이라고 합니다.

B.C. 605년, 바빌로니아 제국이 유다를 쳐들어와 
다니엘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을 끌고 갔고, 성전 기물도 탈취하여 
자신들의 신전 보물 창고에 두었는데, 그곳이 ‘시날 땅’이었습니다.

또 아시는 바와 같이, 온 세상의 언어와 말이 하나였을 때, 
교만이 극에 달했던 사람들이 벽돌로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까지 닿게 하여 자신들의 이름을 내자고 했던 곳, 
바벨탑을 세웠던 곳이, 바로 ‘시날 땅’이었습니다.

에바 안에 있는 여인은 악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이 거룩한 땅에 머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죄악과 심판의 땅으로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악에서 떠나, 
정결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단락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