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영과 육의 관계 P1

LNCK 2022. 11. 29. 13:06

영적세계의 원리들13: 영과 육의 관계 - 고성준 목사 - YouTube

 

◈영과 육의 관계 P1               고전6:12~20            2019년 설교

영적세계의 원리들13: 영과 육의 관계           *위 설교 1/2 녹취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과 의 두 세계에 함께 속하도록 만드셨죠. 
그래서 사람은 보이는 세계에만 속해 있는 존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에 함께 속해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 중에, 사람만 유일하게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다른 존재들은 다 한쪽 세계에만 속해 있습니다. 

동물들 또는 식물들 또한 모든 보이는 물질세계 들은 
그냥 보이는 자연세계에 속해 있지요. 

그 존재들이 동시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그냥 물질이고, 눈에 보이는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만드셨습니다. 
그곳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고, 영적인 세계입니다. 

그곳에는 천사들이 있고, 또 기원이 정확하지 않지만 악한 영들도 있고 
그런 것이 하여간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영육의) 이 두 세계에 함께 존재하는 
그런 두 세계에 동시에 속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짓게 되면서 어떻게 됩니까? 그냥 고깃덩어리가 돼 버렸어요. 
육체가 되어버렸어요. 그 이야기는 뭐예요?
영적인 기능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하여간 정지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더 이상 영적의 세계에 속한 존재로 살아가지 못하고 
그냥 소나 짐승과 똑같이, 그냥 이 육의 세계에만 속한
'육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고 성경은 얘기 합니다.  창6:3

그런데 구원이라는 것은 무엇이냐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다시 들어 오셔서
우리 안에 죽어 있는 영을 다시 살리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영을 다시 살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두 세계를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은, 우리 안에 성령께서 내주하심 으로 말미암아 
보이는 세계에서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마치 보이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 세계를, 마치 들리는 것처럼 
그곳과 실질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살아닌 우리 영에, 오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죠.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러셨지요.  요4:24

그래서 이 하나님을 우리가 인식할 수 있고 
또 하나님과 실질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자들 안에는 성령께서 계심으로 
하나님을 인식하고, 또 하나님과 실질적인 교제를 맺을 수 있는 
영적인 기능들이 다시 회복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은 이 두 세계를 동시에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이 두 세계를 살아갈 때 중요한 것은 뭐냐면 
그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잘 이해하고, 

그 세계의 원리들을 잘 이해하는 것입니다.


물질세계도 마찬가지죠. 우리 몸이 이 땅을 살아갈 때 
이 땅에 물리적인 법칙을 전혀 모른다면, 굉장히 위험할 거예요. 

그 법칙을 몰라서, 3층 지붕에서 뛰어내린다든지, 썩은 음식을 먹는다든지 
그러면 우리 몸이 건강할 수 없겠지요. 심한 경우는 죽게될 것입니다.

 

왜냐면 이 세상의 원리를 무시했기 때문에 그렇지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물질세계의 원리요, 법칙이지요. 

하나님이 창조 속에는 질서를 주셨는데 
이 질서는, 그 질서를 따라가면 강건하고 풍성하게 되는 복을 받고,

이 질서(법칙, 원리)를 벗어나서 따라가지 않으면 
그곳에는 항상 거기에 따른 대가가 있어요. 

그 질서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오는 대가들이 있는데 
그 대가는, 레위기에 보면, 말씀을 준행 하지 않으면 
'황량하고 황폐할 것이다' 라고 했어요. 레26:31, 겔6:14

열매가 없고, 인생에도 풍성함이 없고, 
인생이 황폐해지고 황량해지고 그런다는 거지요. 

그것은 단순히 영적인 원리일 뿐만이 아니라 
이 모든 창조 속에 숨어있는 원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도, 이 세상의 원리들을 잘 알고 순응하면서 따라가야지 
3층에서 뛰어내리면 안 되고... 
상한 음식도 먹지 말아야 되고... 
이런 원리들을 잘 따라서 살 때, 우리의 몸도 건강하고 풍성하게 될 수 있지요. 


마찬가지로 영적인 세계도 동일하다는 거예요. 
영적인 세계도, 영적인 세계의 원리가 있습니다

물질세계를 만드신 분이, 영적인 세계도 만드셨어요. 
우리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질서의 하나님이세요. 

하나님은 창세기 1장에도 보면, 혼돈 가운데 질서를 주신 분이세요. 
하나님께서 항상 질서를 부여하시는 분이시지,
무질서와 혼돈과 뭐 그런 하나님이 아니세요. 

그래서 영적인 세계도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그 안에 이 세상을 지으신 것과 똑같은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도 원리와 질서를 두셨다는 거죠. 

그래서 영적인 질서를 잘 따라 가면 어떻게 돼요?
우리의 영이 풍성해지고, 우리의 삶이 더 풍요로워지는 복을 누리게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 영적인 질서를 무시하고, 영적인 원리들을 무시하고 
그냥 내 생각대로, 내 마음대로 막 살게 되면 어떻게 돼요?

우리가 결국 거기에 따르는 대가를 치르게 되는 거예요. 
그게 저주입니다. 

저주는 하나님께서 '저주를 받아라' 이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영적 원리를 무시하고, 어기고 살면.. 저주를 받도록 성경에 약속되어 있지요.

 

그래서 그 '저주'도, 
뭐 하나님께서 의도를 가지고 치시는 것, 그런 것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해 아주 반항하고 대적하면.. 결국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저주하시죠.

그런데 대부분 성경에 나오는 저주는, 
하나님이 의도를 가지고 저주하신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질서와 법칙을 어김으로써.. 자동적으로 뒤따르는

어떤 근원적인 저주입니다.

예를 들면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3층에서 뛰어내리면 무슨 저주가 있습니까? 
다리가 부러지는 저주가 있겠죠. 

뭐 심하면 죽든지, 허리가 부러지든지 하겠지요.
이건 하나님께서 '저주를 받아라!' 하시고 치신 게 아니라,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자연의 질서를 어겼기 때문에 
거기서 따라오는 그냥 '근원적인, 원론적인 저주'이죠.


그렇듯이 영적으로 동일한 원리가 있다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영적인 원리를 잘 이해하고, 그 원리에 따라서 살면 
거기에 따르는.. 하나님이 원래 창조하셨을 때 주시고자 했던 
그 풍성함과 사랑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거든요.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은 
풍성하고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리도록 하시기 위해서이지, 
황량하고 황폐한 인생을 위해서 지으신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하나님의 질서 속에
모든 풍요로울 수 있는 복들을, 즉 원론적인 약속들을 다 집어넣어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이 영적인 질서를 이해하고 잘 따라서 살 때 
우리 영이 더 강건해지고, 우리 영이 더 충만해지고 
그래서 그 결과 어떻게 돼요? 더 풍성한 삶을 살게 되는 거지요. 

여러분들이 영적인 원리를 잘 이해하고, 
그 원리를 따라서 살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자 그렇다면, 영적인 원리를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배울 수 있는가요? 
거기에 대한 절대적인 교과서가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은, 영적인 세계가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 
또한 하나님께서 어떤 원리를 가지고 만드셨는지.. 
하는 것들을 기록해놓은 책입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을 여러분들이 부지런히 읽고 묵상하시고 
그 말씀을 준행하시기를 도전합니다. 

레위기에 보면 '준행하라'는 말이 4번 나오는데
준행한다.. 는 것은 '지키고 행한다'는 뜻이지요. 
'준행하라'고 계속 도전합니다. 물론 그 외에도 '지키라'는 말씀도 수없이 나오죠.

여러분들이 영적인 원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그러면 그 안에서 우리의 이 복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러면 육의 복도 따라오는 거죠. 영과 육은 하나, 일체이니까요)


◑자 그래서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영적인 원리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영적인 원리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바울의 리더십 아래에 있었던 교회 임에도 불구하고 
영적인 질서를 많이 깼던 교회입니다. 

심지어 그 안에 음란도 있었고, 심지어 그 안에 교만한 것도 있었고 
또 바울의 말을 무시하는 것도 있었고.. 그게 다 영적인 질서 들이거든요. 

그 질서를 다 깨는.. 따르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 교회에 긴 편지를 쓰면서 
영적인 원리가 무엇인지를 하나씩 하나씩 짚어나가는 것이 고린도전후서 입니다.

감사하게도 고린도교회에 썼던 편지가 성경으로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달된 것은 
우리에게도 이 원리들을 알고, 잘 따라 오라고 하는 뜻인 줄 믿습니다. 


오늘은 23번째 원리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대충 제가 고린도전서를 정리해 봤더니, 원리가 50개 좀 넘게 나오는 거 같아요. 
그 중에 오늘은 23번째 원리를 살펴봅니다.

고전6장에서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는 영적인 원리는 
"영과 몸의 관계"에 대한 것들을 바울이 짚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고린도교회에 음란이 만연해 있었어요.
음란은, 사실 우리 몸에 대한 영역이죠.

그렇지만 이것이 몸의 문제 뿐만 아니라, 영적인 것이며 
영적인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몸과 영의 관계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사람 안에서 영과 몸은, 따로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둘은 서로 서로 간에 영향을 미칩니다. 

고전6:13절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조금 해석이 어려운 말씀이 나오는데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이 말은 당신 통용되었던 속담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표현들을 볼 때, 
이해가 퍼뜩 오지 않고 '이게 무슨 말이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게 다른 (즉 헬라) 문화권에서 당시 속담으로 사용되던 말을 
그대로 직역해 놓았기 때문이죠.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다' 라는 이 말, 
'사람에게는 육적 본능이 있다' 이런 뜻이에요. 

당시 고린도교인들 중에는, 식욕이 몸의 본능인 것처럼 
성적인 욕구도 몸의 본능이니까, 그냥 자유롭게 채워야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거예요. 오늘날에도 많죠.

    특별히 초대교회에 영지주의가 있었죠. 
    영지주의도  크게 두 부류로 나눠지는데 
    그중에 한 부류는, 이 생각을 아주 강하게 가르쳤었어요. 

    '우리 몸의 기본적인 욕구들이 있는데 
    식욕도 있고, 또 성적인 욕구도 있고, 추우면 옷을 입어야 되고 
    이런 욕구들은 사람의 본능이기 때문에, 그것은 자연스럽게 채워 줘야 된다.. 
    이것을 채워주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방탕함으로 흐르겠지요. 

    근데 이 사람들의 주장은 뭐였냐면 
    우리의 영과 몸은 따로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몸의 욕구를 채우는 것과, 영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거예요. 

    영과 몸은 분리되어 있는 것이라서

    몸(육)의 욕구는 그냥 본능이다. 자연스럽다. 
    그러니까 그냥 마음대로 채워라..

    그런다고 영이 타락하거나 망가지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이게 당시 영지주의의 가르침이었어요. 

그런데 바울은 여기에 대해서 정면으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그래서 고전6:13절을 말씀하는 거죠.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다'는 당시 회자되던 말은,
바울은, 틀린 말이라는 거예요. 

본능을 따라가면 안 되고, 우리 몸은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위해 있는 거라는 거예요. 
우리 몸은, 하나님을 위해 있는 거라는 거예요. 본능이 아니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13


영과 혼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몸으로 행하는 어떤 것들은, 내 영에 해로운 것도 있고 
우리가 또 몸으로 행하는 어떤 것들은, 내 영에 유익한 것도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으로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이 더 건강하고 충만해지기도 하고 

반대로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영이 굉장히 침체되고, 죽기도 한다는 거예요. 
침체되고, 약해질 수 있다는 거죠. 그것을 '영적 침체'라 그러죠.

고전6: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우리 몸으로 행하는 행동이 
어떤 것은 내 영에 유익하고 
반대로 어떤 것은 내 영에 해롭습니다. 

영광 몸(육)은 분리되어서 서로 상관없이 작동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서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우리 영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영은 율법에 메이지 않습니다. 
또 이방 제사에 드려졌던 고기를 먹을 자유도 있고 
또 할례를 받지 않아도 괜찮다,  자유가 있다.. 그랬어요. 

할례 받지 않는다고 저주 받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자유라고 해서,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꼭 죄가 아니라도, 모든 것이 유익한 건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율법으로 옭아 매진 않으셨어요. 
우리에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어요. 

그 자유 가운데는 물론 죄를 짓는 게 아니라도 
우리가 무엇이든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죄가 아니라면 선택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택 가운데 
어떤 것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 있고, 어떤 것은 새로운 것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죄가 아니면 전부 다 해도 된다' .. 이런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죄를 피하기 위해서 지음받은 존재가 아니에요. 

꼭 죄가 아니라도, 그 행동을 하면 우리의 영에게 해로운 것이 있고 
꼭 죄가 아니라도, 그 행동을 하면 굉장히 유익한 것이 있어요. 

여러분들이 이 영적인 원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 영에 주신 그 자유함을 
오용하지 말고, 남용하지 말고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선택들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아멘! 


과거에 제가 사역할 때 보면, 하여간 따지는 친구들이 있어요. 
'성경에 보면 뭐 담배 피우지 말라는 말이 있느냐?' 

과거 그 당시 헬라 문화에는 담배가 없었으니까, 성경에 기록이 안 된 거죠. 
술 마시지 말라는 말씀이 신약성경에 있느냐? 
그런 거 가지고 자꾸 따지는 친구들이 있는데 
죄만 아니면 뭐든지 다 하겠다는 것이죠.

그러나 그게 죄가 아니더라도, 유익한 것은 아니라는 거죠.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고, 우리 영에 해로운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몸도 건강을 잃겠죠.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고전6:13

우리 몸은, 음란 즉 본능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우리 몸을, 하나님이 주신 것을 
육신의 본능을 만족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몸을 주시고 오감을 통해서 느낄 수 있도록 하셨는데 
그것은 단순히 느끼라고 주신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뭐 음식의 맛을 느끼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성적인 만족을 느끼고... 이렇게 하라고 몸을 주신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예요. 

몸을 주신 이유는, 
음란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를 (영광을) 위해 주셨다는 거예요.
우리 몸을 사용해서, 주를 섬기라고 주신 거예요. 

여러분들이 우리 몸을 사용해서, 우리 몸에 있는 만족을 위해서 살지 말고 
본능을 위해서 살지 말고, 주를 위해서 사는 여러분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왜냐면 그것이 성경이 얘기하는 영적인 원리예요. 
우리 몸은 주를 위해서 살기 위해서 주어졌기 때문에, 그 이야기는 뭐예요?
주를 위해서 살 때, 결국 영적으로 복을 누리게 돼 있어요. 
이것이 영적인 원리입니다. 

그래서 몸의 즐거움을 위해서, 또 몸의 본능을 위해서 계속 그렇게 살아가면 
어떻게 되는 줄 아세요? 사람이 유기되어 버려져요. 

우리 몸에 있는 육의 욕구들이 있지요. 
갈라디아서에서 '육체의 소욕'이라고 했어요.

우리 몸이 요구하는 본능들이 있어요. 
먹고 싶은 식욕, 성적인 욕구, 자랑하고 싶은 욕구, 많이 갖고 싶은 욕구, 
뭐 이런 육체의 욕구들이 있는데 

이 욕구들을 계속 만족시키기 위해 애써 노력하면서 살아가면 
사람이 어떻게 될까요? 자기 육이 강화 된다는 겁니다. 결국 육적인 사람이 됩니다.
육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는 육적인 사람이 되고 말아요. 

영적인 사람이 되려면, 우리의 영의 욕구, 영의 소욕을 계속 만족시켜야 
영적인 사람이 되지... 육의 소욕을 계속 만족시켜서는 육적인 사람만 됩니다.

그래서 영의 욕구를 계속 만족시키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육(몸)은 중요하지 않느냐? 그렇지 많습니다. 
육(몸)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지금부터 그 얘기를 할 텐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신대요'  :13

이 얘기는 뭐냐면, 예수께서 우리 몸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는 거죠.
우리 몸을 위해서 주가 계신대요. 

그 말씀 속에는,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것 속에는 
우리의 몸을 구원하기 위한 목적도 포함되어 있다는 거예요. 

구원이란, 우리 영만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만 그냥 딸랑 구원 받아서, 유령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몸까지 구원하신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인간 안에서는 영과 몸이 따로 따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구원이라고 할 때는, 영의 구원뿐만이 아니라 
몸의 구원이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몸의 구원은 뭘까요?
영의 구원이 있고, 몸의 구원이 있는데 

영의 구원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때 
우리 안에 성령께서 들어오셔서, 
우리 안에 멈춰있고 작동하지 않던 영적인 세계를 
인지할 수 있고, 또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그래서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예수님도 하나님이시구나' 하는 것을 알게되는 것은 

영의 기능이 살아난 것입니다. 이것이 '영의 구원'이죠. 
더 쉽게 얘기하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것이 영의 구원' 입니다.

그런데 이 '영의 구원'은 순간적으로 한 번에 일어납니다. 
그것은 무슨 긴 과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우리는 거듭나고, 우리 안에 성령께서 들어오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 라고 하는 신분으로 완전히 거듭납니다.

그래서 영의 구원은, 처음에 구원이 시작할 때 10% 구원됐다가,
시간이 지나면 20% 됐다가, 30%로 성장하는... 이러는 게 아니에요. 
그냥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완전히 구원을 받는 거예요. 

구원받음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느냐/ 계시지 않느냐 하는 
마치 OX 문제와 같아요. 

그래서 '영의 구원'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에요. 
그냥 성령께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한 번에 완전히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몸'은 달라요. 
몸은 한 번에 '몸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에요. 

한 번에 '몸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에요. 
우리 몸은 죄로 인해 타락했습니다. 

여기서 '몸'은 우리 '혼'을 포함한 개념입니다.
혼은, 다른 말로 우리 '생각'인데 
혼도 몸의 영역에 포함되지요. 영의 영역이 아닙니다.

어쨌든 혼과 육은 타락한 세상 속에 있어요. 
그 때문에 우리 몸에 본능도, 원래 하나님이 창조하셨던 온전한 본능이 아니라 
죄로 인해서 오염되고 타락한 본능이라는 거예요. 양심마저도 마찬가지죠.

우리 몸은 타락한 죄악에 길들여져 있어요. 
우리 애가 어렸을 때, 제게 묻기를
'아빠 아빠, 왜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다 몸에 안 좋아?' 

맞습니다. 치킨, 돈까스, 빵... 맛있는 음식은 왜 다 몸에 안 좋은 경향이 있어요.
왜 그런가 하면, 몸에 안 좋은 음식만 맛있는 게 아니라 
우리 몸이 그렇게 길들여진 거예요. 

그래서 '타락한 육신'이에요. 
타락 육신이, 몸에 안 좋은 음식을, 맛있다고 계속 반복 강화학습으로 해서
그게 맛있다고 길들어져 버렸어요. 이게 몸이 타락한 거예요. 

하나님께서 몸에 안 좋은 음식만 맛있게 만드신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이 그런데 잘못 길들여진 것이에요.

우리 몸이 그렇다는 거예요. 우리 몸이 타락한 세상을 살면서 
지금 그냥 먹는 것만 가지고 얘기했지만 
먹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몸에 있는 본능들이 있죠.

식요, 소유욕, 자랑하고 싶은 욕심, 성욕
이것들이다. 정상적으로 돼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이 타락한 세상에 잘못된 문화와 잘못된 시스템 속에서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미 길들여져 온 거예요. 잘못 길들여진 거죠.

그래서 우리 몸에 구원이 일어나고, 우리 안에 성령께서 들어오셔서 
우리 영이 이제 완전히 100% 새로운 존재가 됐어요.

그래서 구원 받은 자의 영 속에는 성령이 계시는데 
성령이 불안전한 형태로 계실 순 없잖아요. 성령은 완전하게 우리 속에 계세요.

시간이 지나면서 영이 점점점 개발되고 발전하고 
그래서 더 커지거나 더 완전해지는 이런 게 아니라는 거에요. 
성령이시기 때문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냥 100 입니다.
그냥 처음부터 완전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육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우리의 육은 세상 속에서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 오시면, 충돌을 일으킨다는 거예요. 

우리 육체의 본능과 성령의 요구하시는 것이 충돌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몸의 구원'이란, 점진적으로 조금씩 조금씩 일어나는 거예요. 
한꺼번에 확 다 변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변화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이 타락한 본능을 가지고 영원히 사는 게 아니라는 거에요. 
만약에 타락한 본능을 가지고 영원히 산다면 
그게 천국인지/ 지옥인지 헷갈리지 않겠어요? 

이 타락한 본능을 가지고, 이게 뭔가  우리 본능 때문에 괴로운 게 많잖아요. 
그런데 이 본능을 가지고 영원히 사나요? 그렇지 않죠. 

그래서 빌3:2절에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구원'에 대해서 온전히 이룬 것도 아니고, 아직 이미 얻은 것도 아니래요. 
이제 다른 곳에 보면 우리의 구원을 그냥 한꺼번에 이 완성됐다고 얘기하죠.

그래서 우리 안에 있는 두 가지 종류의 구원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우리의 영은, 성령께서 들어오시는 순간 완전해 지지만 
동시에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이루어 가야 되는 구원'의 파트가 있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의 몸이 타락한 몸이기 때문에 
이 몸은 그냥 폐기처분하고, 영만 딸랑 천국에 가는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과 몸이 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게 될 텐데 
그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과 몸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몸이 계속 변화되어 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원래 창조하신 그 목적대로 
원래 창조하신 본능에 순응하도록... 

그래서 우리가 옛날에는 죄에 길들여져서 
우리 몸이 계속 죄에 대한 것만 요구하고, 그것만 맛있어 하고, 
그것만 좋아하던 본능이 있었다면 

이 본능이 이 땅을 살아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변화되어서
하나님이 원래 창조하신 본능으로 
그래서 거룩한 것에 대한 것을 더 즐거워하고 

또 하나님이 연락하신 질서를 더 맛있어 하고.. 
하는 이 원래 창조한 본능으로 
조금씩 조금씩 매일매일 변화되어 가야 됩니다.
그것을 '성화' 라고 부르는 거예요. 

그래서 '이루어가야 되는 성화'는  영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몸에 대한 거예요. 

영은 처음부터 안전한 것이지, 영이 점점 변해 가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가 표현이 조금 애매하긴 한데 
'영적인 훈련'이라고 얘기했을 때 
이 영적인 훈련도 우리의 영을 단련시키는 게 아니에요. 
이미 영은 우리 안에서 완전해요. 우리의 몸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혼과 육, 
그것이 어떻게 원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능대로 점점 변화되어 갈 것인가? 
하는 것이 훈련이고, 

영적인 성숙도 .. 영이 성숙해가는 게 아니에요. 
엄밀히 말하면, 영어 성숙해 지는 게 아니라, 우리 육이 성숙해 지는 거죠.
그러나 영과 육이 하나로, 일체로 붙어 있기 때문에 '영적인 성숙'이라고 말하는 거죠.

이 '몸의 생각'들을 계속, 원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어떤 '영의 생각'으로 
바꿔 가는 것이 결국 구원입니다. 
'몸의 구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