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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4:1-6 예수 안에 없는 것과 있는 것

LNCK 2022. 11. 30. 14:43

◈예수 안에 없는 것과 있는 것    눅14:1-6     09.08.09.설교스크랩 


◑본문 설명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바리새인의 두령의 집으로 떡을 잡수시러 들어 가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이 끝나는 토요일 저녁이면 다같이 모여서 
식사를 하는 습관이 있었다. 

이 예식을 ‘합달라’라고 하는데 
이때 떡을 먹으며, 향을 맡으며, 시128편을 다같이 암송한다. 

「시128편,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라.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라.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본문 말씀은 바로 합달라 예식에서 생긴 사건이다.   
사람들은 지금 예수님의 행동을 가만히 엿보고 있다.  
‘저희가 엿보고 있더라’  눅14:1  

예수님은, 안식일도 변함없이, 
율법에 금하고 있는 병자들을 고치시고 계셨기에, 
그 증거를 잡으려고 벼르고 있는 중이었다.   
예수님을 고소할 증거를 눈이 시뻘겋게 찾고 있는 중이었다.   

마침 바리새인 두령의 집에는 고창병 환자가 있었다.   14:2 
‘고창병’이란 팔다리가 부어오르고 살갗이 물러지는 불치병이다. 

고창병 환자가 바리새인의 집에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떡을 얻어먹으려고 왔는지 모른다. 
-예수님이 계신다니 병고침을 받으려고 결사적으로 왔을지도 모른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꼬투리 잡으려고 데려다 놓았을지 모른다. 

예수님께서 율법사와 바리새인들에게 당당하게 물으셨다.  
‘안식일에 병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14:3 

그들은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율법을 어기시고 고창병 환자를 고치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나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이라도 곧 끌어 내지 않겠느냐’(눅14:5)고 하시니 
주변에 있던 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 안에 없는 3가지와 
   예수님 안에 있는 3가지를 발견 할 수 있다. 


◑예수님 안에 없는 3가지 

▲1. 예수님 안에는 우연이 없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요나의 이야기는 우연은 결코 이 땅에 없음을 잘 말해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외치라고 하였다.   
그런데 요나는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 배가 풍랑을 만났다.   
배에 틀림없이 죄인이 있다고 제비를 뽑자고 하였다.  

이방인들도 이 풍랑에는 뜻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었다.   
제비를 뽑았다. 요나가 뽑혔다.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바다로 던져지고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켰다.   
이것도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인줄로 믿는다.  

큰 물고기는 3일동안 요나를 뱃속에 품고 있었으나 소화시키지 못하고 
니느웨 성에 가까운 해변에 토하고 말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하나님의 계산된 섭리뿐이었다.   
풍랑이라는 자연현상에도 우연은 없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바리새인 두령집에 가서 고창병자를 고치신 것에는 
하나님의 어떤 섭리가 들어있는 것일까?  

안식일에 율법을 어기고 영혼을 사랑하여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려 주시려는 섭리가 들어있다.   

율법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시려는 계획이 들어있다.   
예수님 안에는 우연은 없다. 섭리만 있을 뿐이다. 

▲2.  예수님 안에는 원수가 없다. 

당시 예수님에게 가장 큰 원수는 바리새인들이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가셨다는 것은 
사형수가 사형집행관 집에 갔다는 이야기이다.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칼을 갈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과 예수님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님은 원수 같은 바리새인의 집으로 가셨다.   
예수님이 잘못 가르치고 계신 것을 찾아내어 죽이려는 음모가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바리새인 두령의 집으로 가셨다. 

예수님 안에는 원수가 없다. 예수님은 누구나 다 사랑하셨다.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하여야 하셨다. 

예수님 안에는 우연이 없고, 원수가 없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사랑할 수 있고, 누구든지 구원시키려 이 땅에 오셨다. 

▲3. 예수님 안에는 문제가 없다. 

고창 병자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고침을 받았다.   
안식일에는 병을 고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병을 고치시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물은 저수지에서 공급을 받고, 전기는 발전소에서 공급을 받듯이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이시오, 모든 문제의 해답은 예수님이시기에, 
예수님 안에는 문제가 없다.  

무엇이나 예수님 안에는 우연이 없다. 원수도 없다. 그리고 문제도 없다.   
예수님은 무엇이던지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예수님 안에 있는 3가지 요소는 무엇일까? 

▲1. 예수님 안에는 치유가 있다. 
고창병자가 예수님 안에서 고침을 받았다.   
누구도 고칠 수 없는 병이었다. 어느 의사들도 포기한 병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표적이 있는 줄로 믿는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7-18) 

성경에서 가장 많은 표적은 병고침의 표적이다.   
고창 병자가 예수님 안에서 치유의 표적이 주어진 것처럼 
우리 교회에서도 이런 표적이 나타나기를 소망한다. 

▲2. 예수님 안에는 침묵이 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는 병을 고쳐서는 안 된다는 바리새인들에게 
두 번 물으셨다.   

‘안식일에 병고쳐 주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그러나 그들은 잠잠하였다 

예수님은 담대하게 고치신 후에 또 두 번째 물으셨다.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나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그랬더니 이들은 대답하지 못하고 또 침묵만 지켰다. 

믿음은 행함이지 말이 아니다. 일이란 행동이지 입이 아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에는 침묵뿐이지 무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침묵 속에 자기 할 일을 꾸준히 해 나가는 사람의 종말은 웃음이 될 것이다.   

예수님 안에는 침묵이 있다. 말보다 행동이다.   
계획보다 실천이다. 예수님 안에는 침묵이 있다. 

▲3. 예수님 안에는 생명이 있다. 
예수님은 고창병자를 고쳐 주셨다. 
죽을 수밖에 없는 불치병자에게 생명을 주셨다.  

본문 5절 말씀에 ‘너 희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나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이라고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고 하신 것은 
우물에 빠져 죽어가는 아들이나 소에게는 
어떤 법도 금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생명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하였으니 

우리 안에는 우연과 원수와 문제가 없고, 
예수님을 통하여 생명이 주어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