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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9장 하드락 땅에 임한 경고, 물 없는 구덩이에서..

LNCK 2022. 11. 30. 17:03

https://blog.naver.com/karamos/220359783449


◈하드락 땅에 임한 경고    슥9장 1~10      2012.07.29.

서론

이 세상에는 강한 사람도 있고 약한 사람도 있습니다. 
또 강한 나라도 있고 약한 나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과연 무엇이 진짜 강한 것인가에 대해 
혼동이 올 때가 있습니다. 

고후12:10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후 12:10 

바울은 자신이 약한 것이 실제로는 강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강한 것이 사실은 약한 것이고 
약한 것이 사실은 강한 것이라고 하니 혼동이 되는 것입니다.

지난주까지 살펴본 스가랴 1~8장은 환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어가 묵시적입니다. 

그런데 스가랴 9~14장은 시적인 서술문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가랴서 전반부와 후반부의 문장 기록형태가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비평하는 사람들은 스가랴 1~8장을 기록한 사람과 
9~14장을 기록한 사람이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실 때는 묵시형태로 주실 수도 있고 
서술형태로 주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묵시형태로 주시면 묵시로 기록하고 
서술형태로 주시면 서술로 기록하는 것이 선지자의 사명이기 때문에 
문장의 기록형태가 다르다고 해서, 기록자가 다르다고 보는 것은 
논리가 빈약한 것입니다.

어떤 문장형태로 기록되었든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하나님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십니다. 

▲마13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에게 전부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물어봅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마 13:10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마 13:11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은 믿지 않고 불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진리가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 친구들도 가끔 만나면 성경을 읽고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깨달으려면 우선 믿고 순종하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깨달아봐야 괜히 아는 척만 하고 더 교만해져서 
믿음을 갖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진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스가랴 9장 1절은 오늘 말씀의 표제어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가 하드락 땅에 임하며” 슥 9:1    *이방

그런데 스가랴 12장 1절에도 이와 비슷한 경고의 메시지가 나옵니다. 
“이스라엘에 관한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라” 슥 12:1 

스가랴 9장 1절은 경고의 대상이 하드락 땅이고 
스가랴 12장 1절은 이스라엘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드락 땅이 일단 어딘지는 잘 몰라도 
이방 나라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가랴 8~14장은 스가랴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이방 나라와 이스라엘에게 경고하는 내용인 것입니다. 

여기서 '경고'는, 영어로 ‘warning’이 아니라 ‘burden’(부담, 짐)입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이 메시지를 증거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전하는 자나, 듣는 자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1. ‘하드락 땅’이란 무슨 의미인가?

스가랴 9장 1~10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단어는 
‘하드락 땅’입니다. 하드락 땅은 스가랴 9장 1절에서 단 한 번 나옵니다. 

이 지명은 다른 성경이나 문헌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주석들을 참조해보니까 
하드락 땅을 대부분 시리아에 있는 한 도시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첫째, 하드락 땅이라는 지명이 성경 다른 곳에서는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 하드락 땅의 정확한 위치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죠.

하드락의 어원적 의미를 정확하게 밝힌 사람은 
A.D. 4~5세기에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제롬 Jerome입니다. 

제롬이 번역한 성경을 벌게이트 Vulgate 라고 합니다. 
제롬이 라틴어로 성경을 번역하면서, 
라틴어는 그 위상이 엄청나게 올라갔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헬라어가 지배적인 언어였는데 
벌게이트가 나오면서 라틴어가 중요한 언어로 부상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라틴어가 현재 영어, 독일어, 불어 같은 언어의 기원이 된 것입니다.

제롬의 견해에 따르면 하드락이라는 단어는 
스가랴 선지자가 만들어 낸 상징적인 언어라는 것입니다. 
‘하드’는 ‘strong’ (강한)이란 뜻이고 ‘락’은 ‘weak’ (약한)이란 뜻으로 
결국 ‘하드락’은 ‘강하면서도 약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드락은 세 가지 의미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강하면서도 약한 나라라는 의미입니다. 
둘째, 강한 자는 약해질 것이고, 약한 자는 강해질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셋째,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약한 분이지만 강한 분이시라는 의미죠. 
이런 세 가지 의미가 하드락에 있다는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하던 시대는 B.C. 520~518년인데 
이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나라는 “메대와 바사”입니다. 

바벨론 마지막 왕인 벨사살은 선왕인 느부갓네살이 가지고 온 성전그릇을 
가지고 술을 마시는데 담벼락에 글자가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결국 바벨론은 메대 바사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고 맙니다. 

그런데 메대 바사는 페르시아와 메대 연합군을 의미하는데 
페르시아가 메대보다 더 강했습니다. 

다니엘 7장 5절을 보면 바다에서 나온 짐승 넷이 있는데 
그 가운데 두 번째 짐승이 곰이라고 했습니다. 
이 곰은 한쪽 어깨가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어깨가 기울어진 곰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메대 바사입니다. 

어깨가 올라간 쪽은 힘이 강한 페르시아이고 
어깨가 내려간 쪽은 힘이 약한 메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또 다니엘 8장 3절을 보면 강가에 두 뿔을 가진 수양이 섰는데 
한 뿔은 크고, 다른 뿔은 작았습니다. 
큰 뿔은 페르시아를 의미하고, 작은 뿔은 메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드락이 의미하는 강하고도 약한 나라는 
메대와 파사를 의미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스가랴 선지자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메대 바사를 향해 
망할 것이라고 예언하는 것입니다. 

예언하는 사람들이 현재 실권을 잡고 있는 사람이나 나라를 향해서는 
은밀한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메대 바사가 망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하드락 땅에 심판이 임하는 경고라고 말한 것입니다.

▲메대 바사는 결국 B.C. 333년 알렉산더 대왕에게 멸망하고 맙니다. 
하지만 알렉산더 대왕은 젊은 나이에 죽고 
그의 네 장군들이 나라를 나눠서 나라를 다스리게 됩니다. 

메대 바사는 강했지만 그보다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들을 멸망시키고 
결국 약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냐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가 강하고, 믿는 사람이 약해도 
하나님께서는 강한 자를 끌어내려 약하게 만드시고 
약한 자는 높여서 강하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드락이라는 것은 우리가 약해도 기죽지 말라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강하게 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매우 약한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외국에 나가보면 모니터 상표 대부분이 LG입니다. 
그리고 길거리 간판에는 삼성 로고가 크게 붙어 있습니다. 

자동차도 이제는 현대 자동차를 길거리를 누비고 다닙니다. 
벤츠나 BMW와 같은 독일 자동차를 제외하면 
한국 자동차가 세계적으로 알아줍니다. 
이제는 외국에 나가서 괜히 모르는 영어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터키나 중국에 가보면 시장상인들이 한국말을 정말 잘합니다. 
약했던 나라가 복음을 받아들이자, 하나님께서 강한 나라가 되게 해주신 거죠. 

예전에 강했던 러시아나 이집트도 요즘은 많이 약해졌습니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몇 개 못 따지 않았습니까? 

알렉산더 대왕이 이끌던 그리스도 복지를 한다고 하더니 
결국 경제가 무너져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강한 자는 낮추시고 약한 자는 높이십니다. 

그런데 아무나 높이시는 것이 아니라 
약해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 있는 자를 높이신다는 것입니다.


◑2. 강한 자는 약해지고 약한 자는 강해진 구체적인 예

스가랴 9장 1~8절까지는 그 실제적인 예를 말하고 있습니다. 
메대 바사의 지배 아래 있던 이스라엘 주변 세 나라가 있는데 
시리아 Syria, 페니키아 Phoenicia, 블레셋 Philistine 입니다.

시리아의 중요한 도시는 다메섹과 하맛인데, 다메섹은 시리아의 수도이고 
하맛은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국경지대에 있는 도시입니다. 

그런데 다메섹과 하맛이 지금은 번창할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너희를 약하게 만드실 것이고 
너희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1~2

페니키아는 이스라엘 서북쪽의 지중해에 붙어있는 나라입니다. :3
페니키아 사람들은 두로와 시돈이라는 유명한 도시국가를 건설했는데 
이 사람들이 지중해 해상무역을 장악했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넓은 지혜가 있으니 그들에게도 임하리라 
두로는 자기를 위하여 보장을 건축하며 은을 티끌 같이, 
정금을 거리의 진흙 같이 쌓았은즉 주께서 그를 쫓아내시며 
그의 바다 권세를 치시리니 그가 불에 삼키울지라” 슥 9:2~4

페니키아는 얼마나 놀라운 나라인지 지혜가 많아서 무역을 통해 
은을 티끌같이 벌고 정금을 거리에 진흙같이 쌓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두로는 자기를 위해 보장을 세웠다고 나와 있는데 
큰 요새를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원래 두로가 지중해 연안에 붙어있었는데 침략을 많이 당하니까 
지중해 한 가운데 있는 섬을 사버렸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높은 성벽을 쌓고 신두로를 건설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은 배가 없으면 공격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가 된 것입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도 이곳은 멸망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알렉산더 대왕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 
배가 없으니까 해안에서부터 섬까지 길을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섬의 성벽 앞에다가 성벽보다 더 높게 흙으로 담을 쌓아 
공격하여 B.C. 333년에 그곳에 살던 1만 명을 죽이고 
3만 명을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페니키아는 아프리카 북부에 카르타고라는 (식민지) 도시도 만들었습니다. 
카르타고에는 한니발이라는 유명한 장군이 있었습니다. 
B.C. 3세기에 일어난 포에니전쟁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게 알프스산을 
넘어 로마를 압박했던 유명한 장군입니다. 
그런 장군이 있던 나라(페니키아)가 알렉산더에 의해서 망하게 되는 거죠.

▲스가랴 9장 5절 이하에는 블레셋 도시들이 나옵니다. 
아스글론, 가사, 에글론, 아스돗 이 네 도시들이 
항상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도덕적으로 부패시켰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알렉산더를 보내) 그들에게서 임금을 제해 버리고 
거민들을 사라지게 하고 잡족이 거하는 도시가 되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서 블레셋은 망하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노예로 팔려가고 
그 땅에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시리아도 망하고, 페니키아도 망하고, 블레셋도 망했습니다. 
강한 나라들이였지만 하나님께서 알렉산더 대왕을 보내 
모두 망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나 강해지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강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내 집을 둘러 진을 쳐서 적군을 막아 거기 왕래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포학한 자가 다시는 그 지경으로 지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눈으로 친히 봄이니라” 슥 9:8 

▲알렉산더 대왕이 B.C. 333년에 예루살렘을 침공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을 침공하려 했던 알렉산더 대왕에게 
대제사장이 제사장복을 입고 알현한 것입니다. 

휘황찬란한 옷을 입은 사람이 자신에게 와서 절을 하며 
여호와를 섬기는 대제사장이라고 소개하자 
예루살렘을 그냥 지나갔다고 요세푸스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다는 약하지만 하나님께서 강하게 해주셨고 
메대 바사는 강했지만 약하게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3. 메시야는 약하나 강한 분이시다

예수님은 겉으로 보면 약한 분이시지만 사실은 강한 분이십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슥 9:9 

마21:1~11에, 예수님께서 종려주일에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죠. 
그러자 사람들이 종려나무를 흔들며 옷을 길거리에 깔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십니다. 

스가랴 9:9절의 내용이 마태복음 21장에서 문자 그대로 실현된 것입니다. 
결국 스가랴 9장 9절은 예수님에 대한 예언인 것입니다.

그런데 고대국가의 어느 왕이 나귀를 타고 다닙니까? 
왕들은 말 중에서도 준마를 타고 다니지 나귀를 타고 다니는 왕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매우 약해보이는 존재로 오신 것입니다. 

하지만 메시야는 약해보여도 약한 분이 아닙니다.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9:10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당나귀 타고 들어가는 예수님 앞에 칼도 물러가고 
병거도 물러가며 활도 물러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 세계적이고 범우주적인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교회만큼 큰 나라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만큼 큰 나라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가 약해보이고 목사들이 약해보여도 약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다에서 바다 끝까지’ 통치하는  *매우 넓다는 뜻, :10
참된 왕이시고 영원한 왕이십니다. 

그분은 무기를 가지고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의 복음을 가지고 정복하시는데 
유대인뿐만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하시는 것입니다.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슥 9:10 
심지어는 블레셋 사람들 중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블레셋 사람의 교만을 끊고 그 입에서 그 피를, 
그 잇사이에서 그 가증한 것을 제하리니 
그도 남아서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유다의 한 두목 같이 되겠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 같이 되리라” 슥 9:6~7 

여부스 사람은 원래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민족인데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자 이스라엘에 동화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성전을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세웠죠. 
약하고 겸손하신 예수님께서 세계를 다스리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지금도 메시야가 약한 모습으로 오신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결론

오늘날 세상에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강해보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은 약해보입니다. 

하지만 참된 진리는 ‘하드락’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대적하는 강한 자를 끌어내릴 것이고 
당신을 섬기는 약한 자를 높이실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렇게 강한 자가 약해지고 약한 자가 강해지는 표적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 흥하고 망하는 표적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 능력을 힘입는 자는 약해도 강해지고 
가난해도 부자가 될 것입니다. 
또한 병들어도 건강해지며 죽어도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우리는 결국 죽겠지만 다시 생명의 부활을 하여 영원토록 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우상숭배를 하며 
악을 즐기는 사람들은 지금 아무리 강해도 조금 있으면 죽을 것이고 
영원한 멸망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인간의 참된 강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약하다고 기죽지 마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우리는 강해질 것입니다.


https://blog.naver.com/karamos/220359784315

◈물 없는 구덩이에서 두 배의 축복으로    슥9:9~17    2012.08.05.

서론

스가랴 9:9절의 말씀은 사복음서에 전부 인용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심으로 
스가랴 9장 9절의 예언이 실현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스가랴 9:9~17절까지의 말씀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왕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늘의 큰 왕이 계십니다. 하늘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께서는 삼위일체로 존재하시는데 
그 중 성자 예수님께서 인간사회에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9:9 

그런데 그 왕은 교만한 왕이 아니라 겸손하며 수수한 왕입니다. 
보통 왕들은 말 중에서도 가장 좋은 말을 타고 다니는데 
그 왕은 나귀를 타고 오시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공의로운 분이시며 
그분의 손에는 구원이 있어 구원을 베푼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왕은 왕국이 있어야 됩니다. 
겸손하시며 공의로우시고 구원을 베푸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은 
어떤 왕국입니까?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9:10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예수님의 왕국은 병거나 말이나 활로 유지되는 왕국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왕국들은 군사적인 무기로 유지됩니다. 
그래서 저마다 핵무기를 보유하려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무력적인 방법으로 왕국을 통치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은 영적인 것이고 말씀으로 세워지며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포함하는 왕국이 된다는 것입니다.

▲스가랴 9:9절에는 왕에 관해서 이야기했고 
10절에서는 왕국에 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스가랴 11~17절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바로 왕국의 백성들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왕국의 백성은 이스라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예표이며 그림자입니다. 
그 실체는 신약시대의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언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을 향한 것이고 
이차적으로는 교회를 향한 것입니다.


◑1. 왕국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전에 
“물 없는 구덩이에 던져진 포로”들이었다

왕국의 백성들은 구원받기 이전에 비참한 존재들이었습니다.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를 인하여 내가 너의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날도 이르노라 내가 배나 네게 갚을 것이라” 9:11~12 

왕국의 백성들은 물 없는 구덩이에 빠져있던 죄수들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언약의 피로 인하여 건져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일차적인 의미는 유다 백성들이 B.C. 587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포로로 끌려가서 70년 동안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언약의 피로 인하여 
물 없는 구덩이에서 건져주셨다는 것은 
B.C. 538년 바벨론이 페르시아에게 멸망하고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 바벨론에 포로로 있던 유다 백성들을 건져주셨느냐? 
그 이유는 언약의 피 때문입니다.

▲출24장에 모세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언약을 맺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을 잘 지키면 너희가 복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포로가 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을 모세가 짐승의 피로 언약을 인준하고 ‘언약의 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언약의 내용 가운데 유다 백성들이 언약을 어겨 포로가 되어도, 
잘못을 깨달아 뉘우치고 마음을 돌이키면 
다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네 포로를 돌리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흩으신 그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신30:3 

너희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70년 동안 했지만 
언약의 피로 인하여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였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된 것은 일차적인 의미이고 
궁극적으로는 우리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멸망과 지옥에서 건짐 받는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짐승의 피로 언약을 맺는 것은 그림자이고 예표에 불과하며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써 언약을 맺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는 사람은 
영생을 얻고 부활하게 되며,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성령을 받게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결코 어기지 아니하시는 언약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고 
물 없는 구덩이에 빠져있다가, 하나님께서 건져주신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물 없는 구덩이’는 옛날 동방의 왕들이 사람을 죽일 때 빠뜨린 곳입니다. 
요셉의 형들도 요셉을 물 없는 구덩이에 빠뜨려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선지자를 죽이려고 할 때도 물 없는 구덩이에 빠뜨렸습니다. 

물 없는 구덩이에는, 물도 없고 먹을 음식도 없습니다. 
너무 깊어서 자기 힘으로는 빠져나올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물 없는 구덩이에 있다는 것은 3일만 지나면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금식기도를 해도 물을 마시고 하면 40일까지도 할 수 있지만 
물을 마시지 않으면 3일 이상 못합니다. 
이처럼 물 없는 구덩이는 왕들이 죄수를 죽이려고 만든 장소인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불신자들의 
영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물 없는 구덩이에 빠지면 
아무리 돈이 많고 쾌락을 즐기면서 기분이 좋아도 3일이면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물 없는 구덩이에 빠져있는 죄수들 가운데에도 
소망을 품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9:12 
어떻게 이 사람들이 소망을 갖게 되었느냐?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물 없는 구덩이에 빠져있는 죄수들을 살려주겠다고 
언약하셨기 때문입니다. 

둘째, 12절을 보면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새’란 단어의 뜻은 피난처입니다. 
하나님께서 피할 수 있는 피난처를 마련해주셨고 
구덩이 속에서 꺼내주시겠다는 언약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죄수들은 소망을 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마련해주신 피난처는 
예수 그리스도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외에는 다른 피난처가 없습니다. 

부처, 알라, 귀신에게 피하면 완전히 망합니다. 
구덩이에서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심이니이다” 시61:3 
이렇게 믿고 고백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물 없는 구덩이에서 건져내시고 
그 발을 반석 위에 두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아무나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 피로 죄사함을 받으며 
언약으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2. 왕국의 백성들은 두 배의 축복을 누린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무슨 축복을 주시느냐? 
“내가 배나 네게 갚을 것이라” 9:12 
과거에 당했던 슬픔의 두 배로 복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보통사람들과 다릅니다. 갑절로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갑절로 복을 받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세 가지를 의미합니다.

▲첫째, 원수들을 물리치는 승리를 주십니다. 
원수와 싸워서 진다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무조건 이겨야 됩니다. 

내가 유다로 당긴 활을 삼고 에브라임으로 먹인 살을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을 격동시켜 헬라 자식을 치게 하며 
너로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여호와께서 그 위에 나타나서 
그 살을 번개 같이 쏘아내실 것이며 주 여호와께서 나팔을 불리시며 
남방 회리바람을 타고 행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호위하시리니 
그들이 원수를 삼키며 물매 돌을 밟을 것이며 
그들이 피를 마시고 즐거이 부르기를 술취한 것 같이 할 것인즉 
피가 가득한 동이와도 같고 피묻은 제단 모퉁이와도 같을 것이라” :13~15 

그냥 봐서는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전반적으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원수와의 싸움에서 이기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유다를 활로 삼으시고 에브라임을 화살로 삼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시온의 자식을 격동시켜 헬라 자식을 치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B.C. 167년에 일어난 마카비 혁명을 뜻합니다.                     주1)

마카비 혁명 때
어떻게 작은 숫자로 큰 왕국인 시리아를 이길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나팔을 불어 군대를 소집하고 번개처럼 화살을 쏘아 
시리아 군대를 멸망시킨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호위하시리니 그들이 원수를 삼키며” 9:15 

△우리 성도들에게는 원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원수는 마귀와 귀신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과 싸워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귀와 귀신들은 거짓된 종교와 사상을 퍼뜨려서 
사람들을 부패시키고 타락시켜 마약을 먹게 하고 동성연애를 하게 하며 
우상숭배를 하게 합니다. 

그들은 영물이기 때문에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호위하심과 신속하신 활동이 우리와 함께 하기 때문에 
우리는 원수를 이길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수가 사람들을 이용해서 공격합니다. 
그래서 직장에서도 원수가 생기고 가정에서도 원수가 생깁니다. 
하지만 어떤 원수라도 우리는 이길 줄로 믿습니다.

▲둘째, 특별한 사랑을 주십니다. 
“이날에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떼 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면류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 9:16 

면류관도 좋은 것인데 면류관에 박힌 보석은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면류관에 박힌 보석처럼 귀하게 여기신다는 거죠. 
누가 여러분들에게 당신은 누구냐고 물어보면 
우리는 면류관의 보석이라고 대답하면 됩니다.

▲셋째, 대를 이을수록 번영하는 축복을 주십니다. 
“그의 형통함과 그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리 큰지 
소년은 곡식으로 강건하며 
처녀는 새 포도주로 그러하리로다” 9:17 

저는 목사지만 제일 걱정되는 것이 자녀들 문제입니다. 
제 자녀들이 잘못되면 예수님을 어떻게 믿어서 자녀들이 저러냐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자녀들이 어떻게 하면 바르게 자랄까?’가 
목회자들의 가장 큰 고민인데 
저는 스가랴 9:17절에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소년과 처녀는 자라나는 신세대를 가리킵니다. 
자라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니 
내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께서 원수를 이기게 하시고 면류관의 보석처럼 사랑해주시며 
우리 자녀들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3. 왕국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해 두 가지 반응을 보이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이렇게 승리와 사랑과 축복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께 어떤 반응을 보여야 됩니까? 

스가랴 9장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피가 가득한 동이와도 같고 피묻은 제단 모퉁이와도 같을 것이라” 9:15 

동이라는 것은 커다란 양동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희생제사를 드리면 그 피를 (양)동이에 받는데 
그 피가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백성들이 제물을 많이 드리고, 감사가 많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감사를 입에 달고 다녀야 됩니다. 
요즘 날씨가 상당히 더운데 덥다고 짜증을 내면 다른 사람과 싸우게 됩니다. 
더워도 감사하고, 자녀가 대학에 떨어져도 감사하고 
남편이 술 먹고 들어와도 감사하면, 흑암이 물러가고 축복이 오게 됩니다.

▲번제단이 사각으로 되어있는데 모퉁이에 뿔이 달려있습니다. 
그런데 이 뿔에 피가 묻어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사장들이 제사 일에 열심히 헌신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결국 피묻은 제단 모퉁이는 헌신하는 일꾼들이 많아졌고 
백성들이 속죄하며 경건하게 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감사하고 헌신하고 경건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아름다움이 얼마나 큰지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의 형통함과 그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리 큰지” 9:17 
For how great is his goodness, and how great is his beauty  KJV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하나님을 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왜 자신을 괴롭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자기 허물과 잘못을 어려움이 온 것이지 왜 하나님을 욕하십니까? 

우리의 허물과 잘못으로 인해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아름다우신 분입니다. 
이것을 찬양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우리는 물 없는 구덩이에 살면서 
조만간 죽어 지옥에 떨어질 존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피난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워주셔서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우리에게 승리와 사랑과 축복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감사하고 헌신하며 
예수님의 아름다우심을 찬양하고 자랑하며 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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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헬라에는 알렉산더 대왕이라는 유명한 왕이 있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점령할 나라가 없어서 억울하다고 할 정도로 대단한 왕이었습니다. 
B.C. 336년에 왕이 되어서 20살에 전 세계를 지배하는 왕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를 점령하고 10년 만에 죽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알렉산더의 부하로 있던 네 명의 장군들 중심으로 나라가 갈라졌습니다. 
마케도니아는 카산더가 갖고 터키 쪽은 리시마코스가 갖고 
팔레스타인 땅을 중심으로 북쪽 시리아는 셀류시드가 장악하고 
남쪽 애굽은 톨레미가 장악했습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땅을 가지고 셀류시드와 톨레미가 전쟁을 벌였습니다. 
다니엘 11장에 이 전쟁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래 팔레스타인 땅은 톨레미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톨레미는 유다 백성들이 여호와를 섬기는 것을 핍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셀류시드 왕조의 사람들이 톨레미를 밀어내고 
B.C. 200년에 팔레스타인을 차지하자 유다 백성들을 탄압하기 시작했죠. 

그 중 BC175~164년까지 통치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가장 악했는데 
이 사람이 애굽을 치다가 실패하자 돌아오는 길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성경을 불태우고 유대인의 절기를 금하며 성전에는 
제우스 신상을 세워서 돼지의 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여호와 하나님을 완전히 모독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안티오쿠스에게 잘 보여서 대제사장이 되려고 했던 
제사장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한 집안을 격동시켜 이들과 맞서 싸우게 하십니다. 

모딘이라는 동네의 제사장이었던 맛다디아스 Mattathias는 아들이 
5명 있었습니다. 이들이 유대인 중에서 돼지의 피로 제우스 신에게 
희생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을 죽이면서 일으킨 혁명을 
마카비 혁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맛다디아스의 집안을 하스몬이라고 부릅니다. 
맛다디아스는 1년 만에 죽고 5명의 아들들이 중심이 되어서 
많은 경건한 유대인들이 마카비 혁명에 가담하게 됩니다.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발하리라” 단11:32 

하나님을 아는 백성들은 신앙의 핍박이 올 때 강하고 용맹을 발하는 것이죠. 
결국 이들은 3년 만에 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고 시리아 군대를 쫓아내고 
독립국가를 이루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이 사건을 마카비 행전에 기록해놓고 
수전절에 이것을 읽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