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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11장, 선한 목자를 거절한 댓가

LNCK 2022. 12. 2. 17:14

https://blog.naver.com/karamos/220360524882

 

 

◈슥11장, 선한 목자를 거절한 댓가                 2012.08.19.

 

 

서론

 

침례요한은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 마3:11

 

성령으로 침례를 주신다는 것은

구원과 능력을 주신다는 의미인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불로 침례를 주신다는 말씀의 의미는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이것을 어떤 분들은 오순절날 성령께서 임하실 때

불의 혀 같이 임한 것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럴듯하기는 해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불은 성경에 보면 심판과 관련된 의미가 많습니다.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13:30

그러므로 불을 심판의 의미로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믿고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복이 되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알곡은 거두어 곳간에 두어 영생을 누리게 하지만

가라지는 거두어 불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 선한 목자를 보내셔서 양들을 돌보아 주실 것이다

 

슥11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 사역”에 대한 스가랴의 예언입니다.

스가랴 11장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대지는, 하나님께서 선한 목자를 보내어 양들을 돌보아 주실 것이라는

스가랴의 예언입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는 잡힐 양 떼를 먹이라

산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케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 11:4~5 

 

하나님은 스가랴에게 양 떼를 먹이는 목자의 역할을 하라고 하셨죠.

스가랴는 목자가 아니라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목자의 역할을 하라는 거죠.

 

스가랴 선지자는 앞으로 오실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양 떼가 참 불쌍합니다. 이름이 ‘잡힐 양 떼’입니다.

‘양 떼’라는 말은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모두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킵니다.

 

양 떼는 목자가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이 양 떼들이 악한 목자를 만나 다 팔려가는 것입니다.

 

양들의 주인은 따로 있습니다.

목자는 주인의 명을 받아 양을 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목자들이 주인의 양을 팔아먹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말로 하면 횡령입니다.

 

그리고 이 양을 산 사람들은, 법적으로 장물취득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주인도 아닌데) 양을 횡령하여 판 목자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부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남의 양을 팔아먹고 하나님의 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양을 산 사람들은, 대낮에 불법도살을 해서 잡아먹는데

아무도 그들을 처벌하지 않는 것입니다.

 

목자들은 양 떼를 팔아먹기 위해 양마다 표시를 해놓았습니다.

NIV 성경을 보면 “the flock marked for slaughter”로

‘살육을 위해 표시가 되어있는 양 떼들’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11:4 ‘너는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라’

 

양 떼를 잘 먹이고 이끌어야 할 목자가

양마다 표시해놓고 다 팔아먹은 것입니다.

 

이처럼 가련한 양 떼가 된 이유는, 목자가 책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이스라엘의 목자는 왕, 제사장, 선지자 이렇게 세 종류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양 떼들을 돌보고 먹이라고 목자로 세웠는데

오히려 팔아먹고 불쌍히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뿐만이 아니라 예레미야, 에스겔 선지자도

악한 목자에 대해서 여러 번 말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목장의 양무리를 멸하며 흩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렘 23:1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겔 34:2

 

악한 목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레미야, 에스겔 선지자도 예언하고, 스가랴 선지자도 예언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기 전이나 이후에도

악한 목자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하나같이 악했습니다.

 

바리새인, 사두개인, 제사장들과 서기관들 모두 위선자들이었고

진리보다는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눅16:14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눅11:39

 

침례요한이 자신에게 오는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마3:7

어느 사회든지 지도자들이 악하면 양 떼들이 불쌍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목자들이 악하여 선한 목자들은 하나도 찾을 수가 없게 되자

하나님께서 선한 목자를 보내시겠다는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B.C. 520~518년에 활동했습니다.

B.C. 520년에 ‘다윗의 자손 가운데 선한 목자를 보내시겠다’고 예언했죠.

 

이것을 예레미야, 에스겔 선지자도 예언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렘23:5

 

“내가 한 목자를 그들의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겔34:23

 

다윗에게서 나온 한 의로운 가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한 목자로 오실 것이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께서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했던

‘선한 목자’인 것을 명백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10:11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 히13:20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벧전2:25

예수님께서 우리 영혼의 목자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목자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어떤 분은 나는 목자가 필요 없다고 말하며,

자신의 능력을 믿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목자가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양이 아니라 염소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양도 있고 염소도 있습니다.

지금은 누가 양이고 누가 염소인지 알지 못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양과 염소를 분리시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양들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목자를 찾은 양과, 목자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양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양을 건져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염소는 목자가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양은 목자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악한 목자들에게만 맡기지 않으시고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한 목자를 거역할 것이다 (두번째 대지)

 

“내가 이 잡힐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이라

내가 이에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합이라 하고 양 떼를 먹일새” 11:7~8

 

스가랴 선지자가 선한 목자의 역할을 맡아서 하는데

그의 손에 두 개의 막대기가 있었습니다.

‘은총’의 막대기와 연합의 막대기입니다.

 

은총의 막대기는 목자가 양들을 먹이고 보호하며 인도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연합의 막대기는 양 떼가 흩어지지 않도록 모아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스가랴는 2개의 막대기로 양 떼들을 돌보고 있었는데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양 떼를 착취하던 악한 목자들이 늘어나

참된 목자인 스가랴를 배척하고 미워하는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도 배척당하고 미움을 받으셨습니다.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끊었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 11:8

 

한 달 만에 끊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심판하신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세 목자’에 관해서는 어떤 사람은 왕, 제사장, 선지자라고 이야기하고

또 어떤 사람은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이라고 말하는데

무엇이 맞는지는 모릅니다.

 

악한 목자들은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미워했고

예수님께서는 악한 목자들을 심판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모여서

항상 의논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죽일지 의논하여 결국 죽이지 않았습니까?

 

백성들도 이렇게 소리 질렀습니다. “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눅23:18

 

악한 목자들이 메시야를 거절한 사건의 정점에는

가룟 유다가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팔아먹은 사건이 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이 사건도 예언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11:12~13

 

스가랴 선지자가 악한 목자들의 시기와 질투가 심해지자

이제 그만두는 대신 그동안 일한 임금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악한 목자들이 은 삼십을 준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은 삼십은 노예의 몸값에 해당됩니다.

스가랴 선지자를 노예 취급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스가랴가 받은 은 삼십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스가랴는 말씀하신 대로 하면서도

이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예언은 마태복음 27장 3~10절에서 실현됩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3년 동안 따라다니면서

재정 관리를 맡아서 했습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가 돈을 횡령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돈 문제에 있어서 깨끗해야 합니다.

 

결국 가룟 유다는 은 삼십에 자기의 스승인 예수님을 팔아먹었습니다.

그런데 유다도 사람이다 보니까 양심에 가책이 온 것입니다.

 

자기의 스승을 노예 취급하며 은 삼십에 팔아먹은 것 때문에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돈을 다시 돌려주러 왔지만

대제사장은 자기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성소에 은 삼십을 던져버리고 목 매어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가룟 유다가 던지고 간 은 삼십을 성전고에 넣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연고없는 사람들의 무덤으로 삼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스가랴에서 예언하고 있는 것이 마27장에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유대인들 중 소수는 메시야를 받아들여 사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수는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거절하였습니다.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사53:1

 

성경을 갖기도 어렵고 설교자도 많지 않았던 예수님 당시에도

메시야를 거절한 사람들이 받은 형벌은 컸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구하기도 쉽고 설교자도 많은 21세기에 메시야를 거절한다면

그 사람이 받을 형벌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3. 메시야를 거절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고통을 당할 것인가? (세번째 대지)

 

11:1~3 “레바논아 네 문을 열고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

너 잣나무여 곡할지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들이 쓰러졌음이로다

바산의 상수리나무들아 곡할지어다 무성한 숲이 엎드러졌도다

 

목자들의 곡하는 소리가 남이여 그들의 영화로운 것이 쓰러졌음이로다

어린 사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남이여 이는 요단의 자랑이 쓰러졌음이로다”

 

이스라엘 지도를 보면 북쪽이 레바논이고 동쪽이 요르단입니다.

그런데 레바논의 문이 활짝 열렸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1

이것은 북쪽에서 군대가 아무런 저항도 없이 들어온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백향목, 잣나무, 상수리나무 모두 불타서

젊은 사자도 먹을 것이 없어 울부짖는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3

 

▲A.D. 70년에 로마 장군 타이터스 Titus 가 북쪽 레바논을 통해

이스라엘로 진격해 들어왔습니다.

백향목은 이스라엘의 귀족을 상징하고

잣나무나 상수리나무는 이스라엘의 서민을 상징하는데

이들 모두를 죽여버린 것입니다.

 

A.D. 70년 메시야를 거절한 유대인은

로마 장군 타이터스에 의해 150만 명이 죽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선한 목자를 거절한 대가인 것입니다.

 

메시야를 거절한 대가는 스가랴 11장에서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에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취하여 잘랐으니

이는 모든 백성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였음이라” 11:10

 

목자가 은총이라는 막대기를 잘라버려서

이제는 이스라엘에게 더 이상 은총을 베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로되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고 죽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할 자는 망할 대로, 그 나머지는 피차 살을 먹는 대로 두리라 하고” 11:9

 

이제는 더 이상 은총을 베풀지 않고 죽을 자는 죽게 내버려두고

사람들끼리 피차 살을 먹도록 내버려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요세푸스 Josephus 의 말에 따르면

A.D. 70년 로마 장군 타이터스가 왔을 때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으니까 서로의 자녀들을 잡아먹었다고 합니다.

 

예레미야 애가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이렇게 비참해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메시야를 거절한 대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동일한 예언을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 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마23:37~38

 

메시야를 거절한 대가는 매우 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A.D. 70년에는 150만 명이 죽었지만

그 이후 히틀러에 의해서 600만 명이 죽었습니다.

 

나중에는 일일이 죽이기 힘드니까 가스실에 넣어서 죽이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선한 목자를 거절한 대가입니다.

 

▲그런데 ‘은총의 막대기’가 꺾인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또 연합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잘랐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 11:14

 

로마가 공격해오자 그 중에서도 로마에 빌붙어서 권력을 잡으려는 사람과

로마에 대항해 싸우려는 사람들로 나뉘었습니다.

저희 나라도 6.25 당시에 공산당의 앞잡이로 활동한 사람들 때문에

형제 사이에 원수가 된 것 아닙니까?

 

이처럼 메시야를 거절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에게 침략당하고 내부적으로도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심각한 것이 있습니다.

“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살진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

 

화 있을진저 양 떼를 버린 못된 목자여 칼이 그 팔에, 우편 눈에 임하리니

그 팔이 아주 마르고 그 우편 눈이 아주 어두우리라” 11:16~17

 

선한 목자를 거절하니까 하나님을 대적하고 상한 자를 고치지도 않고

흩어진 자를 찾지도 않는 ‘악한 목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사람의 영혼이 빈 공간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선한 목자로 영접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영혼에는 마귀와 귀신들이 들어가게 되어있습니다.

 

결론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시고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목자로 삼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은총도 베풀지 않고 연합의 은혜도 주시지 않습니다.

영원히 버림받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영혼에 참되고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실 때만

하나님의 은총을 받게 되는 것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염소가 아니라 양된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악한 목자는 죽을 자를 죽도록 내버려두고 망할 자를 망하도록 내버려두지만

선한 목자는 죽을 자도 살려내고 망할 자도 다시 회복시키십니다.

 

우리는 길 찾은 양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양이기 때문에 지혜도 부족하고 힘도 부족합니다.

시력이 약해서 선한 목자의 인도 없이는

한 걸음도 내디딜 수가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목자의 음성을 들어야 됩니다.

성경을 통해 들어야 되고 양심을 통해 들어야 되고

하나님의 선한 섭리를 통해 음성을 들어야 됩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지 않는데 어떻게 듣냐고 말합니다.

옛날 욥이라는 사람도 고통 중에 부르짖어도

아버지께서 응답하지 않으신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면 들으시고 매일 우리의 양심에 말씀하십니다.

양심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청각기관입니다.

이것이 마비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양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듣고,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며 따르는 좋은 양으로

평생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