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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12장, 말세의 그 날이 오면 통곡과 회개가 일어난다

LNCK 2022. 12. 4. 07:43

◈슥12장, 말세의 그 날이 오면 통곡과 회개가 일어난다      여러 설교 정리

 

‘그 날이 오면’ 메시야가 통치하는 그 날이 오면, 그가 오셔서 복수하시고,

심판하시고 통치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는 사상은

구약의 선지서에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스가랴 말씀도 ‘그 날’에 대한 표현이 많이 등장하며,

이는 임박한 미래에 이루어질 역사를 1차로 의미하지만,

장차 메시야가 오셔서 궁극적으로 성취하게 될 일을 포함하여 선포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스가랴 9장~14장은 (스가랴의 후반부)

메시아의 오심을 통한 이스라엘의 구원과 통치를 비중 있게 다룹니다.

 

본문 슥12장에도 메시야가 오시는 그 날이 되면,

1~9절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는 내용이고, :1~9

10~14절은 메시야의 고난과 그에 따른 백성들의 애통을 예언합니다.

 

◑해석

 

슥12장, 이스라엘의 구원의 날 (tistory.com)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적용

 

▲1. 스가랴서에 나타나는 종말론적 메시지

에스겔38~39장에 ‘곡과 마곡의 전쟁 예언’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을 둘러싼 남방국, 북방국들이 연합해서 이스라엘을 치러 오지만,

결국 이스라엘이 승리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런 예언이 에스겔서 말고도, 스가랴서 12장, 14장에도 나옵니다.

본문 슥12장도, ‘곡과 마곡의 전쟁 예언’의 축소판과 같습니다.

 

2절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그 사면 모든 민족에게 취하게 하는 잔이

되게 할 것이라 예루살렘이 에워싸일 때에 유다에까지 이르리라’

 

사실 이런 예언들은, 요한계시록의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사도요한이 계시록을 쓸 때, 구약의 이런 여러 묵시적 예언들을

종합해서 쓴 것입니다. 물론 사도요한이 직접 받은 계시도 있겠지만요.

 

슥14:12~13에도

‘예루살렘을 친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은 이러하니

곧 섰을 때에 그들의 살이 썩으며 그들의 눈동자가 눈구멍 속에서 썩으며

그들의 혀가 입 속에서 썩을 것이요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크게 요란하게 하시리니

피차 손으로 붙잡으며 피차 손을 들어 칠 것이며’

 

그래서 작은 나라 예루살렘이 기적적으로 승리하며

메시야는 모든 세상 나라를 통치하시는 영광스런 왕이 되시며

이때부터 소위 메시야가 다스리는 <천년왕국>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성경의 종말예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느냐, ‘상징적’으로 해석하느냐

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발생하게 됩니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그게 뭔지 정확한 실체 파악이 어려우나)

이런 스가랴, 에스겔, 계시록의 예언들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종말론을 뜻합니다.

 

그래서 종말에는,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주변국들이 연합해서

종말전쟁 (소위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날 것이며,

이스라엘이 기적적으로 주변 연합군들을 다 물리치고 (2만만, 2억도 물리치고)

결국 승리한다는 내용이, 성경에 예언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가능한 것이, 공식적 발표는 안 되어있지만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장래에 과연 그런 문자적인 ‘종말전쟁’이 중동에서 일어날까요?

또 여기에 연관된 것이 ‘제3성전의 재건’입니다.

 

이스라엘 극우파들이, 예루살렘 황금돔 옆에 있는 알 악크사 사원을 허물고,

옛 성전 터를 회복하여

‘제3성전’을 세우는 날에, 성경에 예언된 종말전쟁이 발발하리라 일각에서 봅니다.

 

그래서 성전제사와 모든 집기들, 제사장 의복들을 다 준비해 놓았고

‘터’만 지금 확보하지 못해서 그렇지.. 성전 재건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합니다.

 

2000년 경에, 이미 주춧돌은 그 황금돔 근처 주차장에 가져다 놓았다고 합니다.

거기 그 자리에 꼭 솔로몬 성전을 재건하겠다는 것이죠. *AD70년에 무너짐

 

보통 사람 같으면, 예루살렘 구시가지 아무 데나 세우면 될 것 같은데,

다른 장소는 안 되고, 꼭 옛날 그 자리에 세우려고 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중동전쟁 혹은 3차대전의 시발점이 될까봐 모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근데 이런 ‘문자적 종말 전쟁’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라 부릅니다)이

널리 확산되고 퍼지게 된 사유가 있습니다.

 

1950년경 전후로, 미국에 <스코필드 바이블>이 엄청나게 확산이었는데,

과거에 한국에 <톰슨 성경>이 한 집에 한 권은 있었듯이요.

 

그 성경 아래 주석 칸에, 스가랴서, 에스겔서, 다니엘서, 계시록 주석을

모두 ‘문자적 종말 전쟁(세대주의적 전천년설)’으로 해석해 놓았기 때문에

 

그 당시에 미국은 그런 종말론 이해가 대세였고 (모든 집에서 그 성경을 읽음)

그런 종말론 이해가 한국으로까지 유입된 것입니다.

 

요즘에는 그런 종말론 이해를 하지 않는 것이 대세입니다.

물론 <스코필드 바이블>도 오래 전에 사라졌고요. (스코필드가 편집한 주석성경)

 

△그럼 성경에 예언된 ‘중동의 종말전쟁’은 문자적으로 일어나지 않을 것인가?

성경의 종말론은 100% 전부 상징적으로만 해석해야 될 것인가?

 

그럼 또 우리가 가게 될 천국도, 새 하늘과 새 땅도 다 ‘상징’이란 말인가?

실체는 없다는 것인가? ... 그건 또 문제가 됩니다.

결국 성경의 종말론은 ‘상징적+문자적’ 해석을

양방향으로 다같이 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이런 성경의 중동전쟁이 희한하게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왜냐면 성경의 종말론을 ‘문자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성경의 예언을 문자적으로 성취하려고 시도하려 들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경을 자기 구미대로 해석하는 것이죠)

 

일례로, 구약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극우파 유대인들이

제3성전을 옛 솔로몬 성전 터에 건립하려는 것처럼,

 

자신을 ‘이스라엘의 후손’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극우 기독교인 무리들이

성경에 나오는 종말전쟁을 성취하려고 시도할 가능성이 있는 거죠.

왜냐면 거기에 ‘이스라엘이 이긴다’고 예언되어 있으니까요.

 

‘모든 전쟁은 나쁘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전쟁을 일으키는 명분은 항상 선한 목적을 제시합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탐욕입니다. 

크리스천들은 가급적 세상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하고

'칼과 창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농기구를 만드는 날이 오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성과 탐욕으로 전쟁을 도발하고,

하나님이 죄악된 인간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그런 전쟁을 허용하시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성경을 성취하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는’ 일은 없어야 하며,

전쟁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종말전쟁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생각하고

은근히 중동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찬성하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본문 슥12장에 예언된 전쟁은, ‘신약시대에 하나님 나라에 관한 영적 전쟁’

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습니다. ☞슥12장, 이스라엘의 구원의 날 (tistory.com)

 

그럼, 중동에, 성경에 예언된 전쟁이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말인가요?

그건 장담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인간의 죄성이, 자기 탐욕에 이끌려서

얼마든지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거죠.

성경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해서요!

 

 

▲2.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의 날’

 

10절부터 14절까지는 하나님의 백성과 온 땅 모든 족속들이 각각

크게 애통하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메시야의 고난에 대한 메시지이며,

그를 깨닫는 자들이 겪게 될 회개에 대한 예언입니다.

 

10~11절,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 spirit of grace and supplication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하나님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영, 성령님께서 들어오실 때

우리는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됩니다.

 

요16장에 그가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실 것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죄인들은 자신의 죄 때문에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셨고, 찔림을 당하셨다는 것을 깨닫고

통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계1:7절에서는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라고 예언합니다. 하나님께서 회개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실 때,

자신들이 찌른 그분을 바라보며 통곡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온 인류가 다시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

인류의 구원자 주님을 눈으로 똑똑히 바라보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11절에 그 날이 오면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은 것입니다.

므깃도는 남유다의 왕 요시야가 바로 느고와 싸우다가 전사했던 곳입니다.

 

당시 백성들이 슬피 울며 애곡했습니다. 그 때와 마찬가지로

그 날에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모든 이방나라를 멸망시키실 때에

그들을 위해 애통하며 은혜를 구하며 용서를 비는 영을 주셔서

슬피 울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12~14절까지는 그 애통에 동참하게 되는 사람들의 부류를 열거합니다.

온 나라가 슬피 울 것이며, 가족마다 따로 슬피 울 것입니다.

다윗의 족속은 유다 왕가를, 나단의 족속은 다윗의 아들의 가문을,

레위 족속은 제사장 가문을 의미하며,

시므이의 족속은 레위의 손자 중에 있었던 가문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남은 모든 족속도 각기 따로 애통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으로

본문이 마무리가 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의 <늦은 비 The Latter Rain>

란 설교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아래에 인용합니다.

 

☞늦은비 / 데이빗 윌커슨 (tistory.com)

 

◑마지막 부으심에 대해 두 가지 조건이 예언되어져 있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성령은 '은총과 간구의 영'(스가랴 12:10) 으로

부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성령이 임하실 때마다

이 두 가지 은총의 영과 간구의 영이 여전하게 나타납니다.

디도서에서 우리에게 말하기를 은총은 우리에게 죄를 이길 힘을 주며

건전하고 거룩하게 살 수 있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이 나타나게 하셨으니”(디도서 2:11-13)

 

오순절 이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이 은총이 놀랍도록 있었습니다.

성령은 모든 족속과 방언의 믿는 자들에게

어떻게 경건치 않는것과 이 세상 정욕을 버릴 것인가를 가르치시면서

모든 나라들에 대해 죄를 깨닫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이 시대에 근신함과 의로움으로 살며

또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늦은비가 올 때에는 우리는 한층 더 큰 은총을 증거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고 하는 진리를 견고케 하실

은총의 영을 부으실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의 구원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견고한 사람들을 가지게 되실 것입니다.

이 부으심으로 성령님께서는 미지근하고 세상에 타협적이었던

전세계의 모든 사역자들에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의 은총으로 죄를 깨닫게 하시려고 사람들을 강타하실 것입니다.

성령님은 그들에게 "세상은 나뉘어질 것이다.

그리고 너희 는 곧 내 앞에 설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에 말하기를 시작해야 한다.

너희가 강단앞에 있을 때에 나의 기름부음을 받아야 한다." 라고

보여 주실 것입니다.

은총의 영은 회개로 이끄는 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집에서 경건함과 의로움을 가지게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는 2,000 년 동안 교회에 나타났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교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은총으로 지금껏 서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은총이 전해지는 어느 곳에서나

회개와 거룩한 삶에 대한 부르심이 동반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믿기로 스가랴 12:10절을 통하여

이 마지막 때에 성령님은 모든 세상적인 것을 완전히 바꿀

은총의 영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강력하게 내리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 가운데 마음을 정결케 하기 위한 울부짖음을 생겨나게 할 것 입니다.

사역자들은 그들 생활 가운데 숨어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사람들을

정죄하는 종류의 '은총의 설교'로 사람들을 각성케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역사상 보지 못한 죄를 깨닫게 함과 죄를 드러냄과

회개를 전파하는 증인이 될 것입니다.

 

모든 불의와 경건치 않은 것과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집에 있는 사람들은 바르게 행할 것에 대해

마음의 부담을 느낄 것 입니다.

몇 주전에 저는 어떤 사역을 이끌고 있는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사역의 리더들이 함께 모여 주님을 구하고 있을 때

성령님께서 그들 가운데 있는 동성연애와 거짓말하는 영을 드러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래서 몇몇 팀원들은 해고되었습니다. 이 형제가 제게 말하기를

"성령께서 오셨기 때문에 바르게 살고자 하는 부담이 있다."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저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죄를 드러내실 때에 미지근하고 타협적이었던 그리스도인들이

정죄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다루심에 굴복하지 않는 이들은

극도로 눈이 어두 어지게 되며 굴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의롭게 살고자 하는 의지를 상실하게 됩니다.

 

여러분죄를 버리고 의롭게 살고자 하는 부담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교회를 뜨겁게 하고 진지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또한 간구의 영을 부으실 것입니다.

간구라는 단어는 울부짖음이나 목소리를 내어 기도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을 제외하고 성경에서 쓰여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말로 이것은 개인적인 것 또는 단지 묵상이 아닌 것입니다.

간구는 목소리와 관련이 있습니다.

히브리말로 '간구'는 양모 또는 평화와 항복을 바라는 자가

짠 옷감을 덮은 올리브 나뭇가지를 의미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것은 항복의 깃발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조건적이고 완전한 항복을 하겠다는 외침을 의미한 것이었습니다.

전쟁을 생각해 보십시다지치고 피곤하여 탈진한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완전히 혼란한 병사가 참호 속에 쳐 박혀 있었습니다.

그는 혼자이고 또 지쳐 있습니다이제 끝을 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나뭇가지 하나를 꺾습니다그리고 그 가지의 끝에다가

자신의 흰 속옷을 묶습니다그리고는 그것을 위로 올리고 흔들면서

참호 속에서 기어 나옵니다그러면서 외칩니다.

 

"나는 항복합니다나는 포기했습니다." 이것이 간구입니다.

나는 항복합니다나는 이 전쟁을 더 이상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잃어버렸습니다저는 절망적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간구는 단지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계획을 지원해 줄 것을 조르거나 요청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반대로 여러분의 의지와 길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입니다.

수세기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온통 자신의 의지로

"오, 하나님! 나를 여기로 보내 주소서, 저기로 보내 주소서,

이것을 저 에게 주소서, 저것을 저에게 주소서"

 

그리고 사역자들은 "오, 하나님! 저의 사역을 축복해 주소서,

나의 계획을 축복 해 주소서. 나의 프로그램을 위해 돈과 사람들을

보내어 주소서."라고 기도하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날에는 성령이 강력하게 임하여서

영적으로 파산한 것과 같은 감정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돈과 두뇌와 계획으로

우리는 이 세상을 조금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각성할 것입니다.

(진실로 우리는 땅을 잃어 버렸습니다. 교회는 약해졌고 가련해졌습니다.)

저는 한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심령으로 부르짖는 것과

그의 이름을 절망적으로 찾는 것"이라고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것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주의 제단을 눈물과 애통, 울부짖음으로 덮으면서'(말라기 2:13)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그들의 간구를 듣지 않으셨으며 받으시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남자들이 그들의 아내들을 불순하게 다루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이혼하고 다른 여자들을 쫓았습니다.

이 백성들은 울며소리치며손에 항복의 깃발을 들고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내 죄가 나를 짖누 릅니다내 힘으로 죄와 싸우는 것에 지쳤습니다.

성령님께 저항하는 것에 지쳤습니다나를 구원해 주소서."

 

만일 그들이 이러한 것을 행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구하셨을 것입니다.

항복이 있어야 합니다우리의 외침은

우리가 우리의 죄를 기꺼이 굴복하고 우리 인생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다른 어떤 것도 포기할 것을 동반해야 합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간구가 어떤 것인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빛을 주사 황폐한 성소에 비취시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오니”(다니엘 9:17-18)


이것이 굴복의 외침이고 완전한 무력함입니다. 다니엘은 말하고 있습니다.

"오, 하나님, 우리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무기력하며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거부했고 아프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제 주님의 긍휼에 호소합니다. 우리는 굴복합니다.

모든 것을 당신께 맡깁니다. 우리의 간구를 들으소서."


◑성령이 간구의 영을 부으실 때에 우리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그런 기도를 보게 될 것입니다.

한 선교사가 최근에 전 세계의 위대한 각성에 대해 우리 교회에서 말하였습니다.

모든 경우에 있어서 '기도의 영' 은 마지막 추수와 관련지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베트남시베리아아마존아프리카의 줄루족 안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열성적으로 기도 하고 있습니다울며 소리 높여 하나님을 향해 외치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여 죄를 다루고 의로운 것으로 돌이키며

그렇게 기도 하고 있습니다.

 

어떤 기도모임은 저녁 여섯시부터 다음날 정오까지 지속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정도의 기도는 할 수 없습니다이러한 기도는 간구의 영이 임하신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스가랴 12:10절에 서 약속하셨던 것을 행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 믿는 자들은 그것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우리도 타임스퀘어 교회에서 기도하는 주간을 갖자고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성령의 부으심을 약간 맛보았습니다.

 

실제로 이 나라 전체의 기도에서 열성과 부지런함이 보여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간구의 영의 부르심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18일 저는 기도일지를 시작했습니다.

첫째 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일주일 전에 7월 11일 성령님께서 저를 기도의 해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집중적인 기도를 의미합니다.

저는 저의 서약을 포기하지 않기 위하여 이 일지를 계속 쓸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30일 동안 저는 그 기도일지에 한 단어도 적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제 인생에 큰 시험이었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방해받아온 것입니다.

기도에 훈련되어지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미쳐 깨닫지 못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이것을 통하여 기도하려는 욕망과 생각까지도

성령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이제 저의 딜레마는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간구의 영을 그의 교회에 부어주시기로 약속하셨고,

그리고 저는 그것을 놓치고 싶지 않으며

또 진실로 하나님의 움직이심에 일부분이고자 하는데,

그러면 어떻게 제가 이 성령으로 부르심을 받는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해답은 스가랴 10 : 1 에 있습니다.

“봄비 때에 여호와 곧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이를 구하나

우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라”(스가랴 10 : 1)

 

우리는 주님께 간구의 영을 주실 것을 간구해야 합니다.

이 절에 나오는 밝은 구름은 "번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소나기를 내려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가랴에서 "구하라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온

이 짐(부담)을 주리라그러나 나에게 그것을 구하여야 한다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하나님께 "오, 하나님. 주님의 성령을 저에게 부어주옵소서.

그리하여 기도하는 것을 배우게 하시며, 샘이 열리게 하시며,

제가 주님의 마지막 추수의 일부분이 되게 하옵소서“

라고 요구하기를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니겠습니까!

일단 그 분의 간구의 영이 여러분 위에 임하시면,

여러분은 거룩하게 하고경건하게 하여성결케 하기 위해

기도하는 여러분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사랑하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하여 중보할 것이고,

또 이 죽어가는 세상을 위해 울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령님께서 여러분 안에서 그것을 행하시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이 그것을 행하실 것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이 마지막 부르심(은총과 간구의 늦은비)은

하나님의 사람들로 하여금 무릎을 꿇게 하실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새로운 비젼을 스가랴의 예언에서 봅니다.

지금 성령님은 이스라엘에서 바로 그것을 행하고 계십니다.

많은 무리의 유대인들이 통곡의 벽에 모여

그들의 구세주가 오시기를 기다리며 울고 있습니다.

그러나 머지않은 날에 하나님께서는 그 장막을 걷을 것이며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알게 될 것이고,

그를 찌른 것으로 인해 울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 무지했던 것과 거절한 것으로 인하여

애통하면서 그(예수님)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 대해 교회와 관련하여 또 다른 해석이 있습니다.

여러분, 성령님의 매우 개인적인 다루심이 곧 도래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죄에 대해 매우 무디게 했고 호도했으며

또한 간과했었습니다그래서성령님께서 기도의 영으로 오시면

그 분을 정결케도 하실 것입니다.

울고 애통하며 또 우리의 죄가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는가를

실제로 느끼는 상한 심령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하며(스가랴 12:12)

 

저는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죄에 대해 강하게 정죄하는 메시지보다

주예수께서 오시기 바로 전에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에게 줄 수 있는 더 큰 선물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안에 있어 거룩하지 못하고깨끗하지 못한 것들을

견딜 수 없을만큼의 날카로운 죄의 깨달음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여기 성령의 늦은비를 부으시는 조건과 징표들이

아래에 있습니다.

만일 소위 말하는 성령의 운동이 이것 들에 필요한 만큼에 미치지

못한다면 이것은 육체적이라는 것을 당신은 알아야 합니다.

경건한 슬픔으로 인한 비탄낙담울음

그리고 오직 그러한 성령에 대한 영혼들에 대한 마지막 추수에 초점이 있는가?

회개와 경건함에 이르는 은총의 영이 있는가?

굴복케 하는 간구의 영과 성령안에서 기도의 긴박함이 있는가?

주 예수를 향한 열망죄에 대한 태도 후에 참된 축복의 기쁨이 있는가요?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성령이 약속하신 모든 것을 놓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 분의 부르심 가운데서도 메마르고 시들며

텅빈 사막 가운데 끝이 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해야하는 것은 여전히 미지근하게 살며,

또 온전하지 못한 마음으로 주님께 예배하면서도 만족해 하며

라오디게아 사람들과 같은 무리에 어울리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 곡식을 무르익게 할 비가

내안에 있는 가시나무와 엉겅퀴에 물을 대줄 뿐입니다.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히브리서 6 : 7-8)

 

저는 하나님의 마지막 부르심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저를 포함시켜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 분도 그와 같이 하기를 간곡히 부탁합니다.

이제 저와 함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 저는 주님의 거룩한 사역을 위해 필요한 훈련을 받지 못했습니다.

저에게 그것을 주셔야 합니다.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부담을 저에게 주옵소서.

주님의 애통하는 영을 제 안에 두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은 저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그래서 저는 굴복합니다.

온전히 주님께로 향합니다. 저는 주님께서 제게 말하시는 어떤 것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모든 것을 주님께 의지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