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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과 육의 관계 P2

LNCK 2022. 12. 6. 10:27

영적세계의 원리들13: 영과 육의 관계 -   - YouTube

◈영과 육의 관계 P2        갈5:17~18        2019년 설교     P1 보기

영적세계의 원리들13: 영과 육의 관계        *위 설교 31:15~ 44:30까지 녹취, 정리

 
◑갈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위 구절에서 명확하게 얘기합니다. 
'육체의 소욕', 우리 육체가 원하는 욕심이 있지요. 이게 '본능'이죠.

그것은 성령을 거스릅니다. 
그리고 성령은 육체의 욕심을 거스릅니다. 

완전한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내 영은 (순간) 완전해집니다. *진정 회심할 때
그런데 타락한 세상 속에 있는 내 몸은 
이 성령의 생각과 계속 부딪히는 거에요.
계속 서로 대적한다는 거예요.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17
그래서 둘이 계속 서로 부딪힌다는 거예요.

그 가운데 결국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성령을 따라가기를 계속 힘쓰라는 거예요.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생각을 계속 따라가는... 
그래서 육체의 욕심을 쳐서 복종시키라는 겁니다.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바울은 자기 육신을 쳐서 복종시켰어요.
우리의 본능이 계속 요구하는 게 있단 말이에요. 

결국 '몸의 구원'은 뭐냐면 
내 몸의 모든 타락한 욕구를 쳐서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이게 '몸의 구원'입니다. 

그래서 구원이라고 우리가 말하지만
이것을 세분하면 '영의 구원'과 '몸의 구원'으로 나눌 수 있어요.

(*원래 우리 영과 몸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결합해서 활동하지만,
설명을 위해서 잠시 분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나는 구원 받았으니까 완전해!' 
이렇게 믿고, 또한 가르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맞지만, 또 더 생각해 봐야 될 문제들이 있어요.
'영의 구원'은 받았지만, 아직 '몸의 구원'은 온전히 받지 못한 거예요.

즉 몸을 쳐서 복종시키는 일을 등한히 하는 거죠. 
(*자기가 온전히 구원 받았다고 생각하니까)

우리의 영은, 구원받는 순간 한 번에 완전해져요. 
그런데 문제는 인간은 영만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에요. 몸이 존재하죠. 

'몸의 구원'(성화)는 이게 시간이 걸리는 점진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 안에서는 영과 육을 구분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구원'이라고 얘기할 때는 
'영의 구원'만 가지고 구원이라고 얘기할 수가 없는 거예요. 
따로 따로 분리가 되지 않으니까요. 

결국 구원은 이렇게 신비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완성되어 있으면서도 또 완성해 가야 되는' .. 것이 구원입니다

회개하고 진정 변화되어 구원받는 순간
'영의 구원'은 온전히 받지만, '몸의 구원'은 아직 온전하지 못한 거예요.
'몸의 구원'은, 구원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거죠.  빌2:12
그래서 육체의 소욕과 늘 싸워야 하는 싸움이 남아있는 겁니다. 갈5:17, 고전9:27

그럴 수밖에 없는게 인간의 이중성 때문이에요. 
우리 인간에게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분리할 수 없이 하나로 얽혀 있기 때문에 

구원에 대한 얘기도, 보이지 않는 세계의 구원(영의 구원)과
보이는 세계의 구원(육의 구원)을 하나로 묶어서 얘기할 수 밖에 없어요. 

지금 설명하기 위해서, 둘을 분리해서 설명하지만
사실 영과 몸을 분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어쨌든 우리가 '몸의 구원'이라고 얘기할 때는 
'몸을 쳐서 복종 시키는' 일이 필요한 거예요. 

뭐에 복종시키는 거예요?
성령께 복종시키는 거예요. 
이게 여러분, '몸의 구원'입니다. 

▲그래서 이 '몸의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마지막에 천국에서 살아갈 때, 고생하게 될 거에요. 

그 몸에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느냐가 결국 영적인 성숙함인데요,
몸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졌냐? 하는 것이 결국 '구원의 완성'인데 

이것이 마지막 영원한 천국에서의 삶과 분명히 연결되어 있어요. 
그런데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줄은 나도 잘 모르겠어요. 
이것은 이제 신비에 속한 영역이라서, 천국에 가 봐야 알 것 같아요 
그런데 분명한 건 뭐냐면, 연결이 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내 몸을 쳐서, 우리의 몸의 육체의 소욕이 
성령의 소욕과 많이 일치되어 있으면 있는 만큼 
천국에서 누리는 삶이 거기에 비례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일치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지옥에 가지는 않는 것 같아요. 

우리 안에 성령께서 거하시면 천국에는 들어가는데 
거기서 영원히 어떤 퀄리티의 삶을 누릴 건가? 
하는 것은, 내 몸이 얼마나 성령을 따라 왔느냐.. 
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완전한 구원(구원의 완성)에 이르기를 힘쓰라는 거예요. 

'완전한 구원에 이르기를 힘쓰라'는 말은 
'천국에 못 들어가니까 힘써라'가 아니고,
'천국에 못 들어가면 어떻게 하나?' 이렇게 두려워 하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으로 인하여 
예수의 보혈로 인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거에요. 
한 번에 구원을 받는 거에요.  (*진정 회개하고 회심한 경우)


그런데 우리가 두려워하며 '이루어 가야 될 몸의 구원'은 뭐냐면 
바울이 갈5:16~19에서 얘기했듯이 
우리의 몸을 쳐서 성령께 복종시키는 거예요.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러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5:17~18

그래서 우리 몸을 쳐서, 성령을 따라가는 삶으로 복종시키는 거예요. 
(내 의지로 치는 게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쳐서 복종시킵니다)

그것이 '구원의 완성'에 이르게 되는 길이고,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2:12

그래서 '몸의 구원'을 결고 이루어가야만 
우리의 영과 몸이 함께 완전함에 이르게 되고, 

그만큼 우리가 천국에서 삶을 누리게 되는 거예요. 아멘! 
이것이 '몸의 구원'입니다.

(*우리의 성품과 인격을 천국에 고스란히 그대로 가져갑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성경에 힘들게 성화, 몸의 구원을 강조할 필요가 없죠. /주)

▲물론 '몸의 구원'은 영의 구원과는 달라서 
이 땅에서 100% 완전함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우리 몸은 보이는 세상에 속해 있기 때문에 
보이는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 몸은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받도록 창조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 자연세계에 일부로.. 그렇게 지음 받았기 때문에 
이 '보이는 세상, 온 우주가 타락과 죄 가운데 있는데 
그 속에서 몸만 완전해 진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것을 비유하자면, KTX 기차가 있죠.
KTX가 최고 속력은 시속  500 KM로 달릴 수 있대요. 

그런데 그 속도를 실제로는 낼 수 없대요.
왜냐면 열차가 달리는데는 환경이 있는데, 

철로의 상태가 좋아야 되고, 철길(선로)도 거의 직선이어야 돼죠.
물론 정차역도 거의 없어야 되고요.

이런 모든 환경들이 적합하면, 
KTX가 자기 최고 속력을 시속 5백킬로를 낸다는 거죠.

사람도 그렇다는 거예요. 사람도 이 자연세계에 속하도록 지음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이 원래 창조하신 '몸의 구원'의 완전함에 이르려면 

우리 혼자 완전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맺고 있는 자연, 세상과의 모든 관계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환경들이 함께 완전함에 이르러야만 
내가 완전함에 이를 수 있지 

그렇지 않고, 나 혼자만 동떨어져서 혼자서 완전함에 이를 수 없다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 몸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절대로 100% 온전함에 이를 수는 없어요. 

그래서 '완전한 구원'에 이르려면, 결국 뭐가 있어야 되냐면 
새하늘과 새땅이 있어야 돼요. 그건 저 천국에 있는 거죠.

새 하늘과 새 땅이 함께 있지 않다면, 
우리 몸만 딸랑 완전함에 이를 수는 없다는 거예요. 

왜냐면, 우리 몸이 이 세상의 일부, 한 파트 part로 주어져 있기 때문이죠.

예를 틀어, 타락하기 전에 에덴동산은 어땠을 것 같나요?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살았는데 
에덴동산은 지금 우리가 숨 쉬고 있는 대기하고는 공기자체가 달랐어요. 
왜냐면 대홍수가 일어나기 전이에요. 

그래서 우주에서 들어오는 방사선의 양도 달랐고, 대기의 질도 달라고 
그래서 아담 이후 창세기 초반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거의 1천살 가까이 살잖아요. 

지금은 그런 장소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왜냐면, 인간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과 같이 엮어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새 하늘과 새 땅에 이르기 전에는 
이 세상에서 우리 몸의 구원은, 완전함에 이를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결국 마지막 때에 무슨 일을 하시냐면 
고전6:13~14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벧후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여기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을 폐하신대요.
우리 육신을 폐하시고,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우리의 몸을 주의 권능으로 부활시킨다는 것입니다. 

이때 비로소 우리 '몸의 구원'이 완성이 됩니다. 100%로 완성이 돼요. 
그런데 그 때는, 우리 몸만 100으로 완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가 함께... 새하늘과 새땅 가운데 우리가 살아가야 될 환경까지도 
다같이 완성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예수께서 오셔서, 새하늘과 새땅을 만드실 때까지 
우리가 부활체를 입을때까지, 우리 몸이 100% 완전함에 이루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러나 하여간, 우리 몸이 그 완전함을 향해서 
계속 매일매일 성화되어 가는 것은 구원의 일부분입니다. 

그리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결국 부활체를 입게 되면 
이제 더 이상 우리 몸의 타락한 본능은 없을 거에요. 
우리 몸이 원하는 타락한 본능은 없을 거예요. 

▲그런데 그때 우리 혼은 어떨 거 같으세요? 
우리 혼까지도 만약 하나님께서 그렇게 강제적으로 바꾸신다면 
우리의 자아는 어떻게 되는 거죠? 우리의 아이덴티티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우리 혼이란, 지정의를 포함한 나의 인격인데,
그걸 하나님께서 그냥 한순간에 짠! 하고 바꿔주셔서

내가 뭐 좋아했던 거, 뭐 싫어했던 거, 
또 내가 가지고 있는 추억, 뭐 생각들, 가치관들 
이런 거를 그냥 하루아침에 싹 바꿔 버리셨어요.

(*만약 그러면 그 날부터 '나'라는 존재는 완전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로봇처럼 되든지, 천사처럼 되든지 하겠지요.)

그건 더 이상 내가 아니지요. 
이건 하나님께서 다른 어떤 존재 창조하신 것이 되지요.
나는 없어져 버린 거잖아요. 그러므로 그렇게 하시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안에 있는 자아를, 하나님께서 소멸시켜 버리지 않으세요. 
새 하늘과 새 땅에 가더라도 말입니다. (이 부분은 그래서 지상에서 성숙이 필요)

우리의 육신의 몸의 연약함들, 그것은 하나님께서 부활체로 새롭게 하시겠지만 
우리의 내면에 있는 이 마음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건드리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우리의 '몸의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뭐예요?
결국 이것은 우리 안에 있는 생각의 변화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아가 없어지지 않으면서도 
천국에서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그것을 준비하는 것이 '몸의 구원' 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영적훈련, 제자훈련, 영적성숙'은 다 같은 말입니다. 
결국은 뭐냐면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아서 그리스도께 복종시킴' 이에요.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아서, 
우리의 생각이 원하는 게 곧 육이 원하는 것인데,
이 육체의 소욕을 성령께 복종시키는 거예요.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아서, 쳐서 성령께 복종시키는 거예요. 
그것이 여러분 '온전한 구원'인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