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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1장, 영적 질병의 증세들

LNCK 2022. 12. 7. 17:22

https://blog.naver.com/karamos/220360529210


◈말1장, 영적 질병의 증세들                2012.09.30.

서론

“말라기”의 문자적 의미는 “나의 사자 my messenger” 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선지자의 이름을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를 의미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어쨌든 말라기서는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지어서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B.C. 539년에 페르시아의 왕인 고레스가 칙령을 발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레스의 꿈에 말씀하셨습니다. 
“내 백성 이스라엘을 해방시켜라. 그리고 내 백성이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성전을 지을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어라.” 

이렇게 계시하셔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B.C. 538년에 스룹바벨의 인도로 약 5만 명이 1차로 귀환했고 
B.C. 458년에 학사 에스라를 중심으로 2차귀환을 했고 
B.C. 444년에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3차귀환을 했죠.

“말라기”가 선지자의 이름을 의미한다면 
그는 느헤미야가 활동하던 시대인 B.C. 430년경에 활동했을 것입니다. 

말라기가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고 해도 
이 책이 기록된 것은 B.C. 430년경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돌아온 후 우상숭배를 하지 않았습니다. 
우상숭배 때문에 혼이 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영적인 상태는 병들어있었습니다.

말1장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적인 질병이 무엇인지를 진단해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질병을 생각해보면서 
우리들의 영적인 문제도 점검해보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1. 영적 질병의 첫 번째 증세: “영적인 무감각”

이스라엘 백성들은 네 가지 영적인 질병이 있었습니다. 
첫째, 그들은 영적으로 무감각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말 1: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신 거냐고 대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즉각적으로 대답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1:2~3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들이 아무리 성을 쌓고 나라를 건설해도 
하나님께서 헐어버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그 후손들에게 택하심의 은혜를 주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서를 미워하셨다는 것은 감정적으로 미워했다는 것이 아니라 
택하지 아니하셨다는 뜻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에서가 형이고 남성적인 성품을 가지고 있으며 
매력적이고 사냥도 잘하여 인기가 많을 것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야곱은 아우인데다 비겁하게 사기나 치고 매력도 없는 사람이었죠. 
만약 우리가 택했다면 야곱을 택하지 않고, 에서를 택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택하심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것은 택하심의 은혜가 인간의 조건에 달려있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에 달려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야곱과 그 후손들을 택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야곱과 그 후손들은 하나님께 자신들을 사랑한 증거가 무엇이냐고 
대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우상숭배 때문에 B.C. 587년 완전히 망해버렸습니다. 
자랑하던 솔로몬의 성전도 파괴되고 백성들은 모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렇게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거기서 다시 해방시켜 주신 것 아닙니까? 
고레스 왕에게 역사하셔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도 짓고 살게 됐죠. 

이 모든 일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능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불가능한 일이었죠.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하나님의 은혜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혀 그런 의식이 없었습니다. 

뻔뻔스러운 얼굴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셨느냐고 대드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배은망덕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영적으로 병든 사람의 특징입니다.

▲대한민국도 바벨론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과 정치적 상황이 비슷하죠. 
대한민국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36년간 식민통치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의 능력으로 해방되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3‧1 운동은 훌륭한 민족운동이지만 이것 때문에 해방된 것은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역사로 해방됐습니다. 
불신자였던 고레스 왕을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셨듯이 
대한민국도 하나님께서 많은 불신자들을 사용하셔서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일으켜 주셨습니다. 

산업화를 통해 경제적으로 발전시키시고 
민주화를 통해 정치적으로도 발전시켜주셨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능력과 노력으로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참 배은망덕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주셨고 
무엇보다 우리에게 택하심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임을 믿습니다. 

우리를 택하여 지옥에 가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해주셨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2. 영적 질병의 두 번째 증세: “영적인 반항심”

말라기서에는 곳곳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항적인 말투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1:6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1:7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  2:17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3:8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3:13 

하나님을 향한 반항은 인간 죄성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의 모든 실과를 먹도록 해주셨어요. 
다만 한 가지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만 먹지 말라고 하셨죠. 

그렇게 하면 너희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알겠다고 하셨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과 같이 될까봐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는 
사단의 꾐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향해 반항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 인류는 
비참한 상태에 빠져 죽음과 질병 가운데 고통받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겸손히 인정하고 
자신의 허물을 되돌아보며 회개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할 때 은혜와 축복이 다시 돌아오게 되는데.. 반항을 한 것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을 멸시했다고 하시면.. 우리가 언제 그랬냐고 대들고 
너희가 내 것을 도적질했다고 하시면.. 뻔히 해놓고서 
우리가 언제 도적질 했냐고 모른척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근거를 갖고 말씀하십니다.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근거 없이 말씀하시겠습니까? 
그럼에도 하나님께 반항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큰 질병입니다. 
반항(또는 반역)의 영은 사단과 귀신들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죄인이다. 너희 죄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영원히 지옥에 떨어진다.” 

그러면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면 됩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구주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 죄를 용서하겠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저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죄 용서를 받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하고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 반항적인 영은 모두 쫓아내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시기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3. 영적 질병의 세 번째 증세: “영적인 부주의”

레22:17~25절에, 모세가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에게 분명히 명령합니다. 
‘하나님께 바쳐지는 제물은 흠이 없고 점이 없는 온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백성들이 제물을 가지고 오면 잘 살펴봐야 되는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백성들이 짐승 중에서 값이 나가지 않는 
흠 있고 점 있는 것으로 제물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흠 없고 점 없는 제물을 가지고 오라고 하셨느냐? 
제물이라는 것은 결국 신약시대의 예수님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흠 있는 제물을 가져오는 것은, 
예수님을 모독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너희의 죄를 위해 드려질 제물은 
흠 없고 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될 것이니 
그 예표로서 너희도 흠 없고 점 없는 제물을 가져 오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흠 있는 제물을 가져오고 
이것을 제사장들은 부주의하여 잘 살펴보지도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제물을 받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차라리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1:9~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를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 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너희 총독도 받지 않을 제물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겠냐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목회할 때 도넛을 파는 집에 심방을 간 적이 있는데 
기도하고 나니까 커피 한잔과 도넛 두 개를 주면서 하는 말이 
머리 벗겨진 사람은 공짜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제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도들 집에 가서, 음식을 공짜로 안 먹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심방가면 공짜로 주지 마십시오. 
안 그래도 머리가 벗겨져서 성질나 죽겠는데 
머리 벗겨진 사람은 공짜 좋아한다면서 도넛을 주니까 먹고 싶겠습니까? 
차라리 안 주는 것만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도 이와 같습니다. 너희도 먹지 않을 흠 있고 점 있는 제물을 
가지고 와서 드리냐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받지 않을 것이고 
너희가 은혜를 구해도 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차라리 성전 문을 닫아버렸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1:10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도 하나님을 향해서는 
어떻게든 최선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 부주의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3. 영적 질병의 네 번째 증세: “예배를 경멸하는 것”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1:13 

제사를 드리면서 제사장들이 코웃음합니다. 
왜 이런 귀찮은 일을 해야 하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들과 백성들의 죄를 사함 받고 지옥이 아닌 천국에 가도록 하기 위해서 
정해놓은 제사와 제물을 피곤하고 귀찮은 일로 여긴 것입니다. 

예배는 성도들의 특권이고 영광입니다. 
사람들은 예배하면서 은혜를 받게 되어있습니다. 

어디 놀러가서 테니스를 치다가 은혜 받았다는 사람은 못 봤습니다. 
또 노래방에 갔다가 은혜 받았다는 사람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은혜는 예배 중에 기도하다가 오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 교수를 할 때 학생들에게 
야구선수도 3할이면 대타자인데 
목사가 어떻게 매번 설교할 때마다 홈런을 치겠냐고 하면서 
매번 은혜가 없을지라도 속상해하지 말고 넘어가라고 했습니다. 

가끔은 은혜를 못 받는 때도 있지만, 그래도 예배하면서 은혜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싫어하고 귀찮아하며 경멸하는 것은 영적으로 큰 병입니다.

부흥이 일어날 때는 사람들이 예배를 즐거워합니다. 
제가 1990년 연길에서 설교하고 
이어서 두만강 근처 왕청이라는 곳에서 또 설교했습니다. 

그런데 설교가 끝나고 축도를 했는데도 사람들이 집에 가지 않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한 번 더 설교를 듣기 위해 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또 설교하고 축도를 했는데도, 사람들이 집에 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어보니까 또 설교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 번이나 설교했습니다. 
그래도 집에 가지 않아서, 다른 분에게 설교를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이번에 갔다 온 페루는 가톨릭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개신교의 엄청난 부흥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페루에는 신학교가 제대로 된 곳이 없어서 
농사짓다가 어느 날 은혜 받고 목사가 되겠다고 하면 목사가 됩니다. 
목회를 하면 목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목사들이 어디서 말씀 세미나를 한다고 하면 구름떼처럼 몰려와서 
밥도 안 먹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말씀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흥이 일어날 때는 사람들이 예배를 지루해하지 않습니다. 
예배를 기다리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1960년대~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예배를 즐거워했어요. 
부흥회 한다고 하면 구름 떼같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부흥회를 한다고 해도 잘 오지도 않고    *2012
주일날 예배시간이 몇 분만 넘어가도 시계를 쳐다봅니다. 

하나님께 예배할 때는 표정도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나한테 해준 것이 뭐가 있다고 예배를 받으십니까?” 
이런 표정으로 앉아계시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반항적인 영입니다. 

제가 보니까 늘 웃고 다니는 사람은 하는 일이 다 잘 됩니다. 
가정도 남편과 아내가 늘 웃고 다니는 가정은 행복합니다. 
그런데 늘 인상 쓰고 다니는 가정은 매일같이 싸우고 갈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늘 웃고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결론 

예배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를 표하는 시간입니다. 
예배를 즐거워하는 영혼은 건강한 영혼입니다. 

우리 영혼이 병들게 되면 우리가 현세와 내세에 손해를 보게 됩니다. 
“떼 가운데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사기하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1:14 
내 이름은 열방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기를 쳐서 흠 있는 것으로 제물을 드리고 저주 받을 짓을 해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큰 임금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은혜를 주실 수 있고 심판도 내리실 수 있는 
권세 있는 큰 임금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얼굴의 빛을 비춰서 복주시면, 그의 인생은 성공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저 인간은 못 쓰겠다고 하시면 그의 인생은 망하는 거죠.

은혜를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으로 병들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귀찮아하고 싫어하자 
너희에게 줄 은혜를 이방인에게 주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 계속해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싫어하고 귀찮아하면, 다른 이에게 돌리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1:11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멸시하자 하나님께서는 이방 민족들이 은혜를 받고 
깨끗한 제물을 드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방 민족에게로 은혜를 돌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항상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하는 영혼, 
하나님께 순종하는 영혼, 하나님의 진리를 분별하는 영혼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위해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다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도 축복하시고 우리 교회도 축복하시며 
우리나라도 계속해서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최근 대한민국을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자꾸 멀어져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해줬냐고 하면서 교회를 향해 욕을 퍼붓습니다. 

교회는 지옥에 갈 영혼들을 구원하는 복음이 있는 곳입니다. 
교회를 욕하고 하나님을 등지면 
우리도 조선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과 같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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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의무, 행복한 사람이 헌금드립니다!
고전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위 말씀을 풀어서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음 선포를 자랑할 수 없는 이유,
그것은 ‘빚진 자’로서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무이기는 하나, 행복한 의무입니다.

나와 당신이 예수님을 믿어서 행복하다면,
정말로 행복하다면!
복음 선포를 해야만 합니다.

혹시 직접 선포가 아니더라도
기도로, 헌금 참여로, 복음선포 단체에 동참으로
어떤 형태로든지 직/간접적으로 전파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고전9:16
 
자기가 믿는 복음으로 인해,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라면
복음 선포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행복한 사람이라면
그는 더더욱 복음 선포를 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그러니 이렇게 뒤집어 얘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거나
적어도 복음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아직은요!

이런 면에서 바울 사도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고, 
오늘날에도 행복한 사람이, 헌금을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과 복음으로 인하여 행복하십니까?

 

▲눅5:11절에 베드로가
‘모든 배와 그물, 자기의 직업과 모든 삶을
다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저(김동호 목사)는 이 말씀 속에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하나님은 누구를 쓰시나?’

‘주를 위하여 쓸 줄 아는 사람을 쓰신다.
하나님을 위하여 쓸 줄 모르는 사람을
하나님은 쓰시지 않는다’
하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어요.

하나님을 위하여 쓰는 것이
여러분 뜻밖에 그렇게 쉽지 않아요.

그것은 훈련이 필요.하고요.
연습이 참 많이 필요해요.

어릴 적에 제가 참 가난하게 컸어요.
우리 아버지 월급이, 학교 수위 월급이
쌀 한 가마 반 정도 살 수 있는 돈이었기 때문에

그냥 밥 먹는데 급급했지
용돈, 뭐 이런 거는 생각할 수 없는 삶을 살았어요.

그래서 저는 종이 돈으로 용돈 받은 기억은
거의 별로 없어요.

그런데 저희 어머니께 참 지금도 제가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머니가 저한테 연보 훈련, 한금 훈련을 참 잘 시키셨어요.

저는 종이돈으로 용돈 받아본 적 없지만,
동전으로 연보 받아본 적 없어요.
꼭 어머니가 종이돈 챙겨서 연보 돈 주셨어요.

(*연보捐補 : 버릴 연, 도울 보. 타인을 도와주되 버리는 마음으로 도움)

우리 외할머니가 저희 집에 오셨다가
제가 그 종이돈 들고 헌금하는 걸 보고

우리 집 가난한 거 아시니까
"너 참 용타" 하고 칭찬하셨던 것 기억해요.

근데 그 연보 낼 돈이 좀 구겨졌었어요.
그랬더니 할머니가
"연보 이렇게 구겨진 거 가지고 다니면 못 써" 하고
다리미로 다려주셨어요.

그때 전기다리미 쓸 때가 아니었거든요.
숯불 피워서 숯불 다리미로 지폐를 다려서 주셨어요.

이건 저한테 충격이었어요.
여러분 1만원권 다리면 2만원 되는 것도 아니고
지폐가 구겨졌다고 9천 원 되는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께는 내가 드릴 수 있는
깨끗한 것, 제일 좋은 것, 흠 없는 것
그거 드려야 된다. 이 훈련이 되어서

그렇게 되니까요.
작은 돈은 내가 쓰고, 큰돈은 주를 위하여 쓰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은 지경에까지 연습이 되더라고요.

그게 제가 그래서
제가 하나님께 많은 복을 도리어
받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연보 훈련을 잘 시켜주신 우리 어머니에게
참 감사하다..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 아버님이 그래도 집 한 채 마련해서
저한테 상속해 주셔서, 그게 제 재산이 되었는데

그게 저한테는 제법 큰돈이 되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그게 다 내 거가 아니고
'1/n만 내 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우리 식구가 우리 어머니, 우리 부부, 아들 셋
이렇게 여섯 식구였는데

내 거는 6분의 1, 
6분의 1은 우리 아내
6분의 1은 우리 어머니
6분의 1은 큰 아들, 둘째 아들, 셋째 아들 
이렇게 6분의 1씩 나누면 되겠다..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얘기해 줬어요.

우리 집 재산이 요 정도 되는데
‘6분의 1은 아버지 거고 
6분의 1은 네 거다.
그건 내가 주는 게 아니라 본시 네 거다’ 하고
몫을 정해줬어요.

그랬더니 애들이 좋아하더라고요.

근데 참 그 다음 날 새벽에 새벽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그냥 뜬금없이 "난?" 그러셨어요.

말귀를 못 알아들었어요. 그래서 "네?" 했더니
하나님이 제 마음으로 '내가 너희 아버지라며?'

'나를 너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왜
나는 네 식구에서 식구의 몫에서 왜 빼놨냐?'
그 마음을 주셨어요.

그래서 그 다음날 아이들에게 얘기했어요.
"야, 우리가 하나님을 빼놨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인데
그러니까 우리가 6분의 1씩 나누는 게 아니라
7분의 1씩 나누어야 된다" 

이랬더니 애들이
맞다고 동의하고 꽤 좋아했어요.

그래서 제 마음에 제가 가지고 있는 재산의
최소한 7분의 1은 하나님 거다..
여러분, 재산의 7분의 1을 떼는 건 절대 작지 않아요.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의 몫으로 드린 날
정말 기뻤어요.

왜 기뻤는지 아세요?
그게 아깝지 않더라고요.

그걸 드리는 내가, 내 아들에게 7분의 1 몫을 뗄 때
전혀 아깝지 않았거든요.

더 줄 수 있으면 더 주고 싶었지
그거 깎아내리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하나님께 대해서도 그 몫을 드릴 때
아까운 마음이 안 들더라고요. 손이 안 떨리더라고요.

왜 그런가? ‘어려서부터 잘 훈련받았기 때문에 그랬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여러분, 하나님을 위하여 쓰고 하나님께 헌금하고
또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에 후원하고 하는 일에
언제나 손이 빠르고 발이 빠르고
마음이 큰 그런 사람으로 사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크게 귀하게
저와 여러분을 써 주실 줄을 믿습니다.

여러분 섬기시는 교회, 또 이렇게 보면
어렵고 힘들고 하나님이 여기 좀
후원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주실 때

그냥 아낌없이 잘 훈련된 사람으로
쓰임 받는 그런 훈련을 잘 하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