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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내래 죽어도 좋습네다> P12

LNCK 2022. 12. 8. 11:34

[Ep 12.오디오북] 최광 선교사의 탈북자 선교 실화| - YouTube

 

◈도서 <내래 죽어도 좋습네다> P12          요14:26          지난 회 보기

◑제4장. 두만강은 홍해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언제나 동방의 예루살렘  평양에 있나니..


♣북한 선교의 앞이 휜히 보임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위대하고 큰 비밀이었던 천국의 복음을 전달할 첫 사람들로서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한 어부들을 택하셨다. 
하나님의 복음은, 사람의 지혜와 능력과는 상관이 없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3년간 같이 생활하면서도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완전히 깨닫게 된 것은, 성령님이 오셨을 때였다.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 요14:26

그처럼 예수님은 말씀을 먼저 전해 주셨고, 
그 말씀에 대한 깨달음은.. 나중에 성령님께서 주셨다. 

우리는 듣는 자가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전해야 한다. 
말씀을 전해 들은 자가 깨닫고/ 깨닫지 못하고 하는 것은 
성령님의 일이지, 우리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 

우리는 다만 전하는 일에만 충실 하면 된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일은, 그들이 깨달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성령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북한사람들을 사역장이 모집해 와서는 
성경을 많이 읽히는 데만 전력했다. 

참된 깨달음은 오직 성령님께로 말미암는 것을 알았기에 
사역장의 주된 일과를 기도와 성경통독 으로 하였다.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사들은 오늘날의 신학자 이상으로 
성경에 정통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성경지식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게 하지는 못했다. 

그저 지식이었을 뿐이고, 도리어 자신들의 의가 되어 
다른 이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무기가 되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놀라울 정도로 많은 성경지식이 있었지만 
그에게 생명의 깨달음을 준 것은, 그 지식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이셨다. 

우리 사역장 형제들에게, 깊고 체계적인 신학 지식은 없었지만 
대신 사역장 생활을 통해 깨닫게 된 체험적인 말씀이 있었다. 


▲전에 장만식 아바이 사역장에 갔을 때였다.             *얼마 후 순교   주1)
내가 도착했을 때 수요예배가 막 끝나고 있었다. 

한 학생이 그에게 물었다. 
'장 선생님, 하나님은 왜 우리가 오른 뺨을 얻어맞으면, 왼뺨 마저도 들이대라고 
하십니까?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도대체 뭡니까? 난 이해가 안 됨다.' 

장만식 아바이가 뭐라고 대답할지, 나는 몹시 궁금했다. *당시59세, '아바이'로 호칭
그는 조금 생각해 보더니 이내 대답을 해 주었다. 

'그게 음.. 그게 나도 잘 모르오.' 그리고 한동안 뜸을 들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나도 잘 모르긴 하지만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거이다. 
자꾸 꼬치꼬치 따지지 말고, 글쎄 한 번 그렇게 해 봐라! 
그러면 예수님이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알게 된다. 

그렇게 한번 해 보면, 너는 그 사람을 속이 후련하게 때렸을 때 보다 
더 좋은 기분을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도 너를 절대로 해치지 못 할 거고... 
왜 그런가 하면, 네가 하나님 말씀 때문에 얻어맞고도 참고, 
왼뺨 마저도 들이댄다면, 하나님이 그때부터 네 편을 들기 시작하실 거야! 
하나님이 네 편이 되시면, 김정일이 그 새끼가 와도 하나도 안 무서워! 알았는가? 
째각(즉시) 아멘 안 할래?'

'아, 아멘!'

장아바이는 왜 그래야 하는지,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지는 못 했지만 
그 결과가 가지는 의미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자신의 깨달음을 뒷받침해주는 논리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성적, 합리적, 논리적인 사람들 보다도 더 정확하게 말씀을 깨닫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 북한사람들이 이런 방식으로 말씀을 깨달아 간다는 것이다. 
나는 북한 선생들의 설교를 들을 기회가 자주 있었다. 
선생들에게 설교할 기회를 될 수 있는한 많이 주려고 


'가정사역장'에서 드리는 주일오후예배, 수요예배, 금요일 저녁예배에도 
이들을 초청해서 말씀을 전하게 하였다.  *선생들의 자녀, 배우자 사역장

그때마다 들어보면, 이들의 설교는 대부분 세련된 논리 전개는 없고 
다만 북한에서 외치던 구호 형식의 전달이었다. 

'예수님이 우리를 보고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 분한테로 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럴 때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 말씀 대로 이렇게 해야만 하겠습니다.  

지금 때가 이렇게 이렇게 돌아가니, 성경을 맞추어 본다면 
이럴 때는 이렇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논리보다 순종 강조

그런데 이럴 때마다 놀라운 현상이 일어나고 쌓였다. 
북한에서 날마다 지긋지긋하게 구호를 들으며 살아왔기 때문에 
더 이상 어떤 구호나 외침 따위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구호처럼 외칠 때는, 그 말씀을 믿고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에서 오신 목사나 선교사의 논리정연한 설교를 듣기 힘들어 하며 
그분들의 설교에서 아무런 깨달음도, 감동도 느끼지 못했다. 

이런 그들을 보며, "북한 복음화에는 북한사람이 적임자다" 라고 
나는 다시 한 번 확신하였다. 


▲'선교사님 우리 축구 경기 한번 좀 해봅시다! 
전체 사역장이 모여서, 어느 사역장이 축구 실력이 제일 센가 함 봅시다!'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사역장 팀장들을 모아놓고 사역비를 지급하며 
같이 식사하고 간단한 회의를 하였다. 

회의가 끝나면 선생들은, 각자 자기 사역장의 축구 실력을 자랑하곤 했다. 
모두들 자기 사역장이 제일이라고 서로 자랑하다가, 이런 제안을 나오게 된 것이다. 
'한번 상품도 큼직한 것을 걸어 놓고 해 봅시다요, 선교사님!' 

용섭 선생이 이렇게 제안하자, 다른 선생들도 이구동성으로 찬성했다.

*통독반 2기 이용섭 선생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순교했다.  주2)  

'맞소 맞소! 선교사님, 우리 한번 전 사역장이 모여 축구를 해가지고 
1등 2등 3등까지 갈라서, 1등은 미가엘 찬양반주기, 2등은 기타, 
3등은 뭐 하면 좋을까?' 

내가 아직 결정하지도 않았는데, 마치 결정된 것처럼 모두들 들뜨기 시작했다. 
전 사역장이 모여서 축구대회를 하는 것도, 별로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3기생들 중에서, 거의 모든 사역장에서 힘들어서 포기하고 돌아갈 사람은 
이미 다 돌아간 뒤였고, 신약성경도 70 ~ 80독 가까이 읽은 상태였다. 

이런 때 전 사역장이 함께 모이면, 우리의 규모를 알게 되면서 
형제들의 사기도 높아질 것 같아서,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좋아요. 그럼 3등 팀에는 뭘 주면 좋겠어요?'

'선교사님, 3등한 팀은 개 한 마리로 하면 어떻겠습니까?'라고 누가 선생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 3등 상품을, 개 한 마리로 하고 
다음 주 토요일로 날짜를 잡은 후, 각자 자기 사역장으로 돌아갔다. 

토요일이 되어 모든 사역장 형제들이, 서안시 교통대학 운동장에 모였다. 
모두 모이니 80명 가량 되었다. 

우리 가족(처, 모, 4자녀)도, 맛있는 음식을 듬뿍 장만해 학생들과 함께 어울렸다. 
'아이쿠 안녕하십니까 권사님! 은혜야 안녕! 
선교사님, 우리 형제들이 이렇게도 많습니까? 힘이 납니다, 선교사님!' 

모두들 자신과 처지가 같은 사람이 이렇게 많았다는 것을 알고는 
신이나 어쩔 줄 몰라했다. 

은혜와 봉구도(가정사역장), 이날은 아빠인 정선생을 만나 
하루 종일 함께 놀게 되어 너무나 좋아 했다. 

곧 이어 대회가 시작되었다. 
순교, 용철, 용섭, 빌립 선생 사역장과 
누가, 교웅, 성근, 예진 선생 사역장을 각각 예선전을 치르게 한 후에  
각 조에서 1등을 한 팀끼리 최종 결승전을 하게 했다. 

주심은 내가 보기로 했다. 
이날따라 비가 부슬부슬 내려 운동장이 질퍽거렸는데도 
형제들은 개의치 않고 모두들 열심히 뛰었다. 

한 경기를 마치고 벤치로 나오는 형제들을 보니, 다들 온몸이 진흙투성이였다. 
사역장의 명예가 걸려서 인지, 상품에 욕심이 나서인지 
모두들 혼신의 힘을 다해 경기에 임했다. 

모두들 최선의 실력 발휘를 했지만, 
북한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했던 효선 형제 덕에 
순교선생 사역장이 1등을 했다. 
그리고 성근선생 사역장이 2등, 정선생 사역장이 3등을 했다. 

1등을 한 순교선생 사역장 형제들은, 마지막 결승전까지 치르느라 
젖먹던 힘까지 다 써버려, 경기가 다 끝나자 모두 그 자리에 철퍼덕 쓰러져 버렸다. 
그래도 모두가 즐거워했다. 축구 경기 자체도 즐거웠지만 
우리 사역장의 규모에 다들 더 즐거워했다. 

'선교사님, 이제 이들이 모두 북한선교를 위해 뛰고 또 뛴다면 
북한 선교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선교사님, 북한 선교의 앞이 훤히 보임다!'

경기를 하면서, 모든 형제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으며, 앞으로도 이런 경기를 자주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학생들도 큰 힘을 얻었지만, 가정 사역장(처자녀들 모임)을 포함하면 
근 100명 가까이 되는 학생들이 한 곳에 모여 주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며 
즐겁게 노는 것을 보고, 아내와 어머니도 커다란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이렇게 모이는 것에는 위험도 적지 않게 뒤따랐다. 
만약 우리가 한 곳에 모여 축구대회를 한다는 것이, 공안의 귀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를 붙잡는데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철저한 보안 속에서, 이런 대회를 몇 차례 더 진행했었다. 


▲축구 대회가 끝난 며칠 후 권희선생이 나에게 조용히 말을 꺼냈다. 
'선교사님, 저 연변으로 올라가겠습니다' 

'아니, 왜요?' 

'이젠 저도 혼자서 해보겠습니다. 
저도 독립적으로 사역장을 꾸리고, 북한선교에 한 흐름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가 이렇게 나오니 인간적으로는 많이 서운했다. 
그와 계속 함께 하고 싶었지만, 나처럼 당당하게 사역장을 꾸려서 
멋있게 북한선교를 해 보고 싶어 하는 그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학생을 모집하고 사역을 시작할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해 주고 
훌륭한 선교사가 되길 간절히 바라며, 그를 떠나보냈다. 

권희선생이 떠난 후, 권희선생이 해오던 일은 
성근선생과 교웅선생을 세워 다시 이끌어가게 했다. 


♣위로하시는 하나님 

'아빠 아빠!' 집에 들어오는 나를 막내가 반갑게 부르는 소리였다. 

'어이구 우리 막내구나.' 나는 딸아이를 덥썩 품에 안아올렸다.

'아빠,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내 품에 안겨 쉴새없이 종알거렸지만, 내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였다. 

그 중국어를 들을 때, 내 속으로 눈물이 맺혔다. 
한국어도 미처 다 배우기 전에 중국에 와서, 중국 아이들 속에서 자라다보니 
막내는 우리 말을 점점 잊어가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큰 애와 둘째가 통역을 해야만, 막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막내는 우리가 하는 한국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우리는 막내의 중국어를 알아듣지 못하자 
아이는 점점 우리를 멀리하며 외로워했다. 

막내는 아침 8시에 유치원에 갔다가, 저녁 6시에 집으로 돌아오면 
중국 아이들과 밝게 놀던 모습 대신, 말이 없어지며 시무룩해졌다. 

그래도 요즘 다소나마 마음이 놓이는 것은 
정선생의 아이들인 은혜와 봉구가 우리 집에서 같이 살고 부터 
막내의 말동무가 생긴 것이다. 

이들은 연변에서 몇 년 살아서, 중국어를 조금 할 줄 알았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막내는, 봉구와 함께 놀며 우리 말도 조금씩 익혀 갔다.

하지만 나의 기쁨은 잠시였다. 
우리 집에 올 때부터 봉구에 몸에 올라있던 옴이,
따뜻한 집에서 사니, 더 왕성하게 번지기 시작했다. 

온 몸에 빨간 뾰루지가 돋아나고 진물이 줄줄 흘렀다. 
특히 손등에는 거의 성한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작은 뾰루지들이 돋아 있었다.

봉구는 온몸이 너무 가려워 긁어 대느라,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옴은 다른 사람의 살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전염되는 병이다. 

그런데 철없는 막내는, 그런 것은 생각지도 않고, 매일 봉구와 손을 잡고 놀았다. 
아이들이 함께 노는 것을 말릴 수도 없고, 참고 바라보는 내 속은 타들어갔다. 

매일 저녁 이것 때문에 울며 기도하는 아내와 
진물이 줄줄 흐르는 봉구의 몸에 손을 얹고 기도하며 약을 발라 주시는 어머니를 
나는 말 없이 지켜봐야만 했다. 

옴이란 병이 얼마나 지독한지, 아무 약도 듣지 않았다. 
한국에서 한센병 환자들이 먹는 약까지 갖다 먹여도, 도무지 나을 기색이 없었다. 

이것 때문에 고민하자, 장아바이가 북한에서 사용한다는 민간요법을 알려 주었다. 
'선교사님. 우리 북조선에서는 옴이 돋으면 
그냥 돼지기름에다 유황을 섞어서 발라줘요. 

약이 없는 북조선에서도 그렇게만 하면 잘도 낫던데, 
왜 비싸다는 약들이 그래요?
에이, 약이라는 그거 다 돈 벌기 위한 수작들이라우, 약 쓰지 마소, 선교사님!' 

나는 다른 방법이 없어, 장아바이가 일러준 대로 해 보니 
신기하게도 며칠 가지 않아 옴이 싹 사라지고 피부가 깨끗해졌다. 

북한 사람에게는 역시 북한식의 치료법이 통하는 모양이다. 
안도의 숨을 내쉰 나는, 그때부터 은혜와 봉구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그들은 북한에서 인민학교 3학년과 1학년을 다니다 왔지만 
가갸거겨 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한창 한글 공부를 하고 있는데, 큰 딸이 방금 학교에서 돌아와 
조르르 나에게 달려 왔다. 
'아빠 아빠, 나 오늘 길에서 한국 사람들 만났어요. 
내 옆에서 한국 말을 하면서 지나갔어요. 
얼마나 반갑던지 나도 모르게 가서 말을 걸려고 했는데 
아빠 말이 생각나서 그냥 돌아섰어요.' 

'그래, 잘했다. 만나지 마라. 만날 필요 없다. 앞으로도 절대 만나지 마라' 

'나도 알아요. 만나면 안 된다는 거. 
근데 아빠, 우린 죄 지은 사람들도 아닌데, 왜 이렇게 숨어 살아야 돼요?
나 1시간만이라도 한국말 하는 사람하고 얘기해 보고 싶단 말이에요.' 
그리고 첫째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혹시 아이들을 통해, 우리 사역이 외부 사람들에게 노출될까봐 
한국 사람이나 조선족, 북한 사람을 보면 
절대 가까이 가지 말라고, 내가 여러 번 주의를 주었던 것이다. 

아내, 어머니, 나는, 믿음과 사명감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었지만 
아이들은 그런 것을 다 이해하기는 아직 너무 어렸다. 

아이들은 정말 힘들어 했고, 그것을 매일 지켜보면 감당해 내야하는 아내도 
어지간히 지쳐했다. 


▲그 즈음에 한국에서 장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다. 
전화를 끊자마자 공항에 항공권을 알아보았지만 
장례식 마지막 날 오후에나 겨우 한국에 도착할 수 있는 표 밖에 없었다. 

결국 아내는 친정어머니의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홀어머니의 8남매 중 막내로, 어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 자란 아내는 
형제들 중 누구보다 더 장모님을 좋아했었다. 

머나먼 중국땅에서 어머니를 보내면서, 아내는 한없이 울었다. 
울고 있는 아내를 무슨 말로도 위로해 줄 수가 없었다. 


며칠 후 김의환 목사님께서, 사모님과 몇 명 목사님과 함께 오셔서 
사역장을 둘러보시고 순교선생 사역장 형제들에게 세례를 주셨다. 

김의환 목사님의 사모님도 미국에 계실 때, 

친정 어머님이 소천하셔서 장례식에 가지 못 했다고 
하면서 우리 부부를 많이 위로해 주셨다. 

만 3년간 이 사역을 해오며  *1998 8월~2000년 8월
많은 아픔 속에서도 변함없이 나를 격려해주고 
말 없이 수고해 주는 가족들이 내게는 언제나 큰 힘이 되었다. 

아내는 한국을 떠나 낯선 곳에서 집안 살림하랴, 4명의 자녀들을 키우랴, 
거기에다 함께 사는 북한 자매들과 아이들의 성경 통독까지 이끌면서 
묵묵히 잘 따라와 주었다. 

권사님이신 연로하신 어머니는, 관절염으로 고생하시면서도 
각 사역장에 보낼 김치와 된장 담그는 일을 너무 기쁘게 하셨고 
그 외에도 온갖 허드렛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형제들을 볼 때마다 친아들처럼 기뻐하시며 
항상 그들을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해 주셨다. 

지금도 가끔씩 어머니는 '중국의 사역장에서 순교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하시며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말씀을 하신다.

2000년 중반 쯤에는, 막내 동생의 제수씨가 자녀들을 데리고 중국으로 들어와 
이 사역을 도우며 많은 수고를 하였다. 

나 하나 고생하는 것은 괜찮지만, 가족들까지 심히 고생시키니 
인간적으로 참 미안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주께서 허락하신, 주를 위한 고난이니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보상해 주실 줄 믿고 나갔다. 


▲하루는 북한 선생들이 우리 가족들에게 편지를 보내 왔다. 
힘든 중에.. 북한 선생들의 편지는, 아내와 어머니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어머니는 즐거워 하시며 말씀하셨다. 
'우리 걱정은 마라. 최목사는 그저 주님 일에나 애 많이 써라.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한다.' 

나는 그러는 어머니가 한없이 고마웠고, 아내가 사랑스러웠다. 

<북한 선생들이 우리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들> 

「권사님께 올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지금도 우리 북한 사역과 가정사역장을 이끌고 나아가시며 
또 낯설고 물설은 이 땅에 와서, 언어마저도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북한선교를 도와 나서고 계시는 권사님을 생각하며, 
또 권사님 같으신 분을, 우리 북한선교를 도와 나서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몇 자 적으려고 펜을 들었습니다.

두 곳의 가정 사역장을 돌보시느라 바쁘신 속에서도 
우리 모든 사역장들의 김치를 담가주시고, 따뜻한 친부모의 심정으로 
우리 사역장의 구석구석까지 살펴주시는 권사님의 마음을 생각할 때 
북한에 두고 온 부모님과, 따뜻한 할머님의 손길을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권사님 같으신 분이 있음으로, 우리 사역장은 더욱 왕성해지고 있습니다. 
권사님이 담가 주신 김치를 먹으면서, 고향의 향취를 느끼고 있습니다. 

권사님, 지금 가정사역장을 돌보시랴, 우리 사역장들을 위해 김치를 담그시랴
많은 수고를 하십니다. 권사님의 사랑을 느낄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인 줄로, 저희들은 느끼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권사님, 몸조심하시고 
불편하신 몸을 관리하시면서, 날씨가 추워지고 있으니 
감기에 걸리지 않게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저 마음 뿐, 권사님의 일을 돌보아 드리지 못하고 
권사님의 사랑만 받고 있으니, 얼마나 미안한지 모르겠습니다. 

권사님, 정말 제가 맡은 사역장이 
폐결핵으로 각혈 하던 박광인 형제의 병이 
차도가 생겨, 각혈도 멎고, 차츰 나아져 가고 있습니다. 

권사님께서 염려하시며, 속 태우지 것 같습니다.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그의 병을 완전히 근원까지도 낫게 만드실 줄 믿습니다. 
계속 기도를 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도의 제목에 넣어, 전문적으로 기도해 주신 모든 형제님들과 
또 권사님의 기도도, 하나님께서 받아 주신 줄로 믿습니다. 

권사님, 권사님도 아시다시피 제일 나이 어린 제가 
이 사역을 하자니.. 정말 힘들 때도 있고, 낙심될때 도 있습니다. 

저를 위해서도 많은 기도를 하여 주시고 
저의 사역장을 위해서도 많은 기도를 하여 주십시오. 

그럼 권사님의 건강과 가정사역장의 행복과 평안을 주의 이름으로 간구하며 
이만 펜을 놓겠습니다. 몸 건강하시고 건강에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0년 10월 1일 김누가 올림」 

「사모님께, 사모님 안녕하십니까? 
사모님은 명현이 와 귀현이의 어머님이시자 나의 어머님도 되십니다. 
또 최선생님은 귀현이의 아버지이자 저희 아버지도 되십니다. 

최선생님은 북에 있는 나를 낳아 준 아버지보다 나를 더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사모님이나 권사님도 저를 그렇게 사랑해주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사모님과 최선생님의 아버지도 되시며, 나의 아버지도 되십니다. 
저는 최선생님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잘 알 수 있었고 
성경을 배우면서 똑똑히 알았습니다. 

사모님, 저를 친자녀처럼 사랑해 주셔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사모님과 권사님의 귀한 몸 건강을 축원하며 
자제분들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정칼빈 올림」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시112:1~2 

존경하는 최선생님과 가족 일동에게 삼가 이 글을 드립니다. 
존경하는 최선생님과 사모님, 권사님과 어린친구들! 

이렇게 또 다시 서신으로 만날 수 있고, 은혜의 말을 나눌 수 있게 하여 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의 기도를 먼저 드리는 바입니다. 

최선생님과 모든 가족 일동에게, 우리 사역장에 학생들을 대표하여 
삼가 정중한 인사를 드립니다. 

정말 돌이켜보면 타국에 망명하여 떠돌아다니면서 숨어지내며
마음속에 괴로움과 슬픔을 가득 품고 외롭게 쓸쓸히 살아가던 우리를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의 자녀로 되게 하기 위하여 
한 사람 한 사람 이곳에 불러 모아 주시고 

주님의 사랑으로 진정으로 위해 주며 
말없이 우리를 위해 헌신에 주신 최선생님을 생각할 때마다
고향의 다정한 학교 스승 같았고 

사모님과 권사님을 만났을 때엔, 고향에 어머님과 누님을 생각하며 
우리들은 얼마나 가슴이 뜨거웠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어린 꼬마 친구를 만났을 땐 
북한에 두고 온 자식 생각과 동생들 생각에, 모두들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진심으로 우리를 위해 주시는 온 가정의 성의를 한 껏 느끼며
정말 우리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가정의 슬픈 사연이 있음에도 (*친정어머니 소천)
우리 사역을 위해 떠나시지 못하시고 
일정을 늦추시고 우리와 웃으며 만나주신 사모님을 생각할 땐 

우리 모든 학생들은, 그날 저녁 정말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우리의 마음도 굳게 다짐합니다. 

정말 온 가정의 모든분들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아끼시는
주님의 귀한 종, 충성된 가정임을 확신합니다. 

이제 그런 주님의 귀한 종들에게 
하늘의 기름진 것과 땅의 소산으로, 하나님의 큰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최선생님 가정의 그 믿음과 기대를 잊지 않고 
말씀통독과 말씀 암송, 신앙생활과 기도에 힘써서 
더 훌륭해 단련되고 정금같이 되어 
빠른 시일 내로 주님의 귀한 일꾼으로 자라나겠습니다. 

항상 말씀을 붙잡고 생활하며, 기도에 열심 내며 
이제 남은 기간을 귀중한 시간으로 보내겠습니다. 

우리를 믿어 주십시오. 꼭 해내겠습니다. 
그럼 가족의 모든 분들이 귀한 몸 건강하시기를 바라며 
우리 주님께서 가정에 큰 은혜를 내려주시기를 충심으로 기원합니다. 
2000년 10월 2일 최순교 선생 사역장 학생 일동」 


♣기다려라 동방의 예루살렘이여! 

일정기간 이상 성경통독을 한 학생들의 더 깊은 성경 이해를 돕기 위해서 
최휘섭 목사가 성막 강의를 하러 왔다. 

작년까지는 사역장 몇 개 안 되어서, 직접 각 사역장을 다니며 강의를 하였으나 
이제 8개나 되는 사역장을 일일이 찾아다니기는 
시간도 부족하고 힘에 부칠 것도 같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체 사역장을 20~30명씩 3개 그룹으로 나누어 
어머니와 동생 가족이 사는 '가정사역장'에 5일씩 합숙하며 
차례로 강의를 듣게 하였다. 

성막 강의는, 성경통독을 통해 이미 회개와 죄사함의 감격을 체험하고
신앙고백이 나온 선생들만을 대상으로 하였다. 

그래서 성경 100회 이상 통독한 선생들에게만 
이번 강의에 참석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강사 최목사는 강의를 통해, 구약의 다양한 사건과 
예수님을 예표적으로 설명하는 여러 성경 말씀을 성막과 연결시키며 
예수님이 구약에서는 오실 예수 그리스도 이시고 
신약에서 오시고,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 승천 하시고 
그리고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 이신 것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히1: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9:12

'구약성경 전체에는 속죄양의 피가 흐르고 
신약성경 전체에는 예수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의 피에 관한 책이며, 구약시대의 성막과 5가지 제사는 
모두 예수님의 초림의 그림자이며 예표입니다. 

구약은 1년짜리 구원이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이렇게 구약의 성막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연결시켜 설명하고 
출애굽기와 레위기를, 히브리서와 연결시켜 강의하였다. 

강의는 선생들에게, 성경의 전체적인 맥을 잡게 해 주었다. 
그동안 통독과 암송을 통해 깨닫고 있던 많은 말씀이 
구슬로 꿰어져 목걸이가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예수님을 전인격적으로 영접하고 
다시금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 깊이 묵상하며 감사하는 시간이 되었다. 

강사 최목사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 일하신다'고 하며 
예수님의 보혈의 어마어마한 능력에 대해 매우 강조하였다. 

그리고 앞으로 지도자가 되어 말씀을 선포하여 
예수님을 모르는 탈북자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할 그들에게 
항상 예수와, 예수의 피와, 그 능력을 중심으로 말씀을 선포하라고.. 
그렇게 했을 때에만 영혼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강의에 대한 선생들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강의를 해도 부족해서 
자신들은 잠을 안 자도 좋으니, 더 말씀을 전해 달라고 졸라 댔다. 

강의가 끝나고, 어떤 선생들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 
좁은 우리 집에서 춤을 덩실덩실 추며 돌아다니기도 했다. 

'우와 목사님, 이거 맨날 성경을 읽지만서도, 이렇게 대단한 책인줄 진짜 진짜 
몰랐습니다. 이야~ 이거 뭐라고 말로 다 하지 못하겠습니다. 왜 이렇게 좋습니까?' 

 

'목사님 목사님, 나 정말 이 공부하기 잘했습니다. 이젠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목사님, 이제부터 성경 공부 더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각 그룹별로 성막 강의가 끝나면, 기쁨에 멈춰 이렇게 외쳐대는 선생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마지막 그룹의 강의가 다 끝나고, 폐회예배를 드리기 전이었다. 

 

여러 선생들이, 김철수 선생이 시를 잘 쓴다고 해서 
한번 써서 낭독해 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더니, 그는 쾌히 승낙했다. 

 

그리고 30분 만에 "기다려라 동방의 예루살렘이여!" 라는 시를 완성하여 
평양중앙방송에서나 들어봄직한 목소리로 예배 시간에 낭독했다. 


「기다려라, 동방의 예루살렘 이여! 
태초에 하나님이 일도 세우셨으니 
만방에 높이 솟은 평양, 
십자가로 빛나는 동방의 예루살렘을 

토마스 선교사 순교하는 대동강은 요단강 이런가 
주기철 목사 고이 잠자는 대성산은 감람산 이런가 
구름 타고 대박 산에 내렸다는 환웅도 
평양에 터를 닦고 조선을 세웠다는 단군도 

동방의 예루살렘 평양 예비 위해 
하나님 보내신 천사일 수 있으리

유구한 역사의 평양, 하늘을 뚫고 솟으며 
천국을 떠받드는 거룩한 성전들을 세워 
평양이여, 너는 얼마나 성령으로 부흥 하였고 
하나님 내리시는 축복으로 행복하고 행복했더냐

그리도 신성하고, 그리도 영광 넘쳤것만 
이방의 신들이 더럽힐 때 
너는 얼마나 부끄러움과 치욕으로 몸부림쳤더냐

다시 무신론과 무식이 너의 성전 위에서 칼부림 할 때 
피바다에 잠긴 너는 
어떻게 순교로 항거하고 항거했더냐 

신앙의 자유는 빼앗기고 
성전들은 허물어졌어도 
왼뺨을 내밀면서도 굴하지도 꺾이지도 않으며 

바라는 것들의 실상,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는 
암흑의 동토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워 왔나니 

광란하는 추방의 빗자루에 쓸리워
그토록 사랑하는 너의 품을 떠날 때도 

핍박에 쫓겨 탈북에 두만강 건너 작별의 인사를 드릴 때도 
눈물 젖은 옷 자락 흔들어주며 
다시 오라, 승리하고 돌아오라! 
바래워 주던 평양이여! 동방의 예루살렘이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추하고 초라한 얼굴들, 가난하고 앙상한 몰골들 
하나님은 한 사람의 탈북자도 빠짐없이 다 품어 주어 
탈북은 하나님께로 달려가는 북한의 모습, 
십자가 대군을 이루는 힘찬 강행군 

동방의 예루살렘에서 거행될 십자가 군병들의 
승리의 열병식 장으로 돌아가는 장엄한 진군 

말씀으로 눈을 뜨고 진리로 영생을 얻고 
사랑으로 눈물과 마음의 상처 깨끗이 씻은 우리 
복음으로 전신 갑주를 입고 믿음으로 방패를 들었다. 
구원의 투구를 쓰고 성령의 검을 틀어쥐었다. 

기어이 찾아가야 할 평양을 향하여 
하나님 앞에 어엿한 십자가 대군으로 정렬 하였나니 
이제 앞으로 갓! 하나님 명령 하늘 땅을 증감하리

예수님 모시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던 사람들처럼 
호산나 찬송가 목청껏 부르며 
평양,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입성 하리라! 

그날에 하나님, 평양에 천만 대죄 사하여 주시리 
쌓이고 쌓인 오명과 수치 씻어주시며 
사랑과 구원과 진리의 복을 안겨주시며 
동방의 예루살렘 이라 불러 주시리 

그날에 우리 토마스 선교사, 제너럴 셔먼 호에 싣고 간 그 성경 
아름다운 대동강변에 떨기 떨기 내리는 흰눈처럼 뿌려 놓으리라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곳, 
순교자들의 숨결이 어서오라 폭풍 쳐 부르는 평양! 

잃을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주님이 재림하실 성스러운 동방의 예루살렘 평양이여! 
하나님이 보내시는 선물, 사랑의 복음 안고 달려가리라
죽어서도 달려가 천국처럼 포옹하는 네 품에 안기어 영생하리라!

아~ 예수님 재림 하실 때 십자가로 무지개빛 띠고 
성전 들로 꽃바다 이룬 평양에서 
기어이 기어이 만나 뵈오리! 

멀고 먼 타국의 광야에서 
오늘도 모세의 뒤를 따라 출애굽 훈련을 받고 있어도 
마음은 언제나 평양에 있나니 
평양이여, 기다려다오 기다려다오. 동방의 예루살렘 이여!」

낭독하는 중에 한두 사람이 훌쩍거리더니
중간 부분부터는 30여 명 모두 울음바다를 이루었다. (*마음이 순수해서 감성이 큼)

철수선생은 북한김일성종합대학 에서 핵물리학을 전공한 엘리트로 
처음 사역장에 들어올 때, 정말 예수 '예' 자도 몰랐던 사람이었다. 

사역장에서는 밤마다 소형 라디오를 틀어 놓고 
미국 방송을 깨알같은 글씨로 받아 적으며 
늘 미국 소식에만 관심을 기울이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7개월 정도 성경 공부를 하고, 또 성막공부를 마치자 
이렇게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 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된 것이다. 

이럴 때면 나는 그 동안의 많은 어려움으로 마음속에 응어리진 것들이
한순간에 다 녹아 내리는 것 같았다. 

또한 하나님께서 북한을 바라보며 안타까워 하시고 
북한의 영혼들을 사랑하심으로 이들을 이렇듯 귀하게 세워 가신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선생들이 우리 집에서 성막강의로 합숙할 동안, 이들의 식사는 
아내와 어머니와 제수씨 그리고 차 이모(조선족)가 맡았다. 

보름 동안 매끼 20~30인분의 음식을 준비하느라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수고를 하였다. 

선생들이 어찌나 밥을 많이 먹는지, 대형밥솥 두개로도 밥이 모자라기도 했다. 
무엇을 해도 잘 먹어 주는 선생들을 보면 흐뭇하기도 하고 보람도 느꼈지만 
한 그룹, 한 그룹 강의가 끝나면, 주방의 네 사람은 파김치가 되곤 했다. 

아내는 두 번째 그룹의 강의가 끝나자 완전히 탈진하여 
혼자서라도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였다. 

친정어머님이 돌아가신 슬픔도 미쳐 가다듬지 못한 채 
갑자기 많은 일을 맡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철수선생의 시 낭독을 통해 큰 위로를 얻게 되었다. 
그동안 아내는 가정에서 자매들 통독사역을 이끄느라
형제들 사역장에 많이 가보지 못해 
이 사역을 통한 형제들의 변화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이번 성막강의 기간 동안,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며 
이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얘야 봐라, 저 생명들이 
너의 어려움과 아픔 위에서 저렇게 아름답게 자라고 있단다.' 

강의가 다 끝나고도, 아내는 하염 없이 울었다. 
울고 있는 아내를 보며, 나도 함께 물었다. 

그러나 그 눈물은 힘든 생활에 지친 설움에 겨운 눈물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쁨과 감격으로 흘리는 눈물이었다. 

많은 북한 형제들이 성막 강의를 통해 
다시금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맛보게 된 것이 감사해서 울었고 
아내를 위로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울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주1)
장만식 아바이 사역장 전원이 공안에 체포되었다. *2000년경, 서안
이웃 주민의 신고로 공안이 달려왔을 때 
장아바이 사역장은 열심히 통독하는 시간이었다. 

공안들은, 이들이 신분증도 없고 중국말도 하지 못하자 수상이 여겨 
전원 공안국으로 연행해 갔다. 
그 당시는 중국으로 탈북한 사람들에 대해, 북한정부에서 엄중히 처벌하던 때였다. 

우선 중국에서 한국사람을 만난 북한 주민들은, 그 동기와 이유, 상황을 불문하고 
무조건 정치범으로 분류하여 정치범수용소로 보냈다. 

그 다음으로 교회에 가서 성경공부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자백할지라도, 최소한 5년 이상의 중형이 선고되었다. 

그런데 장아바이와 그 학생들은, 북한 정부의 관점에서 제일 엄중한 두 가지 죄를 
다 범한 사람들이었다. 한국인을 만났을 뿐 아니라, 성경공부까지 했으니 
이들에게 가해질 형의 무게가 어떨지 생각조차 끔찍했다. 

다음 날 권능선생으로부터 또 연락이 왔다. 
장아바이를 제외한 학생들 전원이, 무사히 공안국을 빠져나왔다는 것이다. 
나는 부랴부랴 그들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들었다. 

공안국으로 연행된 장아바이 일행은, 조선족 여자공안이 통역하는 가운데 
심문을 받았다. 심문을 통해 공안들은, 
이들이 북한에서 넘어와 성경공부를 하는 사람들 임을 알고, 
사역장을 후원하는 나에 대해 캐내려고,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심문했다. 

학생들이 모른다고 아무리 말해도 믿지 않고, 
공안들은 계속 몽둥이로 모질게 때렸다. 

하지만 학생들은 정말 나에 대해 전혀 몰랐고, 
서안 Xian에 다른 사역장이 있는지도 몰랐다. (보안상 안 가르쳐줌)

공안들은 학생들에게서 책임자가 장만식 아바이라는 사실만 알아내자 
장아바이만 심하게 때리면서 심문을 계속했다. 
60세가 다 된 노인이 얼마나 아팠으랴... 하지만 그는 모질게 얻어맞으면서도 
나와 우리 사역장에 대해 끝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저녁 시간이 되자 공안들은, 이들을 공안국 앞마당 담장에 한 줄로 세워놓고 
공안 두 명을 보초로 남겨놓고, 모두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갔다. 

그때 몹시 얻어 맞아 운신도 제대로 못하는 장아바이가 형제들에게 제안했다. 
'내가 저쪽 담장 쪽으로 도망치면서, 여기 있는 공안 애들을 유인할테니 
너희들은 그 사이에 저 반대쪽 낮은 담장쪽으로 가서, 넘어 도망들 가야 한다!' 

잠시 후 감시가 조금 소홀해진 틈을 타서, 장아바이는 높은 담장쪽으로 냅다 달려가 
담을 기어 오르기 시작했다. 

보초를 서던 공안들이 장아바위 쪽으로 달려갔다. 

그 사이에 다른 형제들은, 일시에 낮은 담장쪽으로 달려가, 담을 넘어 도망을 갔다. 
결국 다시 잡힌 사람은 장아바이 뿐이었고, 
다른 형제들은 모두 무사히 공안국 담장을 넘어 도망칠 수 있었다. 

제일 마지막으로 담장을 넘은 학생이 목격한 것은, 두 공안이 장아바이를 붙잡아 
총 개머리판으로 사정없이 내리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듣고 나와 모든 선생들은 울었다. 
 
권능선생 사역장에서 장아바이와 함께 공부한 동기(2기)들은 모두 그를 좋아했다.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형제들에게 밥도 해주고 
무슨 일이 있으면 조용조용 타이르며, 손잡고 기도해주었다. 

또한 겸손하기 이를데 없어, 아들 뻘되는 권능선생에게 
깍듯이 '선생'이라고 존칭을 썼고, 1기 다른 선생들에게도 
마치 스승을 대하는 학생의 태도로 공손하게 대했다.  *자기는 2기니까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 많은 할아버지였으며,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아무나 쉽게 다가가 투정 부릴 수 있는 아버지 같은 분이었다. 

 

주2)  순교자 이용섭 선생은, 1999~2002년까지 중국 '탈북민 성경통독반'에서
훈련을 받고, 탈북민들에게 사역장 책임자로 성경을 가르치는 사역을 했다.

이후 사역장을 떠나 탈북민들을 한국으로 보내는 사역을 하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중국 법정에서 4년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2년 생활한 후
정국 정부에 '난민 신청'을 제출한 것이 화근이 되어,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즉시 북송되어 정치법 수용소로 끌려가 순교의 길을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