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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개요

LNCK 2022. 12. 12. 04:10

◈ <요한일서> 개요

◑성경 에센스 <요한일서>
성경에센스 - #요한일서 편_[BibleEssence - 1 John] - YouTube

요한일서는 저자의 이름이 본문에 전혀 나오지 않으나 
전통적으로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직접 경험했다고 서신 앞부분에 기록했으니 
사도요한에 의해 쓰여졌다고 봅니다. 

서신의 권위로 보나, 초대교부들의 기록으로 보나 
저자가 사도요한이라는 데 큰 이견이 없습니다. 

요한일서는 '서신'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다른 신약 서신들과는 달리, 서신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 않다는 특징이 있죠.

또 서신을 보낸 구체적인 장소나 대상이 전혀 나와 있지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당시 서서히 영향력이 커지고 있던 
독특한 이단의 가르침을 직면하고 있던 기독교인들을 향해 쓰여졌다는 것이죠.

이들 이단은 '적그리스도들'이라 불렸으며 
'영은 거룩하고 육은 악하다'라는 단순화된 이원론으로 
성육신에 대한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는 초기 영지주의입니다. 

'초기 영지주의'라고 말하는 이유는 서신이 쓰여질 당시 
영지주의가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2세기 중반에 가서야 이들은 온전한 시스템을 갖추게 됩니다. 
이들의 영향력에, 저자가 내세운 영적 싸움의 전략적 특징은 
대단히 목회적이며 전투적입니다. 

그는 서신의 수신자들을 '나의 자녀들,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부르며 
'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고 분명하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이단들의 문제점을 세 가지에 초점으로 열거하면서 
세 가지 테스트를 통해, 이단인지 아닌지 여부를 결정하라고 말합니다. 

1) 첫째는 이단들의 신학적인 문제입니다.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신 것을 부정하는 자들은 이단입니다. 

그들은 거룩한 영이, 더러운 육으로 올 수 없다고 주장하며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2) 둘째는 도덕적 영역에서 의로운 행동이 사라진 불순종적인 삶의 모습을 
지적합니다. 자신들은 특별한 지식을 지녔다고 주장하며 
자신들가운데 있는 죄성 자체를 부정하는 자들은.. 이단입니다. 

3) 셋째는 사회적 영역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그들에게는 형제를 사랑하는 모습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요한일서는 유독 '형제 사랑'을 강조합니다. 

요한일서의 역사적 배경을 다루기란 쉽지 않습니다. 
다른 서신에 비해, 역사적 상황과 연결할 수 있을 만한 정보가 
극히 미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볼 때, 세린투스 와 그의 가르침인 '세린투스 주의'와 
연결해 볼 수 있습니다. 

세린투스는 사도요한이 마지막 시간을 보낸 곳인 에베소 사람이었고, 
그의 가르침이 요한일서 에서 묘사한 이단의 가르침과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세린투스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사실을 부인했습니다. 
그는 예수가 다른 인간과 똑같은 존재로 세상에 태어났으며 
차이점이 있다면, 다른 사람보다 더 의롭고 신중했고 지혜로 왔다고 주장했죠.

그는 예수님 세례시에 그리스도가 비둘기의 모습으로 임하였으며 
그 후 예수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서 선포했고 
기적을 행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기 직전에 
그리스도는 예수님을 떠나 버렸고 
그래서 결국 예수 혼자 십자가에서 죽었다.. 고 주장했습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와 예수를 분리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는 영이기 때문에 고통을 받을 수 없다'는 논리로 
예수의 모든 고난에 그리스도가 동참하지 않았다는 
이단적 주장을 펼쳤던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물과 피로 임하셨다'는 요일5:6절의 말씀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의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은 
예수님이신 동시에, 그리스도이신 한 분의 모습으로 
세례와 수난의 죽음을 받으셨다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초기 영지주의'라는 이원론적인 주장을 폈던 이단을 염두에 두고 
요한일서를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형제사랑을 강조하며,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 요일4:8
라는 유명한 말씀도 우리에게 울림과 도전을 줄 것입니다.



◑재미있는 성경 <요한일서>
요한일서 한눈에보기 - YouTube

 

요한일서 저자인 사도요한은 요한복음의 기록목적을 이렇게 밝힙니다.
요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그리고 요한일서에서는 기록목적을 이렇게 밝힙니다.
요일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래서 그들이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어요. 

요한일서는, 이미 이 복음을 받아들인 이들에게 
그들이 영생을 소유하고 있음을 확증해주는 편지입니다. 

요한일서는, 복음과 생명을 확증해주기 위하여 
크게 두 가지 하나님의 속성에 집중합니다. 

▲첫번째 하나님의 속성은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거에요. 
다시 말해,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다 .. 라는 것입니다. 

요한사도가 '진리의 하나님'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 요한일서의 수신 교회가 거짓사도들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이 공동체에는 이단이 들어왔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이 이단들이 교회를 나갔지만 
이 공동체에 이단의 위협은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요한사도는 이들을 '적그리스도'라고 부르며 경계합니다. 
이들을 '적그리스도' 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들이 그리스도를 부인했기 때문인데요. 

복음의 핵심은 '예수가 그리스도시다' 라는 선포이잖아요. 
그런데 이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 라는 사실을 부인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육체가운데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생각했죠. 
실제로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그냥 육체인 것처럼만 보였다.. 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면 
그 사람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요일4:2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요일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이들은 왜 이렇게 이상한 주장을 한 것일까요?
왜냐하면 이들은, '영은 선하지만 육체는 악하다'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영이신 선하신 하나님이, 악한 육체를 입고 이 땅이 오실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러한 이원론적 세계관 때문에, 
이들은 윤리관에도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특별한 지식을 통해 우리의 영이 구원받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육체는 어차피 악한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도 상관없다' 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이들은 죄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런 거짓교사들의 이단적인 가르침에 대항하여 
요한사도 는 '진리'를 강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사건이 
역사 속에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영과 육이 분리되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죄에 대하여 단호하게 경계합니다. ↙

요일2: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4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진리되신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면 
마땅히 진리의 말씀인 계명을 지키고 순종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2. 요한일서가 강조하는 하나님의 두 번째 속성은 바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요한사도는 '하나님께서 사랑이시라'는 사실을 강조한 다음에 
'이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났다'고 말씀합니다. 
바로 '십자가가 이 사랑의 증거'라고 말씀합니다. ↙

요일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그리고 이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인 십자가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고 말씀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났고 
우리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

요일4:7 '..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일5:13 '..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한일서 에서 강조하는 "사랑의 특징" 3가지가 나옵니다.

1) 첫 번째 특징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서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요한사도는, '우리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말씀하세요. 4:20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을 사랑한다'고 말씀합니다. 4:21

2) 두 번째 특징은 '사랑하는 것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원하는 것, 혹은 남편이 원하는 것을 전혀 해주지 않는 배우자가 
'당신을 사랑해' 라고 말하면, 그 말에 진정성을 믿을 수 없기 그렇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게 되어 있습니다. ↙
요일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3) 세 번째, 요한일서가 강조하는 사랑의 특징은 
말과 행위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궁핍한 형제를 도와주지 않으면서 
형제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 고 말씀합니다. 

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렇게 요한일서는 
-빛(진리)되신 하나님 
-그리고 사랑의 하나님을 통하여 
진리와 사랑을 우리에게 강조합니다. 

때로 우리는 진리를 택할 것인가/ 사랑을 택할 것인가 
이렇게 고민하는 경우를 보는데요. 

성경은 이 진리와 사랑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빛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닮아서 
진리와 사랑을 모두 실천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바이블 프로잭트 <요한 1, 2, 3서>
요한1~3서 개요 1-3 John - YouTube

 

요한1서의 저자는 사실 익명입니다. 
한편 요한2서와 3서는 '장로' 라고 불리는 자가 기록했죠. 

그런데 세 서신의 언어와 문체는 모두 동일할 뿐 아니라 
요한복음과도 일치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 서신 모두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제자'가 썼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그는 12사도 중 하나인 세베대의 아들 요한이거나 
예수님의 초기 제자 중 '장로 요한'으로 알려진 다른 요한 일수도 있습니다. 

누가 되었든 간에 그는 지금 노년이며 
고대 에베소 주변에 있는 걸로 짐작되는 가정 교회 공동체를 감독하고 있죠. 

복음서와 이 서신서들에서 발견들은 단서들을 볼때 
이 공동체들은 대부분 예수님을 따르는 유대인들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최근 어떤 위기를 겪었고, 그게 동기가 되어 
사도요한이 이 서신을 기록한 것 같습니다. 

그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 교회들과 관계를 끊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메시아나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고,
(요일2:18~23, 4:1~3)

신실하게 교회에 남아 있던 성도들 사이에 적대감을 불러일으켰는데 

(요일3:4~10)
실제로 요한2서 3서는, 분명하게 이 갈등을 다루었죠. 

요한2서는 특정한 가정교회를 위한 경고입니다. 
요한이 '미혹하는 자들'로 부르는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그들이 이 교회를 찾아 올 텐데 
그들에게 어떤 인정이나 후원도 제공해서는 안 됩니다. 

요한3서는 사실 이들 가정교회 중 한 곳의 성도인 
가이오 에게 쓰는 글로서 
요한은 그에게 '곧 도착할 진짜 선교사들을 환대해 주라'고 요청합니다. 

그가 이렇게 요청해야 하는 이유는 
이 교회의 지도자 디오드레베가 한심하게도 장로 요한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렇게 이 서신들은, 요한이 이 교회들에서 직면했던 
긴장과 갈등을 들여다보는 창을 제공해 줍니다. 

그리고 요한1서는, 이 모든 문제의 대처하고 수습하기 위해서 쓰였는데 
요한은 여전히 메시아이신 예수를 믿는 이들에게 
그들이 진리를 고수할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심어줍니다. 
이 모든 것은 요한1서의 독특성을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사실 이 글은 전혀 서신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교회에 보낸 시적인 설교와 같죠. 

요한은 자신이 새로운 계명을 전하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요한1서의 거의 모든 핵심개념과 단어들은 
바로 요한복음에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온 것인데요. 

요한의 목표는 이 교인들에게 이를 상기시키고 
그들이 이미 믿는다고 고백한 내용에 충실하라고 설득하는 것입니다. 

요한의 설교는 시적인 측면에서 아주 멋집니다. 
그는 자기의 생각을 순차적 또는 논리적으로 전개 하지 않고 
그 대신 잘 알려진 고대의 수사학 기법인 '부연법' 을 사용합니다. 

요한이 삶과 진리와 사랑에 대해 전하고자하는 핵심개념은 몇 개 되지 않는데요. 
그는 이 개념들을 순환적으로 반복하되 
매번 보낸 각도나 강조점에 조금씩 차이를 둡니다. 

그는 과정법을 많이 사용하며 
-빛과 어둠
-사랑과 증오 
-선과 악

이라는 단순하면서 매우 강력한 대비를 사용 합니다. 

그러나 요한1서의 단순함에 속지 마십시오 이 글은 매우 심오합니다. 

▲요한1서는 명확한 서론과 결론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순환적인 설교의 흐름은
어떤 엄격한 문학적 구조도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 개의 큰 단락을 볼 수 있는데 
각각은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라는 도입절로 구분됩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이미지가 반복되는데, 
먼저는 빛, 다음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 두 단락의 모든 내용은 
이 두 개의 핵심개념으로 부터 나와서 거기로 되돌아갑니다. 

▲1:1~4 서론
서론은 요한복음의 도입부와 매우 유사합니다.
창1장과 잠8장을 연상시킵니다. 

요한은 태초에 하나님이 함께 계셨던 생명의 말씀 에 대해 말합니다. 
요한에게 하나님이란, 아버지와 + 세상에 생명을 주러오신 아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보고 듣고 만진 사람들을 '우리' 라고 부르는데 
이는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요한 자신과, 사도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여러분'에게, 
즉 예수님을 따르는 다음 세대에게 소식을 전합니다. 

사도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할 때 
그들 역시 사도들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과 교제하게 됩니다. 

여기서 교제란, 코이노니아인데, 참여 또는 나눔을 뜻합니다. 
사람들이 사도들을 통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은 그들이 예수님과 참된 관계를 갖고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에 진정으로 참여하도록 해주죠. 

이는 곧바로 첫 번째 단락으로 이어집니다. 

▲1단락,  하나님은 빛이시다    1:5~3:10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하나님은 빛이시라' 1:5

사도들은 예수님 안에서 계시되신 하나님을 '빛'이라고 전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길 원하는 사람은 
계속 빛 가운데 걸어야 합니다. 

참 멋진 이미지인데요. 그게 무슨 의미일까요?

요한에게 그것은,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죠. 
그러기에 당신이 실패할 때, 예수님의 속죄의 죽음이 
당신의 죄를 덮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우리는, 일어나 예수님 가르침을 순종하라고 부름받습니다. 
그런데 어떤 가르침을 말하는 가요?

요한은 교회들에게,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주신, 
오래되었으나 새로운 계명을 상기시킵니다.
그분이 그들을 사랑하신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이죠. (요13:34)
이 일을 행하는 것이 빛 가운데 걷는 것입니다. 

△2:12~17
이제 하나님의 빛이 예수님을 통해 비취고 있다는 것은 
세상에 어둠이 사라지고 있다는 의미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을 지배하는 죄와 악과 죽음에 대해 
지금 이미 승리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요한은 교회들에게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2:14
그 또한 사라질 테니까요. 

내가 여기서 가르치는 것은 구체적으로 교만과 성적타락 인데요. 
아마도 이게 그 교회들에서 일어났던 갈등과 연관된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교회들에게 
예수님이 부인하고 공동체를 떠난 사람들에 대해 경고합니다. 

그는 그들을 메시아의 적대자(적그리스도)요, 미혹하는 자라고 부르지요. 

△2:18~3:10
반면 그는 여전히 예수님에 대한 진리를 아는 자들이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이며, 아버지께 사랑받는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들은 의를 행하고 서로 사랑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것을 나타낼 것입니다. 
분노와 다툼, 분열을 일으키는 미혹하는 자들과 달리요.

▲2. 이제 설교의 두 번째 단락인 "사랑"으로 넘어갑니다.  3:11~5:17

'우리는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3:11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서로 사랑하고 증오를 멀리하며 
창4장의 가인과 같이 되지 말라고 요한은 말합니다. 
그는 증오에 이끌려 동생을 죽였습니다.   3:12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의 정의는 
다른 이들의 행복을 위해 자기 목숨을 희생하는 것이며   *요15:13 
그게 바로 예수님이 하신 일입니다. 

또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들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할 때
그 사랑이 그들을 변화시킵니다. 

요한은 다시 한번 미혹하는 자들에 대해 경고하면서 
이번에는 그들을 '거짓예언자' 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부인하면서 
자신들이 하나님을 대변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요한은 '영들을 분별하라' 고 말합니다. 
만일 누가 하나님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면서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주목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고 말이죠.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들은, 모든 삶의 중심을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 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곳에서 하나님의 진정한 마음이 드러나기 때문이죠. 

십자가 위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가 
완전한 자기희생의 사랑이심을 봅니다. 

또한 그 사랑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그와 같은 방식으로 이웃을 사랑하게 만듭니다. 

사람들이 이 사랑의 하나님을 만날 때 
두려움과 불안은 영원히 사라집니다.

이는 요한이 '세상에 대한 승리'라고 말하는 것 중에 하나죠. 

당신의 가장 심각한 결점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당신을 뜨겁게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 사랑은 당신의 삶 전체의 토대가 됩니다. 

이 사랑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옵니다. 
또한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예수님의 대해 하시는 증언,
곧 사도들이 예수님에 대해 전하는 소식을 믿음으로써 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을 붙들 때 영원한 생명이 시작됩니다. 
이 생명은 하나님의 임재와 생명, 그리고 사랑으로 충만하며 
지금부터 시작되어 영원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3. 결론 5:18~21
이제 요한은 그의 교회 설교의 절정인 결론에 이르러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그 참되신 분을 알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이해력을 주신 것을 압니다. 
우리는 그 참 되신 분,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 분이 참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5:20

잠깐, 좀 헷갈리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참되신 분'이 누구죠?
참된 생명을 주시는 분이 예수님 인가요, 하나님인가요?

요한의 대답은 물론 둘 다 '예'입니다. 
요한에게 예수님과 상관없는 하나님이란 없으니까요.

그와 사도들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우리 실패도 불구하고, 우리 없이는 존재하지 않기로 하셨음을 발견했습니다. 
이 하나님은 참 놀랍고 예측할 수 없으십니다. 
이에 요한은 끝으로 우리에게 우상을 멀리하라고 요구합니다. 

다시 말해 놀라우신 하나님을,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고 싶은 
어떠한 유혹도 물리치라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아는 것은, 창조적이고 생명을 주는 
이타적인 사랑의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요한은 이 분이 '한 분이신 참 되신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이게 바로 요한의 세 서신이 전하는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