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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2:15~17 무엇을 사랑하십니까?

LNCK 2022. 12. 17. 10:23

102강 무엇을 사랑하십니까? (요일 2:15-17)  - YouTube

◈무엇을 사랑하십니까?           요일2:15~17        2015.12.27.

사람은 무엇을 사랑하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이 결정됩니다. 
우리는 사랑에 의해서 창조되었고, 또 사람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우리 인간에 있는 모든 종류의 갈망은 
근본적으로 '사랑'에 대한 갈망입니다. 

여기서 '사랑' 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사랑'이란 의미를 넘어선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라고 하실 때   
사용된 사랑은 '아가파오'인데,     *요일2:15

우리의 모든 정성을 다해서 최우선적으로 몰입하는 어떤 애착심,
최 우선 순위를 두고 몰입하는 어떤 애착심..이 '아가파오' 입니다.  *사랑

▲사랑과 관련해서

우리 사람이 가진 '정서'는 우리의 됨됨이를 증명하고 
또 우리의 존재를 설명해 줍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사람의 정서가 중요하다'라며
정서 affection (다른 말로 감성) 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유명한 청교도 조나단 에드워즈도 '참된 신앙의 정서란 무엇인가?'
<Religious Affection> 이란 유명한 저서를 남겠죠. 

17세기 청교도 설교자 존 오웬은 말하기를 
'사람이 가진 정서는, 영혼이라는 배의 조타기와 같다.
그래서 그 조타기의 방향 대로, 우리 영혼의 방향이 조종되어 움직여 간다'
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단지 우리의 어떤 지식적인 동의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온 마음으로, 우리 모든 정서(감성)를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신10: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그분을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 우리의 지식으로만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든 정서를 다 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드려지고 있는가요?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그 모든 정서(감성)의 움직임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가요? 
우리 매일 매일의 삶 속에 우리의 정서(감성)가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가요? 

▲그런데 사탄도, 세상을 통해서, 우리의 정서를 사로잡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미혹합니다)

 

힘을 다하여 우리들 마음의 정서를, 자신을 향하여 
그래서 성도가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도록, 우리를 이끌고(유혹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정서가, 어느 쪽을 향하여 기울고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을 사랑하고 있는가요? 

문제는 중립지대가 없다는 거지요. 제3의 지대가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도 세상도 아닌, 제 3의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면 
나는 세상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일 2:15절 '여러분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사람 안에 있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마음에 어떤 사랑이 존재하는가를 질문하고 있습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에 대한 사랑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라는 말씀에서 
'이 세상'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이 말씀을 다르게 해석하는 큰 흐름들이 있었습니다. 

1) '이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모든 세상, 세계,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물질 세계로 해석할 때는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은
이 세상을 멀리하고 도피하는.. 그런 해석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도피적 금욕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사회와 담을 쌓고 살아가는 것, 그걸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죠.

우리 기독교 역사에도 수도원 운동이 있었죠.
세상 속에 있는 교회가 부패하자, 
이 세상과 동떨어져 수도원에서 살아가는 것을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물론 일부 유익은 있었죠. 
그러나 세상과 등지고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것, 
사회와 벽을 쌓고 살아가는 것이, 과연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요?

역사적으로도 보면, 수도원 운동이 일어났지만 
결국 수도원 내부에서도 부패가 일어났고, 
수도원 자체도 개혁운동이 일어나야 될 만큼, 
부정과 비리가 수도원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은 
이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는 금욕주의에 빠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2) 두 번째로,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것'을    *요일2:15
어떤 세상 울타리 밖으로 떠나는 것, 
종교로 들어가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많은 종교들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죠. 
이것은 '종교적 금욕주의' 라고 말할 수 있어요.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세계 자체를 도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피하고 담을 쌓아봐야, 우리 마음속에 있는 '이 세상'을 무시하는 거죠. 

'이 세상'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떠난, 하나님을 등진, 하나님을 싫어하는 어떤 흐름.. 이 모든 것.. 

그렇다면 어쩌면 이 피조세계보다는 
만물보다 부패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세상'이
더 강한 것 아니겠습니까? 

어떤 종교적 강력한 종교 규례로도, 제거되지 않는..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그런 하나님을 배역(배신+반역) 하는 어떤 성향 .. 이것이 '세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올바른 '이 세상'에 대한 이해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피조세계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 (세상) 자리에 있으면서 
하나님이 오히려 이 세상을 사랑하신다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다'고 할 때, '세상'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는 이 세상, 
하나님이 만드신 이 만물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 안에는 인간도 들어있죠.
이간을 포함해서 모든 세계를, 하나님 구속하시는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이 세상을,
우리도 사랑하면서...

그러나 우리 안에 하나님을 떠난 모든 성향과, 반역의 흐름들을 거절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거스틴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고,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더 사랑해야 될 것을 덜 사랑하지 않고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해야 될 것을 더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덜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욕구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인가를 사랑하려는 욕구 자체는 결코 악한 것이 아닙니다. 
욕구 자체는 중립적인 것이며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욕구는 원래는 선한 것입니다. *나중에 타락했죠.

불교에서는 인간의 욕구 자체를 악한 것으로 보죠.
어떤 욕구든지 욕구 자체를 버리려고 그렇게 노력하죠. 

욕구 자체는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욕구의 방향과 목적과 내용이 중요하죠. 

창1~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실때 주신 8가지 욕구가 나옵니다. 
   
1) 식욕
창1: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먹는 소욕을 주시고, 음식에 대한 욕구를 주셔서 
우리가 생존케 하시고, 때로는 그 음식을 동안 즐거움도 우리에게 주십니다.

식욕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때 넣어주신 선한 욕구입니다.

만일 식욕이 전혀 없다면, 무엇인가 창조질서에서 벗어난 거죠.
문제는 이 욕구가 과해 지는 게 문제죠. 그 자체는 선한 것입니다.

2) 두 번째는 성에 대한 욕구죠.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 성적인 연합을 통한 생육과 번성,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요, 인간에게 주신 복이자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욕구인 것입니다.
이거 자체가 악한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성에 대한 욕구 자체를 악한 것으로 보고 
금욕과 자신을 학대하는 많은 흐름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의 실천이 아니라 
잘못된 해석이요 적용인 것이죠. 

3) 세 번째는 권력에 대한 욕구입니다. 
창1:28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움직이는 생물을 다스리라' 

 

'다스리는' 복과 은혜와 그 권리를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다스리려고 하는 욕구 자체는 선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욕구(속성)를 인간에게 주심으로써 
인간이 피조세계를 통치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세상을 통치하는 거죠. 

그 자체가 하나님께서 주신 욕구입니다. 

4) 네 번째는, 쾌락에 대한 (선한, 원래적) 욕구입니다.

창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이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 
하나님이 피조 세계를 창조하실 때, 너무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아름다움을 보면서, 느끼며, 즐거움을 경험하도록,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거에요.

그러면서 이 세상 자연을 보면서, 전혀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뭔가 심각하게 문제가 있는 거죠. 

건전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욕구,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욕구입니다. 

5) 다섯 번째는 일에 대한 욕구입니다. 

창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에덴에 사람을 두실 뿐만 아니라, 경작하고 그 땅을 지키는...
그 땅을 일구는 욕구를 주셨어요.
 
무엇인가 일하고자 하는 욕구,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선천적인 욕구입니다.

6) 여섯 번째, 다른사람과의 교제에 대한 욕구입니다. 

창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이렇게 돕는 배필, 다른 사람과 교제하는 사회적 인간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어요.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함께 교제하며 
소속감을 느끼고 싶은 마음, 이 소속감에 대한 욕구, 교제에 대한 욕구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욕구입니다. 

7) 일곱 번째는 하나님과의 교제에 대한 욕구입니다. 

창3: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다'는 것은
아담과 하와가 매우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동산을 거니실 때, 그들과 함께 동산을 거니시는 하나님의 소리,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는 거예요. 

우리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그러한 하나님과 교제에 대한 욕구,
그것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욕구입니다.

8) 지혜에 대한 욕구
창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먹음직' .. 식욕에 대한 욕구
'보암직' ..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
'지혜롭게 할 만큼' .. 지혜를 추구하는, 지혜로워지고자 하는 욕구를 주신 거죠.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그 수준으로 머무는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통해서 지혜로워지는
그런 욕구를 인간에게 주셨어요.

그런데 그 나무가 그렇게 지혜롭게 해줄 것 같은 그러한 욕구를 불러일으켰죠. 
이런 8가지 욕구들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욕구입니다. 

아무런 욕구가 없다면,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죠. 
한 생명이 태어나면 음식에 대한 욕구가 있습니다. 
점점점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를 추구합니다. 
일에 대한 욕구를 추구합니다. 

지혜에 대한 욕구를 추구합니다. 
정의에 대한 욕구를 추구합니다. 
권력에 대한 욕구를 추구합니다. 
지배에 대한 욕구를 추구합니다.

점점점 인간은, 그 욕구 가운데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자체를 부인하고, 그 욕구 자체를 악하게 보는 것은 
잘못된 신앙이 되죠.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라고 할 때는  요일2:15
인간의 욕구 자체를 부인하는데도 금욕주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 욕구가 하나님 앞에 범죄할 때, 왜곡되고 삐뚤어지고 파괴되고... 
그 기능이 잘못되고, 어느 것은 지나치게 되고, 어느 것은 약화되고 
불균형의 상태에 빠져들었다는 게 문제입니다. 

모든 인간은 8가지 욕구가 다 그대로 존재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타락한 이후에는, 이 욕구가 통제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어느 한 가지 욕구가 지나치게 더 강화되고,
어느 한 가지 욕구가 지나치게 약화되는 것이 문제죠. 

그래서 많은 현대인의 질병 중에, 과식증도 있고 반대로 거식증도 있죠.
식욕에 대한 욕구가 밸런스가 맞지 않는 거예요. 
지나치게 많이 먹는 다든지, 반대로 지나치게 먹지 않는다는 거죠.

성에 대한 욕구도, 지나쳐서 중독에 빠진다든지
반대로 지나치게 없는 것도 문제입니다.

누군가를 지배하려는 권력욕에 집착하는 것도 문제고 
그러나 어떤 위치가 주어졌는데도, 다스리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일례로, 가장이 가정을 다스리려는 욕구가 없어요. 아무 관심이 없어요. 
가족이 어떻게 사는지.. 아무런 다스림의 욕구가 없는 것은 문제지요. 

자녀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거기에 대한 방향도 제시해 주지 않고 
'나는 권력욕이 없어!' ... 그때는 욕구 없는 게 더 문제죠. 

가장은 적극적으로 그 다스림의 권위를 사용해서, 가정을 이끌어 가야 되고 
자기에게 주어진 그 공동체 영역에 있어서 
자기 직위에 따라서, 다스림의 권위를 사용해서 적극적인 책임 행하를 해야죠.

반대로 지나친 과욕으로, 자기 맘대로 하려는 권력욕도 문제인 거죠.

이렇게 욕구의 불균형, 욕구에 지나치거나 혹은 약화된 모습이 
바로 우리의 삶을 망가뜨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의 과제는, 욕구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금욕주의가 아니라 
그 욕구가 균형있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계획한 그 욕구의 원래 목적대로 
제 자리를 찾아가게 하는 게 관건입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만일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마음에 거하지 아니한다' 이게 문제입니다.  요일2:15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지 않을 때
바로 이 모든 욕구들이, 파괴되고,  무질서하게 되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에서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사랑이 우리 안에 거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이런 각도에서 이 말씀을 이해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너희가 마음을 다하여, 성품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왜 하나님만을 사랑하라'고 합니까?' 

하나님이 욕심쟁이라서? 아니죠.
하나님이 독선적이라서, 이기주의자여서 하나님만을 사랑하라 하신 겁니까? 

많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 하나님을 오해하죠. 
심지어는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도 오해합니다. 

그래서 오래 전에 미국의 흑인 토크쇼 진행자인 오프라 윈프리가 
인터뷰할 때 그런 얘기를 했어요.  주1)

왜 하나님께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만 사랑하라 그랬습니까? 
그게 우리가 살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우리가 행복해지는 길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제일 사랑해야
우리의 나머지 모든 욕구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겁니다.  

하나님과 교제의 욕구가 가장 우리의 중요한 욕구가 될 때
우리 인간에게 있는 모든 나머지 욕구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겁니다.

여러분,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면 
다른 사람들은 다 무시하게 됩니까? 아닙니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을 사랑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한 사람입니다.
그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된 거예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의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혀서 
주변에 이웃도 돌보지 않고, 다른 사람도 사랑하지 않는 인간이 되어 버리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정욕에 포로가 되고 
자신의 지배욕에 포로가 되고 
자신의 어떤 욕구에 포로가 되어서, 인생이 망가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중심이 잡히고 
그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서 모든 인간의 욕구들이
제 기능을 발휘하는 회복이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왜 하나님만을 사랑하라고 합니까? 
그게 우리의 가장 행복한 길이기 때문이에요. 

하나님 욕심장이가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욕구들이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 회복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이런 말을 했죠.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십시오!'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중심이 잡혔기 때문에 
그의 모든 욕구들이 다 제 기능을 하고, 삶이 질서 있게 유지되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사고가 나고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야되냐/말아야 되냐.. 그것을 먼저 판단하기 전에 
내가 지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 가를 먼저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아무 문제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든 욕구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많은 사람을 통치하는 위치에 있어도, 권력욕에 치우치지 않습니다. 
그 권력에 대한 욕구가, 도리어 섬김의 욕구로 변화되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음식에 대한 욕구, 성에 대한 욕구, 일에 대한 욕구도 
다 컨트롤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일에 과욕을 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일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가져서 
일중독에 빠지고, 물질에 포로가 되고, 노예가 되는 거에요.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거죠.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하고 싶은 대로 하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만 하게 되어 있죠)


▲2:16절은 인간의 타락하고 망가진 욕구들을 3가지로 요약합니다.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육신의 정욕.. 우리 몸 안에서 일어나는, 육체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그런 욕구들이죠. 음식에 대한 욕구, 성에 대한 욕구, 쉼에 대한 욕구 등 
몸 안에서부터 요구되는 모든 욕구가 포함됩니다. 

-안목의 정욕.. 이것은 아름다움을 보면 만족하려는 쾌락적 욕구죠.
눈으로부터 비롯되는 모든 욕구가 다 포함됩니다.

-이생의 자랑.. 여기에는 권력에 대한 욕구, 일에 대한 욕구, 지혜에 대한 욕구,
다른 사람과 교제에 대한 욕구가 다 해당되는 겁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그런데 이 세가지 영역 중에서 가장 좋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요? 

모두가 다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만, 
로이드존스 목사님은 세 번째 '이생의 자랑'을 가장 안 좋은 죄로 규정했죠.

그 8가지 영역을 구분해 보면 가장 많은 것이, 
권력욕, 일에 대한 욕구, 지혜의 욕구, 
다른 사람에 대한 교제의 욕구.. 이게 다 '이생의 자랑'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실 우리는 영적인 죄보다 육적인 죄를 더 나쁜 것으로 이해합니다.
죄는 다 죄지만, 영적인 죄보다. 육적인 죄가 나타나고 표현되고

그렇기 때문에 더 나쁜 것으로 여기지만 

사실은 마틴 로이드존스 목사님은 
'영적인 세계로 갈 수록 죄는 더 교묘해지고 더 영향이 크다.
그래서 더 나쁜 것이다!'    *이생의 자랑은 '영적인 죄'라는 거죠.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욕구, 교만한 욕구,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욕구 
그것(이생의 자랑)이 훨씬 더 나쁜 것이다.. 그렇게 지적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만을 사랑할 때 
이 왜곡된 세 가지 영역의 욕구가 
질서를 잡고 제자리를 잡아야 되는 거예요. 

*육신의 정욕.. 이것은 어떤 욕구로 제자리 잡아야 됩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러한 섬김의 욕구로 변화되어야 하죠.

*안목의 정욕.. 은 절제의 미덕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생의 자랑.. 은 다른 영혼을 섬기는 사랑으로 
그 욕구가 변화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욕구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욕구를 거룩하게 변화시켜서 
하나님을 향한 갈망으로, 그리고 다른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그 욕구가 변화되어야 된다는 거죠.

그렇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 속에 무엇이 거해야 되는가요?
아버지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 속을 주장해야 된다는 거예요. 

요일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 세상도 사라져버리고, 우리의 죽음과 함께 사라져버릴 욕구들에 집착하지
않으려면,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 아버지의 임재하심이 
우리를 주장해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 속에 가장 중요한, 가장 갈망하는 욕구가 무엇이 됩니까?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욕구,
그 욕구가 우리를 주장해야 될 줄 믿습니다. 

시편 곳곳에 보면,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갈망하고 갈급해하는
영혼들의 고백을 들을 수 있지 않습니까. 

시63: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시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이렇게 시편 기자처럼, 아버지의 임재, 하나님께 대한 목마름
그 욕구, 그 갈망이 간절하면, 
사람이 망가질까요? 아닙니다.

이 욕구가 충만할 때,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배부를 것이요' 마5:6

이 하나님의 임재로 배부른 자는, 다른 욕구가 제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여러분 희한한 것은, 성령충만하면 음식에 대한 욕구도 통제가 잘 됩니다.

모든 인간의 욕구가, 아버지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주장한다면 
모든 욕구가 지나치지 않게 됩니다. 적절하게 제 기능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내 안에 흘러넘쳐야 돼요. 
육신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그 사랑에 대한 욕구를 다른 것으로 자꾸 채우려고 하죠.

다른 사람과의 교재가 채워지지 않으면, 또 다른 욕구로 채우려 하는 거에요. 
다 한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다른 욕구를 과도하게 해서
채우려고 하는 거예요.

근데 이 모든 욕구를 채워주고, 정상적으로 회복시켜 주시는 것은 
바로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욕구입니다. 

변함없으신 그 아버지의 사랑, 영원하신 아버지의 사랑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내어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 속에 가득 채워질 때, 그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하지 때 

놀랍게도 우리 인생을 망가뜨렸던 욕구는 
회복되고 제자리를 찾아가는 놀라운 역사를 우리는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요동치는 욕구들이, 다 잠잠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갈망하고 더욱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바르게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이 찬송을 함께 부르며 마무리 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사랑 내가 노래해
아버지 은혜 내가 노래해
그 사랑 변함 없으신 거짓 없으신
성실하신 그 사랑

상한 갈대 꺾지 않으시는
꺼져가는 등불 끄지 않는
그 사랑 변함 없으신 거짓 없으신
성실하신 그 사랑 사랑

그 사랑 날 위해 죽으신
날 위해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
다시 오실 그 사랑

죽음도 생명도 천사도
하늘의 어떤 권세도 끊을 수 없는
영원한 그 사랑 예수♬

기도/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기에 
하나님 아버지로 갈금해 하지 않았기에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기에 
우리의 모든 욕구들이 망가져 버렸습니다. 

지나치고, 연약해지고, 흐트러지고, 
우리의 삶을 망가뜨리고, 사회를 무너뜨리는 욕구가 되어 버렸습니다. 

주님,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전심으로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모든 정성을 다하여, 모든 성품과 힘을 다하여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욕구들이
제 기능을 발휘하고, 제 자리를 찾아가고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욕구로 쓰임받게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우리를 붙잡아 주옵소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해 갈급한 영혼이 있습니까? 
십자가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체험케 하시고 
그 사랑하는 누리게 하시고, 그 사랑을 날마다 노래하게 하시고
그 사랑안에 거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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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오프라 윈프리의 발언

'구약의 하나님께서 나 God 만을 사랑하라고 하는 
그런 독선적인 하나님은, 나는 믿고 싶지 않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이 다른 신을 사랑해도 인정해 주고 
그렇게 축복해 주는 그런 하나님을 나는 믿는다.' 

그녀가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굉장히 어리석은 얘기를 한 거에요. 
자기 속 마음이 나온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오프라 윈프리를 '잘한다. 잘한다. 좋다. 좋다' 그러니까 
사실은 자기 본색이 나온 거에요. 엄청난 착각에 빠진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