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입 / 네 자신이 누구인지를 기억하라! 하목사님이 부르심을 받은 그 주간이 되면, 여러 추억들이 떠오르지요. 하목사님과 그런 추억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더더욱 그런 기억이 날 줄 압니다. 제가 미국에서 목회할 때, 목사님께서 축복해 주시고 또 격려해 주시기 위해서 뉴저지에 방문했을 때, 제가 모시고 가서 같이 관람한 뮤지컬이 있습니다.
<라이온 킹> 이라는 뮤지컬인데 참 재미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영화나 그런 것들을 자주 보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목사님과 짧은 빈 시간에,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서 아주 유명하고 작품성이 뛰어나다 해서, 목사님들과 함께 그 뮤지컬을 봤습니다.
<라이온킹>이라는 애니메이션 유명한 영화도 있죠. 영화의 스토리는, 동물의 왕국 '프라이드 랜드' 라는 동물들의 왕국에서 일어난 이야기죠. 무파사 라는 사자왕이 있었습니다.
사자왕은 동물의 왕국을 잘 통치하고 훌륭한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그 아들 심바 라는 어린 사자에게, '장차 네가 나를 위해서 왕이 되어서 동물들은 어떻게 통치해야 될 지'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들 심바는 아직 철이 없고, 놀기에 바쁘고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무파사 왕의 스카 라는 아주 나쁜 그 동생 사자가 심바의 삼촌이죠. 그 삼촌이 반역을 합니다. 그래서 무파사를 죽게 하지요.
그리고 심바가 아버지가 죽게 된 책임을 물어서, 그 왕국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 사이에 '프라이드 랜드' 동물들의 왕국은 완전히 폐허로 변합니다.
잘못된 지도자, 잘못된 통치자에 의해서, 권력과 탐욕에 가득한 지도자에 의해서, 그 왕국은 폐허로 변해갑니다.
심바는 그 소식을 듣지만, 두렵고 또 자신의 과거를 직면한다는 것이 너무나 두렵고 힘들어서 점점 피하고자 합니다.
그러던 중에 그 죽은 아버지 무파사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리고 나서 심바가, 다시 용기를 회복하고, 그가 해야 될 일들을 함으로써 그 동물들의 왕국을 다시 회복시킨다는 그런 스토리죠.
여러 크리스천들이 이 영화의 제작에 참여 했다고 합니다.
심바가 왕국을 떠나서 방황하고 있을 때, 하루는 연못을 보면서 이제 돌이키게 됩니다.
그 연못에 보이는 얼굴은 그 자신의 모습이었지만 '아버지가 내 안에 살아 있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죠.
그 연못을 보는 순간에, 죽은 아버지 사자가 나타나서 말하죠. '네가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그것은 곧 나를 잊어 버린 것이다.
무파사가 '너는 나를 잊었다' 심바가 '제가 어떻게 아버지를 잊습니까?'
'너는 네가 누구인지를 잊었기 때문에, 그것은 곧 나를 잊어버린 것이다. 네가 누구인지를 기억해라!' Remember who you are!
저는 믿음의 생활을 하면서, 이 대사가 계속해서 제 마음 속에 울리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요한일서의 주제를 현대어로 다시 표현한다면 바로 이겁니다. '네가 누구인지를 기억해라!' 리멤버 후 유 아!
만일 우리가 누구인지를 잊어버린다면, 그것은 곧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이다. 우리의 삶이 무능력하고 우리 믿음이 후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가 누구인지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곧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잊어버렸기 때문이죠.
요한일서는 그래서,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 주기 위해서 계속해서 이런 스타일의 워딩이 반복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내가 너희에게 이 글을 쓰는 것은'
다른 어떤 책보다도, 그 기록된 목적을 반복해서 뚜렷하게 기록하고 있는 책이죠.
다시 한번 그 기록된 목적을 상기해 봅니다.
요일1: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2:12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모두가 다 이미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이 글을 쓰는 겁니다.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들이 마땅히 누려야 될 충만한 기쁨은 누리게 하려 함이라'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죄 용서받고, 그의 피로 사함받고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그 자녀들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려 함이라!
머릿속으로 아는 지식이,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확신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체험하는 지식이 되어야 한다.. 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 위한 것입니다.
◑너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오늘 본문 요일3장은, 2장에 이어서,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기쁨이 가득 차고 넘치게 되는지를 그 이유를 가장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3:1절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요한은 이 사실을 기록하면서, 이 부분에서 감격해 하고 있는 거죠. 그의 마음속에 그 끓어오르는 감동과 감격을, 그런 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보라)' 이 말은, 우리가 이 자리에 멈춰서 한번 생각해 보자, 곰곰히 생각하고 주목해보자. 그 의미를 발견하고 깨달아 보자는 것이죠.
그것은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베풀어 주셨는가 그것을 다시 깨닫고, 우리가 다시 감격해 보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불린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지, 그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사랑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 그 감동을 다시 한번 음미해보자 하는 거예요.
과거에 하용조 목사님이 이 본문을 설교하시면서, 이런 진단을 했습니다. '이 시대는 무감동의 시대입니다. 감동을 잃어버린 시대! 메마른 사막처럼 눈물도 마르고 감동도 마른 시대!
더 무서운 것은,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 하나님의 자녀된 이들이, 하나님의 자녀 됨의 그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그 감동을 계속해서 누리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여러분, 자녀가 부모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무엇일까요? 자녀가 부모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어느 어버이 날에 설문조사 하는 것을 기사에서 읽어 봤습니다. '부모님들이 제일 받기 싫어하는 선물이 뭐냐?'
1순위가 보니까 건강식품 이래요. 뭐 이렇게 건강식품은 많이 받아서 이제는 싫다는 겁니다.
그러면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 뭐냐 그랬을 때는 '그저 얼굴 보는 거다'
근데 저는 얼굴을 보여 드리는 것보다 더 큰, 최고의 선물이 뭘까 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녀가 이렇게 부모에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는 부모님이 자녀로 태어난 것이 가장 인생의 행복이요, 기쁨입니다!'
물론 어떤 부모는, 자녀가 원하는 만큼 모든 것을
다 해 주지 못하는 부모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많은 것을 해 준 부모라고 다 존경받는 것도 아니고
많은 것을 자녀에게 정말 말할 수 없이 해 준 부모에게도 감사하지 않는 자녀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부족하고, 때로는 연약하고, 자녀가 원하는 거 다 해 주지 못하고 때로는 사람들이 보기에 그렇게 자랑하지 못한 부모처럼 보일지라도
자녀의 마음속에 '나는 우리 부모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 나는 우리 부모님이 나의 부모님인 것을 정말 기뻐합니다!' 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린다면, 그것이 정말 최고의 효도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어떤 자녀든지 다 그런 마음이 있잖아요. 부모님에 대한 불평, 불만, 아쉬움... '우리 부모님이 이런 부모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때로는 그런 아쉬운 마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부모님을 향해 '나는 부모님이 나의 부모님인 것을 기뻐합니다' 그런 마음이, 바로 부모님께 대한 최고의 효도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대하여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인 것을 저는 가장 기뻐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최고의 효도, 최고의 영광, 최고의 찬양인 줄로 믿습니다. '보라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요' 3:1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나타났나요?
▲1.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심으로 그 사랑을 보여 주셨어요. 창조의 이유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필요로 하신 분이 아닙니다. 나같은 인간이 필요해서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단지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은 사랑할 대상을 창조합니다. 사랑 하시기에 세상을 창조하신 거예요.
▲2. <성육신>으로 사랑해 주셨어요. 거기에 더 나아가 하나님은, 저 높고 높은 하늘에서 인간을 사랑한다 말만하지 아니하시고, 육신이 되심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성육신 하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거예요.
우리 가운데 거하심으로, 우리와 같이 되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거예요.
여러분 집에 강아지를 애완동물로 키우시는 분이 있잖아요. 너무너무 그 강아지를 사랑하시죠. 그런데 아무리 사랑을 표현해도, 그 강아지가 다 이해를 못 하는 거 같아요. 꼬리만 흔들 뿐이지요.
그래서 어느 날 결심을 했어요. 그 강아지에게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표현해 주려고 강아지가 되기를! 그렇게 결심할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은 무슨 사람이 강아지가 된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돼지가 된 것과 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아지신 것입니다. 그 사랑을 우리에게 전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이 되심으로 사랑하셨습니다.
▲3. 그렇게 사람이 되실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우리를 대신하는 희생제물, 대속제물,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죽기까지 낮아지심으로, 희생제물이 되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롬5:6~10절 까지 보면, 우리가 어떤 상태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사랑을 보여주심을 잘 설명하죠.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10절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을 때>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여기서 계속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상태입니다. 우리가 의로울 때, 우리가 잘났을 때, 우리가 의인이었을 때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웠을 때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과 연약할 때, 죄인 되었을 때,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신 것입니다. 5:8
예수님의 죽으심에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우리를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신 그 사랑,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나누었던 그 친밀한 사람을 우리와도 나눌 수 있도록 우리 모두를 자녀 삼아 주신 그 사랑!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아들이 되어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요일3:1
모든 것이 다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그것을 기억할 때 우리는 감격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보라 얼마나 큰 하나님의 사랑인가!' 3:1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 그 찬송이 바로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사랑은 증명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확인되어야 하죠.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에 관한 많은 속성 중에서 확증할 필요가 없는, 증명해 보일 필요가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우주만물을 보면, 하나님의 얼마나 능력이 있으신지.. 그건 증명할 필요가 없죠.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증명되어야 하고, 확증 되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눈으로 보고 받아들이지 않기에, 말로써 받아들이지 않기에,
그 아들이 죽으심으로,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신 사랑만이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를 우리에게 확증해 주신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을 바라보면, 사랑의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상이 왜 이렇게 엉망인가? 그런 질문을 가질 수 있죠.
과연 하나님의 사랑이신가? 세상의 불공평을 보고, 세상의 전쟁, 테러. 그리고 양육강식의 세상을 보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가?' 의문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보라!'
너희 모든 죄와 허물을 다 용서하기에 충분하고 세상에 어떤 악보다도 더 크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 세상을 덮어주시고, 그리고 우리 모두를 자녀 삼아 주시는 그 아버지의 사랑이, 아버지 해답인 것이죠.
하나님은 그 사랑을 우리에게 확증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 고백, '보라 아버지께서 얼마나 큰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는가?' 요일3:1 여러분 이 고백이 우리 일평생의 고백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4. 그리스도를 닮은 자녀가 되게 하시는 사랑
그런데 오늘 본문 요일3:1절과 2절 3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자녀 됨에 대한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1절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불림을 받는 자녀의 상태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직 연약함이 있고, 불의함이 있고, 죄와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우리를 받아 주시는.. 자녀로 입양해 주시고, 우리를 자녀로 불러주시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2절과 3절에 보면, 또 다른 차원의 하나님의 자녀됨이 있습니다.
요일3:2~3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1절에서는, 자녀라 불림을 받는 단계죠. 2절, 3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변화된 자녀'의 단계입니다.
이것은 신앙 성숙입니다. 처음에는 자녀라 우리를 불러주시고 받아들여 주시는 거예요. 우리의 어떤 상태도 상관없이, 우리가 아직 연약하고 죄악가운데 있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있을 때도, 우리를 자녀라 불러주십니다.
그런데 더 나아가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를 닮은 자녀로 그분과 같이 변화되는 단계'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그런 그리스도를 닮은 자녀로 변화되게 할까요? 그건 역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 사랑은 닮게하는 힘이 있죠.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닮고 또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닮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을 닮아가고 누군가를 사랑해 주면, 그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닮아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누리는 자녀는, 하나님을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닮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5. 또한 사랑으로 <정결케 되는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 이렇게 돼 있죠.
'누구든지 그분을 향해 이 소망을 가진 사람은 그분께서 정결하신 것처럼 자신을 정결하게 합니다.' 3:3
이 소망은 어떤 소망 입니까? 우리가 있는 모습 그대로 그분을 볼것이며 우리도 그 분과 같이 될 소망!
그분과 같이 될 소망을 가진 사람은 자신을 정결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그 소망을 만들었습니까?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시고, 언젠가 그 분과 같이 되도록 우리에게 길을 열어 주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그 아버지의 사랑이 이 소망을 만들어 내고, 이 소망이 우리의 삶을 거룩하고 청결하게 변화시킨다는 것이죠.
'내가 어떻게 살든 마지막 날에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는 홀연히 그냥 한 순간에 예수님처럼 변화될 거야' 그거는 진짜 믿음이 아니에요.
진짜 언젠가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이고 우리 모두가 그 분과 같이 영광스럽게 변화될 것을 믿고 소망하는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이 땅에서의 삶도, 그 분과 같이 정결하게 하는 것이죠. *성령의 인도가운데
아버지의 사랑이, 우리가 그 분과 같이 될 것을 소망하게 하고 그 소망이 우리를 거룩하고 정결하게 변화시킨다는 것이죠.
그래서 점점점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를 짓지 않는 상태로 변화되어 간다는 것이죠.
처음에 자녀라 불림을 받을 때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수 있죠. 그러나 하나님의 그 사랑 가운데, 그리스도 안에서 하는 사람은 점점 점점 죄를 짓지 않는 상태로 성숙됩니다. 변화됩니다.
오늘 본문 4절을 보십시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3:4
누구든지 죄를 짓는 사람을 불법을 행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죄를 짓는 사람'이라고 했을 때는 하나님의 자녀로 불리는 사람도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거지요.
'누구든지 죄를 짓는 사람'이라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6절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하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을 사니까요.
9절에도 같은 맥락의 말씀인데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9
누구든지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씨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 좀 답답해지지 않습니까? '나는 죄를 짓는 데.. 난 죄를 짓고 있는데..? 그럼 나는 하나님께로 난 자가 아니네? 그럼 거듭나지 않았네?' 가 아닙니다.
이 말씀만으로 보면 그렇죠. 근데 NIV 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No one who is born of God will continue to sin, because God's seed remains in him
번역하면, 누구든지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죄를 계속 짓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죄 가운데 있고, 누구든지 죄를 짓는 가운데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 점점 거함으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죄를 "계속" 짓지 않는다는 거죠. 점점 점점 죄가 소멸되어 가는 것입니다. 성화되어 가는 거죠.
왜냐면 그가 아버지께로서 난 자이기 때문이죠.
여러분 자녀가 부모를 닮듯이 그 DNA를 받았기에 점점 부모를 닮아가는 거죠.
여러분, 어린아이가 갓난아이 때는 그 부모의 그 모습이 잘 나타나지 안다가도 놀랍게도 커갈수록, 성인이 될 수록, 점점점 그 부모의 모습과 습관이 강하게 나타나요.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도 처음에 믿음의 초기단계에서는 성화가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점점 점점 영적인 성장을 이루다 보면, 점점 하나님을 닮은 자녀가 되지요. 죄를 짖지 않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의 자녀로 불림을 받을 때는 여전히 죄를 짓고 있는 상태 일지라도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의 역사로,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하나님의 씨가 있기에 말씀의 씨앗, 성령의 씨앗, 믿음의 씨앗이 있기에 그 하나님의 씨가 점점 자라나서, 이제 죄를 짓지 않게되는 단계로 성숙되는 거죠. *완벽주의는 물론 아니죠.
처음엔 그냥 자녀로 불리움을 받는 단계에서 이제는 자녀다운 자녀로 변화되어 간다는 거지요.
▲마치는 말 이제 하나님의 자녀됨을 죄와 관련해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어거스틴이 죄와 관련되서 네 가지의 상태로 구분한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1) 그는 타락 이전의 인간의 상태를 설명할 때, 이렇게 설명했죠. 아직 죄가 없지만 죄를 지을 수 있는 상태
2) 타락 이후에 인간의 상태를 무엇입니까?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상태
허물과 죄로 죽어 있기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상태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구원 이후의 상태를 뭡니까? 이제는 죄가 있지만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
4) 마지막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가 그 분과 같이 될 때, 영광스럽게 된 상태는 뭡니까?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
이 차이를 깨닫고, 내가 지금 어떤 상태로 변화되어 있는가를 추적할 수 있어야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거죠.
1)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 타락 이전에 인간의 상태는 죄가 없는 상태지만,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상태였죠.
2) 죄를 지은 직후의 인간의 상태는, 구원받기 이전의 상태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사람.
3)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씨가 들어온 상태에서는 이제는 제가 여전히 있지만,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가 되고
4) 마지막 영광스럽게 된 상태는, 죄를 지울 수 없는 상태! 모든 죄가 다 소멸된, 영광스럽게 된 상태이기 때문이죠.
우리는 지금 3단계에 있어요. 우리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 죄가 있지만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에 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씨'가 우리 안에 있기에, 그리스도 안에 거 할 때, 우리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거지요.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 단 한 가지 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가 너희 안에 거하면.. 라는 그 말씀, 하나님의 씨가 우리 가운데 거하시므로
요일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단지 죄용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귀의 일을 멸하고, 죄를 짓지 않는 상태로 변화시키려 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지금도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성령의 역사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멀리하고 죄를 짓지 않도록 그래서 자녀다운 자녀로,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감격하며 사는 존재로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누구인지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다운 자녀로 변화 되겠습니다.
그저 자녀로 불림을 받는 단계가 아니라 정말 자녀다운 자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자녀, 죄를 짓지 않는 자녀로 점점점 변화되어가는 그 일을 소망하며 날마다 정결함을 이루어 가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잊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리멤버 후 유아 Remember who you are! 네가 누구인지를 기억하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된 것을 기억할 때 우리는 다시 능력을 행복할 것이고 그리고 죄로부터 승리 할 것이고 자녀다운 자녀로 변화되어 갈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