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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5:1~5 승리의 확신

LNCK 2022. 12. 23. 20:39

승리의 확신 (요일 5:1-5)  - YouTube

 

◈승리의 확신      요일5:1~5

요한일서를 기록한 목적은 바로 '알되, 자신이 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그 잠자는 사람을 깨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무엇을 아는지를 알고 
자신이 아는 바를 말을 확실히 아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요한1서가 기록된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1서에는 '안다' 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많이 등장하죠. 
'우리가 아는 것은'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할 때는'

이렇게 '안다' 라는 단어가 반복되는 것은 
그 성도들을 향해서 '당신이 아는 바를 진짜 아는냐?'
'너는 아는 대로 그 안에 거하느냐?' 
'여러분이 진정 무엇을 아는지를 아느냐?' 이런 질문을 계속해서 던짐으로써 
더 깊은 확신에 거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확신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약속된 천국은, 죽고 나서야 '아는' 천국이 아닙니다. 

'오늘 죽어도 천국 갈 수 있습니까?' 이렇게 질문하면,
'가 봐야 알죠.' 

주님은, 가 봐야 비로소 '아는' 천국을 우리에게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5:24

△비행기를 탈 때, 미국 공항에서 게이트 앞에 앉아 있으면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종류의 사람들은, 좌석 표를 받아서 편안하게 앉아있는 사람이 있고요. 

미국은 국내선 비행기가 많기 때문에, 미리 표를 못 구한 사람은
게이트 앞에서 웨이팅 리스트에 자기 이름 올려 놓고, 기다리는 경우가 있죠. 

계속 기다렸다가, 빈자리가 나오면 타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 좌석이 정해져 있는 사람은 편안하게 쉬기도 하고 쇼핑도 하지만 
좌석을 못 받은 대기자들은, 안절부절하죠.

언제 자기이름 부를지 모르니까, 불안해서 화장실도 못 가요. 
그런 승객들을 보지요. 
우리 믿음 생활이, 확신을 가진 사람과, 또 확신이 없는 삶은 이처럼 다르죠.

▲요한1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확신'입니다. 
특별히 요일5장에 이르러서 3가지 확신을 차례로 우리에게 말씀해 줍니다. 

-승리의 확신 (이번 회에)
-구원의 확신 (다음 회에)
-기도응답의 확신 (다다음 회에)

이 3가지 확신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죠. 
이밖에도 사죄의 확신, 인도하심의 확신 등, 여러 확신들이 있지만 
특별히 이 세 가지 확신이 어떻게 우리 믿음 생활에 연결되어 있는 가를 
우리가 함께 살펴보고, 그것을 확신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에서 말씀해 주는 우리에게 약속된 확신은 
<승리의 확신>입니다. 

요일5:4~5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이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5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을 이기는 승리를 논하기 전에 
먼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특정한 교리에 동의하는 정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모든 교리에 다 동의하고도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의 보면 '네가 하나님께서 한 분이심을 믿느냐? 잘하는 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약2:19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단지 머리로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교리에 동의한다고 해서, 그것이 그리스도인이냐.. 그렇게 말할 순 없죠.
정기적인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면서도, 그리스도인이 아닐 수도 있어요. 
착하게 살면 그리스도인이냐?
물론 그리스도인은 더 착하게 살게 되죠.
그러나 착하다고 해서 꼭 또 그리스도인은 아니죠. 

그럼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입니까?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거기에 또 하나 더 중요한 말씀이 본문에 첨부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
'하나님으로 인해 태어난 사람'
'하나님께서 다시 거듭나게 한 사람이다' .. 라는 것입니다. 

5:1 '누구든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입니다.' 

5:4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이깁니다.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표현할 때, 본문에서 반복되는 표현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낳으신 사람,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사람, 다시 태어난 사람' 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과 동시에 일어나는 체험이 
바로 하나님에게서 태어나는 거예요. 

-예수님을 우리가 믿는 것이 먼저인가?
-아니면 하나님께로서 태어나는 것이 먼저인가? 
신학자들이 열띤 논쟁을 하지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함으로써 태어나게 되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태어나게 하셨기 때문에 믿게 되는 것인가? 

역사적으로 많은 신학자들이 논쟁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둘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우리 인간의 DNA를 보면 두 개의 나선형이 서로 하나를 이루어 가는 것처럼 
인간의 믿음과,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는.. 서로 맞물려 있는 것입니다. 
뗄래야 뗄 수가 없는 것이죠. 

물에 빠진 사람에게 밧줄을 던져 주는 사람이 있어야, 
그 사람이 살아나는 것임과 동시에 
그 던져진 밧줄을 내가 붙잡아야 내가 살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어느 것이 먼저이고,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할 때는 
절대적으로 밧줄을 던져 주는 분이 있어야지요.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거듭나게 하지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믿음조차 가질 수 없는 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 하시기 때문에, 우리 믿음은 아무 필요가 없다' 라고 하면  
우리가 믿어야 하는 책임이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이죠. 
그래서 이 둘은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입니다. 

▲본문 1절에 보면 '믿는다' 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 동사는 현재시제입니다. 

그런데 1절 중간에 '하나님에게서 났다'는 완료시제죠. 

이것을 보면은 '하나님께서 다시 태어나게 하신 사건으로 우리가 믿게 되었다'
라는 설명을 더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내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었다면, 
그 믿음 조차도 하나님의 선물이고 
내 안에 하나님께서 다시 태어나게 하신 새생명이 있기 때문에 
내가 믿게 되었다... 라는 거예요. 

그런데 꼭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사람을 믿게 되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고, 사람들에게 믿음의 결단을 촉구하는 
요청(전도)을 할 필요가 없다.. 라는 말은 아니죠.

왜냐면 이 거듭남은 하나님께서 언제 역사하시며 주시는가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 
그리고 그 말씀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그들이 믿음 가운데 나오도록 결단 하도록 요청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구원 얻는 믿음을 주시고 
거듭나는 역사를 동시에 행하실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납니다.' 

하나님께서 한 영혼을 거듭나게 하시는 일이 일어나는 그때가 언제인가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의 말씀이 충실하게 증거 될 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고, 
그들 가운데 거듭남의 역사, 하나님에게서 태어나는 역사가 나타나는 거죠.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증거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믿었기 때문에 거듭났다' 라고 말해도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태어나게 하셨으므로, 내가 믿게된 것이며 
동시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증거(전도) 함으로 
그들에게 말씀을 들려 줌으로써 그들이 믿을 때에 
거듭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때문입니다. 

이 둘을 분리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거듭나게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우리가 왜 선교, 전도 해야 됩니까? 
그렇다면 전도 할 이유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극단적인 칼빈주의 예정론에 빠진 사람들은 전도하지 않아요. 
'내가 전도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거듭나게 하시기로 작정한 사람은 
다 거듭날 것인데, 
내가 아무리 전해도 하나님께서 거듭나게 하지 않으면, 거듭나지 않을 건데..' 
이렇게 모든 것을 하나님 편에만 돌리게 되면, 
우리가 전도해야 될 이유가 없는 거죠.

그러나 성경은 왜 그리스도의 말씀을 증거하라 그랬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전해지는 말씀을 통해서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를 이루시기 때문이죠. 

그 말씀이 들려지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새생명의 탄생을 이루시기 때문이에요. 

요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가 육체적으로 출생할 때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한 인생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육체를 가진 존재로 태어났서, 우리는 배고픔에 욕구를 느끼게 되고 
눈을 가졌기에, 보는 것에 끌리기 되고 
귀를 가졌기에 들리는 것에 영향을 받게 되죠.

육적인 출생을 통해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한 인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죠.
세상 속에 인간으로, 그 시대 역사 속에, 우리는 파묻혀 살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나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면,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인생으로 살 수 있는> 
새로운 생명이 시작을 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삶은 
첫 출발이 하나님에게서 나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한 것처럼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여러분이 자기 안의 거듭남의 체험이 있는지... 
거듭남의 그 경험과 그 생명이 내 안에 있는지를... 확인해 봐야 됩니다. 

이것은 내가 무엇인가를 많은 공로를 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책할 필요도 없어요. 

이제 이후로 내가 진정 거듭났는가 를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설교를 몇 주간 하겠습니다만, 

'내 안에 이런 영적 생명, 거듭남의 체험!' 
이것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첫 출발입니다. 

▲'당신은 거듭났습니까?' 라는 질문을 던지면, 불안해 하는 분들이 있죠. 
어떤 분은 이렇게 답하죠.
'제가 예전에 어떤 목사님과 성경공부를 했고, 
제가 30년 신앙생활 했고..' 이렇게 설명을 하는 것은 불안하다는 거죠. 

'예!' 그러면 되는 거예요. 

예를 들면 '당신은 결혼하셨습니까?' 그러면
'그때 제가 결혼 했는지/ 안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면 벌써 결혼 안 한 거잖아요. 

결혼한 사람은 '네, 결혼했습니다!' 이렇게 딱 나오죠.

거듭남도 그만큼 분명한 체험이요, 확실한 것이요, 
뚜렷이 경험할 수 있는 그런 새생명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느 한 순간에 
내가 간절히 원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먼저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 

그러나 간절히 원했지만, 한참 후에 나에게 
이 체험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신앙 생활을 오래 한 이후에
마지막에 도달하는 지점이 아니라 

내 안에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마치 갓난아기가 태어나듯이, 우리 안에 영적인 새생명이 태어나는 거예요. 

그런데 그 태어남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을 때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실히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나에게 거듭남의 체험이 주어지는 거예요. 새생명의 역사가 시작되는 거예요. 

 

▲존 스토트 목사님은 abcd 알파벳을 통해서 거듭남을 설명했는데,
A : Admit 받아들임 :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인정하는 거죠.

B : Believe :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거죠. 십자가의 사죄의 능력을 믿는 거죠.

C : Commit :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께 위탁하고 신뢰하는 거죠. 

D : Do :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을 행하는 거죠.

이것이 거듭남의 영혼에 나타나는 그런 영적 체험인 것입니다. 


◑여러분, 출생한다는 것은, 한 생명이 태어난다는 것은 
홀로 세상에 존재하는 그러한 존재는 없죠. 부모가 있는 것입니다. 

한 생명이 존재하면, 그를 태어나게 한 부모의 DNA, 부모의 형질
부모의 성품까지도 닮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태어난다는 것은 공동체 안에 테어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으로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태어난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하나님의 DNA를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DNA 를 갖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 DNA 가 무엇인가요?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의 3가지 영적인 특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첫 번째는 "사랑"입니다. 

5: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 난 사람은, 새로운 본성을 가졌습니다. 
새로운 본성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자녀를 왜 사랑합니까? 내가 낳았기 때문입니다.
낳은 자녀를 사랑하는 것, 나를 낳게 하신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자연적 본성입니다. 

그것처럼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배의 자리로 나와서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것, 
하나님을 향한 그 사랑이 어디서 났습니까? 

하나님에게서 났기 때문에, 하나님께 이끌리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하나님의 가족된 성도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가족을 사랑하듯이요.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듯이, 
하나님의 한 가족된 성도들에 대한 사랑을 느끼는 거죠. 

요일4:7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께로부터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2. 두 번째는 "순종"입니다. 
사랑에서 순종으로 넘어갑니다. 
이것은 매우 논리적인 순서이지요. 

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하나님의 대한 사랑은, 감정적 체험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주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죠.

사랑은 순종을 낳습니다. 
사랑하면.. 순종은 부담이 아니라, 기쁨인 것입니다. 

사랑은, 어떤 수고와 헌신도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새에게 두 날개가 부담입니까? 
새가 두 날개를 거추장스러워 합니까, 힘들어 합니까? 아닙니다.

새가 날게 하는 힘이 날개에 있듯이 
진정한 사랑이 사랑 되게 하는 것은 순종에 있다는 거죠. 

요14:21 '내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3. 세번째는 "승리"입니다.

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면, 세상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이룰 수 있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이면, 세상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이루고,
힘이 강해져서 세상 위에 군림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역사상 세상을 정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알렉산더, 나폴레옹 등 수많은 역사적으로 세상을 정복했다는 사람들은 
사실 세상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정복당한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모두가 세상을 얻기 위해 싸웠고, 세상을 이기기 위해 싸웠고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세상이 그들을 정복한 것뿐입니다. 

이 세상의 탐욕, 야망, 이 세상에 포로가 된 것 뿐입니다. 
결국 그들은 또 다른 세상에 포로된 사람들에 무너졌고 
죽음에게 자기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다는 것은 
'나는 세상을 이길 수 있다' 라는 
주관적 믿음, 주관적 체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믿는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심을 알고 
그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심과 같이.. 세상을 이깁니다. 

4절에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이것이니' 라고 할 때 
부정과거시제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가리키고요, 

5절에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 이것은 현재시제입니다.
우리가 매일 매일 승리할 수 있다는 거죠. 승리해 나간다는 거죠.

4절과 5절을 연결하면, 
과거에 예수께서 이루신 승리가 
현재도 우리의 삶 속에 계속해서 이루어지는 승리가 된다는 거예요. 

요16:33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런 것들을 말하는 것은, 너희가 내 안에 평안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가 이 세상에서는 고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미 이겼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고 예수님이 승리를 선언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 라고 하시는 그 고백에는 
여러 말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내가 승리하였다' 입니다.  :4

십자가 위에서 힘 없이 죽으신 예수님이 
정말 세상을 이기신 것일까요? 

그 모습 자체로는 세상에 패배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죽음 가운데 다시 부활하시는 승리로 인해서
그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라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긴다'고 할 때는 우리 자신의 승리가 아니에요. 

이 세상의 고지에 오른다고 해서, 그것이 승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승리일 수도 있고, 승리가 아닐 수도 있어요. 

예수님께서 이미 이루신 승리가, 나의 승리가 되는 체험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을 이미 이겼다' 라고 하는 그 승리가 
나의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약속된 승리입니다.

우리가 이루어야할 승리 이전에 
이것이 약속된 승리입니다. 

그것을 내가 얼마나 체험하는가 하는 것은, 우리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그 믿음에 본질은 무엇인가요? 

예수님 그리스도이심을 날마다 고백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위탁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향할 때.. 그 믿음의 역사, 승리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사시도록 내어드리는 믿음, 
그 믿음으로 우리는 이 승리를 경험할 수 있다는 거죠. 

▲국가 대표가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몇 명의 선수들이 나가서 경기를 하죠. 
국가대표가 이기면, 우리 모두가 다 이겼다고 환호를 해요. 

내가 가서 경기 한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이겼다고 말하죠? 
우리는 한 나라, 한 민족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죠. 

예수님의 십자가의 승리가 왜 나의 승리가 되죠?
그것은 예수님과 내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새로운 영적 출생을 통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한 가족 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승리가 곧 나의 승리가 되는 거예요. 

그 예수님과 우리를 연결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거죠.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행할 때, 우리는 그분의 승리를 내 승리로 경험하는 거예요. 

승리를 말하기 전에, 사도요한은 두 가지를 먼저 말했죠.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의 계명에 순종한다. 

이 두 가지가 사실 승리의 비결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에 순종할 때, 우리는 세상을 이기는 거예요. 

'사랑'과 '순종' 없이 세상을 이길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사랑'과 '순종'과 '승리'는 영적인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세상을 이길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반드시 세상에 대해 승리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다'는 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그분의 말씀에 순종해서 
내 안에 있는 모든 세상적인 요소들을 내려놓는 거예요. 버리는 겁니다. 
그게 승리입니다. 

야곱이 얍복 강에서 홀로 남았죠. 가족들과 소유물들을 다 건네고 
홀로 남아서, 어떤 사람의 공격을 받고 서로 싸울 때 환도뼈가 위골 됐죠. 

위골 됐을 때, 그 하나님의 사람을 붙잡고 축복을 간구했죠. 
그때 그 사람이 이름을 바꿔주죠.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라' 
이스라엘은 '내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겨루어 이겼다' 

'네가 승리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정하고 매달리는 사람이 진 사람입니다.
환도뼈가 위골된 사람은 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네가 이겼다' 라고 말씀하는 걸까요?
환도뼈가 위골 될 때, 야곱 안에 있는 그 무엇이 깨졌기 때문이에요. 
그가 뭔가를 내려놨기 때문이에요. 

그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집착, 
그것이 물질에 대한 집착이든, 
장자권에 대한 집착이든, 
자신의 생명에 대한 집착이든... 

그거 왜 모든 가족들을 다 건너게 하고, 혼자 남았습니까? 
처음부터 우리는 너무 순진하게 해석해 왔어요. 
'야곱이 기도하기 위해서 남았다...' 

그게 아니라, 대열의 앞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만은 살아남으려고 그랬던 거죠. 

환도뼈가 위골 된 순간 그는 '나는 더이상 도망 못 간다'라는 것 
그것부터 생각났을 거예요.

천사가 왜 환도뼈를 위골 시켰을까요?
그것은 더 이상 걷지도 못하게, 도망가지 못하게...

'에서 형이 자기 선두 대열을 치면, 자기는 도망갈 수 있다...' 
자신의 믿고 있던 마지막 계획을 하나님이 깨뜨렸을때 
그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게 된 거에요. 

그때 그는 자유하게 됐어요. 그는 진짜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게 됐죠.
그가 자기의 집착을 내려 놨을 때, 하나님은 
'네가 이제 승리했다!'

하나님 앞에서 그 뜻에 우리가 굴복하고 순종하고 내려 놓는 것이 
우리의 승리라는 거예요.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바로 내 안에 있는 세상적인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깨어질 때 
우리는 영적으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몇 개월 전에 미국 프린스턴신학교 크랙 반스 총장님이 오셔서 식사 할 때 
그런 질문을 저희에게 하시더라고요. 
'온누리 교회를 목회하면서 참 큰 도전은 뭐냐? 가장 힘든 게 뭐냐?' 

순간 제가 이렇게 대답했어요. "It's me!" 
'목회하면서 가장 힘들게 하는 게 저입니다. 저!' 

제 안에 있는 세상이 저를 힘들게 하지, 누가 힘들게 하는 게 아닌 거에요.
'가장 큰 도전은 바로 제 자신입니다!' 
그랬더니 한참 동안 저를 쳐다보시더라고요.

이 세상을 정복하기 전에, 
나를 정복하는 내 안에 있는 세상을 
하나님 앞에서 내려 놓고, 환도뼈가 위골 되는 체험이 없이는 
세상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다'는 것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세상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고 
이기고 승리 한다는 거예요.

다니엘이 하루 세 번씩 기도하는 습관, 그것으로 그를 죽이려고 했지만 
그는 생명을 내걸고 기도하는 습관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이긴 겁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영웅들에 대한 기록을 보면 
많은 이름들이 나오지만 
후반부에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 무명의 그리스도인들의 기록이 나와요. 

앞에 보면, 아브라함 부터 시작해서 많은 이름들이 나오지만 
사실은 그 사람들은 여러 가지 허물도 있고, 연약함이 있었지만 
이름이 나오지 않는 무명의 그리스도인들의 기록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히11:36~38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이 사람들을 이름은 뭡니까?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을 이긴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합니다. 
어떠한 위협과.. 순교할지라도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감당하지 못 하는 사람들'이 되고 있습니다. 

조금도 희생하지 않으려 하고, 
믿음을 너무나 쉽게 포기함으로 
'세상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다'는 것은, 이 세상 풍속을 따르지 않는다는 거죠. 
세상의 풍속에 휩쓸리고 유행을 따라 살고, 
시대의 관습에 노예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어느 연예인이 이런 고백 하는 것을 제가 들었어요. 
그리스도인 인데,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게 알려지 걸 꺼리는 거예요. 
왜냐면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인기가 떨어질까봐 두렵다는 거예요.
세상을 두려워하는 거죠!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고전4:3

이것은 사람들의 평가를 무시한다는 게 아니라 
나에 대한 건전한 비판을 내가 수용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양심 앞에서 
내가 거리낌 없이 행하겠다는 것이며, 
이 세상의 풍조에 나는 휩쓸리지 않겠다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세상을 이긴 믿음의 사람의 결단인 것이죠.

우리 모두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을 때 
거듭난 새 생명을 인해서 
세상을 이기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이 점점 자라야 합니다. 
믿음이 자란다는 것은 뭡니까?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점점 온전히 거하시는 거예요. 

예수님이 단지 구세주로서가 아니라 
나의 마음이 아니라. 주님으로서 
그분이 내 안에 온전히 사실 때,
그리스도의 새생명이 내 안에 온전히 주장할 때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으로, 사상을 이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그 믿음을 날마다 체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