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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9:1~6, 빌4:12 두벌 옷 가지지 말라 하신 예수님의 의도

LNCK 2022. 12. 26. 05:03

[날마다 기막힌 새벽 #821] 두벌 옷 가지지 말라하신 예수님의 의도 - 

 

◈두벌 옷 가지지 말라 하신 예수님의 의도   눅9:1~6, 빌4:12   2022.01.31.


오늘은 누가복음 9:1~6절 말씀 봉독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 아멘

오늘 이 날기새 녹화를 굉장히 여러 번째 다시 하고 있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굉장히 중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해서
건너뛰고 싶지 않은 내용인데

그 내용을 얘기하는 것이 저한테 참 힘들고
불편한 내용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북 말로 ‘말째다’는 말을 해요. ‘불편하다’는 뜻인데
오늘 이 설교가 저는 참 말째예요.
참 불편해요. 그래서 하다. 보니까 자꾸 말이 꼬이고 버벅거리고
잘되지 않아서 지금 여러 번째 다시 도전하는데
이번에는 그냥 좀 쉽게 해서 끝내보려고 합니다.

▲제가 높은뜻 숭의교회를 처음 개척했을 때
그때 교회 재정을 좀 투명하게 하고 싶어서
모든 교회 재정을 교회 홈페이지에 다 매달 올리고 그랬었었습니다.

근데 어떤 분 한 분이 익명으로
저희 교회 홈페이지에다가
‘김동호 목사 연봉이 1억3천몇백만 원이다’
라고 하는 내용의 글을 올렸는데

연봉이 그렇게 많으니까 쉽게 말하면 
‘김목사 삯꾼이다. 훌륭하지 못하다.
돈에 너무 욕심이 너무 많다.’
이제 그런 논조로 쓴 글이었습니다.

근데 사실 그 연봉 제가 받아본 적이 없거든요.
뭔가 계산을 그분이 잘못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계산 잘못하셨습니다. 그건 제 연봉 아닙니다.’
그러고 해명했으면 되는 건데

제가 또 그런 면에 있어서 호전적인 기질이 있어서
글을 이렇게 썼어요. 

‘그 연봉 받은 적 없다.
근데 교회가 그 연봉 나한테 줬다면 나는 받았다.
목사가 그 연봉 받으려고 목사 되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그 연봉 받으면 왜 안 되느냐?’

하는 그 얘기를 했어요.
우리 한국교회는요. 
‘목사는 좀 가난해야 돼’
가난함을 훌륭함으로 보는 것이 있는데

저는 그게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돈에 욕심을 부리지 않고
깨끗하게 살려고 하다가 가난해진 사람,

가난해짐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정직함과 정의로움을
타협하지 않은 사람은 훌륭한 것이지만

그냥 무조건 가난한 그 자체를 훌륭함으로 보는 것은
돈 많은 것을 잘 사는 것으로 보는 것과
똑같은 치우침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여러분 우리 한국의 특히 교회에는요.
또 문화에는요. 
돈을 다 좋아하면서도 부정한 것으로
좋지 못한 것으로 탁한 것으로 여기고

가난함을 다 바라지는 않으면서도
가난을 훌륭함으로 또 깨끗함으로
이렇게 편 가름하는 그런 오류가 저는
그것은 심각한 착각이라고 생각했어요.

부한 사람 중에도 깨끗하고 훌륭한 사람이 있죠.
여러분 경주 최부자
또 제주도의 어떤 할머니 얘기도 있더라고요.

그분들은 부자였는데
그 부함을 통해서 참 훌륭하게 살았어요.

가난한 사람 돕고
‘우리 사는 지경에는 밥 굶는 사람 없게 하라’
뭐 이런 정신을 가지고 부자가 되었으니까
그 부자가 참 훌륭한 사람이잖아요.

성경에도 다윗은 부자였잖아요.
그런데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고

제가 얼마 전에도 얘기했지만 아리마대 요셉
예수님에게 묘지를 내어드린
아리마대 요셉도 부자거든요.

그러니까 부자라고 다 나쁜 사람이고..
이건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에요.

그렇듯이 가난하다고 무조건 가난을 훌륭함으로 여기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에요.

제가 사도 바울의 얘기를 늘 하는데
사도 바울은 이렇게 얘기하잖아요.

‘나는 부한데도 처할 줄 알고
비천한 데도 처할 줄 안다.’  빌4:12

잘 사는 것은요. 
부한데, 부한데 처할 줄 알아야 돼요.

경주 최부자처럼, 제주도의 어떤 할머니처럼
또 다윗처럼, 아리마대 요셉처럼
그게 부한데 처할 줄 아는 것이에요.
그렇다면 그는 잘 사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가난한데도
비천한데 처하지 못 하는 사람도 많아요.
가난한데 삐뚤어지거나 거짓되거나
이런 사람도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 사람을 가난하다고 무조건
훌륭한 것으로 치부하면 그것은 옳지 않지요. 

‘그래서 가난과 훌륭함으로, 
부함을 잘 사는 것으로
편가르는 것은 위험하다’ .. 하는 생각을 했었죠.

저희 높은뜻 숭의교회 게시판에
제 연봉 가지고 얘기한 분의 생각의 기조도 뭔가 하면

‘목사가 너무 연봉 많이 받는 것은 훌륭하지 못하다.’
라는 것이었는데

제 반박은 
‘연봉 그렇게 받지 않았지만
그렇게 혹 받는다고 해서 훌륭하지 못한
성실하지 못한 정직하지 못한 목사는 아니다.’

그것을 반론하고 싶어서 논쟁을 벌였다가 제가 혼났죠.
악성 댓글이 7천 개나 달리고 그래서

제가 정말 신경 정신과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아주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국교회 목회자는 가난해야 된다. 청빈해야 된다’는 생각이 많은데
그 성경적인 근거가 오늘 본문이에요.

예수님이 제자들을 전도여행 보낼 때
‘두 벌 옷을 가지지 말아라
전대에 돈 가지고 다니지 말아라’
그런 얘기였거든요.

그래서 목회자는 두 벌 옷 가지지 않아야 되고
전대에 돈 없어야 되고
그래야 훌륭한 것으로 얘기하는데

예수님이 얘기하시는 의도는 그게 아니에요.

‘전도자는 가난해야 돼!’
그 얘기 하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었어요.

오늘 이 누가복음 9장에 있는 말씀이
마태복음 10장에도 똑같이 나와요. 

마태복음 10장 10절 제가 한번 읽어 드릴게요.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두 벌 옷 가지지 말아라
지팡이도 같이 가지지 말아라
전대에 돈 가지고 다니지 말아라

왜 그런가 하면 이는 그 까닭을 설명하시는데요.
‘목회자는 청빈해야 되기 때문이야
전도하는 사람들은 가난해야 되기 때문이야
돈 가지고 다니면 못 써!’ 그 얘기가 아니고요.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뭔가 하면
너희들 가서 복음 전하고 그랬을 때
그 말씀을 배우고 듣는 사람들이
너 옷도 줄 줄 알아야 되고

먹을 것도 줄 줄 알아야 되고
필요한 돈도 공급해 줄 줄 알아야 돼

일꾼이 자기 먹을 것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마땅한 일이야!’ 그 얘기셨어요.

그러니까 도리어 교인들 쉽게 요즘으로 얘기하면
‘교인들이나 교회가 목회자 어렵지 않게 잘 해줘야 돼
그리고 하나님의 일도 다 일인데
일꾼이 자기 먹을 것 생활비 받는 것은 마땅한 일이야’
그 말씀을 하신 것이에요.

그러니까 ‘목회자는 가난해야 돼, 청빈해야 돼!’
그 성경의 본문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오늘 그 얘기를 하고 싶어서
하는데 자꾸 말이 꼬여서
‘목회자, 주의 종 잘 섬기고, 연봉 많이 주고’
그 얘기 하는 것처럼 들려져서 자꾸 말이 안 되더라고요.

여러분 그 얘기 아니에요.
목사가 부자가 되려면
사업을 하거나 다른 직장을 갖거나
장사를 하지, 왜 신학교를 가고 목회를 하겠어요?

아마 부자 되려고 목사 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요?
그렇지만 제가 얘기하려고 하는 것은
여러분 부함을 잘 사는 것으로 여기지도 말고
가난 자체를 미화하거나 훌륭함으로 오해하지도 말고

‘건강한 균형 잡힌 생각을 할 수 있어야
세상이 좀 더 좋아지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담임 목회할 때, 제가 섬기던 교회도
‘목회자는 좀 가난해야 돼!’ 하는 생각이 있던 교회니까
언제나 보면 연봉이 박했어요.

저는 담임목사니까
다른 교회보다 좀 박해도
박하지도 않았지만
저는 사는데 문제가 없었는데

어느 정도 연봉이 낮아지면
부교역자들, 직원들의 생활이 너무 어려워요.

전 그래서 예산 책정하고 그럴 때
예산 짜고 하는 장로님이나 담당한테
목회자들 연봉 가지고 실랑이 한건 아마 흔치 않을 거예요. 

목사들이 그 얘기를 잘 못해요.
속으로나 끙끙거리고 힘들어하면서
삯꾼 취급받을까 봐 그 얘기를 못하는데
‘저 연봉 좀 올려 주시라고..’

‘나는 괜찮지만 우리 목사님들 그 돈 갖고 생활 못한다고
가정이 있고 아이들이 있고 그러는데
목회자도 성실하게 정직하게 평생 일하면
나중에 집도 한 칸 마련할 줄 알아야 되고

아이들 공부도 시킬 수 있어야 하고
나중에 차도 살 수 있어야 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어야지
목회자라고 가난하게 해서는 안 된다’ 해서

굉장히 연말마다 목회자 연봉 가지고
장로님들하고 실랑이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때 저는 ‘김목사 삯꾼이구나, 돈 욕심 많구나’ 하는 오해 받을 것을
각오해야만 했어요. 그게 참 불편하고 힘들었어요.

오늘 이 설교가 자꾸 여러 번 반복하고 된 것이
그 오해받을까 봐 그게 불편해 가지고
말이 자꾸 꼬이는 거예요.

우리 사랑하는 날기새 가족 여러분
이건 꼭 목회자 뿐만 아니라
성경은 굉장히 균형 잡힌 생각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돈 많다고 잘 사는 것 아니다.
부함이 잘 사는 게 아니라면

똑같이 가난함 자체도 잘 사는 것은 아니에요.

여러분 가난함에도 잘 사는 것이 있는 것이고
부한데도 잘 사는 것이 있는데

그 잘 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에요.
부한데 하나님의 말씀의 정신을 가지고
부함을 잘 다스릴 때 잘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기죽지 않고
당당하고 비굴하지 않고
삐뚤어지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거
그게 잘 사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함부로 두 벌 옷 가지지 않고
전대에 돈 없는 것을

훌륭한
청빈한 성직자 
이런 개념으로 빠지는 것은
성경을 공부하고 배우는 사람들이 가져서는 안 될 거예요.

사도 바울은 부한데도 처할 줄 알고
비천한데도 처할 줄 안다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나는 부하면 부한 대로 잘 살 수 있어
부함을 거부하지 않았어요.

또 가난함도 거부하지 않았어요.
또 실제로 교인들이 ‘목사는 가난해야 돼’
그래서 그런 게 아니라

드릴 것이 없어서 그때 교회가 약했으니까
생활비를 못 감당하니까
조금도 불평 없이 자기가 천막 깁는 노동해서 벌어서
그래서 텐트 메이크 했잖아요.
그게 가난에 처할 줄 아는 것이에요.

그런데 모든 목회자는 그렇게 바울을 본 받아서
‘교회에서 봉급 받지 말고 천막 치고 그래서
천막 깁고 그렇게 해야 돼’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이에요.

말씀의 정도에서 어긋나고
잘못 해석한 거라 하는 말씀이에요.

오늘 ‘두 벌 옷 가지지 말아라
지팡이 가지지 말아라
전대에 돈 넣고 다니지 말아라’
라는 말씀이 잘못 해석되는 것을

제가 좀 얘기하기 위해서
버벅거리면서 얘기를 참 많이 했습니다.

여러분 교회 교역자들
생활 어렵지 않도록 잘 챙겨주시고요.

그들도 가정이 있고 또 자녀도 키우고
노후에 생활도 해야 될 텐데
보통 일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을 만큼 챙겨주고

좀 가난하다면
목사들이 이중직을 가질 수도 있고
나가서 사회생활하면서 벌어서
교회를 할 수도 있지만

제가 얘기하는 것은
‘가난해야만 하고, 두 벌 옷이 없어야만 된다’고 하는
잘못된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부한데도 가난한데도 처할 줄 아는
복음의 능력 가지고 언제나 잘 사는 사람

부해도 잘 살고, 가난해도 잘 살고
하는 그런 우리 날기새 식구들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잘 이해해 주셨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저는 굉장히 이게 목회자에게
생활비를 잘 드리냐 못 드리냐 그 얘기가 아니라

정말 잘 사는 것이 뭔가
훌륭함이 뭔가
가난은 뭐고 부함은 뭔가
하는 얘기가 공부가 된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힘들면서도 버벅거리면서도
고집스럽게 녹화해 봤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